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8화 (88/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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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에 엠프렉 소재에 대한 공지가 있습니다! 꼭 읽어주세요~

 노아가 멍하니 생각했다. 내가 어쩌다 여기에 있게 된 거더라…

 “약간 소음이 있지만 몸에는 아무런 해도 없으니 걱정 마시고요. 무슨 일이 있으면 손에 쥔 호출기를 눌러 주세요.”

 “네에…”

 노아를 원형으로 된 방에 안내한 매우 상냥한 간호사가 바닥에 표시된 부분에 노아를 세워두고는 이것저것 설명하고 밖으로 나갔다. 곧 이어 웅웅하고 나지막하게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벽에 기대 선 노아가 데굴데굴 눈을 굴렸다. 벽 마다 일정한 간격으로 홈이 있는 걸 제외한다면 그냥 텅 빈 방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이 곳은 프로스트 가의 개인 사립 병원에 있는 전신 스캐너였다. 굉장히 비싼 기기지만 그만큼 비싼 값을 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시간 전, 윌리엄에게서 거의 역겹기까지 한 냄새를 맡은 뒤로 노아는 처음에 가족들이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윌리엄에게서 이런 냄새가 나는 게 뭔가 큰일이라도 났다는 의미인가? 아무래도 모르겠어 서 이안을 바라본 노아가 이안도 저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걸 보고는 안심했다. 지금 나만 이해 못하는 게 아니구나…

 노아가 어리둥절해 하는 동안 앨리스가 제 남편 윌리엄의 체취를 맡아 보고는 묘한 표정으로 노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알파 페로몬 냄새일 뿐이에요. 회의를 막 다녀오는 길이라 다른 알파들 페로몬이 좀 베인 건데.”

 알파 페로몬 냄새라고? 하지만 단 한 번도 이렇게 알파의 페로몬 냄새가 이렇게 싫었던 적은 없었다. 모든 알파가 오메가의 페로몬에 끌리고, 오메가가 알파의 페로몬에 끌리는 것처럼, 처음 노팅을 한 후로 좀 꺼림칙하고 예민하게 느껴졌을 때는 있었지만 그 때도 딱히 지금처럼 싫은 건 아니었다.

 “어머나, 그러면 혹시… 설마…”

 올리비아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입을 가렸다. 그 때까지도 노아는 여전히 무슨 일인지 모르고 있었다. 마침내 노아보다는 인내심도 짧고 성격도 나쁜 이안이 약간 불쾌한 기색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러나 이안이 물어도 올리비아와 앨리스, 그리고 윌리엄과 벤자민은 의미심장한 시선만 교환할 뿐이었고 테너는… 매우 불안하고 떨리면서도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어떤 시선으로 노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조카 애들은 어른들이 저러자 저들도 덩달아 뭐지 뭘까 하는 얼굴로 어른들만 말똥거리며 쳐다 보고 있었다. 올리비아가 테너를 한번 보고는 어머, 하고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계속 홀에 세워두고 있었네요. 일단 안으로 들어오세요.”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시차로 피곤해 보이는 윌리엄과 가족들을 세워둘 수는 없었기에 다들 응접실로 향했다. 급작스럽게 할 말을 잃은 테너가 윌리엄보다도 피곤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소파에 앉은 뒤 어린 아이들은 모두 밖으로 나가 놀라고 내쫓은 앨리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노아, 혹시 최근에 뭔가… 이상한 변화가 없었어요?”

 “이상한 변화요?”

 “가령 예를 들어,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오거나 갑자기 식욕이 많아졌다던가… 아니면 유독 한 음식만 먹고 싶다던가 하는 거요.”

 “어, 음… 원래도 그래서 딱히 변화라고 하기엔…”

 노아가 어물거렸다. 잠이 많거나 디저트를 많이 퍼먹거나 하는 건 원래도 항상 그래왔던 터라 딱히 변화라고 할 수는 없었다. …문득 갑자기 노아가 요즘 체중이 조금 늘어난 것이 마음에 걸려 움찔하고 말았다.

 “아, 그렇지. 아니면 혹시 지금 일부러 페로몬을 감추고 있는 상태인가요?”

 아까부터 영 뜬금없는 앨리스의 말에 노아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페로몬을 감추고 있는 상태냐고? 노아는 집에서는 그런 귀찮은 짓은 하지 않았다. 밖에서라면 모를까 집에서는 원래 다들 편하게 페로몬을 흘려 보내고 있는 지라… 노아가 아니요, 하고 고개를 젓자 테너가 갑자기 안절부절 못하기 시작했다. 앨리스가 흘깃 테너의 눈치를 보고는 아주 조심스러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내가 보기에는 혹시 노아가 임신을 한 게 아닌가 싶어서요.”

 “네?”

 전혀 뜻밖의 이야기에 노아가 입을 조금 벌렸다. 임… 임신? 그야 물론 노아도 오메가로써, 자신이 임신을 할 수 있다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지만… 임신을 한다는 건 예정에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게 이안과 이혼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게 겨우 이번 달일 뿐인데! 문득 노아가 이안을 바라보자 이안은 뭐라고 해야 하나… 처음으로 …좀 멍청한 것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저 피임 잘 하고 있는데요. 꼬박 꼬박 약도 잘 먹어 왔구요.”

 당황해 하다가 노아가 직설적으로 말하자 편하다고는 할 수 없는 주제에 테너가 헛기침을 했다. 물론 테너는 현재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그 주제로 불편해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노아의 말에 앨리스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피임약도 확률이 100%는 아니에요, 노아. 그… 말하기엔 조금 무례하지만, 얼마나 관계를 가졌느냐에 따라 확률이 떨어지는 걸요. 특히 그, 거칠게… 했을 때는 더욱 그렇고.”

 앨리스가 애써 빙 둘러 노팅이란 말을 표현하자 영 그 자리에 있기 불편했는지 아까부터 말이 없던 테너가 다시 헛기침을 하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응접실에 있던 사람들이 테너가 나가는 걸 바라보다가 문이 닫히자 말투가 아예 더 직설적으로 변해 버렸다.

 “뭐야, 그럼 조카가 한 명 더 생기는 건가?”

 신이 난 벤자민이 떠들었다가 올리비아에게 찰싹 팔뚝을 맞고는 시무룩해졌다. 눈치도 없이 왜 그러냐면서 벤자민을 더 구박한 뒤 올리비아가 어안이 벙벙한 노아의 손을 꼬옥 잡았다.

 “나도 오메가라서 잘 아는데 임신을 하면 초기에 알파 페로몬이 굉장히 역겹게 느껴지거든요. 나중에는 가족이나 남편도 마찬가지라 꼴도 보기 싫어지고…”

 노아는 옆에서 이안이 움찔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내가 페로몬을 잘 조절할 수가 없게 되서, 베타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페로몬이 거의 사라져 버려요. 그런데 노아 증상이 딱, 아무리 봐도 그거길래…”

 그…게 그러네? 앨리스와 올리비아가 하는 말을 들으니 노아도 이제는 슬슬 제가 임신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안과 제가 얼마나 …관계를 자주 가졌더라… 그리고 노팅은… 음… 으음... 바로 이번 주에만 두 번인가. 그나마 여기 와서는 노팅은 안 했다. 아무리 노아라도 가족들 앞에서 그렇게 했다는 티를 내고 싶진 않았으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노팅만 안 했다는 이야기다.

 내가? 내가 임신? 내가?? 완전히 어안이 벙벙해진 노아가 멍 때리는 동안 올리비아와 앨리스는 병원 가서 검사를 해보자며 멍한 노아를 엉덩이를 두들겨 일으켜 세우고 코트를 입힌 뒤 이안과 함께 차에 태워 보냈고, 정신을 차려보니 노아는 어느새 프로스트 가의 아담한(?) 개인 사립 병원의 전신 스캐너 안에 들어가 있게 된 것이었다.

 그제서야 조금 정신을 차린 노아가 기억을 더듬었다. Tear를 다닌 이래로 피임이라면 정말 아주 확실히 해왔는데 이안과 결혼한 뒤로는… 한 번쯤 까먹은 것도 같고, 잘 챙긴 것도 같고… 얼마나 예상치 못한 일이던지 노아는 과거에 제가 뭘 어쨌는지도 헷갈렸다. 물끄러미 아주 납작하고 평평한 제 배를 내려다봐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약간은 신기한 것 같기도 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노아가 전신 스캔을 모두 끝내고 나오자 복도를 조금 서성거리고 있는 이안이 눈에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이안의 얼굴은 조금 어두워 보이기까지 했는데, 그 표정을 본 노아의 마음이 조금 가라 앉는 듯 했다. 노아 자신이야 좀 놀라긴 했어도 그렇게까지 싫은 건 아니었는데, 정작 이안이 싫어한다고 생각하자 아무래도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지난 번에는 날 좋아한다고 해놓고 설마... 아기를 가지는 게 싫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노아가 무언가 심각하게 생각에 잠겨 있는 이안을 불렀다.

 “이안.”

“…아.”

 노아가 툭 어깨를 건드리기 까지 했는데도 이안의 반응은 미묘하게 한 박자 느렸다. 이안은 노아를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인 마냥 빤히 바라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좀 당황한 것 같기도, 혹은 좀 초조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태도를 보자 노아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툭 내뱉고야 말았다.

 “혹시 이안은 아직 아이를 갖는 건 싫은 거에요?”

 “뭐? 아니, 아냐. 그게 아니라…”

 대놓고 직설적으로 물어오는 노아의 말에 놀란 이안이 심지어 조금 말을 버벅거리기까지 하더니 이내 한숨을 뱉었다. 

 “그냥, …내가… 그 동안 너무 심했던 것 같아서.”

 “뭘…요?”

 뭐가 심했다는 이야기일까? 그 동안 매일매일 관계를 가져온 것? 하긴 지난 번 영화관 화장실에서 오나홀까지 써가며 플레이를 했던 걸 떠올리자 노아도 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주아주 약간은 과격한 플레이긴 했어… 어제 밤에도 한 건 좀 너무했나? 노아가 미처 이안에게 뭐가 심했냐고 묻기도 전에 간호사가 검사 결과가 나왔다며 상냥하게 둘을 진찰실로 안내했다.

 프로스트 가의 개인 소유 병원은 말 그대로 개인 병원으로 주로 상류층을 대상으로 매우 비싼 치료나 진료를 맡고 있었다. 고객이 얼마 안 되니 병원 크기도 다소 작았지만 내부 인테리어나 설비는 최첨단을 달렸다. 물론, 진료비나 치료비 역시 최고가를 달렸지만 고객들 중에 그런 사소한(?) 것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병원이 아니라 무슨 호텔 마냥 번쩍번쩍 잘 꾸며둔 복도를 따라 진찰실에 들어가자 매우 푹신한 소파와 크리스탈 병에 담긴 물과 컵이 테이블 위에 고이 올려져 있었다. 의사 가운마저 세련되게 차려 입은 의사가 간호사만큼이나 친절하게 둘을 맞이했다. 노아를 배려하기 위해서인지 의사는 일부러 오메가임을 드러내며 페로몬을 흘려 내고 있었다. 일단 둘을 소파에 앉도록 한 다음 의사가 테이블 위에 노아의 스캔 결과를 띄웠다. 

 “축하 드립니다, 4주차쯤 되셨네요. 아직은 손가락보다도 작은 크기지만 착상도 잘 되었고…”

 의사가 스캔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콕 친절하게 집어주었지만 얼떨떨한 노아의 눈에는 그냥 까만 점 같은 것으로 보였을 뿐이었다. 되게… 조그맣네. 의사가 설명하는 걸 듣다가 이안을 바라보니 이안은 뚫어져라 스캔 이미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노아는 어째선지 지금에서야 자신이 이안과 결혼한 사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보통 오메가 분들은 이 때쯤에는 늦어도 임신이란 걸 알게 되세요. 알파 페로몬을 못 견뎌 하시거든요.”

 의사가 조목조목 증상들을 짚어주자 노아가 얼떨떨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친절하게 앞으로 있을 증상들과 주의해야 할 사항 등을 의사가 설명해 주는데 노아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가는 기분이었다. 오히려 노아보다도 이안이 주의를 기울여 의사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혹시 인공 자궁을 이용해 태아를 키우고 싶으시다면 적어도 6주가 지나기 전에는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그 후로는 태아가 적응을 잘 하지 못 해요.”

 “인공 자궁이요?”

 멍하니 의사의 설명을 듣다가 난생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노아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인공 자궁은 굉장히 비싸지만 실제 자궁과 굉장히 흡사한 환경으로, 외모를 망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초기에 아예 태아를 옮겨 완전히 다 성장할 때까지 키우는 인큐베이터였다. 주로 인기 높은 배우들이 사용하는 서비스기도 하다. 완전히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들에 노아가 입만 조금 벌리고 있자 의사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은 적응이 잘 되지 않으시겠지만 두 분이 이렇게 사이가 좋으신 걸 보니 곧 차츰 익숙해 질 것 같네요.”

 의사가 젊은 부부인 노아와 이안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하고는 곧 이어 조금 엄격한 표정으로 주의 사항을 말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담배나 술을 하지 말라던가, 혹은 격한 운동을 삼가라는 말들이었지만… 곧 이어진 의사의 말에 노아가 흠칫해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조금의 부끄러움이라고는 없이 참으로 의사답게도 의사가 말했다.

 “또한 초기에는 삽입을 동반한 관계는 가지시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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