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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한 소설의 분위기가 위기-1화 (1/139)

1화

1부

난 누나를 믿었던 만큼 누나의 취향도 믿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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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죽었다.

누나는 남을 돕길 좋아하는 이타적인 성격으로 예전부터 손해를 많이 봤는데 죽는 순간까지도 그 성격이 어디 가지 않았다. 평생 무단횡단 한번 한 적 없다던 누나는 도로의 아이를 구하려다 트럭에 치여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누나와 우애가 좋았던 나는 크게 상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은…….

아니, 아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지금 사연팔이나 할 때가 아니다. 천사를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해서야 되겠는가.

다행히 천사는 내가 딴생각을 하는 줄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실 잘 모르겠는데 그래 보였다.

―그대의 누이가 쌓은 덕이 많아 상위 차원에 올랐다.

“……그런데요?”

―남은 덕이 있어 그대에게 상속되었다. 기뻐하라.

“상속이요? 덕이 상속이 돼요?”

―그렇다. 상위 차원에 오르는 데 필요한 덕이 얼마나 많은지 그대 같은 존재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겠지. 심지어 남아서 상속하다니, 이는 천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상위 차원이 뭔진 몰라도 누나 굉장하네.

멍하니 감탄하는데 천사가 날개를 펄럭하더니 묻지 않은 말을 했다.

―보아하니 그대의 덕은 비루한 수준이군.

“예에…….”

나야 뭐 누나와 달리 평범한 사람이었으니 덕이랄 게 쌓였을 리 없지. 업보가 쌓였다면 모를까.

―걱정하지 말라. 물려받은 덕으로 그대는 인생 역전이 가능하다.

지금 생각한 건데 이 천사 말투가 좀 이상하지 않나. 천사라는 것도 본인 주장일 뿐 내 눈엔 그냥 괴상한 깃털 덩어리로 보인다. 머리 달린 깃털 덩어리…….

솔직히 너무 무섭게 생겼어……. 아까 처음 나타나서 한 말도 그거였다고. 두려워 말라.

진짜 천사일까. 쳐다보고 있으면 홀리한 기분이 들긴 한다만.

다시금 날개가 펄럭였다.

―그대, 원하는 것을 말하라.

“뭐든 가능한가요?”

―거의 대부분.

“그럼 누나를 살려 주세요.”

―그건 불가능하다.

“제가 대신 죽어도요?”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대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상위 차원으로 올라간다는 건 아주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렇기에 이미 상위 차원에 오른 그대의 누이에게 하위 차원에서 되살아나라는 것은 벌과 같다. 덕을 쌓은 이에게 벌을 주길 바라는가.

“그건 아니지만…….”

누나가 억지로 간 게 아니라면 내 마음대로 데려와서는 안 되겠지.

“그럼 마지막으로 누나를 보고 싶어요.”

―그것 역시 불가능하다. 상위 차원의 존재는 함부로 하위 차원으로 내려올 수 없다. 누이의 입장에서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것이다. 이 역시 그대가 바라는 바가 아니겠지.

인생 역전도 가능하다더니 뭐 되는 게 없네.

“그럼 됐어요. 전 뭐 오래 살 생각도 없고, 인생 역전하고 싶단 생각도 안 해 봤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깃털 덩어리가 꿈틀거렸다. 표정은 그대로인데 깃털이 기괴하게 움직이니 너무 무섭다.

―원하는 게 없다는 뜻인가?

“딱히 생각해 본 게 없는데요.”

―잘 생각하라. 다시없는 기회다. 이 덕을 이용하면 그대는.

“아.”

―무얼 원하는가.

문득 생각난 게 있지만 너무 말도 안 되는 얘기라서 좀 쑥스러웠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자 깃털 덩어리가 몸부림을 쳤다.

―일단 이야기를 해 보라.

“너무 황당해서요. 신경 쓰지 마세요.”

―해 보라.

“웃으면 안 돼요.”

말하고 나니 실수 같다. 아까부터 표정이 전혀 안 바뀌고 있거든. 웃을 줄 모를지도 몰라.

다행히 내 말을 모욕으로 받아들이진 않았는지 깃털 덩어리는 타박 없이 독촉했다.

―말하라.

“그, 누나가 쓰던 소설이 있는데…….”

―그러한데.

“아니에요. 역시 너무 그러네요.”

―말하라, 그대!

깃털 덩어리가 부르르 떨었다. 표정에서는 기분을 도통 짐작할 수 없지만 어쩐지 화가 나 보였다. 진짜 무서워서 그냥 이야기했다.

“그 소설에 들어가고 싶어요.”

깃털 덩어리는 말이 없었다.

고민 중일까. 내내 즉답하더니 지금은 고민을 하는 이유가 뭘까. 아예 불가능한 일이 아니어서?

정말 신기하네. 누나 한 번 만나는 것보다 누나가 쓴 소설 속에 들어가는 게 더 쉬운 일이란 말이야?

이윽고 깃털 덩어리가 입을 열었다.

―……그대는 그 소설의 내용을 아는가?

“아뇨.”

보여 달라고 하면 한사코 안 된다고만 해서 보지 못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덕을 너무 많이 쌓아 동생에게 물려줄 정도인 누나다. 누나가 쓴 소설이라면 분명 아름답고 희망찬 내용일 거다.

“그 소설 속에서 누나가 가장 아끼는 인물의 삶을 살아 보고 싶어요.”

내가 살아온 인생이라고 해 봐야 스무 해밖에 되지 않지만 대충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은 이해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누나처럼 따뜻하지 않다. 미지근한 수준조차 못 된다.

이 차가운 세상에서 아무리 대단한 선물을 받아 봐야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을 게 뻔하다. 돈도 명예도 미모도 권력도 다 부질없다고 하잖아.

그러나 만들어진 세상은 다르다. 누나의 상상과 꿈이 담긴 이야기 속에서라면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고난도 역경도 없이, 그곳에서 괴로운 일은 오직 누나를 못 보는 일뿐이겠지.

“불가능한가요?”

―가능하다.

“아니, 어떻게 그게 돼요?”

내가 요청했지만 어떻게 그게 되지?

―그대와 같은 하위 차원의 존재는 상상으로 씨앗을 만들 수 있을 뿐이나, 상위 차원의 존재는 꽃을 피울 수 있다.

“뭔 소리예요?”

―그대의 누이가 상위 차원에 오르며 하위 차원의 존재이던 시절 상상한 세상은 이미 생겨났다.

“와, 엄청나네요.”

SF 영화에서 본 장면들이 마구 생각났다. 상상한 대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니. 진짜라면 굉장한데. 누나 진짜 굉장해졌네.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으니 깃털 덩어리가 다시 물었다.

―그대는 정녕 그 세상으로 가고 싶은가? 그곳에서는 아무리 덕을 쌓아도 그대의 누이가 있는 차원으로 오를 수 없다. 새로이 피어난 세계는 비교하자면 최하위 차원. 현재 그대가 머무는 차원보다도 훨씬 낮은 차원이다.

깃털 덩어리는 그것이 아주 심각한 문제라는 양 말하지만 내게는 그 의미가 잘 와닿지 않았다. 잠깐 머리를 굴리다 물었다.

“여기서 덕을 쌓으면 누나와 같은 차원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있나요?”

―없지는 않다.

“구체적으로 말해 봐요.”

―지금까지 그대가 살아온 삶을 근거로 유추하자면 0.000000000…….

“네, 됐어요. 그만 말해도 되겠어요.”

깃털 덩어리가 가볍게 몸을 떨었다.

―하위 차원의 존재란 참 이해하기 어렵군.

“소원 수리는 언제쯤 되죠?”

―그대, 눈을 감으라.

빙의한 소설의 분위기가 위기(연재)

지은이 | 쇼시랑

발행처 | 블루코드

발행일 | 2022. 8. 10.

표지 일러스트 | 진월

편집 | 코드네임 K

교정 | 코드네임 P

E.mail | [email protected]

Twitter | @bluecode_k

ISBN 979-11-6225-565-0(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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