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3권) (6/17)

알시티에 버금가는 부유한 나라 론델에서는 12월마다 국가 공인 시상식을 연다. 일명 ‘선행상 시상식’. 이 시상식에서는 그해 세계에 크게 공헌한 이에게 상을 주는데, 보통 10월이면 대상자가 결정된다.

그러나 올해만은 달랐다. 연말에 이블이 보인 활약이 그동안 전 세계의 유명 인사들이 보인 모든 활약보다 무겁고 컸기 때문이다. 아르말의 지진 해일을 해결한 것은 물론 알시티의 적설 기간을 역대 최저 사상자로 끝나게 한 것과 타르 난민 이천 명 후원까지.

특히 아르말 지진 해일 해결은 정말로 크고 중한 것이었다. 아예 조금의 피해도 발생시키지 않고 지진 해일을 소멸시킨 사실은 역사서에 기록될 만했다.

올해 지구를 위해 가장 큰 일을 한 사람은 누가 봐도 이블이었으나 시상식 주관처에서는 고민이 많았다.

당장 산불 사건만 해도 사실상 오십 명이 그대로 죽어 나가도록 내버려 둔 이블이었는데, 오로지 결과만 보면 지금까지 수없는 인명 사상을 방치한 이 악마에게 선행상을 줘야만 하는 것이다.

최근에 아무리 선행을 베풀고 많은 사람을 구했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악마였고, 잠재된 핵폭탄이었다. 심지어 세간에 알려졌던 힘보다 더욱 파괴적인 능력을 지녔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아무리 활약을 했기로서니 그런 악마에게 상을 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악마가 아르말의 지진 해일을 단번에 해결했다. 올해 그 누구도 그 정도의 활약은 보이지 못했다.

주최 측도 고심에 빠지고 여론도 찬반 논란으로 들끓었다. 딜레마에 빠진 그들은 고민 끝에 다른 수상자를 선정하기로 했다.

체체.

이블의 비서이자 이블이 변화한 계기라고 추측되는 타르의 어린 영웅에게 상을 주기로 한 것이다.

10월경 예정했던 수상자들을 변경하지는 않았다. 다만 특별상이라는 자리를 신설해 수상자로 체체를 내정했다.

이는 아르말 지진 해일 사건 이후 머지않아 결정됐는데, 체체는 오러 측정 최종 결과가 나오는 날 그 소식을 들었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요.”

제임스로부터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내뱉은 말이었다. 당연히 거절하려는 체체의 머리를 이블이 쓰다듬었다. 이블은 이미 체체의 수상 소식을 알았다.

“왜 없어. 너 아니었으면 아르말 쑥대밭이 됐을 텐데.”

“아르말은 이사님께서 구하셨습니다.”

“내가 구했으니까 네가 받아야 된다고. 나 말고 다른 유저가 갔으면 지진 해일이 휩쓸고 간 지역 사후 처리밖에 못 했어. 당연히 사상자도 나왔을 거고. 바다 한가운데에서 소멸해 아무런 피해가 없었던 건 내가 갔기 때문이고 내가 직접 그곳에 간 건 너 때문이야. 그러니까 네게 줘야지.”

이블의 표정에 웃음기가 어렸다. 그는 이 상황이 매우 즐거운 듯했다. 난민 후원 발표 이후 이블은 체체에게 좀 더 다정해졌고, 체체도 이블에게만은 옅은 미소를 띠는 일이 많아졌다.

“상을 받으면 좋은 일이 있나요?”

“수상 자체가 영광된 일입니다. 체체 씨는 들어 보지 못한 것 같지만, 선행상은 상당히 큰 상이라 타르에도 소식이 알려질 겁니다. 다들 자랑스러워하겠죠.”

“맞아. 우리의 작은 영웅이 세계에서도 영웅이라며 얼마나 좋아하겠어. 큰 영웅이라고 불러 줄지도 몰라.”

“상금도 줍니다. 천만 다알인가.”

“그거밖에 안 줘?”

이블이 선행상을 축하하는 상황인 걸 까먹고 눈살을 찌푸렸다가 금방 폈다.

“천만 다알 받아서 타르에 기부하면 되겠네. 좋지?”

“…예.”

체체는 제임스와 이블을 번갈아 보다가 이내 이블을 향해 옅게 미소 지었다.

“상을 받는 건 처음이에요. 이사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응.”

거절한다고 고집부리지도 않고 예쁘게 웃으며 감사 인사를 해 오는 모습에 이블은 매우 흡족해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아직 점심을 들기엔 이른 시간이었지만, 오늘의 점심 식사 장소는 센터에서 헬기로 사십 분을 가야 하는 곳이라 일찍 일어나기로 했다. 헬기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이블은 체체를 먼저 태우고 옆자리에 탑승했다. 직원이 바로 헬기 문을 닫으려 하자 체체가 고개를 갸웃했다.

“제임스 실장님은 안 가시나요?”

“전 할 일이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이블은 혼자 남은 제임스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체체에게 헤드셋을 씌워 주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헬기가 떠올랐다.

홀로 옥상을 내려온 제임스가 향한 곳은 비서실이었다. 모두 옹기종기 모여 제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체체 씨도 수상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예정대로 열두 시에 바로 발표하면 되겠군.”

“어때요? 놀라던가요?”

“음… 그닥 놀라지 않았어.”

이미 비서진이 작성해 놓은 공식 입장에는 굉장히 기뻐했다고 적었지만, 사실 체체는 생각보다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선행상의 존재도 몰랐으니 어쩔 수 없지.”

“알았어도 안 놀랐을걸요. 보기와는 다르게 엄청 무뚝뚝한 성격이잖아요. 어떻게 소울러인지 모르겠다니까….”

줄리아는 내뱉어놓고서는 자기가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흔들리는 동공을 보며 제임스는 한숨을 쉬었다.

“이사님은 체체 씨와 함께 이미 센터를 출발했다.”

“헬리콥터에 타신 거죠? 안 들리시겠죠…?”

“벌써 수십 킬로미터를 날아가셨을 거다. 설마 이 정도 거리에서도 듣지는 못하시겠지.”

그제야 줄리아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이블의 한계치가 어디까지인지를 모르니 이블과 체체에 관한 얘기는 무조건 그들이 없는 자리에서만 했다.

“아무튼 신기할 정도로 무심하다니까요. 도련님에게 공포심도 못 느끼고.”

“그런데 진짜 대단하지 않아요? 얼굴도 예쁜데 성격도 정의롭고 착해서 그 어린 나이에 선행상도 받는다는 거. 최연소 선행상이라잖아요.”

“그것도 내전 중인 나라 출신이죠.”

“맞아. 한편으로는 부러워. S급 소울 오러 유저라니, 솔직히 F급만 돼도 인생 피는 거잖아요. 계속 타르에 있었으면 오러 유저로 각성하지도 못했을 텐데 정말 운도 좋죠.”

비서들이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 모두 진심이었다. 체체의 예쁜 외모도, 정의로운 성격도, 소울 오러 각성도. 겉으로 드러난 모든 게 그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기에 체체의 출신지마저 함께 묶이고 말았다.

내전 중인 나라에서 사는 건 분명 힘든 일이었을 테지만 결국 이렇게 빠져나와 인생을 꽃피우게 되었으니, 그 힘든 과거마저 지금의 성공을 위한 밑거름처럼 보이는 것이다.

제임스도 예전이라면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이제는 그저 입 다물 뿐이었다.

“한동안 바쁘겠네요.”

선행상 시상식은 매년 12월 31일 론델에서 열린다. 앞으로 이 주가 조금 넘게 남았다. 원체 변덕스러운 상사를 모셨기에 망정이지 그들이 아니라면 일정을 맞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 예정대로 S급 확정 소식과 함께 발표할까요?”

“그렇게 하도록.”

줄리아가 노트북을 열었다. 올리기 전 한 번 더 공식 입장문을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체체의 오러 재측정 결과는 오전 일찍 나왔다. 체체는 S급 소울 오러 유저로 최종 확정되었고, 공식적으로 센터 소속의 오러 유저가 되었다.

공식 입장에는 ‘저는 앞으로도 계속 이블의 비서직을 유지하면서 이블과 함께 오러 유저로서 활동할 것’이라고 써 놓았다.

“그러고 보니 체체는 아직도 재측정 결과 못 들었을까요?”

이블이 자기가 점심 먹으면서 알려 주겠다고 엄포를 놔서 체체에게 말하진 못했다. 내일 건강검진이 예정된 체체는 오늘 저녁부터 금식해야 하는데, 그 때문에 이블은 오전부터 기분이 무척 안 좋았다.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재측정 결과를 아는 사람들 수십 명은 필사적으로 함구하느라 고생했다.

“그 성격에 뭐 결과가 나오든 말든 관심도 없겠지.”

“줄리아, 선행상에 대한 사람들 반응은 어떤가?”

아르말 지진 해일 사건 이후 이블이 선행상 후보자로 거론될 때는 반대 여론이 상당히 강했다. 사실은 그 강한 반대 여론조차 엔덤 가문과 오러 센터의 체체에게 상을 주기 위한 물밑 작업이었다.

‘업적만 보면 이블이 받아야 마땅하지만 악마가 착한 일 한 번 했다고 줄 수는 없다. 꼭 시상을 해야 한다면 이블의 변화를 이끌어 낸 체체가 받는 게 맞다.’

이런 식으로 여론을 조성해 온 것이다.

“여론은 우리 편이에요. 사람 많이 고용한 보람이 있네요. 간혹 악성 게시글도 있긴 하지만요.”

“악성 게시글?”

“보실래요?”

줄리아는 인터넷 사이트 중 하루 접속자 수가 가장 많은 곳에 접속했다.

체체가 선행상 후보자에 올랐다는 인터넷 뉴스가 메인에 있었고, 아예 그 주제로 얘기를 하는 게시판도 만들어졌다. 그곳에서는 체체의 선행상 수상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거웠다. 어차피 그들이 얼마나 열띤 토론을 하든 수상자는 정해졌으니 허무한 시간 낭비였다.

줄리아는 그중에서 조회수가 많은 글을 클릭해 제임스에게 보여 줬다.

‘이게 어떻게 최초의 난민 수상이야’라는 제목이었다.

기사들에서는 난민으로서는 처음으로 선행상 받는 거라고 엄청 띄우는데 솔직히 체체는 이제 난민이라고 보기 어렵지 ㅋㅋ 난민 ‘출신’ 왕자님이라고 봐야지. 그동안 광고 몇 개나 찍고, 영화도 나오고, TV 출연에 돈도 많이 벌었겠다, 아직 나이도 어리잖아 ㅋㅋ 어리고 그렇게 이쁜데 난민들 사이에서 영웅이야 게다가 S급 소울러인 게 거의 확실하다며. 그런 애가 자기 소속인데 엔덤 쪽에서 얼마나 극진하게 대우하겠냐. 선행상 수상시키려고 별 로비를 다했겠지. 난민, 난민 하는데 이제 우리나라에서 평생 평화롭게 부귀영화 누리고 살 사람 언제까지 난민 대우 해 줄 거냐고. 우리나라가 호구지, 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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