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왜 그래?”
케인이 새틴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새틴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냐. 그냥 기분이 안 좋아서 그래. 얘기 계속해.”
살짝 인상을 찌푸린 케인은 이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얼굴은 몰라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 사람들은 자선가라고 했지만 난 분명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왜?”
케인이 어깨를 으쓱이고 웃었다. 비웃음이었다.
“세상에 순수한 선의라는 건 없어.”
“그 이유 말고 다른 이유는 없어?”
“당연히 있지. 여기 오고 나서야 알았지만.”
케인은 짧게 뜸을 들였다.
“내가 여기 오기 전에도 도망친 아이가 있었다는 거 알아?”
“아까 들었어. 매기라는 애가 도망쳤대.”
진짜 도망이었을 리는 물론 없다. 그 애도 어쩌면 팀과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세상에서 사라졌을지 모른다.
“늙은이가 그 아이를 찾으려고 여기저기 수소문했다는 얘기도 들었어?”
“응.”
“난 그런 얘길 들은 적이 없어.”
“무슨 말이야?”
“클로버랜드 사람들은 저 늙은이를 다 알아. 마법사잖아. 자선을 하는 괴짜 마법사.”
“그런데?”
“그런 사람이 아이를 찾아다닌다면 소문이 안 날 리 없는데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
새틴은 케인이 하는 말을 이해했다. 표정으로 알아챘는지 케인이 픽 웃었다. 이번에도 역시 비웃음이다.
“저 늙은이가 사라진 아이를 찾지 않은 이유가 뭐겠어. 찾을 필요가 없어서 아니겠어?”
“……그러네.”
“네 말대로라면 다 죽었겠지.”
새틴은 이마를 짚었다. 몇 명이나 그렇게 죽었을까. 지금 딛고 선 바닥 아래에서 과연 몇 명이 그렇게 새까만 재가 되어서.
모두 아이였을까. 무고한 아이. 무고하지 않다 해도 아이를 그렇게 죽여서는 안 되는데. 죄지은 자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아이들은 그러면 안 되는데. 약자는 지켜야 한다고 그렇게 정해져 있으니까.
‘어지러워.’
그리 생각한 순간 케인이 새틴의 팔을 붙잡았다. 아직 덜 자란 소년이지만 악력은 어른 못지않았다.
“야, 정신 차려.”
“아, 잠깐 딴생각을…….”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새틴은 당장 제 말을 믿어 줄 사람이 케인뿐이라 생각해 이야기했지만 이다음에 어떻게 할지는 계획해 두지 않았다.
새틴은 겨우 그럴듯한 의견을 생각해 냈다.
“선생님을 죽이자.”
“……뭐?”
그다지 그럴듯한 생각은 아니었는지 케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새틴은 재빨리 다른 의견을 떠올렸다.
“아니, 잘못 말했어. 외부에 알려서 도와줄 사람을 찾자.”
새틴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케인이 어깨를 으쓱였다.
“누가 믿겠어. 다른 사람들 눈에 저 늙은이는 아이들을 도와주는 선량한 노인이야. 심지어 마법사지. 그에 비해 우리는? 거리 치안이나 해치는 고아 새끼들이야. 우리 얘기를 믿겠어?”
“안 믿겠지…….”
“그러니까 다른 방법을 써야 해.”
“어떡하려고?”
아무래도 케인에게 다른 의견이 있는 듯해 물으니 케인이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새틴은 케인이 제대로 웃는 얼굴을 처음 봤다. 심각한 상황마저 일순간 잊힐 만큼 화사했다. 역시 주인공이다. 이런 부분만은 현실감이 없다.
“일단 저 늙은이가 아이들을 죽이는 이유를 알아내야 돼.”
새틴이 생각하기엔 아이들을 죽이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왜 죽였는지를 알고 모르고가 무슨 상관이 있지. 어떤 이유가 있든 정상 참작할 수 없는데.
새틴이 눈을 껌벅이는 동안 케인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흑마법사라고 신전에 고발하는 거지.”
“아.”
이렇게 신전 기사단과 연결이 되는구나.
“왜 그런 표정이야? 내 의견이 마음에 안 들어?”
케인이 인상을 써서 새틴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알다시피 내가 기억이 없잖아.”
“그런데.”
“흑마법사가 정확히 뭐야? 마법사하고 뭐가 다른데 그렇게 부르는 거야?”
“완전히 멍청이가 됐네, 이거.”
케인의 폭언에 새틴은 약간 억울했지만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케인이 당연히 아는 것을 지금 새틴은 모르니 멍청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다.
“그러니까 설명해 줘. 흑마법사가 뭔데.”
“흑마법사라는 건 규칙을 어긴 마법사란 뜻이야.”
그다지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규칙은 뭐냐고 물어보려는 차 케인이 먼저 말했다.
“규칙이라는 건 마법사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거고. 엄밀히 말하면 마법사들의 도덕에 가깝지.”
“도덕?”
“인격을 훼손하지 않을 것. 생명을 이용하지 않을 것. 망자를 모욕하지 않을 것.”
케인은 친절하게도 손가락까지 꼽으며 세 가지 규칙을 나열했다. 잠깐 의미를 생각했지만 새틴은 세 가지 규칙이 잘 구분되지 않았다. 다 비슷한 느낌 아닌가.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뭐 그런 뜻이야?”
“그런 단순한 뜻이 아니야. 마법사들이 전쟁에서 사람을 얼마나 많이 죽이는데.”
“그럼?”
“인격을 훼손하지 말라는 건 정신을 조종하는 마법을 쓰지 말라는 얘기야. 생명을 이용하지 말라는 건 사람에게 마법을 실험하지 말란 뜻이고.”
“마지막은?”
“죽은 자를 되살리지 말란 거지.”
이제 이해가 됐다. 새틴은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넌 잘 아는구나. 다들 그 정도는 알아?”
“대충은? 난 책을 보느라 더 자세히 안 거고. 여긴 할 일이 없으니까.”
책을 좋아해서 서고에 있는 줄 알았더니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하기야 다크에이지에서도 케인이 특별히 독서를 좋아한단 서술은 보지 못했다.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야.’
새틴은 쓸데없는 생각을 치워 버렸다. 선생님이 열두 살 아이를 불태워 죽였을 때부터 새틴은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누나도 이런 암울한 과거사까지 현실이 되길 바라진 않았을 테지.
게다가 지금 이 시점은 프롤로그 전이라 다크에이지의 내용을 안다 한들 별달리 도움 될 데도 없고.
새틴은 대화로 돌아갔다.
“그래서 선생님의 목적을 어떻게 알아낼 거야?”
“연구실에 들어가면 뭐라도 알 수 있겠지.”
새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마법사들이 어떤 식으로 연구를 하는지는 모르나 기록 정도는 있겠지. 기록보다 분명한 물증이 있으면 더 좋고.
케인이 턱을 문지르며 덧붙였다.
“들어갈 방법을 찾아야 하지만.”
“선생님이 없는 틈을 타서 들어가면 되잖아.”
“그렇게 쉽겠냐. 항상 잠겨 있는데.”
“창문이라든지.”
“창문도 막혀 있어.”
새틴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다. 앞뜰에 나갔을 때 학교의 정면을 본 적이 있는데 막힌 곳은 없었다. 현관 양쪽으로 늘어선 창문들을 분명히 봤다.
새틴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채고 케인이 작게 혀를 찼다.
“열리지 않는 창이야. 잠금장치도 없어.”
“그건 어떻게 확인했어?”
“2층 정도 올라가는 거야 어렵지도 않아.”
“아, 그래.”
다크에이지의 설정에 관해 생각하지 않겠다 결심한 게 조금 전인데 그만 또 생각하고 말았다. 소설에서 케인은 소매치기나 좀도둑질을 하며 지내다 흑마법사에게 붙잡혔다고 했다. 낮은 건물을 타 넘는 정도야 일도 아니리라.
새틴은 잠깐 생각하다 말했다.
“자연스럽게 들어갈 방법이 있어.”
“어떻게?”
“내가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원래 선생님의 제자였다고 하잖아. 아니, 진짜는 아니었다고 해도 다들 그렇게 생각하더라.”
케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걱정하는 건지 미심쩍어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새틴은 케인의 표정만 보고 속내를 다 짐작할 만큼 경험치를 쌓지 못했다.
“더 자세히 얘기해 봐.”
자세히? 케인의 요구에 새틴은 머리를 긁적이고 천천히 말했다.
“다들 선생님의 제자가 되고 싶어 한다며. 그럼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나? 기억을 잃기 전에 내가 선생님의 제자였다면, 그 위치를 되찾고 싶어 한다고 해도 억지스럽진 않을 것 같은데.”
말이 길었다. 케인은 생각 중인지 대꾸 없이 턱만 만지고 있었다.
지금의 새틴은 예전의 새틴과 다르다. 다른 아이들과도 다르다. 이 세계의, 정확히는 지금 이 학교 안의 당연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만약 ㅇㅇ가 아니라 진짜 기억 상실인 새틴이 여기에 있다면 어땠을까.
사람의 본성이 착한지 나쁜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더 여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은 선악과 관계없는 당연한 심리가 아닐까.
기억을 잃고 깨어났는데 눈앞에 금괴가 떨어져 있다. 그런데 그것이 원래 자신의 것이었다고 주위에서 말한다. 줍고 싶지 않을까? 당연히 주워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나한테 마력을 보는 능력이 생겼잖아. 선생님은 이 부분에 관심이 있어 보였어. 마법사가 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면 분명.”
“그 늙은이가 널 이용하려고 하겠지.”
“그래, 그러다 보면 연구실에도 들어갈 기회가 있을 테고.”
“몰래 들어가는 것보단 확실히 실현 가능성이 있어 보이네.”
“그렇지?”
“네가 그러다 그 늙은이한테 넘어가면?”
“어?”
새틴이 눈을 끔벅이자 케인이 의심 가득한 시선을 마주쳐 왔다. 새틴은 그 얼굴이 마치 덫을 확인하는 야생 고양이 같다고 생각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원래 너는 그 늙은이의 충실한 종복이었단 말이지. 네가 또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믿어. 안 그래?”
“응, 합리적인 의심이지…….”
새틴은 멋쩍게 웃었다. 이런 의심을 받은 적이야 처음이 아니다. 악인의 옆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악인으로 보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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