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케인의 말대로 리타는 쉽사리 치안청을 빠져나왔다. 신분을 이용했는지 돈을 이용했는지는 몰라도 리타를 배웅하는 경관들이 아주 친절했다.
쫓아오며 배웅하려는 경관들을 대충 물린 리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일행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고생하셨습니다.”
“별로 고생은 아니었지만 정말 별 경험을 다 하네.”
에드워드의 위로에 리타는 잠시 툴툴거렸지만 본인 말처럼 고생을 한 듯 보이진 않았다. 안에서 무슨 대접을 받았는지 옷깃에 보랏빛 얼룩이 묻어 있었다. 블루베리 잼으로 보였다.
“신발 때문에 내내 창피해 죽는 줄 알았어.”
미들랜드에 들어와 신발을 새로 사러 갈 틈이 없었기에 리타는 여전히 앞이 뚫린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 밑의 양말은 이미 너덜너덜하다.
에드워드가 리타의 기분을 풀어 주려는 듯 상냥히 말했다.
“리타 씨가 조사를 받는 동안 여관을 예약해 뒀습니다. 미들랜드에서 제일 좋은 곳으로요. 분명 마음에 드실 겁니다.”
“잘했어.”
만족스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리타는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 에드워드를 쳐다보았다.
“결제는?”
“아직 안 했지요.”
“아, 진짜 너희들 너무하다.”
리타는 짐짓 섭섭한 표정을 지었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예약해 둔 여관으로 가기 전 일단 식당에 들렀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자마자 리타는 치안청에서 들은 이야기를 꺼냈다.
“미들랜드 주변에 늑대 인간이 나타난 게 오늘이 처음이 아니래.”
“정말입니까?”
“시민들은 그냥 숲에 늑대 무리가 들어왔다고 알고 있는데 실은 관청 기사단이 며칠 전에 이미 목격했대. 토벌 준비를 하던 중에 우리가 먼저 마주쳐 버린 거지.”
며칠 전. 새틴은 어제 들른 마을에서 만난 늑대 인간을 떠올렸다. 그놈도 며칠 전부터 마을 근처를 어슬렁거렸다고 했다. 이곳의 늑대 인간도 비슷한 시기에 나타났을까. 이쪽엔 아홉 마리나 되는데 그쪽엔 한 마리뿐인 데는 이유가 있을까.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리타가 이어 말했다.
“그동안 미들랜드 관청과 치안청이 조사한 내용으로는 늑대 인간들이 북쪽에서 내려왔을 거래.”
“북쪽?”
새틴은 무심코 되물었다. 지금 일행이 향하는 수도도 북쪽에 있다.
리타가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응, 북쪽. 정말로 수도 쪽에 큰일이 생기려는 게 맞는 모양이야.”
심각한 표정이긴 하나 리타는 그다지 크게 걱정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오늘도 피해 없이 늑대 인간들을 잘 처리했기 때문일까.
리타의 그 긍정적인 부분을 케인이 지적했다.
“오늘 겨우 아홉 마리 가지고도 놀라 자빠질 뻔했으면서 이보다 더 많아지면 어쩔 셈이야?”
“오늘처럼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 되지. 우리만의 일은 아니니까.”
“그게 네 맘대로 될까? 오늘은 미들랜드가 가까웠지만 다음엔 허허벌판에서 괴물들을 만날지도 모르는데?”
“으음, 일리가 있어.”
도시와 도시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촘촘히 마을이 형성된 구간도 있겠지만 사나흘은 꼼짝없이 야영을 해야 하는 구간도 있다. 아직까진 야영할 일이 없었으나 내일부터도 그러리란 장담은 할 수 없다.
일행은 겨우 네 사람. 새틴이 케인의 곁다리인 점을 생각하면 사실상 세 사람이나 다름없다.
리타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드워드가 입을 뗐다. 그 역시 여태 좋은 방법을 생각하고 있던 모양이다.
“사람을 더 모으면 어떻겠습니까?”
“단체 관광이라도 하자고?”
케인이 트집을 잡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말을 받았지만 에드워드는 침착하게 설명했다.
“리타 씨 말대로라면 미들랜드의 치안청과 관청은 협력 관계입니다. 다른 어떤 일보다 시민의 안전을 중시한다는 의미죠. 클로버랜드와 다르게.”
“그런데.”
“우리가 여기 오기 전까지도 토벌 준비를 하고 있었다지 않습니까. 그들과 함께 움직인다면 안전할 겁니다.”
케인은 잠깐 동안 대답이 없었다.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을까. 그래서 새틴이 대신 말했다.
“근데 그 준비가 언제 끝날지 모르잖아.”
미들랜드의 관청과 치안청이 제대로 일을 하고 있다는 건 분명 좋은 소식이다. 미들랜드 시민만이 아닌 미들랜드를 경유하는 여행자에게도.
문제는 그들이 공공기관이라는 점이다. 공공기관은 대체로 결정이 늦는 법. 이세계의 공공기관이라고 빠릿빠릿할 것 같진 않았다.
“토벌대가 당장 내일 출전하지는 못할 거 아냐.”
“그건 그렇군요…….”
에드워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에드워드의 생각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새틴은 공공기관이 아닌 다른 데서 사람을 모을 방법을 생각해 봤다.
마침 적절한 곳이 있었다. 케인도 그곳을 이용한 적이 있고, 리타도 그곳을 이용한 적이 있다.
“모험가 연합은 어때?”
새틴의 말을 듣자마자 리타가 눈을 반짝 빛냈다.
“맞아, 모험가 연합이 있었지.”
“그건 괜찮은 생각 같습니다. 원래도 초보 여행자들은 모험가 연합에서 일행을 구하기도 하니까요.”
리타와 에드워드가 호응해 주니 새틴은 다소 뿌듯해졌다. 다만 아무 말 없는 케인이 신경 쓰였다.
“넌 어떻게 생각해?”
“그다지.”
“그다지라는 게 무슨 말이야. 그다지 안 내킨다고?”
“아무 생각도 없다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표정에서는 어딘지 퉁명스러움이 느껴졌다. 왤까. 새틴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맞은편에서 리타가 손을 내저었다.
“찰거머리는 내버려 둬. 그냥 네 옆에 누가 있는 게 싫은 거지, 뭐.”
“그것도 안 내키는 건 맞아.”
케인이 찡그린 얼굴로 태연히 리타의 말에 수긍했다.
“야, 동의하면 어떡해.”
리타는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며 몸을 떨었다. 에드워드가 옆에서 소란 피우지 말라고 핀잔했지만 리타는 팔을 문지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케인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난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마법을 못 써.”
“뭐어?”
리타가 큰소리를 냈다. 에드워드와 새틴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법을 쓰는 데 그런 제약이 있나?’
마법에 관해 잘 모르는 새틴이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리타가 눈살을 팍 찌푸리며 따졌다.
“거짓말하지 마. 다른 사람 있다고 못 쓰는 마법이 어디 있어.”
리타의 반응을 보니 케인의 주장에 아무런 신빙성이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케인은 이러쿵저러쿵 부연하지 않고 어깨만 으쓱였다.
가만히 두 사람의 실랑이를 지켜보던 에드워드가 물었다.
“혹시 마법을 쓰지 못하는 게 아니라 쓰지 않겠다는 뜻입니까?”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뚱한 말이지만 긍정이었다. 리타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왜 안 쓰는데? 이유라도 있어?”
“사람들 많은 데서 마법사라고 나대고 싶지 않으니까.”
“난 나댄다는 뜻이야?”
“네가 나대든 말든 그건 나랑 상관없어. 내가 그러기 싫은 거니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케인을 보던 리타가 아, 하더니 도로 인상을 썼다.
“너 아까도 그래서 내가 했다고 하란 거였어?”
아까의 일. 성벽에 마법으로 불을 붙인 일을 뜻했다. 그 일 때문에 리타는 치안청에서 블루베리 잼을 대접받았다. 꼬질꼬질한 양말을 드러낸 채.
“음, 뭐.”
케인은 대답을 얼버무리며 슬쩍 웃었다. 산뜻한 미소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렐 만큼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리타는 넘어가지 않았다. 도리어 얄미워 죽겠다는 듯 눈꼬리를 올렸다.
리타가 케인에게 결투를 신청하기 전에 에드워드가 나섰다.
“무슨 사정이라도 있는 겁니까?”
“그걸 내가 말할 이유는 없지.”
에드워드는 가만히 케인을 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원래 그 마법을 쓰던 사람 때문입니까?”
새틴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그리고 곧 알아차렸다. 케인이 말하길 자기가 쓰는 마법은 죽은 흑마법사에게서 훔친 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게 왜 마법을 숨기는 이유가 될까.
고개를 갸웃하는 새틴을 보고 에드워드가 설명했다.
“두 분이 보낸 고발장에 케인 씨가 쓰는 마법이 적혀 있으니까요. 관련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거군요.”
이 세계에서 마법은 오픈 소스가 아니다. 케인은 스승이 없고, 누군가 그 마법을 어디서 배웠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이 없다. 만에 하나 의심을 살 수도 있단 얘기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지만, 케인 씨가 불편해하는 마음은 이해합니다.”
에드워드는 더 캐묻지 않고 순순히 물러났다. 케인은 어딘지 탐탁잖아 하면서도 대거리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리타만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했다.
“뭔데, 뭔 얘긴데?”
에드워드는 따로 이야기해 주겠다며 리타를 달랬다. 그 모습을 보는 새틴은 묘한 기분이 됐다.
‘미안해서 그러나?’
케인이 4년 전 화재의 생존자라는 사실을 알고부터 에드워드는 확실히 케인에게 유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에드워드는 케인이 흑마법사의 제자일지 모른다고 의심했다. 그런데 사실 케인은 억울한 피해자였다. 심지어 케인의 구조 요청을 받고 나타난 신전과 치안청의 사람들은 케인의 소중한 친구를 죽게 했다. 물론 정말 죽지는 않았지만 케인은 그런 줄 알고 4년을 보냈다.
제삼자인 새틴이 보기엔 에드워드 개인이 죄책감을 느낄 일은 아니었다. 이제 막 수습 신관을 벗어난 에드워드가 4년 전에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었겠는가.
하지만 감정이란 그렇게 정확히 자르고 나누지 못하는 법이다. 새틴 또한 그렇지 않은가.
에드워드가 일행이 처한 상황을 정리했다.
“우리끼리 움직인다면 케인 씨가 마법을 쓸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케인 씨가 마법을 쓰지 못하는군요. 케인 씨의 마법과 다수의 전투력 중 어느 쪽이 더 유용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늑대 인간 한 마리와의 전투는 어렵지 않았다. 케인의 도움 없이 리타와 에드워드의 선에서도 충분히 정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홉 마리와의 전투는 당연히 그보다는 어려웠지만 장소가 숲 인근이 아니었다면 할 만했을지도 모른다.
‘광역 마법이라는 게 장소를 가려야 하는 줄은 몰랐네.’
게임에서는 화염 마법에 따른 화재 같은 부작용을 거의 구현하지 않기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새틴은 게임과 현실의 차이를 새삼 느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 있으십니까?”
새틴의 행동을 오해한 에드워드가 물었다.
“아니, 잠깐 딴생각을…….”
손사래를 치며 둘러대던 새틴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계속 늑대 인간만 나온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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