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107)

17

 회장실 안에 들어서니 이안은 노아가 도시락을 차려 놓았던 테이블 앞 소파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노아는 머뭇거리며 테이블까지 걸어간 뒤, 상의와 신발까지 입고 있던 것들을 모두 벗어 바지와 드로즈 위에 놓았다. 이안은 모든 옷을 갖추고 있는데 비해 자신은 밖에서, 그것도 회사의 회장실에서 혼자서만 옷을 다 벗고 있으려니 노아의 뺨이 조금 붉어졌다. 노아는 엉거주춤 이안의 눈치를 보며 테이블 옆에 무릎을 꿇은 뒤 바닥에 엎드렸다. 다리를 꼬고 앉은 이안이 거만하게 명령했다.

 “이리로 와. 아니, 일어서지 말고 기어서.”

 마른 침을 한 번 삼킨 후 노아가 천천히 이안의 앞까지 기어갔다. 눈 앞에 반들반들하니 잘 관리된 매끈한 구두가 보였다. 순순히 말에 따라 기어서 왔는데도 이안이 살짝 짜증을 냈다. 

 “내가 자세까지 일일이 짚어줘야 하나? 반대로 뒤돌아.”

 이안 모르게 조금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노아가 이안에게 엉덩이를 향한 채 엎드린 다음 최대한 상체를 낮춘 뒤 높이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일명 요 며칠 이안이 노아의 엉덩이를 몇 십 번이고 때리면서 교육한 ‘이안이 박기를 원할 때 노아 프로스트가 취해야 할 올바른 자세’ 였다. 바짝 엎드린 채 있던 노아는 뒤에 딱딱한 감촉이 와 닿는 걸 느꼈다. 이안은 구두로 토실토실한 노아의 엉덩이를 꾹꾹 밟기도 하고 구두 끝으로 엉덩이 사이를 지분거리기도 했다. 노아가 움찔했다.

 “워낙 네가 늦게 도착해서 난 먼저 점심을 먹었지만 말이야, 아무래도 넌 배가 고프겠지?”

 먹은 거라곤 단백질 밖에 없으니까 말이야. 모욕하고 조롱하면서 이안이 발을 내리고는 아까 복도에서의 삽입으로 발갛게 부은 입구를 손가락으로 쑤셨다. 노아는 몸을 떨면서 이안이 제 뒤를 괴롭히는 손길에 간간히 신음했다. 뭐 안 쪽에 신기한 것이라도 있는 듯 손가락을 놀리던 이안이 갑자기 검지와 중지를 갈고리처럼 구부려 한 쪽으로 잡아 당겼다.

 “윽…!”

 “가만히 있어, 도시락을 가져온 보답으로 손수 점심을 먹여 줄 테니까.”

 이안이 손가락을 걸어 잡아 당기자 뒤가 한쪽으로 벌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뒤에 끈적하고 미지근한 액체가 엉덩이 골을 따라 흘러 내려오자 노아가 숨을 집어 삼켰다. 공기 중으로 요플레 특유의 새큼한 향이 퍼져 나갔다. 

 “아,…으…”

 요플레가 제 몸 가장 은밀한 곳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것도 오는 것이었지만, 이안이 억지로 벌린 뒤로 점성이 있는 액체가 스며드는 감각이 선연해 노아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뒤로 들어가는 것보다 흘러 내리는 게 많자 이안이 더 힘을 줘 뒤를 크게 벌렸다. 발간 입구 틈으로 흘러 들어가는 흰 요플레의 색상 대비가 선명했다. 이안은 요플레의 반을 흘렸지만, 그건 다른 말로는 반은 뒤로 들어갔다는 이야기였다. 작은 통에 들은 것을 다 부은 이안이 비아냥거렸다.

 “먹여 주는데도 질질 흘리는 건 정액이 아니라서 그런 건가?” 

 생긴 건 비슷한데 말이야. 요즘 들어 노아를 괴롭히는 일을 지나치게 즐거워하는 것 같은 이안이 통을 내려 놓고는 흠 하고 고민하는 소리를 냈다. 노아는 이안의 말에 일부 동의했다. 슬근슬근 제 뒤로 미지근한 요플레가 스며드는 느낌은 제법 정액과 흡사한 면이 있었다. 

 복도에서 이안에게 박힌 후로는 몸에 좀 힘이 빠진 터라 노아가 약간 비틀거리자 이안이 철썩 소리가 나도록 엉덩이를 여러 번 내리쳤다. 노아가 몸을 조금 떨면서 이미 어젯밤 맞은 영향으로 욱신거리는 엉덩이를 좀 더 높게 들었다. 

 “아, 이게 좋겠군.”

 달그락 거리며 이안이 뭔가 들어 올리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까 다니엘에게 이안에게 박히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인지 오늘따라 흥분하는 정도가 심해서 좀 진정하려고 노아가 카펫을 손가락으로 움켜 쥐었다. 하지만 요플레가 끈적하게 묻은 뒤로 동그랗고 차가운 무언가가 쑥 밀려 들어오는 바람에 그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저절로 앓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흣, 아… 으읏… 이, 이건 뭐…”

 “보채지 마. 굳이 그러지 않아도 배부르게 먹여 줄 테니까.”

 넌 윗입으로 먹는 것 보단 뒷입으로 먹는 걸 좋아하잖아. 음담패설과 함께 이안이 뒤로 또 무언가를 밀어 넣었다. 크기나 향으로 봤을 때 아마 도시락에 담겨 있던 과일 중에 있던 포도였던 것 같았고, 그 추측은 맞았다. 절경인데, 놀리듯이 말하면서 이안이 흰 요플레가 스물스물 새어 나오는 뒤에 녹색 포도 알을 하나 더 따서 밀어 넣었다. 이안이 쉬지도 않고 연달아 포도ㄹ를 밀어 넣을 때마다 노아는 몸을 떨었다. 차갑고 동그란 알이 하나하나 넘어가는 느낌에 다리가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누가 오메가 아니랄 까봐 뒤로 잘도 먹는군.”

 “아, 아니… 아니야… 흐…”

 “아니라고? 벌써 반이나 다 먹었는데?”

 이것 보라는 듯 이안이 노아의 눈 앞으로 반 정도가 사라진 작은 포도 송이를 흔들어 보였다. 녹색의 포도 알 하나가 떨어져 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저게 제 안에 반이나 들어갔다는 생각에 노아가 뒤를 조이며 신음했다. 이안이 다시 노아의 뒤로 포도 알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노아가 식은땀을 흘리며 카펫을 쥐어 뜯었지만 이안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마침내 뼈대만 남은 포도가 노아의 코 앞으로 던져졌다. 하지만 이안은 그 정도에는 만족하지 않은 것 같았다.

 “분명 넌 이걸로는 부족하겠지. 그렇지?”

 “제발, 그만…”

 “오, 이젠 결혼한 사이인데 내숭 부리지 않아도 돼.”

 짐짓 친절하게 말한 이안이 아예 과일이 담긴 통을 통째로 들어 올렸다. 바로 포도보다도 더 단단하고 알이 큰 무언가가 꾹 뒤로 밀려 들어왔다. 테이블 옆으로 떨어지는 짙은 녹색의 꼭지를 보니 체리였다. 노아는 그때서야 뒤늦게 이안이 일부러 도시락에 이런 과일을 골라 담도록 요리사에게 지시를 내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런 거라면 이안은 굉장히 치밀한 인간이었다…

 다른 생각을 하던 노아가 이미 포도가 잔뜩 들어 차거나 말거나 체리를 연신 밀어 넣는 이안의 손에 괴롭게 신음했다. 체리를 몇 개쯤 더 집어 넣었을 때 버티지 못하고 노아가 자세를 무너트렸다. 그러자 이안이 아예 한 쪽 발목을 잡아 올리고는 밀어 넣기 시작했다. 보기 좋게 살이 오른 엉덩이 사이로 작고 붉은 알의 과일이 꿀꺽 연신 삼켜지는 모습은 매우 선정적이었다.

 “아으… 흐, 으,…아!”

 체리를 넣다 말고 이안은 손가락을 밀어 넣어 아무렇게나 휘젓고 쑤셔 대곤 했고, 그럴 때마다 노아는 괴로운 신음 소리를 냈다. 이안이 무자비한 손을 멈춘 건 옆으로 넘어지다시피 한 노아가 바닥을 긁으며 제발 그만하라고 애원했을 때에서였다. 배가 묵진 하게 아파 노아가 신음하면서 몸을 웅크렸다. 아까보다 배가 조금 불룩해져 있었다.

 “왜 벌써? 아직도 먹을게 많이 남았는데.”

 “더는 못해요…”

 노아가 울먹거리면서 애원했다. 금방이라도 마지막으로 넣은 체리가 튀어 나올 듯 뒤가 불룩해서 안에 든 게 빠져나가지 않도록 뒤를 꽉 조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그저 만족할 만큼 실컷 괴롭혔을 뿐이면서도 이안이 퍽 관대하게도 봐준다는 제스처를 보이며 고개를 까닥했다. 

 “나가봐도 좋아. 단, 버릇없게 다시 뱉을 생각은 하지도 마.”

 한 마디로… 그냥 이대로 나가라는 이야기다. 노아는 겨우 몸을 추슬러 구부정하게 몸을 일으키고는 낑낑거리며 옷을 갖춰 입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안에서 과일이 굴러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제론 굴러다닐 만한 여유 공간이 없었는데도. 요플레가 말라 붙은 걸 닦아내지도 못하고 노아가 제일 힘든 난관인 청바지까지 모두 입었다. 비틀거리며 나가려다가 노아가 보온 캡에 잘 담겨 있는 커피를 보고 머뭇거렸다.

 “저기…”

 “뭐?”

 “커피…”

 뭐라는 거야, 하는 표정으로 이안이 눈썹을 찌푸렸다. 입을 조금 달싹거리다가 노아가 그냥 입을 다물고 회장실을 나갔다. 걸을 때마다 괴로워서 노아가 벽을 짚으며 겨우겨우 걸었다. 완전히 발기해 청바지 안에서 꽉 눌린 성기가 욱신거렸다. 흥분과 고통에 발갛게 물든 눈가를 하고 로비에서 내린 노아가 서둘러 제일 가까운 화장실로 향했다. 다행히 화장실은 그다지 사람이 없어 한산했다.

 빈 칸에 들어서 문을 닫은 노아는 숨을 할딱거리면서 허겁지겁 바지와 드로즈를 내리고는, 벽에 뺨을 기대어 제 것을 손으로 잡아 흔들었다.

 “…아! 아…흐…읍…”

 화장실이라 차마 크게 소리를 내진 못하고 팔을 꽉 깨물면서 노아가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눈 앞이 희게 번쩍거리며 절정에 달하고도 얼마나 흥분했는지 노아가 몹시 야하게 숨을 몰아 쉬면서 한 손으로는 벽을 긁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엉덩이를 잡아 벌리면서 벽에 제 것을 문질렀다. 뒤를 움찔 여러 번 조이면서 길게 절정의 여운에 떠는 동안 빠듯하게 차 들어있던 과일이 데굴데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노아가 헉헉거리며 고개를 내려 보니 손에 흰 사정 액이 흥건했고, 엉덩이 뒤에서도 과일즙인지, 아니면 요플레인지 혹은 체액인지 뭔지 모를 묽은 액이 뚝뚝 바닥으로 내리 흘렀다. 비틀거리면서 변기 뚜껑을 내리고 거꾸로 앉아 다시 손가락으로 뒤를 쑤셔 남은 과일을 꺼내면서 노아가 발간 뺨을 한 채 아직도 쾌감의 물결에 멍하니 생각했다. 내 커피, 가져올 걸… 그냥 가다가 사야겠다. 그러다 노아가 움찔 하며 가르랑거렸다. 

 아, 커피 사러 가기 전에 한 번만 더 하자…

***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쾅 문을 닫고 들어서는 다니엘을 다른 비서들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실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결제 받으러 가셨던… 서류는 어디에 놓고 오셨고요?”

 “그게, 회장님이…”

 “아…”

 이안의 행태에 익숙해져 있던 비서들은 다니엘의 회장님이라는 단어 하나와 애매한 손짓만으로도 무슨 상황인지 즉시 알아 차렸다. 또 회장이 밖에서 민망한 짓을 하고 있구나… 대체 왜 맨날, 하필 회사에서 그 짓을 하시는 걸까… 하다 못해 회장실에서 하는 거라면 낫겠는데. 제일 막내인 엘리야가 난감한 얼굴을 하며 시계를 흘깃거렸다.

 “전 지금 당장 아래로 내려가 봐야 하는데요.”

 그러나 다니엘은 아예 의자 하나를 문 앞에 놓고선 거기에 앉아 버텼다. 그가 아직도 창백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때면 밖으로 나갔을 때 다니엘에게 경을 치는 정도가 아니라 이안에게 해고 당할 수도 있다는 걸 알기에 엘리야가 포기하며 자리에 앉았다.

 한편, 다니엘은 현재 엄청난 갈등에 빠져 있었다.

 ‘좋아서 하는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디로 보나 노아 프로스트의 모습은 상호 합의하에 이루어진 관계로 보이지는 않았다. 다니엘이 나타났을 때 몹시 당황하던 얼굴이나 뒤로 묶여 있던 손, 그리고… 엉덩… 어, 어어, 엉… 으악! 다니엘이 고개를 파드득 저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잊자. 잊는 거야. 잊기 힘들어도 잊어야 해!

 다니엘이 푹 한숨을 쉬었다. 비열한… 악당 같은… 하여간 온갖 사악한 수식어를 붙여도 다 어울리는 자신의 회장이 노아 프로스트와의 첫 맞선 자리에서 대놓고 괴롭혀 내쫓아 주겠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 봤어야 했다. 아니, 그 전에 갑자기 성인용품점에 가서 아무거나 사오라고 했을 때부터 알았어야 했는데…! 그냥 회장이 이번에는 좀 격하게 놀겠구나 했을 뿐이지…

 하지만 만약에 노아 프로스트가 이안에게 강제로 당하고 있었다고 한들 다니엘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경찰에 신고하는 것?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경찰에 신고하는 순간부터 이안 밀러와 노아 프로스트의 매우 추잡한 불화 설(설이 아닌 사실이겠지만)이 언론에 쫙 퍼지게 될 텐데, 그럼 자신은 밀러나 프로스트 두 가문에서 보내진 사람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말 터다.

 다니엘은 돈과 권력을 거머쥔 사람일수록 그 사람에게는 법이 법대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럴 경우에는 대게 피해자의 입장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두 가문간의 관계가 틀어질 경우 얼마나 손해를 보게 되는가가 가장 큰 문제가 되니 대부분의 상류층 가문들은 조용히 덮어두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괜히 정략결혼이라고 하는 게 아니다.

 게다가 만에 하나 테너가 가문의 명예나 이익보다도 막내 아들을 더 중요하게 여겨 이안이 고소를 당해 재판에 가게 될 지라도 알파인 이안이 오메가인 노아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이라 소용이 없을 것이다. 요즘엔 슬슬 매우 오메가 차별적인 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진다고는 해도 아직… 알파가 ‘자신의 오메가’를 취하는 것은 그게 어떤 방식이라고 할지라도 거의 죄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 알파가 권력자면 권력자일수록 더욱 그런 경향이 있었다.

 그러니 다니엘은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기 보다는 여기에 꼼짝없이 앉아 자신의 못 되어 먹은 상사를 욕하면서 노아를 동정하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까 헤더라는 여자와 마주쳤을 때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다 눈치 채셨겠지… 그 가여운 도련님이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세상에, 이제 겨우 결혼한지 1주일이 지난 상태인데 결혼한 알파가 그리도 험악하게 다루고 벌써부터 바람을 피우고 있으니… 앞으로 결혼이 며칠이나 더 유지될지 생각하며 다니엘이 다시 푹 한숨을 쉬었다. 좀 조심해야 할 회사에서도 이렇게 행동하는 걸 보니 집에서는 얼마나 달달 볶으며 괴롭히고 있을지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다니엘이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문을 지키고 앉은 지 한 30분쯤 지났을 때에서야 이안이 다니엘을 호출했다. 다니엘은 조심스럽게 복도로 나가, 회장실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회장실에는 이안 혼자만이 있는 상태였다. 실컷 포식한 맹수처럼 소파에 다리를 꼬고 기대어 앉아 있던 이안이 고개를 까닥거렸다.

 “여기 좀 치워.”

 “예, 알겠습니다.”

 바로 대답은 하였으나 다니엘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난 비서지 청소부가 아니라고… 청소 로봇을 돌리면 될 텐데도 굳이 번번히 자신을 불러 온갖 잡 심부름을 시키는 이안의 행동은 이제 별로 대단하지도 않았다. 다니엘은 일단 바닥에 굴러 다니는 뼈대만 남은 포도를 주워 들다가 카펫에 뭔가 흰 자국이 묻은 걸 발견했다. 처음에는 설마 여기다가 뿌렸(?)냐는 생각에 얼굴이 굳던 비서는 이게 정액의 흔적 따위가 아니라 요플레라는 걸 깨달았다.

 왜 포도를 다 먹고 여기다 놓은 거야… 그리고 식사 예절도 그 누구보다 완벽할 사람들이 요플레는 왜 굳이 카펫에 질질 흘리며 먹은 거고. 투덜거리며 테이블 위에 놓인 도시락을 치우려던 다니엘의 손이 멈칫했다. 도시락의 다른 음식은 손도 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데 비해 과일 박스에는 포도 한 송이와 체리 몇 개만이 굴러다니고 있었는데, 포도야 껍질 채 먹으니 남은 게 이거 밖에 없다곤 쳐도 체리는 따다 버린 체리 꼭지는 많은데 먹고 뱉어 놓은 체리 씨앗이 하나도 없다.

 이거…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거는 아니지…? 눈치가 빠른 편인 다니엘이 부지불식간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에 표정 수습을 못하고 저도 모르게 질린 얼굴로 이안을 바라봤고, 이안이 제 비서의 표정에 인상을 썼다.

 “그 짜증나는 표정은 대체 뭐야?”

 “회장님, 이건 좀… 심하신 게 아닌가요…”

 다니엘이 소심하게 항의해 보았지만 이안이 눈썹을 치켜 올리자 찍 소리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며 열심히 치우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래, 내 처지에 대체 누굴 신경 쓰나… 해 봤자 소용도 없는 짓을. 도시락이 매우 먹음직스러워 보이긴 한데 대체 도시락을 가지고 대체 뭔 짓을 한 건지 모르니 그냥 갔다 버려야 하는 수 밖에 없겠다고 다니엘이 생각했다.

 “사실 나는 이틀도 못 갈 거라고 생각했거든. 첫 날 밤 바로 울면서 뛰쳐 나갈 줄 알았지.”

 턱을 괴고 다니엘이 청소하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이안이 느긋하게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꽤 강단이 있더라고? 다니엘은 묵묵부답 카펫을 걷어 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안 밀러는 악마다, 악마야. 난 어쩌다 이런 세상에서 제일 가는 사악한 악당 밑에서 일하고 있나… 하긴 돈을 엄청 많이 주긴 하지. 

 “아직 괴롭힐 게 제법 남았으니까 최소한 한 달은 버텨줬으면 좋겠는데.”

 매우 즐거워하는 이안의 모습에 다니엘이 속으로 노아 프로스트에 대한 깊은 애도를 표했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어쩌다가 저런 성질 더러운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을까…! 

다니엘이 온갖 생각으로 복잡한 머리에도 열심히 몸을 움직여 카펫과 도시락을 치우는데 문득 보니 포장도 예쁘게 해 놓은 커피가 놓여 있었다. 버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커피인 것 같았고, 또 그래도 노아 프로스트가 나름 마음 써서 사왔다는 걸 떠올리며 다니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커피도 버릴까요?”

 “가져와 봐.”

 보온 캡까지 되어 있어 커피는 따뜻했다. 다른 사람과 결혼했으면 아주 귀한 대접 받았을 그 프로스트인데… 다니엘이 속으로 쯧쯧 혀를 차며 이안에게 커피를 내밀었다. 이안은 무심하게 커피를 받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바로 인상을 쓰며 물렸다.

 “버려.”

 그럼 그렇지… 정해진 브랜드에 원하는 토핑이 아니면 입도 대지 않는 이안이다. 그나마도 회사 로비에 있는 카페가 이안이 원하는 브랜드의 카페이기에 황공하게도 한 입씩이나 마셔 주신 것 같았다. 다니엘이 보기엔 그마저도 좀 놀랍기까지 했지만 말이다. 분명 토핑까지 정확하게 했는데도 조금 식었다거나 색이 마음에 안 든다고 커피를 다시 사오라고 했던 게 몇 번이던가… 

 다니엘은 동글게 만 카펫과, 커피와, 도시락을 힘겹게 한번에 안고 일어나 회장실을 나가며 생각했다. 딱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누군가 저 인간을 쩔쩔 매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내 한달 월급을 다 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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