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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한 소설의 분위기가 위기-75화 (75/139)

75화

“예. 그때 구조된 아이 중에 데인이란 아이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데인이 아니라 케인이었던 거 같거든요. 케인 씨가 그때 죽은 흑마법사의 제자입니까?”

에드워드는 진지한 표정이었지만 새틴은 고개를 숙여 버렸다.

‘아, 에드워드 완전히 헛다리 짚었네.’

다행이라 생각했더니 맥이 풀려 새틴은 주저앉았다. 그 모습이 수상해 보일까 봐 곧바로 다리를 굽혔다 펴며 운동하는 시늉을 했다. 하나 둘, 하나 둘.

케인이 바로 대답하지 않으니 에드워드의 표정이 더 심각해졌다.

“혹시 마왕을 소환하려던 것도 스승의 복수 때문입니까?”

“스승의 복수?”

코웃음 친 케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네 추측은 틀렸어.”

“어떤 추측이 말입니까?”

“전부.”

에드워드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어렸다. 적어도 한두 개는 맞을 줄 알았을까. 케인은 한쪽 입꼬리만 올리고서 지적했다.

“난 스승이 없어. 내가 쓰는 마법은 훔친 거야.”

“예?”

“그 미친 늙은이의 연구를 훔친 거라고. 구조 요청을 할 때 그걸 증거물로 넣었지.”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눈을 끔벅이던 에드워드의 눈이 커졌다.

“……구조 요청을 보낸 사람이 케인 씨였습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나 혼자는 아니었지. 애초에 새틴이 제안한 일이니까. 우리는 미친 마법사에게 속은 아이들이 여럿 있으니 구하러 와 달라고 적었어.”

에드워드의 얼굴이 하얘졌다. 덩달아 새틴도 당황했다.

‘뭐야, 새틴이 그런 짓도 했어?’

리타와 에드워드가 소설의 묘사와 완전히 같지 않듯 원래의 새틴도 소설의 캐릭터와 다른 점이 있었을지 모른단 생각은 했다.

한데 지금 케인이 한 이야기가 진짜라면 그저 좀 다른 게 아니다. 대전제가 달라져 버린다.

스승의 복수를 결심하고 실행하는 제자. 흑마법사도 그의 제자도 주연은 아니지만 이들은 아주 중요한 인물들이다. 이야기의 시작 자체가 흑마법사의 죽음에서 시작하니까. 묘사되지 않더라도 두 사람의 유대는 이야기의 기반이 된다. 그런데 새틴이 흑마법사를 배신했다면, 둘 사이에 유대가 없었다는 뜻이 된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대체.’

혼란에 빠진 새틴은 다리 운동도 잊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 케인이 손을 뻗어 무심코 잡고 일어났다. 그 순간 문득 알아차렸다.

‘케인이 가져갔구나.’

스승을 향했어야 하는 유대가 케인에게 향했다.

새틴은 그저 단 한 번 불길 속에서 케인을 구한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유대가 있었다. 지금의 새틴으로서는 짐작하지 못할 이야기가 둘 사이에 존재했다.

의지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느니, 중요한 순간엔 입을 다문다느니. 케인이 새틴에 대해 한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 케인은 이 세계의 어떤 누구보다 새틴을 믿었다. 아니, 새틴만을 믿었다.

새틴이 멍하니 있는데도 케인은 왜 그러냐고 묻지 않았다. 에드워드에게 하던 얘기를 마저 했다.

“난 그때 신전 기사단이 우릴 구하러 올 줄 알았어. 주제 파악을 못 했지. 부랑아들을 누가 나서서 구해 준다고.”

“그건…….”

에드워드가 무어라 말을 하려다 말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케인 씨는 그 일 때문에 치안청과 신전을 못 믿게 된 거군요.”

“너희가 뭘 하고 무슨 생각을 하든 나는 상관없어. 새틴을 위험하게 만들지만 않으면.”

에드워드는 잠깐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음흉하게 옛날이야기로 사람을 떠보는 짓도 하지 마.”

“알겠습니다. 제가 무례했습니다.”

“그럼 이제 꺼져.”

케인은 벌레 쫓는 농부처럼 에드워드를 내쫓았지만 어차피 곧 마차에 올라야 한다. 에드워드의 자리는 케인의 맞은편이고 싫어도 두 사람은 마주 보며 한참을 갈 예정이다.

대강 속마음을 다스린 새틴은 여태 붙잡혀 있던 손을 슬쩍 빼냈다. 그러자 케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새틴은 케인이 엉뚱한 소리를 하기 전에 말했다.

“에드워드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 마.”

“왜?”

“음, 모처럼 사귄 친구잖아.”

할 말이 없어서 둘러댔는데 케인이 코웃음을 쳤다.

“내 친구는 너뿐이야.”

“너무 확신을 가지고 사는 게 실은 안 좋을지도 몰라. 만약 믿어 왔던 게 사실이 아니라면…….”

케인에게 할 말이 아니었다. 새틴은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서 제 발을 보았다.

“오늘따라 쓸데없는 소리를 하네.”

케인은 새틴의 진심 어린 조언을 귓등으로 듣고는 마차로 가 버렸다. 새틴은 덩그러니 남아 속으로 고백했다.

‘난 가짜란 말이야.’

∞ ∞ ∞

해가 떨어져 오늘의 이동은 끝이 났다. 묵어가기로 한 마을은 출발 전에 마부가 말한 대로 아주 작았다. 그래도 새틴이 살던 마을보다는 커서 간판 달린 어엿한 식당 정도는 있었다.

마부는 일찌감치 쉬러 가고 새틴 일행만 남아 식당으로 들어갔다.

요리를 주문한 후 리타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이 마을에 요즘 이상한 소문이 돈대.”

“신탁 얘기야?”

새틴이 물으니 리타가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의미심장한 표정은 사냥 놀이를 기대하는 육식 동물 같았다.

“아까 그 사람들한테 들었어.”

그 사람들이란 이 마을까지 함께 마차를 타고 온 두 명의 승객을 뜻했다. 종점인 미들랜드까지 가는 새틴 일행과 달리 그 사람들은 이 마을이 목적지였다. 원래 이 마을에 사는데 데이지랜드에 볼일이 있어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이 마을 뒤에 낮은 산이 있는데, 아이들이 나뭇가지를 꺾으러 들어갔다가 괴물을 봤다는 거야.”

“아이들이 장난을 친 건 아닙니까?”

에드워드가 의심스러워하자 리타가 눈을 가늘게 뜨고 씩 웃었다.

“처음엔 마을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대. 애들끼리 말을 맞춰서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고.”

그런 줄 알았다는 말은 사실 그렇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산 바로 아래에 사는 사람도 그 괴물을 봤대. 참고로 그 사람은 사십 대야. 어른이지.”

어른 중에도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있다. 하지만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건 사회성이 없다는 고백이나 매한가지이기에 새틴은 잠자코 이야기를 들었다. 흘끔 보니 케인도 다른 데를 보는 척하며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리타는 목소리를 깔고 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밤. 커튼을 치려고 창가로 다가갔는데 산기슭에 뭐가 서 있더래. 나무인 줄 알았는데 가만히 보니 아니었대. 머리에 뾰족한 귀가 솟아 있고, 눈은 고양이처럼 노랗게 빛나는 사람이었대.”

“그런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에드워드가 핀잔하자 리타는 퍽 소리가 나도록 에드워드의 팔뚝을 때렸다.

“아, 그러니까 괴물이라고 했잖아. 아무튼 그 사람이 본 괴물의 생김새가 아이들이 한 묘사랑 똑같았대. 같은 괴물을 본 거지.”

“손님들은 괴물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근처에 서 있던 종업원이 불쑥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억, 깜짝이야!”

내내 분위기를 잡고 있던 리타의 어깨가 툭 튀어 올랐다. 종업원이 멋쩍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끼어들어서.”

리타는 얼른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 아니에요. 더 아는 얘기가 있으신가 봐요?”

“얘기라기보다는.”

목덜미를 긁적이는 종업원의 표정은 약간 어두웠다.

“목격자가 이제 한둘이 아닙니다. 다들 괴물이 있다고 인정했어요. 무서워서 밤이면 외출도 안 합니다.”

“괴물이 사람을 습격한 적도 있어요?”

“지금까지는 없지만 앞으로도 그럴지는 모르지요.”

종업원이 한숨을 쉬었다. 리타가 상식적으로 조언했다.

“치안청에 도움을 청해 보지 그래요? 여기는 데이지랜드 관할이죠?”

“마을에 상주하는 경관이 있어서 얘기는 해 봤는데, 당장 피해가 없으니 도움을 받긴 어려울 거라더군요.”

리타와 종업원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새틴은 기분이 묘해졌다.

마을 사람들은 괴물의 정체를 모른다. 그럼에도 두려워한다. 그저 낙관적으로 생각하다가 예상이 틀렸을 때 입을 피해가 얼마나 클지 모르니 일단은 걱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괴물이 아주 강하고 사나워서, 그래서 이 마을 사람을 모두 죽이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까. 피해를 호소할 생존자가 없으니 그때도 치안청은 가만히 있을까.

요리가 다 되었는지 부엌에서 종업원을 불렀다. 종업원이 쓴웃음을 짓고 몸을 돌렸다.

“아무튼 손님들도 밤늦게 밖에 나가지 않으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지금까진 별일이 없었지만 또 모르니까요.”

새틴은 무심코 창밖을 보았다. 이미 어두웠다.

∞ ∞ ∞

식당을 나와 여관으로 향하며 리타는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괴물이 마을까지 들어오진 않나?”

“그런 일이 있었다면 아까 그분이 얘기를 했을 겁니다. 리타 씨, 그쪽 아닙니다.”

에드워드는 리타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려 할 때마다 주의를 주었다. 여러 차례 같은 주의가 반복됐다. 그동안 리타는 길을 헤맨 적이 없는데 오늘은 좀 이상했다.

‘괴물이 보고 싶어서 저러나?’

새틴은 딱히 괴물과 만나고 싶지 않았다. 괴물이라면 마왕성에서 충분히 봤다. 평생 이야기할 거리는 그 정도면 됐다. 처음 방문한 마을에서 괴물을 만났단 이야기까지 보탤 필요는 없었다.

“두 걸음.”

리타를 쳐다보느라 새틴의 걸음이 더뎌지자 케인이 들으란 듯 읊조렸다. 새틴은 반사적으로 케인의 옆으로 붙다가 혀를 찼다.

‘얘는 또 왜 이러지?’

리타만큼은 아니지만 아까부터 케인도 조금 이상했다. 식당을 나오고부터 줄곧 긴장한 기색이었다.

새틴은 슬쩍 물었다.

“너도 괴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괴물인지는 몰라도 뭔가 이상한 게 있는 건 사실이겠지.”

“위험할까?”

“그걸 어떻게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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