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내가 갈 때까지 끝까지 참아봐. 그럼 풀어줄 테니까…”
엉덩이 골 사이에 묵직한 물건이 금방이라도 삽입될 듯 문질러졌다. 지금 안 그래도 화장실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상태인데, 그대로 삽입하면 더 괴로워질 건 보나마나 불 보듯 훤한 일이었다.
“자, 잠시마… 흐, 아! 아윽!”
이안이 노아의 골반을 단단히 잡은 뒤 제 것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 조금 나온 프리컴만으로 진입을 시도하자 어떻게든 뒤가 열리긴 했으나 버겁기 짝이 없었다. 노아는 꼼짝도 못하고 이불만 꽉 움켜쥔 채 제 뒤로 굵은 것이 느릿하게 들어오는 느낌에 벌벌 떨었다. 삽입 처음 부분은 그럭저럭 버틸 만 하였으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물렁하지만 단단하기도 한 살덩이가 안쪽을 지그시 누르자 절로 온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오금이 아려온다. 손에 쥐여진 이불이 구깃구깃해지는 걸 보며 이안이 입 꼬리를 올려 웃었다. 일부러 안 쪽을 짓누르며 삽입하자 괴로운 신음 소리와 함께 노아의 뒤가 꽉 조여 들었다. 그 감각을 즐기며 이안이 제 것을 끝까지 밀어 붙였다.
“아, 아… 으…”
평소에도 이안의 것을 삽입 할 때면 압박감이 꽤 있었지만, 오늘은 그 종류부터가 아예 달랐다. 뒤가 이안의 것으로 꽉 들어차다 못해 방광을 압박해오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기분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노아가 몸을 비틀면서 조금이나마 더 수월히 참으려고 다리를 움츠렸다. 그러자 이안이 철썩 엉덩이를 내려쳤다.
“너무 조이잖아. 그렇게 좋아? 아주 끊어 먹겠는데.”
조롱하면서 이안이 끝까지 밀어 넣은 자신의 것을 다시 느릿하게 꺼냈다. 단순한 움직임이었는데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괴롭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건 전에는 겪지 못했던 쾌감의 일종이기도 했다. 그 증거로 노아의 것도 서서히 서기 시작했으니까.
평소에는 사정 봐주지 않고 박아대곤 하던 이안은 노아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즐기면서 제 것을 느릿하게 밀어 넣었다가 빼내기를 반복했다.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노아의 몸이 조금씩 비틀리며 뒤가 연신 우물거리며 이안의 것을 열심히 죄였다. 노아 본인의 사정이야 어떨지 몰라도 뒤는 마치 이안의 것을 반기는 것만 같았다. 노아가 낑낑거리는 소리를 냈다.
“제발, 이안… 아으, 읏…”
“제발, 뭐?”
삽입할 때마다 일부러 아래쪽을 지그시 누르는 통에 참는 게 한층 더 힘들어졌지만 노아는 여기서 이안이 그만 두지 않으리란 걸 잘 알았다. 알렉스나 헤더나,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이안도 상대가 괴로워하면 할수록 더 괴롭게 만드는 아주… 바람직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노아가 몸을 안절부절 못할 때마다 사슬이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노아가 제발, 하고만 말하고 다시 참으려 들자 이안이 삐뚜름하게 미소 지으며 제 것을 반쯤 꺼내고는 고의적으로 아래쪽을 꾸욱 뭉갰다.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다 보이는 노골적인 움직임에 노아가 아, 아… 하고 소리내면서 몸을 더욱 웅크렸다.
“흐으, 아… 더 이상은…”
“왜, 입 밖으로 제대로 말을 못 꺼내겠어? 지금 싸고 싶어서 그렇잖아.”
다시 제 것을 깊이 밀어 넣으면서 이안이 여유롭게 협박했다. 조금이라도 침대에 흘렸다간 그대로 드미트리가 있는 방 침대에 묶이게 될 줄 알아. 알아 들었어? 노아가 몸을 가늘게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가 깊은 삽입에 다시 신음했다. 이안이 제 것을 빼내는 건 그럭저럭 견딜 만 했지만 일부러 아래 쪽으로 지그시 눌러대며 삽입할 때에는 발가락이 절로 안으로 곱아 들었다.
차라리 빨리 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이안의 움직임은 느릿느릿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배출에 대한 욕구가 가파른 상승선을 그리며 올라가다 못해 아릿하게나마 고통에 가깝게 변한다. 끙끙거리며 참다가 노아가 결국 이안에게 애원했다.
“제발,… 더 이상은 못 참겠어요…”
“못 참겠는데 어쩌라고? 내 알 바 아냐.”
“아흐으… 으, 아!”
물기 어린 소리가 커지면서 점점 뒤를 드나드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하자 노아가 바들거리며 떨었다. 이제는 철썩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움직이면서 이안이 경고했다. 흘리기 싫으면 미리 네 손으로 죄여 두는 게 좋을 거야. 이제 안 봐줄 거거든. 안 그래도 점차 참기 힘들어졌기에, 노아는 몸을 떨면서 완전히 단단해진 제 것 밑 둥 부분을 엄지로 검지로 꽉 쥐었다. 그러자마자 이안의 움직임이 거세졌다.
퍽, 퍽 하고 이안의 것이 박혀 들어 올 때마다 눈 앞이 거무스름하게 물드는 것만 같았다. 사정방지 링 마냥 손으로 꽉 죄여 두었기에 손에서 힘이 빠지지 않는 이상 실수로라도 실례를 저지르는 일은 없을 테지만 그렇다고 괴로움이 줄어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점차 참기 힘들어져 노아가 흐느끼는 소리를 내며 발을 구르다시피 했다. 삽입 당할 때마다 괴로움이 한계까지 치솟아 올랐다.
“아, 아! 흐읏, 아,… 으, 읏!”
이제는 이안이 숫제 몸이 들썩이도록 쳐 올리자 노아는 필사적으로 제 것을 꽉 죄였다. 제 것에 압박이 가해져 죄이는 고통도 고통이었고, 한계까지 들어차 매번 괴로운 압박을 당하는 방광도 방광이었다. 손을 놓자마자 실례를 저지를 걸 알고 있었기에 노아는 손에 바짝 들어간 긴장을 놓치지 않았다. 마치 줄을 타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한계를 드나들고 있었다.
노아가 생각 외로 잘 버티자 이안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이내 자세가 바뀌었다. 이안은 노아를 몸무게로 깔아 뭉개다시피 덮어 누르며 제 것으로 둥글게 부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드는 안 쪽을 잔인하리만치 뭉갰다. 노아가 곧 비명에 가까운 신음 소리를 내며 뒤를 바짝 조여댔다. 낮게 신음 하면서 이안이 노아의 아랫배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 행동에 움찔한 노아가 흐느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안돼, 안돼… 아! 아…!”
거의 한계에 가까워진 상황에서 이안이 아랫배를 손으로 꾹꾹 눌러대자 노아의 몸이 퍼득거렸다. 몹시 괴로웠다. 하지만 괴로운 만큼 극단적인 쾌감도 잇따른다. 노아가 이안의 손을 피하려고 헛된 발버둥을 치면서 애원했다. 한계에 몰릴 때마다 등골이 오싹오싹했다.
“아으, 읏! 제발, 제발… 최소한 여기 말고… 다른 곳에서라도… 흐으, 읏…!”
“흐음… 어쩔까.”
계속해서 허리와 손을 움직여 노아를 괴롭혀 대다가 이안은 노아가 정말 한계에 다다랐다고 느끼는 순간에서야 겨우 허락을 내려 주었다. 일어나. 이안이 제 것을 빼내며 명령했다. 뒤를 꽉 채우며 압박하던 물건이 사라진 것만으로 조금 나아진 상태에 노아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이안은 침대 기둥에 고정되어 있던 목줄을 풀어내 잡아 당겼다.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노아는 엉거주춤 이안이 목줄을 끄는 대로 따라 욕실로 들어섰다. 침실만큼이나 화려하고 넓은 욕실이다. 그나마 침실에서 실례하진 않겠다는 생각에 노아가 조금 안도했다. 그렇게 멋진 침대를 더럽히고 싶진 않았다. 하긴, 어차피 더러워져도 고용인들이 금새 새 것으로 갈겠지만… 어쨌든 아무리 터부를 어기는 것에서 쾌락을 얻을 수 있는 노아라 해도, 하고 싶지 않은 것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욕실에 들어서는 순간 아이러니 하게도 조금만 긴장을 풀면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는 유혹에 인내심이 더욱 약해지고 말았다. 이안도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을 터다. 그는 일부러 노아를 변기 앞에 서도록 한 뒤 목줄을 잡아 당기며 제 것을 도로 삽입했다. 노아가 발꿈치를 들어 올리며 벌벌 떨었다. 이안이 다시 아까 한 말을 상기시켰다.
“난 분명 내가 갈 때까지 끝까지 참으라고 했어.”
“흐으… 으…”
뒤에서 퍽 쳐오는 움직임에 노아가 휘청거리며 벽을 짚었다. 다리 사이에 변기가 놓여 어쩔 수 없이 엉거주춤 다리를 벌리자 이안이 아까 침실에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세차게 제 것을 박아 넣었다. 아까 침실에서는 그나마 사정을 봐준 모양이다. 노아는 발을 구르고 무릎을 굽혀가며 어떻게든 참으려고 애를 썼다. 이안의 것이 들이 칠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읏, 윽, 읏…. 아!”
간신히 참았는데 하마터면 긴장을 풀 뻔 한 노아가 안 그래도 꽉 조이고 있는 손에 힘을 더했다. 손을 놓고 싶은 유혹이 너무나 강렬하여 눈 앞이 아찔했다. 제발 천천히, 천천히요… 흐느끼며 애원했으나 그 애원에 오히려 가학 심이 들었던지 이안이 손가락으로 아랫배를 지압하듯 꾹꾹 눌러댄다. 노아가 발을 동동 굴렀다. 이제는 정말 한계였다.
타이밍이 좋은 건지 일부러 그렇게 계산을 한 건지 노아가 막 포기하려는 순간에서야 이안이 허리를 움직이는 걸 멈추었다. 그가 안에 사정할 때면 항상 그렇듯이 조금씩 뒤로 미적지근한 사정 액이 조금씩 흘러 나왔다. 이안은 얼른 가고 싶어 벌벌 떨고 있는 노아의 머리카락을 잡아 당기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발을 뻗어 변기 커버를 툭 쳐 올렸다. 이젠 그만 참아도 된다는 무언의 허락이었다.
그에 머리보다도 몸이 더 먼저 빠르게 반응했다. 그간 참아왔던 걸 쏟아내는 순간 시야가 아찔해지며 온 몸이 오싹오싹 떨렸다. 아, 아! 노아의 입에서 높은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몇 번이고 진저리를 치며 노아는 숨을 헐떡거렸다. 저도 모르게 뒤를 몇 번이나 조여 대다가 탁 높은 긴장감이 풀리자 몸이 비틀거렸다. 쪼르륵 하는 적나라한 소리에 발끝이 꾹 오므라들었다.
한계까지 몰렸다가 마침내 자유롭게 된 느낌이 너무나도 좋긴 좋았지만, 이성이 돌아오자 부끄러워서 노아가 귀를 붉게 물들였다. 생리적인 현상 중에서도 가장 치부에 가까운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것은 거부감이 항상 컸다. 고통을 즐기기는 했으나 더럽고 비위생적인 것은 싫어했기에 *스캇 플이나 *골든 샤워 같은 행위는 항상 피했던 노아다. 오늘 한 건 스캇 플도 골든 샤워도 아닌, 그냥 단순히 이안이 보는 앞에서 볼일을 본 것뿐이었지만 뺨이 화끈거렸다. 아주 어릴 적 이후로 남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난생 처음이었다.
노아의 반응이야 어떻든 이안은 자신의 볼 일이 모두 끝나자 무심하게 제 것을 빼냈다. 노아가 드물게 진심으로 부끄러워하면서 안절부절 변기 커버를 내려 버리고 싶어하는 동안 이안은 약속대로 목에 채워져 있던 목줄을 풀어 준 뒤 노아를 내버려 두고 욕실을 나갔다. 노아가 후우 단 숨을 뱉으며 물을 내렸다.
일어나면 항상 샤워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기에 이왕 욕실에 들어간 김에 씻고 보송보송하게 물기를 말린 뒤 나오자 그 사이 고용인이 다녀갔는지 침대 위에 옷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점심 시간이다. 아침이면 모를까 점심과 저녁 손님을 대접하는 자리까지 자신이 빠지면 손님들에게 이상하게 보이겠지… 노아가 주섬주섬 옷을 입고는 목줄을 손에 쥐고 절그럭거리고 있는 이안을 바라보았다. 이안은 나가자는 말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앞으로, 이 방에 들어오게 될 일이 있을 때에는 항상 목줄을 차고 있도록 해.”
노아는 이안이 아무렇게나 침대 위에 내팽개치는 목줄을 눈만 도록도록 굴려 바라보다가 다시 이안에게 시선을 옮겼다.
“왜…요?”
“온갖 알파를 꼬시고 다니는데 내가 안 보는 사이에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노아가 우물쭈물 하며 중얼거렸다. 아무도 안 꼬셨는데… 말하고 보니 쬐금 찔리는 게 있긴 하다. 여기 저택에서 드미트리에게 말고, 저번에 큐브 아일랜드에서 그 어린 알파가 접근해왔을 때… 물론, 그것도 엄연히 말하자면 꼬신 건 아니다. 아니, 내가 매력적으로 생긴 걸 어떻게 하라고? 그런 노아의 속은 모르는 이안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한 번 이 방에 들어 왔을 때엔 내 허락 없이는 밖에 못 나가. 알아 듣겠어?”
“네에…”
그러니까 뭐냐, 이건 그건가… 감금 플레이? 진짜 감금이란 게 다르긴 하지만. 내내 목줄을 차고 있던 탓에 괜히 간질거리는 것 같아 노아가 목을 문지르며 이안을 따라 방을 나섰다. 마침 조금 꼬르륵 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배가 고팠기에 점심을 먹으러 간다는 사실이 몹시 반가웠다.
식당에 가자 드미트리와 그의 아내 사샤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내려와 있었다. 설마 지금까지 자고 있는 건가…? 아침에도 나타나지 않은 모양인지 그들은 영 모습을 드러낼 생각을 하지 않는 드미트리에 대한 불쾌감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노아는 드미트리가 진심으로 이 모임에 참가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신과 한 번 자보려는 목적으로 저택으로 방문한 거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럼… 이안이 알파를 꼬시고 다니니 어쩌니 했어도 일단은 부부침실에 자신을 데려 놓은 게 혹시나 모를 불상사를 방지한 거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묘한 기분에 노아가 다정한 부부인척 연기하고 있는 이안을 바라보았다. 드미트리와 비교해 보자니 어쨌든 이안은 아주 개새끼는 아닌 모양이다. 아니면 아무리 정략결혼이라 해도 원치 않게 남에게 자신의 알파로써의 권리를 침범 받고 싶지 않았던가. 이안은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이 아니던가.
점심 식사는 화기애애하게 흘러갔다. 어제처럼 처음 방문한 손님들을 위해 만찬까지는 아니어도 훌륭한 수준의 식사가 사람들에게 대접되었다. 다만 노아는 이안과 다른 사람이 있어 눈치를 보느라 요리사의 특제 디저트를 마음껏 먹지 못하는 건 매우 안타까웠다. 그래도 보니까 자신의 디저트에만 초콜릿으로 만든 데코레이션이 하나 더 얹어져 있었다. 노아가 초콜릿을 깨물어 먹으며 요리사에게 감동했다.
“오후에는 승마를 하는 게 어떻습니까? 저택에서 1시간 거리에 제 소유의 승마장이 하나 있습니다.”
다들 느긋하게 후식을 즐기는 동안 이안이 제의했다. 그 제안에 다른 사람들이 흔쾌하게 동의했다. 모임은 다음 날 아침까지라고 들었으니 아마도 회의는 승마장에서 긴밀하게 나눌 모양이었다.
“아, 마침 점심을 먹었으니 소화도 시킬 겸 운동으로 좋겠군요.”
맛있는 식사를 해 기분이 좋아진 사람들이 다들 동의하자 이안이 고용인을 불러 미스터 솔로브요프에게 일정을 알리라고 지시했다. 노아가 눈을 굴렸다. 드미트리도 같이 가는 건가? 그럼 오늘 저녁까지는 부부침실에 들어가 있지 않아도 되겠지? 이안과 함께 있을 때야 감금이고 뭐고 상관 없었지만 혼자서 무료하게 있는 건 딱히 내키지 않았다.
고용인이 드미트리가 머무는 손님 방에 가서 일정을 알리고 난 뒤에도 1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드미트리가 게으름을 부리며 아래로 내려왔다. 대체 어제 늦게까지 뭘 한 건지 드미트리의 얼굴에는 방금 막 잠에서 깬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드미트리가 자신을 바라볼 때의 눈빛이 얼마나 끈적거리던지… 어제 이안이 매몰차게 스와핑 제안을 거절해서인가 노아는 그가 어제보다 제게 좀 집착하는 느낌까지 받았다. 한마디로 별로 썩 좋은 눈빛은 아니었다.
다행히도 노아의 예상대로 드미트리와 함께 승마장에 향했기 때문인지 이안은 노아를 자유로이 놔두었고, 승마를 하기 위해 이안과 다른 사람들이 떠나자마자 노아가 인상을 쓰며 팔뚝을 문질렀다. 드미트리의 시선이 제게 아직도 달라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이안과 다른 일행들이 저택을 떠난 뒤 요즘 너무 집에만 틀어 박혀 있는 것 같아 정원을 거닐며 산책하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아침에 나왔던 디저트가 아쉬웠던 노아가 식당으로 향할 때였다. 1층 홀을 가로질러 가던 길에 노아는 아주 조심스럽게 살금살금 계단을 내려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디론가 향하는 낯익은 여자를 발견했다. 드미트리의 아내인 사샤였다.
“사샤?”
친근하게 일부러 이름으로 부르자 사샤가 깜짝 놀라며 엉거주춤 노아를 바라보았다. 아, 안녕하세요, 노아. 사샤는 마치 죄를 지은 사람마냥 고개를 들지 못하며 어색하게 인사했는데 계속해서 오른쪽 얼굴을 가리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게 한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요? 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제게 말씀하세요.”
“아… 별거 아니에요…”
노아가 미심쩍어 하면서 사샤에게 다가갔다. 사샤는 당황스러워 하며 뒤로 물러났는데 한사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어디 다쳤냐고 물으면서 더 가까이 접근한 노아가 사샤의 얼굴을 보고는 놀라 눈을 깜박거렸다. 사샤의 오른쪽 눈가에 심하게 멍이 들어 있는 상태였다.
“사샤, 다쳤잖아요.”
노아가 깜짝 놀라 조심스럽게 어깨를 잡자 사샤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리고는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잘못해서 부딪혔다고 말하는데, 누가 봐도 어디 부딪힌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얻어 맞은 흔적이었다. 그리고 이 저택에 사샤를 때릴만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드미트리. 아주 가지가지 안 하는 게 없군. 원래 노아였다면 상대도 하지 않을 정도로 저급한 사람이다.
돈이 많다고 하여 무조건 상류층이 되는 건 아니었다. 노아가 괜히 일주일 내내 교육을 받고 승마를 하고 예술 공연을 다녔겠는가? 상황과 지위, 격에 걸 맞는 예의와 상식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물론 상류층 중에도 자신처럼 변태스러운 취향을 가진 사람도 있고, 가정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있었지만… 드미트리는 모든 걸 떠나 그저 돈이 꽤 많은 쓰레기 같은 알파일 뿐이었다. 노아는 이안이 왜 드미트리와 같은 사람을 상대하고 있는 건지 문득 의아해졌다.
노아는 주치의를 부를까 하다가 사샤가 몹시 수치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고는 생각을 바꾸었다. 본인이 남들에게 알리기 싫어하는데 자신이 굳이 적극적으로 간섭할 이유는 없었다. 대신 노아는 다른 방안을 제시했다.
“피부 재생 연고를 드릴까요?”
노아의 제안에 사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라보고는 다시 부끄러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네… 부디, 부탁 드려요.”
노아는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 뒤 제 방으로 달려갔다. 자신이 비밀스러운 취향을 가지게 된 뒤로 매일 같이 쓰는 게 재생 연고였다. 엉덩이에 바르던 걸 얼굴에 바르라고 주자니 조금 양심이 찔렸지만, 뭐, 엉덩이에 직접 대고 바른 것도 아니고 덜어서 썼으니까 위생 상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걸…
연고를 가져다 주자 사샤는 몹시 감사해 하며 조심스럽게 연고를 덜어 오른쪽 눈두덩에 문질렀다. 그러다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노아는 좀 난감해졌다. 자신에게 고백을 거절 받아 우는 사람을 달랜 적은 꽤 있지만 이런 식으로 우는 사람은 달래 본 적이 없다. 일단 노아가 사샤를 부드럽게 달래면서 식당으로 이끌었다.
“단 걸 먹으면 좀 기운이 날 거에요. 배고프지 않나요? 여기 요리사가 음식을 아주 잘해요.”
그러고 보니 드미트리가 점심을 안 먹었다는 이야기는 사샤도 점심까지 쭉 음식을 먹지 못했다는 이야기이기에 노아가 요리사에게 디저트와 함께 브런치를 부탁했다. 말은 안 했어도 배고팠던 모양인지 사샤가 다시 얼굴을 붉혔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
식사를 하는 동안 눈가의 멍은 서서히 사라졌고, 멍이 사라짐에 따라 사샤도 기운이 좀 회복된 모양이었다. 노아는 사샤를 잘 구슬려 디저트를 먹였다. 입에서 사르르 녹는 달콤한 생크림과 싱싱한 과일 절임을 맛 보고 나자 사샤는 이제는 상당히 기운을 차렸다. 사샤가 조금 훌쩍거리면서 노아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정말 친절하세요…”
“요리는 요리사가 했을 뿐인걸요.”
노아가 겸손하게 말했다. 사실이기도 했고.
디저트를 좀 더 먹고 노아의 친절한 대접에 마음이 풀린 사샤가 제 이야기를 좀 털어 놓았다. 직설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우회적으로 돌려 말하는 이야기로 대강 추측해 보자면 사업 상 자금 문제 때문에 제 아버지가 두 달 전 드미트리에게 자신을 팔아 넘기다시피 결혼 시켰다는 것이었다. 러시아에서는 오메가인 자식을 마치 선물인 양 나이 많은 알파에게 결혼시키는 게 흔히는 아니더라도 자주 있는 일이라고 했다. 심지어 사샤는 자그마치 다섯 번째 부인으로 결혼하는 것이었다.
마음 고생이 심하겠구나 싶어 노아가 사샤를 토닥거렸다. 자신이 이 어린 아가씨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만 위로라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사샤는 급기야 왈칵 눈물을 터트리더니 엉엉 울었다. 서러운 게 많았는지 한참을 울고 난 뒤에서야 사샤가 흐끅거리며 노아에게 사과했다.
“미, 미안해요…”
노아는 미안할 것 없다고 말했지만 사샤는 고개를 저었다.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그녀가 겨우 입을 열었다.
“사, 사실은… 미스터 솔로브요프가, …당신과 티 타임을 가지라고 했어요.”
“티 타임이야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데요.”
그게 왜 미안한 일이지? 노아가 의아해했다. 사샤는 두려운 듯 입술을 크게 떨면서 다시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샤가 우는 얼굴로 들어왔을 때부터 눈치 빠른 고용인들은 식당을 나가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기에 식당에는 노아와 사샤만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마침내 사샤가 결심을 내린 얼굴을 했다.
“미스터 솔로브요프는, 다, 당신의… 차에… 약을 타라고 하셨거든요…”
눈을 질끈 감고 사샤가 털어 놓은 말에 노아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