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1/107)

61

“응, 읏, 으, 하으…!”

 왜, 왜 하필 핑거링이야…!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거, 으, 아흐으… 이안의 손가락이 교묘하게 살살 안을 긁어 내리자 절로 노아의 다리가 퍼득거렸다. 이젠 숫제 힉, 하는 소리를 내며 노아가 괴롭게 시트를 움켜 쥐었다. 노아도 사람이다 보니 쾌감이 싫다는 건 아니었다… 다만… 과한 쾌감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괴로울 뿐이지…

 이안이 집요하게 한 부분만 꾹꾹 짓누르기를 계속해 얼마 안가 노아는 바들거리며 토정하고 말았다. 후두둑 피부 위로 체액이 뿌려지는 느낌이 선연했다. 노아가 숨을 얕게 할딱거리며 절정에 이른 뒤 여운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엉덩이 사이에 단단하고 뜨끈한 것이 배회하더니 이내 꾹 천천히 삽입되어 왔다.

 “아, 아…!”

 잔뜩 민감해진 뒤로 묵직한 게 밀려 들어와 노아가 몸을 떨며 고개를 젖혔다. 이미 충분히 풀린 뒤는 약간의 압박감과 감질나기 짝이 없는 고통과 함께 이안의 것을 잘도 받아 들였다. 아직 쾌감의 여운에 머무르는 터라 움찔거리며 조이는 뒤에 이안이 나지막이 신음하고는 이내 더 꾸욱 제 것을 밀어 넣었다.

 이안의 물건이 느릿느릿 뒤를 늘리며 들어오는 느낌은 거의 괴롭기까지 했다. 노아는 평소처럼 뒤가 얼얼하다 못해 쓰라리도록 이안이 무자비하게 박아주기를 원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말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읏, 아, 이안…”

 대체 왜 이러냐는 의미로 노아가 울먹이면서 부르자 이안이 낮게 한숨을 쉬고는 다시 입을 맞추어 왔다. 다소 거칠면서도 한편으로는 달래는 것 같기도 한 입맞춤이었다. 물론, 노아는 전혀 달래지지 않았다… 그렇게 넣고만 있지 말고 제발 움직여 달라는 말을 몇 번이고 삼키느라 곤욕이었다.

 입술이 조금 부을 정도로 물고 핥던 이안이 다시금 귀를 잘근거리며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 물기 어린 소리와 함께 들어온 것만큼이나 천천히 빠져나가더니 느리게 들락거리기 시작하는데, 노아에게는 감질나기 짝이 없는 움직임이었다.

 “흐으…”

 이안이 너무 신사적으로 나오자 답답해 죽을 것 같았던 노아가 하는 수 없이 뒤를 꾸물꾸물 조이려고 애를 썼다. 남자인 이상 제 물건에 자극을 받으면 누구든 흥분하지 않을 사람은 없으니까. 과연 짐작대로 이안은 잠시 움찔하더니 이내 신사적인 모습일랑 은 집어 치웠다. 잠시 잇자국이 나도록 세게 귓불을 꽉 문 이안이 이를 악물며 노아의 허리를 잡아 제 밑에 가까이 붙였다.

 그러나 노아의 예상과는 달리 이안은 바로 거칠게 나오지 않았다. 대신 흥분을 눌러 참으며 잠시 무언가를 찾는 듯 제 것으로 꾹꾹 둥글게 안을 눌러대는 것이었다… 노아가 잠시 뒤 상황을 눈치 채고 바르작거리며 움직였지만, 이안이 정확한 위치를 찾는 것이 더 빨랐다. 손가락보다 훨씬 굵은 것이 뭉근히 그 부분을 찍어 누르자 참으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아의 입에서는 단 신음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잠시, 잠시만…”

 노아가 몇 번 째인지 모를 요청을 반복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평소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얌전한 모습을 보이며 폭력적인 태도를 자제하고 있던 이안은 제대로 듣질 않았다. 다음 순간 이내 제대로 자리를 잡은 이안이 허리를 치대기 시작했다.

 “아, 아… 앗, 아읏, 아!”

 철퍽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이안의 것이 안 쪽을 정확하게 찍어 올릴 때마다 높은 신음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이미 한번의 사정으로 예민한 몸은 모든 감각을 드높은 쾌락으로 받아 들였다. 노아가 제대로 느낀다는 걸 알아차리자 마자 이안의 움직임은 한층 더 거세어졌다. 몸이 흔들리도록 박히자 노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이안을 밀어 내려고 애썼으나 바로 손목이 잡히는 바람에 소용이 없었다.

 이안은 바르작거리는 손가락을 아프도록 씹고 축축해질 때까지 핥다가 이내 무언가 확 끓어오른 눈을 하고는 깎지를 껴 침대에 꽉 내리 눌렀다. 이안이 퍽, 퍽 추삽질을 하면 노아의 발이 확 곱아 들다가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급기야 침대를 내리 누르며 뒤꿈치로 밀어댔다.

 “힉, 그만, 그.. 아흐읏, 아, 아…!”

 “노아, 노아…”

 낮게 이름을 부르면서 이안이 잔뜩 느끼고 있으면서도 그만이라는 말이나 하는 버릇없고 귀여운 입술을 그대로 삼키었다. 이제는 그만이라는 말도 제대로 못한 채 노아가 읍읍거리며 흔들렸다. 아래는 이미 완전히 녹아 없어진 것만 같았고, 언제 사정을 한 건지 복부는 이미 한 차례 더 희멀건 액체에 뒤덮인 상태였다.

 마침내 자신도 사정을 한 이안이 마침내 고개를 내려 목덜미며 가슴팍에 탐욕스럽게 빨고 깨물린 자국을 잔뜩 남기는 동안에도 노아는 숨을 헐떡거리느라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했다. 아직도 이안의 것을 물고 있는 아래가 움찔움찔 조였다.

 심한 쾌감에 나른해져 축 늘어져 제 아래 깔려 있는 노아를 보는 이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멍하니 숨을 추스리던 노아는 이안이 입맛을 다시며 자신을 내려다 보는 걸 보고는 흠칫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시들해지던 이안의 것이 다시 힘을 입어 기세등등해지기 시작하는데… 노아는 처음으로 이안과의 관계에서 겁이란 게 났다.

 “이, 이안… 저 피곤, 피곤해요…”

 “괜찮아.”

 이안이 말하면서 제 것을 거의 끝까지 꺼냈다가 푹 밀어 넣었다. 아주 콱 안 쪽을 노리고 찔러 넣은 움직임에 노아가 흐느끼며 바르작거리자 이안이 다시 허리를 퍽 퍽 놀려대면서 짐짓 다정하게 말했다. 어차피 여행을 왔으니, 내일은, 늦잠을 자도 괜찮거든.

 노아는 몇 번 흔들리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벗어 나려고 애를 썼지만 그대로 부드럽게 엎드려져 삽입감만 깊어질 뿐이었다. 평소에는 깊이 삽입되는 걸 반겼을 테지만 이번만은 아니었다. 이안은 아까보다 수월히 제 것으로 안을 지나치게 자극해대면서 노아의 뒷덜미에 순흔 자국을 남기느라 바빴다.

 “아흐윽, 흐으, 아, 앗… 응, 으응!”

 노아가 진심으로 괴로워 시트에 뺨을 부비며 흐느꼈다. 이안이 박아 넣을 때마다 반사적으로 더 꽉 조여 이안의 움직임을 거세게 만드는 제 뒤도 괴로웠고, 온 몸이 저리도록 극심한 쾌감도 괴로웠다. 머리가 멍하다 못해 희게 번져 이러다가 몸이 어디론가 쑥 빠져버리는 게 아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침내 몇 차례고 사정도 없이 절정에 다른 노아의 것에서 말간 액만 뚝뚝 떨어지고 있을 때쯤에서야 이안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완전히 녹진녹진 녹아버린 노아가 숨을 헐떡이며 잠시나마 멈춘 것에 대해 안도했다. 때리는 것만으로도 갈 수 있을 정도로 고통에 익숙한 노아였지만, 반대로 이런 종류의 자극에는 완전히 쥐약이었다.

 이안이 부드럽게 몸을 어르는 손길에 점차 고르게 숨을 뱉던 노아의 눈이 가물가물 감기어 갈 때였다. 이안의 손이 부드럽게 가슴, 그리고 배를 지나 다리 사이에 있는 것을 쥐자 노아가 힉 하는 소리를 냈다.

 “읏, 아…”

 이안이 천천히 그러쥐며 흔들자 노아의 몸이 더욱 움츠러 들었다. 울상이 된 노아가 더는 하지 말라는 의미로 밀어내려 손을 가져다 댔더니 이젠 되려 그 손을 잡아 겹쳐 쥐기까지 했다.

 “하으, 읏… 흐아…!”

 이안이 더 깊숙이 제 것을 밀어 넣음과 동시에 돌연 안 쪽 깊은 곳에서 뻐근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노팅이었다. 무섭도록 이안의 것이 부풀어 올라 처음으로 반갑기까지 한 고통스러운 압박감을 선사해 노아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잠시간 엎드린 노아가 저도 모르게 악, 소리를 내도록 세게 덜미를 깨문 이안이 천천히 제 것을 빼내었다. 안에서 완전히 둥글게 부풀어 오른 것이 아프도록 내벽을 긁으며 느리게 빠져 나오다 어느 한 지점에서 멈추었다. 또다시 좋지 않은 예감이 든 노아가 몸을 바들거리자 이안이 달래듯이 깨문 부분을 핥으며 허리를 느리게 움직였다.

 “아, 아… 아!”

 느낌상으로는 마치 작은 주먹만큼이나 부푼 것 같은 부분이 한 지점을 완전히 꽉 짓누르자 노아의 몸이 벌벌 떨렸다. 동시에 노아의 것을 쥔 이안의 손도 점차 빨라졌다. 이젠 그만이라는 말도 내지 못하고 노아가 소리 없이 고개를 젖히며 머리를 저었다. 뭉근하게 들어갔다 도로 나오기를 반복하면서 몇 번이고 노팅된 부분에 의해 내벽이 잔인하게 짓눌리자 노아의 것에서 울컥 울컥 말간 것이 질질 흘러내려 시트를 적셨다.

 “이아, 안, 제발, 아으.. 읏….”

 이안의 물건이 거의 끝까지 빠져 나왔다가 다시 꾹 밀며 들어오자 노아가 미친 듯이 필사적으로 시트를 긁어대며 힉, 하고 숨을 가쁘게 헐떡거렸다. 제 것을 쥐고 있는 이안의 손이 조금 빠르게 잔뜩 젖은 끄트머리를 후비듯 문지르자 온 몸이 극심한 쾌감에 관통 당한 것만 같았다. 노아는 심하게 떨면서 이안의 손 안에 마지막까지 쥐어 짜듯 사정하고는 이내 까무룩 기절하듯이 잠에 빠져 들고 말았다.

 ***

 노아가 잠에서 깨어난 건 멀찍이서 파도가 철썩이고 갈매기가 우는 소리 때문이었다. 온 몸이 침대에 달라 붙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느릿느릿 억지로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연한 색의 얇은 커튼을 통과한 햇살이 하늘거리며 노아의 얼굴에 따뜻하게 내려 앉고 있었다.

 그러나 잠에서 깨고 난 뒤에도 노아는 한참을 죽은 것처럼 가만히 침대에 눌러 붙어 있기만 했다. 분명 어젯밤 이후로 한참의 시간이 흘렀을 텐데도 몸이 마시멜로마냥 들척지근하게 침대에 뭉개진 기분이라고 할까… 아니면 있는 대로 즙이 짜여진 과일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

 “으으…”

 약하게 끙, 하는 소리를 내면서 노아가 느릿느릿 몸을 뒤척거렸다. 노아는 클럽에서 노팅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유일하게 노팅이 가능한 남자 알파만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을 몇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렇게 노팅이 좋은 건가 의아해 하고, 두 번째에는 이안에게 노팅을 당하고 나서 그렇게 찾아 다닐 정도로 좋진 않은데 하고 생각했는데… 어젯밤의 노팅은 노아가 아는 그 노팅이 아니었다.

 노아는 그제서야 왜 걸핏하면 이따금 공공연히 사람들이 요상한 뉘앙스로 알파가 소유권을 주장하기에 최적화된 인종이라고 하는지를 이해했다. 다른 인종의 것보다 공격적이고 짙은 페로몬은 둘째치고, 노팅을 제대로 당하면… 노아가 남자라서 여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노팅을 당하는 남성들은 도저히 다음날 사정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 정말 문자 그대로. 노아는 지금 자신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스팽킹을 당한다 해도 과연 세울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왜 갑자기 이안의 행동이 바뀌었을까. 노아가 아주 조금 울먹거리면서 생각했다. 내가 엄청 좋아하던 이렇고 저런 건 대체 어디로 간 건데? 욕구불만은 확실히 해소되었지만 결단코 노아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이건 해소되었다기 보다는 거의 쥐어 짜였다고 봐야 맞는 것이다.

 한참을 그러고 누워 있던 노아는 목도 마르고 배도 고파서 결국 흐느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어쩌면 이건 정말로 나를 괴롭히려는 이안의 고도의 술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반, 하지만 뭔가 자신을 괴롭히는 것과는 매우 거리가 멀었다는 느낌 반으로 침대에서 내려온 노아가 조금 휘청했다. 다리에 부들부들 떨렸다.

 “끄응…”

 아무리 심하게 스팽킹을 당했어도 한번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조금 놀라워하면서도 지금 어느 때보다도 생존욕구(?)가 강했던 노아가 가운을 걸쳤다. 흘깃 거울을 보니 목덜미가 어젯밤 이안에게 물리고 빨린 자국으로 얼룩덜룩했지만 이젠 익숙해진 노아가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다.

 침실이 전망 좋은 3층에 있었기에 식당이 있을 1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문을 열고 나온 노아가 바로 보이는 이안의 모습에 멈칫했다. 침실 밖 응접실, 이안이 커피 향을 잔뜩 풍기면서 전자 패드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노아가 힘 없이 슬리퍼를 질질 끄는 소리에 이안이 고개를 돌렸다.

 현재 이안은 잔뜩 만족한 상태였다. 그는 어젯밤 노아도 좋았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제까지는 고의로 노아를 느끼지 않도록 하며 괴롭혔다면, 어젯밤은 최대한 노아가 느끼도록 애무도 충분히 해주고 노팅도 정석대로 해주었으니까. 게다가 처음으로 아무에게도 해준 적 없던 뒤처리까지 하고 잘 자라고 이불도 덮어주고 도닥여주고…

 그런데 어째선지 오늘 아침을 훌쩍 넘어 점심이 되기 두 시간 전에서야 일어난 노아가 조용히 응접실로 나오는데 마치 꼭… 덫에 걸려 된통 당하고 경계하는 어린 짐승 같은 느낌 같아 이안이 눈썹을 들어 올렸다. 내 착각인가?

 “좋은 아침, 아니 점심이에요, 이안…”

 노아가 조금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최대한 어색하지 않으려 애를 쓰면서 소파에 얌전히 앉았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이안이 이렇게 여기 앉아 있으니 일단은… 조금은 앉아 있어야지… 그런데 놀랍게도 노아가 앉고 난 뒤 이안이 호출 벨을 누르자 잠시 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날라져 올라왔다. 안 그래도 마침 몸이 녹진녹진했기에 노아가 입을 조금 벌렸다. 맛있는 냄새가 풀풀 풍기었다.

 일단 응접실 테이블에 차려진 음식을 보자 더욱 배가 고파서 노아가 꼴깍 침을 삼키며 식기를 집어 들었다. 이미 아침을 먹었는지 이안이 도로 전자패드로 시선을 옮겨 노아가 일단 식사를 시작하고 보았다. 요리사의 혼이 담긴 특제 식사와 디저트로 배를 채우다 보니 노아는 문득, 이건 병 주고 약 주는 건가… 싶었다.

 한편 냠냠 식사를 하는 노아를 보면서 이안은 처음으로 조금 흐뭇한 기분이란 게 들었다. 한번 자각한 감정은 무서운 속도로 커지고 부풀어서 이제는 빼곡히 마음을 차지하고 앉았던 지라… 아까 경계하는 느낌은 배고파서 그랬던 건지 노아는 도로 평소처럼 유순한 분위기가 되었다. 아예 결혼 초기에 이런 분위기가 되었어야 한다고 이안이 한편으로는 씁쓸하게 생각했다.

 이안이 다니엘에게 보너스나 줄까… 하고 있을 때쯤 노아는 배도 부르고 기력도 어느 정도 회복되어 느긋하고 여유롭게 차를 홀짝거리며 마셨다. 이안은 계속해서 노아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면 노아는 그렇게 까탈스러운 성격도 아니고, 공격적이지도 않고, 사치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외모야 결혼 초기부터 이안의 마음에 들었던 터고, 우울한 타입도 아니었고. 생각할수록 이안은 노아보다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을 것만 같았다.

 이안이 몹시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노아가 이안의 눈길을 눈치채고는 움찔했다. 뭐지? 저 시선은… 꼭 자신이 결혼 하기 전 숱한 사람들에게서 몇 번이고 받아본 종류의 시선 같지 않은가. 이를 테면 자신에게 고백하기 전의 사람들이 보냈던 것 같은… 에이, 설마…? 노아에게 슬슬 혹시나 하는 어떠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무렵, 이안이 확실히 노아의 경계심을 인지하고는 미끼를 흔들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약점 파악에 굉장히 능한 사람이었다. 하물며 노아의 약점쯤이야…

 “내 입맛은 아닌데, 먹을 건가?”

 이안이 에끌레르(*슈 페스트리로 만든 작은 타원형의 크림 페이스트리)가 담긴 접시를 톡톡 두드렸다. 그는 갑자기 제 태도가 바뀌었으니 노아가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이라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나. 어제 이안이 밀푀유를 줬던 것을 떠올린 노아가 아무 생각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페이스트리 안에 담긴 크림이 노아의 입안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니 몹시 동했지만 이안이 꾹 눌러 참았다. 그는 다시 제 욕심대로 노아를 범해서 상처를 주기 싫었다. 이미 노아가 제 달라진 태도에 경계하는 모습만으로도 이안은 과거의 지난 제 행동을 몇 번이고 되돌리고 싶은 것이었다.

 이안이 밀푀유에 이어 에끌레르까지 통 크게 양보하자 노아가 조근조근 경계심을 풀었다. 그래, 어제 한번쯤은 좀 다르게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었겠지. 사람이 뭐… 매일 빵(?)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이렇게 좀 특별난 것도 즐기고 하는 거지…

 그 날 오후도 어제와 다름 없이 즐겁게 놀면서 시간을 보낸 노아는 점차 다시 느슨하게 마음이 풀렸다. 그러나 '이안이 한번 쯤 좀 다르게 한 것 뿐'이라는노아의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그 날 밤, 와인을 마시고 둘 다 각자 조금씩 취한 상태에서 이안이 노아의 위로 어둡게 그림자를 드리웠을 때 노아는 멍하니 어라,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미 벗어 나기엔 늦은 때였다.

 ***

 이안이 신혼 여행을 마치고 나서도 이틀을 더 저택에서 쉬고 돌아오는 날, 다니엘은 매우 즐거운 마음으로 회사로 출근했다. 아마 신혼여행으로 봄 날 햇살같이 따사로운 상사를 처음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좀 품은 채였다. 그러나 활짝 웃으며 문을 열고 회장실로 들어선 다니엘은 검은 오오라를 드리우고 있는 이안을 보고는 다시 그대로 조용히 문을 닫았다.

 “망했다.”

 다니엘이 머리를 쥐어 뜯었다. 대체 이 부부는 뭐가 문제인 걸까… 아니, 문제야 많긴 하지. 결혼 초 이안의 태도부터가 문제였다. 곁에서 보던 다니엘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괴롭혀대지 않았나. 다니엘은 마치 대 마왕 마냥 사악한 분위기를 드리우는 이안을 보자 절대 안으로 발을 들여 놓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다니엘 코스텔로, 당장 들어와.’ 하고 저를 부르는 음산한 이안의 말에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발을 들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왜 이안 밀러의 수석 비서인걸까? 아, 그렇지… 그의 위에 있던 비서들이 회사 창립 초기에 빡빡한 일정을 견디지 못하고 다 나갔을 때 남은 사람이 자신 밖에 없었지…

 다니엘이 어색하게 웃으며 발을 들이자 이안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가까이서 보니 이안은 그렇게 화가 나거나 한 것 같진 않았다. 다만, 어울리지 않게 좀 우울해 보이긴 했어도…

 “여행을 다녀온 뒤로 날 피해. 어떻게 할 거야?”

 이안이 우울해 보인다는 건 취소였다. 다니엘이 보기에 이안은 지금 짜증과 신경질을 내고 있는 것이었다. 세상 처음으로 해보는 제대로 된 연애라는 것에 익숙하지도 않고, 상대방의 행동에 상심하기도 한 전형적인 사람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 물론 제대로 정정하자면 ‘성질이 나쁜 전형적인 사람의 모습’이다.

 “저,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 제가 어떻게 조언이나마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최대한 이안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쓰며 다니엘이 공손히 말했다. 이안은 다니엘에게, 아니 다른 사람에게 잘 성사되지 않는 제 연애 사정을 털어 놓고 조언을 구해야 한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좀 상한 것도 같았지만 나름 절박했는지 입을 열고 말았다. 

 이안이 노아에게 쩔쩔매는 것이 다니엘에게 통쾌한 것은 어디까지나 초반이었다. 장기적으로는 이안이 노아와 잘 되는 것이 제게 좋은 일이란 걸 알기에 다니엘은 최선을 다해 이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여행을 다녀온 동안의 이안의 행동들과 노아의 반응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은 다니엘이 곰곰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보기에는… 말씀 드리기 참으로 죄송하지만, 아무래도 잠자리가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괴롭히지 않았는데.”

 이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도 잠 자리가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아가 저를 노골적으로는 아니지만, 은근히 슬슬 피하기 시작한 게 신혼 여행 두 번째 날 밤과 저택에 돌아온 뒤 밤 후였으니까. 하지만 이안은 정말로 노아에게 최선을 다해 다정하게,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밤이 되도록 노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노아가 자신을 피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혹시나 노아가 벌써 제게 지쳤나, 하는 생각이 들면 이안의 마음은 하루에도 수 번을 덜컹 내려 앉았다.

 “어쩌면 그 동안 이안 님이… 다소 거칠게 하신 것 때문에 만족… 하지 못하시는 걸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다니엘이 매우 매우 간접적으로 말을 돌려 말했다.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진 않았는데, 하고 이안이 미간을 조금 찌푸리는 가운데 다니엘이 은근하게 제안했다. 아니면, 제가 사용하는 제품을 추천해 드릴까요? 제 여자친구가 아주 좋아하는 건데… 다니엘의 말에 이안이 조금 솔깃한 표정을 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