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 Surface (1/8)

1. Surface

강서원은 커다란 가죽 소파에 앉아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은 경직되어 있었으나 긴장감에 짓눌린 것 같지는 않았다. 커다란 눈과 희고 맑은 피부 탓인지 남자는 그에게서 일견 어수룩한 인상을 받았는데, 눈 위로 드러나는 차분한 눈빛이 그 인상을 금방 지워냈다. 그 눈빛은 정직하게 보일 정도로 올곧으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도리어 깊고 어두운, 조용히 흘러가는 강의 수면 같았다.

“조금만 기다려 줄래요?”

서원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남자가 이윽고 부팅이 완료된 태블릿 PC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돌아오는 반응은 빨랐다. 서원은 바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미안해요.” 하고 작게 덧붙였다.

서원이 입고 있는 남색 맨투맨은 깨끗하지만 낡은 티가 났다. 느슨하게 늘어난 소매는 이미 낙낙히 손을 덮고 있었는데도, 습관 때문인지 흰 손가락이 자꾸 튀어나와 소매를 연신 끌어당기고 있었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손가락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꼼지락거리고 있는 주제에 목소리와 얼굴은 차분했다. 남자는 서원을 구경하듯 잠시간 바라보다가 태블릿 PC로 시선을 옮겼다.

방 안에는 이따금씩 태블릿을 톡톡, 두드리는 소리만 났다. 서원은 또 한 번 손가락으로 소매를 끌어당기면서 방 안을 둘러보았다.

방 안은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진한 잿빛의 벽과 그 앞에 얌전히 놓인 흰색의 가구들은 마치 어제 들여놓은 것처럼 깔끔했다. 정교하게 쌓여 있는 커다란 서랍장들은 안이 텅 비어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세월의 밀도가 느껴지지 않는 방이었다.

이 방 안에서 사람의 손을 탄 것처럼 보이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저 앞의 남자가 쓰고 있는, 공간의 효율성이라곤 고려하지 않고 만든 것처럼 큼지막하고 존재감이 큰 원목 책상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제가 지금 앉아 있는 가죽 소파였다.

소파는 딱딱해 보이는 외관과는 다르게 하체가 파묻힐 정도로 푹신했다. 또 윤택이 나는 가죽은 매끄럽다 못해 미끄럽게 느껴졌다. 조금만 긴장을 늦춘다면 상체가 가죽 소파의 등받이 위로 무너져 기댈 것만 같았다. 마치 따뜻하고 강한 파도에 휩쓸리는 것처럼.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마자 서원은 조금 더 허리에 힘을 주어 꼿꼿이 앉았다.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남자가 보고 있던 태블릿 PC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일어섰다. 조용했던 방 안에 플라스틱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는 군더더기 없는 걸음으로 가죽 소파 앞으로 걸어왔다.

맞은편에 앉을 줄 알았는데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예상 밖의 동선에 조금 놀란 서원이 목 뒤를 굳혔다. 남자는 서원의 바로 앞에 섰다. 그리고 서원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작게 펄럭이는 소리가 코앞에서 났다.

“대충 알아 둬야 할 것들.”

낮고 울림이 있는 목소리가 코앞에 내려앉았다. 억양이 고압적이지는 않은데, 목소리 탓인지 꼭 명령을 당하는 것 같다. 권태로운 두 눈동자가 저를 수직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서원은 올려다보지 않고 종이를 받아들였다.

종이에는 과외에 대한 것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미리 메일로 전해 들었던 사항들이었다. 재차 확인할 겸 대충 훑어보고 있는데, 책상 앞으로 돌아가던 남자가 말을 꺼내었다.

“선생님이….”

“아, 그냥 이름으로 부르셔도 됩니다.”

제 말머리를 쑥 자르는 정중한 목소리에 남자의 한쪽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대학생답지 않게 점잖게 굴어도 결국 어설픈 티를 낸다 싶었다.

남자는 다시 태블릿 PC를 확인한 뒤에 고개를 들었다.

“그래요. ……강, 서원 씨?”

“네.”

이제야 이름을 확인한 모양인지 발음이 딱딱했다. ‘이름조차 확인하지 않았다면, 아까 전에는 이력서에서 무엇을 보았던 거지.’ 서원은 궁금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서원 씨가 양 교수님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전달받았는지는 모르겠는데,”

남자는 등을 뒤로 완전히 기대며 말을 꺼냈다.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멎은 후 그는 말을 이었다.

“애 성적에 별로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과외 시작하는 시간만 잘 지켜 주세요. 일찍 끝내는 것도, 뭐, 상관없고.”

본질을 뭉개버리는 말이었다. 무슨 이유든 교육열 때문에 과외를 구한 게 아니라는 것쯤은 양 교수님께 과외를 해 보겠냐고 제안을 받을 적부터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으나 이렇게 면접 날부터 노골적인 말을 들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서원은 당황한 듯 눈을 깜빡였다.

남자는 그가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 없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귀찮은 잡일을 얼른 해치워버려야겠다는 태도마저 느껴졌다.

“아, 그리고 되도록 안 관뒀으면 좋겠네요.”

“…….”

“혹시 더 궁금한 거 있나요?”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우아하게 웃고 있는 입을 서원은 망연히 바라보았다.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꺼낸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러면, 그…… 아버님은…….”

“아버님이요?”

돌연 남자는 왈칵 웃음을 쏟아냈다. ‘말실수다.’ 서원은 곧바로 생각했다. 정확한 추측은 하지 못하겠으나 남자는 최소한 19살의 아들을 둔 아빠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외형의 나이대로 보자면 학생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이라고 여기는 것이 더 설득력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양 교수님께 그런 정보를 전해 듣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서원은 방에 들어선 순간부터 남자를 뭐라고 지칭해야 할지 고민했었다. 결국 남자가 태블릿 PC를 두드리며 제 이력서를 볼 때쯤에야 그를 ‘보호자님’이라고 부르기로 결정하였는데, 방금 전의 상황이 당황스러워 그만 말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나 걔 아빠 아닌데.”

실컷 웃은 남자가 속눈썹에 맺힌 눈물을 슬쩍 손가락으로 닦아내며 말했다. 서원은 작게 어깨를 움츠렸다.

“죄송합니다. 아닌 줄 알았는데, 저도 모르게…….”

“괜찮아요. 저는 형입니다. 나이 차이가 좀 나지만.”

“아, 네.”

“그리고, 이 집에는 걔랑 저밖에 안 살아요. 집안 어른은 여기 안 계십니다.”

“……네. 죄송합니다.”

재차 사과하자 남자는 하던 말이나 계속하라는 듯이 서원을 쳐다보며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서원은 잠시 간격을 두었다가 말을 꺼냈다.

“……그, 준호 성적을 어느 정도는 알고 싶습니다.”

갑자기 누굴 가르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기라도 한 게 아니었다. 막말로 저 남자가 자신이 선생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보증이나 계약서를 써 주었다면 마음 놓고 이 방을 나섰을 터였다. 하지만 그런 보증은 없었다. 되도록 타인이 가볍게 흘리는 말에 현혹되어 믿고 기대지 않는 게 좋았다. 사람이란 원래 자기가 유리한 대로 말을 바꾸는 비열한 존재라는 걸 서원은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저는 과외 시간만 잘 지켜 달라는 남자의 말을 어느 정도로만 수용할 뿐 그 말에 편하게 기대 버리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었다.

남자는 서원의 물음이 불쾌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저 열의 없는 얼굴로 “성적?” 하고 되물었다.

“네.”

“알파벳도 다 뗐는지 모르겠네요. 워낙 꼴통이라서.”

“…….”

자못 괴팍한 단어 선택에 서원은 다시금 당황했다. 대화를 할수록 남자는 이 독특한 방처럼 여러 가지의 인격이 혼재되어 있는 것 같았다.

짧은 간격 뒤에 남자가 입을 열었다.

“더 궁금한 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남자는 서원에게 가보라는 말도 없이 기다렸다는 듯 뒤통수까지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서원은 머뭇거리며 일어섰다.

“……그래도, 노력은 하겠습니다.”

방문 앞까지 걸어간 서원은 문고리를 잡은 채로 잠시 고민하다가 마침내 뒤를 돌면서 말했다.

남자의 눈이 슬쩍 뜨였다. 턱을 들고 있는 탓에 속쌍꺼풀이 느른히 뜬 눈 위에 드러났다. 살짝 피로감이 내려앉은 눈에는 마치 아직도 안 나가고 있었느냐는, 귀찮음을 담은 물음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특이한 것은,

“그래요. 조심히 가요.”

남자는 그런 얼굴을 하면서도 능숙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부드러운 목소리를 낸다는 점이었다.

* * *

새로운 과외 선생은 만만하게 보였다. 혜숙이 아줌마가 아끼는 제자를 형에게 소개해 줬다기에 못내 긴장하고 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랬다.

“쌤 꼭, 아다 같이 생겼네요?”

방으로 들어오는 서원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준호는 주체하지 못하고 실실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을 때는 기다렸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그게 첫 마디였다.

그거 하나로도 피부를 붉히거나 불쾌감을 표현하리라 짐작한 것과 달리 과외 선생은 의외로 담담한 얼굴을 했다. 제 가방에서 필통과 클리어 홀더를 꺼내면서 “이름이 준호, 맞지? 시준호. 잘 부탁해.”라고 할 뿐이었다.

물끄러미 서원을 바라보던 준호가 급기야 어깨를 떨며 웃기 시작했다. ‘한 대 치면 울게 생긴 게, 센 척하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사이 서원은 필통에서 볼펜을 하나 꺼내었다. 그리고는 준호에게 내밀었다. 준호는 순순히 그것을 받아들면서 말했다.

“대답 안 하는 거 보니까 아다인가 보네요?”

“오늘은 레벨 테스트부터 할게. 수준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과외 선생은 클리어 홀더의 틈을 벌려 시험지를 꺼냈다. 그리고 책상 위에 툭, 올려놓고서는 “시간은 40분이야.” 했다. 제 말에 한 치의 틈도 주지 않는 걸 보니, 생긴 건 안 그래도 은근히 뚝심은 있는 편인 것 같다. 준호는 조금 인정했다. 그리고 슥슥, 시험지 위에 유치하고 민망한 낙서를 시작했다. 이건 좀 질릴 것이다. 분명.

“여자는 사귀어 봤어요?”

“…….”

“아니다, 쌤은 남자 쪽인가?”

“……문제 안 풀 거야?”

드디어 날이 선 목소리가 튀어 올랐다. 슬쩍 맞은편을 바라보니 가지런한 얼굴 위로 불쾌감이 은근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 미묘한 동요가 만족스러워서 준호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섹스를 아예 안 해본 거예요?”

“…….”

그림을 그리는 손이 더 빨라졌다. 샤프심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갉작거리면서 계속 흘렀다. 준호는 더 빠르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경험 없으면 뭐, 영상이나 만화 같은 걸로 봤나? 쌤같이 얌전해 보이는 애들이 좀 변태 같은 거 좋아하던데. 쌤도 그래요?”

과외 선생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다시 얼굴을 확인하니 눈빛이 조금 가라앉아 있다. 역시 벌써 지친 모양이었다. 마침내 준호는 볼펜을 경쾌하게 떨어뜨리면서 말했다.

“쌤, 나랑 졸라 말하기 싫죠?”

“…….”

“그러니까요. 쌤, 저 그냥 보내주세요. 그러면 내가 선생님 수업 잘했다고 형한테 잘 말할게요. 네? 쌤도 일 안 하면 좋잖아. 나 그리고 수업해 봤자 성적 안 올라요. 공부도 안 할 거고.”

내내 조용한 걸 보니 넘어온 게 분명했다. 이윽고 스멀스멀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났다. 주춤 일어선 준호가 책상 위에 놓인 지갑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네? 그렇게 하는 거죠?” 하면서 웃었다.

그때였다. 마치 목석처럼 가만히 준호를 바라보던 서원이 그대로 눈만 내려 제 핸드폰의 액정을 톡톡 쳤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한 뒤에 말했다.

“4분 지났어.”

“……네?”

“36분 남았다고. 레벨 테스트.”

“뭐야, 시간 재고 있었어요?”

“35분.”

“……와, 진짜 짜증 나게 하네.”

좀 어이가 없어서 웃음까지 샜다. 준호는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고요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툭, 의자를 발로 건드리고는 털썩 앉았다. 첫날이라 그런지 좀 질긴 것도 같다. 그는 오늘은 귀찮으니 한발 물러선다는 티를 잔뜩 내기 위해 쯧, 혀를 찼다.

“쌤, 아다 아니죠?”

잠시 후 준호는 문제를 눈으로 읽으며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 없었다.

* * *

토요일 오전에 일어난 서원은 어젯밤에 하던 과제를 마무리하고 씻은 뒤, 엄마의 방문을 열었다. 방은 비어 있었다. ‘벌써 나갔나 보네.’ 그는 생각했다. 그녀는 토요일에도 일을 나갔다.

서원은 엄마 대신 두 명의 동생과 먹을 간단한 아침을 차렸다. 밥을 먹던 중에 둘째인 재원이 서원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형, 내일 밤에 약속 있어?”

“왜.”

이제는 제 동생의 말투만 들어도 무슨 이야기를 할지 파악이 되었으나, 서원은 짐짓 모르는 척 대답하며 정체불명의 해물 볶음에서 칵테일 새우를 찾아 태원의 밥 위에 올려 두었다. 태원은 제 두 형이 무슨 말을 하고 있든지 관심 없다는 얼굴로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럴 나이였다.

“아빠가 보자는데. 새 학기니까……. 그냥 서로 안부나 나눌 겸.”

“몇 시에? 엄마한테는 말 했어?”

“안 했지. 엄마 몰래 가야지.”

엄마한테 말을 하고 가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느냐는 목소리였다. 서원은 열심히 칵테일 새우를 나르던 젓가락질을 멈추고 재원을 바라보았다.

“……아빠랑 통화했어? 갑자기 왜.”

“아, 용돈 올려달라고 전화하긴 했지.”

재원은 웃는 낯으로 말했다. 부끄러울 것 하나 없다는 기색이었다. ‘하긴. 부끄러울 게 뭐가 있나.’ 서원은 생각했다.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인, 여우 같은 놈이었다. 이제 대학생이 되니 슬슬 용돈이 끊길까 두려웠는지, 재원은 요즘 들어 더 아빠에게 자주 연락했다. 더하여 아빠의 회사를 찾아가 고기를 얻어먹으며 갖은 애교와 아양을 부려대는 모양이었다. 저들을 버리고 집을 나간 아빠라도 한 달에 60만 원만 받을 수 있다면 그깟 불필요한 원망과 과거 따위 한 번에 지워버리고 배시시 웃을 수 있는, 현재의 안위만을 맹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저도 아빠와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니었다. 허나 오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엄마의 대변인이 되어 아빠와 ‘엄마와 아빠 중 누가 더 잘못했나.’, ‘이혼 뒤 누가 더 불행했나.’, ‘결혼 당시 누가 더 희생했나.’ 등의 주제로 토론을 가장한 말다툼을 했고, 그 자리의 결말은 늘 찝찝했다. 서원은 그 느낌이 너무 싫었다. 자신이 나쁜 놈이 아니길 바라는 서원의 아빠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그는 옛날부터 심판대에 올라가는 걸 못내 싫어했으니까.

“……모르겠어, 아직은. 대타 없을지도 몰라서.”

굳이 싫다고 대놓고 말할 필요는 없어서 대강 변명을 하자 재원은 “그래? 그럼 어쩔 수 없겠네.”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태원에게 “너는 갈 거지?” 하고 물었다. 태원은 입을 열심히 오물거리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설거지는 늘 그렇듯 재원의 몫이었다. 고무장갑을 끼는 녀석을 뒤로하고 화장실로 들어가 양치를 하던 중이었다. 핸드폰이 연달아 진동했다. 문자였다.

[오늘 수업없음~]

[집에 나 없을거에요ㅋㅋ]

발신인은 시준호였다. 서원은 칫솔을 입에 문 채로 가만히 핸드폰을 내려다보다가, 이윽고 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다시 바지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었다.

놈은 갈수록 영 골칫덩이였다. 그 탓에 스스로 세워 두었던, 적어도 과외 시간을 채우자는 자그마한 목표마저도 잘 되고 있지 않았다. 화, 목 밤에 이루어지는 수업은 아무래도 시간이 애매한 탓인지 빠진 적이 없었는데, 토요일 낮의 수업은 당연하다는 듯 홀랑 내빼길 이 주째다.

수업을 안 하면 편한 건 사실이었지만 그보단 불안함이 더 컸다. 수업을 거른다면 놈의 형이 저를 불러 책임을 물어도 할 말이 없기 때문이었다. 서원은 처음 보았을 때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한, 그 묘하게 냉한 얼굴을 떠올리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번 본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기는 뭣했으나 분명 그 남자는 만만치 않았다. 꼬리를 잡힐만한 실수를 하면 안 될 것만 같은 사람이다.

세수를 한 뒤,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서원은 결론을 내렸다.

확실히 조치가 필요하다.

* * *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컸다. 시연우는 물을 마시다가 흘긋 눈을 올렸다. 툭툭 부딪히는 소리를 내는 건 역시나 제 동생이었다. 불퉁해진 얼굴을 보니 잔뜩 심술이 난 듯했다. 근래 계속 저런 얼굴이었다.

“깨작거리지 말고 빨리 먹어.”

연우는 컵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대놓고 나 짜증 나 죽겠다는 얼굴을 하니 대충 뭘 봐 달라는 건 알겠는데, 그럴 거면 제대로 말을 하는 게 나았다.

숟가락으로 국만 휘휘 젓던 준호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나 과외 바꿔 줘.”

“왜. 그 선생으로는 서울대 못 갈 것 같아?”

픽 웃으면서 비꼬니 못내 짜증 나는지 녀석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아니, 아, 장난해?” 하면서 턱 숟가락을 세게 내려놓는다. 연우는 웃는 얼굴 그대로 식탁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준호가 말을 이었다.

“사람 존나 짜증 나게 해. 성격 개 이상한 것 같아.”

약 한 달 전에 한 번 본 게 다지만, 그때의 인상으로 미루어 보건대 녀석의 과외 선생은 그다지 유별난 성격은 아닌 것 같았다. 조용한, 조금은 소극적인 대학생. 그뿐이었다. 잠시 그 호수 같은 눈동자를 떠올리던 연우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괜찮아 보이던데?” 했다.

“아니야. 진짜 개또라이야.”

“정확히 뭐가 개또라이 같은지 말을 해야 그거 갖다가 뭐라 하든가 자르든가 할 거 아니야, 내가. 구체적인 행동을 말해.”

이대로 가면 대화가 도돌이표가 될 것만 같아서 벌써부터 피곤했다. 조금 단호하게 말하자 준호는 “아, 그니까!” 하고 일단 말을 꺼내 놓고도 우물쭈물하며 제대로 된 이유를 말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명확한 이유 없이 그 선생이 마음에 안 드는 게 분명했다.

“아, 그니까. 아! 그냥……. 그냥!”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었다. 시연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준호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제 형은 자신이 억지를 부리면 웬만한 부탁은 대부분 들어주는 편이었다. 물론 그것들도 자신에게 들러붙는 게 귀찮아서 먹고 떨어지라는 뉘앙스였지만 어쨌든 융통성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연우는 표정 변화 없이 준호를 내려다보았다.

“웬만하면 참아. 누가 성적 올리래?”

“성적 안 올릴 거면 왜 써?”

“네 새끼가 풀어 두면 계속 사고 치니까.”

그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는지 준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다른 선생을…….”

“다른 선생들이 더 빡빡해. 특히 전문 과외들은 제 커리어 때문에 너 붙들고 안 놔줄 거라고. 대학생 과외 하는 애들 중에서 일 년 내내 해준다는 애도 걔 빼고는 없어. 나도 네 수준 고려해서 찾아다 데려다 놓은 건데 뭐가 부족해서 또 찡찡대, 어?”

기다란 손가락이 툭 준호의 이마를 쳤다. 목소리는 평소처럼 나긋나긋했으나 속내는 전혀 그렇지 않을 거라는 걸 준호는 알았다. 그는 한껏 억울한 표정으로 다이닝 룸을 벗어나는 제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시발. 진짜 미치겠네.’

입이 근질근질해서 미칠 것 같았다.

* * *

시연우는 제 서재의 소파 위에 누워 있었다. 베이지색 슬랙스가 적당하게 맞는 긴 다리는 미동도 없이 축 처져 있었다. ‘불편해.’ 그는 생각했으나 아직은 트레이닝 팬츠로 옷을 갈아입을 때가 아니었다. 제 동생의 과외 선생이 아직 위층에 있었다.

그는 손목에 두른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20분만 있으면 과외가 얼추 끝날 터였다. 거의 반년 만에 찾아온 주말다운 주말이었기 때문에, 그는 어서 이 집의 이물질이 제 역할을 적당히 끝내고 나가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과외 선생의 얼굴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의미 없이 날짜를 헤아리던 그는 새삼스레 놀랐다. 되도록 오래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는 했는데, 제 동생의 패악하고 유치한 성격을 그 대학생이 한 달이나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 심지어 제게 한마디의 항의도 없이.

연우는 저번 주의 일을 떠올렸다. 일찍 퇴근했던 날, 같이 밥을 먹던 중에 준호는 제게 과외 선생이 마음에 안 든다고 했었다. 그 말을 묵살하기는 했지만 준호라면 제가 귀찮아서 부탁을 들어줄 때까지 찡찡거렸을 것이다. 참을성 없는 놈의 성격이라면 그게 당연했다. 그런데 준호는 그 이후로 과외 선생 이야기를 일절 꺼내지 않았고, 심지어는 늘 빼먹던 토요일까지 집에 남아 과외를 받았다. 관심이 없어서 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 보니 영 신기한 일이었다.

“뭐지?”

연우는 누운 채로 팔을 수직으로 뻗었다. 그리고 제 흰색 셔츠의 소매를 적당한 길이로 접으면서 중얼거렸다.

잠시 후, 그는 다시 한번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새 15분이 지나 있었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구겨진 셔츠를 정돈했다. 단정하게 늘어진 생머리를 툭툭 대충 털었다. 문이 열렸다.

“…….”

타이밍 좋게 과외 선생이 위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과외 선생은 담담한 얼굴로 방문을 나서고 있었고, 준호는 마중 나갈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놈은 계단 위에 서서 과외 선생을 노려보기만 했다. 서로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위태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준호의 눈빛에 경계심과 경멸이 어려 있었다. 과외 선생님이 좋아져서 과외를 받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무엇인가가 터지기 일보 직전의 얼굴이었다. ‘진짜 의심스럽네.’ 연우는 생각했다.

“시준호, 선생님한테 인사해야지.”

무표정하게 과외 선생과 준호의 모습을 번갈아 보던 연우가 얼굴을 바꾸며 자연스레 제 모습을 드러냈다. 과외 선생이 걸음을 멈춰 세웠다. 고개를 퍼뜩 든다. 집에 그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지 못내 놀란 표정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연우는 살짝 웃으며 “안녕하세요.” 했다.

“……아, 안녕하세요.”

못내 당황한 얼굴로 허리를 숙인다. 연우는 그 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올려 준호에게 방에 들어가라는 턱짓을 했다. 쾅. 문이 거세게 닫혔다.

서원은 다시 바닥으로 얼굴을 고정시키고 서둘러 계단을 내려왔다. 그리고 왜인지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남자에게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느닷없이 나타나 저를 관찰하듯 보고 있는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공연히 위축이 되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급한 약속 있어요?”

그리고 현관으로 방향을 돌리려는 찰나였다. 등 뒤에서 흐르는 낮은 목소리가 발목을 잡아채었다. 걸음을 멈춘 서원은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네?”

“약속 없으면 데려다줄게요.”

* * *

새 가죽 냄새가 나는 차 안은 엔진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남자는 정말 데려다주려는 게 목적인 것처럼 묵묵히 운전을 하고 있었고, 서원은 석고로 만든 모형처럼 딱딱하고 어색한 자세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거 없는 풍경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준호한테 뭐 했어요?”

정적 한가운데, 불시에 튀어나온 말이었다. 저 멀리에 보이는 높고 비싸 보이는 아파트를 구경하던 서원이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차가 섰다. 신호등 때문이었다.

남자는 말해 보라는 얼굴로 서원을 보았다. 회유를 하는 것처럼 부드러운 어조였고,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서원은 짐짓 모르겠단 얼굴을 하면서 “네?” 되물었다.

“쟤가 저렇게 고분고분할 리가 없어서요. 용돈 뺏는다고 해야 고분고분해지는 애거든요.”

연우는 눈을 마주치며 부드럽게 말했으나 서원은 시선을 비꼈다. 그리고 작게 말했다.

“……아까 보셨다시피, 별로 고분고분하지 않습니다.”

‘얘 봐라.’ 연우는 생각했다. 연신 소매를 끌어당기거나, 손톱 거스러미를 괴롭히거나 습관적으로 되묻는 등의 행동거지는 맹해 보이기 짝이 없는데, 미꾸라지처럼 교묘하게 논점을 흐리는 걸 보니 보기보다 머리를 퍽 잘 굴리는 모양이다.

“글쎄요. 선생님 안 때린 것만 봐도 고분고분한데?”

다소 상식을 벗어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꺼낸 것은 의도적이었다. 예상대로 서원은 눈에 띄게 긴장한 얼굴을 했다. 신호가 바뀌었다. 다시금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우는 간격 없이 말을 이어 갔다. 말 사이사이로 상황을 피해 가려는 미꾸라지는 촘촘한 그물로 가둬 두려고 하기보다 무식하게 손으로 콱, 세게 쥐는 게 방법이다.

“아까 보니까 선생님이 거의 애를 갖고 놀던데요. 아까 방에서 나올 때요. 애 표정 안 좋은 거 뻔히 알면서 모르는 척했잖아요.”

“아, 저, 그런 게 아니라…….”

서원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연우는 꼬리를 잡듯 빠르게 “그런 게 아니라, 뭔데요?” 하고 물었다.

“…….”

잠시 차 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서원은 소매를 계속 끌어당겼다. 연우는 그것을 곁눈질로 바라보면서 꽤 고약한 버릇이라고 생각했다. 어렴풋이, 그를 처음 만났을 때도 저랬다는 것이 기억난 탓이었다.

“죄송합니다. 별건 아니고, 그냥…….”

“…….”

“그냥, 어떻게 하다가 준호가 담배를 피운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놈의 흡연 사실은 알고 있었다. 가끔 냄새가 날 때도 있었고, 책가방 안에서 라이터를 발견한 적도 있다. 모르는 척한 건 단지 귀찮아서였다. 재작년, 어머니가 후두암으로 돌아가신 이후 집 안에서는 흡연을 흡사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되었으므로 녀석을 혼내야 한다면 호되게 해야 했다. 그 정도의 성의까지는 저에게 없었다.

그러나 연우는 처음 들은 것처럼 대충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서원이 입을 열기도 전에 말을 잇는다.

“그래서, 그거 가지고 애 겁줬어요?”

“……네.”

연우는 작게 웃었다.

“근데 그렇게 나한테 쉽게 말해도 돼요?”

“네?”

“준호가 담배 피우는 거, 그렇게 선생님이 그거 갖다가 협박하면서 애 다루고 있는데 나한테 쉽게 말해도 되냐고요.”

서원은 눈을 깜빡이며 연우의 옆모습을 보았다. 어느새 당혹스러운 기색은 사라져 있었다. 그는 도리어 왜 그걸 제게 묻느냐는 얼굴을 하고선 입을 열었다.

“……아실 것 같았습니다, 준호가 담배 피우는 거.”

“…….”

단정한 얼굴이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연우는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조용히 운전을 했다.

“저도, 쉽게 알아챌 정도였으니까요. 아시다시피…… 준호는 산만한 편이라서 숨겨도 티가 났습니다. 가끔 손이나 머리카락에서도 담배 냄새가 났고…… 근데 자신의 형이 자신이 흡연하는 걸 모를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더군요. 그리고 답지 않게 제 형이 담배 피우는 걸 알면 큰일 날 것처럼 굴었고요.”

“…….”

“그래서, 그냥, 짐작했습니다. 규칙이라는 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있을 때도 있지만, 사람을 긴장시키기 위해 만들어 둘 때가 있는 것처럼……. 형님께서 준호에게도 그런, 음, 제동 장치……, 같은 걸 걸어 둔 게 아닐까 싶은…….”

약간 작은 목소리는 설명하기가 못내 어려운지 갈수록 더듬거렸다.

“저도 동생들이 있어서요. 그냥 그런 생각이 나서…… 저도 그러니까요…….”

서원은 희미하게 덧붙이면서 고개를 숙여 제 손을 바라보았다. 제가 말을 하는 동안 아무 반응이 없는 남자의 태도가 무서웠다. 남자는 행동이 크지 않고, 가끔 어휘가 이질적일 만치 강할 때도 있었으나 기본적으로는 상냥한 말투였다. 대놓고 태도가 고압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묘하게 사람을 위축시키는 분위기가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준호 가방, 뒤졌죠?”

한참 뒤에 남자가 말했다. 서원이 놀란 얼굴로 그를 보았다. 심장이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듯했다.

어느새 차가 서원의 집 앞까지 다다랐다. 서원의 동네는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였다. 흙먼지 섞인 공기 속에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아 낡은 주택들이 멀찍이 지어져 있었고, 공장들이 많았다. 자동차 바퀴 소리가 굴러가는 소리만 들려도 여기저기서 컹컹거리는 개들의 짖는 소리가 뒤따랐다.

연우는 차를 멈추고 기어를 바꾸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려 서원을 보았다. 서원은 안전벨트를 풀 생각도 못 하고 그 자리에 굳은 것처럼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답지 않게 커다랗게 뜨인 눈이 어쩐지 색달라서 흥미로웠다. 연우는 살짝 웃었다.

“내가 준호 담배 피우는 거 알고도 가만히 있는 거 알았으면, 아까 내가 물어봤을 때 쉽게 답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피해 갔잖아요. 뭔가 선생님도 내게 말하기 뭣한 짓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

“‘어떻게 하다가’ 담배를 피운 걸 알게 됐다고 어물쩍 말하는 것도 선생님답지 않고.”

두 번째로 대면한 상대방에게 ‘너답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서원은 생각했다. 차라리 그게 근거 없는 허세였다면 웃어넘길 수 있었는데 남자는 웃어넘길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제 의도를 짚어냈다. 심지어 짚어내는 것도 모자라, 제가 숨기고자 했던 행동까지 유추했다.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

“……죄송합니다.”

기어이 서원은 남자의 시선을 피하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뺨에 서서히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누군가가 제 의중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적은 처음이어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치심이 들었다.

남자는 답이 없었다. ‘화가 난 건가.’ 서원은 생각하며 조용히 안전벨트를 풀었다. 그리고 다리 밑에 놓아둔 가방끈을 쥐었다. 얼른 인사를 건네고 차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는 가방끈을 쥔 손에 힘을 준 채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럼, 가보겠…….”

곧이어 남자의 얼굴을 올려본 순간이었다. 서원은 말을 잇지 못했다. 당황한 탓이었다.

한쪽 팔꿈치를 핸들 위에 걸치고 손으로 관자놀이를 괸 채로, 남자는 웃고 있었다. 정확히 저를 쳐다보면서.

“…….”

“…….”

왜 웃지, 라는 의문은 그 뒤의 문제였다. 서원은 순수하게 놀랐다.

처음에 보았을 때 이목구비가 조각처럼 잘생기기는 했지만, 날카롭고 냉랭한 분위기 탓인지 그를 호감형이라고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그 생각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었는데 시원하게 벌어진 입과 살짝 휘어진 눈을 보니 서원은 제가 명백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지금 제 앞에 지어진 미소는, 누구든 홀릴 것 같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안 봤는데…….”

“…….”

“되게 재밌는 사람이네요, 서원 씨.”

“…….”

남자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작게 말하는데도 풍부한 음색이었다.

서원은 저번에 남자에게 자신을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가 저를 다시 선생님으로 지칭하기에, 그 말을 잊은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놀란 탓인지 혹 다른 이유인지,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심장이 콩닥거렸다. 서원이 멀거니 남자를 보는 사이, 그는 얼굴을 똑바로 들면서 말했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그러니까, 사과할 필요 없어요. 추궁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요. 오히려 잘한 거죠. 애가 그딴 식으로 구는데 어쩌겠어요. 그죠?”

“…….”

‘화난 게 아니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몸에 잔뜩 긴장했던 몸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꼭 동의를 바라고 물은 건 아니었던 듯, 남자는 곧바로 창가 쪽 버튼을 눌렀다. 탈칵.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서원을 보며 말했다.

“가 봐요.”

“저, 그래도 죄송합니다. 혹시 도난 시도라고 생각하실까 봐…….”

‘자기변호를 무슨 저딴 식으로 하지.’ 연우는 생각했다. 제 무덤을 파는 말을 변명이랍시고 하는 게 참 정직하다 칭찬해야 할지, 요령 없다고 핀잔을 주어야 할지 모르겠는 정도다. 그는 거듭 웃으며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괜찮다니까요. 근데, 그것도 얼마 안 갈 거예요. 준호가 머리가 잘 안 굴러가서요. 성질 긁히면 설령 상대방이 칼 들고 있다 해도 앞뒤 안 재고 달려들 놈이라. 애가 너무 미친놈처럼 굴면 혼자 무리하지 마시고 저한테 말해 줘요.”

“……네. 감사합니다.”

서원은 가까스로 입을 열어 말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대화를 한 탓인지 심장이 탈진한 것처럼 힘겨웠다. 도마 위에서 커다란 칼이 목을 내려치기만을 기다리며 펄떡거리는 생선이 된 기분이었다.

“태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를 벗어난 서원은 문을 닫기 전 말했다. 남자는 대답 대신 고개를 까딱였다. 쾅. 차 문이 닫혔다. 서원은 도망치듯 빠르게 집 안으로 향했다.

차는 그의 모습이 집 안으로 숨고 나서야 출발했다.

* * *

장대비가 내렸다가 그치기를 반복했다. 연우는 차를 천천히 몰면서 앞 유리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몇십 분 전 그쳤던 비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투두둑 유리를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시원했다.

‘딱 집 가서 자기 좋은 날씨네.’ 그는 생각하면서 조금 서둘러 카페 뒤편 골목에 주차했다. 애매한 곳에 세워서 지나가던 행인들이 욕할 것 같았다. 그러나 누군가 제게 전화해서 제대로 세워 달라고 한다면 그때 가서 제대로 세우면 될 일이라고, 하지만 자신이 용무를 끝내고 카페를 나설 때까지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고 그는 늘 그렇듯 태평하게 생각했다.

연우는 우산 없이 빠른 걸음으로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어찌나 빗줄기가 굵은지 조금 맞았을 뿐인데도 어깨가 축축했다. 그는 가볍게 어깨를 털면서 내부를 둘러보았다. 가까운 곳에 박진석이 앉아 있었다.

“좀 늦었다?”

“회의 때문에. 자, 개업 화분.”

쾅. 아메리카노 옆으로 묵직한 화분이 놓였다. 진석이 기함하며 “미친놈아! 여기다 두면 어떡해. 테이블 깨진다고!” 하여도 연우는 괘념치 않는다는 듯 푹신한 가죽 의자에 느긋하게 허리를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 내려앉은 빗방울을 털어내기 위해 제 머리를 탈탈 헝클었다. 생머리가 길쭉한 손가락에 말려 정신없이 흐트러졌다.

“시끄러워. 소리 지르지 마. 회의 때 힘 다 빼서 피곤해.”

연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말마따나 힘이 빠졌는지 지친 얼굴이었다. ‘참 한결같다.’ 진석은 생각하면서 제 커피를 마셨다.

정말이었다. 고등학교에 조기 입학한 열네 살 꼬마 녀석이 31살이 될 때까지 봐 온 형님으로서 말하건대, 시연우는 정말 몇 안 되는 한결같은 놈이었다. 고등학교 때도 무슨 토요일까지 자습하러 나와야 하느냐며 당당하게 욕을 하면서도 제 성질에 대충 하는 건 못 견뎌서 꼬박꼬박 자습 시간을 채우고 갔던 놈이었다.

비단 공부뿐만이 아니라 운동도 그랬고, 대학도 그랬고, 하다못해 특별활동부까지 그랬다. 특별활동부를 고르기 귀찮다는 이유로 진석을 따라 풍수지리 연구부에 들어갔던 놈은 어느새 교내 문과 탑보다 한국지리를 잘 아는 이과생이 되어 있었다. 여하튼 놈은 옛날부터 특이했다. 뭐든 귀찮아하는 성미와 뭐든 완벽히 소화해야 하는 성미가 뒤죽박죽 섞여 딜레마의 굴레 안에서 살아가는 놈이었다.

“아니, 그래도 월요일치고는 일찍 끝난 거네.”

진석은 시계를 확인하면서 말을 번복했다. 연우는 대답 대신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아저씨한테는 얘기해 봤어?”

역시 지금도 그는 딜레마의 굴레 안에 있던 게 분명했다. 얼굴, 그리고 말투에서 친구 같은 건 만나기는 귀찮지만 어쨌든 이번 일에는 필요할 것 같아서 만나고 있다는 티가 역력하다. 숨길 수도 있을 텐데 그는 자신이 티를 내어도 진석이 기분 나빠하지 않을 거라는 것까지 알았다.

‘정말 한결같단 말이야.’ 진석은 제 생각을 거듭 확신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화분을 땅에 내려놓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버지가 아직 연락 주고받는대. 이번에 한국 올 때 같이 골프 치러 가기로 했으니까 거기 합류하든가 다음 주 수요일에 랑 갤러리에서 하고 있는 전시 간댔으니까 그때 노려서 얼굴 비추든가 하래.”

“내가 미치도록 컨택할 때는 듣는 척도 안 하더니, 한국 와서 골프도 치고, 그림도 보러 다니고…… 살판났네.”

연우는 비꼬듯 중얼거렸다. 못내 약이 오르는 모양이었다. 그 얼굴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진석이 물었다.

“왜 그렇게 잡으려고 해? 유명하긴 하지만 그렇게 메리트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무시하는 게 빡쳐서.”

“같잖은 이유네.”

“그림이 좋아서도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별로 안 유명하잖아. 근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아. 설치까지 잘 해 둬서 기획전 잘하면 갤러리 포트폴리오로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이유야 뻔하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저는 흥미 없다는 듯 연우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살짝 아랫입술을 삐죽였다. 슬슬 피곤해지는지 손목시계의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시간을 확인한다. 이쯤에서 그를 놓아주어도 괜찮았으나 진석은 조금 더 이야기하고 싶었다. 여자친구와의 약속이 1시간이나 남은 상태여서, 지금 놈이 간다면 매우 심심할 터였다.

“떠맡긴 것치고는 열심히 하네.”

“뭘.”

“갤러리.”

“일단은 맡은 거니까. 어차피 시준우 졸업하면 걔가 가져갈 거야. 내 적성엔 안 맞아.”

연우는 눈을 감고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말했다. 영 피곤한 기색이었다. 그 모습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괴로운 상태인지 알 것 같아서, 진석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2년 전 운명한 연우의 모친이 제 큰아들에게 자신의 갤러리를 맡기지만 않았더라면, 연우는 여태껏 갤러리의 문간도 서성이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는 전적으로 경영, 그리고 사람들과의 협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본디 그의 미래는 그의 친조부를 따라 학자의 길로 트여 있었다. 그게 그의 적성에도, 머리에도, 성격에도 맞는 일이었다.

“어쨌든, 뭐, 살다 보니 네가 도움이 될 때가 있기는 하네.”

“뭐래. 내가 언제는 도움 안 된 적이 있었냐? 그리고 형이라고 하랬지. 어린놈의 새끼가.”

“지랄.”

연우는 귓등으로도 안 듣는 뻔뻔한 얼굴로 낮게 웃었다. 재킷 안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가볍게 물었다. 진석을 보며 턱으로 흡연실을 가리킨다.

둘은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내내 3살 차이가 예의를 차려야 할 정도로 큰 나이 차이인지, 아닌지에 대해 말을 주고받았다. 당연히 연우는 아니라는 입장이었고, 진석은 그 반대였다.

비로소 연우가 카페에서 나왔을 때는 세상의 색이 멍든 것처럼 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리 어두워질 시간은 아니었는데 비가 오는 탓이었다. 타이어가 물기를 짓밟고 지나가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고, 빗물을 머금은 콘크리트 위로 일찍이 켜진 도시의 가로등과 간판들의 빛이 어슴푸레하게 비치고 있었다.

날씨 탓인지 안 그래도 혼잡한 도로가 꽉 막혀 있었다. 이럴 때는 서울 토박이인 것이 유용했다. 연우는 머릿속으로 골목 사이사이 빠른 길을 생각하면서 그는 큰 도로로 향하던 차를 돌렸다. 그리고 건물 사이의 좁은 길로 들어섰다. 천천히 차를 모는 중에, 멀리서 유달리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간판이 보였다. ‘도쿄마루’.

도쿄마루.

연우는 홀린 듯 살짝 브레이크를 밟았다. 최근에 어딘가에서 보았던 가게 이름이었다. 스으윽. 젖은 타이어가 느린 속도로 물을 가르며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잠시 후, 애매한 거리로 떨어진 뒷문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동시에 긴가민가하며 간판과 그 주변을 살피던 눈이 또렷해졌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선술집 유니폼을 입은 채로 나온 누군가는 짧은 차광막 밑에 잔뜩 몸을 쪼그리고 앉았다. 앞치마를 뒤적거리더니 담배를 꺼내었다. 틱. 가스라이터가 짧고 작은 불을 튀어 올렸다.

어두운 날씨 때문에 푸르스름한 빛을 그대로 받고 있던 얼굴 위로 주황색 불빛이 아롱거리며 은은하게 피어올랐다. 그는 필터를 입술에 가볍게 문 다음 담배 끝에 불을 붙였다. 바로 옆에 쓰레기통이 있어서 역겨울 만했는데,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것 같은 분위기가 그의 주변을 감돌았다. 도리어 잠시 후, 담뱃재를 툭툭 털어내는 모습이 느긋하다 못해 우아하게까지 보였다.

‘담배를 피웠었네.’

연우는 핸들에 팔을 올려 기대면서 생각했다. 집에 데려다주었던 날 이후, 영 재미있는 애라는 생각이 들어 일부러 자주 얼굴을 마주치고는 했지만 그에게서 담배 냄새를 맡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강서원은 담배를 오랫동안 피워 왔다. 연우는 확신했다. 초연한 표정, 그리고 성의 없이 담배를 엄지로 살짝 건드려 재를 털어내는 모습까지 아주 익숙해 보였다. 그 모습도 물론 독특했는데, 더 시선을 끄는 건 그의 눈이었다. 멍하니 굵은 빗줄기를 바라보는 눈은 줄곧 봐 오던 그것이 아니었다. 지금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처럼 흐리고 생기가 없었다.

“…….”

이윽고 강서원은 천천히 일어섰다. 빤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눈동자도 따라 올라갔다. 강서원은 담배를 재떨이에 지져 끄고는, 앞머리를 천천히 쓸어 올렸다. 잠시 그곳에 서서 비를 바라보던 그는, 곧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서둘러 가게 뒷문 안쪽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연우는 그가 사라진 뒤에야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집까지 운전하는 내내 그는 되풀이했다. ‘강서원!’하고 이름이 불리자 단정한 눈매 아래 있던 먹구름이 휩쓸리듯 사라지던 그 찰나를.

* * *

아버님이 찾아오셨다는 상주 직원의 말에 연우는 귀찮다는 얼굴을 했다. 곧바로 대표실로 그의 부친이 들어왔으나 그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의자에 몸을 더 깊숙이 기대며 “왜 오셨어요?” 했다. 읽던 잡지의 귀퉁이를 깔짝거리는 손가락이 그의 심기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반기지는 못할망정 싫다는 티는 내지 말아야지, 인마.”

“퇴근 늦어질까 그러죠. 요즘 밤마다 꼭 챙겨 보는 드라마가 있거든요.”

그는 제 손목시계를 힐긋 보곤 “딱 두 시간 남았네.” 하고 성의 없이 덧붙였다. 그의 아버지, 시윤태는 혀를 낮게 차면서 가운데에 놓여 있는 소파에 앉았다.

“어디서 웃기지도 않는 핑계를 대. 어어……. 이놈 새끼, 이거 왜 이렇게 푹신해?”

시윤태는 인상을 구기면서 폭신하게 들어가는 소파의 표면을 손으로 꾹꾹 눌렀다. 연우는 이상할 것 없다는 듯 눈 하나 깜짝 않고 말했다.

“손님 접대용이 아니라 내가 낮잠 잘 때 쓰는 거라.”

“자랑이다, 새끼야.”

“왜 오신 건데요. 이 잡지 딱 세 페이지 남았거든요? 이거만 보고 전 퇴근할 겁니다.”

그는 널따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빳빳한 현대미술 잡지를 보란 듯 흔들어 보였다. 그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지겨움이 그득그득 담겨 있었다.

“세계에서 발행되는 온갖 예술잡지 모아서 읽어 봤자야. 예술이랑 공부랑 같냐? 예술 감각은 타고난 거야.”

“……내가 그런 짓 하는 거 누구한테 들었어요?”

“방금 너한테 나 왔다고 말해 준 양반.”

“…….”

연우는 곧장 눈을 가늘게 뜨고 조금 전 상주 직원의 얼굴을 떠올렸다. 기억해 두기 위함이었다. 그의 생각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그의 아버지가 웃었다.

“진작 네놈이 연락이라도 잘하면 내가 이러겠어?”

“뭘 여기서 더. 분기별로 하면 됐지.”

짧게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남은 분량을 해치우듯 잡지를 빠르게 훑던 연우가 곧 탁, 하고 잡지를 닫았다. 그리고 일어섰다.

“나 이제 퇴근할 건데, 아버지는 여기서 주무실 거예요?”

천연덕스럽게 선을 긋는 말을 한다. 퍽 익숙해서 기가 차지도 않았다. 시윤태는 무덤덤한 얼굴로 그를 따라 일어섰다. 그리고 문을 여는 단정한 뒷모습에 대고 “연우야, 술이나 마시자.” 했다.

“드라마 봐야 한다니까요.”

연우는 문에 어깨를 대어 몸을 삐딱하게 기댄 채로 말했다. 심드렁한 목소리에 뻔뻔한 낯이었으나 그게 얼마나 터무니가 없는 소린지 그의 아버지는 알았다.

“이 새끼가 아까부터 무슨 드라마 타령이야. TV도 안 보는 게. ……아, 알았어. 오래 안 붙잡아 둬. 두 시간 뒤…… 그래, 열한 시 전에는 집에 가.”

그는 제 아들이 열어 두고 있는 문을 통과하며 말했다. 연우는 잠시 기대고 있던 몸을 바로 세우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제 아버지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조건을 하나 더 붙였다.

“난 안 마셔요.”

“그래, 마음대로 해, 마음대로.”

* * *

술자리는 매번 그랬듯이 좋았다. 연우의 아버지, 시윤태는 흡족한 얼굴로 조수석에 제 몸을 눕듯이 기대었다. 옆으로 번쩍거리는 한강의 야경이 지나고 있었다.

연우는 질문을 하지 않는 이상 제 이야기를 꺼내는 편이 아니었지만, 대신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었다. 적당히 대꾸해 주면서 또 상대방이 제 이야기의 줄기를 재밌게 뻗어나갈 수 있도록 그에 관한 질문들을 적절하게 던지기도 했다. 시윤태는 제 아들이, 이런 센스 있는 면만은 자신의 아내를 어느 정도 닮아 있다고 느꼈다.

“진짜 보고 가실 거예요? 준호.”

그런데, 이렇게 사람을 싫어하는 건 대체 누굴 닮은 걸까.

그는 진심으로 싫다는 기색을 내비치는 제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선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유전자는 저와 제 아내 둘 중에는 없는 것 같았다. 제 큰아들은 어려서부터 저렇게 잔정이 없었다. 누군가 제게 무언가 요구를 한다면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잘 들어주고는 했으나 그게 정 때문은 아니었다. 표정대로, 정말 ‘귀찮아서’였다.

“봐야지. 준호 그 자식 아직도 사고 많이 치냐? 그 새끼는 못쓰겠어, 아주.”

“왜 못써요. 요즘은 사고 안 쳐요. 학교 잘 다니잖아요.”

건성건성, 마치 누가 시킨 말을 되풀이하는 것처럼 고저 없고 감정 없는 목소리기는 하였으나 일단은 감싸 주는 말이기는 했다.

그 말의 속내가 뻔히 보여서 시윤태는 소리 없이 혀를 찼다.

제 큰아들은 늘 아무런 구속이나 책임 없이 살고 싶어 했다. 모든 일에 관심 없고, 모든 게 재미없어서 누구도 저를 귀찮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제게 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뒷받침하듯 연우는 늘 피곤한 일은 최선을 다해 피했으며 그중 불가피한 일들은 뒷일이 없게 하기 위해 완벽하게 끝내려고 했다.

‘저 골치 아픈 성격은 대체 누굴 닮은 것일까.’ 그가 고민하던 중이었다. 마침내 차가 멈추었다. 대문 앞에 반듯이 주차한 연우가 시간을 확인하면서 차에서 내렸다. 그의 아버지도 그를 따랐다.

“차고에 안 세우고, 왜.”

“아버지 이따가 데려다드려야 할 거 아녜요. 차고 문 열고 닫기 귀찮아요.”

대문을 여는 중에 그의 아버지가 묻자 연우는 곧장 답했다. 아버지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원을 가로지르고 현관문 앞에 섰을 때, 연우는 두 번째로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마침내 “갔겠네.” 하고 중얼거렸다.

“누가 가. 설마 시준호 이 새끼 아직도 집 안 들어오고 방황하고 그러냐?”

“아니, 준호 과외 선생이요.”

발끈하는 목소리와 다르게 대답하는 목소리는 짧고 간단했다. 연우는 현관 옆에 붙어 있는 지문 인식 패드에 손을 갖다 대었다.

그 순간이었다. 돌연 두꺼운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연우는 반사적으로 패드에서 손을 떼며 살짝 뒤로 물러섰다.

“어…….”

“…….”

문을 연 사람. 그러니까, 제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강서원이었다. 그 역시 문 너머에 사람이 서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잠시 놀란 눈으로 연우를 올려다보았다.

“……아, 안녕하세요.”

“…….”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몇 번 깜빡거리자 놀란 빛이 사라졌다. 이윽고 강서원은 평소와 다름없는, 아주 침착한 얼굴을 한 채로 연우에게 인사했다. 목소리 또한 얼굴과 같았다.

하지만 연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칠흑같이 까만 눈은 서원의 눈과 뺨 언저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저, 그럼…….”

서원은 나갈 통로를 아예 막아서고 있는 그에게 비켜 달라는 듯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윽고 천천히 몸이 비켜섰다. 서원은 연우 뒤에 서 있는 남자에게 의무적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멀어졌다.

시연우의 아버지는 그 모습을 아무 생각 없이 쫓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현관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연우는 언제 누군가를 빤히 보고 있었냐는 듯 태연한 얼굴로 신발을 벗고 있었다. 그리고 제 아버지에게 들어오시라고 말했다.

시윤태는 그로부터 1시간 동안 집에 머물렀다. 연우는 제가 했던 말마따나 제 아버지를 집까지 데려다주었고, 새벽 한 시에 귀가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그대로 2층으로 올라갔다. 닫혀 있던 준호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 잠귀가 밝은 준호가 작게 몸을 떨며 눈을 떴다. 2층 복도의 불빛 탓에 눈이 시렸다. 방문 앞에 서 있는 검은 실루엣은 제 형이었다.

“……형? 뭐야…….”

번쩍. 무자비할 정도로 밝은 빛이 커다란 방 안을 메웠다. 준호는 눈을 찌푸리면서 제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형을 올려다보았다.

“자다가 깜짝 놀랐잖아. 왜 그래?”

연우는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 그대로, 그는 입만 열어 말했다.

“일어나서 짐 싸.”

“뭐?”

“너 내일 아침에 하동 갈 거야.”

* * *

연우는 운전을 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운전에 열중하는 얼굴이었으나 그는 머릿속으로 옆에 앉아 있는 준호에게 무엇부터 지적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놈이 아버지에게 망나니처럼 구는 것은 새삼스러울 게 아니라서 평소라면 귀찮아서라도 넘어갔겠지만, 지금은 뭐라 한마디라도 해야 했다.

그건 비단 녀석이 어제, 아버지에게 불손하게 대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조만간 사고를 칠 것 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렇다고 과외 선생의 얼굴에 손을 댈 줄은 몰랐다. 아니, 생채기가 아주 작고 희미했으니 직접적으로 손을 댄 것까지는 아닐 터다. 성질에 못 이겨 던진 무엇인가에 맞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

“…….”

연우는 생채기를 얼굴에 달고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저에게 담담하게 인사를 하던 그 얼굴을 떠올리다가, 이내 생각을 멈추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시준호.”

“…….”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연우는 핸들을 돌리면서 조수석 쪽을 흘긋 바라보았다. 준호는 시위하듯 핸드폰을 꺼내어 액정을 세게 두드리고 있었다. ‘애새끼.’ 그는 생각하면서 재차 입을 열었다.

“대답 안 해?”

“……아, 왜!”

협박하듯 험악해진 목소리에 준호는 기어이 핸드폰을 허벅지에 내려놓고선 짐짓 짜증을 부렸다. 끽. 동시에 차가 갑작스레 멈춰 섰다. 빨간불이었다. 불쾌하다는 눈으로 차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연우는 잠잠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준호를 보았다.

“뭐! 왜! 뭐, 씨발, 내가 뭘……,”

“잘못했냐고? 크게 여섯 가지. 신호 바뀌기 전에 다 말해.”

준호는 반사적으로 시선을 비켜 신호등을 쳐다보았다. 횡단보도 신호는 다섯 칸이 남아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는 도중에 네 칸으로 바뀌었다.

“아,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

짐짓 목소리를 크게 내었으나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연우는 잠자코 준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안 먹히잖아.’

준호가 침을 삼켰다. 웬만해서는 이 정도까지 떼를 쓰면, 기본적으로 모든 일에 열의가 없는 제 형은 금방 포기하고 말았다. 근데 지금은 시선을 떼지 않고 있다. 그는 불현듯 겁이 났다. 제 형에게 맞을까 봐서가 아니었다. 도리어 자신은 여태껏 형에게 맞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차라리 맞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제 형은 자신을 괴롭게 하는 처벌들을 잘 알았다. 예를 들면, 할아버지네에 더 오래 있게 한다든가, 용돈을 끊는다든가, 인터넷을 끊는다든가, 게임 아이디를 삭제해버린다든가…….

지금 대답을 하지 못하면 그 처벌 중 하나를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준호의 머리 한가운데를 스쳤다. 결국 준호는 눈을 꾹 감고 입을 열었다. 제가 잘못한 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아빠한테 인사 대충 한 거. ‘존나’ 쓴 거. ‘병신’ 쓴 거, 그리고…….”

“‘존나’랑 ‘병신’은 ‘욕설 사용’으로 일괄 통합. 네 개 남았어.”

“씹, 그리고,”

“끝.”

어떻게든 이어가려던 말이 별안간 싹둑 잘렸다. 준호의 눈이 번쩍 뜨였다. 동시에 차가 출발했다. 연우는 평온한 얼굴로 운전하면서 말을 덧붙였다.

“내일 저녁까지 있다 와.”

“아, 형!”

“입 다물어. 토 달지 마.”

연우는 나지막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리 녀석이 졸라도 받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지금 향하고 있는 조부모의 집은 깊은 산 속에 자리해 있었다. 오락거리라고는 온갖 전문서적들이 빼곡히 들어찬 커다란 서재뿐인 그 큰 저택은, 마치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감옥 같기도 했다. 더하여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여도 대학교 총장이었던 조부는 아직도 대단하고 허영심이 가득한 교육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조부에게 열등생인 준호는 커다란 자극제였다.

그러니까 준호가 그곳에 머문다는 것은, 연우에게는 귀찮게 무게를 잡지 않고도 녀석을 반성시킬 수 있는 고효율의 처벌 방법임과 동시에 준호에게는 그야말로 죽도록 싫은 일이었다.

내일까지 연장이라니. 내일은 토요일인데! 주말까지 하동에 갇혀 있으라는 말인가. 내가 왜! 준호는 억울한 표정으로 제 형의 얼굴을 바라보았으나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마침내 그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불만스레 꿍얼거렸다.

“왜 나만 가지고 그러냐고. 나는 아빠 앞에서 무슨 말도 못 해? 아빠랑 엄마랑 셋이 살 때는 맨날 이래도 상관없었는데 왜 형이 이제 와서 뭐라뭐라 하냐고!”

“내가 참견하는 게 싫으면 아빠랑 살아. 나도 혼자 살고 싶으니까.”

“씨발, 누가 같이 살아 달랬어? 같이 살아 달랬냐고!”

할 말이 없어졌는지 준호는 기어이 바나나를 뺏긴 꼬마 원숭이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차 시트를 퍽퍽 내리쳤다. 시도 때도 없이 분노 조절을 못 하는 건 대체 어디서 배워처먹은 건지 알 도리가 없다. 연우는 준호가 집 안의 돌연변이 같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원숭이의 유전자만 저 녀석에게 섞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저 지경으로 무식한 새끼는 먼 친척까지 찾아봐도 없는데.

끼익. 다시 한번 차가 섰다. 이번에는 신호 때문이 아니었다. 갓길에 차를 세운 연우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내려.”

“뭐? 씨발, 그럼 어떻게 가라고!”

“시외버스 타고 가.”

어디로 샐 생각 따위는 하지도 못했다. 준호는 제 휴대폰 안에 설치된 위치추적 앱을 알고 있었다. 돈도 물론 카드밖에 쓰지 못한다. 허투루 쓰다간 금방 사용 정지가 되고 말 터였다.

답답하다. 짜증 난다. 억울하다. 준호는 제 감정에 충실하며 씩씩거렸다. 동그란 눈을 모로 뜨고 제 형을 노려본다.

“……나만 맨날 이런 취급이고, 씨발. 형한테 나는 그냥 별 쓸모도 없는 짐짝이지?”

“한 번 더 대들면 카드도 뺏어.”

슬슬 짜증이 난다는 듯 연우가 살짝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준호는 거칠게 문을 닫으며 차에서 내렸다. 차는 곧바로 출발했다.

* * *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연우는 눈을 떴다. 자못 깊이 잠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낮잠을 자던 중이었다고 자각한 건, 일어나고 조금 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는 눈을 껌뻑거리다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며 기지개를 켰다. 통유리 너머를 멀거니 바라본다.

정원이 훤히 보이는 마당은 흐렸다. 자신이 자는 사이에 비라도 내렸는지 정원의 풀과 나무들이 흠뻑 젖어 있었다. 초여름부터 비가 날마다 오다 말다 말썽이라고 생각하다가, 그는 곧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를 깨달았다.

초인종 소리.

“…….”

금요일에 준호를 시골에 내려보냈고 지금은 토요일 낮이었다. 일정을 헤아려 보아도 오늘 제집에 찾아올 사람은 없었다. 그는 자신이 너무 정신이 없어서 환청을 들었던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천천히 일어났다.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넓은 마당은 잘 관리된 나무들과 풀들이 빗물을 머금어 촉촉한 빛을 내고 있었다. 연우는 푸른 정원을 가로지르는 자갈길을 느긋하게 걸었다. 자갈이 밟히는 소리와 정원수의 잎사귀 끝에서 빗방울이 똑, 똑,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는 커다란 대문 앞에 섰다. 그리고 일상적인 얼굴로 문을 열었다. 초인종 소리는 환청이 아니었는지 문밖에 서 있던 사람이 주춤 뒤로 물러났다.

문이 활짝 열렸을 때, 그는 반사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서원 씨?”

그가 인상을 찌푸린 이유는 누군가의 등장이 놀라워서가 아니었다.

“……아.”

“여기서 뭐 해요?”

강서원은 비를 맞은 듯 홀딱 젖어 있었다.

여름이 찾아오는 시기라 할지라도, 비가 오면 아직은 많이 추웠다. 얼마나 서 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도는 입술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고, 눈 바로 위까지 흘러내리는 젖은 앞머리를 연신 뒤로 넘기는 희고 가는 손가락은 벌겋게 언 상태였다.

“오늘… 과외 하는 날이라서요.”

제가 더 얼떨떨하다는 듯한, 의아함을 담은 작은 목소리가 입술 사이로 흘렀다. 서원은 그렇게 말한 뒤에 속눈썹 탓에 빗물이 스며든 제 눈을 살짝 비볐다. 그리고 다시 연우를 올려다보았다.

연우는 대답 대신 곧장 손을 들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2시 24분. 2시에 과외가 시작하니 적어도 20분 이상은 이 앞에 서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는 다시 강서원을 바라보았다. 강서원은 계속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던 듯했다.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평온한 얼굴을 하고선 저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게, 어쩐지 사람 속을 긁어 놓는다.

“전화는요?”

“안 받으셔서…….”

그는 주머니를 뒤져 제 핸드폰을 확인했다. 핸드폰은 무음 모드로 설정되어 있었고 부재중 전화가 3통이 와 있었다. 연우는 얇은 카디건 주머니에 핸드폰을 대충 쑤셔 넣으면서 더 확연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시준호가 말 안 했어요? 오늘 할아버지 집 간다고.”

“네.”

“초인종은 몇 번 눌렀는데요.”

“다섯 번 정도…….”

서원은 성실하게 대답하다가 끝내 잘게 몸을 떨었다. 시연우는 시선만 옮겨 강서원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았다. 체크 셔츠와 그 안에 받쳐 입은 흰색 티셔츠까지 젖어 있었다. 몸이 마른 탓인지 더 추워 보이고, 궁상맞아 보였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살이 시릴 것만 같았다. 딱 비 맞은 생쥐 꼴이다.

‘보란 듯이 저러는 건지, 뭔지.’ 연우의 사고회로는 거기까지 도달했다. 딱딱하게 굳은 입이 거침없이 열렸다.

“그래도 그냥 가는 게 나았을 텐데.”

“……네?”

못내 서늘한 투에 조금 놀란 듯한 얼굴이 저를 올려본다. 연우는 수습하려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강서원은 지금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행동을 한 것이었다. 그를 마음에 들어 했던 건 똑똑해 보여서였다.

연우는 대문에 손을 얹어 기대고 상체를 서원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였다.

“초인종 눌러도 답 없고, 나도 전화 안 받고 시준호도 전화 안 받으면 그냥 가는 게 나았겠다고요. 비 오는데 앞에 미련하게 버티고 있는다고 누가 칭찬해 주는 건 아니잖아.”

“…….”

“솔직히, 민폐만 되죠. 젖은 꼴로 어떻게 수업하려고. 안 그래요?”

사납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살갑지도 않은, 그 경계선에 선 목소리가 위태롭게 이어졌다. 그동안 물을 머금은 속눈썹은 조용히 깜빡거리기만 했다. 그래도 상대방의 기분을 파악할 줄은 아는지 퍽 놀란 눈치였다.

연우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얼굴이 붉어졌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그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불쑥 손을 뻗어 서원의 팔을 쥐었다. 놀란 서원이 등을 흠칫 떨었다. 연우가 그를 대문 앞으로 끌어당겼다.

“씻고 가요.”

“아, 괜찮습니다. 준호 없으면…….”

연우는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서늘한 팔을 붙든 뜨거운 손이 더 강하게 조여 왔다. “이대로 보내면 내가 불편하니까, 그냥 씻고 가요.” 재차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흘렀다. 다시금 저를 끌어당기는 힘에, 서원은 무어라 항변하려던 입을 다물고 잠자코 그를 따랐다.

* * *

욕실에서 물줄기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연우는 그동안 무표정한 얼굴로 차를 우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머그컵을 거실 테이블 위에 놓고, 소파에 등을 기대어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감고 있는 눈을 떼지 않고 거실로 나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욕실 잘 썼습니다.”

발걸음 소리가 제 앞에서 머무른 건 오래전인데, 말소리는 한참 후에야 흘렀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목소리였다. 연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저와 어설프게 떨어진 곳에 엉거주춤 서 있는 서원을 보았다.

강서원은 저와 키가 비슷한 시준호의 옷을 입고 있었다. 레터링 자수가 박힌 흰색 후드 티셔츠에 낙낙한 핏의 베이지색 면바지. 시준호가 한 번도 안 입었음직한, 최대한 새것 같은 옷들을 골라 준 탓인지 상하의 매치가 묘했다.

풍기는 분위기도 조금 묘했다. 항상 목 끝까지 잠근 남방이나 목을 단단히 두른 라운드넥 티셔츠를 입은 모습만 보다가, 후줄근한 후드에 헐렁한 바지, 더해서 덜 마른 머리를 하고 서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굉장히 허술해 보인다고 연우는 생각했다. 동시에 창백한 발목까지 내려가던 눈이 위로 올랐다. 눈이 마주쳤다.

“앉아서 차 마셔요.”

“아, 혹시 아무 봉투나 빌릴 수 있을까요? 욕실에 옷을 벗어 둬서, 가져가려고…….”

“세탁해서 다음에 줄게요. 앉아요, 일단.”

어투에서 은근한 완고함을 느꼈는지 서원은 입을 달싹거리다가 마지못해 “…네. 감사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리 대답해 놓고도 그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야 할지, 카펫이 깔린 바닥에 앉아야 할지 고민하는 얼굴을 했다. 연우는 공연히 어디에 앉으라고 말하지 않고 서원을 관찰했다. 한참 뒤에 서원이 선택한 곳은 카펫이었다.

“…….”

“…….”

어색한 침묵이 거실 안에 감돌았다. 서원은 천천히 앉아 의무적으로 차를 마셨다. 티셔츠의 목 부분이 그의 몸에 비해 넓은 탓인지 가느다란 목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 부근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연우가 문득 입을 열었다.

“준호, 벌 받으러 갔어요. 할아버지 집으로.”

“……벌이요?”

서원은 차를 삼키곤 말했다. 차분한 다갈색 빛의 눈이 동그랗게 뜨고 저를 돌아본다. 금방 씻은 탓인지 수분을 담뿍 머금은 흰 피부가 통유리 창으로 들어오는 어스름한 햇빛을 받아 투명하게 반짝거렸다. 연우는 불그스름하게 물든 오른뺨 부근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할아버지 집 가는 걸 되게 싫어하거든요. 할아버지께서 워낙 엄하셔서. 준호를 유독 괴롭히시기도 하고.”

“아… 네.”

“화낸 건 미안해요. 그렇게 화낼 건 아니었는데.”

“……아닙니다.”

말꼬리를 흐리며 거듭 차를 홀짝 들이켠다. 차 맛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잠시 뒤에, 망설이는 얼굴을 하던 서원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기다리면서 비 맞은 게 아니라…….”

“…….”

축축한 입술이 바쁘게 움직이면서 조곤조곤 말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연우가 대놓고 화를 낸 것이 퍽 기를 죽인 것인지, 말투는 경직되었고 조심스러웠다.

연우는 연기를 못하는 배우의 어색한 대사처럼 흐르는 그 말들을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서원의 얼굴을 바라보는 탁한 시선은, 어딘가에 홀린 것처럼 흔들림이 없어서 도리어 그의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는데 비가 갑자기 왔습니다. 변명은 아니고… 아시다시피 주택가라 어디 들어가 비 피할 곳도 없어서, 뛰었는데도 맞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

“그리고, 와서도 마냥 기다리려고 한 게 아니었고. …삼십 분만 기다렸다가 가자고 생각했습니다.”

“…….”

“그러던 중에 오신 거라… 저도 미련하게 계속 기다릴 생각은 없었고요. …젖은 채로 수업할 생각도 없었고, 일단 오긴 왔으니까, 집이 멀어서…….”

“…….”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서원은 눈치를 볼 요량으로 반들반들한 도자기 표면을 내려다보던 시선을 서서히 들어 올렸다. 곧바로 가만히 저를 주시하는 눈과 시선을 마주했다. 연우의 잠잠한 반응을 어떻게 생각한 것인지, 그는 금방 입을 다물었다. 눈이 슬쩍 내리깔렸다.

“그래도, 민폐라고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

“…….”

수습하듯 반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침묵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꼭 숨통을 조이는 듯하다. ‘이미 많이 화나신 건가.’ 침묵을 고스란히 견뎌내던 서원이 마침내 속으로 짐작했을 때였다.

“여기.”

돌연 기다랗고 곧은 손가락이 다가와 서원의 눈 밑을 툭 건드렸다. 깜짝 놀란 서원이 목 뒤를 굳히며 눈을 깜빡거렸다. 그의 표정과는 달리 남자는 대수로울 것 없다는 얼굴이었다. 연우는 살짝 숙이고 있던 허리를 다시 펴 소파에 기댔다.

“생채기 났네요?”

“아….”

서원은 어색하게 반응했다. 손을 들어 더듬더듬 남자가 건드렸던 부위를 더듬는다.

목요일 날, 유독 기분이 안 좋았던 준호가 기어이 성질을 부리며 클리어 파일을 던졌을 때 생긴 상처였다. 파일의 모서리 부분에 정면으로 맞은 것이었지만 녀석도 의도는 아니었던 듯 당황해했던 데다가 저로서도 들춰 봤자 좋을 게 없었다. 괜한 잡음이 될 뿐이었다.

“……네. 그냥 어디 좀, 부딪혔습니다. 운동하다가…….”

그래서 서원은 손을 다시 내리면서 짐짓 모르는 척 말했다. 그 직후, 돌연 낮은 목소리가 “혹시, 담배 피워요?” 하고 물어왔다. 또다시 다른 곳으로 주제가 튄 것이었다. 서원이 번쩍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면서 “아니요.” 하고 답했다. 순간 시커먼 눈 위로 묘한 빛이 스쳤으나 서원은 알아채지 못했다.

“나 피워도 돼요?”

“네. 괜찮습니다.”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약간 급해 보이는 손짓이었다.

“…….”

“…….”

장초 끝에 불이 붙고, 이후 그는 두 번이나 연기를 뱉어냈다. 깊고 길게 연기를 내뱉는 소리만 조용한 거실을 맴돌았다. 서원은 애꿎은 머그컵을 만지작거리면서 ‘차도 다 마셨는데, 이제 가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더하여 묘하게 짓눌러 오는 공기가 불편해서 어서 이 공간 안을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

아까부터 남자는 좀 이상했다. 대화의 흐름도 그랬지만, 가장 이상한 건 시선이었다. 서원은 왜 남자가 자신을 이렇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것인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뭘 캐내는 것처럼 저를 빤히 보는 시선이 온몸의 근육을 잔뜩 굳게 만들었다. 눈빛에 촉감이 있는 것도 아닌데 뺨이 간지러워서 미칠 노릇이었다. 눈을 일부러 피하고 있기도 이상했고, 그렇다고 마주치고 있기도 어색해서 제 시선은 계속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세 번째로 연기를 뱉어내던 남자가 휴대용 재떨이에 툭툭 재를 털어 놓더니 상체를 기울여 재떨이를 거실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갑자기 드리워진 그림자에 서원은 흠칫 얼굴을 뒤로 내뺐다.

‘왜 이러지.’

기분이 이상했다. 허리를 숙여 얼굴이 가까워진 그 순간에도, 남자의 눈동자는 제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채기를 보고 있다고 해도 그렇게 진득하게 볼 이유는 없었다. 애초에 눈에 띌 정도의 상처도 아니었다.

급기야 서원은 번쩍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섰다. 남자는 담배를 검지와 중지에 낀 채로 서원의 얼굴을 따라 눈을 굴렸다. 어찌나 눈 색이 짙은지 그 밑에 도사리고 있는 감정들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길고 유려한 선의 입술 사이로 흰 연기가 새어 나왔다.

“가게요?”

남자의 목소리는 눈빛과 정반대로 담백하고 가벼웠다. 서원은 공연히 정확한 발성으로 “네.” 했다.

“차 잘 마셨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서원은 급히 집을 나섰다. 분명 뒤를 돌아 나갔으니 남자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는데도, 남자는 저의 뒷모습을 빤히 보고 있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게 아닌데도 그랬다. 촉감. 정말 남자의 시선에는 촉감이라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마저 드는 순간이었다.

* * *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저번 주 토요일에 비를 맞고 오랜 시간 서 있던 탓이었다. 서원은 3시에 있는 교양 수업을 빼먹기로 결정하면서 집을 나섰다. 오전부터 아르바이트가 있었다.

‘경찬이라도 있으면 대타라도 부탁할 텐데.’ 서원은 가게로 향하면서 생각했다. 작년에 입대한 경찬은 또래들보다 늦게 입대한 것에 대해 꽤나 우울해하며 훈련소에 입소했다. 그러나 자대 배치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자신이 군대 체질인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그런 내용의 통화를 한 지도 2개월 전이었다. 서원은 경찬 외의 친한 친구가 거의 없었으므로 경찬에게 전화가 오지 않으면 핸드폰은 거의 울릴 일이 없었다. 더하여 경찬이 군대 생활을 하는 요 몇 달은 더 그랬다. 녀석의 빈자리를 늘 상기하는 건 아니었지만 가끔씩 생각이 나기는 했다. 특히 이럴 때는 더욱.

“안녕하세요.”

서원은 가게 문을 열면서 카운터에 앉아 있는 사장에게 인사했다. 서원보다 열댓 살은 많은 가게 사장은 젊게 살자는 인생의 좌우명 탓인지 나이보다는 퍽 어려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는 서원을 향해 대충 손을 흔들면서 “일찍 왔네?” 했다. 그 말에 서원이 시간을 확인했다. 9시 32분.

“그러네요.”

“너 열나? 볼이 벌겋다.”

카운터 옆에 걸린, 직원 전용 앞치마를 허리에 두르는 서원에게 사장이 다가왔다. 갓 데운 빵처럼 뜨끈뜨끈해진 뺨을 걱정스레 내려다본다. 서원은 “아, 감기 기운이 있어서요.” 하며 제 뺨에 손등을 대 보았다.

“오늘은 쉬엄쉬엄해.”

“네.”

서원이 그렇게 말했으나 오늘은 결코 쉬엄쉬엄할 수 없는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오늘은 10시부터 2시까지 일을 하는 날이었는데, 점심시간은 늘 식사 손님들로 바쁘기 때문이었다.

“아, 맞다. 오늘 세영이 안 나와.”

점심시간 직전에 가게 탁자를 닦던 중이었다. 카운터에 앉아 다리를 흔들거리며 핸드폰 게임을 하던 사장이 별안간 생각났다는 듯 서원에게 말했다. 세영은 서원과 같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아르바이트 생이었다. 서원이 행주질을 하다 말고 의문이 담긴 눈으로 사장을 바라보았다.

“취직했대. 나도 어제 통보받았어.”

“그럼 오늘 저 혼자 하는 거예요?”

사실 사장님이야 알바생이 갑자기 안 온다고 하면 괘씸한 것뿐이겠지만 저로서는 일손이 하나라도 모자라면 바로 피해가 왔다. 평소보다 배로 힘들어지는 것이었다. ‘오늘 큰일 났네.’ 서원은 생각하면서도 먹히지도 않을 불평 대신 그리 물었다.

“새로운 알바생 바로 구했으니까 다음 주에는 괜찮을 거야. 오늘은 형이 서빙 도와줄 틈 있으면 도와줄게.”

사장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으나, 분명 주방 일로도 바쁠 것이었다. 틈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역시나 서원은, 이번에도 불평 대신 “…네.” 하고 잠자코 대답했다. 행주가 테이블 위를 빠르게 밀고 나갔다.

* * *

서원의 예상대로 점심시간은 지옥 그 자체였다. 한 사람의 빈자리는 꽤나 컸다. 드문드문 감기 기운이 확 올라 휘청거릴 때도 있었으나 서원은 바로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열두 시부터 한 시. 그 짧은 시간이 영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가게 안이 텅 비었다. 서원은 가게의 가장자리에 길게 늘어선 소파에 몸을 기대고 벅차 오는 숨을 내쉬었다.

사장이 주방에서 나왔다. 지글거리는 프라이팬을 든 채였다. 그는 서원이 앉은 테이블 위에 프라이팬을 올려놓았다. 넓은 프라이팬 가득 콘 치즈가 담겨 있었다. 서원이 저를 쳐다보자 사장이 씩 웃었다.

“수고했다고.”

서원은 가게의 사이드 메뉴인 콘 치즈를 유독 좋아했다. 치즈값이 비싼 탓에 마음껏 해주지는 못하지만 종종 이렇게 일이 힘들거나 하는 날이면 사장은 회유하듯 그에게 이렇게 콘 치즈를 대령하고는 했다.

“먹고, 오늘은 일찍 가. 너 아주 파김치가 됐다, 야.”

“네. 감사합니다.”

속내가 다 보이는 친절이었으나 사양할 이유는 없었다. 서원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숟가락을 들었다.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서원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장이 서원에게 앉아 있으라는 손짓을 하면서 일어섰다.

“어서 오세…… 어? 사장님.”

“안녕하세요, 사장님. 장사 잘되세요?”

“아, 네, 어쩐 일이세요? 갑자기.”

가게에 들어온 두 명의 남자 중 한 명이 사장에게 인사했다. 사장이 그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서원은 놀란 눈으로 가게에 들어온 남자를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사장과 웃으면서 인사하고 있는 남자가 아닌 그의 뒤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뒤에 서 있는 남자는 시연우였다.

처음 보는 남자와 사장님은 서로 악수를 하며 웃었다. 서원은 그 남자가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는 걸 눈치채고 슬그머니 일어섰다. 가게 한가운데서 인사하는 사람들을 두고 저 혼자 우걱우걱 콘 치즈를 퍼먹는 광경도 웃길 터였다.

사장과 인사하던 남자가 한 발 뒤로 물러서면서 연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소개해 주려는 듯한 몸짓이었다.

“얘는 저 아는 동생, 아니, 동창이에요. 얘가 고등학교를 빨리 들어와서.”

“시연우라고 합니다. 여기 자주 왔었죠? 점심 먹으러. 새삼 인사드리네요.”

연우는 웃는 낯으로 사장에게 악수를 청했다. 사장이 “…아, 네, 기억합니다. 그렇죠. 네. 안녕하세요.” 하며 손을 맞잡았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아주 작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선술집이라 하여도 자주 오는 손님은 낯이 익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단언컨대, 이 사람은 제 가게에 한 번도 온 적이 없다. 심지어 이 얼굴은 한 번 봤다고 하여도 잊기 힘든 수준의 외모였다. 제가 이 남자를 손님으로 보았으면 절대 잊을 리 없었다.

‘근데 왜 자주 왔다고 말하는 거지? 예의상인가? 더 기분 나쁜데.’

사장이 그렇게 생각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연우는 여전히 살가운 얼굴로 일관했다. 문득 가게에 들어온 이래로 한 번도 돌린 적이 없던 고개를 돌린다. 두 눈이 정확히 서원이 엉거주춤 서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대로 눈이 마주쳤다. 연우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와. 이런 우연이. 여기서 일하네요? 서원 씨.”

전혀 놀라지 않은 표정이었다. 애초에 그는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는 식인 듯하였다. 서원은 감기 기운 탓인지, 아니면 저번 주 토요일에 시선만으로 기어이 저를 도망치게 만들었던 저 남자가 여기에 나타난 게 너무 갑작스러운 탓인지, 잠시 이 상황이 몽롱하게 느껴졌다.

잠시 멍하게 연우를 보던 서원은 곧이어 머리를 살짝 흔들었다. 이래저래 혼란스러운 머리를 뒤로하고, 일단 상황에 충실하기로 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네. 여기서 일합니다.”

서원이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며 말했다. 서원과 연우의 대화에 사장이 놀란 얼굴을 했다. 그리고는 세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공공연하게 설명을 부탁하는 행동이었다.

“서원 씨가 제 동생 과외 해주시거든요. 여기서 일하시나 봐요. 이런 우연도 다 있네요.”

“아, 아. 그러시구나. 서원이가… 그렇군요.”

연우는 천연한 얼굴로 설명했다. 사장이 고개를 과장되게 끄덕였다. 침묵이 일어나기 전에 연우의 옆에 서 있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연우가 오랜만에 여기 점심 메뉴가 먹고 싶다고 해서요. 근데 좀 더 일찍 올 걸 그랬나 봐요. 이제 쉬시는 것 같은데. 일하시는 분도 식사하시려는 것 같고…….”

“아, 아니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메뉴판 갖다 드릴 테니 일단 앉아 계세요. 어디…….”

사장이 적당한 자리를 찾으려는 듯 부산스럽게 몸을 돌렸다. 가게 안 어디든 테이블끼리는 시선이 닿는 구조였다. ‘이 사람들을 아무 데나 앉히고 서원이를 주방에서 먹게 해야 하나. 서원이가 여기서 혼자 콘 치즈 먹기 민망할 텐데.’ 그가 생각했을 때였다. 타이밍 좋게도 연우가 말을 꺼냈다.

“서원 씨와 같이 먹을까요? 애매한 곳에 떨어져서 밥 먹으면 민망하잖아요. ……괜찮아요, 서원 씨?”

자연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접혔다. 뻔뻔한 태도는 강을 흘려보내는 것처럼 태연하고 또 자연스럽게 상황을 유도했다. 사장이 등을 돌려 서원을 바라보았다. 서원 또한 머리를 긁적이며 강물에 휩쓸리듯 “아, 네……. 괜찮습니다.” 했다. 애초에 저에게는 선택권이 주어진 적이 없었다.

두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서원이 있던 테이블에 다가가 앉았다. 사장은 그 둘에게 메뉴판을 갖다 주고 주방으로 향했다. 서원은 눈치 좋게 사장을 따라 주방에 들어왔다. 그리고 물병에 넣을 차 티백을 뜯었다. 사장이 주방 테이블에 몸을 기대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누구예요?”

“저 사람? 이 건물 건물주.”

“아…….”

“젊은 사람이 돈은 열라게 많아. 옆 건물도 저 사람 거일걸.”

“돈 많아 보이긴 해요.”

“왜 왔지?”

서원은 티백 껍데기를 파란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저는 처음 봬요.”

“너 근무 시간 아닐 때 오긴 했어. 가끔 오긴 와. 근데 친구를 데리고 온 건 처음이네. 밥 먹는다는 것도 그렇고.”

둘은 속닥거리며 대화했다.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라 생각되는지, 사장은 고민하는 얼굴을 했다. 서원은 짐짓 별것 아니라는 말투로 “그냥 오셨겠죠.” 했다. 퐁당. 말린 둥굴레 조각이 담긴 티백이 물병 안에 잠겼다.

홀에서 사장님,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장은 다시 나갔다. 서원은 사장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밥이 남아 있는지 확인했다.

* * *

남자가 가게에 찾아온 건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서원은 짐작했다. 그는 자칭 ‘단골’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가게에서 가장 인기 없고 특색 없는 메뉴를 선택했고, ‘먹고 싶어서 왔다’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성의 없는 얼굴로 사케동을 뒤적거리기만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는 애당초 속일 생각이 없는 듯한 태도를 일관하고 있었다.

허나 그 짐작은 확신으로 이어 갈 수가 없었다. 그가 대체 여기까지 왜 왔는지, 목적을 알 수가 없는 까닭이었다. 그래서 더 신경이 쓰였다.

‘대체 왜 왔지.’ 서원이 고요한 얼굴 아래로 수차례 생각하던 중이었다. 돌연 남자가 턱을 괸 채 프라이팬을 향해 젓가락을 까딱거리며 물었다.

“서원 씨는 왜 그것만 먹어요? 되게 물릴 것 같은데.”

“……아,”

“서원이가 콘 치즈 귀신이에요. 귀신.”

서원이 콘 치즈를 씹다가 입을 가리고 힘들게 대답하려고 하자 서원의 옆에 앉아 있는 사장이 넉살 좋은 얼굴로 대신 답했다. 연우는 서원을 바라보던 눈을 옮겨 사장을 바라보았다.

“그래요?”

좀 전보다는 은은하게 고저가 사라진 목소리였다. 사장은 어색한 테이블이 영 못마땅했었는지 이야깃거리를 잡았다는 희열에 휩싸여 시키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번에 왜 그렇게 좋아하냐고 물어보니까, 서원아. 너 어릴 때……. 그거. 엄청 귀여운 일화 있잖아.”

사장이 서원을 툭툭 치며 부연을 권했으나 서원은 맞장구 대신 콘 치즈만 퍼먹으며 예의상 웃는 얼굴을 했다. 사장은 다시 건너편의 남자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서원이가 고등학생 때 가족들이랑 횟집을 갔는데, 스끼다시로 나오는 콘 치즈 있잖아요. 거기는 작게 해서 한 사람당 하나씩 줬대요. 서원이는 아껴 먹고 싶어서 다른 것들 다 먹고 먹으려고 참고 있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서원이 동생이 ‘형 안 먹어?’ 이러면서 말릴 겨를도 없이 퍼먹어버렸다는 거예요. 근데 서원이가 그거 때문에 갑자기 서러워져서 화장실 가서 울었다 했나.”

하하하. 진짜 웃기죠. 엉뚱한 면이 있어요, 얘가.

사장은 그렇게 마무리하면서 웃었다. 사실이었고, 언젠가 사장에게 해주었던 기억이 있기는 했지만 흥미로 말했다기보다는 제가 콘 치즈를 유독 좋아하는 이유를 말하기 위해 꺼냈던 이야기일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들려줄 만큼 재밌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 증거로 저를 박진석이라 소개했던 건물주는 기계적으로 웃고 있었고, 제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아예 듣는 시늉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남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난 건 대충 그런 식의 이야기가 두어 번 흘러갔을 때였다. 시간을 확인한 시연우가 돌연 “가봐야겠네요. 잘 먹었습니다.” 하며 자리에서 일어선 것이었다. 서원은 일어난 남자를 보면서 ‘정말 이게 끝인가?’ 하고 의아해했고, 사장은 기다렸다는 듯 덩달아 일어서면서 활짝 웃었다.

“다음에 또 오세요. 연락 주고 오시면 좋은 거 대접할게요.”

남자들과 사장이 카운터에서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이 테이블을 벗어나니 그나마 불안함이 가시는 듯했다. ‘진짜 그냥 왔나 보다.’ 서원은 생각하면서 뒤늦게 일어났다. 그리고 테이블에 홀로 남아 식기들을 치웠다. 남자의 사케동은 뒤섞이기만 했을 뿐 그대로였다.

딸랑. 사장과 건물주의 목소리가 멀어지면서 가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서원은 식기들을 쟁반에 옮기면서 사장이 밖까지 마중을 나갔나 보다고 생각했다. 가게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서원이 묵직해진 쟁반을 들고 주방으로 향할 때였다.

“언제 끝나요?”

불현듯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의 목소리였다. 서원이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제 예상대로 건물주와 사장은 가게 밖에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남자는 나가지 않은 듯했다. 그는 카운터에 살짝 몸을 기대고 서서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내가 테이블을 치우고 있던 걸 보고 있었나.’ 서원은 생각하다가 뒤늦게 “저요?” 하고 되물었다. 남자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만 주방에 갖다 놓고 가라 하셨습니다.”

남자가 한 발자국 서원에게 다가갔다.

“몸이 안 좋아 보이는데.”

기분 탓인지, 사람들과 있을 때보다 목소리가 좀 더 나긋했다. 서원은 공연히 큼, 목을 가다듬고는 대답했다.

“아, 네. 감기 기운이 있어서요.”

“치우고 와요. 집까지 데려다줄게요.”

서원이 무어라 되물을 새도 없이 남자는 곧바로 등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딸랑. 문이 닫히는 소리가 또 한 번 들렸다. 서원은 조금 커진 눈으로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잠시 후 주방으로 들어갔다.

* * *

서원은 퇴근을 한 뒤 빌딩 앞에 정차된 남자의 차에 올라탔다. 태연한 얼굴과 달리 안전벨트를 매는 손동작은 딱딱했다.

긴장이 되었다. 오늘 가게에 찾아온 남자의 의도를 조금 알 것 같아서였다. 그가 구태여 저를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한 것은, 분명 제게 할 말이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할 말’은 별로 좋은 방향이 아닐 거라고 서원은 확신하고 있었다. 여태까지의 행적만 돌이켜 봐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준호의 가방을 뒤진 전적에 모자라 비 맞고 서 있었다고 남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것이 바로 그저께의 일이었다.

잘릴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그저께의 일만 생각하면 가혹한 결정이었으나, 과외 초 준호의 가방을 뒤졌다가 걸린 일은 이제 와서 잘려도 할 말이 없는 정도이기는 했다.

“…….”

그래도, 그때는 괜찮아 보였는데. 잘했다고 웃는 얼굴에 칭찬을 받기까지 했는데, 이제 와서 잘리는 건 이상하지 않나. 그저께 일로 갑자기 내가 석연찮아진 건가.

침묵이 길어질수록 자동차 엔진 소리 위로 별의별 생각들과 추측만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었다. 서원의 손가락이 머릿속처럼 바쁘게 움직였다. ‘아르바이트를, 또 어떻게 구하지.’ 기어이 생각 사이를 돌아다니던 불안감이 거기까지 흘러갔을 찰나였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별안간 남자가 입을 열었다. 여전히 정면을 바라본 채였다. 놀란 서원이 “네?” 하고 묻자 그는 핸들을 부드럽게 돌리면서 대꾸했다.

“자꾸 쳐다보길래.”

속셈을 파악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저도 모르게 그의 옆모습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제야 서원은 황급히 정면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아, 죄송합니다.” 했다.

“…….”

“…….”

그리고 또다시 정적이었다. 남자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잠시 후 차가 서울을 빠져나가고, 또 한참 후 서원의 동네까지 다다랐을 때까지도 그랬다. 서원은 얼굴을 정면으로 둔 채로 이따금 흘긋 운전석을 바라보면서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운전에 집중한 옆모습은 내내 딱히 어떤 말을 꺼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마침내 차가 서원의 집 앞에 설 때까지 여전히 남자는 조용했다. ‘진짜 이대로 가면 되는 건가.’ 서원은 의심하듯 생각하면서 삐거덕, 상체를 바로 세웠다. 그리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잠깐만요.”

살짝 고개를 숙여 말하는 사이 엔진이 꺼졌다. 남자는 기어를 바꾸던 손을 이윽고 뒷좌석 쪽으로 뻗었다. 동시에 틱, 안전벨트를 풀던 서원의 손이 멈추었다.

남자가 서원에게 내민 것은 종이 쇼핑백이었다. 서원이 조금 의아한 얼굴로 쇼핑백을 바라보았다. 그가 받으라는 듯 쇼핑백을 살짝 흔들었다. 서원은 조심스레 쇼핑백을 받아 들었다. 입구를 조심스레 벌리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쇼핑백 안에는 정갈하게 접힌 제 옷들과 작은 사이즈의 휴대용 우산이 있었다.

“…….”

“서원 씨 옷이에요. 세탁해서 주기로 했잖아요.”

설명하는 남자의 목소리는 친절하다 못해 다정했다.

서원은 얼뜬 얼굴로 내용물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우산을 꺼내 들면서 “이거는…….” 하고 말을 흐렸다. 투명한 비닐에 싸여 있었고, 손잡이에는 브랜드 태그가 달려 있었으나 아무래도 잘못 넣어 뒀을 확률을 무시할 수 없어서 물어보려던 것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서원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단 듯 곧바로 “서원 씨 주는 거예요.” 하고 대답했다. 서원이 눈을 들어 남자를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하자 남자가 멋쩍은 양 웃었다. 그러면서 입을 열었다.

“…나, 서원 씨가 준호 때문에 얼굴에 상처 난 거 알고 있었어요. 그저께에도 그것 때문에 좀 심기가 뒤틀려 있었나 봐요. 준호가 사고 치면 예민해지거든요, 내가 잘못한 것 같아서. 그래서 서원 씨한테도 성급하게 화냈던 거예요. 미안해요.”

상처. 그 말에 서원은 그제야 “아.” 하고 짧게 목소리를 내었다. 진득히 저를 쳐다보던 시선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그래서 그렇게 쳐다본 거였구나. 납득하는 사이, 남자가 망설이는 듯 “그리고, 또…….” 하며 입을 달싹거리더니 급기야 머리를 쓸어올리면서 웃었다. 조금 전처럼 눈이 가느다랗게 접혔다. 꼭 누군가를 꾀어내는 듯한 미소였다.

“누구한테 이런 말 하는 건 처음이라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입에 발린 말을 잘 못 해서.”

“…….”

“내가 잘할 테니까, 오래 해달라고요, 과외. 그 말 하고 싶었어요. 처음 봤을 때도 한 말이긴 한데, 이번엔 조금 더 진심입니다.”

서원은 당황했다. 그는 지금 진심이었다. 늘 그렇듯 친절함을 의무적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기에 항상 그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듯한 분위기가 없었다. 그 풍족한 태도가, 옷에 묻어나는 섬유유연제 향기처럼 은은하게 그의 눈빛 하나하나에서 묻어나던 그 이유 있는 여유로움이 보이지가 않았다.

믿을 수는 없지만, 오히려 정반대의 것이 보였다. 정반대의 것. 그러니까…….

“…….”

아득하도록 무연하지만, 또 놀랍지는 않을 정도로 단순한 모양의 다정함이.

“……진짜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거울 좀 봐야겠네.”

저를 관찰하는 듯한 시선에 남자는 마침내 내내 머금고 있던 웃음을 작게 터뜨리며 말했다. 서원은 서둘러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서둘러 말을 꺼냈다. 그리고 목 뒤를 긁적이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저는…… 진짜 괜찮습니다. 우산 잘 쓰겠습니다. ……말씀도, 감사합니다.”

남자는 서원을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보다가 “그래요. 이제 들어가 봐요.” 했다. 서원은 한 번 더 인사했다. 덜컥. 곧이어 차 문이 열렸다.

그날 집으로 들어간 서원은 시연우에 대해 조금 오랫동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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