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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한 소설의 분위기가 위기-80화 (80/139)

80화

마왕성에서 만난 원숭이들은 늑대 인간과 마찬가지로 불을 무서워했다. 그러나 뱀은 아니었다. 약점이었던 꼬리에도 그냥은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

앞으로 늑대 인간만 만난다면 리타와 케인의 불 마법이 유용하겠지만, 다른 괴물이 나타난다면 어떨까. 괴물 뱀처럼 불 마법이 통하지 않아서 직접 검을 쥐고 싸워야 한다면, 그런데 너무나 강해서 한두 사람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다면.

새틴이 말을 하다 마니 에드워드가 다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다른 괴물이 나올 수도 있잖아.”

“다른 괴물이요?”

고개를 갸웃하는 에드워드에게 새틴은 조심스레 설명했다.

“만약에 말이야. 케인과 리타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 괴물이 나온다면 다른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가능성은 있군요. 괴물이 꼭 한 종류라고 단정 지을 근거는 없으니 말입니다.”

에드워드가 새틴의 의견에 동조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리타가 한탄했다.

“이래서야 마법사 된 보람이 없네!”

리타가 칭얼거리는 소리를 흘려듣고 에드워드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의 협력을 구합시다. 어차피 괴물들이 우리가 가는 곳에만 나타난다고 볼 순 없으니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그편이 사람들에게도 좋을 겁니다.”

에드워드가 생략한 말을 새틴은 바로 이해했다.

곧 관청과 치안청이 주도하는 토벌대가 나서겠지만 그 전에 모험가 연합을 통해 괴물의 공략법이 알려져서 나쁠 건 없다. 오히려 좋은 일이다.

마법사가 어디에나 있지는 않았다. 점차 물리적인 방식으로 괴물을 처치할 방법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지리라.

“난 나서지 않아도 되겠군.”

케인의 태업 선언에 리타가 뭐라 하기도 전에 에드워드가 먼저 말했다.

“케인 씨는 몸을 잘 쓰시니 마법을 쓰지 않아도 좋은 전력이지요.”

듣기 좋은 말을 해 주는데도 케인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에드워드의 말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 표명이었다. 그러나 그 의지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새틴 씨를 지키는 데만 집중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케인의 표정이 요상해졌다. 움찔거리는 입꼬리는 아무래도 미소를 참는 듯했다. 새틴은 이마를 짚었다.

‘이게 뭐람.’

리타뿐 아니라 에드워드까지 케인을 이용하는 방법을 깨우쳐 버렸다.

∞ ∞ ∞

숙련된 여행자들은 소문에 예민하다. 특히나 위험한 일에 관한 소문은 절대 놓치지 않았다. 안전한 여행을 위해서든, 긴장감 넘치는 여행을 위해서든.

그렇다 보니 모험가 연합에서 북쪽으로 함께 이동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소식도 금세 퍼졌다. 미들랜드 남쪽 성벽 너머에서 일어난 전투에 대해 들은 사람이라면 대규모 여행단이 꾸려지는 이유도 쉬이 짐작 가능했다.

“스물여덟 명, 꽤 많군요.”

에드워드는 북문 앞 약속 장소에 모인 사람들의 숫자를 헤아려 본 후 살짝 놀랐다. 기껏해야 열댓 명이나 모일 줄 알았는데 그보다 배나 모였다.

반면 리타는 그리 대수롭잖게 반응했다.

“이런 일행을 어디 가서 또 만나겠어. 다들 운 좋다고 생각할걸.”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기에 에드워드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모험가 연합에 사람을 모아 달라는 의뢰를 할 적에 이쪽 일행에 관해 구구절절한 소개는 하지 않았다. 마법사와 신관이 포함되어 있다는 한마디로 충분했다.

사람들은 괴물에 대해 잘 모른다. 또한 마법에 관해서도 잘 모른다. 괴물에게 마법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을 거다.

‘사기 치는 기분이군.’

다른 때라면 에드워드는 이런 식으로 미끼를 드리워 사람들을 현혹하지 않았을 터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을 모아야 하니 어쩔 수 없다. 저들도 여럿이서 가는 편이 안전하니 꼭 나쁜 짓도 아니다.

‘마법이 반드시 통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까.’

아직 출발 시간까지 여유가 있었다. 에드워드와 리타가 함께할 사람들을 확인하는 동안 새틴과 케인은 다른 볼일을 보러 잠시 자리를 비웠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어제 살 것이지. 내내 가만히 있더니.”

리타가 툴툴거렸다. 쇼핑에 따라가고 싶었는데 케인이 몹시 싫어해 함께 가지 못한 것이 못내 억울한 모양이었다. 에드워드는 픽 웃으며 리타를 달랬다.

“케인 씨는 다소 어린애 같은 면이 있으니 어쩔 수 없죠.”

“첫인상하고 너무 다르지 않아?”

“글쎄요, 잘 모르겠군요. 처음 만났을 때도 리타 씨하고 유치하게 싸우지 않았습니까.”

“무슨 소리야? 누가 유치하게 싸웠다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법을 배워 둔다면 향후 큰 재산이 될 겁니다.”

“하 참!”

리타가 인상을 쓰고 에드워드의 옆구리를 퍽 때렸다. 별로 아프지 않았다. 리타도 정말 아플 거라고 기대하진 않은 얼굴이다.

“그나저나 저번에 그 얘긴 뭐야.”

“무슨 얘기 말입니까.”

“나중에 말해 준다던 거 말이야. 고발장에 마법이 적혀 있었다는 게 무슨 소리야? 뭘 고발했는데?”

“아, 그 얘기 말이군요.”

아무래도 케인과 새틴이 있는 자리에서는 하기 어려운 얘기라 여태 할 기회가 없었다. 이참에 리타도 알아 두는 편이 좋을 성싶어 에드워드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클로버랜드에 나타났던 흑마법사 말입니다. 4년 전에요.”

“어, 그게 왜.”

“그때 흑마법사를 고발하는 편지를 보낸 사람이 케인 씨였다더군요. 정확히는 새틴 씨의 의견이었다고 합니다.”

리타의 눈이 등잔만큼 커졌다. 에드워드의 옷깃을 잡더니 마구 흔들며 캐물었다.

“그게 정말이야? 흑마법사를 고발한 사람이 케인이면 케인이 그 흑마법사의, 아니, 근데 새틴은 왜 거기서 나와?”

“흑마법사가 붙잡고 있던 아이들 중에 케인 씨와 새틴 씨가 있었던 거죠. 전에 케인 씨가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화재 속에서 새틴 씨가 자기를 구하고 죽은 줄 알았다고.”

“아, 설마 그 화재가?”

예전에 에드워드가 해 준 이야기를 떠올렸는지 리타가 입을 벌렸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토벌 때 화재로 사망했다고 알려진 흑마법사의 제자가 정말로 새틴 씨였던 거죠. 동명이인이 아니라요. 보아하니 진짜 제자는 아니고 치안청의 거짓말이었던 모양이지만.”

“허어…….”

리타는 복잡한 마음을 긴 탄식으로 표현했다. 그러다 뭔가 깨달은 듯 눈을 반짝였다. 에드워드는 리타가 하려던 말을 짐작하고 먼저 말했다.

“지금 케인 씨가 쓰는 마법은 그때 죽은 흑마법사의 마법일 겁니다. 아마 새틴 씨가 죽은 줄 알고 자포자기했던 게 아닌가 싶군요.”

“얘기를 듣고 보니 이해가 되는걸. 케인이 그렇게 새틴을 과보호하는 게…….”

안타까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리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래도 너무 찰거머리야. 생이별한 부모 자식도 그렇겐 안 할걸.”

리타의 냉정한 평가에 에드워드는 픽 웃었다.

“아무튼 두 분의 사정이 그렇습니다.”

이야기는 끝났다. 에드워드는 여태 제 옷깃을 붙잡고 있는 리타의 손을 떼어 냈다. 그 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두 사람의 손이 맞닿았다.

“어.”

“어.”

부지불식간에 미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에드워드는 황급히 손을 놓으며 할 말을 찾아냈다.

“그런데 리타 씨는 말입니다.”

“어, 어.”

“정말로 마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엉겁결에 꺼낸 질문이긴 하나 실제로 궁금하기도 했다.

리타는 눈을 굴리다 대답했다.

“음, 반 정도는.”

그보다는 더 확신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에드워드는 좀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넘어갔다.

“만약 마신이 있다면 말입니다. 그 마신을 무찌르는 데 새틴 씨가 도움이 될까요?”

“아마 안 되겠지.”

의외로 리타는 즉답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마신을 무찌르는 데 꼭 마법이나 힘을 써야 한다면 말이야.”

“다른 방식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마신이 어떤 존재인지 지금은 알 수 없잖아. 마법도 힘도 통하지 않는다면 나나 케인은 무용지물이 되겠지. 새틴이 가진 능력이 그때야말로 빛을 발할지 누가 알겠어.”

“마력을 보는 능력이요?”

새틴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라곤 그것뿐이다. 그런데 리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다른 거.”

“새틴 씨에게 다른 능력이 있었습니까?”

에드워드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에드워드가 없을 때 한 이야기일까. 약간 섭섭한 기분이 들락 말락 할 때 리타가 웃었다.

“몰라, 나도.”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냥 그런 기분이 들어. 새틴이 무언가, 아주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아니, 확신에 가깝나?”

리타가 허황된 소리를 한 적은 지금까지도 여러 번 있었다. 리타는 대책 없이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하는 말은 그저 막연하게 들리지 않았다.

에드워드가 빤히 쳐다보니 리타는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넌 신관이잖아. 그런 거 못 느껴?”

느낌이라니. 대체 무슨 느낌 말이지. 직감이나 육감에 관한 얘기일까. 하지만 신관이라고 특별히 육감이 발달한다는 연구 결과는 없다.

“리타 씨가 대체 뭘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이걸 설명하자니 애매하네.”

콧잔등을 살짝 찡그린 리타는 찬찬히 설명을 시작했다.

“대신전 가장 안쪽에 말씀의 방이 있어. 대신관은 그곳에 가면 신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고 하지.”

에드워드는 아직 한 번도 대신전에 가 본 적이 없지만 신탁이 어떤 식으로 내려오는지는 들어 알고 있다. 그다지 독실하지 않아 보이던 리타가 말씀의 방에 관해 알고 있다니 좀 놀랐다.

“전에 거기에 들어가 본 적이 있거든. 나야 신관이 아니니 아무것도 듣지 못했지만 말이야.”

“말씀의 방에 들어간 적이 있다고요?”

“응, 어릴 때지만 아주 묘한 느낌이 들었던 건 확실히 기억이 나. 정말로 이상한, 이게 나쁜 의미가 아니고 뭔가…… 아주 신비로운 그런 느낌이 들었어.”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듯 리타의 표정이 아련해졌다.

“그런데 새틴의 옆에 있으면 꼭 그때 같은 느낌이 들어. 희미하긴 해도.”

말씀의 방에 들어갔을 때의 느낌. 그게 과연 어떤 느낌일까.

리타의 말을 곱씹느라 에드워드가 바로 대꾸하지 않자 리타가 눈짓으로 재촉했다. 빨리 뭐라고 말을 하라는 뜻이다. 에드워드는 일단 고개를 주억였다.

“그것참 신기한 일이군요.”

“그치?”

씩 웃는 리타를 보며 에드워드도 가만히 미소 지었다.

“대신관과 그 후계자, 혹은 직계 왕족만 들어갈 수 있는 말씀의 방에 리타 씨가 어떻게 들어갔는지도 신기하고요.”

“……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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