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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한 소설의 분위기가 위기-65화 (65/139)

65화

새틴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케인을 쳐다보았다. 혹시 뭔가 알까 싶어서.

새틴의 의문을 알아챈 케인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둘이 내내 속닥거리던데.”

“그게 다야? 누가 보면 사귀는 줄 알겠는데…….”

새틴이 의문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으니 케인이 심드렁하게 덧붙여 말했다.

“꿈 얘기를 하더라고.”

“……무슨 꿈?”

“어제 골렘 해치우고 나서 꾼 꿈 말이야. 둘이 교차 검증하면서 신났던데.”

“그랬구나…….”

뭐라 해야 할지 몰라 새틴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케인은 그 주제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새틴의 몸 상태에 관해서나 캐물었다.

“근육통은 없어? 너 왜 그렇게 몸을 웅크리고 자?”

“아, 내가 그랬어?”

“불편한 데 있으면 말해. 주물러 줄 테니까.”

“아니, 괜찮아. 진짜 괜찮아.”

새틴은 멋쩍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무래도 케인은 제가 꾼 꿈이 새틴의 기억 일부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하긴. 얘는 내가 기억 상실인 줄 아니까.’

새틴이 불타는 학교의 꿈을 꿨다고 말하지 않으면 케인은 아무 의심도 하지 않을 거다. 자기가 내내 지켜 준 사람이 사실은 일면식도 없는 이세계인, 심지어 그리 좋은 사람도 아니라 하면 얼마나 충격을 받을까.

다른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를 바꾸고 싶은데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때마침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마차가 온 모양이었다. 새틴은 그쪽을 보는 척하며 표정을 감췄다.

리타가 입을 쩍 벌리고 하품하다 목을 쭉 뺐다. 마차가 반가워 죽겠는 듯 표정이 밝아졌다.

“어휴, 마차에서 좀 자야겠어. 이게 무슨 헛고생이람.”

“여기 오자고 한 사람은 당신입니다.”

“난 계속 서두르자고 했어.”

“제때 오려면 좀 서두른 걸로는 어차피 안 됐을 겁니다.”

리타와 에드워드가 아옹다옹하는 동안 마차 대기 줄이 쑥쑥 줄었다. 채 삼십 분이 되지 않아 차례가 왔다. 기다리는 사람이 아직 많아 빽빽하게 앉았지만 불만을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차가 출발하자마자 실신하듯 잠든 리타를 본 케인이 새틴에게도 자라고 권했다. 새틴은 알겠다 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결국 클로버랜드에 이를 때까지 뜬눈이었다.

‘정말 안개가 깨끗이 없어졌네.’

마차가 클로버랜드 남문을 지날 때는 해가 완전히 뜬 후였다. 잔뜩 모여 가판하던 상인들은 온데간데없었으나 대신 다른 사람들로 붐볐다. 여관에서 나온 호객꾼들이 소리를 치며 돌아다녔다.

“뜨거운 목욕물 있습니다!”

“아침 식사 됩니다!”

“저렴한 방 있어요!”

마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저마다 하품을 하며 호객꾼을 따라갔다. 마왕 토벌에 나섰던 사람 대부분이 외지인인 까닭이었다.

마찬가지로 외지인인 새틴 일행도 호객꾼 한 명을 잡았다. “클로버랜드에서 제일 호화로운 여관입니다!” 하고 외치던 호객꾼이었다. 용사 지망생 대부분이 포상금을 노리는 어중이떠중이다 보니 아무도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있었다.

여관에 도착한 리타는 어째선지 평소와 다르게 뜸을 들이다 물었다.

“다 일 인실이면 되지?”

리타의 시선은 에드워드에게 향해 있었지만 대답은 케인이 했다.

“이 인실.”

“……와, 찰거머리.”

그리 말하면서도 리타는 방을 세 개 빌렸다. 일 인실 둘, 이 인실 하나. 계단에서 저마다의 객실로 흩어지기 전에 리타가 시간을 확인했다. 여덟 시 조금 전이다.

“그럼 방에서 한숨씩 자고 두 시에 다시 모일까? 열두 시는 너무 이르잖아. 어때?”

리타는 에드워드와 새틴을 보며 물었다. 어차피 케인은 새틴의 의견을 따를 테니 굳이 의견을 듣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을까. 케인도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새틴이 고개를 끄덕이고 연이어 에드워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따 보자고.”

리타는 말만 그렇게 하고 계단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왜인지 에드워드도 그대로 있었다. 새틴은 복잡한 기분으로 먼저 계단을 올랐다. 케인이 바로 옆에서 따라오며 중얼거렸다.

“눈 맞았나 보네.”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내가 뭐.”

케인의 표정이 무구하다. 리타와 에드워드가 사귀든 싸우든 정말 저와는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눈치다. 새틴은 어쩐지 맥이 빠졌다.

“아냐, 아무것도…….”

∞ ∞ ∞

새틴은 뜨거운 물로 몸을 씻고 오더니 밀가루 반죽처럼 침대 위로 퍼졌다. 마차를 기다리며 두어 시간 쪽잠을 잔 걸로는 전혀 피로가 풀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 먼저 잘게…….”

케인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새틴은 잠에 빠졌다.

잠시 새틴의 자는 모습을 지켜보던 케인도 잘 준비를 했다. 딱히 피로는 느껴지지 않지만 꼬박 하루가 넘도록 깨어 있어서인지 머리가 멍했다.

몸을 씻고 돌아와 커튼을 치고 침대에 누웠다.

‘잠자는 동안에도 마법을 쓸 수 있으면 좋겠네.’

그럼 잠든 사이 새틴이 혼자 어디로 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케인이 아는 마법은 모두 미친 늙은이가 남긴 것이다. 연구 기록이라 생각해 훔친 것이 알고 보니 흑마법사의 계보였던 덕에 얼결에 후계자가 되었다.

정신을 조종하는 마법, 마력을 보게 하는 마법, 죽은 자를 3초 정도 일으키는 마법. 그리고 제물을 바쳐 마왕을 소환하는 마법.

불 마법 하나를 빼고는 죄다 쓸모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제대로 된 마법인지도 의문이네.’

아까 골렘을 상대하며 급한 대로 정신을 조종하는 마법을 써 보았는데 골렘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걸로 끝이었다. 전혀 조종되지 않았다.

무능하고 멍청한 늙은이. 흑마법은 집어치우고 생활에 도움이 되는 마법이나 연구할 것이지.

이를테면 이런 것.

‘공간을 분리하는 마법이 있으면 좋겠어.’

지금 이 방을 세상과 분리해서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고, 또한 아무도 나갈 수 없게 한다면. 그럼 마음 편히 잠들어도 될 텐데.

케인은 새틴이 누운 침대를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그러나 깊은 잠에 들지는 못했다.

케인은 지난 기억의 편린들을 꿈으로 꾸었다. 이미 불타 사라진 학교에서 새틴이 잠든 모습을 지켜보았고, 복수를 되뇌며 비열한 마법사의 뒤를 쫓았고, 어둑한 공터에서 공허한 주문을 읊조렸다.

잠들었다 깨어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던 케인은 두 시가 거의 다 되었을 때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새틴이 그대로 있는지 확인했다. 새틴은 처음 누운 자세 그대로 꼼짝 않고 잠들어 있었다.

케인은 새틴을 굳이 깨우지 않았다. 두 시에 만나자던 리타의 말은 잊지 않았으나 알 게 무언가. 리타가 그리 말할 때 케인은 대답도 안 했는데.

어차피 이제 리타나 에드워드와 만날 이유도 없다. 마왕도 없고, 안개가 걷혔으니 봉쇄령도 곧 풀릴 터. 저마다 갈 길을 갈 때다. 물론 케인은 새틴을 따라갈 예정이다.

침대에 앉아 가만히 새틴의 자는 얼굴을 보고 있으니 문득 궁금해졌다.

‘기억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 걸까?’

정신이란 미지의 영역이다. 새틴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을 수 있다고, 혹은 절대 찾을 수 없다고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나는 새틴이 나를 기억하기를 바라나?’

기억이 돌아온다면 새틴은 케인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케인은 새틴이 저와 같으리라고 호언장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새틴에게는 케인이 그저 한때 알던 사람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케인을 구한 일이 새틴에게 아무 일도 아니라면, 새틴은 지금 케인의 태도를 의아해하지 않을까.

‘함께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뿐일지도 모르지.’

그리 생각하면 새틴이 지금과 같은 상태로 있는 편이 케인에게는 좋은 일이다. 여태 새틴은 케인을 밀어내도 되는지 판단하지 못했다. 기억이 돌아오지 않는 한 케인은 계속 새틴의 옆에 있을 수 있다.

새틴이 안다면 야비하다고 욕할 만한 생각이지만 어차피 그럴 일은 없다.

케인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두 시가 되었다. 케인은 새틴을 깨우지 않았는데 난데없이 들려온 소음에 새틴이 눈을 떠 버렸다.

“으음…….”

눈을 껌벅이며 일어난 새틴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케인은 작게 혀를 차며 창가로 다가갔다. 소음은 바깥에서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새틴이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케인은 창문을 열고 소음의 정체를 확인했다. 큰길에 사람이 잔뜩 몰려 있었다.

“밖에서 뭘 하는 모양이야.”

“뭐를…….”

“기념 행진 같은데, 아.”

치안청 제복을 입은 악대의 뒤를 따르는 경관 몇이 커다란 팻말을 들고 있다. <클로버랜드의 평화!>니 <마왕을 물리치다!> 같은 문구를 보니 무슨 행진인지 짐작이 갔다.

“마왕 토벌 기념 행진인 모양이야.”

“그런 걸 해?”

궁금했는지 새틴이 구물구물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눈을 비비며 창가로 다가오더니 목을 쭉 빼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와, 거창하네…….”

케인은 새틴의 눌린 뒷머리를 흘끔 보고 다시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보아하니 신전까지 행진이 이어질 듯했다. 사람들이 길에 함부로 뛰어들지 못하도록 경관들이 통제 중이었다.

‘별것도 아니었던 일을 이렇게 크게 떠드는 걸 보니 선전에 써먹을 모양이군.’

치안청이 실제로 한 일이라곤 포상금을 걸고 객기 넘치는 모험가들을 마왕성 앞까지 배달한 것뿐이다. 하지만 내일 아침쯤 되면 치안청이 마왕 출몰을 진작 예견하고 미리 용사를 육성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릴지도 모른다.

진실을 아는 용사들도 적당히 돈을 주면 입을 맞춰 줄 거다. 애초에 포상금 때문에 마왕성으로 향했던 사람들이다. 더 많은 돈을 주겠다 하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저 사람들이 마왕을 잡았나 봐.”

멀어서 잘 보이지 않는지 새틴이 눈을 가늘게 뜨고 행렬의 가운데를 가리켰다. 경관들과 달리 화려하게 차려입은 다섯 명의 남녀가 구경 나온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새틴보다 눈이 좋은 케인은 그중 한 명의 얼굴을 알아봤다.

“어제 그 광대네.”

“광대?”

고개를 갸우뚱하며 새틴이 케인을 올려다봤다.

“어제 리타하고 부딪친 사람 말이야.”

“아, 그 사람…….”

기억이 났는지 새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인지 표정이 묘하다.

“왜?”

“아니, 그냥. 엉뚱한 생각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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