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7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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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회장님께서는 부재중이십니다.”

 지금 이안이 안에 있냐는 노아의 질문에 다니엘이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 다니엘의 눈 밑은 조금 퀭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노아와 대화하고 있는 중에도 다니엘은 서류 한 아름을 품에 안은 채 연신 힐끔 시계를 확인하곤 했다.

 “갑자기 무슨 변덕이신지 저도 얼굴을 못 본지 벌써 사흘 째에요. 제가 대신 일을 처리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는데 말입니다.”

 다니엘이 푹 한숨을 쉬면서 푸념했다. 이안이 회사에도 아예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노아가 눈을 깜박였다. 회사에도 안 나올 줄은 몰랐는데. 그나저나 서류가 무거워 보여 도와 주려고 손을 뻗자 다니엘이 괜찮다는 의미로 손사래를 치며 물었다.

 “설마 저택에도 돌아오지 않으신 겁니까?”

 “그게… 네에.”

 노아의 말에 다니엘이 또다시 한숨을 쉬며 한탄을 했다. 나이가 몇 인데 부부 싸움에 가출이나 하신담… 그러다 바빠서 이만 실례하겠다며 다니엘이 인사를 하고는 허둥지둥 회장실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보던 노아가 뒤늦게 의아해했다. 그런데 내가 언제 다니엘에게 이안과 자신 사이에 불화 (거의 일방적인 것이긴 했지만)가 있다는 비슷한 말이라도 한 적이 있었나? 부부싸움(?)은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이안을 찾아 회사까지 왔던 노아가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채 걸어 나오다가 잠시 회사 로비에 털썩 앉았다. 그러니까… 다니엘의 말을 빌리자면, 오늘은 이안이 소위 ‘가출’을 한지 벌써 사흘 째 되는 날이었다.

 이혼을 하자고 한 다음 날 아침, 노아는 좀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식당에 내려 왔다. 그랬더니 테이블에는 제 식사만 차려져 있는 게 아닌가. 최근에는 자주 식사를 같이 하긴 했어도 종종 업무상 새벽같이 일찍 나갈 때가 있었기 때문에 노아는 이번에도 그러려니 여기며 아침 식사를 했다. 그러나 그 날 점심 때도, 그리고 저녁 때도 이안은 식사를 같이 하기는커녕 아예 저택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첫 날에는 일이 많이 바쁜가 보다 하던 노아는 셋째 날쯤이 되어서야 이건 회사 일이 바쁜 게 아니라 이안이 자신을 고의로 피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아니, 차라리 자신이 저택을 나가겠다 말하던 게 정말일 줄은 나도 몰랐지. 

 이렇게 이혼을 하지 않으려는 이안의 굳건한 의지를 보자 노아는 또 제 계획이 휘청휘청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 상태에서는 이혼을 하고 싶어도 이혼은커녕 이안을 만나는 것 자체도 힘들었다. 이게 뭐야? 자칫하다간 이안 사업 말아 먹게 만들 것만 같아서 이혼 하려고 했더니 그것도 쉽지 않고, 게다가 되려 저택 주인을 집에서 내쫓아버린 꼴이 되었잖아. 

 “옴므파…”

 …탈… 하고 무의식적으로 단어를 내뱉던 노아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내가 지금 무슨 단어를 말하려고 한 거지? 하지만 생각해보니 꽤 그럴싸한 것 같기도 했다. 되게 순진한 척 하면서 즐길 만큼 즐겨, 사,사…사랑에 빠지게 만들어, 사업적인 손해를 감수하고도 제 편 들게 해... 하나하나 떠올려 보던 노아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음, 역시 안 되겠어. 일단 이안을 찾아서 저택에 좀 되돌려 놓자. 하이든도 매일 걱정하고 있고…

 노아는 오늘도 다시 이안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통화 음이 몇 번 울리다 말고 뚝 끊어지고 말았다. 전화가 오는 걸 알긴 하지만 받지 않겠다는 완곡한 의미의 거절이었다. 전화가 이렇다 보니 문자 메시지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어딜 가야 이안이 있을까…”

 주인님이 이렇게 오래 저택에 돌아오지 않으신 건 처음이라며 걱정하는 하이든과, 이안이 없는 바람에 다크써클이 심하게 지도록 피로에 시달리고 있는 비서 다니엘을 떠올리자 양심이 쿡쿡 찔리는 걸 느끼며 노아가 궁리하다가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핸드폰이 울렸다.

 “앗…”

 드디어 이안이 연락을 받는 건가 싶어 재빨리 액정을 본 노아가 움찔했다. 액정에 뜬 건 이안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이름이었다. 조금 긴장하면서 노아가 조심스럽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애써 매우 쾌활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노아니? 

“네, 아버지. 어쩐 일이세요?”

 테너의 말투는 매우 사근사근했지만 그랬기에 노아가 오히려 더 긴장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뚝뚝한 말투였다면 오히려 괜찮았을 텐데… 

 -집에 한 번 들릴 생각은 없느냐? 결혼 후에는 도통 얼굴 보기가 힘들구나. 세 달이나 거기서 지냈으면 며칠 정도는 집에서 보내도 괜찮지 않니.

 “아…”

 윌리엄과 한 전화 통화 덕에 노아는 지금 테너의 말에 따라 집에 들어가면 다시 밀러 가의 저택에 돌아가는 건 요원한 일이 되리란 걸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돌아가는 것 뿐이랴, 윌의 말대로 아버지가 화가 난 상태고, 지난 번 밀러 가 저택 방문 일로 아직까지도 이안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면 (아마 그렇겠지만) 아마도 그 자리에서 일사천리로 이혼까지 진행되고도 남겠지… 노아는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아가 테너의 말에 답을 얼버무리거나 거절하는 대신 여전히 밝은 어조로 이렇게 대답했다.

 “집에 가서 지내면 저야 좋죠. 그럼 이 삼 주 뒤에 방문하도록 할게요. 이안이 일이 바빠서 당장 시간을 내진 못하거든요. 지난 번에 제 몸이 좋지 않은 바람에 이안 혼자서만 저택의 생일 파티에 갔다 왔던 게 많이 아쉬웠어요.” 

 -음…그,…그래. 둘이… 같이 오면 더 좋겠지.

 간접적으로 이안과 함께 방문하겠노라 알리는 말에 테너가 차마 싫은 내색은 하지 못하고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아마 테너는 노아 혼자서만 방문하기를 바랬을 것이었다. 노아는 생글거리는 목소리로 날짜가 정해지는 대로 방문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이젠… 정말로 이안을 찾아 봐야겠다.”

 설마 외국 같은 곳에 나가 있는 건 아니겠지. 에이, 몰라… 그 때까지도 귀가하지 않거나, 아예 해외로 뜬 거라면… 어쨌든 난 내 할 일은 다한 거야. 해외로 뜬 사람을 찾는다니, 노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장 지금도 이 근방에서 이안이 있을만한 곳은 찾아 보았지만 다 허탕을 치지 않았나. 시내나 이 근처 지역에 소유한 별장에도 이안은 없었다. 그렇다고 노숙을 하지는 않을 테니 어디 호텔에서 자고 있을 텐데, 최소 4성 급으로 잡는다고 해도 이 근처에 호텔이 몇 개인지…

 “아? 그러고 보니 호텔…”

 노아가 불현듯 Tear를 떠올렸다. 겉으로는 완벽한 호텔로 위장하였으나 입구만 넘어서면 다른 세계가 펼쳐지기도 하는 곳이면서 이안이… 사장으로 있는 곳. 

 “내가 왜 그 곳 생각을 못했을까…”

 그 동안 워낙 아닌 척 하려고 애를 써서 자연스럽게 제외를 해버린 모양이었다. 내가 왜 Tear를 생각을 못했을까, 내 마음의 고향(?)이거늘.

 “좋아, 그럼… 간 김에 쇼핑도 좀 하는 거야.”

 지난 번에는 이안에게 들켜 본의 아니게 오해를 하게 만들었지만, 노아는 이번엔 안 들키고 잘 할 자신이 있었다. 그 날 이후로 혹시나 몰라 제 물건을 택배로 Tear로 보내 보관 서비스에 맡긴 뒤 조금도 욕구를 풀지 못한 게 정확히 이안이 가출한 날 만큼이었다. 가서 맡겨둔 물건도 조금 찾아오고… 한 두 개 정도 신상도 사고…

 이번에는 만약에 들킬 경우를 대비하여 자신이 이안을 찾으러 왔다는 좋은 변명도 있었다. 노아는 회사 앞에서 대기 중인 리무진을 살곰살곰 피해 상점에 들려 후드가 달린 옷을 사 갈아 입었다. 후드를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쓰고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단단히 착용하자 대단히 수상해 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누군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모양새가 되어 노아가 만족했다.

 게다가 어차피 Tear 안에서는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흔하기도 하고… 선글라스와 마스크는 잘 접어 주머니에 밀어두며 노아가 택시를 타고 Tear로 향했다. 택시에서 내리자 마자 노아가 재빨리 다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썼다. 좋아, 이제 들어가기만 하면 되겠다.

 오랜만에 Tear에 들어오자 노아는 몹시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세 달만이지, 아마. 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꼭 들렸지만 요즘에는 통 들릴 수가 없었다. 지난 번에는 겨우 입구 구경만 했었고. 

 “이안이 여기 있다면 아마 꼭대기 층에 있겠지…”

 호텔의 상층부는 호텔 룸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이안은 더더군다나 사장이기까지 했으니 만약 이곳에 있다면 가장 좋은 룸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 노아는 제 소중한 장난감도 걸 수 있었다. 안 그래도 Tear는 보안이 철저한 장소니 최상층이면 꽤 보안이 삼엄하겠지. 이안이 여기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 방법이 없을까…

 노아는 잠시 제 자리에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기저기 끈적한 분위기를 풍기며 지나가는 이들이 보였지만 그 누구도 이안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줄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아니면 뭔가 있는 척 사장과 이야기를 하겠다고 할까? 노아 프로스트가 보러 왔다고 전해주세요, 하고… 

 혹은 그 전에 먼저 Tear의 성인용품점에 들려도 괜찮겠구. 노아가 그 자리에 서서 고민했다. 이안을 만나고 나면 무언가 살 기회가 사라지게 되지 않나. 아무래도 쇼핑을 먼저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며 노아가 고민을 끝내고 고개를 들자 한 켠에서 웬 남자가 힐끔힐끔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Tear에서는 워낙 흔한 일이었던 지라 무시하며 노아가 성인용품점이 있는 층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낯익은 직원이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노아가 성인용품점에 올 때마다 살갑게 맞이했던 직원이었다. 노아가 워낙 얼굴을 가리고 있어 못 알아 보는 눈치였다. Tear는 모든 것을 사용하는 데에 회원 증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차피 좀 있다 계산을 할 때에는 회원 증으로 자신이 누군지 알게 될 테지만… 어쨌든 지금은 모르는 척 하며 노아가 총총 진열장으로 향했다.

 “꽤 많이 나왔네…”

 Tear는 꾸준하게 매 달마다 신상품이나 이전의 단점을 보완하여 다시 제품을 내놓는데, 노아가 오지 않은지 세 달 째니 처음 보는 물건들이 몇 개 있었다. 상품 진열대를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노아가 마른 침을 꼴딱 삼켰다. 아, 이거 좋겠다… 얘도 괜찮아 보이고…

 어차피 이안이 이렇게 나오는 이상 당분간 자신의 취향에 맞는 플레이는 물 건너 갔다고 생각한 노아는 이렇게 해서라도 제 욕구를 풀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너무 많이 사면 좀 그러니까, 이왕이면 일반 물건 같이 생긴 걸 사자며 노아가 애써 ‘Monster’라는 이름으로 따로 분류가 된 진열대를 떠났다.

 중간에 잠시 중앙에 위치해 있는 남성용 안드로이드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노아가 마침내 제가 목적한 곳에 당도해 진열대를 둘러 보았다. 일반 물건처럼 보이게 만든 성인용품 진열대로,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지만 노아는 그럭저럭 안마기처럼 생긴 바이브레이터와 열쇠고리처럼 생긴 유두클립을 골라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돌아선 노아가 카운터로 향했다. 그런데 카운터에 제법 낯익은 사람이 서서 지키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성인용품점의 관리자이자 온갖 기구들을 개발하는 주인이나 마찬가지인 남자였다.

 “안녕, 노아. 오랜만에 보네.”

 시치미 뚝 떼며 계산대로 다가가던 노아가 흠칫 놀랐다. 순간 마스크나 선글라스가 벗어졌나 싶어 더듬거렸지만 멀쩡히 잘 붙어 있는 상태였다. 여기 오는 도중에 아는 사람을 둘 셋 정도 만났지만 아무도 자신이 노아인 걸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미하일이 씩 웃었다.

 “안녕하세요, 미하일. 저어, 어떻게 저인 걸 알았어요?”

 “내가 좀 눈썰미가 좋거든. 사람 찾는 일을 몇 번 해봐서.”

 사람 찾는 일…?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노아가 굳이 귀찮게 회원 증을 꺼낼 필요가 없다는 걸 기쁘게 생각하며 고른 물건을 카운터에 올려 놓았다. 미하일을 보는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보통 미하일은 안 쪽 사무실이나 작업실에 틀어 박혀 있어 한 두 달에 한 번 얼굴을 볼까 말까 할 정도로 바쁜 사람이었으니까.

 “오늘은 겨우 그것만 사는 거야? 게다가 이 걸로는 충분하지 않을 텐데.”

 미하일이 노아가 내려놓은 손바닥 반절 정도나 할법한, 사실 로터에 가까울 정도로 작은 바이브레이터와 유두 클립을 바라보면서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게 사정이 좀 있어서요…”

 “흐음, 가만 있어봐. 다음 달 신제품인데… 자.”

 미하일이 꺼낸 것은 영락 없이 좀 얇은 볼펜처럼 보이는 물건이었다. 중간 부분에 미끄럼 방지를 위해 좀 울퉁불퉁한 것까지 아무리 봐도 볼펜이었다. 노아가 의아해 하자 미하일이 좀 자랑스러워 하는 말투로 설명했다.

 “볼펜처럼 보이지만 요도 플러그야.”

 “아...”

 지난 번에 이안이 사용했던 것보다 좀 더 두껍다 싶긴 했지만 하긴 모양새가 쓸 곳이 거기 밖에 없다 싶어 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미하일의 말에 눈을 반짝이고 말았다.

 “더 멋진 건 전기 자극도 되거든. VIP 손님이니까 특별히 보너스로 줄게.”

 노아는 사양도 하지 않고 고맙다고 냉큼 챙겨 들었다. 즉시 작동을 시켜 보니 쥐고 있는 손가락이 좀 저릿저릿한 게, 적당히 요철도 있고… 숨기기 좋게 크기도 작고, 일반인이 보면 볼펜이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제품이었다. 소독이 좀 까다롭겠지만 그쯤이야, 뭐.

 “그런데 요즘 Tear에 방문이 뜸하던데. 결혼 생활이 꽤 마음에 드나 봐.”

 느릿느릿 계산하면서 미하일이 물었다. 노아는 잠시 미하일이 어떻게 제 결혼 이야기를 알고 있나 궁금해 했지만 어차피 알렉스 말고도 다른 사람에게도 결혼 이야기를 좀 말했으니 미하일까지 흘러 들어갔을 수도 있겠다 쳤다.

 “음, 그냥 좀…”

 노아가 헤헤 웃으며 얼버무렸다. 물건 계산을 다 끝낸 미하일이 웬일인지 친절하게도 직접 포장하고 Tear의 전용 상자에 담아주면서 물었다. 결혼한 사람은, 어때? 미하일이 준 볼펜에 잔뜩 관심을 쏟고 있던 노아가 눈을 깜박였다. 

 “되게… 절륜해요.”

 “하긴 지금 풍기는 페로몬을 보니 잘 알겠네. 어지간히 질투가 심한 모양인 걸.”

 이안의 알파 페로몬에 익숙해져 이제는 거의 구별도 못하는 노아가 그런가? 하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미하일의 말을 듣고 보니 좀 짙은 것도 같고. 

 “절륜하면 딱 네 마음에 들 텐데, 그럼 왜 여기에 온 거야?”

 쇼핑백에 완전히 물건을 담은 미하일이 흠… 하고 좀 고민하더니 카운터를 뒤적여 무언가를 한 움큼 집어 와르르 넣어주었다. 얼핏 보니 콘돔이며 젤이며… 심지어 일정 액수 이상 사야만 주는 에그까지… 오늘따라 후한 미하일의 인심에 기분이 좋아진 노아가 술술 털어 놓았다.

 “전에는 되게 좋았는데, 요즘에는 너무… 좀…”

 “전 같지 않다고?”

 “으음… 알잖아요, 제 취향. 전 좀 거칠게 하는 게 좋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안 그래서…”

 그렇게 온갖 샘플이며 증정품을 넣고도 뭐가 부족한지 계속 뒤적이던 미하일이 노아의 말에 히죽 웃었다. 

 “물론, 너라면 조금 정도가 아니라 아주 거칠게, 이겠지만. 마이클이 그러던데 지난 번에 지하 2층에서 아주 끝내줬다며.”

 마이클? 아, 마이클. 노아가 조금 기억을 뒤적인 끝에서야 마이클이 누군지 떠올렸다. 결혼하기 전, 마지막으로 클럽에서 알렉스와 함께 경찰관과 범죄자 플레이를 했을 때 경찰 역으로 같이 참가했던 베타다. 그 사이 미하일은 자, 하면서 마지막으로 알뜰하게 본적 없는 물건까지 넣어주었다. 그러니까 마치 돌기가 난 로터를… 장식으로 단 반지 같은 물건이었지만, 미처 제대로 보기 전에 미하일이 탁 상자를 닫았다. 얼마나 가득 넣었는지 제대로 닫히지 않을 정도였다.

 이렇게 많이는 가져가기 곤란한데… 하면서도 노아가 상자를 잘 챙겨 두었다. 두 세 개만 챙기고 나머지는 여기 보관함에 넣어둬야겠다. 노아가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자 미하일이 묘하게 눈을 휘어 웃었다.

 “고맙긴, 뭘…”

 “아, 맞다. 혹시 이 곳에서 이안 밀러라는 사람을 본 적 있어요?”

 뒤늦게 이안에 대한 일이 떠오른 노아가 물었다. 아무래도 미하일이 이 성인용품점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이안에 대해서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노아의 예상대로 미하일이 턱을 괴며 히죽 웃었다. 그럼, 본 적 있지. 그 말에 노아가 반색했다.

 “그러면… 어디 있는지 알려 줄 수 있나요?”

 물으면서도 노아는 안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일반 호텔에서도 투숙객에 대한 정보는 함부로 주지 않은데 하물며 상대는 Tear의 사장씩이나 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뜻밖에도 미하일이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 노아가 얼어 붙고 말았다.

 “물론이지. 어려울 것도 없어. 아까부터 내내 네 뒤에 서 있었는걸.”

 “…네?”

 노아가 제 귀를 의심했지만 미하일은 그저 아주 재미있다는 얼굴로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갑자기 뒤쪽의 공기가 굉장히 스산하게 느껴져 노아가 몸을 움찔했다. 어쩐지, 아까부터… 짙게 느껴지던 이안의 페로몬이 더 짙어지는 것 같은 게… 굉장히 두려워 하면서 노아가 천천히 뒤를 돌아 보았다. 평소에도 이안이 소리 없이 다가와 있으면 깜짝 놀라던 노아였지만 오늘의 충격에 비할 수 있으랴…

 좀 흐트러진 머리에 달랑 바지에 와이셔츠 하나만 입은 이안이 노아의 바로 뒤에서 아주…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노아는 그에 꼴깍 마른 침을 삼키고는 하하,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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