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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한 소설의 분위기가 위기-8화 (8/139)

8화

새틴의 말에 케인은 코웃음 쳤다. 그러나 새틴은 미래를 알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전 기사단이 케인을 구하러 온다. 엄밀히 말하자면 케인을 구하러 오는 건 아니고 여기 있는 아이들을 모두 구하러 오는 것이지만 아무튼 그때 케인 역시 구해진다.

‘하지만 그러려면 일단 선생님이 나쁜 사람이어야 하는데.’

새틴은 아까 들은 로저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이들은 새틴을 부러워한다. 함께 먹고 자고 공부하지만 새틴만이 선생님의 진짜 제자니까. 케인은 아니라 해도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진짜 제자라서 새틴만 선생님의 복수를 하러 나서는 건가.’

악랄한 흑마법사라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일 수 있지.

문득 궁금해졌다. 흑마법사와 보통의 마법사는 어떻게 다르기에 신전 기사단은 선생님을 처단해야 한다고 판단했을까.

“왜 그렇게 쳐다봐?”

생각에 잠긴 새틴이 저를 흘겨보는 줄 알았는지 케인이 퉁명스레 따졌다.

스무 살의 케인은 제법 체격이 번듯하다고 묘사되는데 지금은 평범하다. 새틴보다 눈높이도 낮았다. 아래서 노려보니 자연히 눈을 치뜨게 되었다.

새틴은 저도 모르게 말했다.

“이제 보니 너 좀 새끼 고양이 같구나.”

“뭐?”

“아, 미안. 딴생각을 하다가 그만.”

“……정말 제정신이 아니군.”

케인이 몹시 화난 얼굴로 쿵쿵거리며 서고를 나가 버렸다.

멋쩍어진 새틴은 지금의 대화를 또 누가 들었을까 봐 서고를 빙 돌아봤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카라칼이라고 할 걸 그랬나.’

∞ ∞ ∞

“뭐라도 먹으려고 얼쩡거리는 건 아니지, 케인?”

부엌을 지나는데 털북숭이 루퍼스가 물었다. 케인은 “필요 없어.”라고 신경질적으로 대꾸하고 복도를 가로질렀다. 로비에 이르자 열린 문밖에서 멋모르는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새끼 고양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릴.’

새틴이 한 말을 생각하니 절로 얼굴이 뜨거워졌다. 부끄러워서는 물론 아니고 열이 뻗쳐서다.

새틴은 정말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말끔히 정돈된 침대만 봐도 예전의 새틴과 달랐다. 전엔 침대고 책상이고 제대로 정리한 적이 없는데 지금은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 단정했다.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케인도 얼핏 주워듣긴 했다. 그래서 새틴에게 무슨 일이 있었으리란 짐작은 했는데.

‘기억을 잃었다고?’

로저스와 새틴이 문밖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의심을 다 지우지 못했다. 미친 늙은이의 제자랍시고 나대는 인간이니 분명 야비한 수작을 부릴 셈이 아닌지.

케인이 이곳에 왔을 때부터 새틴은 그를 싫어했다. 아이들은 케인이 새틴을 일방적으로 싫어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새틴도 케인을 싫어했다.

그 이유를 케인은 안다. 경쟁자라 생각해서다.

로저스는 선생님이, 그 미친 늙은이가 새틴을 제자로 삼은 줄 알지만 틀린 생각이다. 케인은 처음 만났을 때 미친 늙은이가 한 말을 똑똑히 기억한다.

‘자질이 있다고 했지.’

그때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곳에 와서 시간이 좀 지난 후에야 알았다.

여기 오는 아이들은 모두 열둘이나 열세 살 정도다. 로저스는 열네 살이지만 여기 온 지 일 년이 넘었다고 들었으니 처음 왔을 땐 열둘이나 열세 살이었을 테다.

미친 늙은이가 아이들을 데려오는 데는 기준이 있었다. 어리되,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어리지는 않을 것. 순종적이고 그리 영민하지 않을 것. 의탁할 사람이 없을 것.

요약하자면 그 늙은이는 다루기 쉬운 꼬마들을 선호했다.

케인은 그 기준에서 전부 벗어났다. 열여섯 살이나 되고, 그리 고분고분한 성격도 아니었다. 의탁할 곳은 없지만 거리에서 함께 지내던 무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케인은 여기에 있다. 미친 늙은이가 마법사인 줄 모르고 소매치기를 하려다 붙잡혀 왔다.

‘확실히 알아보고 건드렸어야 했는데.’

케인은 본디 꼼꼼한 성격이었다. 목표를 고르는 데도 신중했다. 그런데 그 늙은이가 너무 허술해 보여 섣불리 건드린 결과가 지금이다.

‘두 번 다시 그런 실수 안 해.’

미친 늙은이가 무슨 꿍꿍이인지 알아내려고 최대한 얌전히 지내다 보니 새틴이 자꾸 눈에 띄었다.

새틴은 케인과 조건이 비슷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나이가 많고, 순종적인 체하지만 간혹 비열한 성격이 드러났다. 미소를 거둔 얼굴은 기분 나쁠 정도로 차가웠다.

‘뱀 같은 자식.’

다른 아이들은 그 이중적인 면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늙은이가 모를 리 없다. 성격이야 어떻든 쓸모가 있다 생각했으니 데려왔을 거다. 아니면 그런 성격이라 더 쓸모 있었을지도 모르고.

혹시 새틴은 아이들과 다른 이유로 여기에 온 게 아닐까. 그리 의심하자 케인은 제가 여기 온 이유도 자연히 알게 되었다.

늙은이가 말한 자질은 마법사의 자질을 뜻했다. 어쩌면 케인은 새틴의 대체품이 될지도 모른다.

아직 확실하게 알아낸 것은 없지만 케인은 확신한다. 미친 늙은이가 무언가 획책하고 있다고. 분명 좋지 않은 일을.

“어, 케인.”

계단을 뛰어 내려오던 팀은 제가 불러 놓고 당황했다. 케인은 무시하고 지나가려다 멈췄다.

“야, 생쥐.”

“생쥐라고 하지 마.”

팀이 발끈해서 눈을 홉떴지만 손톱만큼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생쥐 같았다.

‘고양이 앞의 생쥐 꼴인데.’

픽 웃으며 생각하다 보니 짜증이 났다. 아까 새틴이 한 말이 떠오른 탓이다. 무심결에 인상을 썼더니 저한테 화가 난 줄 알았는지 팀이 기가 죽어 눈치를 봤다.

“왜 불렀는데…….”

“너 어젯밤에 어디 갔었어.”

“어, 어? 무슨 소리야?”

시치미를 떼며 팀이 눈을 굴렸다.

“너 어젯밤에 어디 갔다 왔잖아. 내가 봤어.”

사실은 보지 못했다. 어젯밤 케인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기척에 예민하기에 앞방이라는 걸 바로 알았다.

누군가 방을 나갔지만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하나여서 혼자 나갔다고 짐작했을 뿐.

앞방에 사는 아이는 팀과 로빈이다. 로빈은 아침을 먹으며 떠봤는데 무슨 소리냐고 어리둥절해했다. 그렇다면 자연히 발소리의 주인은 팀이 된다.

“화, 화장실에 가려고…….”

“거짓말하지 마. 계단으로 내려가지도 않았잖아.”

화장실이며 세면실, 목욕탕은 모두 1층에 있다. 다른 아이의 방에 놀러 간 거라면 굳이 거짓말을 하지 않을 테니 팀이 간 곳은 뻔했다.

“선생님한테 갔었지?”

케인이 확신을 담아 물으니 팀은 대답하지 못하고 시선을 떨어뜨렸다. 매일 밖에서 노느라 그은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왜 갔어?”

“여쭤볼 게 있어서…….”

“그 밤중에?”

“그럴 수도 있지. 궁금한 건, 바로 물어봐야 하니까.”

말도 안 되는 변명을 주워섬겼다.

“선생님이 부른 건 아니고?”

팀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아직 어려서 동요를 감추는 법을 알지 못했다. 애당초 미친 늙은이가 이런 애들만 골라 데려온 결과다.

케인은 혹여 주위에 누가 있을까 봐 휘휘 둘러보았다. 팀도 이제야 걱정이 되는지 따라 했다.

“생쥐, 너도 알겠지만 새틴이 지금 기억이 없잖아.”

“으응…….”

“선생님 입장에서는 다른 제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지 않았을까, 싶은데.”

팀은 대꾸하지 않고 케인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가늠하듯 흘끔흘끔 눈치를 살폈다.

케인은 짐짓 친절한 체하며 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물론 팀이 친절로 받아들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여기 있는 아이들은 모두 케인을 약간 어려워했다. 저희와 다른 부류임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인지.

“그렇잖아. 아무것도 모르는 새틴이 선생님을 어떻게 도와드리겠어.”

“맞아…….”

“그래서 선생님이 널 부르신 거야?”

“그게, 비슷해.”

“뭘 도와드렸어?”

팀이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케인은 픽 웃었다.

“난 마법사 되고 싶은 마음 없어. 그냥 새틴이 싫어서 그래.”

속삭이는 소리를 들은 팀이 긴가민가한 얼굴로 케인을 올려다보다 침을 삼켰다. 아직 목울대도 올라오지 않은 목이 살짝 울렁였다.

“난 새틴 말고 네가 선생님의 제자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

거짓말이다. 미친 늙은이의 제자 따위 누가 되든 알 게 뭐람. 케인은 그저 그 늙은이가 연구실에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다.

팀이 우물쭈물하다 말했다.

“나, 난 새틴도 좋아하는데……. 새틴은 나한테 잘해 줬어…….”

어린애들이란.

제 앞에서 다정한 체 웃는 새틴의 눈이 뱀처럼 차갑다는 걸 팀은 여태 모른다. 기억을 잃기 전이나 후나 그 점만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모를 그 얼굴은 종종 케인을 불쾌하게 했다.

물론 케인은 속으로 한 생각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냥 새틴이 할 수 없게 된 일을 네가 하는 것뿐이잖아.”

“……그런가?”

“그러니까 말해 봐. 선생님이 널 제자로 삼으실 거 같아?”

머뭇대던 팀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아까 확인했으면서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더니 조그맣게 속삭였다.

“선생님이 새로운 공식을 발견하셨는데, 그걸 쓰려면 내 도움이 필요하대.”

“무슨 공식?”

몹시 수상쩍다. 마법의 공식을 발견했다는 건 이미 그 마법이 무언지 안다는 뜻이 아닌가. 그러니 발견했다고 말했겠지. 그런데 왜 이제 와 도움이 또 필요하지?

팀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몰라. 확인해 봐야 한다고 하셨어.”

“흠.”

“근데 이거 비밀이야. 알겠지?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마. 새틴하고 어색해지면 어떡해…….”

걱정이 됐는지 팀이 연신 당부했다. 케인은 알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가 봐.”

“응?”

“가서 놀라고.”

“으응.”

팀이 눈치를 보다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케인은 턱을 문지르며 2층으로 올라갔다.

‘새로운 공식을 확인한다는 게 무슨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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