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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한 소설의 분위기가 위기-100화 (100/139)

100화

“아니, 왜들 그런 짓을 하는 거지?”

속이 답답한지 리타는 머리를 벅벅 긁는 것으로 분풀이를 했다. 카트린은 그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무어라 하진 않았다. 지금 문제는 흐트러진 머리만이 아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 평소보다 허술한 차림이었다. 용사의 실종은 전에 없던, 예상도 못 한 사건이다. 다들 경황이 없을 만했다.

에드워드 역시 마찬가지다. 급히 준비하고 나오느라 뒤집힌 줄도 몰랐던 옷깃을 조금 전에야 알고 가다듬었다.

경비대장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에드워드를 보며 물었다.

“용사님께서 어제 특별한 말씀을 하진 않으셨습니까?”

어제 늦은 시간에 에드워드가 새틴을 만나러 왔던 사실은 영빈관 직원 대부분이 알고 있었다.

기대 어린 눈빛들을 마주한 에드워드는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저도 특별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오늘 보자는 얘기에도 그러자고 대답했죠. 새틴 씨 스스로 떠났을 리는…….”

에드워드는 평소답지 않게 말꼬리를 흐렸다. 자신의 말을 확신할 수가 없었다.

전부터 새틴은 조금 이상한 사람이었다. 함께 이런저런 일을 겪었기에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믿지만, 그와 별개로 평범하지 않은 부분이 줄곧 존재했다.

꼭 뿌리 없는 나무 같았다. 주관은 있는데 그 주관이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보이지 않았다.

‘기억은 사람의 뿌리와 마찬가지지.’

강인한 성격이 아니라 해서 꼭 우유부단한 사람이라 할 수는 없다. 새틴도 그랬다. 리타나 케인과 비교하면 분명 유순한 성격이었지만 줏대 없이 휩쓸려 다니진 않았다.

새틴은 곧잘 의견을 냈고, 대부분 합당한 내용이었다. 제가 할 일을 알고, 하지 못할 일도 알았다. 매사에 판단력을 가지고 임했다.

하지만 그런 판단의 근거는 어디서 왔을까? 기억이 없는 새틴이 옳고 그름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이었지? 할 수 없음을 알면서 해야 한다고 판단한 근거는?

새틴이 스스로 떠났을 가능성은 정말 없을까?

에드워드는 괜한 말로 좌중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은 새틴 씨를 찾는 데에만 집중합시다. 행여 자의로 떠났다 해도 이유 정도는 들을 수 있겠죠.”

“나도 찾으러 가 봐야겠어.”

리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카트린이 한숨을 쉬며 따라 일어났다. 리타를 따라온 사람들이 우르르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당장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에드워드도 일어났다.

“저도 이만 가 보겠습니다. 혹시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면 전해 주세요.”

에드워드의 뒤를 이어 경비대장과 치안총감, 그 외 급히 모인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일터로 흩어졌다.

대신전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에드워드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왜 하필 오늘 사라졌을까?’

어제 그제 연속으로 이어진 왕궁 연회와 기도회는 매우 성대했다. 내내 새틴은 사람들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찌나 긴장했던지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그에 비하면 오늘의 일정은 아주 간단했다. 많은 사람을 만날 필요도 없고 복잡한 준비를 할 필요도 없었다. 아마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에드워드의 입장에서야 오늘의 일정이 가장 중했다. 신관인 에드워드에게 말씀의 방에 들어가는 일보다 영광스러운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지만 새틴은 신관이 아니다. 말씀의 방에 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도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애초에 말씀의 방이 뭔지도 처음 들었다고 했지.’

다소 불경하게 말하자면, 새틴에게 오늘은 포상을 받는 날이었다. 다른 번잡한 일정은 마다하지 않았으면서 구태여 포상받는 날 사라진 이유가 대체 무얼까?

설마 소원으로 무얼 빌지 생각하지 못했다는 이유는 아니겠지.

‘케인 씨는 뭔가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리타와 에드워드가 영빈관에 도착했을 때 케인은 이미 없었다. 새틴을 찾으러 나갔다고 했다. 경비대장은 무슨 상황인지 확인될 때까지 영빈관에 있어 달라고 요청했는데 묵살당했다며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

‘거기서 끝난 게 다행이지.’

경비대장이 억지로 못 나가게 막았으면 영빈관은 지금쯤 한 줌의 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케인은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는 마법사다.

에드워드는 설마하니 케인이 그렇게까지 하겠냐고 생각하는 한편 그렇게까지 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

새틴과 케인 사이에는 에드워드가 모르는 시간들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새틴조차 모르는 시간들이지만 어쨌든 케인에게는 지극히 소중한 시간이었다. 케인은 그 시간들을 마치 교리처럼 여겼다.

만약 새틴이 스스로 떠났다고 하면.

‘당연히 케인 씨가 뒤쫓아 갈 거란 예상을 못 했을까?’

∞ ∞ ∞

케인은 한 번도 사냥을 해 본 적이 없지만 사냥이 무언지는 안다.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사냥이란 목표를 정하고, 쫓아서, 잡는 것이다.

만약 사냥의 대상을 짐승으로 한정하지 않는다면 케인도 사냥을 해 본 적이 있다.

케인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냥한 사람은 클로버랜드 치안청에서 마법 사건을 담당하던 마법사다. 이름은 커넬, 나이는 사망 당시 이미 예순을 넘었다.

케인은 커넬을 일 년 넘게 관찰했다. 언제 집을 나서고, 어떤 가게에 들르고, 누구와 만나는지 확인했다. 자주 입는 옷은 무엇이고 자주 쓰는 말이 무언지도 곧 알 수 있었다.

그 관찰은 바깥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커넬은 곰처럼 둔한 늙은이가 아니었기에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음을 곧 알아차렸다.

그러나 알아차렸다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커넬은 어디서든 마법사라며 거들먹거렸지만 그가 할 줄 아는 마법으로는 케인의 존재를 밝히지 못했다. 숲속의 작은 학교를 재로 만든 불 마법은 사람을 탐지하는 데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커넬은 익명의 협박 편지가 자신을 저격한다고 믿었다. 밤중에 자신의 침실에서 느껴지는 기척이 흑마법이라고 오해했다. 길에서 사라진 소지품이 저주의 매개체로 쓰일 거라 의심했다.

‘그런 병을 신경증이라고 하던가?’

직접적인 사인을 따진다면 케인은 커넬을 죽이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댄 적이 없다.

‘딱 한 번 대화를 한 적이 있긴 하지.’

일 년 가까운 시간 동안 불면증에 시달리던 커넬은 어느 날 깊은 잠에 빠졌다. 창문이 열리는 소리에도, 바깥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울음소리에도 깨어나지 않았다. 케인은 침대맡에 서서 그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어떻게 죽일까? 거들먹거리기를 좋아하는 인간이니 사람들 앞에서 우스운 꼴로 죽어 구경거리가 되게 할까? 아니면 그렇게나 자랑하던 불 마법에 타 죽게 하면 어떨까? 가족이 보는 앞에서 서서히 죽게 할까? 부끄러운 과거를 하나하나 까발려 스스로 죽게 하면?

케인이 결정을 내리기 전에 커넬이 깨어났다. 목이 탔는지 입술을 달싹이다 가늘게 눈을 떴다. 멍하니 어둠 속을 배회하던 시선이 케인에게서 멈췄다.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숨을 삼키며 깨어났다.

케인은 커넬이 호통치며 마법을 쓸 거라고 예상했다. 아니었다.

「나, 나를 제발 내버려 둬…….」

늙은 마법사는 아이처럼 흐느꼈다.

「다신 그러지 않을게. 제발 나타나지 마. 제발 이제 그만…….」

어쩌면 꿈을 꾸는 중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눈앞의 사내가 사람이 아닌 죽은 자의 영혼 따위라고 믿었거나. 자기가 죽인 사람의 영혼 말이다.

케인은 애원하는 늙은이를 용서해 줄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당장 죽일 마음도 사라졌다. 늙은이는 정말로 지쳐 보였고 그 모습이 꽤나 보기 좋았다.

케인은 웃으며 속삭였다.

「난 언제나 당신 곁에 있을 거야. 당신이 아는 사람들 사이에 숨어서. 당신이 어딜 가든, 무얼 하든. 혼자 있을 때도, 가족과 있을 때도 내가 곁에 있다는 걸 잊지 마.」

커넬은 오래 지나지 않아 죽었다. 주변을 경계하고 의심하다가 예민한 제 성품에 못 이겨 죽었다.

아주 긴 죽음이었다. 성질머리가 급하던 인간에게 어울리는 마지막이었다.

케인은 간접 살인을 하는 동안 사람의 흔적을 찾는 방법을 익혔다. 그 경험을 토대로 새틴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하고, 어디로 갈지 상상했다.

새틴이 납치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케인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어야지.’

새틴이 잃어버린 기억에 그다지 미련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미련이 없다 뿐일까. 기억을 찾는 일이 영 내키지 않는 기색이었다.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고만 생각했지 두려워한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떨떠름한 태도도 그저 긴장에서 나온 줄로 알았다.

‘멍청하기는.’

대개 사람들에게 기억이란 잃고 찾는 대상이 아니다. 새틴도 마찬가지다.

지난 4년 동안 새틴은 자신이 기억을 잃었다고 생각하며 살지 않았을 거다. 빈 과거는 그저 당연했겠지. 자신의 머리가 검고, 손가락이 가늘듯, 그 이전의 과거는 당연하게 존재하지 않았다.

케인은 타인의 의도로 기억을 되찾게 된 새틴이 어떤 생각을 할지 세심히 헤아리지 못했다.

사람은 쉬이 달라지지 않는다. 기억을 잃은 새틴은 이전의 새틴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리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케인이지 새틴 본인이 아니다.

‘충분히 두려울 일인데.’

알지 못하던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고, 당연한 부재가 당연한 존재로 탈바꿈한다. 누구라도 겁을 먹을 일인데 왜 생각을 못 했을까.

‘그야 새틴이 무섭다는 말을 한 적이 없으니까.’

새틴은 계단 아래로 몸을 던진 적이 있다. 불길을 헤치고 나타난 적도 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인 체하면서 실은 평범한 두려움을 한 번도 표현하지 않았다.

그래서 케인은 새틴이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말았다.

‘그럴 리 없잖아.’

남이 겁내는 것을 겁내지 않을 수는 있다. 모두가 겁내는 것을 겁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겁내지 않을 수는 없다. 두려움이란 누구에게나 있다. 없는 사람이 있다면 어딘가 잘못된 사람이다.

케인에게도 두려움이 있다. 새틴을 다시 만나고서 생겼다. 그때까지의 케인이 바로 어딘가 잘못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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