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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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성 사태 때 무료로 대여해 주었던 성물이 이번엔 염가에 나와 있었다. 더불어 그보다 조금 비싼 값에 나온 성물도 있었는데 설명에 따르면 부정한 것을 봉인할 수 있다고 한다. 싼 것과 외견상 차이는 거의 없다. 작고 투박한 날개가 두 짝 달렸을 뿐이다.
‘정말 돈벌이에 진심이구나.’
새틴은 속으로 혀를 찼다.
리타는 고민 끝에 비싼 것을 샀다. 그리고 걱정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편이 좋겠다는 이유로 성물을 새틴에게 맡겼다.
신전을 나오며 리타가 말했다.
“마신이 어떤 존재인지는 아무도 모르겠지?”
“무슨 말이야?”
새틴이 쳐다보자 리타가 턱을 문지르며 진지하게 의문을 설명했다.
“뭘 바라고 어디서 나타나는지. 그리고 마법을 쓰는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힘을 쓰는지. 혼자인지 군대가 있는지. 아무것도 알려진 바가 없잖아.”
“그렇지.”
마신이라는 단어조차 사람들은 어색해했다. 새틴이야 판타지 소설을 많이 봐서 익숙할 뿐이다.
“그래도 대신전은 신탁을 직접 받았으니 뭐라도 알려나?”
“그럴 가능성이 크지.”
“대신전이 뭘 알면 다른 신전들도 들은 게 있을 수도 있겠네?”
“그렇겠지?”
새틴이 동의하자 리타는 자신이 추측한 바를 말했다.
“어쩌면 마신은 실체가 없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죽지 않는 존재라거나.”
“왜 그렇게 생각해?”
“신전이 굳이 봉인이 가능한 성물을 팔잖아. 저놈들이 순 장사꾼 같아도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거든.”
“확실히 그럴듯하네.”
새틴과 리타가 마신에 관한 이런저런 추측을 하는 동안 케인은 말이 없었다. 아까부터 무언가 곰곰이 생각 중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새틴이 물으니 케인은 질문을 기다렸다는 양 대답했다.
“좀 이상해서.”
“뭐가?”
“신전 분위기가 좀 이상했잖아.”
케인의 표정이 심각했다.
신전의 분위기가 평소 어떤지 새틴은 모른다. 첫 방문 때는 신전이 은행 같다고 생각했고, 두 번째 방문 때는 고객 유치에 혈안인 레드오션 업장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 일 없을 때의 신전은 어떻기에 이상했다는 걸까.
새틴은 곧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케인이라고 신전의 평소 분위기를 알 턱이 없었다.
‘얘도 신전은 그때 처음 가지 않았나?’
의문을 담은 시선으로 쳐다보니 도리어 케인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신관들이 계속 쳐다본다는 생각 안 했어?”
“쳐다본다고?”
새틴은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껌벅였다. 리타를 보니 비슷한 표정이다. 케인이 한숨을 쉬었다.
“지나가던 신관들이 전부 우리를 보고 갔어.”
“그냥 손님이 우리뿐이라 그랬던 거 아냐?”
새틴은 되물으면서 기억을 되짚었다. 전에 성물을 받으러 갔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신전이 한산했다. 기도 창구는 북적였지만 성물 판매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마 무료 제공이 아니라서겠지.’
마왕성 사태 때처럼 집집마다 환자가 있지도 않고 말이다.
계산원을 맡은 신관은 하품을 하다가 새틴 일행을 맞았다. 별다른 특이 사항은 눈에 띄지 않았다. 리타도 마찬가지인지 고개를 연방 갸웃거렸다.
케인이 작게 혀를 찼다.
“둘 다 둔해 빠졌네. 밖에서 안을 보고 간 신관이 다섯 명이나 돼. 들어오지도 않으면서 우리를 보고 갔어. 이상하지 않아?”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손님이 있으니까 돌아간 건 아니고?”
아무리 장사에 진심이라 한들 진짜 장사꾼들은 아니다. 방문자를 앞에 두고 잡담을 나누긴 어려웠을 테다.
케인은 새틴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아니야. 내가 그 정도도 구분을 못 할까 봐.”
케인의 표정이 너무 심각하니 새틴은 덩달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신관들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었을까.
삽시간에 무거워진 분위기를 리타가 깨뜨렸다. 리타는 어깨를 으쓱이며 낙관적으로 말했다.
“찾는 사람이라도 있었나 보지. 아무튼 별일 없었으니 됐잖아.”
“지금은 그렇지.”
부정적인 케인의 대꾸에도 리타는 민망해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해결하면 되지. 당장 알 수 없는 일로 기운 빼지 말자.”
“정말 속 편해서 좋겠네.”
케인이 빈정거렸지만 리타는 못 들은 체했다.
“일단 클로버랜드를 떠나기 전에 무기부터 사자!”
∞ ∞ ∞
순풍 부는 바다의 돛단배처럼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빼먹은 거 없지?”
리타의 물음에 새틴은 잠깐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모험가 연합에 들러 케인이 일을 못 하게 됐다고 알렸고, 이웃 사람에게는 집이 비어 있는 동안 텃밭을 봐 달라고 부탁했다. 무기도 정비했고, 그 외 여정에 필요한 물건들도 빠짐없이 챙겼다.
‘여행이라도 가는 것 같네.’
일단 일행은 북쪽으로 향할 예정이다. 에드워드가 전에 북문으로 떠났으니 그리로 가는 편이 만나기 쉬울 거란 계산이었다. 그다음에 어디로 갈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미리 섭외한 마차를 타고 북문을 나설 때 케인이 툭 물었다.
“그놈이 일행에 들어오지 않으면 어쩔 셈이지?”
그놈이란 에드워드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야기의 전개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에드워드는 리타를 따라올 가능성이 컸다. 에드워드는 리타를 좋아하는 듯 보였으니.
하지만 만약의 가능성도 생각해야 했다. 에드워드는 신관이라 보통 사람처럼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놈이 빠진다면 우리도 빠질 거야. 위험한 건 질색이니까.”
케인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케인은 우정을 기반으로 한 접촉을 하고 싶다는 욕망보다 새틴의 안전을 우선했다. 새틴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으름장을 놓는 케인을 보며 리타는 씩 웃었다. 전혀 걱정하지 않는 기색이다.
“그럴 일 없으니 쓸데없는 염려 하지 마.”
지나치리만치 자신 있는 태도를 보니 새틴은 좀 궁금해졌다.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걸까.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미리 얘기를 해 둔 거야?”
“아니, 그건 아닌데 그냥 알아.”
새틴이 이해하지 못하고 쳐다보자 리타가 히죽 웃으며 자랑했다.
“어릴 때부터 될 것 같다고 생각한 일이 안 된 적이 없었거든.”
“……아, 그래.”
너무 터무니없는 근거라 새틴은 성의껏 반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리타는 섭섭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즐거워했다.
“분명 내 말대로 될 테니까 두고 봐.”
케인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창밖으로 눈을 돌려 버렸다. 새틴도 겉으로는 헛웃음을 짓고 말았지만 어쩌면 리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저 성격을 보면 말이지.’
높은 신분으로 태어난 데다 드물다는 마법사의 자질까지 타고났다. 외모는 번듯하고 성격도 모난 데 없이 시원스럽다. 별다른 역경 없이 살아온 티가 났다. 물론 나름대로 고뇌도 했겠지만 실패나 좌절의 경험은 아마 없을 거다.
어쩌면 리타는 그런 삶을 살도록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한들 결국 이 세계의 시작은 누나가 쓴 이야기. 케인이 어린 시절 역경을 겪도록 정해져 있었듯 리타는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도록 정해져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구태여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좀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하나하나 다 질시해 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럴 시간에 다음을 생각하는 편이 낫지.
정말로 이 세계에 정해진 이야기가 있고 강제력이 존재한다고 치면, 마신 토벌은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그 후다.
이야기의 가장 큰 특징이 무언가. 끝이 있다는 거다. 그때가 오면 새틴은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해야만 한다.
‘대단한 결정을 할 일이야 있겠냐마는.’
할아버지와 마을에 살 때처럼 하루 세 끼 고민이나 하고 살겠지.
그리 생각하려 해도 미미한 불안이 남았다. 정말 그럴까?
“새틴, 졸리면 한숨 자.”
잠자코 있으니 조는 줄 알았는지 케인이 제 허벅지를 두드렸다. 새틴은 별생각 없이 몸을 기울이려다 멈칫했다. 리타가 입을 세모 모양으로 벌리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새틴은 슬그머니 허리를 폈다.
“……괜찮아. 안 졸려.”
새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케인이 작게 혀를 찼다.
“칫.”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새틴만이 아니었다. 리타가 눈까지 세모 모양으로 만들며 고개를 돌렸다. 입 모양이 찰거머리라고 말하는 듯했다.
∞ ∞ ∞
리타의 낙관적인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클로버랜드를 나와 작은 마을을 하나 거친 후 도착한 도시에서 에드워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을 발견한 에드워드가 다가오며 핀잔했다.
“갈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니, 행여 무슨 일이 생겨 못 오게 되면 어쩌려고 그런 말을 남깁니까?”
인상을 쓰고 말하는데도 리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동안 잘 지냈어? 계속 여기 있던 거야?”
“막 떠나려던 차에 모험가 연합의 사람을 만났습니다. 하마터면 만나지 못할 뻔했다고요.”
“만났으면 됐지.”
도착한 도시의 이름은 데이지랜드. 놀이동산 이름 같다고 새틴은 내심 생각했지만 말하진 않았다. 클로버랜드나 데이지랜드나 도긴개긴이었다.
‘누나가 작명 센스는 없었구나.’
며칠이나마 먼저 와 있던 에드워드가 앞장섰다.
“일단 제가 묵는 여관으로 가지요.”
“맛있는 식당도 알아 뒀어?”
리타가 묻는 말에 에드워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전 순례 중입니다. 식도락 여행 중이 아니라요.”
“순례 중에 맛있는 거 먹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작게 한숨을 쉬고 에드워드가 대답했다.
“……여관 근처에 괜찮은 식당이 있습니다.”
“잘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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