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시간은 빨리도 흘러 벌써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물론 노아에게는 한 없이 길게만 느껴지던 시간이었다.) 이안과 노아의 바램 대로 결혼식은 겨울 별장에서 소박(?)하게 진행 되었다. 전날 갑자기 벤자민이 쳐 들어와 막 자려던 자신을 붙잡고 와인을 마시며 온갖 한탄을 한 탓에 거의 잠을 제대로 못 잔 노아는 결혼식이 짧고 간소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피곤해서 빨리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양측의 지인과 친지들이 모인 가운데 진행되는 결혼식 이후에는 밀러의 개인 섬으로 신혼여행을 가는 것으로 일정이 정해져 있었기에 노아는 어서 결혼식이 끝나기만을 간절히 바랬다. 이안과의 첫 날밤도 첫 날밤이지만 무엇보다 발이 아파 일단 편하게 쉬고 싶었다. 남자 구두도 이런데 여자들은 결혼식 때 굽 높은 신발을 대체 어떻게 신고 다니는 걸까 내내 궁금해 하며 노아는 길게만 느껴지는 결혼식 끝에 마침내 이안과 맹세의 키스까지 모두 마쳤다. (윌리엄과 벤자민의 결혼식 때에는 웃거나 화내거나 하고 있던 테너는 조금이지만 눈시울을 붉혀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결혼식 내내 노아를 사랑하는 사람인 것처럼 더없이 달콤하고 다정하게 굴던 이안 밀러가 본색을 드러낸 것은 결혼식 바로 직후부터였다. 결혼식이 끝난 뒤 이안은 잠시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비웠고, 피곤했던 노아는 먼저 대기하고 있던 리무진에 올라 탔다. 목을 답답하게 죄이는 와이셔츠 단추를 두 개 풀러 내면서 드디어 결혼식이 끝났다는 감격을 느꼈다.
“아,… 이제 좀 살 것 같다.”
푹신한 좌석에 편하게 기대면서 노아가 기지개를 폈다. 오늘 하루 종일 예의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있느라 온 몸이 다 뻐근하고 피곤했다. 당장 편하게 신발도 벗고 싶었지만 조금 있다가 이안이 돌아올 거라 그럴 수도 없어서 노아는 발가락만 조금씩 꼼지락거렸다. 아침부터 좀 늦은 오후인 지금까지, 하객들을 챙기느라 식사도 제대로 못해 배도 고팠다.
저기 안에 분명 먹을 게 있을 텐데… 노아가 입을 조금 벌리고 빤히 리무진 내부에 설치된 미니 냉장고를 쳐다 봤다. 하지만 신발과 마찬가지로 이안이 막 들어왔을 때 혼자서 뭔가 먹고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신발도 못 벗고, 먹지도 못하고, 잘 수도 없고… 그나저나 무슨 대화가 이렇게 길어진담? 벌써 20분도 더 지났는데.
그 때 똑똑 하고 창문이 두드려졌다. 노아가 의아한 얼굴로 창문을 내리자 오늘 결혼식에서 내내 이안 곁에 머무르며 잔 심부름을 했던 사람이 몹시도 죄송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름이 뭐였지… 아… 이안이 소개해준 적이 없구나. 다행히도 상대 쪽에서 먼저 자신의 소개를 해왔다.
“안녕하십니까, 노아님. 저는 회장님의 비서인 다니엘 코스텔로라고 합니다. 오늘 몇 번 뵈었죠.”
“안녕하세요, 다니엘. 만나서 반가워요. 그런데 무슨 일인가요?”
노아가 오늘 내내 하객을 접대할 때 사용한 노아 프로스트 표 빛나는 미소를 지으며 묻자 다니엘이 저… 하고 쉽게 말하지 못하며 쩔쩔맸다. 몇 번 머뭇거린 끝에서야 다니엘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회장님으로부터의 전언입니다. 회장님께서는 매우 안타깝지만… 오늘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신혼 여행은 취소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 노아 님이 원하신다면 혼자 다녀… 오시라는… 말씀도… 정말 죄송합니다.”
몇 번이고 사과하는 다니엘의 말을 들으며 노아가 눈을 깜박였다. 신혼 여행이 취소라고? 노아가 아무 말도 없자 다니엘의 안색은 점차 시커멓게 변해갔고, 조금 후에서야 정신을 차린 노아가 입술을 깨물고는 눈썹을 조금 떨며 시선을 떨구었다. 그 반응에 다니엘은 이제 숫제 가만히 서있지를 못했다.
“아니에요, 혼자서 신혼여행을 갈 수는 없죠. 많이 늦으신다 던가요?”
“정말 죄송합니다. 일정이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어서… 노아 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아마 빠르게 귀가하실 겁니다… 네, 그렇고 말고요.”
노아가 눈을 들어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다니엘이 죄송할 게 뭐가 있습니까. 사업가니 바쁠 수도 있는 거지요. 그 말을 들은 다니엘은 마치 가슴에 비수라도 꽂힌 것 같은 사람의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10분 뒤에 리무진이 출발할 겁니다.”
노아는 꾸벅 인사하는 다니엘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창문을 다시 올렸다. 완전히 창문이 닫히자마자 노아가 언제 가련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발라당 푹신하고 긴 좌석에 누웠다. 잠시 뒤에는 신발이 툭툭 바닥 위로 떨어졌고, 노아의 입에서는 아으, 살겠다아… 하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한동안 구두는 쳐다 보지도 말아야지.”
오랫동안 걷거나 서 있을 일이 별로 없었기에, 노아는 딱딱한 구두에 짓눌린 발을 주무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아는 신발도 신지 않고 걸어가 아까 눈 여겨 보았던 미니 냉장고를 열었다. 과연 안에는 간단히 먹을 수 있는 핑거 푸드 따위가 놓여 있었다. 같이 놓여 있던 물 수건으로 손을 싹싹 닦은 뒤 노아는 냉장고 안에 있던 음식을 모조리 쓸어 모았다.
“음, 이안과 같이 타고 가지 않아서 다행이야.”
노아가 합 하고 크루스타드(*파삭파삭하게 튀긴 빵 또는 파이 속에 고기요리를 채워 넣은 것)를 한 입에 털어 넣고는 행복하게 냠냠 먹으면서 고럼,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안과 같이 타고 갔으면 괜히 예의 차리느라 누워서 갈 수도 없을 거고… 신발도 못 벗고, 음식도 나눠 먹어야 하고… 세이셸은 질리도록 놀러 가본 곳이고… 어차피 이젠 한 집에서 살게 될 건데 뭐 하러 벌써부터 봐?
“아, 아니다. 어쩌면 리무진에서 첫 섹스를 했을 수도 있어.”
노아가 잠시 헤 하고 상상했다. 리무진에 탄 이안이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 자신을 넘어트리는 거다. 그러면 자신이 당황한 척 이게 무슨 짓이냐고, 앞에 기사가 있다고 하면 이제 결혼했으니 이 정도는 익숙해져야 한다며 옷을 갈기갈기… 까지 상상한 노아가 인상을 썼다. 그건 완전… 식상하잖아. 야동에서도 그런 설정은 안 나오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노아는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상상력이 없는 편이라, 생각나는 거라곤 겨우 그 정도뿐이었으니까. 그에 비하면 프랑스 가정 교사나 알렉스는 얼마나 창의력을 잘 발휘하던가. 이안이 상상력이 훌륭한 편이여야 할 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카나페까지 다 먹어 치우고는 술 안주로 놓여 있던 과일까지 싹 해치운 노아가 부른 배를 토닥거렸다
결혼식을 치른 겨울 별장에서 밀러의 집까지는 세 시간 거리다. 낮잠을 자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노아는 리무진 안에 있던 캐비넷에서 푹신한 담요를 꺼내 몸에 덮고는 금새 잠에 빠져 들었다.
***
리무진이 저택에 도착한 것은 거의 저녁 무렵이었다. 리무진에서 내린 노아는 저택의 풍경에 잠시 감탄했다.
어둑어둑 저녁 노을이 빨갛게 지고 있는 해를 배경으로 자리한 저택은 얼핏 보기에도 꽤나 유서 깊은 가문의 소유로 보이는 건물이었다. 듣기론 한 600년 쯤 되었다고 했었나, 처음 지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밀러 가의 사유지였다고 했다. 저택이며 정원의 나무 하나하나까지 섬세한 정성이 깃들어 있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집사가 나올 것만 같은…
“어서 오십시오, 주인님.”
억, 깜짝이야. 막 잠에서 깨서 멍하니 저택을 둘러 보고 있던 노아가 화들짝 놀랐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나온다고, 집사가 나올 것만 같은 저택이라고 생각하자마자 무슨 소설책에서나 나올 법한 집사가 떡 하니 나타났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집사가 노아에게 정중하게 사과했다.
“제 부주의에 사과 드립니다.”
“아, 아닙니다. 음… 반가워요. 미스터…?”
“이 저택의 집사 하이든 맥클레인입니다. 하이든이라 불러주십시오.”
노아가 신기해하면서 인사했다. 요즘 시대에 집사란 건 거의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존재다. 집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닌데, 집사라고 부르기보다는 저택 총 관리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마치 호텔 매니저와 비슷한 개념이었다. 노아의 집을 관리하던 사람은 하이든에 비하면 꽤 젊은 여자였던 지라 더욱 생소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께서 많이 바쁘셔서 제가 대신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괜찮아요. 바쁘시다니 어쩔 수 없죠.”
노아는 매우 잘 이해한다는 사려 깊은 표정을 지었다. 물론… 뭐 사업을 해본 적이 없어서 이해까지는 잘 모르겠고, 딱히 화가 나거나 하진 않았으니까. 음, 그러고 보니 이거 엄청 화내야 하는 상황인 거지? 노아가 뒤늦게 깨달았다. 어쩐지 이안의 비서라던 다니엘이 그토록 안절부절 못한다 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안은 결혼식 첫 날 신혼여행을 파탄 냈으면서도 직접 말하러 오기는커녕 비서를 통해 전달한… 막장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천하의 나쁜 놈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노아는 이안이 이렇게 나오는 게 반가웠다. 이안이 못 되게 행동하면 할수록 노아는 죄책감 없이 룰루랄라 이안을 이용(?)할 수 있었다. 육체적으로, 그리고 이혼 후 독립을 위해서라도… 어… 이렇게 보니까 내가 더 악당 같은 걸…
그런데 노아는 집사와 그 뒤에 다소곳하게 대기하고 있는 고용인들의 표정에서 다니엘의 얼굴에서 봤던 것과 똑같은 어떤 감정을 보았다. 묘사하자면 죄책감과 미안함과 민망함, 그리고 난감함을 적절히 섞은 듯한 그런 얼굴…?
“먼저 저녁을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아, 아니에요. 별로 입맛이 없어서…”
아까 리무진에서 안주까지 다 주워 먹은 덕에 아직도 배가 불렀던 노아가 입 맛 없는 척 사양했다. 으으음… 그나저나 이거 참 묘한 기분인데. 노아는 더없이 정중하면서도 무표정한 고용인들에게서 자신을 향한 동정심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왤까… 왜지…? 이안이 신혼여행 파토 낸 게 그렇게 나빠 보이는 짓이었나…? 집사가 다시 정중하게 권했다.
“그럼 저택에 대해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좀 피곤해서, 내일 둘러볼게요.”
엇. 난감해 한다. 난감해 하고 있어. 집사는 이번에는 차를 한 잔 내오겠다고 권유했지만 낮잠으로 피곤함이 썩 가시지 않았던 노아가 다시 거절했다. 이상하게도 집사가 침실로 안내하기를 꺼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노아는 잠시 후, 고풍스러운 저택에 안에 들어서 자신의 침실로 안내 받자 집사가 한사코 침실을 안내하려는 것을 주저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현재… 이 저택의 부부 침실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매우 송구스러운 얼굴로 집사 하이든이 안내한 방은 소박한 방이었다. 물론 좋게 말해서 소박한 방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저택의 풍채에 비하면 허접하기 짝이 없는 방이었다. 예전 프로스트 가에서 거의 작은 운동장만했던 자신의 방을 떠올려 보자니 이 방의 크기는 욕실만도 못한 크기였다. (물론 노아 자신의 개인 욕실도 작은 편은 아니었다.)
와, 침대 진짜 아담하다. 노아는 신기한 얼굴로 싱글 사이즈 침대를 요리조리 살펴 보았다. 허접해 보였다고 말은 했어도 무슨 모텔 방 마냥 싸구려 같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밀러 가 저택의 급이 있지. 다만 이 저택에서 노아가 어떤 위치인가를 고려해 보자면 노아에게 전혀 어울리는 방이 아니었다. 침실에는 창문이 있긴 했지만 아까 노을이 지던 방향을 생각해 보면 햇빛도 거의 들지 않는 위치에 있었고, 침대는 싱글 사이즈였으며 방에 배치된 가구는 돈만 있으면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매우 흔해빠진 가구 브랜드의 것이었다.
“음… 침실이… 소박하네요.”
습관처럼 예의 상 일단 칭찬하고 보니 하이든의 얼굴이 침중했다. 비꼴 의도는 아니었는데. 노아는 딱히 이 침실이 마음에 들지 않다거나 하진 않았다. 어차피 잠이 많아 잠자리를 가리지 않고 머리만 대면 쿨쿨 잠들곤 했고, 햇빛은 피부에 별로 좋지 않았으니까. (사실은 피부에 좋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아침에 햇빛 때문에 잠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싫어했다.)
“정말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노아는 하이든에게 뭐라 비난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부부 침실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해야 했던 하이든도 어쩔 수 없었을 터다. 이안에게 고용된 입장으로써 지시에 반드시 따라야 하는 하이든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지금처럼 저렇게 미안해 죽을 것 같은 얼굴 하는 것도 그렇고. 노아는 자신의 형들에게 했던 것처럼 익숙하게 하이든을 잘 토닥여서 돌려 보냈다.
하이든이 돌아간 뒤 노아는 곧장 욕실로 향해 오늘 무스와 왁스로 떡 칠을 해놓다시피 뻣뻣하게 고정시켰던 머리부터 감았다. 두피가 너무나도 간지러워서 낮잠을 자는 내내 많이 신경이 쓰였었다. 그래도 덕분에 잠자느라 눌린 머리가 안 된 건 다행이야…
방에 비해 욕실의 시설은 제법 훌륭해서 노아는 몸이 노곤노곤하게 풀릴 정도로 뜨끈한 물에 한참 목욕을 했다. 으음, 좋다… 행복해… 나름 자신의 기준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손과 발이 쪼글쪼글해질 정도로 만족스럽게 목욕을 한 노아가 머리를 말리면서 침대로 향했다. 노아가 목욕을 하는 동안 고용인들이 개인 소지품을 모두 정리해 놓은 상태였다.
창문 밖을 보니 벌써 컴컴한 밤이었다. 목욕을 너무 오래 했나 보네. 원래 이 시간에는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같이 하고 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그렇게 그립거나 슬프지는 않았다. 노아는 이 결혼이 길어 봤자 세 달을 채 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세 달 정도면 예전에 대학교 졸업 기념으로 친구들과 개인 소유의 크루즈를 타고 세계 여행을 했을 때보다도 짧은 기간이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야동 체험 기간… 쯤으로 생각하면 이안 밀러에게 너무 실례인 생각인 걸까? 노아는 침대에 걸터 앉아 집사가 목욕 하는 동안 놓고 간 것으로 보이는 상큼한 향의 음료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나저나 오늘 한 걸 보니 첫 날밤 소박 맞히는 게 아주 당연한 거겠지?
그리고 과연 예상대로라서 이안은 밤이 늦은 시간까지도 저택에 도착하는 기미조차 없었다. 노아는 미리 챙겨온 게임기를 갖고 놀면서 일단 12시까지는 예의상 기다려 주었다. 뭐,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11시 50분쯤에 노아가 게임기를 종료하면서 하품을 할 때였다. 똑똑, 문이 두드려졌다. 즉시 노아의 귀가 쫑긋했지만 안타깝게도… 방문한 사람은 이안이 아니라 하이든이었다. 노아는 아까보다도 더 침중한 얼굴로 죄송하다며 이안의 귀가가 많이 늦을 거라고 사과를 해온 하이든을 다시 도닥여 돌려 보내야만 했다.
아무래도 오늘 이안은 노아를 소박 맞히려고 작정을 한 듯하다. 어차피 피곤했으니 잠이나 자자며 노아가 꾸물꾸물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언제나 그렇듯이 눈을 감자마자 순식간에 잠이 밀려 들어왔고, 노아는 쿨쿨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그 뒤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본래라면 아침 해가 떠오르고도 한참이 지날 때까지 잠에 빠져 있을 노아가 갑자기 깨어난 건 뭔가 찰싹 찰싹 제 뺨을 기분 나쁘게 때리는 감각 때문이었다.
"뭐…야…?"
느리게 중얼거리며 비몽사몽 눈을 뜬 노아는, 컴컴한 방을 배경으로 자신을 거의 깔아 뭉개다시피 올라탄 이안을 발견하고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