소설리스트

3화 (17/17)

03.

물기에 젖은 금색 눈이 이블을 올려다봤다. 이블은 체체의 발개진 눈가에 짧게 입을 맞추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방금까지 손가락 세 개를 삼키고 있던 구멍은 금세 꽉 다물려 새끼손가락 하나도 들어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블이 넣어야 하는 것은 새끼손가락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굵고 커다랬다. 비교를 하려면 체체의 팔목과 비교를 해야 했다.

“너, 너, 넣는다.”

“네….”

“지, 진짜 넣는다?”

“네, 넣으세요.”

16일 만의 삽입 섹스라서 그런지 이블이 처음 할 때처럼 삐걱거렸다. 거사를 앞두고 평소보다 애무도 훨씬 공들여 했기 때문에 체체는 온몸이 노곤노곤 해롱해롱한 상태였다. 온몸이 간지러운 느낌에 다리를 오므리고 싶었는데 양다리 사이에 이블이 있어서 어쩌지도 못하고 그저 얼른 그가 얼른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이블이 한쪽 손으로 체체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구멍을 벌렸다. 체체가 입술을 다물었다. 이블이 오랜 시간 빨고 핥으며 풀어 놓은 구멍 안으로 꼿꼿이 선 중심의 끄트머리부터 밀어 넣기 시작했다.

“흐읏….”

단단하고 굵은 것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자 어쩔 수 없이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블 또한 좁고 뜨거운 내벽이 성기에 달라붙는 것을 느끼며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귀두까지 넣었다가 허리를 뒤로 물리고, 이번엔 귀두보다 조금 더 깊게 삽입했다. 체체의 신음이 점점 더 높아졌다.

몇 번의 삽입과 후퇴를 반복하며 1/2까지 들어갔다. 이블이 진입을 멈추자 체체가 팔꿈치로 침대를 짚고 상체를 조금 일으켰다. 접합부를 확인하는 야한 뱁새를 보며 이블이 웃었다.

“다 넣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런데 일단 한 번 싸고 나서 넣을 거야. 네 안에 정액 내보내면 좀 더 들어가기 쉬워지거든.”

“…….”

이제 와서 뭐가 부끄러운지 체체의 귓가가 살짝 붉어졌다. 둘은 마주 보는 체위를 주로 했는데, 그 이유는 당연히 상대의 표정을 볼 수 있어서였다. 문신 기술이 발달한다면 망막에 새겨 넣고 싶은 사랑스러운 얼굴을 보며 이블이 체체 쪽으로 몸을 겹쳤다.

“아읏….”

삽입이 깊어지자 체체가 이블의 어깨를 붙잡아 왔다. 거부의 표시가 아니라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이블은 체체와 가슴이 맞닿도록 몸을 겹친 채 체체의 등허리 뒤쪽으로 팔을 감아 안았다. 다른 팔은 체체의 뒤통수와 목뒤를 받쳤다. 지금은 체체가 목에 힘을 주고 세우고 있지만, 나중에는 목이 뒤로 젖혀진 채 흔들리기만 할 것이다. 미리 작은 머리를 고정한 이블은 허리를 뒤로 물렸다가 이번엔 좀 더 세게 박아 넣었다. 아까보다 조금 더 들어갔다.

“읏!”

“아프면 말해. 우리가 정해 놓은 거, 기억하지?”

“아프지 않…. 아읏. 흐…!”

체체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이블이 체중을 실은 채 깊게 파고들어 오고 있었다. 체체는 이블의 목을 감으려고 했으나 넓은 어깨에 두 손을 걸치는 게 고작이었다.

천천히, 빠르지 않은 속도로 넣었다가 뺐다가 다시 넣었다가 하면서 마침내 늘 닿았던 안쪽 깊숙한 곳에 성기가 닿았다.

“여기…. 체체가 좋아하는 곳.”

“읏…. 이블 님. 아!”

이블은 체체의 안쪽에 있는 도드라진 부분을 꾸욱 누른 채 움직이지 않고 성기에 달라붙는 내벽을 음미했다.

“하아, 체체. 따뜻해.”

가장 따뜻한 건 내벽이었지만, 체체의 얼굴, 귓가, 목덜미까지 전부 열이 은은하게 올라 따뜻했다.

“너무 조이지 마. 금방 지치잖아.”

“흣…. 누르지… 마세요.”

“너도 한 번 가고, 나도 한 번 가야 두 번째가 더 쉽다니까.”

이블이 체체의 귓불을 잘근잘근 깨물며 낮게 웃었다. 그 진동에 체체가 또 한 번 흣, 하고 얕은 신음을 내뱉었다. 이블은 항상 2/3가량 넣고 나면 적응할 시간을 준다는 명목으로 체체가 느끼는 부분을 꾸욱 누른 채 가만히 있고는 했다. 그러면 체체는 원망 어린 시선을 던져 오는데, 그 시선마저도 이블에게는 자극이었다.

이블은 체체의 눈썹과 눈꺼풀, 귓가, 입술, 턱과 목덜미 등 내려다보이는 모든 곳에 잇자국을 남기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점점 가빠지는 심장 박동과 아랫배를 간지럽히는 꼿꼿이 선 성기, 쫀쫀하게 달라붙는 내벽을 음미했다.

“흐…읏. 더… 커지고 있.”

“그거야… 커지지. 네가 이렇게 야하니까.”

“빨리, 움직여… 주세요.”

“글쎄. 어떡할까.”

체체가 미간을 찌푸리며 이블을 올려다봤다. 심지어 어깨를 살짝 꼬집기까지 했다. 이블이 푸흐흐 웃자 그 흔들림에 체체가 흐읏, 하고 놀라며 바르작거렸다.

“이블 님.”

“알았어. 움직일게.”

“얼른…. 아윽!”

이블이 허리를 뒤로 길게 빼낸 후 퍽! 세게 박았다. 체체의 허리가 튀어 올랐다.

“하, 존나 좁아.”

안 그래도 작은 애 안에 있기에는 너무 커다란 물건이었다. 이블은 마치 배려하는 것처럼 살살 빼냈다가 다시 퍼억! 단숨에 침범했다.

“흐윽!”

체체는 이블이 움직일 때마다 착실하게 신음을 내뱉어서 이블을 더욱 흥분하게 만들었다. 이블은 몇 번을 해도 처음처럼 좁은 내벽에 힘껏 찔러 넣었다가 빠르게 빼낸 후 다시 묵직하게 쑤셔 박았다. 깊게만 박는 것이 아니라 얕게 허리 짓을 하며 안쪽을 유린하기도 했고, 허리를 둥글게 흔들며 체체의 배 속을 진탕으로 만들기도 했다. 왕복 운동을 할 때마다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격렬해졌다. 마찰음이 점점 빨라지고 질척이는 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체체가 고개를 뒤로 젖히려 했으나 이블의 손이 단단히 고정하고 있었다.

“아읏, 하. 너무, 빨…. 아. 윽!”

“미치겠다. 오랜만에, 하니까. 씨발.”

“조, 금만… 으읏, 천천히. 아….”

“너무 좋아. 젠장…!”

이블은 체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거칠게 허리를 움직였다. 가벼운 몸은 깊게 파고들면 파고드는 대로 밀려 올라가고, 빠르게 빠져나가면 나가는 대로 끌려 내려왔다. 이블은 체체를 조금의 틈도 없이 옥죄었다. 체체가 어깨를 찰싹, 찰싹 때렸지만 그 미약한 저항은 무시했다. 체체는 이제 침대와 닿아 있는 부분이 발끝 말고는 없었다. 그마저도 이블이 거칠게 박을 때마다 허공에 들리기 일쑤였다.

퍼억! 퍼억!

“아으, 흑. 너무 깊…. 아!”

“이게 벌써 깊으면, 안 되는데.”

“너무, 빨라요…. 아, 으윽!”

늘 단정하던 모습과는 달리 땀에 젖어 흐트러진 은색 머리칼, 잔뜩 구겨진 콧잔등이나 입가에 흐르는 타액이 이블을 더욱 만족스럽게 만들었다.

이블은 여기서 더 몰아붙이면 찌푸려진 눈가에 눈물도 맺힌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체체의 눈물은 두려운 것이지만 밤에는 아니었으므로 이블은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말 그대로 체체를 막다른 곳으로 몰아붙이려는 듯 격렬하게 박아 넣던 이블이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체체의 내벽이 경련하며 성기를 옥죄었다. 이블은 체체에게 깊게 박은 채 조금 틈을 벌려 접합부를 바라봤다. 다갈색 복부에 체체의 성기에서 분출된 하얀 정액이 후드득 떨어져 있었다. 이블의 성기를 품은 아랫배는 조금 부푼 상태였다.

“미치겠네.”

“아…! 잠깐. 움직이지- 아. 흐…읏!”

이블은 체체가 막 절정에 이르렀다는 걸 알았지만 잔인하게도 쉴 시간을 주지 않았다. 깊게 박을 때마다 튕겨 오르는 체체의 허리를 단단하게 붙잡고 마치 벌을 주는 것처럼 더 깊게 박았다. 퍽퍽퍽. 허벅지에 닿는 말랑한 엉덩이가 뜨거웠다. 잔뜩 흐트러진 체체는 이제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이블은 키스할지 아니면 이 얼굴을 감상할지 고민하다가 키스하는 쪽을 선택했다.

“흐읍.”

입술은 신음을 내뱉느라 열려 있어서 침범하기 쉬웠다. 체체는 이블의 입술이 닿는 순간 반사적으로 입을 오므리려 했다. 그러나 아래에서 퍽퍽! 여전히 거친 허리 운동을 하는 이블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순조롭게 체체의 입 안으로 들어간 두툼한 혀는 도망치려는 작은 혀를 옭아맸다.

츄웁, 춥. 외설적인 소리를 내며 한참 체체의 입 안을 물고 빨던 이블은 체체가 숨 막혀 하는 것을 알고 하는 수 없이 촉, 하는 키스를 마지막으로 놔주었다. 평소 같았으면 코로 잘 숨 쉬었을 체체지만 거칠게 흔들리고 있는 지금은 어려운 듯했다. 하아, 흐으. 흐. 체체가 급히 숨을 들이마셨다. 금색 눈이 흐리멍덩했다. 이블은 체체의 얼굴을 감상하며 거칠게 쑤셔 박았다. 체체가 파드닥 경련을 일으키더니 힘겹게 말했다.

“이블 님…. 빨리…. 아윽. 아…!”

“더 빨리, 움직이라고?”

“빨리 싸…. 흐, 앗. 윽!”

이블이 낮게 웃었다. 체체의 성기는 그새 다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깊게 박아 넣은 이블이 체체를 침대에 내려놓고 양 손목을 교차해 붙잡았다.

“아흐읏….”

체체가 진저리를 쳤다. 이블은 다른 손으로 체체의 골반을 붙잡고 추삽질을 재개했다. 단숨에 파고들었다가 허리를 둥글게 흔들고, 다시 빠져나왔다가 퍽! 소리가 나도록 세게 쳐올렸다.

그렇게 다시 한참이 지나 체체가 두 번째로 사정한 뒤에야 이블도 체체의 안에 정액을 내뿜었다.

“씨발…. 존나 좋아.”

이블이 체체의 골반을 붙잡고 긴 사정을 하는 동안 체체는 ‘으으, 어으, 아….’ 하고 단어가 되지 않는 신음만 내뱉었다. 이블은 잘게 떠는 체체의 허리께를 쓰다듬다가 부풀어 오른 아랫배에 손을 올렸다. 손바닥 아래로 느껴지는 맥동이 체체의 것인지 자신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블은 체체의 목덜미에 아프지 않을 정도로 이를 박아 넣고 오랫동안 빨았다. 체체의 내벽이 물고 놓아주지 않아서 성기는 빼지 않았다. 어차피 이번엔 끝까지 넣을 것이므로 넣고 있는 게 나았다.

“체체. 괜찮아?”

“…….”

“체체?”

“아읏. 으, 움직이지, 마세요….”

대답 없는 체체에 이블이 허리를 흔들자 체체가 다급히 말렸다. 이블이 더없이 만족스러운 듯 활짝 웃었다. 천진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웃음이었다.

“하, 오랜만에 하니까 더 좋았어. 너도 좋았지.”

“…네.”

“역시 섹스는 좋은 거야. 어떻게 이걸 16일이나 안 하고 살았지. 앞으론 매일 하자.”

체체는 힘없이 네, 대답하려다가 흐윽 하는 신음만 내뱉었다. 이블이 갑자기 상체를 숙여서 가슴을 앙 물었기 때문이었다. 그 바람에 결합도 더욱 깊어졌다.

체체는 이블과 관계를 가질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그의 정사는 모든 것이 길었다.

박고 흔드는 본방도 그렇지만, 전회와 사정도 길었다. 당연히 정액도 많았다. 체체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말도 안 되지만 아랫배가 이블의 정액으로 조금 더 부푼 느낌까지 들었다.

“체체는 젖꼭지도 체체스러워.”

“그게 무슨….”

젖꼭지를 잘근잘근 아프지 않게 씹던 이블이 납작한 가슴에 이를 살짝 박아 넣었다. 간지러워서 허리를 비틀려고 해도 아래쪽의 뻐근한 압박감에 쉽지 않았다.

흐, 체체가 흐릿한 신음을 흘리며 다시 힘없이 얼굴을 베개에 눕혔다. 베개가 축축했다. 이블이 시선만 체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으어이이아….”

“…….”

“오물오물하지 마. 너한테 쉴 시간 주고 있잖아.”

체체는 젖꼭지를 오물오물하는 이블을 무척 할 말이 많은 얼굴로 바라봤다.

이블이 말하는 오물오물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아래 구멍일 것이다. 그렇게 거대한 게 들어와 있는데…. 방금 사정해 놓고 금세 또 커다래진 게 자기주장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무시하고 가만히 있겠는가.

“제 자의로 이러는 게 아닌데요….”

“으음…. 네가 말할 때마다 개조여.”

이블이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체체는 흠칫 몸을 떨면서도 손을 들어 이블의 이마에 붙은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이블의 머리가 손바닥을 따라왔다. 체체는 웃으며 결 좋은 금색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자신은 땀에 푹 절어 있는데 이블은 산뜻하기만 했다.

“체체 좋아.”

이블이 체체의 손바닥에 머리를 비비며 혼잣말했다. 체체는 포식 후 그루밍하며 가르릉거리는 작은 고양이를 떠올렸다. 커다란 늑대나 흑표범 정도가 알맞은 비유겠지만 체체에게는 고양이였다.

짧은 휴식이 끝났다.

이블이 체체의 양다리를 모으더니 오금에 손을 밀어 넣고 위로 올렸다. 양 무릎이 가슴에 닿는 자세였다. 이블은 한 손으로 양 오금을 붙잡아 고정하고, 다른 손으로는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체체가 긴장하며 침대 시트를 쥐는데 이블이 퉁명스레 말했다.

“네가 그렇게 원해서 넣긴 넣는데… 다치면 지구 멸망시켜 버릴 거야.”

체체는 웃을 타이밍이 아니지만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반쯤 빠졌던 이블의 것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더는 웃을 수 없었다. 힘을 빼야 하는데 힘이 더 들어갔다.

“으윽….”

“못 견디겠으면, 말해. 알지?”

“…네. 읏.”

‘배가 고파요.’ 체체는 그 말을 할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조금씩 더 깊게, 그동안 전혀 없었던 새로운 길을 만들면서 파고드는 성기를 느끼며 점점 두려워졌다.

이거 괜찮은 걸까?

한계인 것 같은데. 이렇게 깊게 박혀도 되는 건가?

“으….”

체체가 시트를 쥐어뜯자 이블이 양다리를 들어 올렸던 손으로 체체의 한쪽 손목을 붙잡았다. 체체의 다리는 힘없이 이블의 어깨에 걸렸다. 이블은 체체의 손가락 사이사이마다 부드럽게 입을 맞추고는 허리를 쳐올렸다.

“아흑!”

체체의 고운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미칠 것 같아.”

거칠고 낮은 음성으로 중얼거린 이블이 그대로 몸을 눕혔다. 근육으로 꽉 들어찬 육중한 몸이 작은 체체를 깔아뭉갰다. 아으, 아. 체체가 진저리 치며 저항했다. 이블은 가슴을 밀어 내려는 미약한 손짓을 무시하고 다시 퍽! 거세게 찍어 눌렀다. 마침내 이블의 음모가 체체의 엉덩이에 닿았다. 체체가 제대로 신음도 내뱉지 못하고 입을 벌렸다. 이블은 남은 뿌리 부분까지 억지로 밀고 들어갔다. 단단한 허벅지가 작은 엉덩이를 납작하게 눌렀다. 체체는 우윽, 윽. 가쁜 호흡을 하며 버거워했다. 이블이 아파? 하고 물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아프지 않다고 하기 힘들었으니까.

이블이 체체의 얼굴을 사랑스럽다는 듯 어루만졌다.

“체체.”

“으…. 흣. 윽.”

“다 들어갔어.”

체체의 눈가에서 한 줄기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

이블이 말하지 않아도 체체도 느끼고 있었다. 배 속을 가득 채운 성기가 마치 쇠말뚝 같았다. 체체가 몸을 잘게 떨었다. 고통은 금방 사라지고, 꼿꼿이 선 성기에서는 정액이 줄줄 새어 나왔다. 이블의 것은 본래도 너무 크다 보니까 느끼는 지점을 정확하게 누를 필요도 없이 삽입 자체만으로 체체를 가게 만들고는 했다. 그런데 그 삽입이 더욱 깊어져 지금까지 그 무엇도 닿지 않았던 곳까지 꾸욱 박아 오니 심한 절정감을 느끼게 했다. 애초에 아프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지금껏 느낀 적 없는 감각을 고통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이게 끝이 아니라 여기서 움직였다가는 정말…. 체체가 살짝 두려움에 젖어 드는 그때였다.

갑자기 위에서 놀란 듯 헉, 하고 숨 들이켜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블이 깊고 단단하게 박혀 있던 것을 단번에 빼 버렸다.

“아윽!”

체체가 지금까지 중 가장 크게 신음했다.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이블과의 첫날밤, 이블이 갑자기 예고 없이 빼 버렸을 때가 생각났다. 장기가 한꺼번에 딸려 나가는 느낌은 정말 익숙해지지 않았다. 몹시 놀란 체체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왜….”

“너, 너….”

그런데 이블은 체체보다도 더 놀란 듯 하얗게 질린 얼굴이었다.

“네 배가… 평소보다 튀어나왔었어!”

“….”

“이럴 줄 알았어. 씨발! 너 아프지? 아프잖아. 내가 아플 거라고 했잖아. 그래서 안 한다고 했는데.”

“…진정하세요.”

“막 망가지면 어떡해? 잠깐 내가 네 안을 좀 살펴볼게.”

“이블 님.”

체체가 엉덩이에 얼굴을 갖다 대려는 이블을 말리기 위해 어깨를 붙잡으려 했다. 힘이 없다 보니 스르르 떨어지려는 손을 이블이 얼른 잡아 왔다. 걱정 가득한 붉은 눈이 체체를 쳐다봤다.

체체는 당신이 이렇게 뿌리까지 전부 처박았다가 선단까지 단번에 뽑아 버리지만 않으면 망가지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너무 긴 문장이라서 짧게 바꿨다.

“이블 님은 어떠셨어요?”

“…좋았지만. 네가 아프잖아.”

“아프지 않았습니다. 저… 너무 느껴서. 보세요.”

이블의 시선이 아랫배에 얼룩진 말간 정액을 향했다가 다시 체체에게 향했다.

“이블 님도 제 안에서… 가고 싶지 않으세요?”

“…가고 싶어.”

“그럼…. 계속해요.”

“…….”

체체가 흉흉한 위용을 자랑 중인 이블의 중심을 바라봤다. 이블은 잠깐 고민하는 듯했으나 결국 다시 체체의 다리를 벌리고 자리 잡았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마왕과 맞서 싸우는 용사처럼 결연한 표정이었다. 체체의 아랫배를 때리고 있는 흉기는 마왕 같았지만.

체체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벌리고 앉은 이블이 제 허벅지에 체체의 다리를 걸쳤다. 그만큼 허공에 들린 허리 아래에는 쿠션을 깔았다.

이블이 아랫배를 손바닥으로 덮은 채 삽입하기 시작했다.

체체는 그게 보기 무서워서인가 했지만 곧 아니란 걸 깨달았다. 자기 것으로 가득 차는 것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이블의 감정이 체체에게도 느껴졌다. 다시금 안쪽을 찔러 오는 거대한 것은 여전히 버거웠으나, 체체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이렇게 좋아하면서.

끝까지 고집 피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체. 여기 이렇게 하면… 맥동이 느껴져.”

이블이 어깨에 힘없이 얹힌 체체의 손을 쥐고는 점점 부풀고 있는 아랫배로 가져가 댔다. 체체도 손바닥 아래로 몽톡하게 튀어나오는 살가죽을 느꼈다.

“모르겠어?”

굳이 손을 안 대도 알 수 있는데…. 부끄러워진 체체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가는 컸다.

이블이 허리를 뒤로 천천히 뺐다가 퍼억! 하고 한 번에 밀어 넣었다.

“아읏!”

“느껴지지?”

“네, 흑…. 느껴졌…. 느껴져요.”

체체가 다급히 대답했다. 이블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체체는 이블의 손힘에 밀려서 아랫배를 꾸욱 눌렀다.

“이블 님, 누르지 마세, 잠깐…. 아!”

거대한 것에 꿰뚫린 상황에서 아랫배에 압박이 가해 오자 체체가 당황했다. 이블이 성기를 반쯤 뺐다가 다시 박아 넣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추삽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 거센 움직임에 체체는 이블의 이름도 제대로 부르지 못한 채 흔들렸다.

뜨거운 것이 배 속을 거세게 쑤셔 박았다가 내벽을 긁으며 빠져나갔다. 거의 끝까지 뽑힌 것을 다시 퍼억! 강하게 박으며 안쪽을 짓뭉갰다. 격렬하다 못해 범하는 듯한 거친 움직임이었다. 배 속이 헤집어지는 느낌에 체체가 이블을 밀어 내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그저 선정적인 신음으로 이블의 흥분만 부추길 뿐이었다.

이블이 퍼억, 퍼억 소리가 나도록 하체를 움직이며 체체의 위에 엎드렸다.

“아…. 아읏!”

체체가 발작하듯이 튀어 올랐으나 그래 봤자 이블의 품 안이었다. 이블은 체체의 머리 양옆을 팔꿈치로 짚고 땀에 젖은 머리칼과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새된 신음을 내지르며 느끼고 있는 체체의 표정을 감상하는 시선은 불처럼 뜨거웠다.

“아, 천천히…! 흣, 잠깐…!”

“네가 그렇게 애원해도, 멈추지 말라고 했어.”

“자, 잠깐. 아, 윽! 너무 깊…. 읏!”

“깊어서 좋은 거지? 그렇지?”

“으…. 흣. 아. 앗.”

이블이 반들반들한 체체의 입술을 물었다.

체체는 눈앞이 빨갰다가 하얬다가 했다. 내벽에 이블의 성기 모양대로 길이 만들어진 것 같았다. 몇 센티 더 들어왔다고 안을 휘젓는 이블의 것이 평소보다 몇 배로 커다란 느낌이었고, 잘게 떨리는 안쪽에 힘껏 찔러 넣는 움직임도 평소보다 거칠었다.

이블은 말 그대로 체체를 몰아붙였다. 체체가 침대 헤드에 박지 않도록 머리를 감싼 양손은 분명 배려였지만 체체는 이 손이라도 치웠으면 했다. 퍼억 퍼억 무게를 실어 강하게 내리찧는 힘을 그의 품에 갇혀 어디 도망가지도 못하고 감당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움직임에 두려움이 일었다. 마구잡이로 흔들리면서 ‘그 말’을 내뱉을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욕망과 희열에 젖은 얼굴을 하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이블을 보자니 다 받아 낼 수 있을 것 같고, 다 받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퍼억 퍼억이 아니라 흡사 쾅, 쾅! 이었다. 누군가 들으면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착각할 소리가 이블이 허리 짓을 할 때마다 들렸다. 이블조차 거친 숨소리를 내뱉을 정도니 체체의 입에서는 아읏, 학. 읏.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신음만 이어졌다. 생리적인 눈물이 자꾸 흘러나왔다. 발끝이 오므라들면서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체체는 사정하는 줄도 모르고 사정했다. 이블도 그것을 알았는지 “씨발.” 거친 욕설을 내뱉더니 이전보다 더욱 거세게 움직였다.

“으읏…. 아, 아아…!”

해일처럼 쏟아지는 쾌감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한계까지 박아 오는 커다란 페니스에 헛구역질이 나왔다. 다갈색 양다리가 허공에서 힘없이 흔들렸다. 이블이 입을 맞춰 왔지만 입맞춤에 화답할 정신이 없었다. 헐떡이며 밭은 신음을 내뱉다가 도리질 치는 게 고작이었다.

더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때 이블이 쾅! 하며 가장 깊은 안쪽을 박은 채로 사정하기 시작했다. 체체의 내벽이 부르르 경련하자 이블이 이름을 부르며 얼굴을 감쌌다.

“체체.”

“흐… 흐읍. 흡.”

이블의 혀가 체체의 입술 사이를 가르고 들어왔다. 당연한 절차처럼 입 안을 둥글게 훑은 혀가 체체의 혀를 빨아들였다. 삼켜 버릴 듯한 입맞춤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도 정액을 쏟아 내는 하체의 움직임은 험악했다. 본래는 사정 중에는 더 깊숙이 파고들고는 했던 이블이었다. 체체는 정신을 놓을 것 같았지만, 이제 끝났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견디려 했다. 입술을 깨물려 했으나 이블 때문에 불가능했다.

이블은 체체가 고개도 비틀지 못하게 양손으로 감싼 채 키스하다가 사정이 끝난 후 놓아 주었다. 체체의 입술은 타액으로 반질반질했다.

길고 집요한 사정이 끝나고 이블이 성기를 천천히 빼냈다. 완전히 빼내진 않고 끄트머리는 살짝 걸친 채였다. 체체의 구멍이 벌름거렸다. 이블이 안으로 다시 조금 밀어 넣자 철퍽 하는 소리가 났고, 체체의 입에서는 하으윽 하는 교성이 튀어나왔다.

“…….”

그 높은 신음에 이블의 시선이 깊어졌다.

체체는 쾌감의 잔열 때문에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아, 하아. 헐떡이면서 목을 더듬자 이블이 조금 낮은 목소리로 물어 왔다.

“체체, 목은 왜?”

“…정액이.”

“정액?”

“너무… 깊은 곳에 사정하셔서.”

너무 깊은 곳에 사정해서 정액이 입으로 나오는 게 아닐까 싶어서.

“…….”

이블이 몸을 일으켰다. 아직 안에 들어와 있던 귀두 부분도 마저 뺐다. 체체가 미약한 신음을 흘렸다. 분명히 빼는 걸 눈으로 봤는데도 아직도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느낌이었다.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흥분이 가시지 않아 툭 건드리면 바로 성기를 일으켜 세울 것 같았다. 체체는 눈을 감고 제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그때 이블은 체체의 오르내리는 가슴을 보다가 한쪽 팔을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체체는 안아 주려는 건가 싶어 이블이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에 찌푸렸던 눈을 떴다. 어느새 체체는 이블의 앞에 엎드려 있었다. 이블이 체체의 무릎을 세우게 하고 허벅지로 단단히 틀어막았다.

“이, 이블 님.”

엉덩이만 세운 자세가 된 체체가 퍼뜩 놀라며 이블을 돌아봤다. 어두운 방 안에 새빨간 눈빛이 평소보다 형형하게 빛이 났다. 이블의 이마에는 핏대가 서 있었다.

“또 하자. 할 수 있지?”

“모, 못 해… 아!”

이블은 등허리를 한 손으로 내리누르며 체체의 의사를 묵살했다. 잘 하지 않는 체위였다. 체체는 정말 오랜만에 겁이 났다. 그 감정을 이블도 느꼈겠지만, 이블은 금방 또 힘을 받고 기립한 흉악한 성기를 금세 좁아 든 구멍에 조준하고 푸욱! 밀어 넣는 것으로 화답했다.

“아, 흐윽!”

한껏 예민해진 내벽이 거대한 침입자에게 숨 가쁘게 달라붙었다. 이블이 달아오른 안쪽에 무게를 실어 퍽퍽 박아 넣었다. 체체의 성기는 반쯤 서 있었는데 투명한 물을 내뱉고 있었다.

“아파, 윽! 아. 아파요.”

진짜 아픈 거, 아니랬어.

이블은 낮게 중얼거리며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안 그래도 눈물에 젖은 눈가가 베개에 자꾸 비벼지면서 살갗이 까칠해졌지만, 체체는 진탕이 된 안쪽 때문에 느끼지 못했다. 너무 격렬하게 흔들려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내장이 요동치는 것 같아 한 손으로 배를 더듬었다. 이블이 내리찧을 때마다 배꼽 위쪽까지 부풀어 올랐다. 믿기지 않는 것처럼 더듬는 손을 이블이 붙잡아 뒤로 당겼다. 체체의 상체가 위로 들렸다.

“아, 안 돼, 아윽!”

갑작스러운 움직임이었지만 뒤쪽에 너무 커다란 게 박혀 있어서인지 휘청이지도 않았다. 이블이 다른 손으로 체체의 허리를 감싸며 지탱했다. 체체 또한 붙잡히지 않은 손으로 이블의 팔뚝을 떼어 내려 했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다. 안에 쑤셔 박고 있는 것도, 이 팔뚝도, 다리를 옥죈 하체도 전부 뜨겁게 달군 쇠 말뚝 같았다.

이블의 팔 덕분에 머리의 어지러움은 덜해졌으나 여전히 숨이 턱턱 막혔다. 내장이 전부 짓이겨질 것 같았다. 이블의 성기가 뱃가죽을 뚫고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비이성적인 두려움이 일었다.

체체는 이제 ‘그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입을 열었다. 어으, 아, 으, 하는 신음 사이 사이에 힘겹게 말했다.

“배, 배가….”

“그래. 하아. 네 배가, 가득 찼어.”

“배…가…. 읏, 아!”

“그래. 알아.”

퍽퍽퍽! 이블의 움직임이 더욱 거세졌다. 선단 끝까지 뺐다가 뿌리까지 힘껏 박아 넣었다. 체체는 이제 ‘그 말’이 뭔지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 욱, 읏. 이블의 품에 갇혀 신음인지 흐느낌인지 모를 소리만 내뱉으며 흔들렸다. 이블은 그 와중에도 오러로 체체의 얼굴을 옆으로 돌려 고정하고는 입술을 삼키며 키스했다. 퍼억, 퍽. 살이 부딪치는 소리와 그들이 내뿜은 정액으로 찰팍찰팍하는 소리에 츄읍, 혀를 빨아들이는 소리까지 섞여 둘의 귀를 난잡하게 만들었다.

만약 체체가 아프고 힘들기만 했다면 그 감정을 느낀 이블이 멈췄겠지만. 안타깝게도 체체는 지금 쾌감과 절정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너무 느껴서 진저리 처질 정도로. 혈관에 피 대신 새빨간 쾌감이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건 이블도 마찬가지였고,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는 둘이기에 더더욱 비이성적인 욕망이 둘을 휘감았다.

***

체체는 온몸에 얼얼한 둔통을 느끼며 눈을 떴다. 눈앞이 흐릿하고 목 안이 까슬했다. 감히 폭군의 고삐를 없애려 한 대가였다. 밤새 흔들리면서 이 정도의 후유증은 예상한 터라 놀랍지도 않았다.

작게 한숨을 내쉬는데 그조차도 움직임이라고 전신이 욱신거렸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눈을 감았다가 뭔가 이상한 느낌에 바로 다시 떴다. 시선만 아래로 내리니, 아침마다 늘 자기 자리를 찾은 것처럼 가슴에 떡하니 올려져 있곤 했던 굵은 팔은 없고 대신 하얗고 포근한 이불이 어깨까지 덮여 있었다.

깨끗한 잠옷도 입고 있었다. 아래에서 주르륵 흘러내리거나 하는 축축한 느낌도 없었다. 다만 가만히 누워만 있는데도 특정 부위라고 할 것도 없이 전신이 쑤셨으며, 아직도 흔들리고 있는 듯 미약한 멀미도 났다.

정말 무지막지한 밤이긴 했다.

그런데 이블은 어디 간 걸까?

흐릿한 정신을 깨우기 위해 도리질이라도 치려 하는데, 단단한 힘이 가로막혔다.

“머리 흔들면 어지러워.”

“이블 님….”

밤새 신음을 내뱉은 목에서는 쇳소리가 났다. 이블이라는 발음도 제대로 안 된 것 같지만 이블은 알아들은 듯 응, 했다. 머리칼을 매만지는 손길도 좋지만 얼굴이 보고 싶은 체체는 눈을 몇 번 깜빡이며 시야를 선명하게 밝혔다. 그제야 침대 옆에 앉아 있는 이블이 보였다. 그의 금발은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고, 붉은 눈에는 애정이 가득했다. 날카로운 콧대와 단단한 턱선, 휘어 올라간 입술 끝. 포만감과 만족감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체체는 통증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더 자도 되는데. 배고파서 일어났어?”

이블 님, 배고프시구나.

“지금 몇 시인가요?”

“열한 시 조금 넘었어.”

정말 배고프시겠는데. 체체는 정신이 확 들었다. 팔꿈치를 세우고 몸을 일으키려는 체체를 이블이 부축했다. 이블은 침대 헤드에 푹신한 쿠션을 세우고 체체를 편히 기대게 했다. 체체는 그제야 방 내부를 둘러보고 어제 함께 밤을 보낸 그곳이 아님을 알았다.

“여기 제 방이네요.”

“침대가 부서져서 이쪽으로 왔어.”

정신이 혼탁한 와중에 우지끈, 소리를 듣긴 들었다. 착각이 아니었구나….

“체체는 안 부서져서 다행이야.”

“네….”

거의 부서졌다가 새로 조립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끈거리지만. 어쨌든 부서지지 않았다.

체체는 목덜미와 어깨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이블의 손을 바라봤다. 그렇게 하고서도 아직도 부족한 듯했다. 체체로 말할 것 같으면 당분간 섹스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 이블 못지않은 성욕을 지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이블 또한 체체의 해탈한 수도승 같은 감정을 느꼈는지 움푹 파인 쇄골을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고는 손을 거두었다.

“내 욕망 뱁새 어디 갔어.”

“피곤해서 자고 있습니다.”

“언제 깬대?”

“열흘은 지나야 하지 않을까요.”

“심하다. 어떻게 참으라고.”

이블은 푹신한 이불을 체체의 허리춤에 잘 둘러 주었다. 체체는 섹스는 하고 싶지 않았으나 살갗은 맞대고 싶어서 이블의 손목을 붙잡았다. 이블이 바로 손가락을 얽었다.

“체체 따끈따끈해.”

“…….”

“열은 아닌데 어디 아픈 데 있으면 말해. 지금 의료진이 밑에서 대기 중이야.”

“의료진이요?”

“응. 네 몸을 보이진 않았어. 내가 직접 씻기고 갈아입혔거든. 구멍이랑 여기저기 멍 든 데에도 꼼꼼하게 다 약 발랐어. 구멍은 조금 붓긴 했는데 피는 안 났더라고. 멍 든 곳은…. 막 많지는 않아. 허리랑 엉덩이랑 허벅지랑 종아리랑 발목이랑… 손목이랑 목이랑 그 정도.”

온몸이 지끈거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아픈 곳은 없으니 의료진은 돌려보내고 저희는 식사부터 하죠.”

“웅. 쉬고 있어.”

애교 섞인 말투로 대답한 이블이 체체의 손등에 입술을 쪽, 짧게 맞추고는 방을 나갔다. 본인은 어떻게든 자제하려고 하고 있지만 뒷모습만 봐도 엄청 신이 난 게 느껴졌다. 반쯤 열린 문틈에서 “체체 일어났어! 밥 내놔!” 하는 목청 큰 외침이 들렸다. 바로 돌아오지 않는 걸 보면 본인이 직접 들고 오려는 것 같았다.

물부터 마시고 싶은데, 라고 생각하자마자 서랍 위의 물컵을 발견했다. 뚜껑까지 야무지게 덮어 놓은 상태였다.

으…. 고작 팔만 뻗는데도 허리고, 옆구리고 안 당기는 곳이 없었다.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이블에게 들리지 않도록 속으로 삼키고 물컵을 쥐었다. 미지근한 온도가 딱 적절했다. 실컷 들이켜고 싶었으나 목 안이 까슬까슬해서 한 모금 넘길 때마다 적당히 쉬면서 마셨다.

섹스를 한 건지. 두들겨 맞은 건지….

이블 앞에서는 절대로 내뱉을 수 없는 비유였다. 체체는 다시 힘겹게 쿠션에 등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지 않고 속으로 삼켰다.

…그래도 좋았다.

얼마나 좋았으면 그렇게 흥분했겠나. 이블 혼자 이성을 잃은 게 아니라 체체도 이성을 잃었다.

‘여기까지 들어왔었나.’

체체는 어젯밤을 떠올리며 아랫배에 손을 가져다 댔다. 배꼽 위까지 들어왔던 것 같다. 아직도 굵은 게 들어찬 느낌인데, 옷을 사이에 두고 만져지는 느낌은 납작하기만 하니 위화감이 들었다. 납작한 배를 슬며시 더듬던 체체는 챙그랑 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너…!”

이블이 몹시 놀란 듯 크게 흔들리는 눈으로 서 있었다. 그 밑에는 수프 그릇이 떨어져 깨져 있었다.

“이블 님. 조심하세-.”

“여, 역시 아팠던 거지! 내가 다 넣지 말자고 했는데!”

이블이 훌쩍 날아와 체체의 옆에 엎어져서는 마치 체체가 죽을병을 숨기기라도 한 것처럼 통곡했다.

“배가 이상해? 어떻게 이상해? 아파? 안 납작해져?”

“아뇨. 그런 거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씨발! 아플 줄 알았단 말이야. 내가 아플 거라고 했잖아. 다 안 넣는다고 했잖아!”

“전혀 안 아파요.”

“안 아플 리가 없어! 너 배꼽 위까지 부풀었는데! 그래서 내가 놀라서 뺐는데 네가 강제로 다시 넣게 했어! 나는 안 넣겠다고 했는데. 이럴 줄 알고 내가!”

“이블 님.”

어젯밤 체체를 가차 없이 집어삼키던 남자가 통곡하며 성질을 부려 댔다. 체체는 이블의 손을 쥐어다 제 아랫배에 올렸다. 이블이 흠칫 놀라면서도 군살 없는 배를 열심히 만지작거렸다. 보드라운 잠옷이 손아귀에서 사정없이 구겨졌다.

“보세요. 제대로 납작하죠. 하나도 안 아픕니다.”

“그, 그럼 왜 배 만지고 있었어!”

“좋아서요.”

“좋다니 뭐가!”

“이블 님의 성기가 여기까지 들어왔던 감각이요.”

“…….”

“또 넣어 주세요. 여기까지.”

당분간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블이 너무 놀란 것 같아서 다독이려다 보니 결국 이렇게 흘러갔다. 리스크가 큰 만큼 효과는 있어서 이블의 원망이 멈췄다. 자신에 비해 너무 작고 연약한 연인을 다치게 했을까 봐 성질을 부리던 폭군은 이제 천진난만한 얼굴로 활짝 웃었다.

“응. 조만간 또 하자!”

***

저택 요리사들에게 얼른 수프를 다시 만들어 내라며 닦달한 이블이 이번에는 수프에 빵까지 챙겨 왔다. 체체는 그 빵이 이블 몫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블은 빵을 작게 찢어 수프에 찍은 뒤 체체의 입에 쏙 넣어 주었다. 체체가 오물오물 씹으며 숟가락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으나 이블은 알았다면서 그 손을 붙잡고 조몰락거렸다.

체체가 빵 조각을 다 씹을 때면 이블이 수프를 적당히 뜬 후 호호 식힌 다음 체체의 입술 앞에서 대기했다. 입을 살짝 벌리자 숟가락이 쏘옥 들어왔다. 체체가 수프의 고소한 맛을 음미하는 사이 이블은 부지런히 빵을 작게 뜯어서 또 입술 앞에서 대기했다.

즐거움이 담긴 붉은 눈을 보아하니 처음부터 먹여 주려고 작정을 한 것 같아서 체체도 작정하고 먹어 줬다.

빵 반 개와 수프 한 그릇을 모두 비우고 체체가 침대에서 내려가기 위해 몸을 움직이자 이블이 얼른 부축했다.

“그냥 누워있지. 산책 가고 싶으면 내가 안아 줄게.”

“식당 가요.”

“식당이라니? 더 먹고 싶어? 가지고 올게.”

“이블 님도 식사하셔야죠.”

“나도 먹었어.”

“제가 자고 있을 때 혼자 드셨다고요?”

“이거. 빵 반 조각.”

방금 체체와 나눠 먹은 빵을 말하는 것이었다. 체체는 미간을 좁히며 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두 끼를 굶었다는 뜻이잖아요. 당장 식당으로 가요.”

“…응. 안아 줄까?”

“네.”

이블이 체체를 이불에 돌돌 만 후 이불째로 안아 들었다. 체체는 어떨 때는 침대 쿠션보다 이블의 단단한 가슴이 더 편했다. 하도 자주 안겨 다니다 보니 이블은 편하게 안는 방법에 도가 텄고, 체체도 편하게 안기는 방법에 도가 텄다.

아니나 다를까 식당에서는 이블 님이 굶주리고 계신다며 아까 전 체체 옆에서 통곡하던 이블처럼 수행원들이 통곡하고 있었다. 다행히 체체 덕분에 이블에게 식사를 차려 드릴 수 있었던 수행원들이 식당을 떠나면서 한 번씩 체체에게 눈인사를 했다. 개중에는 힙스도 있었다. 힙스는 꼭두새벽부터 이블이 의료진을 부르라고 윽박질렀을 때는 크게 놀랐지만, 이제는 두 분이 실로 완전한 화해를 이뤘다는 걸 직감하고 아주 흐뭇해했다.

이블과 체체는 식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정원을 산책했다. 체체는 이제 이불 대신 보드라운 재질의 얇은 외투를 걸쳤다. 반면 이블은 반팔 셔츠였다. 그는 외출할 때는 긴팔을 자주 입었으나 저택에서는 봄에 들어서자마자 반팔만 입고 있었다.

정원은 고요하면서도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새들이 짹짹 지저귀는 소리와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지나가는 소리, 첨벙하는 물소리, 간혹 작은 동물이 지나가는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블은 체체를 노란 햇살이 내리쬐고 있는 벤치에 살며시 내려놨다. 나무 벤치는 햇볕에 잘 익어 따끈따끈했다. 이블은 체체의 머리칼을 정돈하고는 다섯 걸음 정도 떨어져 사진을 찍었다. 체체가 미소 지었다. 이 사진의 제목을 알 것 같았다.

“햅쌀 쬐는 뱁새야. 귀엽지.”

이블이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여 주며 즐겁게 제목을 말했다. 정확히 체체가 예상한 제목이었다.

“이블 님도 같이 찍어요.”

“응.”

두 사람은 함께 사진을 찍고 따뜻한 벤치에서 한동안 머무르다가 산책을 재개했다.

잘 꾸며진 산책로를 천천히 걷던 이블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나무에 다람쥐가 있다는 말에 체체도 얼른 고갤 들어 나무 기둥에 붙어 있는 다람쥐를 발견했다. 다람쥐는 고개를 갸웃갸웃하다가 빠르게 기어올라 사라졌다.

조금 더 걷다 보니 이블이 땅바닥 어딘가를 가리켰다. 노란 나비 하나가 길옆에 핀 들꽃 주위를 팔랑팔랑 날아다니고 있었다. 체체는 쪼그려 앉아 구경하고 싶었지만 몸이 아파 그러지 못했다.

계속 걷던 이블이 문득 허공으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낚아챘다. 이블은 낚아챈 민들레 홀씨를 체체에게 건넸고 체체는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후 불어서 다시 하늘에서 나부끼게 했다.

연못에 다다랐을 때는 햇빛에 비쳐 반짝이는 잔물결을 가만히 보던 이블이 대뜸 돌멩이 하나를 주워 물수제비를 선보였다. 돌멩이는 수면을 튕기다가 연못 건너편에 가서 멈췄다. 체체도 적당한 크기의 돌멩이를 골라 연못에 던졌다. 퉁, 퉁, 퉁 튕기고 가라앉나 싶더니 부자연스럽게 공중에 떠올라 이블의 돌멩이 옆에 자리 잡았다.

둘의 산책은 루젬 작업실 앞에서 멈췄다.

체체는 놀랍게도 그제야 오늘이 월요일이라는 자각을 했다. 또 이렇게 결근을…. 이러니 체체는 사람들이 저보고 성실하다고 할 때마다 민망했다.

“들어가고 싶어?”

“그래도 되나요?”

“안 되지. 너는 좀 쉬어야 해.”

“이블 님을 어떻게 구상했을지 보고 싶지 않으세요?”

“들어가긴 할 건데 구상한 스케치만 보여 줘야 해. 알았지?”

이블이 빛의 속도로 말을 바꾸고 빛의 속도로 작업실 문을 열었다.

창문이 사방에 있어서 전등을 켜지 않아도 안이 환했다. 평소엔 이블이 앉는 안락의자에 이번엔 체체가 앉았다. 체체가 가서 앉은 게 아니라 이블이 달랑 안아다가 거기에 앉혔다. 이블은 체체의 작업 의자에 앉고는 자연스럽게 서랍에서 노트를 꺼냈다. 열심히 공부하고 구상한 흔적들을 차르르 넘기고 가장 최근 페이지를 펼쳤다.

A5 크기의 무선 노트에 이블이 그려져 있었다.

제 얼굴을 본 이블은 잠시 아무 말도 못 했다.

체체는 이블의 동요하는 감정을 읽고 조금 웃었다.

“…이게 나라고?”

“네.”

“내가 이렇게 웃는단 말이야?”

“네.”

이블은 노트에 그려진 그림을 신기하면서도 괴이하고 요상한 것을 보듯이 쳐다봤다. 아직 아무런 환상술을 가미하지 않은 스케치 상태였음에도 눈앞에 펼쳐졌다.

그는 조그맣고 하얀 꽃의 향기를 맡고 있었다. 입가에는 옅은 미소를 걸쳤고, 속눈썹에는 햇살이 내려와 앉았다. 살짝 내리깐 눈꺼풀 아래로 다정한 빛을 띠는 붉은 눈이 보였다. 잎사귀를 쥔 손가락은 퍽 조심스러웠다. 향기를 맡던 그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기다리던 사람이 오기라도 한 것처럼… 활짝 웃음 짓는 모습으로 끝나는 내용이었다.

“내가 이렇게 사랑스럽다니…. 엄청나네…. 진짜 사랑스러워. 막 사랑을 퍼부어 주고 싶어.”

“네, 맞아요.”

“이거 완성하면 난리 나겠다. 이게 이블 맞냐며. 환상 속의 동물 아니냐며. 아니면 이블 죽을병 걸린 거 같다며.”

“무서운 말씀 마세요.”

이블은 한동안 노트를 멀찍이서 봤다가 가까이서 봤다가 들었다 놨다 하면서 신기해하다가 또 한동안 얼떨떨한 표정으로 허, 하, 하는 탄식만 내뱉었다.

그러다 한참 후 가만히 말했다.

“체체, 너랑 비슷하게 생겼어.”

“저요?”

“응.”

“제가 그렇게 웃나요?”

“응.”

이블은 그답지 않게 멍하니 끄덕였다. 이블과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단어지만 좀 맹하고 순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체체는 슬며시 웃고는 일어나 다가갔다. 이블이 노트를 서랍에 잘 넣어 두고 체체를 안아 들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체체는 다소곳하게 이블의 손을 잡았다. 이블은 앉아 있었기에 체체의 가슴 부근에 얼굴을 문질렀다.

“체체.”

“네.”

“…나도 루젬 세공해 볼까.”

체체는 예상했던 것처럼 웃었다.

“절 담고 싶어지셨어요?”

“응.”

“네. 기다릴게요.”

체체가 결 좋은 금발을 부드럽게 쓸었다.

이블은 잠시간 연인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다가 이제 품에 안고 일어났다. 작업실을 나오며 이블이 중얼거렸다.

“가슴이 부글부글해. 뭐지 이게.”

체체는 그것이 뭔지 알았다.

이블의 가슴 속에 루젬 세공을 하고 싶다는 열의가 싹트고 있는 것이다. 내 오러로 ‘체체’를 표현하고 싶다는 열정이.

그가 이번에 만들 루젬은 결코 고독하지 않겠지.

그 생각을 하면 체체도 가슴이 부글부글했다.

저택으로 돌아와서도 이블은 마음이 술렁거려서 이상하다며 체체를 주물럭거렸다. 적당한 힘으로 안마해 주는 것 같기도 해서 체체는 가만히 있었다. 저녁 식사 시간까지 둘은 침대에 누워 꽁냥거리다 일어났다. 이블에게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내려간 후 식당에 들어설 때쯤 체체가 담담하게 물었다.

“이제 다음 단계는 언제 할까요?”

“다음 단계라니?”

“끝까지 삽입도 했으니 다음번엔….”

체체가 목으로 손을 가져갔다.

이블이 눈을 끔벅이다가 욕망 가득한 감정을 느끼고는 감전된 것처럼 파드닥 놀랐다.

체체의 작은 입과 가느다란 목을 번갈아 보던(길이를 가늠해 보는 듯했다) 이블이 허겁지겁 체체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미쳤어? 절대 안 돼!”

“안 미쳤고, 안 되지 않습니다. 할 수 있어요.”

“시끄러워. 오지 마. 저리 가!”

“이블 님. 저는 튼튼해요.”

“튼튼 뱁새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사람이 양심이란 게 있으면 더는 요구하지 마!”

“이블 님.”

기겁하는 이블의 뒤를 체체가 졸졸 따라갔다. 평화롭고 사랑 넘치는 저택의 일상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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