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그래서 말인데, 다음 주 월요일에 네 약혼자인 이안 밀러와 약속을 잡았단다. 약속이 있다면 취소해 놓거라.”
테너의 말에 노아는 수줍은 미소를 지은 그대로 얼어 붙었고, 벤자민은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다가 흰 테이블 보에 커다란 보라색 자국을 남길 정도로 거나하게 뿜었다. 윌리엄은 어린 송아지의 가장 연한 육질로 만든 스테이크를 썰다가 품위 없이 나이프로 접시를 삑 소리가 나게 긁었고 올리비아는 입덧 때문에 음식 대신 과일을 씹다가 목에 사래가 들려 요란하게 기침을 했다.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전에 아무 언질도 없이 갑자기 노아의 약혼자라니요?”
테너를 닮아 무뚝뚝하고 표정 변화가 없는 편인 윌리엄이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점잖게 따졌다. 테너는 가족들의 반응이 오히려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눈썹을 찌푸렸다.
“25살이면 결혼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 노아도 이제 믿음직한 알파와 가정을 꾸릴 때도 되었지.”
“하지만 노아의 의사는 어쩌고요?”
“일단 만나보면 노아도 마음에 들어 할 거다. 내가 본 젊은 녀석 중에 그나마 알파다운 알파였어.”
벤자민이 자신은 매우 어이가 없어 기절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딱 벌렸다. 뒤늦게서야 정신을 차린 노아는 왁왁거리며 아버지에게 이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결정을 따지려는 둘째 형의 발을 밟아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자신의 25살 생일 파티에서 열 받은 아버지가 둘째 형에게 골프채를 휘두르는 일만은 막고 싶었다. 게다가 제 아버지는 혈압을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를 이미 주치의에게서 받은 상태다.
“약…혼자요…?”
말이 약혼자지, 이 세계에서 약혼을 했다는 건 집안 사이에 이미 말이 다 오가 결혼할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연애 결혼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란 걸 알면서도 노아는 전혀 예상치 못한 통보에 몹시 놀랐다. 벤자민이야 원래 자유분방한 성격이라 아버지의 허락도 없이 올리비아와 연애해 결혼까지 이르렀지만 윌리엄도 테너가 정해준 짝과 결혼했으니 노아 자신도 정략 결혼을 하게 되리란 건 뻔했다. 다만 그 시기가 예상보다 너무 일렀다.
물론, 참고로 말하자면 벤자민의 결혼은 별로 순탄하지 않았다. 첫째인 윌리엄보다도 먼저 결혼한 것도 테너에게는 못마땅한 일인데, 결혼도 전에 올리비아를 임신시켜 버린 탓에 벤자민은 완전히 뚜껑 열린 테너에게서 도망치다가 계단에서 굴러 다리가 부러져 결혼식에는 목발을 짚고 들어와야 했다.
결혼식 내내 테너의 표정이 얼마나 울그락 불그락 했던지, 프로스트 회장의 성격이 매우 다혈질임을 잘 아는 하객들이 아무리 그래도 아들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패놓은 거냐며 수군거리기까지 했다. 다행히도 윌리엄이 이자벨라와 테너가 좋아하는 정식 절차를 밟아 결혼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테너는 한 1년은 계속 화가 나 있었을 것이다.
“이안 밀러라면 이번에 새 사업 협약을 체결한 그 밀러 말씀입니까? 설마 그 터무니 없는 협약 조건의 이유가 노아와의 약혼은 아니겠지요?”
“맞다. 여간 강단이 있는 게 아니라 약혼을 하게 구슬리느라 좀 힘들었지.”
“아버지, 그건…”
어디로 들어도 결혼하기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끌어다가 약혼을 맺게 만든 것으로 들려 평소에는 테너의 말에 별 말 없이 따르는 윌리엄조차 반발하려 했지만 노아가 선수를 쳤다. 제 약혼자의 이름이 이안 밀러인가요? 어떤 사람인지 말씀 해주시겠어요? 테너는 노아의 말에 이안 밀러가 얼마나 훌륭한 알파인지 설명하느라 두 아들이 감히 반항하려는 모습을 아슬아슬하게 놓치고 말았다. 윌리엄과 벤자민도 막내의 생일 파티를 망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뒤늦게서야 들었는지 그 뒤로는 입을 꾹 다물고 말이 없었다.
테너에게만 즐겁고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가 끝난 후, 노아는 이 일방적인 약혼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두 형들에게 즉시 둘러 쌓였다. 올리비아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노아에게 보내고는 입덧이 심해져 먼저 방으로 올라간 상태였다.
“아버지에게 독단적인 면이 있는 건 알았지만 이럴 줄은 몰랐어. 최소한 약혼을 맺기 전에 노아에게 좋다 싫다 이야기는 먼저 들어봐야 하는 거 아냐?”
와인도 들어가고 열도 받아 얼굴이 완전히 벌겋게 변한 벤자민이 따지고 들었다. 보통은 아버지의 말에 묵묵히 따르는 편인 윌리엄도 이건 아니라며 노아를 설득하려 들었다.
“막내야, 네가 싫으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단다. 나도 아버지께 잘 말씀 드려 보마.”
“난 괜찮아. 아버지께서도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그러나 그 말에 벤자민은 더 씩씩거렸고 윌리엄은 근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노아는 본인보다도 더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형들을 잘 도닥이고 타일러서 방으로 돌려 보냈다. 일단 한번 만나는 것쯤이야 큰 일도 아니라는 노아의 말에도 벤자민과 윌리엄은 몇 번이고 자신들이 적극적으로 노아의 편을 들어주겠다며 못내 걱정스러운 얼굴로 돌아갔다.
“약혼자라니…”
형들에게는 잘 둘러댔지만 그래도 나름 충격을 받은 탓에 자신의 방에 돌아온 노아가 털썩 침대에 벌렁 누웠다. 이안 밀러. 몇 번 아버지가 그거 참 괜찮은 녀석이라고 언급한 걸 스치듯이 들은 기억은 있지만 그뿐이다. 게다가 아버지의 입장에서 괜찮은 사람과 다른 사람 입장에서 괜찮은 사람은 많은 차이가 있지 않은가. 갑자기 하루아침에 생긴 제 약혼자가 궁금해진 노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터넷에 접속했다.
노아가 밑도 끝도 없이 약혼자를 마련해 두었으니 만나거라, 하는 테너의 말에 반발하지 않은 것은 단지 시끄럽고 귀찮은 일을 만들기 싫어서였다. 항상 벤자민은 노아에게 그렇게 아버지 말대로 얌전히 살 필요 없다고, 지금 시대가 언제인데 네가 이렇게 지내야 하냐며 너도 대들라고 안타깝게 말하곤 했지만 그건 노아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노아는 정말로, 지금 생활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이따금씩 테너는 노아조차도 갑갑하게 느껴지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건에 대해서는 벤자민이나 윌리엄이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게, 테너는 강하게 나가면 강하게 반발하는 사람이란 점이었다.
아버지 처사가 좀 심하다 싶을 때마다 노아가 아버지 옆에 앉아 매우 시무룩하고 풀이 죽은 얼굴로 그 말 거두어 주시면 안 되냐고, 혹은 이거 해주면 안 되냐고 조근조근하게 말하기만 하면 테너가 엄했던 마음이 풀려 ‘그런가…? 이건 내가 좀 심했나? 하긴 요즘 젊은이들은 내 때와는 다르긴 하지’ 하며 푸딩마냥 말랑해 지시는 걸… 뭐 하러 굳이 들이 박아 성나시게 만드냔 말이지…
“사진이 없네…”
검색 결과를 죽 살펴보면서 노아가 중얼거렸다. 신문 기사를 살펴 보아도 이안 밀러가 운영하는 회사가 얼마나 잘 나가고 있는가를 평가하는 글들뿐이었다. 최근 들어서는 프로스트 소유의 기업과 꽤 규모가 큰 협약을 맺어 주가가 급상승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윌이 언급한 ‘터무니 없는 협약 조건’이 바로 이거구나.
“일단 만나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만나보고 마음에 들면 좋은 것이고, 정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결혼 하지 않으면 안 되냐고 테너에게 눈물로 호소하면 될 일이다.
하품을 하면서 노아가 인터넷을 껐다. 이안 밀러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다 보니 어느덧 잘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이 생일인데 이대로 그냥 자긴 아깝잖아. 어차피 잘 시간이라 누가 들어올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문이 제대로 잠겼나 확인한 뒤 노아가 알렉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이야 잘 시간이지만 알렉스에게는 한참 멀었다.
-노아! 저녁 식사는 잘 했어?
“나야 뭐, 잘 먹었지…”
과연 노아를 오래 알아온 파트너답게 알렉스는 노아가 말 끝을 조금 늘이는 것만으로도 즉시 원하는 것을 알아 차렸다. 알렉스의 목소리가 은근해졌다. 왜, 윗 입만 채우니까 부족한가 봐? 하긴 역시 너 같이 밝히는 오메가는 뒷 입도 채워줘야지.
-화상 통화 모드로 해두고, 가서 상자 가져와.
알렉스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노아는 컴퓨터의 영상 장치를 핸드폰에 연결해 익숙하게 침대가 잘 보이는 위치에 고정시킨 뒤 알렉스의 말에 따라 잠금 장치가 있는 서랍에 넣어뒀던 작은 상자를 가지고 왔다. 알렉스가 보는 화면에 잘 보이도록 상자를 열어 침대에 쏟자 온갖 성인용품이 침대 위로 굴러 나왔다. 아까 클럽에서 한참 달아 올랐다가 그만 뒀기에 조금 조급해진 노아가 바지를 벗고 침대 위로 올라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영상 장치 렌즈 앞에서 다리를 벌리며 자신을 괴롭혀 주기를 기다렸다. 알렉스가 낮게 웃었다.
-그렇게 배가 고팠어? 얼른 채워줘야겠네.
분홍색 로터부터 먹자, 노아. 전채 요리부터 시작해야지. 얼른 뒤를 가득 채우고 싶었기에 노아는 소소한 시작에 약간 아쉬움을 느끼며 엄지 손가락만한 로터를 집어 뒤로 밀어 넣었다. 조금씩 젖기 시작한 뒤는 무리 없이 로터를 삼켰고, 엉덩이 사이로 분홍색 전선이 늘어졌다.
-소화 잘 되게 진동도 올리고.
살짝 단 숨을 뱉으며 노아가 로터의 진동을 올렸다. 흠… 그걸로는 한참 부족하지? 에그도 먹어 볼까? 알렉스의 말에 노아가 손을 뻗어 전선이 매달린 것 만 빼면 색깔이며 크기가 영락 없는 계란이나 다름 없는 흰 에그를 집어 뒤에 문질렀다. 아까 동시에 두 명의 것을 받았다면 지금은 좀 풀려 있을 텐데 그게 아니라서 에그 하나를 천천히 밀어 넣자 뒤가 느리게 열리며 좀 빠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좋아 앓는 소리를 내며 노아가 에그도 무리 없이 뒤로 삼켰다.
에그도 마저 진동을 올리자 슬슬 충분한 자극을 받은 노아의 것이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노아는 제 것을 쥐어 천천히 흔들면서 알렉스에게 잘 보이도록 몸을 조금 옆으로 틀었다. 아마 알렉스에게는 엉덩이 사이로 삐져 나온 두 전선과 흥분하기 시작한 노아의 성기가 몹시 잘 보일 것이다.
-우리 노아는 그걸로도 부족하지, 안 그래? 진짜 좆을 먹여줘야 하는데, 하는 수 없으니까 가짜 좆이라도 먹어 볼까. 아까 많이 아쉬웠지.
엄청나게 아쉬웠지, 그것도 막 삽입하려던 찰나였으니까. 흐으… 아까, 갱뱅 플레이 할 때 끝까지 하고 싶었는데…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다시금 아쉬움을 느끼며 노아가 검은색 딜도를 골라 집어 들고는 전선을 잡아 안에 든 로터와 에그를 꺼내려고 할 때였다. 알렉스가 혀를 차며 노아의 행동을 나무랐다.
-누가 버릇 없이 먹던 거 다시 뱉으래? 그대로 집어 넣어.
“하지만…”
-그대로 집어 넣으랬지.
로터라면 모를까, 안에 에그도 들어 있는데 거기에 딜도까지 넣으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노아는 제 것이 더 단단해지는 걸 느끼면서 군말 없이 검은색 딜도를 엉덩이 사이에 꾹 밀어 넣었다.
“흐으, 으… 아…!”
뒤로 딜도를 넣은 만큼 에그와 로터가 느릿느릿 내벽을 짓누르며 밀려 들어가는 느낌에 노아가 시트를 꽉 쥐면서 신음했다. 지금처럼 신음 소리를 마음대로 내는 게 가능한 건 저택 내부의 방음이 잘 되어 있는 덕분이었다. 노아는 손에 힘을 주어 꾹꾹 딜도를 밀어 넣었지만 아무래도 안에 에그가 들어 있는 탓에 딜도는 반쯤 들어가다 말고 멈추고 말았다.
알렉스가 더 넣으라고 재촉했지만 애를 써도 손가락 한 마디 정도만 겨우 들어갈 뿐 그 이상으로는 넣어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노아는 알렉스가 이 정도에 봐줄 리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알렉스는 상대방이 괴로워하면 괴로워할수록 더 가학적이 되었으니까. 쯧, 하고 알렉스가 혀를 찼다.
-네가 아직 제대로 덜 먹어서 그렇구나. 내가 그걸 신경 못 썼네.
알렉스는 로터 하나를 더 넣으라고 지시했고, 노아가 로터 하나를 넣은 뒤 딜도를 제대로 삽입하지 못하자 용서 없이 또 다시 로터를 넣으라고 지시했다. 당연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딜도를 넣기 힘들어져 이제는 노아가 완전히 단단해진 자신의 성기를 시트에 비비며 괴로워했다. 이젠 알렉스의 목소리에서도 잔뜩 흥분한 기색이 느껴졌다.
“안, 들어가… 알렉스, 제발…”
습관처럼 애원하며 노아가 딜도의 끝을 붙잡은 채로 허리를 뒤틀었다. 이제 잔뜩 젖은 엉덩이 사이로는 검은 딜도가 반쯤 물려 반들거렸으며 색 색깔의 전선 네 개도 마찬가지로 사이로 삐져 나와 길게 늘어져 있었다. 노아의 몸 속에서는 웅웅거리며 계속 거센 진동소리가 들리는 중이었다. 엉덩이를 야하게 들썩거리며 신음하는 노아의 모습을 잠시 관음이라도 하는지 말이 없던 알렉스가 좀 거칠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보기엔 바르게 앉지 않아서 잘 못 먹는 것 같네. 그치, 노아? 한번 제대로 앉아 볼래?
“응, 읏… 흐으… 아, 안 돼…”
노아가 고개를 저었지만 알렉스는 다시 제대로 앉으라고 지시할 뿐이었다. 이제 완전히 흥분한 노아가 헐떡거리며 떨리는 몸을 일으켜 조심스럽게 앉았다. 말이 앉았다지, 팔을 짚고 어설프게 엉덩이를 든 상태였다. 다리 사이에서는 잔뜩 흥분해 프리컴을 질질 흘리고 있는 성기가 조금씩 까닥거렸다.
-노아, 제대로 엉덩이 붙이고 앉아.
“읏… 하윽, 으…”
아직 붉은 매 자국이 선명한 엉덩이를 내리며 한 마디쯤 검은 딜도를 삼켰다가 뱃속 깊은 곳이 우릿하게 아파 와 노아가 멈칫거렸다. 아직도 배가 덜 고팠어? 이번엔 에그 하나를 더 넣어야 제대로 할래? 알렉스의 협박에 노아가 고개를 저으며 엉덩이를 좀더 내렸다. 에그 두 개에 딜도 하나는 정말 무리다. 물론, 아무리 무리라고 해도 알렉스가 넣으라면 하나 더 넣긴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삽입이 불가능한 데도 알렉스에게 딜도를 끝까지 넣기를 강요당하며 괴롭혀지는 상황을 상상하자, 더욱 흥분한 노아가 숨을 헐떡거리며 하체를 좀 더 내리 눌렀다. 꾸욱, 느릿느릿 딜도가 들어가는 만큼 전선에 대롱거리며 매달린 스위치도 함께 딸려 들어갔다.
아직 다 삼켜지지 않았어. 가짜 불알만 남게 다 넣으란 말이야. 알렉스가 질책했다. 깊이 삽입할수록 점점 더 안 깊은 곳이 뭉근하게 아팠지만 노아는 알렉스가 만족할 때까지 몸무게를 실어 앉아야만 했다. 몸을 떨면서 마침내 한참이 걸려 알렉스가 원하는 대로 제대로 앉았을 때, 노아의 엉덩이에는 검은 딜도의 고환 부분과 아까에 비해 길이가 짧아진 전선의 스위치가 장식마냥 대롱거리고 있었다.
-그래, 착하지. 그럼 이제 제대로 먹었나 확인해 볼까.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지, 노아?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지만, 노아는 알렉스의 지시에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마치 기승위를 하는 것 마냥 침대에 대고 엉덩이를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악, 윽… 흐윽… 침대에 엉덩이를 부딪힐 때마다 뱃속 깊은 곳까지 전해져 오는 충격에 노아가 고개를 젖히며 소리 높여 괴롭게 신음했지만, 그 신음 소리에는 단지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 아…! 헉, 아윽…!”
더한 쾌감과 고통을 바라면서 점차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움직임이 커져갔다. 바닥에 엉덩이를 완전히 짓누르며 풀썩 주저 앉다시피 할 때마다 모조 성기의 검은 고환을 세게 두드려지는 듯한 자극이 울렸고, 스위치는 잘그락거렸다.
시간이 좀더 흐르자 스물스물 흘러나오는 말간 액 덕에 점차 뒤에 꽉 물려 있던 검은 딜도도 조금씩 들락거리며 질척거리는 물기 어린 소리가 났다. 영상 장치의 렌즈 앞에서 한참을 침대에 엉덩이를 찧어가며 야하게 움직이던 노아가 마침내 높은 신음 소리와 함께 몸을 떨면서 헉헉거리며 침대에 엎드렸다. 움찔거리며 엉덩이를 조일 때마다 잔뜩 젖은 딜도가 다시 조금씩 조금씩 밀려나왔다.
하으… 하고 여운에 잠겨 달콤하게 신음하면서 노아가 몸을 돌려 렌즈에 대고 눈을 찡긋하며 웃었다. 너도 한발 뺐어, 알렉스?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알렉스가 중얼거렸다. 젠장, 지금 거기 내가 가있으면 당장 엉엉 울도록 박아 주는 건데. 알렉스처럼 아쉽기는 노아도 마찬가지였다.
알렉스와 잡담을 나누면서 사용한 도구들을 잘 닦아 다시 상자에 넣어두는 등 뒤처리를 한 노아는 잠시 약혼에 대한 이야기를 알렉스에게 할까, 고민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뭐, 아직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영상 장치를 끄기 전 노아는 렌즈에 손 키스를 날려 주면서 굿 나잇 인사를 하고 정말로 잠을 자기 위해 꾸물꾸물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꿈도 꾸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이 프로젝트 책임자, 누구입니까.”
자신보다 까마득하게 젊은 회장의 싸늘한 목소리에도 임원들은 별 소리를 못하고 식은땀만 뻘뻘 흘려댔다. 평소에도 이안 밀러의 성격이 환상적으로 싸가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번에 테너 프로스트와 이쪽에게 거의 퍼다 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계약을 체결해서 좀 나을 줄 알았는데… 대체 무슨 심기 거스르는 일이 있었는지 지금 그는 몹시도 기분이 나빠 보였다.
“안 들립니까? 책임자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임원 중 한 명이 접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하고 묻자 이안 밀러가 테이블 위에 몹시 기분 나쁘게도 보고서를 거의 내던지다시피 했다. 그리고는 아니나 다를까 상대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건 말건 상관하지 않고 거의 독설이나 다름 없는 질책을 퍼부어 댔다.
“정말 이걸 최종 완성 본이라고 생각하고 낸 겁니까?”
그 뒤로 이어지는 말들은 듣는 다른 임원까지 마음에 스크래치가 나고 자존심이 상할 정도의 질책이었다. 이안이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쓸모 없는지 조목조목 이유를 들어가며 사정없이 푹푹 찔러댔으나 그들이 딱히 뭐라고 할 수 없던 건 회장이 트집을 잡는 것이 아니라 정말 구구절절 옳은 소리인 때문이었다. 결국 이안에게 갈기갈기 찢겨지다시피 한 책임자가 다시 해오겠다며 시퍼런 얼굴이 되고 나서야 기나긴 회의가 끝났고, 임원들은 대체 오늘은 왜 저 싸가지 밥 말아 먹은 회장이 이렇게나 기분이 나쁜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회의실을 빠져 나갔다.
임원들이 모두 빠져나가 텅 빈 책상, 이마를 짚고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안이 거칠게 앞에 놓인 의자를 걷어 찼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의자가 바닥을 나뒹굴었지만 이안의 분노는 가시기는커녕 더욱 거세게 타오르기만 했다.
“빌어먹을, 진작 프로스트에게서 발을 뺐어야 했는데…”
이안이 으득 이를 갈았다. 프로스트 테너가 아버지의 오랜 친구니 뭐니 하며 자신을 도와줄 때도 그 말을 순순히 믿은 건 아니었지만, 수작이 있겠거니 했어도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때릴 줄은 몰랐다. 약혼이라니? 결혼이라니, 누구 마음대로?
마음 같아서는 누구 마음대로 내 결혼 상대를 정하냐고, 개소리 하지 말라고 거절하고 싶었지만 어쨌든 상대는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그 프로스트였다. 게다가 테너는 질겼다.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찾아와 자신의 막내 아들과 결혼하라는 권유에 이안은 속으로 온갖 욕을 집어 삼키면서 너무 억지 웃음을 짓다 못해 경련이 이는 얼굴로도 거절하고 또 거절했지만 종래에 테너 프로스트는 투자 금 회수까지 운운하면서 이안을 거의 협박하다시피 했다. 이안이 밤잠까지 줄이면서 열심히 일하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사업을 확장한 덕에 이제는 아무도 무시 못할만한 규모로 성장한 회사였지만 아직도 프로스트 가문이 가진 힘과 권력에 비하자면 부족했다.
아무리 친척들에게 복수하고 싶어 독기가 올랐다고는 해도 테너가 건넨 손을 잡아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후회해도 이미 늦은 일이었지만, 이안이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이안이 자존심을 꺾고 테너 프로스트의 도움을 가장한 빚을 진 이유. 그건 친척들에게서 응당히 자신의 것인 재산을 되찾아오기 위해서였다. 이안이 막 성인이 되었을 쯤에 그의 부모는 교통 사고로 사망했고, 갑작스러운 최고 경영자의 죽음에 친척들은 이 때구나 하며 마치 들개처럼 달려들어 자신들 좋을 대로 회사를 갈라 먹었다.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애를 썼으나 아직 어린 이안으로써는 어찌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이안이 겨우 부모님의 사망으로 인한 충격과 슬픔을 이겨내고 나니 그의 앞에 남은 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거대하고 고풍스러운 저택 한 채와 원래 밀러 가문이 경영하던 여러 사업체 중에서도 수익은커녕 적자를 내며 망해가는 공장 하나뿐이었다. 이안이 자신의 친척들에게 분노하며 독기를 품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떻게든 이리저리 굴러가며 친척들에게서 밀러 가문의 소유였던 것들을 되찾아 오려 애썼지만 한계가 있었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도움을 청하는 이안에게 유일하게 손을 내밀며 아버지의 친구였던 정을 살펴 도와주겠다는 이가 테너 프로스트였다. 당시 복수에 눈이 먼 이안은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이 테너의 손을 잡았다. 그 뒤로 이안은 테너의 협력에 더해 밤낮없는 노력으로 친척들에게 복수를 하고 제 것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타고난 재능과 야망으로 이전 부모 대에 소유했던 것보다도 더 큰 기업의 젊은 회장이 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복수를 마치고 뒤늦게 주변 상황을 살펴 보니 테너 프로스트는 자신의 회사에 너무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이안이 뒤늦게 어떻게든 테너 프로스트의 영향력을 줄이려고 해보았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그깟 투자 금, 회수하라면 회수하라고도 할 수 있다. 몇 년간은 회사가 휘청거리겠지만 쌓아둔 기반이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다시 회복할 것이다.
하지만 이안은 투자 금을 회수하라고 하는 대신 테너 프로스트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원래부터 성격이 좋다고는 절대 할 수 없는 그다. 이안은 감히 자신의 인생을 마음대로 하려 한 테너에게 앙심을 품었다. 테너 프로스트가 자신에게 도움을 준 건 사실이긴 하나, 그걸 과연 순수한 도움이라 부를 수 있는가? 이안은 이미 테너 프로스트가 자신에게 투자한 이상의 수익을 그에게 돌려 주었다. 이제 그가 테너에게 갚을 빚은 없었다. 지금부터 갚을 원한은 있어도…
“그렇게나 막내 아들을 아낀다고 했었나.”
테너가 죽은 아내를 몹시도 빼 닮은 자신의 막내 아들을 매우 어여삐 한다는 건 이쪽 바닥에서는 다들 아는 일이었다. 뭐라더라,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키웠다고? 아주 온실 속 도련님이겠군 그래. 이안이 삐뚜름하게 입 꼬리를 올려 웃었다. 결혼은 하겠지만, 결혼 한 뒤 막내 아들이 엉엉 울며 이혼하겠다고 난리 치는 것까지는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지.
그는 제 약혼자인 노아 프로스트의 신혼 생활을 몹시 괴롭게 만들어줄 수많은 계획들을 떠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혼에 관련한 온갖 규정이나 관습들이 오메가에게 있어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구조라는 게 이토록 즐거울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알파인 자신이 그를 괴롭혀도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이제는 시대가 바뀌고 법도 모두에게 평등해졌다고는 해도 아직도 세상 사람들 중 절반은 오메가가 알파의 소유물이라고 여겼으니까. 테너 프로스트가 그랬던 것처럼.
본래는 능력만 있으면 인종 따위야 별 상관 없어 오메가 차별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이안이었지만, 지금 순간만은 달랐다. 그는 얼마든지 자신의 피앙세를 위해 그 사회적인 차별을 독하게 사용해줄 준비가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