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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함부로 자신에게 도전하거나 영역을 침범하는 이들에게 절대 자비를 보이지 않았다. 알파들 특유의 천성이라기 보다는 그냥 타고난 성격이 그런 것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는 성질이 매우 더럽다는 이야기다.
원래의 자신의 소유인 부모님의 유산을 훔쳐간 친척들이 그 얼마나 뻔뻔하게도 그 유산을 쥐고 이안과 유일하게 남은 저택까지도 마음대로 하려 들었던가. 그 유산을 되찾기 위해 이안은 겉으로는 웃는 낯을 하며 남의 말을 따랐어도 속으로는 바득바득 이를 갈며 맹수들이 사냥하기 전 그렇듯이 몸을 낮추었다. 그리고 힘을 되찾았을 때 친척들의 숨통을 모조리 물어 뜯어 주었다. 그 때의 경험은 현재까지도 이안에게 아주 큰 영향을 주는 것이었다.
그 후로는 결코 그 누구도 함부로 이안에게 간섭하려 들지 않았다. 이제는 이안이 간섭 당할만한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안에게 간섭했다가 좋은 꼴을 보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유일하게 간섭할 권리를 가진 부모들은 작고한지 오래였다. 그토록 제 권리를 침범 받는 것에 이를 드러내는 이안인데도 테너는 회사의 큰 자금 줄 중 하나라는 수단을 이용하여 정략 결혼이라는 아주 보기 좋게 커다란 엿을 선사해 주었다. 테너 딴에는 이 결혼이 이안에게 아주 커다란 호의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남들이야 얼씨구나 하고 이 결혼을 받아들일지 몰라도 이안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테너가 제 아무리 호의라 오만하게 착각하여 그리 행동하거나 말거나 상관 없이 이안은 오랜만에 아주 바짝 성질이 올랐다. 그래서 테너에게 갚아줄 겸 노아를 괴롭힌 것인데 노아는 여러 가지 의미로 이안의 예상을 벗어나는 존재였다.
사실 이안은 노아가 첫 날밤에 그대로 뛰쳐나가 프로스트 가 저택에 돌아갈 줄 알았다. 그도 그럴게 자신이 노아에게 한 행동은 일반인에게조차 버거웠으니 세상 물정 모르고 자라난 프로스트 가의 도련님이 얼마나 버티겠나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의외로 꿋꿋하게 버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안을 원망하지도 않는 게 아닌가. 게다가 괴롭힐 때마다 울먹이는 얼굴이 가학 심을 제법 불러 일으키는 면이 있어 이안은 매번 노아를 괴롭히는 수위를 조금씩 올렸다.
처음에는 이안은 노아를 억지로 범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도구도 사용해가며 괴롭혀도 여전해서 저택이 아닌 회사에서 다른 이에게 치부를 보이는 수치심을 줬는데도 노아는 여전히 저택에 남아 있었다. 저택에서 제일 허름한 방이나 줘, 용돈이나 사재 따위는 일체 주지도 않고 대놓고 구박하는데 노아가 군 말 없이 순종적으로 구는 모습은 제법 이안의 구미를 돋구는 면이 있었다.
그래서 한번 어디까지 버티나 하고 헤더를 불러 보았다. 헤더 앞에서 개처럼 기어보라 시켰더니 울고 애원하며 바들바들 떠는 모습이 가엾기는커녕 더욱 괴롭히고 싶게 만들었단 말이지. 그런데 다음 날 미리엄이 달려와 제게 헤더가 정원에서 노아를 괴롭힌다 말하기에 구경이나 하자 싶어 갔더니 보이는 모습은 뜻밖에도 이안의 심기를 거슬렸다.
노아를 괴롭히기 위해 일부러 바람을 피우는 것처럼 헤더를 불러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밤 기술을 가르쳐 줄 선생이라는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를 믿을 정도로 노아가 멍청한 줄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곱게 자라 순진해 빠진 노아 프로스트야 그렇다 쳐도 헤더가 노아에게 한 짓은 명백히 이 저택의 주인인 이안의 허락도 받지 않은 주제넘은 일이었다. 왜 자신이 일부러 베타인 헤더를 불렀겠는가? 알파는 언제나 제 것을 탐하려는 자를 본능적으로 경계하기 마련이었다.
불쾌함을 느끼는 바람에 헤더를 이용해 괴롭힌다는 계획에 흥미가 사라진 이안은 헤더에게 얼마간 돈을 쥐어 내쫓아버린 다음 노아에게 실컷 불편해진 심기를 화풀이했다. 고용인들 앞에서 노골적으로 희롱하거나 고통스러운 관계를 맺을 때마다 노아가 울면서 발버둥치고 애원하게 만드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사교모임에 노아와 동반한 이유도 어느 정도 그 재미 때문이었다. 테너 프로스트의 자금 영향력에서 벗어날 프로젝트의 성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은 노아와 그럭저럭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이유가 제일 컸지만, 확실히 최근 들어 노아를 괴롭히는데 한참 재미를 붙였기 때문도 있었다.
노아와 결혼하기 전에도 원래 사디즘적인 면모가 있던 이안이었다. 이안은 비자금 조성 및 정보 수집을 목적으로 Tear를 운영했는데, 호텔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피가학적인 플레이에 익숙하게 될 수 밖에 없었다. 호텔은 비공식적인 모임이나 회의 장소로 자주 쓰이기도 했는데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일반인이 보기에는 낯뜨거운 모습들을 번번히 보거나 직접 행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와 어울려 주기 위해서도 하고 딱히 나쁘지도 않아 이안은 꽤 빈번하게 가학적인 플레이를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저 일반적으로 섹스 하듯이 했을 뿐인지라 그렇게까지 흥미를 가지지는 않았건만, 노아를 내쫓기 위해 가학적으로 구는 게 전과 달리 상대를 괴롭히는 게 속된 말로 꼴리고 즐거웠다. 하긴 지배하고 짓밟고 소유하는 건 알파들의 본능적인 욕망에 어느 정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 *돔(Dom, 지배를 통해 쾌감과 만족을 얻는 사람) 성향인 알파가 상당히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니까.
그런데 큐브 아일랜드에 도착하여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을 때 이안은 자신이 알파가 오메가에 대해 가지는 본능에 대해 지나치게 무심하게 여긴 게 아닌 가 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원래 알파와 오메가는 다른 성을 가진 이들에 비해 서로 상당히 잘 끌리곤 했고, 보통 알파는 베타보다도 오메가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하지만 그게 한낱 정략 결혼 대상에도 적용되는 줄은 미처 몰랐다.
“오, 어서 오시게. 꽤 먼 곳인데도 참석해 줘 고맙네.”
“아무리 멀어도 와야지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모임 개최자인 하워드 맥밀란과 인사를 나눈 이안이 내심 속으로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이안은 노아를 잠시 오래 쳐다보는 하워드의 시선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평판에 몹시 신경 쓰는 남자답게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사람 좋은 얼굴을 했으나 얼핏 잠시 눈에 어린 것은 상대에 대한 조금 질척한 평가였다.
하워드 맥밀란은 이안의 호텔과 다른 고급 사교 클럽들을 번갈아 다니곤 하는 사람인데, 항상 제 자식뻘도 되지 않는 어린 오메가만을 고집하는 버릇이 있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사내들이 으레 그렇듯이 갓 성인이 된 젊은 파트너만을 찾아대는 것이다. 그것도 Tear가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그나마 막 성인이 된 파트너를 찾는 거지, Tear 외의 음성적인 클럽에서는 더 어린 상대를 끼고 논다는 이야기가 있다.
노아를 바라보는 하워드의 시선이 조금 거슬렸으나 크게 신경 쓸 정도까지는 되지는 않았다. 하워드의 시선을 무시하며 이안은 노아를 데리고 다니며 아직 프로스트와 밀러 가의 동맹이 공고함을 여러 사람에게 보란 듯이 보이고 다녔다. 그런데 돌아다니다 보니 점점 신경을 거스르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테너에 대한 감정으로 노아까지 절대 곱게 보지 않았던 이안은, 그러나 노아의 외적인 가치 자체만은 인정하고 있었다. 오메가는 안 그래도 다른 종에 비해 비율이 좀 적다. 그런데 노아는 오메가일 뿐만 아니라 외모도 제법 봐줄 만 했으니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끄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시선을 끌어도 어지간히 끌어야지. 모임에서 스쳐 지나가는 알파나 베타들의 상당수가 노아에게 평균 이상으로 길게 눈길을 주었다. 헌데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노아를 보고 난 뒤 자연히 옆에 동행하는 이안에게까지 시선이 스치는 데 그게 자꾸만 신경을 긁었다. 그에 노아 프로스트를 바라보면 그는 이제까지 이런 시선은 그냥 일상 생활이었다는 듯이 아주 태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안도 노아처럼 남들의 시선에 신경 쓰는 스타일은 아니다. 오메가가 알파의 관심과 시선을 사로잡는 것처럼 우월한 알파 역시 반대로 다른 상대들에게 관심을 받기 마련이었으니까… 요 며칠 업무로 피곤해서 신경이 예민해졌나 생각하며 이안이 노아에게서 눈을 돌렸으나, 제대로 그의 신경을 거스르는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오, 이안. 마침 자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네.”
최근 이안이 국외에 새롭게 사업을 확장하면서 사업 파트너로써 이사직에 새로 부임한 드미트리 솔로브요프가 호쾌하게 웃으며 이안을 반겼다. 마주 인사를 해준 이안이 드미트리와 한참 사업에 관련한 대화를 하는데 내내 옆에 서있던 노아가 지루했는지 슬그머니 떨어져 파티 테이블에 다가갔다. 빤히 테이블 위에 진열된 음식을 바라보는 게 배가 고팠던 모양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저녁을 안 먹었던가? 이안이 무심하게 생각하는데 드미트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번에 결혼했다던 사람이 바로 저 오메가인가?”
전세계가 거의 전쟁터로 변할 정도로 거대하고 격렬했던 3차 대전의 종전 이후로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오메가의 인권이 바로 그러했다. 전쟁 전에 비해 오메가에 대한 인권이 차츰 나아지는 곳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전보다 더 악화된 곳도 있었는데, 러시아가 그 중 한 국가였다. 러시아에서는 오메가를 천하게 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개중에서도 남자 오메가는 유독 차별 대우를 받는 게 심했다. 러시아에서 점차 오메가의 비율이 줄어드는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이안은 드미트리가 은연중에 음습한 시선으로 노아를 바라보는 데에 약간 불쾌감을 느꼈으나 본인도 곧 그 불쾌감을 조금 의아하게 여기며 어깨를 으쓱했다.
“덕분에 요즘 신혼 생활이 즐겁죠.”
“뭐,… 하기사, 오메가가 남들과는 많이 다르긴 하지.”
동의하는 것처럼 미소 지으면서도 이안은 오메가에 대한 경멸을 감추지 않는 드미트리를 내심 비웃었다. 이안의 비서진의 삼분의 일 가량은 오메가였다. 다른 기업이 오메가를 채용하는 것을 꺼리는 가운데 이안만은 아주 관대한 인재 등용 전략을 펼쳤다. 그러나 절대 인도적인 목적은 아니었다.
그저 이안에게 있어 오메가건, 알파건 혹은 베타까지도 돈만 주면 열심히 일하는(이라고 쓰고 이안이 제멋대로 부려먹을 수 있는) 딱히 다를 것 없는 인간들이었다. 심지어 아직 오메가에 꽤 차별적인 사회 분위기 덕에 오메가는 더 낮은 비용에 고효율적인 채용이 가능했다. 그러니 왜 굳이 돈을 낭비해 가며 비효율적으로 회사를 운영해야 하나. 그런데 샴페인을 마시면서 드미트리가 흥미로운 눈으로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런데 자네는 오메가 관리 좀 잘해야겠는데.”
오메가 관리를 잘 하라니 그게 무슨 엿 같은 소리야… 하면서 고개를 돌린 이안은 엿 같은 상황을 발견했다. 어디서 굴러 먹다 온 건지 모른 왠 떨거지 같은 알파가 노아에게 장미꽃 다발을 내밀고 있는 게 아닌가. 대체 저 장미꽃 다발은 어디서 난 거야? 인상을 찌푸리며 바라보고 있자 허둥지둥하면서 알파가 멍청이 같이 굴며 화병에 도로 꽂았다.
이 병신 같은 알파가 뭘 하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자니 가관도 아니었다. 이제는 노아에게 데이트까지 신청하는 통에 드미트리는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까지 흥미로운 눈으로 이안과 노아, 그리고 머저리 같은 알파 녀석을 지켜보고 있었다. 끝내주는 군. 얼굴에 그린 듯한 미소를 떠올리며 이안이 걸음을 옮겼다. 잘도 나를 이 사교 모임에서 구경거리로 만들어?
“노아, 무슨 일이지?”
연인에게 하듯 다정하게 물으며 어깨를 꽉 힘주어 잡자 노아가 움찔 몸을 떨며 자신을 바라보았다. 깜짝 놀란 듯 파란 눈이 동그랗게 뜨며 저를 돌아 보더니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는 분을 만나서 인사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안은 슬슬 기분이 바닥을 찍기 시작했다. 노아 프로스트를 바라보는 모습 어디가 그냥 ‘아는 분’인가? 안 봐도 불 보듯 훤했다.
슬슬 수군거리기 시작하는 사람들 때문에라도 이안은 앞으로 나서야 했다. 자신과 결혼한 상대에게 집적거리는 놈을 내버려두는 멍청한 알파는 없었으니까. 이안은 아주 간단하게 알파를 내쫓아버렸으나 이미 저조해진 기분은 도로 회복되지 않았다. 이안이 짐짓 다정하게 제 반려를 위로하는 것처럼 노아를 이끌며 윽박질렀다.
“저 떨거지는 또 뭐야?”
“그게, 어거스트 기업의 차남인데요… 아…!”
이안은 허리를 감싸는 척 하며 콱 오른쪽 엉덩이를 아프도록 움켜 쥐었다. 별 우습지도 않은 놈이 감히 제게 도전해서인지 평소보다 배는 음습한 생각이 자꾸만 치밀었다. 허나 아직 드미트리와 나눌 대화가 있었기에 룸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노아를 자유롭게 풀어주어 다시 별 허접하기 짝이 없는 알파가 제게 도전할 빌미를 만드는 것도 이안은 용납할 수 없었다.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여기 가만히 있어.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거나 다른 사람과 놀아나는 걸 보였다간 재미 없을 줄 알아. 알겠어?”
사람이 거의 오지 않는 한적한 구석에 밀어 넣으며 으르렁거리자 노아가 잔뜩 기가 죽은 얼굴로 수긍했다. 아무리 멍청해도 이 정도면 알아 들었겠지. 하지만 드미트리에게 가 마저 대화를 마치고 온 이안은 더 기도 안 차는 상황을 발견했다. 자리를 비운 지 10분도 안 되어 새파랗게 어린 알파가 노아에게 집적거리고 있었다.
이안의 심기가 부글부글 끓었다. 노아 프로스트가 이 사교 모임에서 제게 작정하고 망신을 줄 작정이 아니라면 어떻게 시도 때도 없이 별 시답지도 않은 놈들이 들러 붙을 수가 있겠나?
물론, 엄연히 따지자면 노아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알파나 오메가, 베타를 가리지 않고 커플을 맺은 이들은 항상 제 파트너의 체취를 은연중에 풍기기 마련이다. 항상 페르몬을 감추지 않은 채 파트너와 오래 지내다 보면 일종의 소유권 주장처럼 서로의 체취가 몸에 베이기 마련이었다. 알파의 노팅은 뭐랄까, 말하자면 더 인위적으로 강력하게 소유권 주장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뿐…
그러나 이안은 결혼 후 노팅은 커녕 노아와 함께 있을 때 제 페르몬을 편하게 풀어 놓지도 않았다. 어차피 언제 저택에서 나갈지 모를 상대였다. 비록 버티고 있는 기간이 예상보다 오래가긴 했으나 곧 이혼할 사람에게 소유권 주장만큼 불쾌하고 귀찮은 일이 없지 않나. 그러니 노아는 결혼을 하고서도 오로지 오메가 페르몬만을 지니고 다닐 뿐이었고 사람들은 파트너가 없다고 오해를 하는 것이다.
제 잘못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채 매우 기분이 더러워진 이안이 자신과 한 10살은 더 차이 날 것 같은 알파를 내쫓아 버리고는 노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뜻 밖에도 노아는 이안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저기… 고마워요. 도와 줘서…”
샴페인을 좀 마셨기 때문인지 좀 발그레한 뺨으로 노아가 이안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안이 잠시 빤히 노아를 바라봤다. 이건 대체 뭐야. 눈치가 있으면 분위기를 보고 내가 도와 준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지 않나? 그 멍청하기 짝이 없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몹시 약이 올라 오늘 노아를 더 괴롭게 만들기 위해 드리트미와 그 애인들을 밤에 초청해 관음 하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했던 이안의 계획이 슬그머니 다시 사라졌다. 지난 번 한 순간 변덕으로 헤더를 애인에서 선생으로 노아에게 설명했던 것처럼.
그러나 잔인한 마음이 사라졌다고 오늘 사교 모임 내내 드문드문 치솟아 올랐던 가학적인 성욕마저 수그러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베시시 웃는 그 순진한 얼굴을 보자 지독하게 퍼져 나가는 것이다.
이안은 바로 룸으로 끌고 내려와 노아를 범했다. 기분이 저조했던 탓에 평소보다도 수위가 한층 높아진 행위였다.
욕실에 엎어 놓고 노아를 범하는 도중 이안이 피부를 이로 잘근잘근 깨물어 흔적을 남긴 것은 거의 무심결에 한 행동이었다. 오늘 사교 모임에서 내내 본인이 인지하지 못한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던 어떤 생각의 반영이기도 했다. 정작 이안은 노아의 어깨에 며칠은 갈 흔적을 남겨 놓고는 순간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그러나 당혹스러움도 잠시 제 아래에서 흐느끼며 순종적으로 엎드린 노아의 어깨와 목덜미에 남은 흔적들은 제법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그래, 어차피 이보다 더한 짓도 하는데 깨무는 것쯤이야 무슨 대수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이안은 노아의 목덜미를 보고는 수그러들기는커녕 더 날뛰는 가학 심을 채우기 위해 노아의 머리카락을 잡아 당기며 몸을 떼어냈다…
노아가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만족스러우면서도 잔인하게 욕구를 채우고 노아를 먼저 내보내고 난 뒤에도 이안이 한참을 느긋하게 온탕을 즐기고 나왔을 때, 문을 연 그의 발에 채인 것은 체액이 말라붙어 있는 흉악한 바이브레이터였다. 이게 왜 여기서 굴러다니나 싶어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어보니 침실에 유일하게 놓여 있는 침대의 이불이 불룩한 상태였다.
설마 하며 저벅저벅 걸어가 보니 오늘 제법 험악했던 괴롭힘 때문에 잔뜩 지쳤는지 노아가 몸을 웅크린 채 숨을 색색거리며 깊게 잠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이것 봐라… 침실에 침대가 하나 밖에 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여기서 잔다 이거지? 노아가 자고 있는 침대의 사이즈가 한 세 명이 자고도 남을 만한 넉넉한 넓이였는데도 이안이 삐뚜름하게 웃었다.
노아를 깨워 다른 방으로 내쫓을 요량으로 이불을 들추던 이안이 손을 멈칫했다. 이불을 들추자 스탠드의 조명 아래 흰 목덜미가 무방비하게 드러났는데, 제가 깨문 흔적이 가득한 피부를 보니 배불리 먹어 만족한 맹수가 코 앞에서 얼쩡거리는 토끼를 보고도 놔주는 것처럼 짐짓 관대로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심술이 조금 누그러진 이안이 잠시 물끄러미 노아를 내려다 보았다.
하긴 호텔에서 노아 프로스트와 따로 다른 방에서 잠을 잤다는 소문이 나서 성가시게 되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리 생각한 이안이 침대로 들어가 노아의 옆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그리고 은은하게 연한 오렌지색 불빛을 드리우던 스탠드를 끄며 이내 눈을 감았다. 결혼하고 난 뒤 처음으로 노아와 한 침대에서 잠드는 것이었으나 이안은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 것이 어렴풋한 어떤 감정의 시작이란 것도 이안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