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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한 소설의 분위기가 위기-62화 (62/139)

62화

감탄하는 사람은 새틴만이 아니었다. 반대편에서 리타가 “거긴 전망이 어때!” 하고 농담 섞인 감탄을 했다.

골렘은 촉각이 예민한 편은 아닌지 칼을 뽑은 후 별다른 움직임을 취하지 않았다. 간혹 상체를 좌우로 움직일 뿐이다. 목덜미에 케인이 매달려 있는 줄은 까맣게 모르는 기색이다.

케인은 한 손으로 매달린 채 나머지 손으로 검을 뽑았다. 이번엔 제 것이었다.

그때였다. 우워어어어! 골렘이 돌연 소리를 지르며 양팔을 휘둘렀다. 자갈이 흩날리고 케인의 몸도 위태롭게 흔들렸다.

‘케인의 존재를 눈치챘나?’

새틴은 저도 모르게 앞으로 뛰어나가려다 멈칫했다. 케인의 주변으로 희미한 빛이 모여들었다. 마법이지만, 뱀을 상대할 때와는 달랐다. 불길이 치솟지 않았다.

‘저건 무슨 마법이야?’

빛이 골렘을 감싸고 스며들었다. 그러자 난동을 부리던 골렘이 우뚝 멈췄다. 아주 찰나였으나 케인에게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케인이 아까 내지르지 못한 검을 다시 치켜들었다.

‘검이 들어갈까?’

새틴은 초조함에 발을 동동 굴렀다.

칼로 돌을 자르는 건 만화책에서나 봤다. 심지어 지금 케인이 쥔 검은 전설의 검도 아니고 그냥 염가 판매 롱소드에 불과하다.

이제 와 걱정을 해 봐야 아무 소용 없다. 케인이 검을 내질렀다.

챙그랑! 놀랍게도 바위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새틴은 소리보다는 보이는 광경에 더 놀랐다. 골렘의 머리가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 잘못됐어.’

움직임을 멈춘 골렘의 머리에서 거뭇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넓은 홀이 순식간에 검은 구름으로 뒤덮였다.

새틴은 그 검은 구름에 뒤섞인 마력을 보았다. 마력은 일순간 모습을 보이고 이내 사라졌다.

스며들었을까? 어디로?

“새틴!”

케인이 새틴을 부르며 황급히 골렘의 어깨에서 뛰어내렸다.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새틴은 뭐라 할 수 없었다.

다음 순간 새틴은 다른 장소에 있었다.

4

코가 찡해지는 냄새에 케인은 반사적으로 코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뭐지?’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몸이 움직였다. 그리고 느껴진 기묘한 위화감. 꼭 팔다리가 남의 것 같았다.

‘꿈?’

꿈을 꾸는 중일까. 언제 잠이 들었지.

케인은 멋대로 계단을 내려가는 몸을 내버려 둔 채 잠들기 직전의 일을 생각했다. 평소 이런 식의 꿈을 꾸는 편이 아니었는데 지금 상황은 분명히 이상했다.

곧 케인은 기억해 냈다. 케인은 잠든 적이 없었다.

‘골렘 머리를 부수니까 연기가 나왔지.’

지금 생각하니 그 연기는 클로버랜드를 둘러싼 안개와 비슷했다. 확신이야 할 수 없지만 만약 지금 케인이 잠들어 있다면, 그래서 꿈을 꾸는 거라면 연기와 안개는 비슷한 기능을 한다는 뜻이다.

‘새틴도 잠들어 있을까.’

새틴이 무방비하게 홀에 쓰러져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마음이 초조해졌다.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해.’

그러나 지금 케인은 손 하나 까딱이지 못하는 상태다. 케인이 갇힌 몸뚱이는 어둑한 계단을 내려가 이제 창 하나 없는 어느 공간으로 들어섰다.

‘여긴 뭐야.’

예전에 미친 늙은이의 학교 지하에 있던 참회실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코를 쏘는 낯선 냄새에도 퀴퀴한 곰팡이 냄새는 완전히 가려지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천장에 등이 매달려 있다는 것 정도다. 물방울 모양의 등은 주황색으로 빛났는데 그 빛은 밝긴 해도 멀리까지 비추지는 않았다. 둥그렇게 빛이 닿는 곳 외에는 어둑했다. 그 안에 무언가 숨어 있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케인은 주위를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지만 눈동자를 굴리는 일마저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이내 포기하고 몸의 주인이 무얼 하는지 지켜봤다.

“아버지.”

입이 멋대로 움직이더니 말했다. 낯선 언어였지만 케인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몸 안에 들어와 있어서일까.

빛이 닿지 않는 안쪽 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람이 있었어.’

이내 끼익, 하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낡은 의자에 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킨 듯했다. 그 사람은 서서히 다가왔다. 케인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그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체격이 커.’

앞이 뚫린 신발을 신고 있었는데 발이 아주 컸다. 검은 바지 아래에 설핏 보이는 발목도 단단하다. 굳이 올려다보지 않아도 매우 덩치가 큰 사람이라 추측 가능했다.

‘아버지라더니 별로 닮진 않은 모양이지?’

눈앞의 남자에 비하면 케인이 빌린 몸은 아주 볼품없었다. 거울이 없으니 객관적으로 볼 방도가 없지만 적어도 아버지에 비해서는 그랬다. 꼼지락대는 손가락은 가늘고 손목에는 뼈가 불거졌다.

케인이 속으로 생김을 평가하는 동안 입술이 몇 번 달싹이더니 말했다.

“……식사하세요.”

“그래.”

남자는 짧게 대답하고 지나쳐 갔다. 터벅, 터벅. 계단을 오르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케인은 계속 바닥을 보아야 했다.

‘아버지가 맞나?’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가족이라. 한 번도 가족의 정을 느껴 본 적 없는 케인이 보기에도 이상한 관계다.

발소리가 사라진 후에야 케인은 고개를 들 수 있었다. 뒤따라 나가지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더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앉아 있던 의자가 보이고 그 옆에 철로 된 사각의 통이 있었다. 대충 짐작하기엔 수도 설비 같은데 처음 보는 모양이었다.

‘뭘 하려는 거지.’

몸은 척척 움직였다. 질긴 소재의 장갑을 끼고, 낯선 병을 선반에서 꺼냈다. 그리고 바닥에 물을 뿌렸다. 무얼 하려는지 이제 알겠다.

‘청소?’

꺼내 놓은 병을 열자 처음에 맡았던 그 냄새가 났다. 코를 찌르는 기묘한 냄새. 청소를 하는 데 쓰는 약품인지 바닥에 슬슬 뿌렸다. 고약한 냄새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다음으로는 선반 옆에 세워 둔 청소용 솔을 가져다 바닥을 문질렀다. 써억, 써억, 써억. 고요한 지하실 안에서 한참 동안 솔질하는 소리만 들렸다.

슬슬 지루해질 때쯤, 케인은 무언가 발견했다. 빛이 들지 않아 어둑한 쪽에 무언가 매달려 있었다.

‘방금 뭐였지?’

시선이 그쪽에 좀 더 오래 머무른다면 확인할 수 있을 텐데 몸은 바닥을 닦는 데만 몰두해 도통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쪽을 청소할 차례가 되어서야 케인은 아까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갈고리였다. 갈고리 달린 로프가 천장에 걸려 있었다. 무슨 용도인지는 아직 짐작이 안 된다. 모양만 봐서는 도축장에서나 쓸 법한데. 다음 순간 그 추측은 조금 더 확실해졌다.

‘진짜 도축장인가?’

바닥이 시커멨다. 핏자국이다. 경사를 따라 배수로로 이어지는 핏자국은 몹시 짙어서 동물 한 마리를 잡았다고 해도 믿을 만했다.

“후…….”

몸이 한숨을 쉬더니 수도에서 물을 받아 와 바닥에 뿌렸다. 마른 피는 대번에 씻겨 나가지 않았다. 물을 충분히 뿌린 후 청소 약품까지 여러 번 뿌렸다. 다음은 다시 솔질. 써억, 써억, 써억.

그런데 도축을 구태여 지하에서 할 필요가 있나?

청소가 계속되는 동안 케인은 누구에게도 묻지 못할 의문을 품고 있었다.

바닥 청소가 끝난 후에야 몸은 허리를 폈다. 솔을 깨끗이 씻은 후 원래 있던 자리에 거꾸로 세워 두고, 장갑도 헹궈 집게로 매달았다. 청소 약품도 선반에 돌려놓았다.

그리고 손을 씻더니 세수를 했다.

‘이제 끝났나 보군.’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몸이 돌연 헛구역질을 했다.

“우욱…….”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여러 차례 입을 헹구고 몸을 일으켰다. 걸음이 무거웠다. 청소를 하는 동안은 멀쩡하더니 갑자기 지치기라도 했을까.

계단을 오르기 직전, 케인의 눈에 파란 통이 들어왔다. 지하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 한 명쯤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큼지막한 통의 용도는 겉만 봐서는 알 수 없었다.

‘쓰레기라도 들었나?’

케인의 궁금증은 곧 해소되었다. 몸이 그리로 다가가며 통 안의 내용물이 서서히 드러났다.

‘……이게 뭐야.’

낯선 재질에 낯선 모양이지만 그래도 바로 알아봤다. 사람의 옷과 신발이었다.

∞ ∞ ∞

새틴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꿨을 때처럼 파드득 몸을 떨며 깨어났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연기는 모두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뿐 아니다. 부서진 골렘의 잔해도, 보랏빛 화로도, 그림자가 일렁이는 벽과 바닥도 없었다.

“여기가 어디야?”

하늘에 별이 무수히 많았다. 주변엔 온통 우거진 나무뿐이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으나 일단 새틴은 일행을 찾으러 나섰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케인이 쓰러져 있었다. 새틴은 얼른 다가가 뺨을 두드렸다.

“케인, 일어나.”

그저 정신을 잃고 있었을 뿐인지 케인은 금세 눈을 떴다. 멍한 표정으로 눈을 껌벅이다 확 몸을 일으켰다.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더니 따지듯 물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나도 몰라. 눈 뜨니까 여기였어.”

새틴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하자 케인은 또 득달같이 물었다.

“다친 데는 없어? 아무 일 없었어?”

“나도 좀 전에 눈 떴어. 무슨 일 있었는지 전혀 몰라.”

케인은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빈 허리춤을 더듬더니 혀를 찼다. 골렘을 잡으면서 검을 써 버린 것이 기억난 모양이다.

이곳에 계속 머물러 봤자 무언가 알게 될 성싶지 않아 새틴은 행동 방향을 정했다.

“일단 리타하고 에드워드를 찾아보자.”

“어디에 있을 줄 알고.”

“멀리 있지 않을 거야. 우리도 근처에 있었잖아.”

어쩌면 지금의 상황은 실패한 시험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탈락과 동시에 마왕성에서 내쫓겼다든지. 그 과정에서 일부러 흩어지도록 내던진 게 아니라면 케인처럼 리타와 에드워드도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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