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4화 (104/107)

104

 “이…건…”

 아무리 봐도 알로 밖에는 안 보인다. 촉수보다는 좀더 반투명한 알들이 안에 잔뜩 들어 있었는데 크기도 제각각 이었다. 이거… 설마 살아있는 걸까? 아니, 생물체 같진 않았는데… 마른침을 삼키며 노아는 이안이 비스듬히 웃으며 손가락을 까닥이는 걸 보았다.

 “넌 뒤에 넣는 거라면 뭐든지 좋지?”

 “아, 아니… 아으, 아니에요…”

 수도 없이 범해져 붉게 부은 입구에 이안이 손가락을 밀어 넣고 헤집자 노아가 몸을 움찔 떨며 신음했다. 이안이 중지와 검지에 힘을 주어 벌리자 주륵 뭔지 모를 액체가 흘러 내리는 느낌이 선연했다. 

 “아까도 아니라고 했으면서 좋아했잖아. 아니면 싫다고 말해봐.”

 “싫… 싫어요…”

 아까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박힐 때 거의 정신이 까무룩할 정도의 상태에서 몇 번이고 싫다고 외쳤지만 멈추지는 않았던 걸 떠올리며 노아가 그제서야 싫다고 말했다. 가족들을 위한 한 달이건 양심의 마지노 선이건 노아는 다 집어 치웠다. 노아는 이 촉수에 홀딱 반했다. 아니, 벌써 마음에서는 촉수가 아니라 제가 제일 좋아하는 디저트의 이름을 붙여주기까지 했다. 이름 하여 푸딩…

 “아직 충분할 만큼 싫다고 하지 않았어.”

 어두운 목소리로 말한 이안이 손가락을 빼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굵은 촉수가 노아의 엉덩이 사이로 접근했다. 잔뜩 지친 노아는 숨만 가쁘게 쉬며 촉수가 손쉽게 뒤로 밀고 들어 오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아니, 말이 손쉽게, 이지 실제로는 절로 신음 소리가 흘러 나올 정도의 압박감이었다. 이제는 쓰라리기까지 한 입구로 머리를 들이민 촉수가 울럭거리며 안에 있던 알을 뱉어 내기 시작했다. 몸체가 투명한지라 알이 천천히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흐으, 읏, 아…으… 그만, 그만…”

 “이제 시작인데 뭐가 벌써 그만이야?”

 응, 당연히 그냥 말해 봤지… 아흐읏…. 꾸우욱 밀려 들어오는 알에 바들거리며 고개를 젖혔다. 연이어 알이 하나, 그리고 또 하나 밀려 들어오는데 크기도 제각각 이라서 대체 몇 개나 들어왔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점차 안쪽 깊은 곳이 뻐근해질 정도가 되어도 기어이 더 밀고 들어와 노아가 헐떡이며 겨우 고개를 들자 배가 아까보다 조금 불룩해 보일 정도였다.

 마침내 촉수가 빠져나가고 난 뒤 이안이 겨우 다물린 뒤에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아까처럼 똑같이 이리저리 헤집지만 그 느낌은 전혀 달랐다. 촉수와는 달리 제법 단단한 모양인지 이안이 뒤를 들쑤실 때마다 달그락거리면서 구슬이 안에서 굴러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더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제발, 제발… 아, 아!”

 “제발 더 넣어 달라고?”

 이안이 손을 올리자 촉수가 얌전히 위에 제법 커다란 알 하나를 더 뱉었다. 노아가 부러 눈물이 그렁거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럴 때마다 이안이 더 괴롭히곤 했으니까… 힘 빼는 게 좋을 걸, 무심하게 중얼거리며 이안이 꾹 매끈한 알을 뒤에 대고 문지르더니 억지로 힘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악, 아, ….읏!”

 힘을 빼라고는 했지만 그게 어디 가당키는 하나. 이미 안에 알이 가득 차 있는 상황이었으니… 그러나 이안은 노아가 정말 못 들어간다며 울먹여도 도리어 더욱 힘을 가할 뿐이었다. 결국 기어코 이안은 반쯤 알을 밀어 넣어 뒤에 물리게 만들었다. 노아는 간신히 바들바들 떨면서 뒤를 조일 수 있었는데 그래도 뒤가 다 닫히지 않은 채 반들거리는 알의 일부를 보이고 있었다.

 “조건을 하나 더 걸도록 할까.”

 식은땀을 흘리며 노아가 올려다 보자 이안이 보란 듯이 뒤를 문질렀다. 

 “흐으… 읏…”

 “앞으로 10분 동안 하나도 뱉어내지 않고 참으면 하루 더 일찍 네 가족들에게 되돌려주지.” 

 하지만 뱉어내게 되면 그 수만큼 넌 여기서 더 머물러야 될 거야. 노아의 동의 따위는 듣지도 않으며 마음대로 내기를 내건 이안이 조금 불룩한 노아의 배를 문지르자마자 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읏, 뭐, 뭐….”

 안에 들어간 알이 진동하기 시작했다는 걸 곧장 깨달은 노아가 헉 하고 숨을 쉬었다. 진동할 뿐만 아니라 이따금 좀 찌릿하기까지 했다. 아, 역시 진짜, 알은 아닌가 보다 생각하기도 전에 벌써 아까처럼 눈 앞에 강렬한 쾌감이 튀었다. 어떻게 참고 어쩌고 시도를 하기도 전에 간신히 노아의 뒤에 걸려있던 알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구슬이 굴러 떨어졌다. 

 “돌아가기는 글렀네, 안 그래?”

 “읏, 아! 아…! 힉, 아흐, 읏!”

 어쩐지 기쁜 어조로 이안이 말하는 것도 제대로 듣지 못하며 노아가 몸을 벌벌 떨었다. 대체 무슨 원리인지는 알 수 없어도 안에서 구슬들이 떨리고 튈 때마다 지독한 쾌락이 온 몸을 달구었다. 연신 경련하듯 움찔거리며 뒤에서 구슬이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 억지로 들어갈 때까지 뒤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던 것이라 빠져나가는 것도 쉬웠다.

 상당한 양의 구슬이 빠져나갔어도 노아는 여전히 우는 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다. 안에 몇 개인지 모를 구슬들이 계속해서 자극을 가하고 있었으니까… 말도 못하고 애처롭게 몸을 떨기만 하던 노아를 바라보던 이안이 뒤에 손가락을 밀어 넣어 구슬 몇 개를 더 꺼냈는데도 어디선가 여전히 징징 진동이 울렸다.

 “흐윽… 빼, 빼주세요… 흐아…”

 “……”

 “아으, 안돼, 읏…”

 노아는 바닥에서 제일 커다란 구슬 하나를 집어 든 이안의 손 안에서 구슬의 표면이 울퉁불퉁 변하는 걸 보았다. 기대 반 두려움 반 하는 눈으로 바라보자 이안이 도로 밀어 넣었는데, 이제는 흐물흐물해진 뒤가 거의 저항 없이 삼켜내자마자 드득 거세게 진동하는 통에 노아가 흐느끼는 소리를 냈다.

 “싫어?”

 구슬을 밀어 넣고 바로 제 것도 뒤에 대고 문지르며 이안이 물었다. 노아가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이안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어쩌나, 난 좋은데 말이야.”

 좋다고 말하면서도 미소가 곧장 비틀리더니 이를 악문 이안이 노아를 잡으며 곧장 무자비하게 제 것을 삽입했다. 

 ***

 “아으…”

 끙끙 한참을 앓는 소리를 내다가 노아가 겨우 눈을 떴다. 온 몸이 녹아 침대에 달라 붙은 것처럼 아무런 힘이 없었다. 눈을 뜨고서도 잠깐 두 세 번 다시 까무룩 잠들고 나서야 노아는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한참을 푹신한 이불에 얼굴을 푹 파묻고 있던 노아는 문득 제 방의 이불이 이렇게 푹신하지 않다는 것을 떠올렸다. 

 “어…”

 고개를 들어 방 안을 둘러본 노아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여긴 어디야, 대체? 굉장히 화려하고 또, …음… 화려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방이다. 노아도 이제껏 공작 가의 사랑 받는 막내 아들로 살면서 부족함 없이 살았지만 지금 노아가 있는 방에 비교할 바가 되지 못했다. 대체 나는 여기 왜 와있는가… 노아가 마지막 기억을 더듬었다.

 한참을 촉수에 범해지고 난 뒤에도 이안은 사정을 봐주지 않고 노아를 괴롭혔다. 마왕씩이나 되어서 그런지 노아가 완전히 흐물흐물해져 숨만 간신히 헐떡이고 있을 때에도 이안은 굉장히 쌩쌩했고, 마지막으로 가볍게 손짓해서 촉수로 하여금 노아를 후배위 자세로 바꾸게 한 뒤 퍽 소리가 나도록 뒤에서 박아오던 게 노아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럼 이안이 날 여기 데려다 놓은 건가?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 방은 확실히 노아가 전에 지내던 작고 허름한 방보다는 훨씬 마음에 들었다. 노아가 한참을 누워 있다가 뒤척이며 생각했다. 확실히 보통 사람이랑은 이런 경험 못하겠지… 그나저나 내가 어제 싫다고 몇 번이나 말했더라? 수를 셀 만한 정신이 아니었는데.

 한 번 싫다고 할 때마다 일주일씩 더 기간이 늘어나니까 대강 세어봐도 앞으로 두 세 달은 더 마왕성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 같았지만 노아는 마냥 좋았다. 게다가 자신이 지내는 환경이 변한 걸 보니 이안은 자신이 조금쯤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아버지, 형, 미안해… 나 조금만 더 여기서 지내다 갈게. 노아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 이안이 너무 마음에 드는 걸… 정확히는, 이안의 거기랑 그거랑 이거랑 등등이…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진 시간은 노아의 예상과는 영 다른 것이었다. 

 이 화려한 방에 머무른 지 첫 날, 이안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노아는 그저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둘째 날도, 셋째 날도 발 끝 하나 보이질 않는 것이다. 이안은 노아가 지루해서 거의 죽어갈 때쯤에서야 나타났지만 노아의 기대와는 다르게 그저 식사나 산책을 같이 하고 말았지, 그 외로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대체 이안이 왜 그러는 걸까. 노아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갑자기 고자가 되었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전보다 자유시간이 늘어나서 멍하니 아름다운 마왕성의 정원에서 어여쁜 식인 식물이 새를 잡아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노아가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미하일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이안과 똑같이 미하일도 항상 소리소문 없이 불쑥 나타나곤 했다. 노아는 잠시 물끄러미 미하일을 바라보았다가 돌직구를 던졌다.

 “왜 이안이 안 할까요?”

 “어…”

 미하일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똑같이 돌직구 대답을 돌려주었다. 걔가 널 좋아하니까?

 “네?”

 “그러니까, 이안이… 아니 마왕님이 널 좋아한다는 이야기지. 제 딴에는 좋아하는 사람 더는 건들기 싫은 걸 테니까.”

 설마… 노아는 미하일의 말을 의심했다. 세상에 누가 좋아하는 사람을 그렇게 괴롭힌다고? 노아야 취향이 취향이라서 좋아하긴 했지만 객관적으로도 이안의 행동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하는 행동이 아니란 건 잘 알고 있었다. 뭐… 요즘 들어서 좀 달라진 거 같긴 하지만… 미하일이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정말 그렇다니까? 그래서, 언제 이안한테 사실대로 말할 건데?”

 “안 한다니까요…”

 이 사람, 아니 마족 좀 위험한 인물인 거 아냐… 노아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자 미하일이 아쉬운 얼굴로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훅 사라졌다. 

 그리고 노아는 과연 미하일의 말대로 이안이 자신을 좋아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조금씩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건 갑자기 그 후로 자신을 대하는 이안의 태도가 더욱 유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니 태도 뿐만이 아니라… 갑자기 끝내주는 디저트나 옷, 혹은 액세서리 따위를 들고 오는 걸 보니까 그럴 수 밖에…

 진짜 이안이 날 좋아하나? 하지만 정말 이안이 자신을 좋아하는 거라면 앞으로 노아의 즐거운 해피 라이프는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이안이 이젠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도 않지, 그렇다고 이안에게 솔직히 제 성향을 밝힐 수도 없지… 결국 노아에게 찾아오는 것은 욕구불만이었다.

 “아… 죽겠다…”

 자신을 대하는 이안의 태도는 나날이 좋아져서 이젠 노아는 마음대로 어디에든 출입이 가능했지만 전처럼 즐겁지는 않았다. 이안이 정말 날 좋아하나 봐… 왜?... 왜?? 물론 이안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은 반길만한 일이었지만… 

 “아, 푸딩…!”

 그 날도 어김없이 육체적으로 만족하지 못하여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던 노아가 벌떡 일어났다. 요즘 들어 평화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던 노아는 미하일과 자주 잡담을 나누곤 했는데, 덕분에 이안이 자신을 괴롭히는 데 사용 했던 그 촉수… 아니 사랑스러운 푸딩이 미하일의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뭐라더라, 처음에 약간의 마력만 불어 넣으면 자신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했던가? 가장 중요한 건... 심지어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능도 있다고 했었지!

 노아가 당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일단 태연하게 방문을 나선 뒤 산책을 가는 양 지하실로 슬금슬금 향했다. 자신이 약간이나마 마법을 쓸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이던가. 눈동자만 굴려 혹시나 누가 자신을 보고 있지는 않나 두리번거린 뒤 노아가 총총 신나서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을 밟았다.

 “여기서 세 번째 방이었지…”

 노아가 활짝 웃으며 문을 열었다. 그 때처럼 안이 컴컴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더듬거리며 노아가 겨우 조명등을 켰다. 그래도 어두워서 방이 훤해질 때까지 벽에 주르륵 달린 조명등을 켠 노아가 웃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가 얼어 붙었다.

 “헉…”

 조명등을 모두 켜자 꽤나 넓은 방 한 가운데 놓여 있는 것은 무언가 거대한 것이 시꺼멓게 전소한 흔적이었다. 설마, 설마… 저게… 내 그 푸딩인가?! 혹시나 작동이 안 했을 때의 모습이 아닌가 싶어 노아가 마력을 좀 불어 넣어보았지만 시커먼 고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흑… 푸딩… 푸딩아…”

 노아가 안타깝게 바짝 까맣게 탄 물체를 어루만지며 울먹거렸다. 이게 뭐야, 누가 너에게 이랬어. 엄청 기대하면서 내려왔더니만 마주하게 된 참담한 현실(?)에 노아가 훌쩍거리는 소리마저 냈다. 

 “꼭 한 번 다시 해보고 싶었는데… 아니, 한 번은 부족하니까 두 번… 아니, 세 번…”

 이안도 갑자기 거의 고자나 마찬가지인 신세가 되었는데 자신의 푸딩까지 이렇게 만든 알 수 없는 존재를 원망하면서 노아가 까맣게 탄 물체를 자뭇 소중하게 끌어 안을 때였다. 이걸 미하일에게 가져가서 일부라도 어떻게 고쳐달라고 할 순 없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등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리고 뒤에서 매우 다정하고도 친근한 목소리가 들렸다.

 “노아, 거기서 뭐해?”

 뻣뻣하게 얼어붙은 노아가 뺨에 검댕을 조금 묻힌 채로 뒤를 돌아보자… 뒤에는 이안이 이상하리만큼 환하게 웃으며 노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애타게 찾고 있는 그 푸딩에 대해서 우리 한 번 이야기 좀 해볼까?”

 이안의 얼굴을 본 노아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안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떠들어댄 것들을 모두 들었다는 것을… 꼴깍, 마른 침을 겨우 삼키자마자 노아는 그대로 무시무시한 마왕, 이안에게 질질 지하실에서 끌려 나가고 말았다.

 ***

 오늘은 드디어 노아가 1년하고도 반 만에 돌아오는 날이었다. 테너는 새벽부터 일어나 안절부절 성 정문에서 마왕성에서 보낸 마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노아가 무슨 모습일까 조마조마 하면서… 그리고 마침내 저 멀리서 머리 셋 달린 케로베로스가 무시무시한 먼지구름을 일며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언제 봐도 무서운 지옥의 생물체였다.

“노아!”

 마침내 마차가 성문 앞에 멈추자 테너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외쳤다. 노아가 과연 어떤 모습일지 상상만해도 불안했던 것이다. 이제까지 마왕성에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모두 어떤 상태였는지 잘 알고 있던 테너로써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잠시 후, 마차의 문이 열리고 노아가 내렸을 때 테너는 매우 멀쩡해 보이는 노아의 모습에 몹시 안도하여 활짝 웃고 말았다. 

“노아, 아들아!”

 테너가 조금 눈물마저 글썽거리면서 으르렁거리는 케로베로스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다가섰다. 1년 반 동안 노아가 어떻게 지낼 지 상상하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자신 생전에는 마왕 성을 공격하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 몇 번을 다짐을 했던가.

 그런데 떠났을 때보다도 혈색 좋은 얼굴을 한 노아의 뒤를 이어 내린 사람을 본 테너가 쩌적 얼어 붙었다. 몹시 오만한 표정, 압도적인 분위기에 인간과는 달리 머리 양 옆에 비죽 솟은 뿔을 단 사내였다.

“마, 마… 마왕?!”

“아버지, 이번에 저와 결혼하게 된… 이안이라고 해요. 아시다시피 저기 마왕 성의 마왕이구요…”

 좀 부끄러운 얼굴로 노아가 머뭇거리면서 말하자 테너의 눈이 곧 튀어나올 듯 커졌다. 지금 내가 무슨 소리를 듣고 있는 거지? 내 막내가 누가 누구랑 뭘 해? 뭘?? 마왕이랑?? 결혼을??

 그러나 테너를 경악하게 만드는 건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매우 거만한 모습으로 마차에서 내리는 이안의 팔에는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 아이가 안겨 있었다. 마왕과 똑같이 검은 뿔이 머리에 쪼롱 난 귀여운 여자아이였는데,… 노아의 어렸을 적과 외모가 아주 똑 닮은 것이 아닌가. 노아가 이안의 팔에 안긴 여자아이를 향해 말했다.

“클레어, 인사하렴. 네 할아버지셔.”

 하,... 할아버지...! 

 더 이상 이 충격적인 상황을 견딜 수 없던 테너는 그대로 시야가 까마득해지는 걸 느끼며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러나 불쌍하게도 하루 종일 끙끙 겨우 앓다가 깨어난 가엾은 테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안녕한가, 장인.’ 따위의 말을 내뱉는 마왕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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