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어제부터 케인은 모험가 연합에서 새 일을 시작했다. 남쪽 숲을 정찰하며 표식을 만드는 일이다.
‘웃기는 일이야.’
한동안 클로버랜드를 찾는 여행자가 없었다.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상인들에겐 마왕성 사태가 악재 중의 악재였다. 어떤 부자들은 또 마왕이 나타날까 봐 겁을 내 호위를 고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상황이 바뀌었다. 마왕성이 나타났던 자리를 보고 싶어 하는 모험가들이 줄을 이었다. 마신이 나타난 이후로 마왕에 관한 소문도 덩달아 퍼져 나갔는지 먼 곳에서부터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상인들은 이제야 숨통이 트인다며 다들 화색이었다. 그러나 치안청에서는 골치를 앓았다. 드넓은 숲을 멋대로 헤집고 다니다 길을 잃는 모험가가 속출한 탓이다.
치안청은 경관들을 숲으로 보냈다. 경관들은 모험가들을 위한 표지판을 곳곳에 설치했다.
그럼에도 길 잃는 모험가는 계속해서 나왔다. 숲이 심히 넓었다. 경관들만으로는 인력이 부족했다. 얼마 전 새로 온 치안청장은 성실한 성격이라 전처럼 태업하는 분위기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모험가 연합에까지 일이 넘어왔다.
케인은 이 상황이 우습기 그지없었다.
‘길 잃은 모험가를 위해 모험가를 투입하다니.’
너무 바보 같지 않나. 실제로 일을 하러 온 모험가들도 길을 벗어나면 헤매기 일쑤였다. 케인은 그나마 길을 잘 찾는 축에 들었다.
‘표식 만들러 왔다가 길을 잃어서 못 돌아가면 정말 웃기겠네.’
표식을 만드는 방식은 간단하다. 길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이미 경관들이 노란색 리본으로 표식을 남겨 뒀다. 의뢰를 받은 모험가들은 그보다 좀 더 벗어난 위치에 빨간색 리본으로 표식을 남기면 된다.
아무리 길 찾는 데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도 색깔 정도는 구분할 테다. 행여 구분하지 못하더라도 리본을 보면 근처에 길이 있다고 추측 가능하다.
‘전부터 이런 걸 해 뒀으면.’
케인은 학교에 있던 시절을 떠올렸다. 깊은 숲 한가운데의 학교는 작은 섬 같았다. 늙은이의 눈에 띄지 않고 달아날 곳이 없었다.
만약 이런 안전장치가 전부터 있었다면 케인은 학교에 처음 발 들인 그날 밤에 달아났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지난 일 따위 알 게 뭐야.’
다시 생각하니 아쉬워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달아났더라면 케인은 영영 새틴을 만나지 못했을 거다. 대신 괴로운 시간도 겪지 않았겠지만 그 또한 지난 일이다.
케인은 시간을 확인했다. 도시 밖으로 나오는 임무는 좋아하지 않는다. 툭 하면 시간이 늦어졌다.
물론 늦는다 해도 별일이 없으리라는 건 안다. 알아도 불안을 지울 수 없었다.
‘이건 나아지지 않을 거야.’
새틴은 케인의 불안을 마치 병처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처럼 말했다.
케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병이 아니다. 도리어 습성에 가깝다. 본능이고, 어쩔 도리 없는 삶의 방식이다. 그렇게 되었다.
케인은 일을 서둘렀다. 한번 의식한 불안은 걷잡을 수 없어졌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 새틴의 얼굴을 확인해야 했다. 분명 아무 일 없겠지만 눈으로 볼 때까진 모른다.
멍청한 모험가들만 아니었어도 이딴 일을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도시 안에서 일을 하며 정기적으로 새틴에 관한 보고를 받으면 그럭저럭 평온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까지 조급해하지 않고 기대에 젖기도 한다. 퍽 낭만적이다.
‘빨리 끝내 버려야지.’
∞ ∞ ∞
‘여기가 어디지.’
길 잃은 멍청한 모험가들을 욕한 게 겨우 두어 시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지금 케인이 바로 그 꼴이 되었다.
수치스럽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이러다간 귀가가 늦어지고 만다.
‘영영 헤매진 않겠지.’
케인은 신경질적으로 길을 거슬렀다.
여름이 지나 해가 짧아진 탓에 요즘은 땅거미가 이르게 내렸다. 게다가 숲은 도시보다 훨씬 더 급하게 어두워진다. 우거진 나무 때문에 하늘이 벌써 검게 보였다.
분명 서른 걸음마다 마주치는 나무에 빨간색 리본을 묶어 뒀는데 보이질 않는다. 작은 불씨를 만들어 주위를 밝혀 보아도 온통 어둡기만 하다.
누군가 쫓아와 리본을 치워 버렸을 리는 없다. 표식을 하러 온 모험가들은 케인 말고도 있지만 모두 케인과 다른 방향으로 갔다.
걸음을 옮길수록 케인은 기분이 가라앉았다. 치밀어 오르던 짜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점차 침착해졌다. 지나칠 정도로.
‘헤매다 죽는 사람도 많았지.’
마왕성 사태 이전까지는 누구 하나 얼씬하지 않던 숲이다. 일부러 길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관들은 숲에 간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신고를 받으면 관청에 가서 사망 신고를 하라고 퉁명스레 대응했다.
학교가 있던 자리를 찾아 여러 차례 숲을 드나든 적이 있어 케인은 안일해졌다. 제가 숲에 익숙하다고 착각했다. 타지에서 온 모험가들과 다른 줄 알았다.
‘아직도 못 돌아온 사람이 있다고 했나.’
그들을 찾는 일은 의뢰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제 의뢰고 뭐고 중요치 않은 상황이지만.
‘난 그렇게 되지 않을 거야.’
도저히 길을 찾지 못할 성싶으면 불을 지르면 된다. 숲이 모두 타 버리면 가야 할 곳도 자연히 드러나겠지.
케인은 새틴이 알았다면 기절했을 생각을 하며 어둠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 ∞ ∞
케인이 숲속을 헤매던 그 시각, 새틴은 로저스와 함께 귀가 중이었다. 로저스의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 보니 벌써 식사 시간이 가까웠다.
“곧 케인도 돌아올 테니까 함께 저녁 먹자.”
“케인도 오랜만에 보겠네.”
“그동안 한 번도 본 적 없어?”
새틴은 어쩌다 보니 엉뚱한 마을에서 살게 됐지만 케인은 내내 클로버랜드에 있었다. 우연히 얼굴을 마주칠 법도 한데 그런 적이 없었을까.
로저스는 대답하기에 앞서 의미가 불분명한 미소를 지었다.
“본 적이 있긴 한데, 다시 보진 못할 줄 알았어.”
“왜?”
“그때는 케인이 좀…….”
잠깐 뜸을 들인 로저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안 좋아 보였어. 만난 데가 학교였거든.”
“우리 지내던 학교 말이야?”
“응, 난 네가 죽은 줄 알고 널 추모하러 갔었어. 나는 네 덕에 살았으니까.”
“내 덕은 무슨.”
“네가 나를 먼저 구해 주지 않았으면 지하에서 그대로 죽었을 거야. 누가 날 거기서 꺼내 줬겠어.”
로저스의 말이 쑥스러워서 새틴은 공연히 어깨에 뺨을 문지르며 딴청을 피웠다.
“거기서 케인을 만났어. 한, 반년 만에 본 거 같아. 학교가 그렇게 되고 다들 뿔뿔이 흩어졌으니까.”
“다들 고생이 많았겠네.”
“난 케인도 널 추모하러 온 줄 알았어.”
“아니었어?”
“널 찾으러 왔나 보더라고.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나는 케인이 좀 어려웠거든. 케인은 성격이 좀, 그렇잖아.”
살짝 눈치를 보면서도 로저스는 할 말을 했다. 예나 지금이나 동그란 얼굴은 그대로인데 성격은 다소 변했나 보다. 하기야 열여덟이면 이 세계에서는 성인이나 다름없다.
“그때 처음으로 케인이 불쌍하다고 생각했어. 난 정말로 네가 죽은 줄 알았으니까. 케인이 부질없는 짓을 하는 것 같았거든.”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
“네가 이렇게 무사히 살아 있을 줄 알았으면 나도 더 찾아볼 걸 그랬나 봐.”
로저스는 약간 미안한 기색이었다. 어쩌면 내내 새틴에게 부채감을 품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지난 일인데 뭐. 신경 쓰지 마. 이렇게 다시 만났으니 됐지.”
새틴은 일부러 더 쾌활한 어조로 대꾸했다.
때마침 두 사람은 집 앞에 이르렀다. 새틴이 대문을 열자 로저스가 감탄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좋은 집에 사는구나.”
왠지 멋쩍어서 새틴은 머리를 긁적였다.
“엄밀히 말해 내 집은 아니고 케인 집이야. 난 더부살이하는 신세지.”
“그래도…….”
오는 길에 듣기로 로저스는 서점 위 셋방에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집주인은 로저스의 고용주이기도 한데 퍽 퉁명스러운 노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꼭 퉁명스럽기만 하진 않을 거라고 새틴은 슬쩍 짐작했다. 오갈 데 없는 로저스를 고용하고 지낼 곳까지 빌려줄 정도면 실은 꽤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아닐까. 상인 연합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모양이고. 맥스도 서점을 소개해 주면서 별다른 험담은 안 했다.
“일단 들어가자.”
“으응.”
로저스는 텃밭을 둘레둘레하다 새틴의 뒤를 따라 집으로 들어왔다.
“잠깐 앉아 있어. 금방 저녁 준비 되니까.”
새틴이 응접실 의자를 권하자 로저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앉았다. 그러나 금세 일어났다.
“도와줄 일 없어?”
“손님이잖아.”
“아니, 얘기 상대라도…….”
아무래도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기가 불편했던지 로저스는 새틴의 뒤를 따라왔다.
“그럼 식당에 있을래?”
부엌과 식당은 바로 옆이라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대화를 하는 데 지장이 없었다. 로저스는 식탁 앞에 앉아서야 편한 표정이 되었다.
새틴은 부엌으로 들어가 식재료를 살피며 물었다.
“다른 애들하고는 어때? 종종 만나?”
“다른 애들?”
“헤더랑 카렌이랑…….”
또 누가 있었지.
새틴은 가물가물한 아이들의 이름을 머릿속으로 헤아렸다. 식당에서 로저스의 대답이 들려왔다.
“다른 애들은 못 봤고 재크만 몇 번 봤어. 양조장에서 일을 해.”
“일자리를 구했다니 다행이네.”
예전에 아이들은 학교를 떠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며 겁냈다. 일자리가 있다면 걱정을 덜었으리라.
다른 아이들에 관한 얘기를 좀 하다 보니 창밖이 완전히 깜깜해졌다.
“케인은 원래 늘 늦어?”
로저스의 물음을 듣고서야 새틴은 케인이 돌아올 시간이 지났음을 알았다.
“오늘 좀 늦네. 무슨 일이지?”
새틴은 부엌을 나왔다. 응접실의 시계를 보니 확실히 늦다. 따라 나온 로저스가 걱정스레 물었다.
“늦는다는 얘기는 없었어?”
“별 얘기 없었는데.”
새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관 쪽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새틴과 로저스는 동시에 그쪽을 보았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새틴은 웃으며 말했다.
“이제 왔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