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1화 (12/17)
  • “아, 참. 너는 이제 경찰한테 붙잡혀서 재판에 넘겨질 거야.”

    “…….”

    체체가 가자고 했던 타르의 유명한 식당은 반군의 쿠데타가 승리해 나라가 전복된 날에도 문을 열었다. 열어야만 했다. 타르의 어린 영웅이 이블 엔덤과 함께 방문했기 때문이다.

    주방장은 열악한 환경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재료로 최선의 요리를 선보였다. 타르의 음식을 처음 맛본 이블은 제법 맛있다면서 열 그릇을 비웠다. 타르 음식이 알시티에 비해 양이 적은 편이었다지만 무려 열 그릇이었다. 이블이 며칠간 제대로 식사하지 못했음을 알고 체체는 열심히 음식을 들이밀었다.

    그렇게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이블이 말했다.

    “너는 납치극에도 가담했고 허가받지 않고 오러를 사용했지. 국제법 여러 개를 여겼어. 엄청 심각한 상황이야.”

    “…….”

    “난 다시 케이시티로 가 봐야 돼. 그러니까 감옥에서 잘 기다리고 있어.”

    “네….”

    체체는 대답하면서도 설마 정말로 자신이 감옥에 갇힐까 싶었다. 정확히는 이블이 자신을 갇히게 둘까 싶었다. 하지만 이블이 건네준 핸드폰으로 뉴스를 검색하면서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됐다.

    얼마 후 비행기 두 대가 도착했다. 하나는 엔덤 가문 전용기였고, 하나는 알시티 정부의 전용기였다. 이블은 엔덤 가문 전용기에 올랐다.

    “제어봉만 몇 개 가라앉히고 연락할게. 아, 구치소에 있어서 전화 못 받겠구나.”

    “…건강히 다녀오세요.”

    “응.”

    이블이 손을 흔들며 경쾌하게 떠나고, 체체는 알시티 정부의 전용기로 향했다.

    내부에는 군인과 경찰이 있었다. 매우 딱딱한 표정이었다.

    체체가 다가가자 그들은 양옆에 섰다. 정말로 범죄자를 연행하는 듯한 행동이었다.

    체체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는 징역살이를 하나요?”

    “…….”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몇 년 살게 될까요?”

    “…….”

    두 번째 묻자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봤지만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 막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고 이블의 마음도 받아들였는데, 서로 사랑을 나누기도 전에 오래 헤어지게 되었다. 얼마나 들어가 있게 될까. 그 변덕스러운 사람이 과연 복역 기간 동안 날 기다려 줄까?

    체체는 앞이 캄캄해진 채 비행기에 올랐다.

    ***

    비행기가 알시티에 착륙하고, 체체는 조심스럽게 연행되어 다시 어떤 차량으로 갈아타야 했다. 버스만 한 크기의 그 차량 겉면에는 [주의* 오러 유저 범죄자 호송 차량]이라고 크게 쓰여 있었다.

    체체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너무 오랫동안 징역을 살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이블과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이블은 원거리 연애는 못 해 먹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럴 바에야 그만두겠다고 할지도 모른다.

    걱정이 점점 표정에 드러나면서 나중에는 거의 세상 망한 얼굴이 되었다.

    납치극을 벌인 것도, 오러를 사용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억울한 마음까지 차오르는 그때였다. 갑자기 버스가 멈춰 섰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경찰이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버스 문이 열리고 어떤 사람들이 우르르 올라탔다.

    “자, 교대합시다. 이 버스는 앞으로 우리가 운전합니다.”

    “예.”

    “네.”

    운전기사부터 체체의 양옆에서 긴장하던 경찰과 군인들까지 모두 기다리던 것처럼 벌떡 일어났다. 그들이 모두 내리고 새로 올라탄 사람들이 원래 있었던 이들의 자리를 차지했다.

    체체에게는 저들의 감정이 전달되었다. 긴장하거나 경직된 상태는 아니어서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다.

    버스는 쭉 직진하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더니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리고 삼십여 분이 흐른 뒤 부드럽게 멈췄다.

    “체체 님, 이제 내리시지요.”

    창에 블라인드가 쳐져서 밖이 보이지 않았는데, 내리고 나니 이미 날은 어두웠다.

    그리고 눈앞에는 익숙한 저택의 정문이 보였다. 앞에 마중 나온 힙스가 웃으며 다가왔다.

    “체체 님, 이게 며칠 만인가요.”

    “…집사님.”

    “일단 들어오시지요. 아무에게도 말 안 하고 혼자 험한 곳으로 가서 아주 고생 많으셨습니다.”

    힙스는 분명 인자하게 웃고 있었으나 말투에 가시가 돋친 것 같았다. ‘아무에게도 말 안 하고’, ‘혼자’ 부분에서는 마치 굵은 글씨로 말하는 것 같았다.

    정문에서 또다시 차를 타고 넓은 정원을 지나 진짜 저택에 도착했다. 그동안 힙스는 체체의 마음을 마구마구 불편하게 만들었다.

    “체체 님이 가출, 아, 죄송합니다. 도망, 아, 자꾸 말이 헛나오는군요. 체체 님이 납치되신 동안 우리 모두 끼니도 거르고 조마조마하게 지냈답니다. 물론 우리 도련님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셨지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체체 님이 죄송하실 게 뭔가요. 다 더러운 권력자들과 부조리한 사회 구조 탓 아니겠습니 까? 체체 님이 우리를 신뢰하지 않으셔서 어쩜 그렇게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고 자진해서 납치되어 버린 것도 다 이해합니다.”

    “…….”

    “하. 하. 하. 저택에서 지낸 시간이 고작 사 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우리를 어떻게 믿으셨겠습니까. 우리는 타르 내전을 해결할 방법도 없고, 그곳에 관심도 없는, 기름기 흐르는 알시티인일 뿐인데 말입니다. 이거 뭐 사 년이 지나도, 아니 사십 년이 지난다 해도 저희를 신뢰하실 수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힙스는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체체는 힙스와 저택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배신감을 느낄 줄 몰랐기에 무척 미안한 마음으로 말했다.

    “사십 년이 지나면 조금은 믿을 수 있을 겁니다.”

    “…….”

    “삼십팔 년 정도도 괜찮을 것 같고요.”

    “…쉬십시오.”

    힙스를 완벽하게 삐지게 만들어 버린 체체는 매우 불편한 안내를 받으며 저택에 들어섰다. 시간상으로는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한참 만에 온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파나 TV, 테이블 같은 것들이 모조리 바뀌었다. 엘리베이터는 공사 중이었고, 계단 손잡이는 새로 칠한 것 같았다. 체체의 방문도 완전히 바뀌었다. 어떻게 바뀌었냐면… 문이 없었다.

    “…….”

    조금 당황한 체체가 맞은편을 봤는데, 이블의 방에는 아직 문이 있었다. 체체는 휑하니 뚫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주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이었다. 다만 여기도 테이블과 책꽂이, 협탁, 침대 등 모든 가구가 바뀌었고 장판과 도배도 다시 한 듯했다.

    체체는 분노한 이블이 이곳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광경을 상상했다. 완전히 망가진 가구들을 다시 구입하고 도배를 새로 하는 힙스와 저택 사용인들도 생각했다.

    간단히 샤워한 후 새 침대에 앉아 잠시 시트를 쓸어 보던 체체는 다소 급하게 방을 나갔다. 서둘러 나간 것과 다르게, 닫힌 검은 문 앞에서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체체는 아주 대범하게 방문을 열었다.

    이블의 방도 체체의 방과 아주 비슷하게 꾸며졌다. 다만 이블의 방은 전체적으로 톤이 어두웠고 조금 더 차분한 느낌이었다. 세상은 이블에 대해 너무 가볍다고 얘기하지만 그는 체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무거운 자였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벽면에는 눈 조각상 대회에서 받은 뱁새 액자가 크게 걸렸다. 그 옆 협탁 위에는 세공 도구들이 배송된 후 함께 찍은 사진들이 작은 액자에 담겨 있었다. 체체가 기억하는 것과 액자 틀이 다른 걸 보니 이블은 이 방 가구들도 부숴 버린 모양이었다.

    체체는 안쪽 침실로 향했다.

    원자력 발전소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 침대에서 이블과 함께 뒹굴었다. 넓은 침대를 보자 갑자기 졸음이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체체는 자기 침대인 양 올라가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이블의 베개를 베고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무척 포근하고 따뜻했다.

    그리고… 이블이 무척 보고 싶었다.

    ***

    무언가 머리칼을 부드럽게 넘기는 느낌이 들었다. 뺨에 따스한 온기도 느껴졌다. 선잠이 들었던 체체는 금방 손길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눈을 떴다.

    “일어났어?”

    이블이 부드럽게 웃음 지었다.

    “네 방에 없길래 존나 놀랐잖아. 없어진 줄 알고….”

    정문에서부터 기척을 느꼈을 이블이 엄살을 부렸다.

    “몇 시인가요?”

    “네가 집에 온 지 다섯 시간 지났어.”

    선잠이 아니라 그냥 잠이었다.

    체체는 피곤한 몸을 일으켰다. 오래 잤는데도 몸 이곳저곳이 비명을 질렀다. 삭신이 쑤시고 머리도 띵했다.

    “일어났으면 밥 먹고 약 먹자.”

    “네.”

    이블에게 반쯤 매달린 채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모든 일이 끝난 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며 안락한 곳에서 짧은 잠을 자고 일어났기 때문일까. 며칠간의 긴장이 한 번에 풀리면서 몸이 약해진 것 같았다.

    입맛도 없고 그냥 이블의 품 안에서 잠들고만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블이 맛있게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기도 했다.

    가까스로 걸음을 떼는 체체를 잠시 내려다보던 이블이 혀를 찼다.

    “갓 태어난 아기 뱁새도 너보다는 잘 걷겠다. 누워 있어. 식사 가지고 올게.”

    이블은 체체를 가볍게 들어 안아 침대에 눕혔다. 아기한테 하듯이 가슴을 부드럽게 토닥인 그는 곧바로 내려가 트레이를 가지고 왔다. 체체의 식사는 수프였고, 이블의 식사는 삼단 트레이에 가득 차 있었다.

    체체는 침대에 앉아 수프를 홀짝댔다. 이블은 그 모습을 보자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아졌다.

    체체가 타르 식당에서 한 세 숟가락 먹고 말았다고 저택 영양사에게 전했을 때 그는 일단 하루 동안 수프를 먹이면서 상태를 보자고 했다. 하지만 저건 너무 적은 건 아닌지 걱정이었다.

    “이블 님도 드셔 보시겠어요?”

    심지어 체체는 자기 수프를 떠서 이블에게 권했다. 이블은 혀를 차며 웃고는 자기 몫의 빵을 작게 뜯어 수프를 찍어서 체체에게 내밀었다. 둘은 그렇게 서로 바꿔 먹었다.

    어느 정도 식사가 끝난 후 체체가 물었다.

    “원자력 발전소는 어떻게 됐습니까?”

    “한 달은 계속 왔다 갔다 해야 돼.”

    “한 달 뒤에는요?”

    “거기 눈길도 안 줄 거야. 우리 여행이나 가자.”

    “저 일해야 합니다.”

    “너 안 잘렸어? 오러 유저 국제 범죄자인데. 보통은 센터에서 잘리거든.”

    “…….”

    체체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재판부에 넘겨진다고 했는데, 어째서인지 저택으로 왔다. 이블이 안배해 줬다고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다면 괜히 도피했다고 형이 추가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었다. 이렇게 밥이나 처먹을 때가 아닌 것 같다. 일단 변호사부터 고용하고…. 이블에게 탄원서를 써달라고 해야겠다. 저택 분들은 화가 나서 써주지 않으시겠지….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는 그때 옆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이블은 체체의 뺨을 툭 건드렸다.

    “뭔 생각 하는 거야. 존나 귀엽네 진짜.”

    “이블 님, 제가 감옥에 가지 않도록 해 주실 거죠?”

    상상도 못 한 청탁에 이블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배를 잡고 웃던 이블은 체체의 어깨를 끌어안고 얼굴 이곳저곳에 키스했다. 체체는 쏟아지는 키스 세례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이블은 체체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 호송 차량이 납치되어도 멀뚱멀뚱 앉아 있었다며. 그런 애를 감옥에 어떻게 보내겠냐.”

    “납치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네, 그러셨겠지. 환장하겠어.”

    이블은 계속 웃음을 흘리며 체체를 끌어안았다. 마침 수프 그릇이 어느 정도 빈 참이었다. 이블은 트레이를 멀리 치우고 약통을 꺼냈다. 체체는 알약 다섯 개를 물도 없이 한꺼번에 넘기고 물었다.

    “그럼 저는 징역살이를 안 하나요?”

    “응, 네가 갑자기 여기 있는 인간들 다 죽여도 처벌 안 받으니까 걱정하지 마.”

    이블이 체체에게 물컵을 건넸다. 체체는 이블이 주는 대로 꿀꺽, 꿀꺽 마셨다.

    “사실 나는 네가 재판에 끌려간다고 해도 한마디도 안 했거든. 그런데 인간들이 먼저 나한테 널 처벌하지 않겠다고 넙죽 말하더라.”

    “왜일까요.”

    “몰라. 내가 너한테 미쳐 있다는 걸 아나 보지.”

    “…….”

    “네가 처벌받으면 널 끔찍이 아끼는 나도 같이 미칠 예정이거든. 이번 일로 내가 미치면 어떻게 될지 예상을 좀 했겠지.”

    이블은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붉은 눈동자는 매우 위험하게 빛났다.

    사람들은 체체라는 존재가 양날의 검이라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지구의 목숨을 쥔 악마를 멈추게도 하고, 움직이게도 하는 존재. 앞으로 체체는 어쩌면 이블보다 더 많은 면죄부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저는 그럼 바로 출근하나요?”

    “네가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이블은 피식 웃었다.

    “삼 개월 구금이야. 내가 너 다른 벌은 안 줘도 당분간 저택에 처박아 놓으라고 했어. 안 그러면 원자력 발전소에서 손 뗄 거라고. 원자로가 폭발 직전이어서 내가 뭐라고 하든 다 오케이하더라.”

    “제가 납치된 동안 원자력 발전소 해체 작업을 재개했었다고 들었는데요.”

    “폭동이 일어나니까 정부가 안심시키려고 거짓말했지. 원자로 해체 작업은 아주 섬세한 기술이 있어야 해. 네가 끌려갔는데 내가 그런 섬세한 일을 하실 정신이 있었겠냐?”

    언뜻 가벼운 듯 툴툴거리며 내뱉은 말이었지만 체체는 그 말 속에 얼마나 깊은 두려움과 원망이 깔렸는지를 읽었다. 다시금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블 님.”

    체체가 꾸물꾸물 이블에게 안겼다. 체격 차이가 크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블이 먼저 체체를 달랑 들어 품에 안았는데, 이런 자세에 너무 익숙해진 체체는 이제 자신이 먼저 이블의 품에 안겼다. 그의 품은 따뜻하고 단단했다. 침대가 아무리 포근해도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뭐가.”

    “…제가 이블 님께 말도 안 하고 납치돼서요.”

    “됐어, 씨발. 네가 내 말 잘 듣는 건 이제 기대도 안 해. 대신 이거 하나만 약속해.”

    “네, 약속할게요.”

    “뭔지 들어 보지도 않냐?”

    이블은 툴툴거리다가도 진지하게 목소리를 깔았다.

    “앞으로는 위험한 곳에 뛰어들지 마. 그 습관 버려.”

    “네, 약속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댑터와 둘이 있지도 마.”

    “네, 이블 님도 어댑터와 둘만 있지 마세요.”

    “난 괜찮은데.”

    “그럼 저도 약속 안 합니다.”

    “뭐야! 알았어. 나도 할게.”

    체체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이블이 가만히 있자 체체는 이블의 손가락을 톡 건드렸다. 둘은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이블은 살면서 그 누구와도 이렇게 손가락을 걸며 약속해 본 적이 없었다. 아마 체체와 함께하면서 계속 이렇게 처음인 것들을 겪어 나갈 것이다.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것들을.

    그리고 그건 체체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특별하게 살아온 두 명이 만나서 평범한 사랑을 한다는 건 정말 경이로운 일이었다.

    ***

    체체는 원격으로 재판장에 섰다. 체체는 몰랐지만 어댑터에게 정신 조종을 당한 소울 오러 유저의 경우 재판할 때 직접 참석하지 않고 원격으로 진행하는 쪽이 많았다. 과거에 한 소울 오러 유저 아이돌도 원격으로 재판한 바가 있었다. 정신 조종한 어댑터가 고인이 된 경우라도 마찬가지였다. 피해자인 소울 오러 유저의 심리 안정이 최우선인 것이다.

    이미 어떠한 형이 내려질지 들었으면서도 재판장이 단상을 두드릴 때는 조금 긴장됐다. 판사는 체체에게 삼 개월 근신 명령을 내렸다. 체체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 감옥은 싫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다.

    징역형이 내려지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밤마다 간수를 유인하여 탈옥한 뒤 이블을 만나러 갔을지도 모른다.

    케이시티에 가 있던 이블은 재판이 끝나자마자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 야, 범죄자. 뭐 해? 밥 먹었어?

    “지금 먹으려고 합니다. 이블 님은요?”

    - 나도 먹으려고. 같이 먹자.

    “네.”

    둘은 화면에 서로를 띄워 놓고 식사했다. 이블은 내내 체체를 국제 범죄자라며 놀려 댔다. 체체에게는 전혀 타격이 없는 놀림이었다. 만약 체체에게 조금이라도 압박이 되는 놀림거리라면 이블은 절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을 것이다.

    - 여기 일, 한 삼 주면 끝날 것 같거든. 어디 여행 가고 싶은 곳 있어? 너 휴가받은 동안 놀러 가자.

    이블은 근신 명령을 아예 휴가라고 칭했다.

    “이블 님은 벌받지 않으셨잖아요. 일하셔야죠.”

    - 야, 네가 어떤 말 해도 나는 너 복귀할 때까지 센터에 안 나가기로 결심했으니까 여행지나 찾아봐. 너 마음껏 휴양할 수 있는 곳 말이야. 몸도 마음도 푹 쉴 수 있는 곳.

    ‘몸도 마음도 푹 쉴 수 있는 곳….’

    그 표현에서 어딘가를 떠올린 체체는 화면 속 잘생긴 남자를 보며 옅게 웃었다.

    “그러면 저택에서 시간을 보내요.”

    - 저택? 그 집?

    “네.”

    - 우리 집이 좀 아늑하긴 하지만 휴양지랑은 다르지. 네가 여행을 가 본 적이 없어서 그러나 본데.

    “이블 님은 여행 많이 다니셨습니까?”

    - …….

    이블이 여행을 다녔을 리가 없었다. 세상은 소음투성이고 역겨운 냄새가 가득한 곳이다. 이블에게 여행은 사서 고생하는 일, 그 자체였다.

    말문이 막힌 이블에게 체체가 담담하게 말했다.

    “이블 님, 저는 사실 이곳이 너무 불편했습니다.”

    체체는 작년에 이 넓고 황량한… 그래서 아늑한 저택에 처음 들어온 후 내내 불편하게 생활해 왔다. 침대가 너무 푹신해서 일부러 바닥에 누워서 자고, 물이 너무 따뜻해서 찬물로 씻기도 했다.

    아무리 단단히 마음을 먹어도 이블은 매일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체체를 침대 위로 끌어들였다. 그의 품 안은 너무 따뜻하고 안락해서 막상 온기를 느끼면 체체도 그 품을 파고들었다.

    “너무 편해서 불편했어요.”

    마음이 풀어지면 사방에서 시체들이 나타나 죄책감을 자극한다. 체체는 이 집을 불편하게 여기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 저택의 주인인 이블을 밀어내지 못하는 이상 아무 소용 없었다. 체체에게 이블은 불가항력적인 존재였기에… 늘 이곳에서 불편하게 있어야만 했다.

    - 그랬어? 말하지. 그럼 더 불편하게 해 줬을 텐데. 아주 씨발 복도에 비단을 깔고 네가 걷는 자리마다 꽃잎이라도 뿌려 줄 걸 그랬네.

    영상 속 이블은 삐진 것처럼 입을 내밀었다. 그 모습마저 너무 잘생겼고 근사했다.

    “이제는 이 안락함을 마음껏 누릴 거예요. 마음 편하게. 그러니 다른 곳은 가지 않고 여기에서 여행했으면 좋겠습니다.”

    - …그런 건 여행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야. 그냥 휴양이지. 아니, 요양에 가깝다.

    “같이 요양하시겠어요?”

    이블이 한숨을 내쉬었다.

    체체는 알고 있었다.

    이블은 여행 가자고 가볍게 말했지만 사실 속으로 각오를 다졌을 것이다. 쏟아지는 소음과 악취를 참고 견딜 각오를. 아르말 해변에서 검푸른 수평선을 바라보던 이블의 모습을 떠올리면, 바람에 흔들리는 금발과 수평선을 담은 붉은 눈을 떠올리면 체체도 새로운 풍경을 배경으로 이블의 근사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구경하고 싶긴 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겨놓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마 이블도 같은 생각으로 얘기했을 테지만….

    체체는 이블을 조금이라도 힘들게 만드는 일은 전혀 끌리지 않았다. 이미 이블은 지금까지 계속 힘들었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힘들 테니까.

    - 좀 좋은 데 데리고 가서 쉬게 하고 싶었는데. 너는 지금까지 존나 힘들게 살았잖아.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았습니다. 이블 님이 힘들게 살았죠.”

    - 맞아. 역겹고 추악한 오물만 가득한 곳에서 힘들게 살긴 했어. 우리 둘 다. 생각해 보니까 정말 요양이 필요한 것 같아.

    “그렇죠?”

    - 응.

    이블은 결국엔 체체의 말을 들어주게 되어 있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블과 체체가 두어 달간 보낼 휴양지는 저택으로 정해졌다.

    전화를 끊고 체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도 창문으로 햇볕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고 정원에 가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체체는 문을 열고 정원에 나갔다.

    따스한 봄 햇살이 내리쬐는 정원은 여전히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황량한 곳이었다. 다만 그 중간에 세공 작업실이 어색하게 자리했다. 저 작업실의 내부는 아주 아기자기했다. 체체는 이 정원이 꼭 이블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블 님의 일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

    그렇게 바라며 햇볕 아래를 거닐던 체체가 다시 생각했다.

    ‘방사능인지 뭔지 그냥 대충 하고 얼른 오셨으면 좋겠어.’

    대충 마무리 지으면 인류가 몰살될지도 모르는 사안이었지만 상상만큼은 자유로웠다.

    ‘씨발, 대충 끝내고 얼른 걔 만지러 가야겠어.’

    공교롭게도 이블도 케이시티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스물두 살 아직 어린 두 사람은 원거리 연애에 인내심이 없는 연인이었다.

    <외전 2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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