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화 (5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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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기심이 생겨 문자를 열어본 노아가 첨부된 사진을 보고는 놀라 입을 조금 벌렸다. 

“이건 또… 뭐야?”

 가브리엘이 보낸 메시지에는 누군가 엎드린 채 야하게 다리를 벌려 부끄럽지도 않은지 치부를 모두 보이고 있는 사진이 첨부 되어 있었다. 사진 속 인물의 얼굴은 교묘하게 가려져 턱 선과 금발 정도 밖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사진 속 인물의 오른쪽 허벅지에 유성 매직으로 쓰여진 글귀를 보자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언제였더라, 항상 그렇듯이 가브리엘과 서로에게 즐거운(?) 개인 교습을 하고 있을 때였나. 그 날이 있기 전 주에 가브리엘은 노아의 수준으로는 어려운 수준의 교재를 주며 다음 주에 그 교재를 주제로 시험을 치를 것을 미리 알렸다. 당시 노아는 일부러 가브리엘에게 교습을 오래 받기 위해서 실제보다 낮은 실력인 척 가장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어려운 수준도 아니었지만 실제 시험지에는 비가 내렸다. 당연히 노아의 고의적인 행동이었다. 

 그 때 가브리엘은 노아에게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한 벌을 준다면서 노아의 허벅지에 수치스러운 말을 써놓고는 소리 내어 읽도록 했다. 그 때의 좋았던(?) 기억을 회상하며 노아가 사진을 빤히 바라봤다. [나는 음란한 아이입니다. 저에게 제발 벌을 주세요.] 라고 사진 속 인물의 허벅지에 쓰여진 글을 찬찬히 보면서 노아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당시 저것과 똑같은 글을 쓴 건, 맞다. 그 때 저런 자세를 취한 적이 있던 것도 맞다. 하지만 개인 교습을 할 적 벌을 받을 때에 가브리엘이 노아의 사진을 찍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가브리엘은 굉장히 용의주도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노아를 괴롭힌다는 증거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 그는 절대 노아에게 사정을 하지도 않았고, 부주의하게 방에 자신의 체액을 남기지도 않았다. 체벌을 하고 난 뒤에는 흔적이 남지 않도록 치료까지 한 사람이 아니던가. 

 기기의 복구 기술이 몹시 뛰어난 요즘에는 사진을 찍었다가 지우는 것뿐만 아니라 물에 빠트리고 아예 기기를 박살을 내도 복원이 되니 사진도 찍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노아가 유심히 사진 속 인물의 몸을 살펴 보았다. 얼핏 보면 마치 자신인 것 같지만 절대 노아 자신의 몸은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노아는 그 때 당시의 진짜 사진이 있었다. 

 “어디에 있더라…”’

 노아가 마치 평범한 게임인 것처럼 가장된 어플리케이션을 꾹 눌렀다. 실제로는 사생활 보호 폴더로 실행하면 정말 게임이 시작되니 다른 사람은 영락없이 게임 어플리케이션인줄로만 안다. 다만, 처음에 뜨는 바탕화면의 캐릭터의 얼굴을 특정한 순서로 눌러주면… 바로 이렇게 비밀스럽게 보관된 보호 폴더가 나타나는 것이다.

 뭐, 보호 폴더라고 해 봤자 별 거 없었다. 그냥, 노아 취향의… 사진이나, 동영상 같은 거…? 노아는 이따금 스팽킹을 하고 난 뒤 자국이 마음에 들거나, 아니면 괜찮은 도구를 사용했는데 자신이 봐도 꽤 야하다 싶으면 그 부위의 사진을 찍어두는 버릇이 있었다. 그 날 허벅지에 쓴 글씨를 찍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아, 여기 있네.”

 사진을 불러온 노아가 유심히 비교했다.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글씨가 쓰여진 위치가 달랐다. 가브리엘이 보내온 사진의 글씨가 좀더 바깥 쪽에 써있는 것이다. 고로, 이건… 노아인 것처럼 보내오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가짜 사진이었다.

 이런 사진을 대체 왜 보내온 걸까 의아해하며 무심코 사진을 내린 노아가 가브리엘이 보낸 다른 메시지를 발견했다. 꽤 장문의 글이었지만 요약하자면 내일 오후 3시, 어디어디에 있는 카페로 나오지 않으면 지금 보낸 외의 다른 노아의 사진을 3류 잡지사의 기자에게 보낸다는 이야기였다. 

 “음… 그러니까 이거 협박인 거겠지?”

 보내거나 말거나, 하면서 노아가 무심하게 핸드폰을 닫았다. 만약 가브리엘에게 진짜 노아의 사진이 있었다면 이렇게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찍은 사진을 보내지 않았을 터다. 그리고 노아는 설사 가브리엘에게 진짜 제 사진이 있건 말건 상관이 없었다.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프로스트 가의 비밀스러운 사생활 따위의 기사를 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사가 나간 지 하루도 채 안 되어 프로스트에 고용된 전담 변호사 한 떼거리가 달려 들어 가브리엘은 물론이거니와 잡지사 까지도 갈기갈기 찢어 놓을 테니까.

 그나저나 큰일 났네. 노아가 고심했다. 전이라면 가브리엘이 널 이렇게 저렇게 할거야!, 라고 하면 좋아라 하면서 따랐을 텐데… 이안과 함께 지낸 지 두 달이 훌쩍 넘어가는 지금에서는 가브리엘이 눈에 차지도 않았다. 결혼을 결정 했을 때 이안의 괴롭힘이 너무 좋은 나머지 이혼 후에 다른 사람에게 만족하지 못하게 될 까봐 걱정하는 일에 대해서는 상상도 하지 못건만...

 보안 폴더 어플리케이션을 종료하며 노아가 고민에 잠겼다. 노아는 사실 자신이 먼저 이혼을 요구하기 보다는 이안이 먼저 이혼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만약 전자가 되었을 경우에는 이안과 충분히 즐겼다고 생각한 뒤 노아가 못 이기는 척 이혼을 요구해 나가는 것이고, 후자는 이안이 노아를 괴롭히는 것에 질려 먼저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인데… 어쩐지 요즘 상황을 보면 이안이 먼저 이혼하자고 할 것 같지는 않단 말이지.

 게다가 어젯밤 그 의미심장한 말도 그랬다. 어제는 지나치게 즐기느라 거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다시피 한 이안의 말을 지금에서야 고려하며 노아가 곰곰이 생각했다. 이안은 분명 이번이 마지막이니 뭐니 하는 말을 했다. 이게 마지막이란 말은, 이혼을 요구하는 게 이번이 마지막이란 이야기일까? 그러니까… 앞으로는 다시 이혼이니 어쩌니 할 기회가 그 때뿐이라 이건가?

 노아는 지금 상황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은 딱히 이혼할 생각이 없었지만 이안이 이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조금 골치가 아파진다. 아직 이 사회는 오메가보다는 알파에게 훨씬 관대했다. 그 때문에 알파가 이혼을 요구할 경우와 오메가가 이혼을 요구할 경우가 달라서, 대게 후자의 경우에는 거의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니 나중에 노아가 이혼을 요구해도 이안이 거절하면… 이혼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테지만 아주 지리하고 길며 판이 커진 싸움이 될 가능성이 컸다. 고로, 그 때는 테너가 끼어 들어 개판 오분 전이 된다는 말인데 노아는 정말이지 그런 상황은 사양하고 싶었다… 즉, 깔끔하게 이혼하고 독립한다는 노아의 계획은 와르르 무너져 버린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꼭, 이혼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도 같고…”

 사람 마음은 갈대라더니 요즘의 노아는 초기에 비해 마음이 좀 많이 흔들렸다. 지금 생활이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꼭 들어서 굳이 이혼을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드는 것이었다. 생각하다 보니 골치가 아파서 노아가 끙, 하면서 침대에 털썩 누웠다. 에라, 모르겠다. 나중에 상황 봐서 결정하지 뭐…

 그러나 물론, 노아는 나중에 인생이란 그렇게 마음 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만 했다. 세상에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여기던 일도 가끔씩은 실제로 일어나는 법이었다.

 ***

 “식사 끝나고 외출 준비를 하도록 해. 같이 나갈 테니까.”

 아삭아삭 열심히 딱 제 취향의 샐러드를 먹고 있던 노아가 마치 토끼마냥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안을 바라보았다. 대답, 하고 이안이 요구해 노아가 얼른 샐러드를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혹시 특별히 차려 입어야 하나요?”

 “그런 거 없으니까 그냥 나와.”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노아가 속으로는 좀 의아하게 여겼다. 요즘 따라 노아는 이안을 보는 일이 많아졌다. 전에는 밤에 노아를 범하러 올 때를 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니만 요즘에는 하루에 세 번 이상은 꼬박꼬박 보게 된다. 최근에 이안의 출근 시간이 늦어진 탓에 아침에 한번, 점심에 한번, 저녁에 한번… 그리고 그 외 기타 등등.

 게다가 이전엔 괴롭히고 싶을 때만 부른다면 요즘에는 시답잖은 일에도 노아를 불러댔다. 가령 괜히 노아를 서재로 불러내서는 잔뜩 기대하면서 가면 고용인을 시켜도 되는데 굳이 노아를 시켜 커피를 내오게 한다던가. (그런데 커피와 함께 나오는 디저트가 맛있어서 노아는 서재에 도착한 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인가 이안과 함께 티 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아니면 굳이 혼자 다녀도 되는 산책에 노아를 끌고 나간다던가, 혹은 지금처럼 회사로 불러낸다던가…

 언제 자신을 괴롭혀 주는지 알 수가 없으니 노아로써는 꼬박꼬박 이안이 하는 행동에 응할 수 밖에. 하기야 저택에서만 지내며 놀고 먹고 자고 하는 것 보다는 노아도 어느 정도 외출하는 게 좋긴 했지만… 확실히 이안은 전에 비해서 많이 변한 것 같았다.

 노아가 다시 식사를 시작해 거의 마쳐갈 무렵이었다. 요리사의 특제 디저트를 행복하게 즐겨가며 먹고 있는데 주머니에서 지잉, 하고 진동이 울려 핸드폰을 꺼내 든 노아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또 가브리엘이었다. 그 날 이후로 가브리엘은 지치지도 않는지 끈질기게 노아에게 협박 문자를 보내오고 있었다. 무시하면 그만 둘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노아는 자신이 전에 그렇게나 가브리엘에게 지나치게 만만하고 순진한 사람으로 보이도록 행동했나 싶을 정도였다.

 오늘만 벌써 다섯 번 째 도착한 문자였지만 노아는 혹시 모를 나중을 대비해 지우지 않았다. 그런데 곧장 다시 지잉 하고 진동이 울렸다. 귀찮아져서 이번에는 아예 진동까지 울리지 않게 하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이안이 눈썹을 불만스럽게 치켜 올린 얼굴로 노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데 요즘 그렇게 문자가 와.”

 노아는 잠시 이안이 눈치 챌 정도로 그렇게나 문자가 많이 왔나 의아해 했지만, 요즘 식사 시간 때마다 진동음이 자주 들렸으니 예민하고 까다로운 편인 이안에게는 자주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어 고개를 저었다. 노아는 가브리엘이 절대 이 흡족한 생활을 망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게… 요즘 전에 알던 친구와 다시 연락이 되어서요.”

 “집에서 예절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나 보지? 식사할 때 핸드폰을 사용하는 건 무슨 예의야?”

 이안이 매우 쌀쌀맞다 못해 찬바람 도는 목소리로 말했다. 노아는 미안하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아니, 전에는 자기도 식사할 때 핸드폰 막 봐 놓고. 자주 대놓고 통화까지 했으면서… 게다가 내가 식사할 때 핸드폰 사용한 것도 아니고, 다 먹고 후식 먹을 때나 사용하는 건데… 전에는 아무 말도 안 해 놓고 왜 오늘만...

 속으로 투덜거리다가 갑자기 생각이 옆길로 새서 트집 잡아서 식사 예절 제대로 가르쳐 주겠다고 핸드폰으로 이렇게 저렇게 괴롭혀 줬으면 좋겠다까지 나아갔을 때 만족스럽게 스푼을 내려놓던 노아의 눈에 문득 이안의 소매에서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눈에 보였다. 심플한 마름모 꼴의 파란색 사파이어가 달린 커프스링크였다. 

 “어?”

 저거… 내가 산 거 아닌가? 서랍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린 커프스링크를 떠올린 노아가 입을 조금 벌리며 이안을 바라봤다. 범인이 누군가 했는데 이안이었다. 아니, 물론 생일 선물이니까 이안이 가져가는 게 맞긴 하지만 가져 갔으면 말을 해주던가! 노아의 불순한(?) 시선을 금새 눈치 챈 이안이 눈썹을 삐딱하게 올렸다. 노아가 소심하게 항의했다.

 “그거… 제 생일 선물 아니에요?”

 “뭐가?”

 “커프스링크요…”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면서도 눈은 바삐 움직이며 전자 패드로 뭔가 계속 읽어 내리던 이안이 흘깃 제 소매에 단 커프스링크를 바라봤다. 맞지? 맞잖아! 내 커프스링크! 노아는 이안이 처음으로 민망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했지만 민망해하기는커녕 이안은 몹시도 뻔뻔하게 나왔다.

 “무슨 소리야? 이건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건데.”

 “하, 하지만…”

 저건 이안 취향의 커프스링크가 아닌데… 겉으로 티는 안내도 옷을 잘 입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은 노아는 이안이 저런 튀는 사파이어보다는 메탈 느낌을 주는 커프스링크를 선호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시기상으로나 디자인으로나 아무리 봐도 저건 자신이 사 놓은 커프스링크임이 틀림 없었다. 그러나 이안은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거라고 우길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술 더 뜨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너 왜 내 생일 선물 안 줘.”

 “네?”

 얼굴에 철판이라도 깔았는지 이안이 거만하게 고개를 들었다. 내 생일 때 너네 가족도 생일 선물을 줬고, 아는 지인들도 줬어.

 “심지어 비서들도 줬는데 정작 나랑 결혼한 네가 선물을 주지 않다니… 뻔뻔해도 정도가 있지.”

 아니 지금 뻔뻔하다고 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데… 선물을 말도 없이 가져가 놓고서는 이안이 다시 선물을 또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판에 기가 막힌 노아가 입을 조금 벌렸다. 이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위협하듯이 어깨를 꽉 잡으며 매끄럽게 입 꼬리를 올려 웃었다.

 “뻔뻔한 게 아니면 내가 우습게 보였다는 거겠지… 안 그래? 아무래도 가는 길에 넌 네 알파에 대해 존경하는 법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겠어.”

 그렇게 말한 이안이 먼지라도 털어주듯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당장 나갈 준비 하고 나와. 그 소리를 들으며 노아가 후딱 마음을 바꿨다. 그러엄, 당연히 생일 선물을 주지 않은 내가 잘못한 거지 않겠어. 그러고는 노아가 차를 타고 가면서 있을 이안의 괴롭힘을 기대하며 잔뜩 신나 제 방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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