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커넬에 비하면 해리스는 아주 점잖았다. 게다가 신실하기도 했다. 애초에 에드워드와 친분이 생긴 것도 신전에 꾸준히 방문한 까닭이다.
「자네는 잘 모르겠지. 그 작자가 좀, 인격적으로 괜찮은 사람은 아니었거든.」
「그랬습니까.」
에드워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자는 흑마법사 토벌 생존자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믿었지.」
「구출된 아이들 말입니까?」
「죽은 제자 말이네. 죽은 사람이 어떻게 협박 편지를 보낸다고…….」
「그것참.」
「내 생각엔 과대망상 때문에 신경 쇠약이 왔던 게 아닌가 싶어.」
커넬은 신경 쇠약으로 재작년에 죽었다. 하지만 협박 편지는 그가 죽은 후에도 계속해서 오고 있었다. 정말 커넬이 목표였다면 최근까지 온 편지의 목적을 설명할 수 없다.
「아무튼 그 작자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고.」
「예.」
「편지를 보낸 놈이 그 흑마법사와 관련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네. 물론 죽은 제자는 아니겠지. 따로 키운 제자나, 아니면 동료나.」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흑마법사들끼리 특별한 유대가 있다 해도 그리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원래 배척받을수록 집단은 공고해지는 법이니.
「그렇게 생각하면 아귀가 맞지 않나. 클로버랜드에 대한 원한도 그렇고, 이 얼토당토않은 수단도 그렇고.」
「그래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일단은 마왕부터 처리해야지.」
「생각하신 방법이 있으십니까?」
「포상금을 걸었으니 누군가 나설 거네. 마왕이 정리되고 나면 제깟 놈이 뭘 어쩌겠나. 더 소환할 것도 없을 텐데. 안 그런가?」
해리스가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한 양 웃어서 에드워드도 억지로 따라 웃었다.
에드워드는 커넬이 변변찮은 마법사였다고 그간 생각해 왔다. 실제로 마법을 얼마나 능수능란하게 다뤘는지는 에드워드가 알 수 없는 부분이나, 행동거지에서 열등감과 비굴함이 묻어났다. 4년 전 무작정 공격부터 한 이유도 어쩌면 정면 승부를 할 자신이 없어서였을지도 모른다.
해리스는 커넬에 비하면 분명 점잖고 경우 있는 사람이지만 역시 존경할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위기 상황에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는 데서 그의 야비한 면모가 드러났다.
‘마법 사건 자체가 흔치 않은데 굳이 한 자리씩 차지한 거부터 그렇지. 마법사들은 욕심이 많아.’
치안청이 포상금을 걸어 사람들을 현혹하는 이유는 뻔했다. 누군가 나서 마왕을 해치우면 좋고, 해치우지 못하더라도 마왕의 역량을 알아내면 대책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
대책마저 세우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 사람들이 연달아 실패하면 해리스의 실패 역시 큰 흠이 되지 않으니.
그리 계획할 적엔 원인 모를 수면병의 유행은 예상하지 못했겠지.
이제 누군가 해결하길 기다리며 손 놓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사태가 심각해지기 전에 마왕인지 뭔지 모를 그 존재를 몰아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신전에서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을까. 신전으로 돌아간다면.
‘아니지.’
갓 수습을 벗어난 에드워드는 신전으로 돌아가 봤자 별다른 역할은 받지 못할 테다. 기도 창구에서 가족이 쓰러져 경황없이 찾아온 신자들의 하소연이나 들을 미래가 훤하다.
차라리 포상금을 노리는 여행자 무리를 따라가면 어떨까. 그들은 에드워드의 합류를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반기면 모를까.
원래도 위험한 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신관에게 동행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관이 있으면 가벼운 부상은 신성 마법으로 치료가 가능하고, 심한 부상이라도 응급 처치 정도는 할 수 있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용이했다.
에드워드는 일단 그쪽으로 향방을 정했다.
‘치안청부터 가 봐야겠군.’
나중에 포상금을 받으려면 미리 치안청에 등록을 해야 하니 다들 그리로 올 터다. 에드워드는 먼저 가서 괜찮은 일행을 찾아볼 생각이다.
그런데 에드워드가 미처 외출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누군가 객실 문을 두드렸다. 또 아이나 어르신을 살펴 달라는 부탁이려니 싶어 에드워드는 한숨부터 쉬었다.
“누구십니까.”
“에드워드, 나야.”
들려온 목소리는 의외로 익숙했다. 리타였다.
‘이런.’
에드워드는 직감했다. 이 실행력 좋은 사람이 신문을 보고 마왕을 토벌할 마음을 먹은 모양이라고.
“문 좀 열어 줘. 내가 진짜 끝내주는 제안을 가지고 왔어.”
리타가 명랑하게 떠들며 다시 문을 두드렸다. 에드워드가 재차 한숨을 쉬며 문을 열자 리타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들이밀었다.
“잘 잤어?”
“예, 뭐. 덕분에.”
아침 인사를 하기엔 애매하게 늦었지만 에드워드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혼자 왔을 줄 알았는데 리타의 뒤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그들 또한 익숙한 얼굴이었다. 새틴은 에드워드와 눈이 마주치자 열없이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고, 케인은 그 옆에서 아무것도 없는 벽을 보고 있었다.
리타가 가슴을 쭉 펴고 당당히 방으로 들어왔다. 대신은 아니겠지만 새틴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방문 의사를 표했다.
“들어갈게.”
모두 들어온 후 에드워드는 문을 닫으며 물었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신문 봤어? 아, 봤네.”
리타는 창가 테이블에 놓인 신문을 보고 에드워드의 대답을 건너뛰었다.
“마왕을 잡으러 갈 생각이야. 같이 가지 않을래?”
“……실례지만 세 분은 안 지 얼마 안 되지 않았습니까?”
“그게 문제가 되나?”
리타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새틴을 쳐다보았다. 새틴은 쑥스러운 듯 목덜미를 긁적이고 말했다.
“리타하고 나는 외지인이라 그나마 클로버랜드에서는 제일 오래 안 사이긴 해.”
“하하, 그것참 재밌는 얘기네.”
새틴의 뒤에서 전혀 웃지 않는 얼굴로 케인이 웃는 소리를 냈다. 비꼬는 티가 역력했지만 새틴은 어깨만 으쓱였다. 그 모습을 보며 에드워드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이 사람도 좀 희한해.’
케인이 아니라 새틴을 두고 한 생각이다.
얼핏 보기엔 얌전하고 주장이 강하지 않은 사람 같은데 자세히 관찰하면 범상치 않은 점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가장 이상한 건 이거다.
‘너무 초연해.’
에드워드는 처음 리타와 새틴을 만났을 때 두 사람이 아주 잘 아는 사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두 사람은 그날 처음 만났다고 했다. 그런데도 새틴은 리타가 무얼 하든 그러려니 했다. 귀하게 자란 티가 나는 마법사를 어려워하거나 경외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케인을 만났을 때의 반응은 더 기이했다.
‘기억에 없는 지인이 나타났는데 그렇게 태연한 건 이상하지 않나.’
모르는 사람이 격하게 반가워하는 태도를 보이면 당황하거나 의심할 법도 한데 새틴은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은 케인을 모르지만 케인이 자신을 아는 건 당연하다는 듯 금세 납득했다.
상황을 의아해하던 에드워드와 리타에게 새틴은 이름과 나이를 소개할 때처럼 태연히 “아, 사실은 내가 기억을 잃어서.” 하며 웃었다. 표정은 지극히 선량한데 눈빛에 총기가 없었다. 지루한 인형극을 구경하는 사람 같았다.
‘나쁜 사람 같진 않은데, 이상한 사람이야.’
에드워드가 속으로 저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새틴은 지금도 실없이 벙싯벙싯 웃고 있었다. 그러다 에드워드와 눈이 마주치자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음,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상한 병이 유행하고 있어. 아이들하고 노인들이 잠에서 못 깬대. 서둘러 해결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지도 몰라.”
“리타 씨는 몰라도 새틴 씨까지 마왕 토벌에 관심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뭐, 지금 클로버랜드에 있는 모두의 문제고 하니까.”
뺨을 긁적인 새틴이 다시 제안했다.
“나야 짐이지만 네가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거야. 함께 가지 않을래?”
스스로 짐이라 하면서도 리타를 따라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정말 걱정이 되기는 하는 모양이다. 눈은 죽은 생선 같은데 의외로 따뜻한 사람이다.
에드워드가 바로 대답하지 않자 리타는 마음이 급해졌는지 마구 닦달했다.
“아, 같이 가자! 포상금 받으면 내 몫까지 줄게!”
“전 신관입니다. 그렇게 많은 돈은 필요 없습니다.”
“그럼 내가 아는 분께 부탁해서 더 큰 신전으로 가게 해 줄게. 직급도 오를 거야. 신전 권력의 중추에 오를 수 있을지도 몰라.”
“리타 씨는 대체 신관을 뭐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리타가 제시하는 보상은 하나같이 어처구니없었다. 전혀 에드워드의 마음을 동하게 하지 못했다.
그러나 제안 자체는 괜찮아 보였다. 리타는 마법사고 아마 케인도 마법사다. 마법사가 둘이나 되니 그나마 마왕을 토벌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작은 짐이 하나 있더라도.
에드워드는 곧바로 알겠다고 하지 않고 잠깐 뜸을 들였다. 리타가 애가 타서 재촉했다.
“할 거야, 말 거야? 한시가 급한 일이라고.”
“좋습니다. 함께 가죠.”
“잘 생각했어!”
“대신 잠깐 신전에 들릅시다.”
“축복이라도 받으려고? 괜찮은 생각이네. 효과는 몰라도 확실히 마음은 편해지지.”
리타는 멋대로 추측하고 납득했다. 실은 다른 볼일을 볼 셈이지만 에드워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어차피 가면 알게 될 터다.
최근에야 치안청이 모든 일, 그러니까 시민들의 안전에 관한 일 전반을 처리하지만 과거에는 달랐다. 신성 모독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일은 신전에서 도맡았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흑마법사 처단이다. 마법사의 규칙은 상당 부분 신전의 교리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니 어쩌면 마왕에 관해서도 오래된 기록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 도움 될 만한 내용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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