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0/61)

외전 Meow

“야옹.”

“……아.”

누워 있던 나는 마룻바닥에 펼쳐 둔 책을 팔락팔락 넘기다가, 책등 위에 얹힌 까만 솜뭉치가 거슬려 페이지에 박혀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책 앞에 있던 까만 고양이가 노란 눈을 등불처럼 깜빡거렸다. 이 시간이 되면 어느새 와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대는 어느 이름 없는 손님이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서 동그란 머리를 쓸어 주었다.

“왔어?”

“야옹.”

그러자 내 손바닥에 비비적대는 고양이가 기분 좋게 울었다. 빈 마루 복도에 그 소리가 낭랑하니 울려 펴졌다. 주현이가 일을 나가고 비어 버린 이 오래된 집에는 나 혼자 오후의 나른함을 즐기고 있던 터였다.

“배고픈가…….”

‘밥을 줄까. 아니, 밥이 없나?’

저번에 주현이가 사 오고, 내가 노가다 뛰던 경력으로 개조를 거쳐서 정원에 설치한 고양이 식탁을 보았다. 좋은 결의 가을바람을 나붓하게 들여보내 주는 덧문 너머로 반쯤 남아 있는 캔과 사료, 깨끗한 물이 고여 있는 게 보였다. 양껏 먹은 걸로 보아 배고픈 건 아니고…….

“심심하구나, 너.”

“야옹.”

맞다는 듯, 기다랗게 자란 하얀 수염을 슬며시 흔드는 게 밉지 않았다. 어떻게 놀아 줄까, 하다가, 전에 고양이가 간간히 낮에 온다는 소리를 듣던 주현이가 장난감을 사 두는 게 어떻냐고 하던 게 기억이 났다. 같이 마트를 갔다가 애완용품 코너에서 귀여운 생쥐나 깃털 따위가 들린 것을 잔뜩 든 채로 영업사원마냥 내게 권유하던 들뜬 모습. 그때 왠지 낭비하는 기분이라 다 내려뒀는데…….

‘살 걸 그랬나.’

머리를 긁적이던 나는 마루 주변과 열려 있는 덧문 사이로 뭔가 대체할 게 없나 찾아보다가 하늘하늘한 바람에 흔들리는 강아지풀을 발견했다. 꿩대신 닭이라고, 몸을 마루 바깥으로 숙여서 꺾어 온 복슬복슬한 강아지풀을 가지고 고양이의 눈앞에서 살살 흔들었다.

“……자.”

그러자 순하게 껌뻑껌뻑 대던 노란 눈이 일순 가늘어졌다. 야생의 본능을 자극하고자 볕이 내리 쬐는 목재 마루에 강아지풀 꼬리를 가만히 내려두었다. 동시에 고양이의 동그란 몸체가 바닥에 납작하니 달라붙었다. 통통한 강아지풀 꼬리를 한 번 또 흔들어 주었다. 그러자 조용하고, 느긋하던 고양이가 내가 쥔 강아지풀에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아야.”

“야옹.”

내 손에 손톱을 살짝살짝 걸던 녀석이 내심 내 피부인 것을 알고 손톱을 갈무리 하는 게 느껴져서 그런가 엄청 아프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반복해서 놀아 주고 나니 이제 내가 지쳐서 마루에 누웠다. 서늘한 바람이 지나간 마룻바닥은 기분 좋은 열기에 들뜬 내 등허리를 식혀 주었다.

“타임. 우리 타임 하자…….”

“……야옹.”

한참 졸라대며 놀던 고양이도 심심했던 몸이 제법 풀렸는지 내 옆구리에 와서 몸을 웅크렸다. 누운 몸을 편히 풀어 두고 있으니 열려 있는 덧문 너머 처마 끝에서 볕을 부드럽게 꺾어 주는 게 보였다. 덕분에 빛이 주는 온기는 나와 고양이가 있는 곳을 비추면서도 눈이 부시거나 아프지 않았다. 따뜻하고, 또 안락한 그런 날. 비어 있는 집이지만 그렇게 또 가득 채워진, 그런 수많은 날의 오후.

‘주현이 오면 장난감 사러 가자고 해야지…….’

나는 작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른함이 선사하는 오수를 달게 받아들였다.

“가하.”

기분 좋게 흔들, 흔들대는 부유감 가운데 다정한 목소리가 따라 붙었다.

“들어가서 자야지.”

졸음에 겨운 눈은 여전히 감긴 채였지만 뜨지 않아도 누군지 알았다. 주현이가, 왔구나.

“고양이가 와서…….”

“……어쩐지 티셔츠가 털 범벅이야. 그러다 벌레 묻혀 오면 어쩌려고.”

그는 투덜대면서도 싫지는 않은지 내 뺨을 쓸었다. 그 차가운 손길이 졸음에 달뜬 뺨을 쓸어내리는 게 기분 좋았다. 늘 그렇듯이…….

나는 무심코 그 손에 내 뺨을 더 갖다 대며, 왜 고양이들이 그렇게 사람 손에 비비적대는지 문득 알 것 같았다. 그는 내 뺨을 쓸다 말고 나를 푹신한 바닥에 내려주었다. 침대인 모양이었다.

“더 자.”

그 서늘한 체온이 좋아서, 한결 같은 그 온도가 안심이 되어서, 또…….

“같이…… 자자.”

“…….”

나는 떨어져 나가는 그 손길을 붙잡았다. 내 손이 닿은 그의 피부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고 적당했다. 그는 가만히 말이 없더니, 이내 옷감이 스쳐지나가는 소리가 멈추고 나서 내 옆에 누웠다. 등 뒤로 느껴지는 특유의 체온에 기분이 괜히 좋아서 몸을 돌렸다. 그는 천천히 나를 껴안았다. 얼굴에 닿아 오는 그의 가슴팍 너머로 두근대는 심장 소리. 껴안은 팔의 안정감. 번져들어 오는 체온…….

“좋다.”

좋았다.

“……나도.”

바라던 하루, 모여서 일주일, 그렇게 한 달……. 쌓여서……. 우리가 살아갈 그 전부. 너와 나 마주보고 웃을 수 있는 매일. 그저 서로의 존재를 축복처럼 여기며 그렇게 살아가는 한 평생.

수 없이 평범한 날들 가운데 너와 내가 언제나 함께하는 것.

그게 사랑이겠지.

나를 네 곁에 있을 수밖에 없게 하는 이유이자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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