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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한참 달아올라 있던 몸이었던 지라 사정인지 아닌지도 애매한 감각 끝에 다시 높은 절정에 달한 노아가 헉헉거리며 숨을 골랐다. 뒤가 완전히 젖어서 질척거리는 기분이었다. 여기가 밖이 아니었으면 노팅을 하는 건데, 중얼거리며 이안이 아프도록 깨문 귀를 살짝 핥았다.
“이미 영화는 시작한지 한참이겠는데.”
손목 시계를 들여다 보며 이안이 말했지만 완전히 끝내주는 시간을 보냈던 노아는 영화가 시작되거나 말거나 하는 마음이었다. 이안은 휴지를 뜯어 체액으로 범벅이 된 노아의 뒤를 대강 닦아주고는 붉게 달아올라 뜨끈하게 열이 오르는 엉덩이를 느리게 주물렀다.
“연고 바를까?”
“음… 아니요…”
이안이 제 엉덩이를 주무를 때마다 느껴지는 쓰라림을 즐기면서 노아가 웅얼거렸다. 그냥 이대로 침대 같은 곳에 쓰러져 잠이나 푹 잤으면 좋겠네… 몇 번이나 절정에 올라 노곤해진 몸으로 노아가 생각하면서 잠시 안타까운 시선을 쓰레기 통에 보냈다. 잘 세척하면 또 쓸 수 있는데 일말의 고려도 하지 않고 이안이 버려버린 오나홀이 몹시도 아까웠다. 하긴, 하나 더 사면 되지 뭐.
“어차피 처음 놓쳤으니 집에 가는 건 어때.”
“제임스가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요.”
노아도 몸이 노골노골해서 이안의 말대로 집에 가서 식사나 하고 가볍게 낮잠이나 즐기고 싶었지만 제임스가 안에서 혼자 영화를 보고 있음을 떠올리며 거절했다. 그런데 이안이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안 기다리니까 걱정 마. 네가 몸이 안 좋다고 하니까 얼른 가라고 하던데?”
아니… 대체 언제? 이안과 노아는 내내 화장실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고, 제임스는 다시 화장실에 온 적이 없었다. 연락할 만한 시간이… 아, 그 소위 그 반성하는 시간에 연락했구나.
“아쉽네. 네 친구가 없었으면 원래는 다른 걸 했을 텐데.”
노아가 아까 실컷 맞은 탓에 붉게 부어 오른 엉덩이 위로 일부러 더 까칠하고 아프게 스치면서 바지를 입고 있는 동안 팔짱을 끼고 노아가 옷을 추스리는 모습을 지켜 보던 이안이 퍽 아쉽다는 뉘앙스로 입을 열었다.
“다른 거… 뭐요?”
“뭐, 그냥 영화를 관람하면서 할 수 있는 거?
영화를 관람하면서 할 수 있는 거, 뭔데…? 노아는 매우 궁금한 얼굴로 바라보았으나 이안은 영 대답을 해주지 않을 모양이었다. 노아가 한번 은근슬쩍 이안을 떠 보았다.
“전 중간부터 영화 봐도 좋은데요…”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처음부터 영화를 보고 싶으면, 네 친구는 좀 빠지라고 하던가.”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말하더니 이안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불만이 풀풀 날리는 얼굴로 노아를 돌아 보았다.
“솔직히 말이 나와서 말인데, 네 친구는 대체 눈치라는 게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음…”
이안의 말대로 솔직히 말해서, 노아는 차마 제임스가 눈치가 있다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아니, 제임스는 눈치가 있고 없고의 문제를 떠나 주변에 굉장히 무관심했다. 그러다 보니 제임스는 사람들 이름도 잘 못 외운다.
제임스가 관심이 있는 것이라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오지, 혹은 야생 동물들이 우글우글한 사파리 정도…? 그렇게 암컷 수컷 구별하기 힘들다던 하이에나도 제임스는 잘도 구별을 해낸다는 걸 보니… 보통 한 번 나가면 최소 1년은 잘 돌아오질 않으니, 사실 이번에 갑작스럽게 귀국하더니 급작스럽게 제 집에 찾아온 것도 좀 의아했다.
“어쨌든 잘 알아둬. 난 네 친구가 굉장히 마음에 안 들어. 네 아버지도 마찬가지지만 가족이라 어쩔 순 없어도, 그 놈은 안 돼.”
“하지만 아주 어렸을 적부터 가족처럼 지내온 친구라서 만나지 않을 수는 없는데요.”
어째서인지 갑자기 혼나는 분위기가 되자 노아가 조금 항의해 보았지만 역시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안의 싸늘한 시선을 받으면서 노아가 조금 억울한 심정으로 생각했다. 대체 언제부터 이안이 나를 혼내는 위치가 되었을까? 부부는 둘 다 모두 평등한 존재라고 누가 말했던 거 같은데…
“누가 친구를 만나지 말라고 했어? 쓸데없는 접촉을 하지 말라는 거야. 우리가 결혼한 사이라는 거 자각은 하고 있지? 그 놈이 눈치라곤 조금도 없으면 네가 알아서 처신해야 할 거 아니야. 내 말이 틀려?”
마, 맞긴 한데… 제임스랑 내 접촉이 그렇게 과했나? 노아가 지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저 오랜만에 만나서 포옹 좀 하고, 어깨 좀 두드려 주긴 했지만 보통 그런걸 과한 접촉이라고는 안 하는데… 하지만 이안의 분위기도 분위기였던 데다가 하는 말이 듣기로는 구구절절 다 맞는지라 노아는 입만 벙긋거리다가 수긍하는 수 밖에 없었다.
“아뇨, 맞아요…”
“앞으로 네 친구가 너와 접촉할 때마다 핑거링 한 번이야.”
고분고분 끄덕이기만 하던 노아가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고개를 번득 들었다. 그러나 이안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손에 의한 접촉은 이걸로 한 번…”
이안이 무섭게도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까딱까딱해 보였다. 노아가 입을 조금 벌렸다.
“그리고 그 이상의 접촉을 할 때에는 아주 끝내 줄 테니까 기대해도 좋아.”
“그,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어떻게 친구와 한 번도 닿지 않고 지내요?”
이안이 얼마나 손가락을 끔찍하게도 잘 놀리는 가를 뼈저리게 잘 알고 있던 노아가 당황해서 따졌다. 그러자 이안이 코웃음을 치며 웃었다. 그러게 계약서는 잘 읽었어야지.
“집에 돌아가면 계약서 잘 읽어봐. 거기에 외도에 대한 사항에 다 써 있으니까. 뭐, 헤어질 때와 다시 만날 때 악수 한 번 정도는 봐줄 게. 아니면 둘이 노닥거리는 걸 내 눈에 보이질 말던가.”
그 계약서에 그런 것도 적혀 있었단 말이야? 그 자리에서 죽 훑어 보고 만 노아로써는 언제 계약서에 그런 게 적혀 있었나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랴, 거기에 그렇게 써 있는 걸 자신은 그저 지나쳐 버리고 도장을 찍어 버린 것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안의 기준은 너무한 것 같아 노아가 이안, 하고 단호한 어조로 불렀다. 이안이 조금 미간을 찌푸리며 바라보자...... 노아가 간곡하게 말했다.
“실수로 닿을 수도 있으니까 다섯 번 정도는 좀 봐주면 안 되나요…?”
***
한참을 실랑이를 한 끝에 겨우 실수로 닿은 세 번 정도는 봐준다는 조건을 얻어 낸 뒤 둘은 저택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사랑해 마지 않는 디저트 가게에서 지난 번 이안이 약을 올리기만 해 못 먹었던 디저트를 사와 몹시 행복한 기분이 된 노아가 문을 열고 들어오니 안에는 분명 볼일이 있다던 가족들이 있었다.
“어머, 일찍 오셨네요, 도련님. 그런데 제임스는요?”
올리비아가 졸려서 칭얼거리는 릴리를 잘 어르면서 묻자 노아 대신 이안이 나서서 못마땅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는 테너 들으라는 듯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영화를 보려는데 노아가 별로 몸이 좋지 않아 먼저 왔습니다. 프레넷은 영화를 마저 보고 온다는 군요.”
디저트가 가득 든 쇼핑백을 들고 뺨이 조금 상기될 정도로 기분이 몹시 좋아서 빵긋 웃고 있던 노아의 미소가 제 몸이 안 좋다는 이안의 말에 어색하고도 어정쩡하게 사라졌다. 몸이 안 좋은 것 치고는 지나치게 혈색이 좋아 보이는 노아의 모습에 온 가족의 시선이 이안에게 향했지만 이안은 매우 뻔뻔하면서도 지극히 신사적이고 우아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특별히 영화 티켓까지 직접 예매해 주셨다 들었는데 죄송합니다, 장인 어른.”
매우 공손하지만 어딘가 가시가 있는 이안의 말에 테너가 이를 득득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노아가 조금 절룩거리는 걸 보자 얼굴이 좀 붉어진 테너가 조금 몸을 부르르 분노에 떨었다. 아마 테너가 예상한 노아와 이안, 그리고 제임스의 영화 관람 시간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 터…
“저, 그럼… 이안과 저는 먼저 올라갈게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이안과 테너가 부딪히는 건 최대한 막으려던 노아가 넌지시 제안해 보았지만 테너가 손을 딱 들었다.
“아니다, 너는 먼저 올라가 쉬고 있으렴. 난 단 둘이 할 이야기가 있거든.”
일대 일로 맞장을 뜨고야 말겠다는 각오가 가득한 테너의 말에 이안도 눈을 빛냈다. 노아가 조금 걱정되는 얼굴로 테너와 이안을 바라보았다. 벤자민이 깐죽거릴 때도 번번히 화를 참지 못하고 물건을 던지거나 손을 들고 마는 테너다. 그런 테너와 이안이 단 둘이 맞붙겠다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퍽 흥미진진한 얼굴로 둘을 지켜본 벤자민이 입을 열었다.
“주치의 미리 불러 드릴까요, 아버지?”
“벤자민!”
이안처럼 신사적인 척 하려다가 벤자민의 간섭에 실패한 테너가 발끈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무리 봐도 주치의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아버지 요즘 혈압이 좀… 하고 끝까지 말하다가 테너가 뭔가 잡고 두들겨 팰 만한 물건을 찾아 두리번거리자 그제서야 벤자민이 부리나케 자리를 피했다.
“그럼… 저도 먼저 가있을게요, 아버님.”
호호 웃으면서 올리비아도 꾸벅꾸벅 조는 딸 애를 데리고 사라졌고, 마지막으로 노아도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둘을 바라보다 올라가니 이제서야 자리에는 테너와 이안만이 남게 되었다. 테너는 시선이란 게 눈에 보인다면 그 시선이 지나간 자리에 활활 타오르는 불이 붙어 있지 않을까 의심될 정도로 강렬한 눈초리로 이안을 쏘아 보았다.
“자네, 지금 이게 뭐 하자는 건가?”
“정확히 뭘 말씀하시는지…”
테너가 권하기도 전에 소파에 앉으며 이안이 느긋하게 말했다.
“엄연히 결혼한 부부를 갈라 놓으려고 하시는 행동을 보기 좋게 제가 넘겨 버린 것 말입니까, 아니면 어르신의 자회사 주식을 모조리 매각한 것 때문입니까? 아, 그러고 보니 손해를 꽤 많이 보셨다고 들었습니다만.”
그 말에 테너의 눈초리가 금새 사나워졌다. 그러나 노아의 걱정이나 벤자민과는 다르게 테너는 미친 듯이 화를 내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안을 대하는 태도가 다소 냉담하기까지 했다.
“말하자면 둘 다겠지. 그래, 내가 심술을 좀 부린 건 인정하도록 하겠네. 하지만 후자에 대해서라면 아무래도 내가 들을 말이 있을 것 같은데.”
테너의 말에 이안은 흠… 하고는 잠시 말이 없다가 이내 조금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는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테너를 바라보았다.
“솔직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실 전 처음에 결혼 제안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노아와 처음 만났을 때도, 그 후로도 딱히 노아가 마음에 들어 결혼한 건 아닙니다.”
노아를 언급하는 이안의 말에 냉담했던 테너의 눈빛이 당장 사납게 변했다. 뭐가 어쩌고 어째?, 하고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은 것 같은 눈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는 건 아니니, 노아는 이 일에서 별개로 여겨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이번에 자회사를 매각한 건 더 이상 프로스트 가에 쥐어 흔들리는 일이 없길 바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자네 회사를 마음대로 하는 일이 없길 바랬다는 이야기인가?”
이안의 말에 도로 좀 누그러진 테너가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물었다. 꽤나 험악한 분위기였지만 이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예. 솔직히 만약 당시에 제게 장인 어른의 자금이 없어도 회사에 크게 상관이 없었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쨌든, 이미 저는 결혼을 했으니 그 건은 지나간 일이라 해도… 앞으로는 완전히 회사를 제 것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 동안 도와 주신 건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는 어르신의 도움이 필요 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알파다운 알파, 그러니까 소위 딱 이안 같이 자신만만하고(거만하고) 주변 눈치 보지 않고(이기적이고) 소신 있는 대로 행동하는(성격이 못된)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하던 테너에게 이안의 대답은 꽤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이안의 말에 다소 기분이 많이 풀린 테너였으나 아까 노아를 언급한 게 좀 그랬는지… 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 그 건은… 넘어가주도록 하지. 같은 알파로써 독립시키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노아에 대해서는 쉽게 넘어갈 수가 없군. 나도 자네가 노아를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것 때문에 결혼했다고 생각하진 않았어. 정략결혼에 그런 감정이 어디에 있나?”
하지만 명심하게, 테너가 강렬한 눈초리를 보냈다. 그건 노아도 마찬가지야. 노아가 자네를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생각했나? 테너의 말에 조금 웃고 있던 이안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러나 테너는 그 표정을 미처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러니 항상 주의하란 말이네. 그 애는 순해서 아무나 잘 따르지만, 어미 사랑을 못 받고 자라서 그런지 애정을 잘 주지는 않아. 가족들이 14년을 키워온 고양이가 죽었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애야. 노아가 쉽게 자네를 좋아할 거라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네.”
테너가 막내 아들인 노아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요즘 이안이 굉장히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을 정곡으로 푹푹 찔러대면서 몇 번이고 ‘노아는 사람을 잘 안 좋아해’ 나 혹은 ‘어쩌면 몇 년은 안 좋아할지도 모른다니’ 하는 소리를 말하자 노아를 봐서 테너와 좋게 좋게 넘어가려던 이안의 이마에 슬그머니 핏대가 섰다. 이 영감이 정말…
결국 테너가 ‘사실 노아의 취향은 자네 같은 성격은 아니지’ 까지 말하자 참을 수 없던 이안이 매끄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다 말씀 드리는 걸 잊었는데, 그 자회사를 매각한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무슨 다른 이유?”
테너가 의아해 하며 눈썹을 치켜 올리자 이안이 더 진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테너의 속을 사정없이 확 긁었다.
“아무래도 어르신 열 좀 받으시라고 매각한 이유가 가장 크죠.”
***
테너와 이안 둘 만의 대화는 결국 혈압이 도져 테너가 주치의를 부르는 것으로 끝이 났고, 중간에 좀 좋아졌나 싶던 둘의 사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되려 더 나빠지고 말았다. 게다가 벤자민이 그럴 줄 알았다면서 정말 주치의를 미리 불러 놨기 때문에 더욱 열이 받은 테너는 아예 드러눕고 말았다.
뭐? 노아의 취향이 내가 아니야? 테너의 말을 곱씹던 이안도 좀 더 짜증이 났다. 내가 어디가 어때서? 얼굴과 몸은 이만하면 매우 괜찮고,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는 내 나이대 남자 중에서는 아주 아주 괜찮은 거 아닌가? 게다가 내 성격도 아주 나쁜 편은 아니라고. 무엇보다 노아와 저는 취향이 맞지 않나. 그 것도 아주, 잘 맞았다.
하지만 테너가 말한 취향은 그런 취향은 아닐 테지. 그걸 알기에 이안이 테너의 말에 참지 못한 것이다. 안 그래도 이안은 최근 들어서 노아가 과연 저를 좋아하는 날이 있기는 할까 생각이 들던 상태였다. 그건 다름 아닌 알렉스에 대해 조사한 자료를 보고 난 뒤에서였다.
성격은 좀 4차원에 또라이 같아도 자료 조사 하나 만큼은 확실했던 미하일의 자료에서는 알렉스가 노아를 몇 년 동안이나 알아왔고 ‘좋아해 왔다’고 쓰여져 있었고, 노아도 알렉스의 그런 마음을 인지하고 있다고 나와 있었지만 그 글과는 별개로 그간 단 한번도 노아가 알렉스와 사귄 기록은 없었다. 몇 년 내내 한 결 같이 그저 파트너로만 유지해 왔던 것이다. 게다가 그 전에는 딱히 그렇다 할 연인도 없었다고 하니 마냥 기뻐할 수 만은 없었다.
회사 일로 매우 바빴어도 이안도 종종 연애라는 것을 해보기는 했고, 짧긴 했지만 진심으로 마음을 줬던 이도 존재했다. 하지만 노아는 그런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테너의 말마따나 노아는 성격이 순해서 다른 사람을 잘 따르긴 했어도 다른 이를 따르는 것과 좋아하거나 마음을 주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모든 사실이 밝혀진 이후, 노아가 종종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눈치챌 때면 이안은...
깊은 생각에 잠겨 걸음을 옮기던 이안은 속이 타는 마음에 물이나 마실 요량으로 식당으로 향했다. 그가 중간에 걸음을 멈춘 것은 누군가의 대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제임스와 노아의 목소리였다. 또 그 제임스란 놈과 있어? 이안이 인상을 썼다. 그가 제임스를 그토록 싫어하는 것에는 테너가 자신과 노아를 훼방 놓기 위한 인물이었기 때문도 있지만, 그보다는 가족 같은 친구라고 했을 때 노아가 제임스에게 얼마나 애정을 품고 있는 가를 눈치채고 말았기 때문도 있었다.
잠시 이를 악문 이안이 이내 태연한 얼굴로 가장하고 식당으로 들어서려다 순간 멈추고 말았다. 제임스가 노아에게 하는 말을 듣자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노아, 너 그 이안 밀러란 사람과 진지한 사이야?”
잠시 미간을 찌푸린 이안이 몸을 조금 돌려 둘의 시야에서 제 모습을 감추었다. 진지한 사이냐고? 아니, 결혼을 했는데도 진지한 사이라고 묻는 건 대체 무슨 목적이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안은 노아의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 돌아온 노아의 대답에 몹시 실망했다.
“아니, 그렇게 진지한 사이는 아닌데...”
노아가 쉬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거나 애정을 주지 않는다던 테너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래도 그게 아주 다른 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지, 안 그래? 애써 그렇게 다시 속으로 이안이 다짐하는데 제임스의 이어진 말에 이안의 몸이 굳었다.
“그렇게 진지한 사이가 아니라면, 노아… 그럼 나와 결혼해 주지 않을래?”
이안이 잠시 제 귀를 의심했다. 지금 무슨 소리야, 저게? 제임스가 노아의 단순한 친구라 믿어 의심치 않던 제 가정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다시 한번 노아가 제임스를 보았을 때 얼마나 반가워 했는지, 혹은 가족 같이 지내온 사이라고 말할 때의 표정을 떠올린 이안은 노아의 대답이 바로 돌아오지 않자 조금도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바로 그 자리를 떠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