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하지만 난 넘어가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믿느냐고.”
“나는 팀이 죽는 걸 봤어.”
“겨울이면 길거리에서 얼어 죽는 애들이 발에 채도록 많아. 죽음은 우리 같은 사람들한텐 대수로운 일이 아냐.”
케인의 시큰둥한 대꾸에 새틴은 침묵했다. 곧 케인이 물었다.
“더 할 말 없어?”
“나는 인간의 도리나 그런 건 잘 모르지만, 하나는 확실히 알아. 어른은 아이를 도와줘야 한다는 거야.”
이곳이 원래 살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임을 새틴도 잘 안다. 시간이 지나면 새틴 역시 이곳의 상식에 익숙해질 거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새틴은 제가 아는 유일한 도덕을 잊지 않았다.
어른은 아이를 구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에서 가장 먼저 지켜져야 하는 도리다. 보호받은 적 있는 아이는 타인을 보호할 줄 아는 어른이 될 거다. 그렇다면 신뢰와 안전은 자연히 생겨날 터.
‘뭐 거기도 그렇게 따뜻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새틴은 이 도리를 지키는 사람을 알고 있다.
케인은 엉뚱한 소리를 들은 듯한 표정으로 새틴을 바라봤지만 더 할 말은 없었다. 만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서로를 완전히 믿을까.
이내 케인이 한숨을 한 번 쉬더니 말했다.
“그래, 일단은 믿을게.”
사족이 붙긴 했으나 어쨌든 긍정의 답이었다. 새틴이 무심코 웃자 케인이 인상을 썼다.
“친한 척하지는 마.”
“어, 응.”
까칠하기는. 새틴은 속으로만 타박하고 말았다.
“이만 나갈까? 너무 오래 안 보여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새틴의 말에 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대로 목욕탕을 나가려는가 싶더니 멈칫했다. 새틴도 덩달아 멈칫했다.
“왜? 더 할 얘기 있어?”
“그 늙은이가 나를 왜 데리고 있는지도 알아봐.”
“너?”
“다른 아이들하고 다른 목적으로 데려온 것 같으니까.”
“다른 목적?”
“뭔진 몰라. 내가 다른 애들하고 좀 다른 거 같아서 하는 말이야.”
케인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 새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 ∞ ∞
아이들의 분위기는 평소보다 가라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한 명이 사라진 영향인 듯했다. 새틴은 그네를 밀어 주다 슬그머니 물었다.
“너도 팀이 도망친 거라고 생각해?”
그네에 앉은 아이는 헤더였다. 다른 아이들이 돌멩이로 무언가 놀이하는 모습을 보며 멍하니 그네를 타고 있었다.
“그렇겠지.”
대답을 하는 헤더의 목소리는 다소 맥이 빠져 있었다. 아까까지는 사라진 팀에게 아무 관심 없는 척 명랑하더니. 실은 신경을 쓰고 있던 모양이다.
짧은 침묵 후에 헤더가 말을 이었다.
“이해는 가.”
“뭐가? 팀이 도망친 게?”
“응…….”
새틴은 무심코 눈살을 찌푸렸다가 얼른 평소의 표정을 뒤집어썼다. 다행히 헤더는 새틴을 등지고 있어 그 표정을 보지 못했다.
도망칠 이유가 없는 환경에서 도망친 게 어째서 이해가 될까. 새틴은 심각하지 않은 어조로 물었다.
“너도 도망치고 싶었던 적이 있어?”
잠깐 무어라 웅얼거린 헤더가 바닥에 발을 댔다. 그네를 그만 타겠다는 의미임을 알아차리고 새틴은 줄을 잡았다. 곧 두 사람은 나무 그늘에 나란히 앉았다. 여전히 다른 아이들은 놀이 중이다.
“새틴은 기억을 잃어서 모르겠지만 말이야.”
“응.”
“난 가끔 무서워.”
“뭐가?”
“선생님은 가엾은 아이들을 도와주시는 거잖아.”
“그렇지.”
속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새틴은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아이가 아니게 되면 어떻게 될까?”
“무슨 뜻이야?”
“내가 어른이 되면 더는 도와주지 않으실 거 아냐. 나는, 그때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면 무서워. 다시 길거리에서 살아야 한다고 하면 나는…….”
“있을 곳을 구하면 되지. 여기서 배운 것들이 있으니까.”
“그럴 수 있을까?”
헤더는 무릎에 이마를 대고 한숨 쉬었다. 어린아이의 고뇌라지만 전혀 가볍지 않았다.
“가끔은 너무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어. 차라리 계속 힘들면 힘들단 생각도 안 할 테니까.”
언젠가 떠나야 할까 봐 미리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을 새틴은 이해했다.
누나와 지내고부터 ㅇㅇ도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한계가 없는 듯한 행복이 도리어 무서워서 겁을 먹었다.
그 행복에 적응할 때쯤 누나가 죽었다. ㅇㅇ는 누나보다 제가 먼저 죽었으면 어땠을까 상상한 적이 있다.
“그럼 죽으면 어떨까?”
새틴의 물음에 헤더가 고개를 들었다.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쳐다본다. 새틴은 목덜미를 긁적이며 다시 물었다.
“계속 지금처럼 지내다가 말이야. 갑자기 죽으면 내내 행복하다 죽은 거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건 아니지.”
헤더의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보며 새틴은 머쓱하게 웃었다.
“그렇지, 역시?”
곧 헤더는 언제 걱정을 했냐는 양 아이들 사이에 섞여 웃었다. 아이들은 누구 한 사람 빠짐없이 친해 보이지만 진심을 모두 털어놓는 사이는 아니었다.
하기야 겨우 몇 달 남짓, 길어야 일 년 남짓이나 함께 지낸 사이다. 게다가 저마다 고생을 하다 여기에 왔다. 보이는 모습만큼 순진하지만은 않으리라.
새틴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다 안으로 들어왔다.
혹시나 아이들에게 앞으로 제가 하려는 일이 도움이 아닐까 봐 얘기를 꺼내 본 것인데 괜한 짓이었다. 헤더는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아이들은 지금의 상황이 행복하다 느끼면서도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한다. 서로를 친근하게 부르지만 사실은 경쟁하고 싶어 한다. 지금의 행복과 여유를 유지할 방법을 원한다.
새틴은 2층으로 올라가 서쪽 복도로 들어섰다. 선생님의 공간이다. 닫힌 연구실과 서재를 지나 사무실 앞에 이르렀다. 노크하며 물었다.
“선생님, 안에 계세요?”
대답은 바로 돌아왔다.
“들어오너라.”
문을 열고 들어서니 선생님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환한 대낮이라 커튼을 반쯤 쳐 두었는데 그럼에도 역광 때문에 선생님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새틴은 그늘 쪽으로 움직였다.
“무슨 일로 왔느냐?”
“여쭤볼 것이 있어서요.”
선생님은 인자하게 웃으며 고갯짓했다. 새틴은 괜히 두 손을 쥐고 꼼지락대다 말했다.
“아이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어요.”
“무슨 얘기?”
“제가 전에는 선생님의 연구를 도와드렸다고…….”
슬쩍 눈치를 보니 선생님의 얼굴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새틴은 침을 삼키고 마저 말했다.
“이제 제가 필요 없으세요?”
선생님은 대답하지 않고 새틴을 물끄러미 보기만 했다. 그러다 손짓했다. 가까이 오라는 의미 같아서 새틴은 책상 앞으로 갔다.
책상 위의 문서들은 마법과 관련 없는 내용이었다. 학교를 운영하며 외부와 거래를 하느라 나온 서류들로 보였다. 너무 노골적으로 살피면 수상쩍을까 봐 새틴은 자세히 보지 않고 눈을 돌렸다.
“마법사가 되고 싶으냐?”
“……네.”
“마법사가 무엇인지 잘 모르지 않느냐.”
“잘은 모르지만, 아이들이 부러워하는 걸 보면 좋은 직업이겠죠. 아닌가요?”
선생님이 피식 웃었다. 지금 보니 눈이 회색이다. 희게 센 머리와 회색 눈에 그을지 않아 흰 피부가 더해지니 마치 흑백 사진 속 인물 같다.
“기억을 잃어도 전과 비슷한 부분은 있구나.”
“그런가요?”
“자기 몫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고 했지.”
뉘앙스로 추측건대 선생님은 이전의 새틴을 나쁘지 않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기야 그러니 조수로 써먹었겠지.
‘그런데 어쩌다 다퉜을까.’
아이들이 하는 얘기를 대강 듣긴 했으나 정확한 정보는 없었다. 당사자에게 물으면 확실히 알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제가 기억을 잃어서 케인을 제자로 삼으실 건가요?”
“케인?”
선생님이 눈을 살짝 치떴다. 화가 난 기색은 아니었다. 그저 좀 의아한 듯하다. 새틴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말했다.
“아이들이 그러던데요. 케인이 저를 싫어한다고요. 혹시 그게 저를 질투해서는 아니었는지, 제 말은 혹시 선생님이 케인을 저와 같은 이유로 데려오신 게 아닌지…….”
말이 조금 두서없었지만 새틴은 고치려고 애쓰지 않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초조해 보이는 편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새틴은 연신 입술을 핥으며 선생님이 말하기를 기다렸다.
“불안한 모양이구나.”
“네?”
“그럴 만하지. 기억을 잃기 전에도 넌 케인을 견제했지.”
“……그 말씀은 케인이 견제할 만한 상대였다는 뜻인가요?”
“귀족들이라도 원한다고 모두 마법사가 될 수는 없다. 자질도 있어야 하고 운도 좋아야 하지.”
선생님은 대답 대신 다른 소리를 했다. 새틴은 지적하지 않고 가만히 들었다.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닐 터.
“너희같이 미천한 아이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대부분은 제가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 줄도 모르고 살다 어디서 객사하겠지. 고아들의 삶이란 대체로 그러하니.”
미천한 아이들.
새틴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량한 자선가의 입에서 나올 만한 표현은 아니었다.
열두 살 아이를 불태워 죽이는 정신 나간 마법사라면 무슨 말을 못 하겠냐마는.
“네가 내 제자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십분 이해한단다.”
“그럼…….”
“너도 케인도 자질이 있는 아이들이 맞다. 한데 나는 제자가 둘이나 필요치 않지.”
선생님이 지그시 새틴을 바라보았다. 새틴은 주먹을 꼭 쥐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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