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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영상물에서 맹수가 적을 만났을 때에는 그 샛노란 눈의 동공이 확 좁혀 드는 것으로 그 맹수가 얼마나 위협적인가를 보여주곤 한다. 지금 이안을 보고 있자니 노아는 바로 그 모습을 실사 판으로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안 그래도 평소에 위압적으로 느껴지던 이안의 페로몬이 몹시도 흉폭하도록 짙게 방 안에 깔리었다. 같은 알파도 지금 이안의 페로몬에는 기세가 눌릴 것인데, 하물며 오메가인 가브리엘이 당해낼 리가 없었다.
“으…”
저도 모르게 가브리엘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만큼 이안은 굉장히 무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누구 한 명 죽이고도 만족하지 못할… 지금 가브리엘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행동은 즉시 용서를 빌던가, 도망치던가 하는 것일 텐데 그가 취한 행동은 정 반대였다. 가브리엘이 떨림을 감추기 위해서인지 소리를 질렀다.
“노아는 내 거야! 내 거라고…! 내가 먼저…!!”
“문 닫아.”
가브리엘의 말을 끊은 이안이 으르렁거리며 말하자 뒤늦게 도착했던 경비가 서둘러 문을 닫았다. 그 행동에 제 앞날을 예측이라도 한 건지 가브리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안이 갑자기 나타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노아가 다리를 움츠렸다. 이안은 입고 있던 코트를 벗었고, 움찔거리는 가브리엘은 쳐다 보지도 않으며 일단 거의 벌거벗다시피 한 노아에게 덮어 주었다.
이안이 저부터 챙겨주자 노아는 마음 어딘가가 이상하게 술렁거리는 걸 느꼈다. 이상하고도 묘한 기분이었다… 제게 옷을 덮어주는 걸 보며 이안이 그렇게까지 이성을 잃은 건 아닌가, 했던 노아는 이안이 바로 가브리엘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걸 보고는 입을 딱 벌렸다. 물론, 테이프가 붙여져 있어 실제로 벌리지는 못했지만…
“악, 아악!”
이안에게 얻어 맞고 나가 떨어졌던 가브리엘은 처음에는 자신도 대항하여 주먹을 날렸지만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날린 주먹을 피해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상대가 맞고도 꿈쩍도 안 했다는 이야기였다.
“끄흑…!”
가브리엘의 머리카락을 쥔 이안이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테이블에 박았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나자빠진 가브리엘이 벌벌 떨며 이마를 감쌌다가 제 배로 파고드는 발에 억 소리를 내며 나뒹굴었다. 재차 날아드는 발길질에 가브리엘은 변변찮은 저항 하나 못하고 몸을 웅크리기에 바빴다. 이안은 가브리엘이 맞으면서도 저항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뻗는 주먹이나 발을 전혀 피하지 않았다. 그러자 완전히 기가 죽어버린 것은 가브리엘이었다.
노아가 멍하니 이안이 가브리엘을 묵사발을 내고 있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 날 알렉스가 얼굴에 주먹 한 번 맞고 끝난 게 다행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저러다가 가브리엘이 죽을 것 같아 노아가 읍읍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용케도 들었는지 이안이 고개를 돌리자 가브리엘이 다 죽어가는 소리를 내며 창문으로라도 도망칠 생각이었는지 몸을 일으켰지만 이내 멱살이 잡혀 구석에 우당탕 소리를 내며 던져지고 말았다.
“노아.”
들릴락 말락 말하며 이안이 잠시 분을 삭이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노아의 입에 붙여진 테이프와 손수건을 꺼낸 이안은 수갑은 제가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걸 알아 차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안이 구석에서 끙끙거리고 있던 가브리엘의 멱살을 잡았다.
“수갑 열쇠 내놔.”
“싫… 싫어…!”
“싫다?”
가브리엘이 미약하게 저항하자 이안이 멱살을 잡은 그대로 아까 가브리엘이 그토록 원하던 창문으로 질질 끌고 갔다. 창문 가까이 끌려가서야 그제서야 제가 뛰어 나가려던 창문이 2층 높이란 걸 깨달은 가브리엘이 뛰어 내리는 건 괜찮아도 집어 던져지는 건 무서웠던지 벌벌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수갑의 열쇠를 꺼냈다.
하지만 열쇠를 받고도 이안이 멱살을 놔주기는커녕 그대로 창문을 활짝 열었다. 가브리엘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버둥거렸다.
“여, 열쇠 줬잖…”
“열쇠라도 안 줬으면 이 저택 꼭대기에서 던져 버렸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이안의 눈은 얼핏 보기에는 평상시와 비슷해 보였지만 지켜 보고 있던 노아나, 바로 그 시선을 받고 있는 가브리엘은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의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걸… 가브리엘이 미약하나마 저항했던 태도는 멀리 던져버리고 애걸복걸하기 시작했다. 가브리엘이 창틀을 목숨 줄이라도 되는 양 붙잡으며 버둥거렸다.
“살려, 살려주세요… 제발, 여기서 떨어지면 죽…”
“죽나 안 죽나 볼까, 내가 보기엔 안 죽을 것 같은데. 간이 배 밖으로 튀어 나왔어도 죽지 않았는데 고작 여기서 떨어지는 정도로 죽을 것 같아?”
얼마나 열이 받았던지 이안이 진심으로 가브리엘을 여기서 던져버리려는 걸 깨닫고는 노아가 기겁했다. 2층은 절대 떨어져서 괜찮을 높이가 아니었다. 최소한 어디 한 곳은 부러지고도 남는 것이며, 잘못하다간 죽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가브리엘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도 2층에서 사람이 내던져 지는 걸 그저 지켜 볼 정도는 아니었다.
“이안!”
가브리엘의 상체가 거의 창문 밖까지 끌려 나와 노아가 다급하게 부르자 이안이 가브리엘의 멱살을 잡고 있던 주먹에 꽉 힘을 주더니 한참 만에 내팽개치면서 노아에게 다가왔다. 가브리엘은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허둥지둥 기다시피 창문에서 최대한 멀찍이 물러났다.
“이안,…”
노아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이안이 이를 악물며 먼저 선수를 쳤다.
“설마 내가 저 녀석을 봐줘야 한다느니 같은 소리는 하지 마.”
“봐, 봐달라는 게 아니에요. 그냥…”
어떻게든 조용히 넘어갈 방법을 찾다가 노아가 머뭇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테너를 팔아 부탁하려니 제 양심이 따끔따끔 찔리는 걸 느끼며 노아가 작게 말했다.
“아버지가, 이런 일을… 아시게 되는 걸 원하지 않아요…”
반은 진심으로, 그리고 나머지 반은 이안이 가브리엘을 여기서 때려 죽이거나 아니면 추락시켜 죽이는 걸 막기 위한 마음으로 노아가 입을 열었다. 그다지 효과가 없을 거라곤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이안은 제가 다 상처를 받은 얼굴로 입을 꾹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그는 벌벌 몸을 떨고 있는 가브리엘을 한 번, 그리고 소파 위에서 둥글게 몸을 말고 있는 노아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안이 테너를 싫어한다는 걸 매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노아는 테너를 들먹이면서도 별로 효과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이안은 분노가 한풀 꺾인 모습이 되어 말 없이 노아의 팔을 뒤로 죄고 있던 수갑을 풀었다. 철컥거리며 수갑을 던진 이안이 잠시간 노아의 팔에 선명하게 남은 수갑 자국을 내려다 보았다.
“일어날 수 있겠어?”
“네… 읏…!”
자리에서 일어난 노아가 이안이 건넨 바지를 입으면서 엉덩이가 쓰라려 신음했다. 그러자 우두커니 옷을 추슬러 입는 걸 바라보던 이안이 홱 팔을 뻗어 노아를 돌려 세웠다. 너무 빠른 동작에 노아가 미처 가릴 틈도 없이 제 엉덩이를 이안에게 보여주고 말았다. 이안의 눈이 엉덩이에 벌겋게 수도 없이 난 매 자국을 훑었다.
그 동안 그 자신도 여러 번, 이따금 씩은 이것보다도 심하게 노아의 엉덩이를 때려 본 적이 있는 이안이었지만… 남이 때린 걸 보니 아무래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은 모양이라고, 이안이 아무 말 없이 침묵하기만 하자 노아가 생각했다.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엉덩이가 쓰라려 이런 상황에서도 약간 흥분이 되는 것도 같아 노아가 가늘게 몸을 떠는데 문득 조심스럽게 엉덩이 사이에 이안의 손가락이 꾹 닿았다.
어… 설마 여기서 하려고? 노아가 어리둥절하면서도 얌전히 있는 동안 삽입할 것 같았던 손가락은 마치 상태를 확인이라도 하듯 지분거리기만 하다 떨어졌다. 노아는 제 허리를 잡고 있는 이안의 손이 덜덜 떨리는 걸 느끼고는 마른 침을 삼켰다. 아무래도 이안은 지금… 아주 많이 흥분한 것 같았다. 그게, 성적인 의미 말고… 분노하는 의미로…
이안은 바지를 대강 걸치는 정도로만 입히고는 제 코트를 위에 입혔다.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기장이라 바지를 대강 입어도 티가 나지 않았다. 이안이 노아를 감싸 밖으로 나가며 대기하고 있던 경비에게 차갑게 말했다.
“안에 있는 놈, 끌어내.”
“네, 알겠습니다.”
안에서 가브리엘이 저항하는지 약간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지만 이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래도 가브리엘이 2층 높이에서 내던져지는 일은 없겠구나, 조금 안도하며 노아가 얌전히 이안의 뒤를 따랐다. 침실까지 노아를 이끈 이안은 묵묵히 걸쳐 준 코트와 옷을 벗겼다. 그러더니 발가벗은 노아의 몸을 꼼꼼히 살피고는 잠옷 상의를 입혀주고는 연고를 꺼내는 게 아닌가.
“아…”
이안의 손이 조심스럽게 매를 맞아 얼얼한 엉덩이를 스치며 연고를 발랐다. 연고가 발려진 곳마다 조금 화한 느낌과 함께 고통이 사그라들었다. 쓰라린 걸 즐기고 있던 노아로써는 좀 아쉬운 일이었지만… 엉덩이 사이까지도 꼼꼼하게 약을 바르는 터에 노아가 발을 꼼지락거렸다. 이렇게 이안의 돌봄을 받고 있으려니 기분이 퍽 이상했다.
“저, 가브리엘은…”
“네 아버지에게 알려질 일은 없으니까… 걱정 마.”
노아를 치료하는 손길과는 달리 이안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해 노아가 움찔했다. 치료를 마친 뒤 이안은 쉬라고 말하며 침실을 나갔고, 노아는 미묘한 표정으로 이안이 나간 문을 바라보다 왠지 자신이 잘못한 것 같은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
가브리엘 후퍼가 저택을 처음 방문한 날, 이안은 고용인에게서 가브리엘 후퍼가 다음 날 오후 2시쯤에 방문한다는 언질을 들었다. 최근 들어 반 자발적으로 이안의 연애… 비스무리한 상담을 하게 된 다니엘은 이안에게서 어떻게 하면 노아가 불쾌하게 여기지 않는 선에서 둘의 자리에 참석하거나 둘의 수업 내용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없겠냐는 질문을 듣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회장님, 그건 스토킹이 아닌가 싶습니다만은…”
그러나 당연하지만 성격 한번 아름답기 그지 없는 제 상사에게서 돌아오는 답은 하나였다.
“닥쳐.”
닥치라면 닥치라는 수 밖에 더 있나… 다니엘은 쓸데 없이 심기를 거스르는 말을 한 대가로 안 그래도 업무로 바쁘건만 시간을 쥐어짜 내어 Tear로 가 그 곳 관리자에게서 서류를 받아오라는 심부름이나 받았다. 결국 이안이 선택한 건 가브리엘이 방문하는 시간에 이안도 조용히 저택에 가 동태를 살피는 것이었다.
아무리 오메가라고는 해도 이안은 가브리엘에게서 받은 이상하고도 불쾌한 기분을 저 버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오메가라고 해서 안심할 것도 없지 않나. 세상에는 알파건 오메가건, 혹은 베타건 간에 수 없이 많은 인종들의 조합이 가능했으니, 가브리엘이 오메가라고 안심할 건 못 된다고 이안이 합리화했다.
업무가 쌓였다며 제발 자중해 달라는 다니엘의 매달림을 가볍게 뿌리친 이안은 2시 전에 도착할 생각으로 1시쯤에 미리 저택을 향해 출발했다. 그러나 가는 도중 고용인에게서 가브리엘 후퍼가 예정 시간보다 30분이나 빨리 도착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받고 난 뒤에는 슬슬 기분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고작 가정 교습 선생 주제에 뭐가 그리 급해서 30분이나 더 일찍 도착한단 말인가? 좀 지나친 걸 알았지만 그래도 이안은 점점 불안해지는 마음을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이안이 저택에 들어섰을 때는, 가능한 가정 교습 시간을 늦추려는 고용인들의 갖은 노력에도 이미 노아와 가브리엘이 교습을 시작한 후였다.
이안은 당장이라도 저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이리저리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안 그래도 저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을 노아에게 혹여나 의부증이라도 가지고 있다는 생각까지 심어줄 수는 없었다. 문 앞에서 왔다갔다하는 꼴 사나운 모습을 보여주긴 싫어 이안은 고용인들을 모두 물린 뒤,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문에 귀를 기대었다.
뭔가 대화 소리가 좀 들리는 것 같지만 어찌나 방음 시설이 뛰어나던지 웅얼거리는 수준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외에 좀 이상한 소리도 들리는 것 같은데… 대체 누가 이렇게 방음을 훌륭히 한 거냐고 이안이 인상을 쓰면서 왜 진작 도청기라도 달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하다가도 한편으로는 이럴 수 밖에 없는 제 자신을 한심하게 여겼다. 그러나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니엘의 말이 맞다. 지금 이건 스토킹이나 마찬가지인 행동이겠지… 이안이 한숨을 쉬며 노아와 가브리엘이 프랑스 어를 공부하고 있을 손님방 앞을 뜨려는 순간이었다. 둔탁하지만 안에서 와장창 하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자 이안이 홱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