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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한 소설의 분위기가 위기-48화 (48/139)

48화

케인의 물음에 조금이나마 당황한 사람은 새틴뿐이었다. 케인이 그 당시 현장에 있었음을 모르는 에드워드는 큰 반응을 보이지 않고 대답했다.

“아뇨, 그분은 돌아가셨고 새로 오신 마법사님인데.”

에드워드는 무어라 더 말을 하려다 말고 멈칫했다. 금세 그런 적 없는 양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렇다고 하니 저는 근처에서 좀 기다려 볼 생각입니다.”

“언제까지?”

리타가 끼어들어 묻자 에드워드는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일단 저녁까지요. 오늘 안에는 수색대가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다른 일정은 없어?”

“성문을 나가는 게 일정이었죠.”

약간 자조적으로 말한 에드워드는 리타와 새틴, 케인의 얼굴을 한 번씩 보더니 제안했다.

“어디들 묵으십니까? 혹시 뭔가 알게 되면 전해 드리죠.”

“아, 정말? 그렇게 해 주면 고맙지!”

리타는 사양하지 않고 냉큼 에드워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묵고 있는 여관의 이름을 가르쳐 준 후 덧붙여 말했다.

“혹시 오늘 안에 수색대가 오지 않더라도 찾아와. 감사의 의미로 대접할 테니까.”

“어제처럼 무식하게 주문하지 않는다면요. 위기 상황에 낭비를 해서야 되겠습니까?”

“어제는 배가 고파서 그랬던 거고 평소엔 그렇게 많이 안 먹어.”

“그랬으면 좋겠군요.”

세 사람은 에드워드와 헤어져 여관으로 돌아왔다.

리타는 객실로 들어가지 않고 로비에서 잠깐 쉬다가 일어났다. 저녁 전까지 근처를 좀 둘러봐야겠다고 했다. 새틴에게도 같이 가겠냐고 물었지만 사양했다.

리타가 나가고 나니 자연히 새틴은 케인과 단둘이 남았다. 별달리 할 이야기가 없어 새틴은 여관 종업원이 가져다준 차만 홀짝홀짝 마셨다. 케인은 차에 손도 안 대고 새틴이 차 마시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왜 보는 거지.’

처음엔 할 말이 있나 했는데 그도 아닌 듯했다. 몇 번인가 눈이 마주쳤지만 케인은 지그시 웃을 뿐 입을 열지 않았다.

결국 찻잔이 비고 나서야 새틴이 먼저 물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

“신기해서.”

의외로 케인은 곧바로 대답했다. 그러나 별로 속이 시원해지는 답은 아니었다.

‘내가 차를 이상하게 마셨나?’

새틴은 주위를 둘러봤지만 다른 사람들도 새틴과 똑같은 방식으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손으로 찻잔을 들고, 입으로 마셨다. 그 모습을 보니 다른 가능성을 생각한 게 웃겼다.

‘그야 그렇겠지. 차를 코로 마실 리도 없는데.’

그렇다면 케인은 뭐가 그리 신기했을까.

“네가 숨만 쉬어도 신기해.”

“……숨은 살아 있으면 다 쉬는 거야. 개구리는 피부로도 숨을 쉰다고.”

“난 네가 여태 죽은 줄 알았잖아. 네가 살아서 이렇게 숨을 쉬고 뭔가 마시고,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게 다 신기해.”

좋은 의미로 하는 말에 쓸데없다는 형용사는 뭐 하러 끼워 넣었을까.

아무튼 케인의 심정을 알았기에 새틴은 고개를 끄덕였다. 새틴도 누나가 눈앞에 나타나면 케인처럼 행동할 것 같았다. 어쩌면 케인보다 더 집착할지도 모른다.

‘계속 옆에 있겠다는 것도 그래서인가?’

지금이야 죽은 줄 알았던 친구와 만나 지나치게 들떠 있지만 며칠이나 갈까. 새틴은 그때까지만 적당히 어울려 주면 되겠거니 하고 편하게 받아들였다.

그나저나 예전에 어떻게 지냈기에 이렇게 기뻐할까. 주인공인 케인과 악역인 새틴의 사이가 좋았을 리 없다고 지레짐작했는데 곰곰이 생각하니 꼭 그렇게만 볼 순 없다.

‘케인은 새틴에게 속았을지도 몰라.’

새틴이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늘 멍한 상태였지만 케인이 기억하는 흑마법사는 아주 악랄한 사람이다. 그리고 아마 그쪽이 진짜 모습에 가까울 테다. 그런 악랄한 흑마법사의 제자라면 어린 소년쯤은 홀랑 속여 먹을 만큼 간사하지 않을까.

‘가능성은 충분하지.’

나쁜 놈들이라고 모두의 앞에서 나쁘게 굴지는 않는다. 나쁜 짓을 하려고 오히려 착한 가면을 뒤집어쓰는 경우가 더 많았다. 아버지도 그런 사람이었다.

예전의 새틴도 분명 뒤로는 나쁜 생각을 하는 주제에 면전에서는 친절하게 굴었겠지. 둘도 없는 친구라도 되는 양. 진짜 모습을 보기 전에 헤어졌다면 케인이 새틴을 보고서 반가워할 만도 하다.

‘이게 잘된 일인지 억울한 일인지 모르겠네.’

기왕 이렇게 됐으니 케인이 좋은 기억만 가지고 살면 되지 않나 싶다가도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케인은 속은 게 아닌가. 그렇다고 진짜 새틴의 실체를 알려 줄 수도 없다. 진짜 새틴은 이제 없으니까.

‘얜 내가 걘 줄 알고 말이지.’

새틴이 혼자 골머리를 앓고 있으니 케인이 눈을 살짝 치떴다.

“그 표정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한데.”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딴생각 중이었어.”

케인은 무슨 딴생각을 했냐고 캐묻지 않고 묘하게 웃었다. 어쩌면 그냥 웃었는데 지나치게 잘생긴 얼굴 때문에 묘하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앉아 있어서 그런가?’

서 있을 때 케인은 새틴보다 눈높이가 높아서 항상 내려다보았다. 내리뜬 눈은 다소 나른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마주 앉아서 보니 조금 새침한 구석이 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새틴은 무심코 말했다.

“이렇게 보니까 너 꼭 고양이 같구나.”

말이 입 밖으로 나온 후에야 케인이 불쾌해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슬쩍 눈치를 봤는데 의외로 케인은 여전히 웃는 낯이다.

“알아.”

“안다고?”

자기가 고양이를 닮았다고 당당히 말하는 스무 살 남자애라니. 굉장히 뻔뻔하다. 새틴은 제가 다 창피해서 팔뚝을 긁었는데 케인은 태연했다.

“전에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거든.”

∞ ∞ ∞

에드워드가 수색대의 소식을 가지고 여관에 왔을 때는 해가 막 떨어질 무렵이었다. 마침 리타도 직전에 돌아와 있던 터라 에드워드는 기다리지 않고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마왕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에드워드는 그리 말하며 케인을 쳐다보았다. 새틴도 덩달아 케인에게 눈길을 주었다. 리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가락질을 했다.

“그만둔다더니!”

“그만뒀어, 나는.”

케인은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어깨를 으쓱였다.

‘누가 들어도 되는 얘긴가, 이거.’

새틴은 슬그머니 주위를 살펴봤다. 다행히 낮에 여관에 돌아왔을 때만큼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우왕좌왕하던 투숙객들도 이제 다들 진정하고 돌아간 듯했다. 방으로든 다른 볼일이 있는 곳으로든.

케인의 편을 들 마음은 없지만 일단 새틴은 합리적인 의문을 표했다.

“마왕인 줄은 어떻게 안 거야? 실제로 마왕을 봤대?”

본다고 알 수나 있을까. 설마하니 마왕이 동물도감 같은 데에 실려 있을 리도 없는데. 수색대가 도착한 곳에서 친절히 기다리고 있다가 “아, 오셨습니까? 제가 마왕입니다.” 하고 자기소개를 했을 리도 없고.

에드워드는 턱을 문지르며 답했다.

“확실히 해 두자면, 이 얘기는 저도 들은 겁니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는 몰라도 에드워드는 그 이야기를 모두 믿지 않는 모양이었다. 영 탐탁잖아 하는 어조로 이어 말했다.

“숲 한가운데에 성이 생겼답니다. 외벽이 시커먼 성인데, 그 앞을 와이번 두 마리가 지키고 있었다는군요.”

“성?”

리타가 따라 말했다가 바로 손짓했다. 계속 이야기하라는 뜻이었다.

“와이번들이 놀랍게도 말을 하더래요. 애초에 와이번은 상상의 동물이니 말을 한다고 신기해할 일은 아니죠. 그냥 존재 자체가 신기한 일이지.”

마왕성을 와이번이 지키는 줄은 새틴도 몰랐다. 요약본에는 그렇게 세세한 내용까지는 나오지 않으니.

‘와이번이 지키는 마왕성이라. 꽤 고전적인 느낌인걸.’

새틴은 보지 않은 2부를 멋대로 상상했다. 누나는 고전적인 마왕성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검은 안개만큼이나 위압적인 성이겠지? 문지기 와이번들은 접근하는 사람에게 음산한 목소리로 경고하고…….

이어진 에드워드의 이야기는 새틴의 상상을 깨부쉈다.

“와이번들이 수색대를 보고 마왕님께서 계시는 곳이니 조용히 해 달라고 했답니다. 소란은 딱 질색이라고요. 정말 우습지 않습니까?”

전혀 웃기지 않다는 얼굴로 에드워드가 이야기를 마쳤다.

리타는 황당한 듯 헛웃음을 지었고, 케인은 별생각 없는지 다른 데를 보고 있었다. 새틴 혼자 허둥댔다. 물론 속으로.

‘원래도 마왕이 그런 식으로 등장했나? 원래 그렇게 예민한 수험생처럼 굴었어?’

2부를 보지 않았어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지금 이 상황은 뭐가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애당초 제대로 굴러간 적이 있긴 한지도 모르겠지만.

케인은 새틴을 소중한 친구로 여기고, 새틴은 마왕 소환을 한 적이 없으며, 케인이 부르다 만 마왕은 소란을 싫어한댄다. 이대로 가다간 마신도 익일특급으로 배송되지 않을까.

잠깐 생각에 빠졌던 리타가 에드워드에게 물었다.

“거짓말 아니야?”

“저야 모르지요. 일단 치안청에서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대중에게는 그냥 마왕이 나타났다고만 공표할 겁니다.”

“직접 확인해 봐야 하나…….”

“봉쇄 중인데 어떻게 확인을 합니까. 엉뚱한 짓 할 생각 마세요.”

리타가 어떻게 하겠다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에드워드가 경고했다.

“지금 치안청은 비상사태입니다. 괜히 밉보이기라도 하면 억울한 꼴을 당할 수도 있어요.”

“하여간 치안청 놈들이란.”

리타는 혀를 차며 구시렁거렸다. 그리고 케인에게 다시 한번 확인했다.

“진짜 네가 한 짓 아니야?”

“마음대로 생각해.”

건성으로 대꾸하는 케인에게 리타는 무어라 더 닦달하지 않았다. 정말로 케인이 마왕을 소환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이지.’

이 상황에 새틴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 생각했다.

‘아무것도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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