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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노아가 아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눈을 깜박이는 동안 우아하게 타르트 한 조각을 삼킨 이안이 다시 포크로 한 조각을 깔끔하게 갈라 입에 밀어 넣었다. 노아가 물음표 여러 개를 띄운 것 같은 얼굴로 이안의 포크를 바라 보았다. 다시 맛있게도 타르트를 삼킨 이안이 태연하게 물었다.
“왜?”
당연히 이안은 노아가 왜 저런 얼굴로 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보기에도 굉장히 탐스럽게도 시럽이 발려진 타르트였으니 노아가 보기에는 얼마나 먹음직스러워 보이겠는가. 특히나 노아는 매 식사 때 요리사의 단 디저트를 먹을 때마다 그렇게나 행복한 표정을 지었으니까. 이안은 딱히 단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이 가게의 타르트는 제법 맛있긴 했다.
“아, 아니요…”
뭔가를 말할 것처럼 입술을 달싹거리던 노아가 결국 시무룩하니 대답했다. 아무렴, 아무리 단 것을 좋아한다고는 해도 자신의 것도 아닌데 달라고 말할 수는 없을 터였다. 이안은 흘긋거리는 것도 아니고 뚫어져라 자신을 바라보는 노아의 시선을 만끽하면서 여유롭게 반쯤 타르트를 먹었다가 슬쩍 운을 띄웠다.
“가게에서 여러 개 사왔는데… 너도 뭐 하나 먹을래?”
“네!”
이안은 순간 노아의 머리 위로 원래는 없는 귀가 쫑긋 서는 것만 같은 착시를 받았다. 응, 먹을래! 나도…! 나도… 하고 외치는 듯한 노아의 표정을 보면서 이안이 쇼핑백 안을 뒤적여 무언가를 꺼내 노아에게 던졌다. 그렇게나 우아하고 아름다운 장식이 올려진 디저트를 던진다는 사실에 기겁한 노아가 받고 보니 타르트 따위의 디저트가 아니라 바스락거리는 비닐 봉지 안에 담긴 슈크림 빵이었다. 점원이 서비스로 넣어준 것이었다.
도로 시무룩한 노아가 바스락거리며 비닐 봉지를 뜯었다가 도로 얌전히 덮어두었다. 노아가 어지간히 많이 실망한 것 같은데도 솔직히 말하자면 이안은 몹시도 즐거웠다. 사디스트의 본능이란 것은 그저 격렬한 관계를 가질 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남이 괴로워하는 걸 여러가지 방법으로 즐기는 것이니까.
“확실히 이 가게의 디저트가 맛있긴 하군.”
“다니엘이 그러는데… 100년도 넘게 이어져온 가게라고 하더라고요.”
이안이 타르트를 반쯤 먹고 포크를 내려두자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바라보던 노아가 다 먹은 타르트를 쟁반에 담아 고용인에게 치우게 만드는 모습에 다시 시무룩해졌다. 노아가 아닌 척 하려고 하면서도 자꾸 쇼핑백에 시선을 주는 게 얼마나 귀엽던지… 아주 더 괴롭혀 주고 싶다고 생각하며 이안이 시치미 뚝 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저녁을 먹으러 갈까.”
“네에…”
꼭 식사 시간 때문이 아니더라도 평소보다 더욱 허기가 져 보이는 노아가 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안은 지금 노아의 생각이 어떨지 훤히 보이는 듯 했다. 아마 저녁 때 요리사의 특제 디저트를 기다리고 있겠지. 하지만 과연 그 특제 디저트가 나오게 될까…
평소와 다름 없이 굉장히 맛있는 식사를 하고 난 뒤 노아는 후식으로 디저트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차만 나오자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왜 디저트가 나오지 않는 거지, 하고 의아해 하는 게 한 눈에 보였다. 안 나올 수 밖에. 왜냐면… 오늘은 자신이 특별히 노아를 위한 디저트 선물을 사왔으니 주방에 아무런 후식도 내오지 말라고 말을 해두었으니까.
그런 사정은 전혀 모를 노아가 어쩐지 조금 미심쩍어 하는 얼굴로 이안을 바라보았지만 이안이 뻔뻔한 태도를 고수하자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식사를 했는데도 왠지 좀 기운 없는 얼굴로 얌전히 차를 마시는 노아를 보면서 이안이 매끄럽게 웃었다. 노아가 기대만큼, 혹은 바라는 만큼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은 그 누구도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세상에는 괜히 조련이란 단어가 있는 게 아니지. 이안이 태연하기만 한 겉 모습과는 달리 속으로는 좀 음침하게 중얼거렸다.
***
‘오늘은 요리사가 후식을 깜박했나?’
아까 이안이 있는 대로 약을 올리며 딸기 타르트를 먹는 모습을 본 터라 무언가 단 것이 잔뜩 고팠던 노아가 저녁 식사에도 먹지 못하자 조금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안 그래도 요즘에 너무 잘 먹고 잘 놀은 탓인지 체중이 전보다 늘어서 주치의에게 단 것을 많이 줄이라는 경고를 들어 디저트를 저녁 시간에만 한정해 두었던 터다.
그런데 저녁 시간에도 나오지 않는다니 하루의 유일한 당분 섭취를 빼앗긴 노아는 의욕까지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눈 앞에서 보란 듯이 먹으라고 흔들어 대다가 두 번이나 빼앗긴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더욱 그랬다. 설탕... 크림... 시럽, 그리고 절인 단 과일... 중얼거리며 노아가 물이나 한 잔 벌컥벌컥 마셨다.
어쩔 수 없지, 오늘은 그냥 잠이나 자야겠다. 오늘 따라 몹시 단 것이 먹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어렸을 때처럼 주방에 들어가서 설탕이나 쨈 통을 끌어 안고 수저로 퍼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포기하고 노아가 침실로 향했다. 그런데 침실 문을 여니 뜻밖에도 이안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요즘 이안이 자주 퇴근을 일찍 하긴 하지만 대신 집에 와서 서재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기에 노아는 오늘도 이안이 서재에 가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애써 단 것에 대한 집착을 겨우 털어 놓은 노아의 눈 앞에 테이블에 얌전히 올려 둔 마카롱들이 보였다.
"오늘은 서재에 가서 일... 안 해요?"
"나도 쉬는 날이 있어야지."
대꾸하면서 이안이 매우 예쁜 파스텔 톤 포장지를 뜯자 안에서 색 색깔의 마카롱이 나왔다. 노아는 순간 날 먹어줘! 하는 귀여운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동시에 노아가 확신했다. 이안은 오늘 자신을 괴롭히려고 작정을 했다는 걸... 그렇지 않고서야 평소에는 겨우 하나쯤 먹고 마는 걸 이렇게 많이 사왔을 리가 없으니까.
노아가 멍하니 마카롱들을 바라보는 동안 이안이 마카롱을 하나 베어 물고는 내려 두었다. 이건 별로 내 취향이 아닌데,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노아가 하마터면 매우 내 취향이니 날 달라고 외칠 뻔 했다.
"마카롱이 제일 잘 나간다고 해서 사왔는데 다 별로 군."
단 것을 섭취하고 싶어 안달이 난 노아의 앞에서 이안이 마카롱을 한 입 씩 먹고 버리는 극악무도한 짓을 자행했다. 그도 모자라 더는 못 먹겠다며 이안이 나머지 마카롱은 닫아 도로 쇼핑백에 넣었다. 노아가 입술을 조금 파르르 떨었다. 나... 난 잘 먹을 수 있는데...
노아가 저도 모르게 목 울대를 울리며 바라봤다. 이안의 행동이 되게 치사해서 모르는 척 외면하고 자려고 해도 한번 솟아오른 단 것에 대한 갈망은 가라앉을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이안은 이내 마카롱보다도 더 대단한 걸 꺼내 들었다. 대체 얼마나 많이 사온 건지...
"앗, 그...그건..."
"왜?"
"...아니에요..."
걔는 그렇게 먹는 디저트가 아닌데... 시원하게 약간 사각거릴 정도로 얼린 다음에 먹으면 그처럼 맛있는 게 없는데... 노아가 저도 모르게 조금 울먹거리며 이안의 잔인한 디저트 파괴(?) 현장을 지켜 보았다. 대체 오늘 이안이 내게 왜 이러는 거지? 내가 어제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
안타까운 얼굴로 이안이 디저트를 제대로 먹지도 않고 깨작거리다가 버리는 모습을 보던 노아가 이내 다짐했다. 이안이 저렇게 무도하게 디저트를 학살하는 모습을 더 이상은 보지 않으리라. 나도 나름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그러나 잠을 자기 위해 샤워까지 하고 잠옷으로 갈아 입고 나온 노아의 눈에 보이는 것은 이안이 막 몹시도 끝내주는 작품을 하나 꺼내는 모습이었다.
그건 아까 처음 이안이 잔뜩 약을 올리면서 먹었던 것과 동일한 종류의 디저트였다. 처음 것과 마찬가지로 타르트였으나 때깔이 완전히 다른 타르트이기도 했다. 겨우 손바닥만한 크기의 빵 위, 달콤한 흰 생크림이 풍성하게 얹어진 위에 온갖 종류의 다양한 싱싱한 과일이 얹어져 있고, 그 위로 달콤하기 짝이 없는 시럽이 마치 유리처럼 잘 코팅이 되어 있었는데 마무리로 금가루까지 살짝 뿌려져 있었다.
이제까지 디저트는 안 먹어 본 것이 없이 온갖 종류의 디저트를 섭취해 본 노아지만 오늘 같은 날, 지금 같이 야식이 먹고 싶은 늦은 밤 시간, 아까처럼 내내 단 것이 눈 앞에 아른거리며 계속 약만 올려진 상태의 노아에게는 저 디저트처럼 맛있고 달콤해 보이는 것이 없었다. 먹고 싶다… 딱 한 입이라도 좋으니까… 노아가 침만 삼키고 있는 동안 이안이 마침내 포크를 빼 들었다. 노아가 아, 안 돼… 하고 저도 모르게 중얼거릴 때였다.
“한 번 줄까?”
아까 자신도 나름 자존심이 있니 어쩌니 중얼거린 것과는 달리 노아가 자존심 따위는 던져버리며 이안의 말에 냉큼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한 입만, 딱 한 입만 먹으면 좋을 텐데… 노아가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이안이 톡톡 소파 제 옆 자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노아가 냉큼 다가가 옆에 앉았다. 마치 구렁이처럼 이안의 팔이 슬그머니 옆구리를 감쌌지만 노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안이 건네 준 포크를 쥔 노아가 마침내 침만 흘리며 바라보던 아름다운 타르트에 포크를 가져다 댈 수 있게 되었다. 포크가 흰 생크림을 가르며 과일과 시럽을 함께 폭 떠서 입안에 넣는 순간 노아가 행복감에 나지막이 신음 소리를 냈다. 오늘 처음으로 맛 보는 달콤함을 느긋하게 만끽한 노아가 다시 포크를 가져다 댈 때였다. 콕 다시 포크를 찔러 넣는 순간 이안이 잽싸게 타르트를 치웠다.
"한 번 준다고 했지 두 번 준다고는 안 했어."
치사함의 극치를 달리는 이안의 행동에 어이가 없어진 노아가 입을 딱 벌리며 바라보았지만 오늘의 이안은 굉장히 뻔뻔했다. 눈을 살짝 가늘게 뜬 이안의 얼굴을 보아하니 노아가 안달을 내는 모습을 즐기는 것이 분명했다. 아예 맛을 안 보았으면 모를까 저 타르트가 얼마나 맛있는지 이미 알게 된 이상 노아는 쉬이 물러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에는 대가가 있기 마련이야."
"무슨 대가요?"
"글쎄... 생각 좀 해보고."
느긋하게 말하면서 타르트를 든 손을 아슬아슬하게 한 바퀴 빙그르르 돌려 보이는 모습에 노아만 안달이 났다. 쇼핑백에는 알록달록한 사탕이 담긴 유리병만이 있었다. 그 말은, 이안의 손에 들린 저 타르트가 노아가 맛 볼 수 있는 유일한 수제 디저트라는 이야기였다. 노아가 호시탐탐 이안의 손에 들린 타르트를 노리는 동안 이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일이나 모레 저녁에 시간 좀 내봐."
어차피 저녁에 딱히 할 일도 없었기에 노아가 냉큼 그러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안이 노아의 앞에 타르트를 도로 내려 놓았다. 두 번째 달콤한 디저트를 맛 보자 마음대로 먹을 수 없어 그런지 노아는 더욱 이안의 타르트가 탐이 났다. 어째 이안이 자신을 손바닥 위에 놓고 굴리는 것도 같지만 아무렴 어떠랴...
"한 입 먹을 때마다 하나씩이에요?"
"당연하지."
하나 먹을 때 하나도 아니고, 한 입에 하나라니 치사하게... 조금 입을 삐죽거리면서도 노아가 순순히 굴었다. 어쨌든 노아는 남이 명령하듯 구는 행동에 굉장히 익숙해져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어째 이안과 좀 거칠면서도... 즐거운 관계를 지낸 지 좀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지난 번 이안이 완전히 화났을 때 이후로는 너무 시달린 나머지 노아는 당분간은 섹스의 'ㅅ'자도 떠올릴 엄두를 내지 못했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또 달랐다. 슬그머니 욕망이란 것이 고개를 쳐드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노아가 지금 이 분위기가 왠지 조금 미묘하다고 생각했을 때쯤 이안이 조금 거만하게 제안했다. 노아에게는 좀 뜻 밖의 제안이기도 했다.
"키스해 봐."
"네?"
"키스해 보라고."
굉장히 당당한 모습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걸 요구하는 것 같기도 해 노아가 별 다른 저항 없이 몸을 조금 일으켜 세웠다. 어쩐지 순간 이안의 입가에 좀 쓴 미소가 스쳐 지나가는 것도 같았지만... 워낙 순식간이라 조금 긴가민가하며 노아가 이안의 입술을 핥았다. 입술을 꾸욱 문지르고 혀를 내어 단단히 다물린 틈새를 핥자 입술이 조금 벌어지며 이내 이안이 노아의 목덜미를 손으로 꽉 잡아 눌렀다.
"으응..."
약간 억눌린 신음 소리를 내며 노아가 이안의 잡아 먹을 듯한 입맞춤을 받아 들였다. 워낙 며칠 만이라 혀를 좀 얽고 입술을 깨무는 정도의 행위인데도 노아는 슬쩍 몸이 달아 오르는 것만 같았다. 어느 새 디저트의 달콤한 냄새보다도 더 강력한 이안의 알파 페로몬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조금 숨을 헐떡이며 떨어져 나간 노아가 약간 멍한 눈으로 이안을 바라 보았다. 이상하게도 지난 번 이안에게 지독하게 괴롭힘 당했던 그 날 밤 이래로 이안의 페로몬만 접하면 조금 취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안은 마치 위에서 내려다 보는 것 같은 시선으로 노아를 바라보다가 이내 반쯤 남은 타르트를 집어 올렸다.
그리고는 이안이 타르트를 자신의 다리 사이에 내려 놓았다. 자신의 오른발 바로 옆이었다. 노아가 조금 놀라 눈을 깜박이는 사이 이안이 몹시도 매력적으로 웃었다. 그 미소를 보자 노아는 가슴이 좀 설레는 것도 같았다... 이안이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더 먹고 싶으면 바닥에 있으니 재주 것 먹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