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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어디 보자, 무슨 색 눈이 좋을까…”
미하일이 몹시 흐뭇한 얼굴로 안구 진열대의 앞에 서서 보존 액에 담겨 둥둥 떠다니는 안구들을 살펴 보았다. 한 쪽에는 기름칠 되어 넓게 펼쳐진 인조 가죽이 있지, 다른 한 쪽에는 이빨이니 손가락들이 널려 있는 데다가 벽 한 쪽 면은 수많은 눈알들이 둥둥 떠다니니 흡사 무슨 고어 영화에나 나올 법한 방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침내 미하일이 조심스럽게 통 하나를 꺼내 들었다. 호박색의 눈알 한 쌍이 둥실 거리는 통이었다. 미하일은 손에 달라 붙는 재질의 장갑을 낀 뒤 조심스럽게 눈알 하나를 들어 올렸다. 자고로 눈이란 것은 아름다운 외모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점이었다. 미하일은 항상 안드로이드의 모든 부품 중에서도 눈을 가장 많이 신경 썼다.
안면 조직이 벗겨져 온갖 정교한 기계 부품이 보이는 곳, 텅 빈 한 쌍의 골격 하나에 조심스럽게 안구를 장착한 미하일이 막 다른 한 쌍도 집어 들 때였다… 철썩하고, 아니 더 매섭게 퍽 하고 사납게 손 하나가 미하일의 손등을 갈기는 바람에 미하일의 손에서 안구가 툭 떨어져서는 작업대 위를 데굴데굴 굴러 기름통에 빠지더니 푸시시 하는 소리를 내며 쭈그러들었다.
“아아… 뭐 하는 짓이야? 내가 특별히 아꼈던 색이라고.”
“지금 사람 세워두고 뭐 하는 짓이야. 정말 죽고 싶어?”
이안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그 기세가 하도 살벌하기에 미하일이 아쉬운 눈으로 손을 뗐다. 뭐, 오드 아이도 나쁘지는 않겠지. 호박색과 파란색이라… 오, 컨셉을 고양이로 하는 거야. 안드로이드를 만들 때에는 항상 다른 세계로 빠져들곤 하는 미하일은 고양이 형 안드로이드에서 동물 시리즈 안드로이드까지 생각이 뻗어 나갔다가 이안이 자신을 죽이려 들기 직전에서야 가까스로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안 그래도 미하일에 대한 감정이 매우 좋지 않은 이안이 말을 실행으로 옮길까 고민하며 흘깃 안드로이드 관절을 조이는 용도의 커다란 스패너를 바라보자 미하일이 흠흠 헛기침을 하며 스패너를 집어 뒤로 감추었다.
“무슨 일인가, 친구.”
“헛소리 지껄이지마. 언제부터 네 놈이 내 친구야?”
뭐, 그건 그렇지. 서로 친구 할 정도로 이안과 미하일이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다. 미하일은 눈을 무섭게 번득거리는 이안을 보자 노아 프로스트에게 속아 넘어가는 이안 밀러를 보며 즐거워하던 지난 제 자신이 아주 조금 후회 되었다. 안드로이드를 박살 낸 게 짜증나서 재미있는 상황 좀 즐겨 보자는 게, 이러다가는 이안이 여기 있는 안드로이드 부품을 죄다 아작 내게 생겼으니까...
“너, 노아가 이곳 회원인 거 알고 있었지. 감히 모른다고 발뺌할 생각은 하지도 마.”
“그게… 다… 둘이 잘 되라고… 한 건데…”
미하일이 능청스럽게 말 꼬리를 흐려가며 말하자 이안이 입 꼬리를 올려 웃었다. 안드로이드 하나 더 박살내는 꼴 보고 싶어? 아니, 박살 나는 게 하나 뿐만이 아닐 텐데… 이안의 협박이 매우 불쾌했지만 어쩔 수 없이 미하일이 백기를 들었다. 내가 왜 작업실에서 이안 밀러를 보자고 한 걸까, 이제서야 제대로 후회하면서. 이래서 안드로이드 작업할 때는 문제야. 이 똑똑한 내가 꼭 나사 하나 어디 흘린 것 같거든…
“알았어. 솔직히 네가 하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지켜봤어.”
“……”
미하일이 지나치게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이안은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사실대로 알려 주려고 했는데 네가 그 날 안드로이드를 그 따위로 만들어 가져왔잖아. 미하일이 덧붙이면서도 불안했는지 이안의 주변에서 슬금슬금 중요한 부품들을 치웠다. 가령 예를 들면 안드로이드에서 심장에 해당하는 가장 중요한 메인 동력이라던가… 그 심장보다도 중요한 사람의 것을 그대로 떼어다가 만든 것만 같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인조 성기라던가…
“뭐… 결과적으로 잘 된 것 아냐? …아니면 말고.”
이안의 표정을 보자 전혀 잘 된 게 아니란 걸 깨달은 미하일이 건성건성 대꾸했다. 그는 어서 이안과의 대화를 끝내고 아까 자신이 만들다 만 안드로이드를 마저 손 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안은 전혀 그럴 생각이 아닌지 작업대에 걸터앉으며 내부 부품이 다 드러나도록 앞 면이 열려 있는 안드로이드의 복부에 손을 뻗었다. 이안의 손가락에 전선 하나가 휘감기자 미하일의 얼굴이 조금 창백해졌다.
“그건… 건들면 안 돼. 걔가 끊어지면 그 안드로이드는 발기 부전이 된다고.”
“오, 그래?”
이안의 손가락이 전선을 쭉쭉 잡아 당기자 미하일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결국 초조해진 미하일이 무표정한 이안의 얼굴과 금방이라도 전선을 뜯어 낼 것 같은 손가락을 바라보며 두 손을 들었다.
“알았어, 대체 뭘 원하는데 나한테 이래.”
“마음 같아서는 감히 날 속인 네 놈을 아주 죽여버리고 싶지만… 그러면 내 사업이 곤란해 지니까 참아주도록 하지. 노아에 대해서 아는 건 다 말해.”
“정보료는?”
이안의 손가락이 움직이며 전선에서 툭 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던 미하일이 결국 더 이상은 이안을 놀리지 않기로 했다.
“자, 여기 있어.”
잠시 기다려 보라며 밖으로 나갔다 온 미하일이 이안에게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언젠간 이안이 이렇게 노아 프로스트를 조사할 일이 있을 줄 알고 미리 작성해 둔 서류였다. 비싼 값을 받고 팔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되었다. 뭐, 그래도 재미있었으니까.
“이혼할 때 쓸 거라면 딱히 별 소용은 없을 거야. 원한다면 유리한 자료를 따로 조사해 줄 수는 있는데.”
“닥쳐.”
이안이 이를 악물며 말하고는 팔락팔락 넘겼다. 안에는 과거에 노아가 누구와 관계를 했는지, 혹은 언제부터 몇 번이나 이 클럽에 다녔는지도 모조리 적혀 있었다. 그 리스트에 나온 사람들의 이름이 몹시 거슬렸지만 이안이 원하는 건 과거의 일이 아니었다. 결혼 이전의 리스트를 지난 이안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추었다. 결혼 이후 날짜로는 자신의 이름 외에는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이안의 구깃 했던 미간이 그제서야 좀 펴졌다.
“오… 설마… 이혼 안 하려고?”
“좀 닥치라고 했지.”
“그건 좀 놀라운데. 내 예상 밖이야. 난 그대로 너네 둘이 이혼할 줄 알았거든.”
자신의 기준에서 재미있는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미하일이 조금 들뜬 목소리로 떠들었다. 이유가 뭐지? 네가 노아 프로스트에게 마음이 좀 있는 건 알았어도 배신감을 이기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 그렇지… 아니면 이 것도 나름 보복의 일환인 건가? 아냐, 그건 이미 실패한 계획이잖아.
이런 불쾌한 서류 따위는 여기서 읽고 그대로 자리에서 폐기하고 떠나려던 이안이 짜증스러움과 분노로 손을 조금 떨었다. 이런 놈인 건 알고 손을 잡은 것이지만 저렇게 짜증나게 굴 줄은 몰랐는데…
이안은 일단 미하일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서류를 죽죽 읽어 내렸다. A부터 시작하니 알렉스가 노아의 인맥 가장 상단에 와 이었다. 그 뒤로는 알리샤, 벤자민, …헤더… 등등… 노아의 가족에게나 달리는 주의 표시가 알렉스의 이름 앞에도 달린 것을 보고는 심한 질투심을 느꼈다가, 이안이 J로 넘어가 마찬가지로 주의 표시가 달린 제임스 프레넷에 대해 막 읽으려는 순간 미하일이 놀랍다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세상에, 혹시 정말로 노아 프로스트를 그렇게나 좋아하는 건가? 이안은 거기서 짜증이 폭발하고 말았다. 그래서 안드로이드의 내부 전선을 한 움큼 쥐어 잡고 뜯어냈다.
“안 돼!!”
미하일이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안드로이드에게 달려 들었다. 안 돼, 엠버…! 이제 곧 완성이 코 앞이었는데! 오, 엠버… 미하일이 몹시 서글퍼 하면서 뜯어져 주렁주렁 늘어진 전선을 쥐고 슬퍼했다. 짜증나는 것도 짜증나는 것이었지만 생긴 건 이름처럼 무슨 천사처럼 생긴 놈이 4차원이다 못해 미친 것 같다는 걸 잘 알고 있던 이안이 미하일이 귀찮게 굴기 전에 작업실을 나갔다. 서류는 저택에 돌아가서 봐도 늦지 않을 것이다.
미하일의 절규를 뒤로 한 채 이안이 서류를 들고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니엘이 따라 붙었다. 척 봐도 제 상사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걸 알아 챈 다니엘의 얼굴이 조금 우울해졌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이안은 요 근래 꽤나 저기압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0분 뒤에 본사에서 일정이 하나 있습니다, 회장님.”
“취소하고 내일로 미뤄.”
하나 있는 일정을 취소한다는 것은 바로 퇴근을 의미했다. 안 그래도 오늘 유독 저기압이던 이안과 함께 다니고 싶지 않던 다니엘이 지나치게 좋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내일 뵙겠다며 이안을 배웅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생각이 복잡했던 이안은 다니엘을 쳐다 보지도 않고 대기하고 있던 리무진에 올라탔다.
노아의 몰랐던 모습에 대해 알고 난지 며칠 째, 요즘 이안의 기분이며 마음 상태는 하루에도 수 십 번을 뒤집히기를 반복했다. 완전히 다 지워지지는 않았지만 그 동안 노아를 괴롭혔다고는 해도 그나마 노아에게 트라우마나 어떠한 마음의 상처를 준 것이 아니었다는 안도감이 드는가 하면 한 편으로는 배신감도 들고… 배신감이 드는 와중에 노아의 모습을 보며 사랑스러움 따위를 느끼는 자신에 대한 당혹스러움도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끝의 끝에 남는 감정은 실은 자신을 좋아했던 적이 없다던 노아에 대한 좌절감과 고통이었다. 이안은 이전 에는 단 한 번도 자신이 누군가를 붙잡기 위해 그 따위 우스운 계약서 따위를 쓰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몹시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자존심이 상하는 것 쯤은 감수할 만큼… 이안은 노아를 원했다. 옆에 두는 것이 괴로울지라도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노아를 보는 것 보다는 나았다. 게다가 괴로운 것만은 아니었으니까.
“잠시 멈추도록 하세요.”
“예, 이안님.”
기사에게 멈추라고 말한 뒤 이안이 리무진에서 내렸다. 리무진이 부드럽게 멈춰 선 곳은 요즘 이안이 노아를 위해 종종 들리곤 했던 디저트 가게였다. 다소 소박하다고 해도 좋을 만한 외관의 가게 안은 몹시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연한 오렌지색 조명으로 화사하게 밝혀둔 내부 진열대 위로 손대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장식이 되어 있는 온갖 디저트 들이 눈에 보였다. 일반 가게와 다른 점이라면 디저트 하나하나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어서 오세요.”
요 사이 이안의 얼굴을 외운 점원이 상냥하게 인사했다. 달콤한 디저트를 주로 취급해서 그런지 오메가나 베타만이 점원인 이 가게의 특성상 마찬가지로 오메가인 점원이었다. 내부를 쭉 둘러보던 이안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서 멈추었다. 한 눈에 봐도 달콤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 디저트가 마치 왕이라도 되는 것처럼 진열대 제일 위에 위치해 있었다.
망설임 없이 그 디저트를 집어 든 이안이 몇 가지를 더 고르고는 카운터로 다가갔다. 잘생긴 얼굴과 훅 풍기는 알파 페로몬에 점원이 얼굴을 좀 붉히면서 은근슬쩍 빵을 하나 더 넣어줘도 이안은 그저 시큰둥할 따름이었다.
마침내 얼마인지도 모를 포장된 디저트를 들고 이안이 리무진에 탔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달콤한 향기가 풀풀 났다. 이안이 흘깃 자신이 산 디저트들을 내려다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저번에 이 디저트 가게가 가장 반응이 좋았지… 그러고 보면 노아는 은근히 편식이 심했다. 단 것도 좋아하고, 안 먹는 음식도 있고… 완전히 애 입맛이다.
“이안, 오셨어요.”
이안이 저택에 들어서자 퇴근할 때는 항상 그렇듯이 노아가 하이든과 함께 마중 나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언제 대형사고가 있었냐는 듯 해맑은 얼굴이었다. 그래, 이것도 안도할 만한 점이었지. 이안이 속으로 생각했다. 노아는 제 취향을 속였을지는 몰라도 성격까지는 가장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전이나 지금이나 딱히 다른 점이 없는 걸 보니.
귀엽게도 이안의 손에 들린 익숙한 디저트 가게 쇼핑백을 보고 노아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지만 이안은 모른 척 하면서 하이든에게 코트를 건네주고는 응접실로 향했다. 쪼르르 제 뒤를 따라오는 게 어쩐지 주인이 간식을 손에 들었을 때의 애완동물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이안이 피곤한 것처럼 어깨를 주무르며 소파에 앉자 노아가 홀린 듯이 자신도 소파에 앉았다.
“저녁 먹기 전이지만 하나쯤은 먹어도 괜찮겠지?”
“그럼요, 괜찮아요!”
오늘 샀던 디저트 하나를 꺼내면서 이안이 생각했다. 노아의 근처에 그렇게 사람이 많이 꼬였던 이유를 잘 알겠다. 이건 뭐, 이렇게 꾀여 내기가 쉬우니… 앞으로 잘 단속 좀 해야겠네. 그리고 노아의 눈이 반짝거리는 걸 보면서 시럽이 곱게 발려 반들거리는 타르트를 꺼낸 이안이 포크를 꺼내… 먹음직스럽게 한 조각 베어…
노아가 보는 앞에서 그대로 자신의 입으로 밀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