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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한 소설의 분위기가 위기-116화 (116/139)

116화

정말 뜬금없는 소리라 맥이 쭉 빠졌다. 새틴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말했다.

“보통 친구 사이에서는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굴지 않아도 되잖아.”

“우리는 보통 친구가 아니라.”

“그럼 뭔데. 특별한 친구?”

케인의 말을 끊고 새틴이 되물었다. 왜인지 케인은 초조해졌다.

“특별한 건 맞는데…….”

특별한 친구. 특별하다면 굳이 친구라고 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케인이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문 사이 새틴이 살며시 팔을 빼냈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네 고집이 자연스럽게 보일지 잘 생각해 봐.”

“……너는? 넌 뭐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음.”

새틴은 잠깐 뜸을 들인 후에야 이어 말했다. 머쓱한 듯 웃으며.

“사실 나도 잘 몰라. 그냥 네가 말하면 나도 그렇다고 할 생각이었지.”

“……장난해, 지금?”

∞ ∞ ∞

이튿날 치안청에서 사람이 나왔다. 어제 불이 난 여관에서 화재 경위를 조사하던 중 수상한 정황이 발견됐다고 했다.

‘케인이 방화범인 걸 들켰나?’

새틴은 노심초사했는데 다행히 경관들은 그 이유로 찾아온 게 아니었다.

“현장에서 도난품으로 추정되는 물건들이 발견됐습니다. 혹시 없어진 물건이 있습니까?”

“글쎄요…….”

새틴은 귀중품이 딱히 없었다. 수도에서부터 싣고 온 고가의 선물들은 대부분 마차에 있고, 일부는 성기사들이 가지고 있다. 굳이 새틴이 가지고 있는 걸 꼽아야 한다면 성물 정도다. 내내 없는 듯 조용하더니 어제 또 느닷없이 소리를 치며 존재를 어필했다.

‘하, 이것도 클로버랜드 신전에 반납하면 끝이지.’

사실 새틴은 영빈관 탈출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 성물을 대신전에 반납하려고 했다. 딱히 쓸모도 없으니. 그런데 처음 대여를 한 곳에 반납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 여태 가지고 있었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어제는 덕을 톡톡히 봤다. 성물이라기보다는 호신용 호루라기 같은 용도였지만.

딴생각을 하면서도 새틴은 경관의 이어지는 질문에 성실히 대답했다. 별스러운 질문도 없었다.

“수상한 사람을 본 적도 없었다고요……. 그렇군요.”

경관들은 저희끼리 무어라 쑥덕대며 새틴에게 들은 바를 메모했다.

보아하니 경관들은 어제 그 여관에 있던 투숙객을 모두 찾아다니는 건 아닌 듯했다. 고급 객실에 묵었던 투숙객 위주로 조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아직 납치에 관해서는 알지 못하는지 계속 도난 얘기뿐이다.

‘어쩔까.’

새틴은 남들보다 특별히 정의로운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어제 그 납치범들을 계속 활보하게 두어도 될지 모르겠다.

‘살아 있다면 말이지.’

어쩌면 빠져나오지 못해 죽었을 가능성도 있으니 확인차 물었다.

“어제 사고로 죽은 사람도 있나요?”

“아, 다행히 사망자는 없습니다.”

“그렇군요.”

“그건 왜 물으십니까?”

새틴이 고민하는 기색을 기민하게 알아차린 경관이 얼굴을 가까이 했다. 아주 잠깐이었다. 옆에 서 있던 케인이 눈살을 찌푸리자 재빨리 물러나 거리를 유지했다.

그 모습을 본 새틴은 슬그머니 케인의 앞을 막았다.

‘공격적인 개가 다른 사람을 공격하려고 하면 이렇게 다리로 막으랬지.’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한 개 관련 교양 방송의 내용을 떠올렸다. 물론 케인이 개보다 고양이를 닮았다는 생각은 변치 않았다.

‘그럼 개냥이……. 와, 내가 생각했지만 정말 소름 돋네.’

키가 전봇대만 한 성인 남성을 보며 할 생각은 아니었다.

“무슨 말씀 하시려던 거 아닙니까?”

새틴이 할 말 있는 사람처럼 앞으로 나서 놓고 아무 말 안 하니 경관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새틴은 얼른 입을 뗐다.

“대피하느라 소란할 때 이상한 얘기를 들었어요.”

“이상한 얘기요?”

경관들이 눈을 빛냈다.

뭔가 그럴듯한 일감을 찾고 있었을까. 이런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때로 실적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보이지.

새틴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연기에 몰입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납치하기로 한 놈은 어떻게 할 거냐는 얘기였어요.”

이건 복수가 아니라 공익을 위한 고발이다.

경관들은 예상치 못한 내용에 약간 당황했다.

“납치요?”

“네, 납치를 해서 돈을 받아 내려는 의도 같았어요.”

새틴은 이야기에서 본인에 관한 내용은 쏙 뺐다. 내일이면 클로버랜드에 도착하는데 여기서 괜히 사건에 얽혀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일종의 증인 보호라고 합리화했다.

“워낙 난장판이라 자세히는 못 들었지만, 그동안 여러 번 납치를 한 전적이 있는 것처럼…….”

“그게 정말입니까?”

곱슬머리와 콧수염이 나눈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면 이전에도 납치 사건이 여러 번 있었을 거다. 여관이 얽히지 않도록 잘 얼버무렸다 해도 사건 자체가 없던 일이 됐을 리는 없다.

지난 사건들을 생각하는지 경관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새틴은 너무 확신해도 이상해 보일까 봐 어깨를 으쓱였다.

“정말인지는 모르죠. 제가 듣기에 그랬다는 거니까요.”

“인상착의는 기억납니까?”

“남자들이었어요. 종업원 옷을 입고 있었는데 변장은 아닌 느낌이……. 아, 그리고 콧수염이 있었나?”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짚는 체하며 새틴은 적당히 주워섬겼다. 경관들은 새틴의 이야기를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메모했다.

얘기를 마친 후 경관들은 서둘러 돌아갔다. 화재의 경위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데다, 도난품의 주인까지 찾으려면 할 일이 많을 것이다.

경관들을 배웅하고 새틴은 문을 닫았다. 여태 태연히 잘 이야기했는데 문을 닫고 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 좀 긴장했어.”

“왜?”

고개를 갸웃하며 의문을 표하는 케인의 어깨를 툭 쳤다.

“방화범이 여기 있으니까.”

“어차피 마법 때문인 줄 알지도 못할 텐데.”

“확신은 못 하지. 리타가 연구하는 마법도 그런 거랬잖아.”

“뭐야, 그게?”

케인에게는 리타가 벌써 오랜 과거의 인연이 되었을까. 무슨 말이냐 묻듯 멀뚱멀뚱 쳐다보는 케인의 얼굴에서는 당황한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새틴은 객실 안쪽으로 이동하며 과거의 기억을 되살렸다.

“리타가 그런 연구를 한다고 했잖아. 마법 흔적을…….”

말하다가 깨달았는데 이건 케인과 만나기 전에 들은 이야기였다. 새틴은 열없이 웃고 다시 설명했다.

“리타가 마법 흔적을 찾는 마법을 쓸 줄 알아. 그런 마법을 쓸 줄 아는 사람이 여기도 있었으면 꼼짝없이 들켰을 거 아냐.”

“하지만 별말 안 하는 거 보면 없는 모양이네.”

“이번엔 그랬지만 다음엔 모르잖아. 리타가 그 마법을 막, 두루 알리고 다니기라도 하면.”

마법사들은 연구 성과를 남과 공유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리타는 할 수도 있다. 마법사보다는 공주로서 할 만한 일이었다. 나라의 치안이 좋아지면 리타로서는 뿌듯하지 않겠는가.

새틴은 걱정하고 있는데 케인이 팔짱을 끼더니 픽 웃었다.

“내가 한 짓을 들킬까 봐 걱정이야?”

“당연히 걱정이지……. 근데 너 왜 웃어?”

“아니, 내가 그런 짓을 아예 안 하길 바라는 줄 알았거든.”

“……앗.”

정답이었다. 케인이 나쁜 짓을 했다가 들키는 것보단 안 들키는 게 낫지만, 기왕이면 처음부터 나쁜 짓을 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새틴은 괜한 걱정이 멋쩍어서 작게 헛기침을 했다.

“흐흠.”

“너도 가끔은 앞뒤를 잊어버리네.”

“그럴 수도 있지. 나도 사람이니까…….”

“그런 부분은 타고나는 걸까?”

의문문처럼 들리지만 대답을 구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혼잣말이라면 무슨 의미인지 모호하다.

타고났냐고? 왜 그런 게 궁금하지?

새틴은 잠깐 뜸을 들이다 화제를 전환했다.

“슬슬 나갈 준비 해야지.”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슬슬 데이지랜드를 떠나기로 한 시간이었다. 얼마 안 되는 소지품을 챙기던 중 케인이 들으란 듯 중얼거렸다.

“아, 그러고 보니 대답도 준비됐는데.”

무슨 대답?

새틴은 무심코 케인을 쳐다보려다 몸을 굳혔다. 뭐에 대한 대답인지 퍼뜩 알아차린 탓이다.

“오늘 날씨가 어떠려나…….”

새틴이 느닷없이 딴소리를 하자 케인이 소리 내서 웃었다. 고맙게도 여기서 끝장을 볼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 ∞ ∞

성기사들은 새틴과 함께하는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첫날만큼이나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다만 첫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저마다의 얼굴에 슬픈 기색이 어려 있었다는 거다.

‘내가 뭐라고…….’

새틴은 성기사들의 아쉬워하는 얼굴을 보기가 좀 민망했지만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다. 맹목적인 동경에는 사람을 우쭐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앞으로 저런 동경 어린 시선을 받을 일이 없다 생각하면 조금 아쉽기까지 했다.

물론 맹목적이라는 부분만 따지면 케인도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케인은 동경은 아니지.’

오히려 케인이 보이는 태도는 동경과 정반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때때로 케인은 새틴을 아무것도 못 하는 무능력자처럼 대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뒀다가는 포크와 나이프도 위험하다고 뺏기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그 과소평가가 무시에서 비롯한 태도가 아니라는 건 물론 안다. 무시보다는 보호할 의도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으레 소중한 것에 관해 착각을 하지 않던가.

‘보호 본능이란 거지.’

약한 것을 보면 보호해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가끔은 약하지 않은 것에도 발휘된다. 추측건대 그 방향이 잘못된 본능은 호의에서 비롯한다. 좋아하는 것이 작고 사랑스러워 보여서 그만.

새틴은 속으로 한 생각인데도 민망해서 손부채질을 했다. 맞은편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던 케인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더워?”

“어, 좀…….”

다행히 덥다는 핑계가 먹힐 만한 날씨였다. 케인이 창문을 열었다. 포장되지 않은 길을 달리는 말발굽 소리는 다소 투박했다. 희미하게 먼지도 피어올랐다.

“……닫는 게 낫겠네.”

새틴은 멋쩍게 웃으며 도로 창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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