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세 번째 휴식을 할 때 마부가 말하길 해가 지기 전에 미들랜드에 도착할 것 같다고 했다. 어쩌면 그보다 더 빨리 도착할 수도 있고.
마부의 예상은 들어맞을 뻔했다. 미들랜드를 목전에 둔 채 늑대 인간과 맞닥뜨리지만 않았더라면.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마부가 오들오들 떨었다. 간밤에 묵은 마을에도 같은 괴물이 나타났던 걸 전혀 모르는 눈치라 새틴이 설명해 주었다.
“어제도 저 괴물이 나타났었어요. 늑대 울음소리 못 들으셨어요?”
“자다가 그런 소릴 듣긴 했는데, 그 소리가 그럼.”
마부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늑대 인간의 하울링 소리를 그저 먼 곳의 늑대가 우는 소리라고 치부했던 모양이다.
새틴은 넋을 놓은 마부의 어깨를 두드리고 마차 뒤편을 가리켰다.
“아무튼 위험하니 아저씨는 피해 계세요.”
새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케인이 타박했다.
“헛소리 말고 너부터 피해. 무슨 남 걱정을 하고 있어?”
“아직 괜찮잖아. 한 마리뿐이고, 어제도…….”
새틴은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길을 막고 서 있던 늑대 인간이 대뜸 고개를 쳐들더니 길게 울었다. 아우우우우! 해도 떨어지지 않은 밝은 시간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였다.
“저거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어제도 덤벼들기 전에 저렇게 하울링을 했다. 새틴의 합리적 의심에 케인은 동조하지 않고 짐짓 신경질을 부렸다.
“빨리 뒤로 가라니까?”
“케인, 누누이 말하지만.”
새틴이 적당히 좀 하라고 한마디 하려는데 리타가 일행을 돌아보며 물었다.
“저거 좀 이상하지 않아?”
리타의 표정이 심각했다. 하지만 새틴은 리타가 무얼 말하는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에드워드 역시 마찬가지인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가 말입니까?”
“저놈 이쪽을 안 보잖아.”
리타의 대답을 듣고서야 에드워드는 작게 탄성을 흘렸다. 새틴도 눈을 치떴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 나타난 늑대 인간은 내내 일행을 보고 있었다. 관찰을 하느라 그랬는지 아니면 공격할 타이밍을 찾느라 그랬는지는 모르나 아무튼 이쪽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하울링을 하려고 고개를 쳐들었을 때를 빼면.
반면 지금 나타난 늑대 인간은 하울링을 마치고도 다른 데를 보고 있었다. 그 점을 알고 나니 새틴은 괜히 찝찝해졌다.
‘저기 뭐가 있나?’
미들랜드까지 직선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양옆은 숲이었다. 낮은 언덕을 뒤덮은 숲은 꽤 우거져 아직 어두운 시간이 아닌데도 안이 보이지 않았다. 늑대 인간이 지금 그 안의 무엇을 주시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가만히 숲을 바라보던 케인이 혀를 차고 말했다.
“무리를 부르는 거네.”
별다른 근거를 대지 않았음에도 누구 한 사람 반박하지 않았다.
늑대는 무리 생활을 하는 짐승이고, 하울링은 늑대가 무리에게 정보를 전하는 행위다. 늑대 대가리를 달고 있는 늑대 인간이 늑대와 같은 습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어, 어, 어떻게 하면…….”
마부가 절망한 얼굴로 주저앉았다. 늑대 인간 무리가 몰려와 자신을 씹고 뜯고 맛보며 육질 품평회를 하는 상상이라도 했을까.
새틴도 내심 겁은 먹었지만 마부만큼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주인공 일행인데 설마 여기서 늑대 밥이 되겠어? 최종 보스를 만날 때까진 무사할 거야.’
애써 낙관적으로 생각하며 케인의 옆구리를 쳤다.
“왜.”
“내 검 좀 줘.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데 맨손으로 있을 순 없잖아.”
케인은 검을 내주지 않고 가만히 새틴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다른 때와 달리 케인이 바로 거절하지 않아서 새틴은 약간 희망을 품었다.
그러는 사이 숲에서 또 한 마리의 늑대 인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에 서 있던 놈과 완전히 똑같은 생김이었다. 뾰족한 귀, 가시처럼 비죽거리는 털, 커다란 발.
새로 나타난 늑대 인간을 관찰하던 새틴은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아이고…….”
숲의 어둠을 헤치고 계속해서 늑대 인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둘, 셋, 다섯, 여덟. 가장 처음에 일행을 가로막은 놈을 포함하면 총 아홉. 머릿수가 이쪽의 두 배를 넘었다. 이쪽에 제대로 된 전력이 리타와 에드워드, 케인뿐이란 점을 생각하면 사실상 세 배.
“야, 빨리 검 줘.”
새틴은 마음이 다급해져 케인을 닦달했다. 케인도 더 뻗대지 않고 검을 내줬다. 물론 주의를 주는 것은 잊지 않았다.
“앞으로 절대 나오지 마. 저 영감탱이하고 마차 뒤에 붙어 있어. 혹시 위험하다 싶으면 저 영감탱이를 확.”
“미친놈아, 그만 말해.”
케인이 무서운 소리를 하기 전에 새틴은 황급히 말을 잘랐다. 다행히 마부는 늑대 인간에게 정신이 팔려 케인의 못된 말을 듣지 못한 기색이었다.
“아저씨, 일어나세요. 어서 피해야죠.”
새틴은 마부를 부축해 일으켰다. 마부는 비척거리며 새틴을 따라 몸을 피하다 “내 말!” 하더니 허겁지겁 말의 고삐를 마차에서 분리했다. 말들은 겁을 먹었는지 연신 이를 드러내며 마부를 쫓아왔다.
“조금만 더 서둘렀으면, 이런 일은.”
마차 뒤에 몸을 숨긴 후 마부는 말의 기다란 얼굴에 뺨을 비비며 훌쩍훌쩍 울었다. 무어라 기도문을 읊기도 했다. 아홉 마리의 늑대 인간을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늑대 인간들의 흉흉한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마부처럼 생각할 것이다. 새틴은 어설프게 마부를 위로하는 대신 검이나 뽑았다. 어떻게 쥐어야 위협적일지 골똘히 생각하며 자세를 취했다.
마차의 앞쪽에서는 진짜 전투 준비가 한창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어제처럼 태워 버리자. 어때?”
리타의 제안에 케인은 퉁명스레 대꾸했다.
“좋은 생각이네. 저 숲이 깡그리 타 버려도 된다면 말이야.”
“그 정도는 조절할 수 있잖아. 숲이 안 타게 쟤네만 태우면 되지.”
“내가 조절을 하면 뭐 해. 저것들이 불을 달고 숲으로 달아나면 끝인데.”
“아.”
케인이 쓰는 불 마법은 문외한인 새틴이 보기에도 굉장하지만 만능은 아닌 모양이다.
“그럼 숲 앞에 벽을 세우면 어떻습니까. 그러면 저놈들이 숲으로 달아나지 못할 겁니다.”
에드워드의 의견은 그럴듯했다. 그러나 과제는 늑대 인간이 숲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니다. 케인이 하하 웃으며 대꾸했다.
“그것참 좋은 생각이군. 멋진 검투장이 생길 테니 그 안에서 한 사람당 세 마리만 잡으면 되겠어.”
누가 들어도 비꼬는 어조였다.
“야, 그렇게 삐딱한 말만 할 거면 네가 계획을 세우든가.”
리타가 성을 내자 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케인이 너무 태연히 응해서 새틴은 케인에게 무언가 대단한 생각이 있는 줄 알았다. 아마 리타와 에드워드도 그리 생각했으리라.
케인은 설명도 하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아홉 마리의 늑대 인간은 길을 막고 서 있었는데 별다른 전략은 없어 보였다. 대열이 중구난방이다.
‘다 해치울 필요는 없지. 일단 이 상황을 벗어나면, 미들랜드에 도움을 청할 수 있으니까.’
새틴이 나름대로 효율적인 방법을 생각하는 사이 케인이 마법을 썼다. 케인의 주위로 퍼지는 마력을 보며 꽤나 큰 마법을 쓰려는 모양이라고 새틴은 짐작했다.
‘벽을 둥글게 만들 수 있다면…….’
새틴의 생각을 비웃듯 시뻘건 불꽃의 벽이 직선으로 뻗어져 나갔다. 늑대 인간들이 혼비백산해서 옆으로 흩어졌다. 불꽃에 휘말린 개체는 한 마리도 없었다.
“야, 빗나갔잖아!”
리타가 외쳤다. 새틴도 케인이 실수한 줄 알았다.
그런데 불꽃 벽이 멈추지 않았다. 늑대 인간들을 지나치고 직선의 도로를 계속해서 달리더니 끝내는 미들랜드의 성벽에 닿았다.
케인의 의도를 알아차린 새틴은 입을 벌렸다.
‘아니, 이런 식으로 도움을 청하자는 건 아니었는데.’
다소 과격하긴 했으나 케인의 의도는 통했다. 미들랜드 성문이 열리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뛰어나왔다. 아직 멀어서 깨알처럼 보이지만 아마도 병사들일 테다. 말을 타고 달려오는 사람도 있었다.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리타와 에드워드에게 케인이 산뜻하게 웃어 보였다.
“이제 사람들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되겠네.”
“그렇다고 불을, 어우, 저거 어떡해…….”
리타가 말을 마치지 못하고 이마를 짚었다.
성벽의 불을 끄느라 정신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기서도 보였다. 다행히 큰불이 아니라 금방 잡힐 듯하지만 그렇다 한들 성벽을 지키던 병사들에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어쨌든 한시름 덜었다. 방화죄로 미들랜드 유치장에 잠시 갇히는 편이 늑대 인간에게 잡아먹히느니보단 나았다.
미들랜드 병사들은 고의 방화의 책임을 묻고 싶다면 그 전에 늑대 인간 토벌을 도와야 한다. 이는 미들랜드를 지키는 행위이기도 했다. 여기 있는 늑대 인간들이 향후에 미들랜드 쪽으로 진격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으니.
“일단 한두 마리 정도 줄여 둘까, 그럼?”
간신히 이성을 찾은 리타가 불화살을 만들며 호기롭게 말했다. 그 옆에서 케인은 다시 불꽃을 일으키는 대신 검을 뽑았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깜빡 잊고 말 안 했는데, 좀 전에 그건 네가 한 짓이라고 해.”
“뭐?”
리타가 눈을 휘둥그레 떴지만 케인은 멋쩍어하지도 않고 뻔뻔하게 다시 말했다.
“내가 했다고 하면 치안청에 몇 날 며칠은 붙잡혀 있어야 할걸. 넌 바로 빠져나올 수 있잖아.”
케인은 리타의 신분을 모른다. 그러나 그동안의 언행으로 리타가 평범한 신분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짐작했을 터. 행여 평범한 신분이라 하더라도 돈이 넘쳐나니 난처한 상황을 빠져나오기가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고 추측 가능했다.
“떳떳한 행동은 아니지만 그편이 효율적이긴 하겠군요.”
에드워드마저 케인에게 동조하자 리타는 분한 듯 인상을 썼다. 그러나 더 나은 방법이 없었기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빚으로 달아 둘 거야.”
“그냥 가든지. 새틴이 넣어 주는 사식이나 먹고 지내지 뭐.”
“참 나, 새틴이 너 따라서 남을 거 같아?”
“그럼 새틴이 시킨 일이라고 하면 되지. 같은 유치장에 갇히면 좋겠네.”
“야, 내가 언제…….”
마차 뒤에서 듣던 새틴은 황당해서 옆으로 뛰쳐나갔다. 케인이 곧바로 돌아보며 성을 냈다.
“나오지 말라니까!”
‘아니, 지금 화낼 사람이 누군데.’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