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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한 소설의 분위기가 위기-56화 (56/139)

56화

갑자기 리타가 비명을 지르더니 사라졌다. 에드워드 역시 “리타 씨!” 하고 쫓아갔다가 똑같이 “으악!” 하고 사라졌다.

“뭐, 뭐야?”

뒤따르던 새틴은 황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리타와 에드워드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케인은 당황한 표정으로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새틴에게 주의를 주었다.

“움직이지 말고 있어.”

“알겠어, 악!”

케인의 말대로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돌연 무언가가 새틴의 발을 홱 잡아끌었다. 새틴은 곧바로 생각을 정정했다.

‘아니, 미끄러진 건가?’

아무튼 새틴의 몸은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 정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와이번이 어트랙션 관리자 같더라니.’

타 본 적 없는 후룸라이드가 이런 느낌일까. 몸 어디에서도 마찰열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는데.

‘백 미터는 내려온 느낌이야…….’

슬슬 어디까지 갈지 무서워질 무렵 쿵 하고 바닥에 부딪혔다.

“아, 아야…….”

얼얼한 엉덩이를 문지르던 새틴은 리타와 에드워드를 발견했다. 모두 같은 곳으로 떨어진 모양이었다.

“둘 다 괜찮아?”

“으으응…….”

묻는 말에 왜인지 리타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새틴이 오기 전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을까. 에드워드 쪽을 보니 얼굴이 좀 붉다. 잠깐 사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담.

길게 고민할 새는 없었다. 별안간 나타난 거대한 몸뚱이가 새틴의 몸을 짓눌렀다.

“윽…….”

케인이었다. 새틴이 이동하지 않고 있던 탓에 바로 위로 떨어져 버린 모양이다. 다행히 아프게 부딪치지는 않았으나 포개진 자세가 몹시도 민망하였다. 다리가 얽혀서 케인이 무심코 무릎이라도 움직이면 큰일이 날 상황이다.

‘그 전에 깔려 죽겠네.’

새틴이 헐떡이는 동안 케인은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는지 멍하니 새틴을 보며 눈을 껌벅였다. 그러다 당황해 눈을 치떴다.

“뭐, 뭐……!”

얼굴이 벌게진 케인의 눈먼 손이 짚을 곳을 찾다 새틴의 가슴을 짚었다.

‘아이고, 내 늑골!’

새틴은 너무 아파 비명도 못 지르고 속으로만 절규했다. 케인이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지금껏 새틴이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아픈 와중에도 새틴은 웃기다고 생각했다.

‘얼음에 발 붙은 고양이 같네.’

아버지와 살던 동네에는 고양이가 많았다. 여름이 되면 담벼락 곳곳에 고양이들이 축 늘어져 있었다.

어느 날 동네 주민 중 누가 고양이들을 위해 커다란 얼음을 하나 길가에 내놓았다. 더위에 지친 고양이들이 조심스레 다가와 얼음을 만지자 발바닥이 쩍 붙었다.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뜨는 모습이 아주 웃겼다.

그런데 지금 케인의 표정이 그때의 고양이와 아주 닮았다.

“괜찮아? 내, 내가 지금!”

늘 시큰둥한 표정만 짓던 케인이 지금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말을 더듬었다. 일단 새틴은 손만 내저었다. 케인이 허둥지둥 몸을 물렸다.

새틴은 약간 비척대며 몸을 일으켰다. 방금까지는 갈비뼈가 부러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팠는데 일어나니 괜찮았다. 좀 얼얼할 뿐 견딜 만했다.

“저만한 덩치로 깔아뭉갰으니 뼈에 금이 갔을지도 모릅니다.”

에드워드가 다가와 걱정하며 신성 마법을 써 주었다. 그 뒤에서 리타가 중얼거렸다.

“나도 그랬거든.”

에드워드가 크게 헛기침을 했다. 새틴은 제가 막 여기 도착했을 때 에드워드와 리타가 왜 그리 내외하고 있었는지 이제야 이해했다. 저쪽은 이성 간이니 더 멋쩍었으리라.

갈비뼈 정비가 끝난 후에야 일행은 주위를 살폈다. 에드워드가 가장 먼저 감상을 내놓았다.

“분위기는 비슷하군요.”

길게 이어지던 복도와 같은 색의 벽, 바닥. 그리고 늘어선 횃불. 확실히 에드워드의 말마따나 아까 있던 곳과 그리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다.

“계속 가 보면 뭔가 알 수 있겠지.”

리타가 말을 받으며 앞으로 성큼 나섰다. 뭔가 튀어나올까 봐 무섭지도 않은지 걸음에 거침이 없었다.

복도는 얼마 가지 않아 끝나고 널따란 홀이 나타났다. 홀 한가운데는 여태 지나온 횃불 대신 커다란 화로가 놓여 있었다. 보랏빛 불이 타오르는 화로는 얼핏 보기에도 이 세상 물건 같지 않았다.

“용도가 있는 곳 같습니다.”

에드워드의 말처럼 확실히 복도와는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간 같은데 아직 그 목적이 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음침해서 연회보다는 수상쩍은 의식이라도 치르면 어울릴 듯했다.

“조사부터 해 보자.”

리타가 홀을 둘러보려 방향을 틀었다. 에드워드가 그 뒤를 바로 쫓기에 새틴도 무심코 따라가는데 케인이 팔을 붙잡았다.

“그렇게 바짝 붙어서 가지 마. 또 아까처럼 떨어질 수도 있어.”

“아, 그런가.”

막연히 생각하면 똑같은 함정이 두 번 연달아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여기는 마왕성. 마왕이 평범한 사람처럼 생각하리란 보장은 없다.

새틴은 리타와 에드워드에게서 약간 거리를 두고 걸었다. 반면 케인은 그야말로 새틴에게 바짝 붙어 있었다.

“너도 떨어지는 편이 낫지 않아?”

슬쩍 물으니 케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잠깐 고민을 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새틴을 제 뒤로 보냈다. 케인의 의도를 이해한 새틴은 피식 웃고 말았다.

“아니, 네가 먼저 떨어지란 뜻이 아니라 거리를…….”

“나한테서 멀어지지 마.”

“……알았어.”

케인이 너무 단호해서 새틴은 뭐라 핀잔할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벽을 따라 걷던 리타는 벽이 꺾이는 부분에서 멈췄다. 그리고 벽의 한 지점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여기 뭔가 있어. 글씨 같은데.”

“정말입니까?”

에드워드가 그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시선이 마주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헛기침을 했다.

“……정말 글씨 같군요.”

“그렇지? 뭐라고 적혔는지 잘 모르겠는걸.”

“불빛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마법을 쓸까?”

본인들은 평범하게 대화를 하는 줄 알겠지만 제삼자가 보기에는 굉장히 이상했다. 두 사람은 서로 몸이 닿을까 신경을 쓰느라 갈고리처럼 등을 구부리고 있었다. 안 친한 홍학들 같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새틴은 기분이 이상해졌다.

‘설마 쟤네 지금 썸 타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일은 아니다. 이십 대 초반의 젊고 건강한 남녀가 며칠째 얼굴을 보며 지내고 있다. 남녀 사이라고 꼭 연인으로 발전하지는 않겠지만 서로 의식은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의도치 않게 묘한 스킨십을 하고 난 직후니 야릇한 긴장감이 생길 만도 했다.

그럼에도 새틴은 당황했다.

‘너네가 썸을 타면 안 되잖아? 아니, 안 되는 건 아닌데…….’

다크에이지의 전개는 진작 벗어났다. 어떻게든 주요 사건들은 쫓아가고 있지만 세부 전개는 개판이 되었다. 케인과 리타는 주인공과 히로인의 관계가 되지 못하리라고 새틴도 진작 예감했다.

그렇다 해도 이렇게 눈앞에서 공식 커플이 박살 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별거 아닌 일인데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왜 그래?”

새틴의 속도 모르고 케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리타가 발견했다는 글씨를 보러 가지 않고 멈춰 서 있으니 의아했던 모양이다.

새틴은 잠깐 망설이다 물었다.

“너는 그, 리타를 보면 무슨 생각 들어?”

“시끄럽다?”

즉답에서는 정말로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새틴이 맥이 빠져 쳐다보자 케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 없어?”

“……왜?”

케인이 되물으며 새틴을 빤히 바라봤다. 놀란 고양이 같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서늘한 표정이었다. 대답을 잘못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기세가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아니, 그냥……. 우리도 가서 보자.”

새틴은 변명거리를 떠올리지 못해 대충 얼버무리고 얼른 몸을 돌렸다.

이미 리타는 마법으로 만들어 낸 불로 벽을 비추고 있었다. 내내 검다고만 생각했던 벽에 아주 조그맣게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무슨 의미일까요?”

먼저 내용을 파악한 에드워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새틴과 케인에게도 보라는 듯 옆으로 비켜 주었다.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

짧은 문장이었다. 새틴은 아까 문지기 와이번에게 들은 말을 떠올렸다. 문지기 와이번은 돌아 나온 사람들을 보며 시험을 거치지 못한 자들이라고 칭했다.

그 말인즉, 시험을 거치면 마왕성의 끝에 닿을 수 있다는 뜻일까.

“이상하군요. 끝나지 않았다는 말은, 적어도 시험을 치르는 중에 해야 할 말 아닙니까?”

그리 물으며 에드워드가 쳐다보기에 새틴은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워드의 말대로다.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 보통은 위기가 닥치고 그 위기가 끝나 갈 무렵 방심했을 때에 쓸 법한 표현이다.

“뭔가 더 실마리가 없으려나.”

리타가 중얼거리며 홀의 중앙을 향해 몸을 돌렸다. 여태 문장을 비추고 있던 불화살이 홀을 느리게 유영했다. 그러다 홀의 한가운데로 향한 순간, 화로의 불길이 치솟았다.

“뭐, 뭐야!”

당황했는지 리타가 외친 순간 불화살이 사라졌다. 그러나 홀은 한층 더 밝아졌다. 화로의 불길이 어찌나 강한지 내내 보이지 않던 천장이 순식간에 드러났다.

에드워드가 황급히 검을 뽑았다.

“리타 씨, 무기를!”

“어, 알겠어!”

당황해 일순 굳었던 리타도 재빨리 검을 뽑아 들었다. 마법사라지만 맨손보다는 확실히 무기를 드는 편이 나을 터.

새틴은 무언가 할 새도 없이 뒤로 끌려갔다. 케인이 새틴을 제 뒤로 감추더니 곧바로 무어라 외웠다. 아직 위기 상황인지 아닌지도 파악하지 않았는데.

마력이 희게 빛나더니 시뻘건 불꽃이 케인의 옆에 나타났다.

“떨어지지 마.”

케인의 눈빛이 사나웠다. 벌써부터 이럴 필요 없지 않으냐고 말하려던 새틴은 입을 다물고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칼 있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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