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화 (56/61)

* * *

제법 좋은 병실인지, 병실에 딸린 샤워실 위로 뚫린 천창 위에 구름 하나 보이지 않는 가을의 하늘이 보였다.

‘주현이가 잡아 준 병실인가. 아마 그렇겠지.’

그 애에게는 이깟 게 얼마 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그 애의 눈과 닮은 하늘의 색깔을 가만히 쳐다보면서 샤워기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물줄기에 얼굴을 대었다.

‘닮은 색깔이면, 뭐가 어때서.’

얼굴선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제법 거세게 쏟아지며 나를 깨웠다.

‘별 생각을 다하네.’

“……각인 때문인가…….”

나는 가슴팍에서 계속 알려대는 그의 혼란한 마음을 전달 받으며 샤워를 마쳤다. 그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등급이 낮아서 가이드가 필요 없었다.

‘그러니 날짜를 정해 두는 식으로 최소로 가이딩을 받고 떨어져 산다면…….’

나는 어떻게 하면 그와 멀어질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수건으로 물기 젖은 몸을 닦고 간호사가 가져다 준 새 입원복으로 갈아입었다.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는 수건으로 훅 털어도 물기가 남아서 입원복의 목 부분에 달라붙었다. 몸이 좀 회복되고, 바깥에 나갈 수 있게 된다면, 머리부터 자르러 가야겠다 싶었다. 각이 잡힌 새 입원복이 몸에 맞지 않아 붕 뜨는 것을 가라앉히면서 병실로 나오자 아무도 없었다. 그새 주현이가 가 버린 모양이었다.

“……제멋대로야.”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어째 한 수 앞도 예상을 하지 못하게 움직이는지.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침대에 누웠다.

“……뭐하지.”

간단한 샤워를 하는 것 마저도 아팠던 몸에는 무리가 가는지 벌써부터 노곤하게 지치게 했다. 베개에 얼굴을 비스듬히 뉘인 채로 침대에 엎어져서 창문가의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얼른 몸이 회복되면 좋겠는데.’

하지만 나간다고 뭘 할 수 있을까.

주현이 덕분에 일그러진 인생은 남들 다 떠받치는 삶의 무게도 이기지 못했다. 그런 주제에 남의 집을 짓고 다녔다니, 그것도 조금은 우스운 일이었다.

‘다시 나가서, 노동을 할까. 아니면 전에 했던 것처럼…….’

나는 대호와 함께 살던 조그만 도시에서 비로소 누릴 수 있었던 평화와 여유를 떠올리며 슬쩍 웃었다. 운이 따라 주지 않는 인생의 달콤한 휴식과도 같은 날이었다.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고 말은 내가 어쩌면 평생, 돌아가지 못할 그런 날들.

‘대호, 덕분에…….’

대호. 나는 그 생각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가 이내 폐부에 훅, 치닫는 헛숨에 몸을 다시 구부정하게 숙였다.

‘으.’

“하아, 하아, 하아…….”

갓 깨어난 몸은 어디 알에서 깨어난 새끼인 것 마냥 조금만 급하게 움직여도 버벅대기 일쑤였다. 나는 굳어 있던 몸이 일으키는 더딘 작용에 살짝 짜증을 느끼며 숨을 편안하게 내쉬며 몸을 천천히 움직였다.

대호는,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을까.

‘혹시, 주현이가 어떻게 한 것은 아닐까.’

나는 내심 걱정을 하며 병실 침대를 나섰다. 텅 빈 병실 복도에 나와서 잠시 헤매다가 같은 층에 있는 간호사 실에 다다라서야 간호사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무슨 병원이 간호사 하나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이렇게 넓지? 아니면 간호사가 별로 없는 병원인가…….’

나는 넓은 층의 공간과 달리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이상하게 느끼며 [20층 병동 간호사실]이라고 적혀 있는 간호사실 앞에 섰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틀어진 접수대에 앉아 있던 남자 간호사가 나를 알아채고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디 불편하신데 있으신가요? 콜 눌러 주시면 제가 갔을 텐데요.”

“아뇨. 그냥 전화 좀, 빌리고 싶은데요.”

“물론이죠. 그런데…… 잠시만요. 9번 누르고 전화번호 누르시면 돼요.”

그는 나를 향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핸드폰이 아닌 옛날 다이얼 전화기를 건넸다. 보아하니 제법 좋은 내장으로 인테리어를 해 놓았는데, 쓰는 전화기는 기대했던 것과 달리 영, 구닥다리였다.

나는 접수대 앞에 세워진 달력의 커다란 숫자를 읽으면서 망설였다.

‘아직도 동생이 그 번호를 쓸까. 내가 아는 대호의 번호도 외국 번호고. 그걸 누른다고 연결이 될까. 누구 다른 사람이 쓰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니 누구 전화할 수 있는 사람 하나도 없다는 처지라는 게 확연하게 느껴졌다. 주현이처럼 누가 오지 않고서야…… 끈 떨어진 사람마냥 누구 하나 아는 사람, 만날 사람 없다는 것.

하지만 주현이 성격에 과연, 동생에게 내가 깨어났다고 바르게 말이나 할까. 동생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다시 그 집에 돌려보내는 게, 더 그럴 듯 했다.

‘주현이라면 그러고도 남지.’

내가 수화기를 들고서 뚜-하고 들리는 소리만 들으며 아무 번호도 누르지 않자 간호사가 의아하게 물어보았다.

“왜 그러세요? 뭐 필요한 거 있으신가요?”

“아…… 아니요. 아뇨 그냥요. 생각 좀…… 하느라.”

어쨌든 간에, 나는 기억날 듯 말 듯, 희미한 동생의 예전 핸드폰 번호를 떠올리며 다이얼 번호 버튼을 차르륵 차르륵 굴렸다.

‘우선 걸어 보자. 혹시 모르니까.’

그러자 다행히 신호음이 들렸다. 번호가 없어진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도.’

나는 큰 기대를 품지 않으며 전화를 끊지 않고 신호음을 계속 들었다. 그냥, 누구라도 받았으면 했다. 병실에 돌아가 봤자 지루한 시간을 해결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길지 않은 연결 음이 끊기고 수화기 너머로 금방 낭랑한 대답이 들려왔다.

―예, 유가연 입니다. 무슨 일이세요?

“…….”

전화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의 주인은 가연이었다. 아직도…… 이 오래된 번호를 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기대하지 않은 결과에 얼떨떨해서 뭐라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가연이는 불안한 기색으로 다시 말을 꺼냈다.

―끊겼나? 아닌데……. 여보세요. 저기, 저희 오빠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왜 연락 주셨어요?

“……가연아.”

―…….

내가 마르게 메이는 목소리를 겨우 넘어서 대답하자 이제는 도리어 가연이가 말이 없었다. 나는 혹시라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까 덧붙였다.

“……오빠야.”

―……오, 빠?

“응. 나야 방금…….일어났어.”

―정말 오빠야? 정말? 잠시만, 우리 오빠 병원인데. 아니, 아니. 지금 깨어난 거야? 내가 지금, 꿈을 꾸나. 이거…… 진짜 오빠야? 진짜, 우리 오빠……?

가연이는 믿기지 않는 듯, 나를 연신 불렀다. 나도 믿기지가 않았다. 남은 희망처럼 걸었던 전화가 이어졌다는 것에. 어딘가 모르게 성숙해진 동생의 목소리는 내가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는 게 훅 느껴졌다.

‘다시 보면 또 달라져 있을까…….’

“……응. 아직도 이 번호 쓰네. 혹시라도 전화 다른 사람이 쓰는 거 아닌가 순간 걱정했어.”

―……그냥 바꾸고 싶지 않아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나는 정말……. 사고 있었다는 연락 받고 와서 보니 너무, 끔찍하고. 오빠가 잠들어 있어도 계속 아파해서……. 정말로 잘못되는 줄 알고…….

동생은 작게 웃다가 울먹이는지 목소리가 흔들리더니, 엉엉 울었다. 제대로 된 말 하나 꺼내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 나도 그 서러운 울음소리에 눈물이 흘렀다.

“왜 울어. 울지 마.”

―어떻게 안 울어.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나 보고 걱정하게 하지 말라면서 오빠가 더…….

“……그래서 일어났나 보다. 우리 가연이가 걱정…… 해서.”

“이거, 쓰세요.”

전화를 받고 있는 내게 나풀거리는 티슈가 건네졌다. 접수대의 간호사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작게 숙여서 감사를 표하고 뺨에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가연이도 울던 것을 조금 멈추고 코를 푸는 듯, 흥흥 대기를 연발했다. 왠지 소리만 들어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가족이니까…….’

―그렇지, 대호 오빠는 오빠 깨어난 거 알아? 대호 오빠도 병동 가서 꼭 일주일에 한 번 씩은 오빠 보고 갔거든. 알려 주면 엄청 좋아할 거야.

“아……. 아니, 전화번호를 몰라서…….”

―맞다, 맞다. 그럼 내가 알려 줄게. 오빠가 연락하면 되게 기뻐할걸?

가연이 깜빡했다는 듯이 연신 말하다가, 대호 이야기를 꺼냈다. 안 그래도, 나도 궁금하던 차였다.

“……대호는 잘 지내?”

주현이가 그 이후로 대호에게 나쁜 짓을 하거나 어디 아프게 한 것은 아닐지 무척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가연이는 내 걱정과 달리 제법 산뜻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호 오빠? 응. 바쁘게 지내는 거 같던데. 요즈음에는 험한 일을 좀 많이 한다고 들었어……. 누가 조폭 집 사람 아니랄까 봐.

“……아직도 변호사……일 해?”

동생도 대호네 집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지 농을 건넸다. 그 말에 작게 웃었다가 이내 이어진 동생의 질문에 뭐라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럼. 참, 오빠 주현이는? 주현이는 안 만났어?

“…….”

아니, 동생이 찾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었다. 내가 기억이 없을 때 종종 동생이 말했던 기색을 보면 주현이가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는 눈치였다.

아마 대호가 말해 줬겠지.

‘그런데, 왜…….’

방금 전에 깨어나자마자 주현이를 보았다는 말이 생각처럼 쉽게 나오지 않았다.

아마,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 외로 주현이를 마음 깊이 증오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하아.”

―……괜찮아? 무슨 일…… 있어?

그 애의 이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덜덜 떨리는 손을 꾹 쥐고 한숨을 쉬자 동생이 조심스러워진 어투로 말했다. 엉엉 울던 애가 전화 너머로 눈치를 보는 게 느껴져서 괜히 미안해졌다.

‘나 때문에 안 그래도 정신없는 애에게 무슨 짓이야.’

“아니, 아니……. 그냥, 좀 숨이 차서……. 주, 현이. 응 아까…… 만났어.”

―그랬구나. 그나저나 오빠 몸 괜찮은 거야? 얼른 주현이에게 의사 선생님 불러 달라구 해.

“응, 그럴게. 지금은 괜찮아. 오랫동안 누워 있어서 그렇대.”

―그럴 만 해. 정말, 그렇게 오랫동안…… 잠들어 있을 줄은 몰랐어.

내 태연한 거짓말에도 동생은 연신 걱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 우려에 내 선량한 구석의 마음이 조금 찔렸다.

―주현이가 옆에 없었더라면…… 바로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얼마나…….

“…….”

가연이는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자니 마음이 복받치는지 훌쩍였다. 주현이가 내 옆에 없었더라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는 어쩐지 순하게 들어오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야.

“……응.”

―참, 내 정신 봐. 대호 오빠 번호 불러 줄게. 펜 있어?

“응, 응. 불러 줘.”

그렇지만 내가 깨어났다고 기뻐하는 동생에게 궂은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든, 동생에게는 내가 깨어난 기적과 같은 날이었으니까.

나는 대호의 번호를 받아 적으면서 동생이 말했던 말을 계속 속으로 곱씹었다. 동생은 주현이가 있어서 내가 살아남았다고 했지만…….

그가 내 곁에 있는 것으로 내가 살아나도 살아난 게 아니라.

‘왜, 죽어 가고 있는 것만 같을까.’

대호의 핸드폰 번호의 마지막 숫자를 툭 적으면서 나는 결론을 내렸다. 고개를 드니 넓은 병원 복도 정면에 위치한 통유리 창 너머로 남산타워와 한강이 보기 좋게 들어왔다.

“그래, 또 전화할게. 응. 천천히 와…….”

수화기를 제자리에 내려놓고 나는 다시 뚜-하고 울리는 전화번호 버튼을 꾹꾹 눌렀다.

그건, 내게 삶이라는 것은 주현이의 손에 이미 다 빼앗긴지 오래고.

‘이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빼면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반복적으로 울리는 연결 음은 오래가지 않아서 끊기고, 다정한 목소리를 전달했다.

―예, 황대호입니다.

“……대호야.”

―…….

전화 너머 들려오는 숨소리만이 그의 존재를 짐작케 했다. 분명 놀랐을 것이다.

“나야.”

―……가……하?

긴장이 역력한 대답에 나는 작게 웃었다.

“오랜만이다.”

―너……. 일어났구나, 일어났어. 그, 괜찮아? 몸은, 좀 어때.

숨을 삼키기도 전에 다급히 나오는 대호의 걱정 어린 말들이 나를 웃게 했다. 잠들어 있는 사이에 시간은 훌쩍 지났지만 그래도 사람은 별달리 달라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좋은 사람이 그 성질을 잃지 않고, 이 세상에 꺾이지 않으며 그대로 살아가는 게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연신 나의 안부를 물어보는 대호의 목소리가 못내 반가울 따름이었다.

“으응. 괜찮아……. 이렇게 오래 잠들어 있는지는 몰라서 조금 놀랬던 거 빼고는. 1년 동안 잠들어 있다고 하더라. 난 몰랐어.”

―……그래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잘 지냈어? 너는…….”

탄식 어린 대호의 목소리를 들어보아도 내 걱정 외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걱정이 되었다.

주현이가 혹시라도…….

내가 이 전화로, 혹은 목소리로 알지 못하는 부분을 어디 해친 것은 아닐까 싶어서.

―……너를 다치게 한 사람인데 걱정을 하고. 너는…….

“……그냥, 작은 사고였잖아. 그리고 네가 말한 걸 듣지 않은 건.”

자신의 잘못인 양 씁쓸하게 중얼거리는 대호에게 나는 덤덤하니 말하다가, 그날을 떠올리며 눈앞의 커다란 통유리 창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나야.”

대호는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속을 숨기고 온 주현이와 가까워지지 말라고, 당장 내보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지 않아서 일을 만든 것은 나였다.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거야.”

―…….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네 잘못 없어. 잘 일어났으면 됐지 뭐.”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만들어 버린 인과였다. 그렇게 응보에 가두어진 나를 두고 제 탓이라고 생각하는 대호의 말이 내 마음 속에서 까끌까끌하게 꿈틀거렸다.

아마, 대호는 내가 잠들어 있는 내내 계속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우선 만나서 이야기하자. 너 일어난 모습, 보고 싶어.

“그래. 그러자.”

―지금 문병 신청할게.

“응.”

내가 일어날 때까지, 스스로를 탓하며 괴로워했을 게 뻔했다. 나는 애써 밝게 대답하고는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간호사가 손짓했다.

“환자분 검진하러 의사 선생님 오셨어요. 혹시 통화 다 끝나셨나요?”

―가하, 너 지금 가야 돼?

“아, 네. 응, 그런 거 같아. 내가 또 전화할게. 가연이한테 전화번호 물어봐서 적어 놨거든.”

내 대답에 대호는 전화를 마무리 했다. 그러면서도 아쉬운 것인지 계속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말을 버릇마냥 반복했다.

―그래. 더 긴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 끊을게.

“응. 나중에 봐.”

수화기를 내려놓자 다른 간호사가 접수대에서 나와 내 옆에 섰다. 웃는 얼굴로 나를 다시 병실 안으로 안내했다.

“그럼, 병실로 모실게요. 간단한 검진이라서 금방 끝날 거예요.”

그녀의 말대로 나이대가 조금 있어 보이는 의사가 하얀 가운을 입고서 병실 안에 조성된 응접실에 앉아 있었다. 간호사와 들어온 나를 보고서 그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앉은 사람도 움직임을 같이 했다.

“최대한…….”

“예, 물론. 아, 마침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환자분 주치의 박하준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뵙는 건 처음이죠.”

“…….”

“잘 부탁드립니다.”

주현이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리를 비웠다 싶더니만 의사를 데리러 나간 모양이었다. 몸이 좋아야 얼른 데려가서 가이딩을 할 수 있으니까 그랬겠지. 그는 언제나 그러한 것들에 목말라 있었으니까. 삐딱하게 나오는 생각을 가지고 가만히 서 있자, 간호사가 내 팔을 붙잡고 사근하게 병실 침대 쪽을 가리켰다.

“이쪽으로 오실게요.”

“……네.”

주현이의 파란 눈을 쳐다보다가 나는 그녀의 재촉에 못 이겨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의사가 병실 침대에 달려 있는 기계를 어떻게 작동 시키더니만 침대 위에 앉은 내게 다가와서 패치 따위를 붙이기 시작했다.

분주하기 짝이 없는 의사와 간호사와 달리 주현이는 다시 소파에 앉지 않고 내 병실 침대 끄트머리 쪽에 서서 팔짱을 낀 채로 의사가 어떻게 하는지 하나하나 지켜보고 있었다. 그걸 의식한 것인지 의사는 삑삑대는 기계의 반응을 읽고서 나와 주현이를 연신 번갈아 보며 내 상태와 결과를 보고해 주었다.

“다행히, 별다른 이상이나 병세는 없습니다. 며칠 휴식을 취하면서 안정될 무렵에 퇴원하시면 됩니다. 역시 등급 높은 가이드의 능력은 남다르네요. 저도 이번에 처음 봤습니다.”

“……그런가요.”

“그럼요. 제일가는 등급의 가이드의 능력은 소위 기적에 가까운…….”

의사는 내 반응이 성에 차지 않는지, 연신 놀란 기색으로 기적이라고 설명했지만 별로 반응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내가 그의 고귀한 능력을 받을 수 있는 특별한 상대처럼 말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나를 괴롭히는 수단일 뿐이었다.

많고 많은 수단 중에 가장 강력한 수단. 그건 아마 죽을 때까지 나를 괴롭힐 것이었다.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말이 많은 의사를 두고 슬슬 짜증이 날 무렵 조용하던 주현이가 끼어들었다.

“그만. 매칭률은 어때.”

내가 우울한 생각에 빠진 사이에 주현이는 의사에게 한발 다가가서 짧게 질문했다. 그러자 의사가 머쓱하게 헛기침을 하며 침대 옆의 화면에 나타나는 복잡한 말을 읽더니만 입을 열었다.

“매칭률은 특별한 변동이 없습니다. 완벽에 가깝고……. 물리적으로 보자면 가이딩 관련해서 반응을 일으킬 만한 문제요소도 전혀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초기에 입원 하셨을 때는 가이딩이 정말 잘 작용했으니까요.”

“그러면…….”

“예. 아마……. 제가 보기엔 심리적인 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긴장한 태도가 역력한 의사의 대답을 듣던 주현이의 얼굴이 언뜻 심각하게 구겨졌다. 의사는 이제 내가 아닌 주현이에게 몸을 돌린 채, 집중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었다.

“…….”

그날 이후로 내 몸과 목숨이 한 번도 온전히 내 손 안에 있던 적이 없는 걸 알고는 있었다.

그렇지만 그걸 직접 내 눈으로 확인 당하자니 마음이 착잡했다.

‘난 이제 또, 주현이의 가이딩을 받으며, 그 가이딩을 바라며 살아갈까.’

내가 아프지 않기 위해서, 그 숨 막히는 곳에서 죽은 듯이 살아갈까.

내 몸을 가지고 둘이서 대체 뭐라 하는 건지, 싶을 때 간호사가 내 몸에 붙여진 패치 따위를 정리해 주면서 내 눈치를 보았다.

“궁금한 거 있으세요?”

“무슨…… 소리 하는지 아세요?”

“아……. 저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언뜻 듣기로는 환자분께서 가이딩 흡수율이 좀 떨어지신다고 들었어요.”

“……제가요?”

내가, 가이딩 흡수율이 떨어진다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을 때, 이마를 짚으며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주현이를 두고 의사가 내게 몸을 돌렸다. 그는 내가 간호사에게 하던 질문을 들었던 것인지 간략하게 설명했다.

“평균적인 에스퍼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거지, 건강에 지장이 있는 큰 문제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가이드와 연결이 끊긴 것도 아니고……. 제 추측이지만, 사고로 인한 작용이 아닐까…….”

주현이와의 연결이 끊기지 않았다는 말에 나는 조금 실망했다가 건강에 지장이 없다는 소리를 듣자니 그나마 좋아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그러다가도 끝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흐리는 의사의 말에 의아해졌다.

‘추측이라니. 그렇다면 의사도 제대로 원인을 모른다는 건가.’

나는 입원복의 앞 버튼을 채우면서 다시 질문했다.

“그러면…… 저는 어떻게 되나요?”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가이딩 흡수가 안 되면, 어떻게 되냐고요.”

내 질문에 의사는 어떻게 대답을 할지 갈피를 잡았는지 설명을 시작했다. 주현이는 마치 듣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내게서 등을 돌린 채로 서 있었다.

“아……. 우선, 가이딩 효과가 떨어집니다. 예를 들면…… 에스퍼의 진정과 치유 효과라든지.”

“그러면…… 이렇게 다시 다치면…….”

아주, 크게 다친다면. 내 말이 나오자 주현이의 등진 어깨가 한 번 들썩였다. 나는 그의 반응을 보면서 마지막 말을 꺼냈다.

“그때는, 죽게 되나요?”

“가하!”

“……그건.”

주현이는 몸을 돌려서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일렁거리는 푸른 눈이 분노인지, 충격인지 모를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갑자기 내 앞으로 뛰어든 주현이의 행동에 중간에 끼어 버린 의사가 제 자리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결국 뒷걸음질을 했다. 그러면서도 내 말에 뭐라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알았다.

“……두 분이서 이야기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저희는 여기서 이만……. 김간.”

“네, 선생님.”

또 이런 일이 있다면, 그때에는 정말로 죽겠구나.

의사는 주현이와 나를 번갈아 보다가 이내 간호사를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 병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주현이가 입을 열었다. 언제나 붉은 입술이 죽은 사람처럼 시퍼렇게 변해서 떨리고 있었다.

“……안 죽어.”

“가이딩 흡수가 낮다며. 그럼 죽을 수도 있다는 소리잖아.”

그의 떨리는 손이 천천히 내 뺨을 쥐었다. 달달 떨리는 손길의 주인은 한 번 겪었던 일을 떠올리는지 내 병실 침대 난간을 붙잡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무척 고통스러운 얼굴을 했다.

너도 조금은 무서운가 보다, 네 목숨과 이어진 사람이 죽는다는 건.

“가하는…… 내가.”

“…….”

‘하지만 나만큼 무섭고, 아플까.’

“내가 살려낼 거야. 그런 일, 없도록.”

그렇지만 나는 그 말이 참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할 건데.”

그는 그가 나를 살렸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상은……. 나를 두 번째 죽이는 거나 다름없다.

“집에 가두어 두고, 너만 보게 할 거야? 아무도 나를 해치지 못하게?”

“…….”

“그러면 안전하니까?”

그러지 않겠다고, 자유롭게 해 주겠다고. 빈 말 하나 말해 주지 않는 주현이는 참 그대로였다.

대호가, 동생이 그런 것처럼 바뀐 게 없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건 이럴 때 참 잔인할 따름이었다. 나는 싸늘하게 식어 가는 심장을 느끼며 실소했다.

‘무엇을 기대했을까. 어차피 너는 그런 사람인데…….’

“너만 보면 숨이 막혀.”

“……가하.”

나는 핏줄이 터질 듯이 솟구치는 그의 주먹 쥔 손등을 보면서 머릿속에서 떠다니는 원망을 뱉었다. 혹시라도 그가 내 말을 듣고서 인해 화를 참지 못하고 나를 죽인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렇다면 오히려 더 좋을 것도 같았다.

“숨이 막히다 못해 죽을 거 같아.”

“제발, 죽는다고 말하지 마. 제발…….”

“그럼 내가 살기를 바라고 있어? 누구랑? 너랑?”

“…….”

“네가 나를 살린 거 같지.”

대답 없이 눈물을 흘리는 주현이의 모습에 나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모든 것을 알게 되었는데,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을 알았는데.

그런데도……. 살아서 네 곁에 있기를 바랄까. 그만큼 했으면 됐잖아. 네 멋대로 내 모든 것을 휘둘렀으면 충분하잖아.

‘얼마나 더 나는…….’

“네가 나를 죽이고 있는 거야.”

“…….”

결국 나는 그의 멱살을 잡았다. 그 반동으로 숙여졌던 그의 고개가 올라왔다. 하얗게 질린 낯빛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파란 빛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그렇게 언제나 변함없이 한결같게 나를 담고 있어서 나는 더 겁이 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둘 중 하나가 죽지 않고서야 깨어지지 않을 이 지독한 연결 속에서 그와 같이 숨을 쉬고, 같은 시간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너 때문에 내가 죽어 가는 건, 안 보여?”

그래도 그때, 내가 너를 살려 주었으니.

이제는 네가 나를 좀 살려 주면 안 될까.

“너 때문에…….”

네 사랑에 얽매여서 죽어 가는 나를 좀 놓아주면 안 될까.

막 일어난 몸은 가벼운 말다툼마저도 무리가 되었던 것인지, 몸이 바닥 쪽으로 기울어지는 감각과 함께 내 눈이 감겼다. 그런 나를 재빨리 붙잡은 주현이의 놀란 목소리가 아직 감기지 않은 귓등으로 파고들었다.

“가하!”

유난히 차가운 손을 가진 그가 내 뺨을 두들기는 둔한 감각을 맞으며 정신을 떠내려 보냈다.

그것 봐.

‘나는, 너 때문에 죽는 거라니까.’

그렇게 부유하는 정신 가운데 따뜻한 가이딩이 흘러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내 바람과 달리 주현이는 나를 계속, 계속 영원히, 죽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 가이딩의 여파인가, 결국 죽지도 못하고 다시 목숨을 이은 채로 어둑한 방 안에서 눈을 떴다. 캄캄한 천장이 나를 반기는 게 이젠 좀 익숙했다.

“……살았네.”

참 아쉽게도, 언제 죽을까 궁금할 정도로 질긴 목숨이었다. 내가 방 안에 깔린 어둠 속에서 적응을 할 무렵, 블라인드가 쳐진 병실 창밖으로 깔려 있는 밤하늘을 볼 수 있었다. 쓰러진 사이에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된 모양이었다. 일어나서 한숨을 푹, 쉬자 꼬르륵 울리는 뱃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사람을 불러야하나, 고민할 무렵. 누워 있는 병실 침대 한편에 자리 잡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의 무게감으로 눌려진 침대시트는 깔린 채로 미동하지 않았다.

“…….”

주현이었다. 아까 입었던 옷을 편하게 풀어헤친 채로 내 곁에서 자고 있는 모습을 본 나는 몸을 움직이던 것을 멈추고 다시 제자리에 누웠다.

‘미운 놈.’

색색대는 숨을 쉬면서 잠에 빠진 얼굴의 뺨 위로 미처 닦지 못한 눈물 자욱이 블라인드 너머 불빛을 타고 반짝거리는 게 보였다. 그걸 닦아 줄까 싶어서 손을 올렸다가 황급히 내렸다.

‘무슨.’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이런 놈 뭐가 예쁘다고…….’

그나저나 얘는 멀쩡하고 좋은 집 내버려두고 여기서 왜 이러는지 모를 일이었다.

‘자는데 불편하게…….’

그렇게 나는 눈을 깜빡이며 그의 얼굴을 살피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지쳐서 졸리기도 했고.

“……다음부터는 집에 가서 자.”

나 또한 지쳐서, 그를 쫓아낼 힘마저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잘, 자.’

아침 햇볕에 눈이 부셔서 일어났을 때는 내 옆에서 자던 주현이가 없었다.

“…….”

‘언제 갔지.’

있다가 없으니 그것도 신경이 쓰였다.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자꾸 사람 신경 쓰이게 하네.’

이래서 제멋대로인 사람이 싫다고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병실의 창문가로 향했다. 블라인드를 올리니 구름 하나 없는 푸른 하늘과 그 밑에 솟아오른 산, 고요하게 흐르는 한강을 덮고 있는 긴 다리.

‘병실치고 꽤 높은 곳에 있네.’

그 다리 위로 꽉 막힌 교통체증을 보면서 문득 깨달았다. 지금이 출근 시간이라는 걸.

‘주현이도…… 저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어 회사 갔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정갈하게 똑똑,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네.”

“문병 오셨어요. 들어가도 될까요?”

“네. 들어오세요.”

‘문병? 주현인가.’

나는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야 주현이는 눈뜨고 나면 계속 있었고, 성격상 어디 가지 않고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모진 소리를 해도 뻔뻔한 얼굴을 하고서 꿋꿋이 있을 녀석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니 짜증이 일어서 일부러 표정을 굳혔다. 주현이를 반겨 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렇지만 내 생각과 달리 들어온 사람은 나를 저절로 웃음 짓게 했다.

“오빠!”

“……가연아.”

한 아름에 달려와 내 품에 안기는 동생으로부터 장밋빛 향수 냄새가 풍겼다. 은은하게 들어오는 향기가 잘 어울렸다. 동생은 믿기지가 않는지 손으로 내 등을, 뺨을, 그리고 내 손을 부여잡고 또 잡았다. 보드라운 손이 내 손을 놓치지 않을 것처럼 꼭 잡았다.

“어디 아픈데 없지? 오늘은 어디 아픈데 없지?”

“응. 나 괜찮아. 왜 울어.”

“그럼, 다행이구…….”

이내 울음을 터뜨리는 동생의 모습에 내가 더 당황스러워서 눈물을 닦아 주다가, 가연이의 손을 꼭 잡아 주다가를 반복했다. 그러자 가연이가 배시시 웃다가, 이내 눈썹을 불안으로 찌그러뜨렸다. 눈물방울이 모인 눈꼬리가 유독 반짝거렸다.

“어제도 오빠 울다가 쓰러졌다고 해서…… 놀랬잖아. 어제 오후에 찾아오니까 다시 잠들어 있고…….”

“…….”

“또, 그때처럼 계속…… 잠들어 있을 것처럼…….”

내가 잠든 사이에 왔었는지, 다시 떠올리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모습이 안쓰러운 동생을 안아 주었다. 흐느낌에 떨리는 작은 등을 안고서 토닥였다.

“안 그래. 다시 잠드는 일 없어. 아직은 좀, 피곤해서 그래…….”

“정말이지. 정말로…… 한 번만 더 그러면 나도 죽을 거야.”

“……그건 안 되지. 오빠 이제 절대로 안 그럴게.”

불안한 듯 울음을 쉬이 멈추지 못하는 동생의 모습에 나는 마음이 아파졌다. 내 질긴 목숨은 짐덩이 같이 당장이라도 내버리고 싶다가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안이 되는 목숨이었다. 내가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우는 동생의 모습을 보자니 날카롭게 벼려진 마음이 약해졌다.

‘이런 상황에 내가 정말 죽기라도 한다면. 남은 동생은…….’

지금이라도 나를 따라 죽을 것처럼 엉엉 우는 동생의 눈을 티슈로 훔쳐 주었다. 열이 올라서 벌겋게 충혈된 동생의 눈을 보면서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 시켜 보려고 짓궂게 놀렸다.

“우리 가연이 눈이 토끼 눈이 다 됐다.”

“……오빠 때문이잖아.”

내 장난에 동생은 입을 삐죽이면서 나를 향해 눈을 흘겼다. 귀여운 투정은 여전하니 어디 가서도 동생을 못 알아 볼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기억이 없을 때에도 나는 동생과 친하게 잘 지냈으니……. 나는 떠오르는 추억에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나 때문에…….’

“……그러게. 내가 다 잘못했네.”

“오빠가 잘못한 게 뭐가 있어……. 주현이랑 대호 오빠 싸우다가 그렇게 된 거라며. 나 다 들었어. 왜 하필 오빠를 옆에 두고 싸워 가지고.”

“…….”

가연이의 말에 나는 씁쓰레하게 미소 지었다. 차마 그 둘이서 나에게 비뚤어진 애정이 넘쳐서 그랬다고, 곧이곧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동생은 그런 내 손을 붙잡고 이끌어서 나를 침대에다 억지로 눕혔다. 환자는 누워 있으라는 동생의 지론이었다.

“우선 누워, 누워. 내가 사과 깎아 줄게. 들었는데, 하루에 사과 하나 꼬박 꼬박 먹으면 평생 병원 갈 일 없다더라.”

“……그래.”

활기차게 과일 씻어 오겠다며 다용도실에 들어간 동생은 금방 돌아왔다. 병실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사과를 슥슥 깎는 모습이 제법 능숙했다. 악기 연주를 하는 동생 손에 칼도 쥐지 못하게 했는데.

‘내가 없었으니, 매번 스스로 했겠지.’

잠들어 있던 나날이 짧지만 또 길게 느껴졌다. 그런 내 눈길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동생은 보기 좋게 조각낸 사과 한쪽을 포크에 찍어서 내게 건넸다.

“자.”

“고마워. 이제 잘 깎네.”

칭찬이 기분 좋았는지 동생은 배시시 웃었다. 천진한 모습은 또 그대로고. 그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나만, 어디 다른 세상에 멈춰 있는 기분이었다.

“그치? 혼자 살다 보니까……. 오빠가 좀만 빨리 일어났으면 그럴 일도 없는데.”

“그러게. 내가 다 잘못했네.”

사과를 한입 베어 먹자 아삭아삭하게 씹혔다. 사과를 다 깎은 동생은 침대 헤드에 기대에 누워 있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빈 포크를 하나 들고 사과를 찍어서 동생에게 건넸다.

“너도 그러지 말고, 먹어. 사과가 달아서 맛있네.”

“……응.”

동생도 사과를 먹기 시작하면서 조용한 병실 안에 사과가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소리만 울렸다. 전화 너머로는 말이 잘 나왔는데. 이상하게 직접 만나니 그동안 지나간 시간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처럼, 서로 대화를 하는 게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인 마냥 영 어색했다. 결국 내가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꺼냈다.

“……저기.”

“……으응. 말해.”

그러자 동생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세를 바로하면서 내게 눈을 고정했다. 무엇을 말하는지 무척 궁금하고도, 뭐라 말만 한다면 다 들어주고 해줄 부담스러운 기세가 느껴졌다.

“아니 별건 아니고 그냥…….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서. 너 첼로는, 어떡하고. 유학은…….”

“아아. 그거.”

기억이 없는 동안, 동생은 대호의 도움을 받아서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던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끝내기도 전에 내가 쓰러졌다는 것도. 줄지어서 나오는 말에 동생은 다 안다는 듯, 슬쩍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때 마지막 학기만 남아서, 저번 달에 다 마치고 왔어. 졸업시험도 합격 했구. 걱정 하지 않아도 돼.”

“다행이다. 나는 또, 나 때문에 너 공부하던 거 다 못한 줄 알고…….”

안심으로 긴장이 풀린 손으로 가슴팍을 쓸어내리자 동생이 미안한 듯, 작게 웃었다.

“뭘 그런 것 까지 걱정해. 걱정두 참. 오빠 걱정이나 해. 내 앞길은 탄탄대로야.”

“대호가, 계속 도와줬어? 대호 오면…….”

고맙다고, 금방 갚겠다고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참에 가연이는 내 말을 듣고 어색하게 손을 저었다.

“아, 아니. 그…… 대호 오빠는 아니고.”

“응?”

“……그냥, 기업 장학금도 받고 해서 잘 마쳤어.”

“어디서?”

동생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그 모습에 나는 마음속이 콕콕 찔렸다.

‘설마.’

주현이는 이곳에 없고, 보이지 않는데. 왜 동생의 뒤로 주현이가 있는 기분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삼라에서……. 거기가 음악 전공자 관련해서 장학 사업을 크게 하거든.”

“……주현이가 도와줬어?”

“어…….”

내 단도직입적인 말에 설명을 늘어놓던 가연이가 입을 살짝 벌린 채로 말을 멈췄다. 그 모습에 머리 한구석이 쑤셨다. 가연이는 머쓱하게 머리끝을 만지작대면서 미안한 얼굴을 했다.

“……그냥……. 지원 전형만 알려 줬어. 중간에 뭐 이상한 거는 안 했어! 정말로.”

“……주현이가, 도와……줬구나.”

그러면 그렇지. 내가 일을 할 때에도 음악이라는 그 고상한 자릿세는 한두 푼 들어가는 일이 아니었으니 혼자 남은 동생이 부지하기엔 어려운 학업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나를 빌미로 값비싼 첼로까지 동생에게 쥐어 주던 주현이가 그 좋은 틈을 보지 못 했을 리가 없다. 굳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머릿속은 그 동안의 날들을 잘 짜 맞추었다.

“처음부터 받은 건 아니야.”

내 반응에 동생은 고운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어색하니 만지작대었다.

“대호 오빠도, 주현이도 처음에 도와준다고 그랬지만 다 거절했어. 오빠가 자꾸 그 둘에게 얽메이는 게 나도 싫어서……. 어떻게든 감당해 보려고 했지 왜 안 했겠어?”

“…….”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어떻게 오빠 병원비라도 대보려고 알바 이것저것 부탁해서 뛰었는데. 전혀 감당이 안 되는걸 어쩌겠어.”

“……가연아.”

가연이는 열기가 몰려서 다시 붉어지는 눈을 손등에 파묻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마음으로는 그게 못내 안타까웠다. 내게는 주현이에게 또 다시 돌아가야 하는 빌미나 마찬가지였다. 그 전에도 동생을 붙잡고 나를 구속했던 것과 다를 바 없는 그런, 좋은 빌미.

“……막판에는 사람들이 이래서 자살을 하는구나. 도망을 가는구나 싶더라. 비겁한 말인 거 아는데……. 나도 정말 힘들었어.”

“울지 마. 너 잘못……아니야. 탓하는 거…… 정말 아니야.”

동생은 헛웃음을 툭툭 뱉으면서 울먹거렸다.

“그러면서 느꼈지만 난 진짜……. 철이 없었던 거 같아. 오빠는 어떻게 나를 다 이렇게……. 지원해 줬을까. 오빠도 분명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이런 거 다 이겨냈을까. 푸념 한 번 안 하고, 어렸을 때부터…… 지금 까지 계속. 그런 생각이 막 들었어.”

“…….”

동생은 내 손을 잡고 생각에 잠긴 듯, 툭툭 말을 꺼냈다. 그걸 철없다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도 커 가면서 한 번씩 생각해 보았던 그런 철 지난 생각들이었다. 그 고민의 결론은 언제나 똑같이 끝났다. 동생이니까. 가족이니까. 하나밖에 남지 않은, 내 소중한 가족. 그런 동생이 꺼내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고단함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오기로 계속 일했어. 그러다가 너무 힘들어서 병원 실려 가는 바람에 결국에는 그만뒀지만…….”

“……뭐?”

‘쓰러졌다고?’

나는 놀래서 동생이 어디 아픈 곳이 있나 살폈다. 동생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듯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멀쩡해. 벌써 예전 일이야.”

“정말? 병원에는 갔어?”

“당연하지. 안 그랬으면 난 여기 없었을걸.”

나는 동생의 아무렇지 않은 미소에 마음이 아파졌다.

“왜 그렇게……. 병원에서는 뭐라 그랬어.”

“왜 이제 왔냐고 그러던데. 이렇게 될 때까지 뭐 했냐구. 그러면서 딱 입원시키는데 막……오빠 생각밖에 안 나는 거야.”

“…….”

동생이 쓰러진 원인은 어떻게 보면 나였다. 내가 깨어나고 싶지 않아서 오랫동안 누워 있던 탓에……. 동생은 내게 포크로 사과 한 조각을 또 찍어서 건넸다.

“나 일 못하면 오빠 어떡하지.”

“…….”

“그래서 의사 선생님한테 나가게 해 달라고 막 싸우고 있었지. 나 일 못하면 오빠 나가야하니까 내보내 달라고. 의사 선생님이 얼마나 깐깐한지 막 간호사들 불러서 나 억지로 병실 침대에 눕혀 놓고 주사 놓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복수였던 거 같아. 이씨. 진짜 아프게 놓더라. 아직도 생각나서 잠이 안 와.”

장난스럽게 말하는 동생의 말투와 달리 내용은 장난이 아니었다. 나는 사과를 먹다가 말고 동생을 어이없게 바라보았다.

“너…….”

“그때 주현이가 왔어. 의사랑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동안 주현이가 와서 그러더라. 좀 쉬라고. 오빠 병원비 자기가 내 줄 테니까. 걱정 말라고 뻔뻔하게 그러길래, 내가 필요 없다고 다 싫다고 그랬지. 오빠 너 때문에 고생하고, 죽을 뻔한 거 다 들었다고. 걔도 가만 보면 완전 철판 깔았다니까?”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걔 성격 나빠서 욱하면 또 어떻게 할 줄 몰라.”

내 동생이긴 내 동생이다. 주현이에게 그렇게 말해 놓고도 멀쩡하니 살아 있다는 게 보통 이러면 시원하다고들 하지만 나는 도리어 고민이 늘었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다 먹은 포크를 내려놓았고 동생은 웃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나도 알면서도 그땐 나도 뭐, 내일 곧 죽을 거 같아서 별 말 다했지. 그러니까 걔가 뭐라는지 알아?”

“……뭐라 했는데.”

“고집 부리는 건 오빠랑 닮았다고. 그러다가 나 죽으면 오빠는 어쩌냐고 그러더라.”

“…….”

“오빠가 자기한테 걸려서 고생하고 힘들었던 게 다 나 때문인데. 그 고생하면서 나 하고 싶은 거 하게 해 주고 지켜냈는데 이렇게 어디 잘못되면 오빠가 기뻐할 거 같냐는 거야.”

동생의 말을 들은 나는 가만히 동생을 바라보았다. 동생은 눈을 느리게 깜빡이면서 씁쓸하게 회상했다.

“그런 말을 들으니까……. 뭐라 말이 안 나오더라. 그래도 나는 한다고 했는데. 분명…… 열심히 했는데. 결국에는 걔 말 들어야 하는 게 너무 분한 거야. 근데 진짜 그 말대로, 내가 고집 부린다고 뭐가 해결될 거 같지는 않고. 내가 그래도 싫다고 하니까……. 무릎 꿇고서 비는 거 있지.”

“뭐?”

‘주현이가 무릎을 꿇어?’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 모습에 내 입에서는 놀람이 생생하게 튀어나왔다. 동생도 옳다구니,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치, 못 믿겠지. 나 그때 벌써 죽은 줄 알았잖아. 주현이가 있으니 지옥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슬프고. 물론 살아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그래서 이렇게 말해놓고 딴 소리 하는 거 아니냐고, 뭘 바라고 이러는 거냐고 막 그랬거든? 오빠 관련해서 우리 집 다 망하게 한 것도 대호 오빠한테 다 들었으니까 나 속일 생각 말라고 했어.”

“……그런 것도……. 대호가 말했어? 아니, 그래서 주현이가 뭐라고 그랬어.”

그러고 보니, 내가 기억을 버리고 도망치고 싶었던 것도…….

‘주현이가 만들어 놓은 덫 안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그랬지.’

그걸 가연이 또한 알게 되었다고 들으니 기분이 착잡했다. 나 때문에, 나와 연결된 모든 사람들이 얽혀서 고통 받고 있었다.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펑펑 우는 거야. 나 그때 또 꿈을 꾸는 줄 알았잖아. 정말. 주현이가 우는 건 또 그때 처음 봤어. 그래도 뚫린 입이라고 말은 또 잘하더라.”

“뭐라고 해.”

“음, 자기는 바라는 거 딱 하나래.”

동생의 말을 듣는 내 입이 들썩였다. 역시나. 바라는 거야 뻔하다.

‘내가, 그 애 곁에서 평생 있으면 하는 것이겠지.’

굳이 들을 필요도 없는 대답이라고 생각하는 가운데 가연이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내가 보란 듯이 잘 지내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내서……. 오빠 일어났을 때 반갑게 맞아 줬으면 좋겠대. 그런 나를 보고 오빠가 웃으면 좋겠다는 거야.”

“…….”

“의외지? 난 자기가 도와 줬으니까 은혜 갚으라 할 줄 알았어. 막 오빠 옆에 있게 해 달라고, 내가 앞서서 오빠 설득시켜 달라고 그럴 줄 알았거든.”

정말 의외였다.

나 또한 동생의 말한 내용 같은 조건을 요구할 거라고 생각했다. 주현이는 사람의 약한 부분을 포착하는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그런 애가…….’

저런 말을 했다는 게 정말로 믿기지가 않았다. 순간 동생이 주현이를 위해서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아직 의심을 버리지 못한 나를 향해서 동생은 활짝 웃었다.

“못 믿겠지? 나도 그래서 주현이한테, 지금 거짓말 하는 거 아니면 삼라 걸고 약속하라고 막 그랬다? 그동안 우리 고생한 거 보상하라구. 근데, 진짜 하더라.”

“……뭐?”

“싹 다 오빠 앞으로 돌려주기로 했어. 변호사 바로 불러서 공증까지 마쳤어.”

‘기업을 걸어?’

도저히 적응을 할 수 없는 주현이와 동생의 스케일에 나는 경악했다. 동생은 장난스럽게 으스대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이내 내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근데, 내가 알겠다고 해 놓고도 막 불안한 거야.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

“나 때문에……. 오빠를 다시 주현이에게 잡히게 한 건 아닐까. 매일 고민이 되더라.”

나는 잡힌 손을 살살 만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와서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만 그 과정에 오는 길이, 불안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나를 두고 잘하는 것인가 싶었을 것이다.

정작 나는 누워서 아무런 대답도 해 줄 수 없었으니까.

“근데 지금은 조금……. 고맙게 생각해. 적어도 오빠에게 떳떳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고, 여차하면 난 이제 진짜로 오빠 책임 질 수 있거든. 시향에 취직한 덕분에 앞으로는 따박따박 월급 나오는 월급쟁이지롱. 이제 주현이 돈이나 도움 필요 없으니까 나한테 말만 해. 내가 어디든, 오빠 원하는 데로 보내줄게.”

“……그래.”

“그러니까 오빠, 아무 걱정하지 말고 그냥 빨리 나아. 얼른 회복해서 맨날 귀찮게 잔소리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어. 오빠가 늘 있다가 없으니까, 별게 다 그립더라. 예쁜 엄마 생각은 안 나는데…… 오빠 생각이 자꾸 나서 혼났어.”

나는 이제 나를 책임지겠다고 포부를 당당하게 내미는 기특한 동생이 귀여웠다. 이런 게 부모의 마음일까. 어린 동생을 키우다시피 한 내게,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었다.

주현이의 말처럼, 동생은 내가 마지막까지 지켰던 소중한 가족이었으니까.

“……괜찮대. 아픈 데는 없다고……. 그랬어.”

그걸 알아 준 주현이가, 그리고 동생의 길을 지켜 준 주현이가 이때만큼은…….

참, 고마웠다.

내 대답에 동생은 안심한 듯 숨을 훅 내쉬었다.

“다행이다. 주현이가 그래도 좀 마음 고쳐먹고 그렇게 매일 매일 가이딩 하더니 효과가 있었나 봐. 하도 안 일어나서 최후의 수단으로 감옥에 있는 엄마 데려와야 하는 거 아닌가 했는데.”

“……매일 가이딩을 했어? 참, 엄마는 어떻게……. 됐어?”

“아, 오빠는 자고 있어서 모르지. 응. 맨날 퇴근하고 와가지고 오빠 옆에서 자면서 내내 가이딩 했다고 들었어. 간호사 말로는 휴식 하나 없이 그러는 게 엄청 지치는 일이라던데……. 우리가 알게 뭐람. 이렇게 해 두고 그것도 안 해 주면 천하의 나쁜 놈이지. 아 엄마?”

간호사가 말하던 내용을 동생도 말하는 것에 내가 되묻자 동생이 투덜거리다가 이내 화제를 돌렸다.

“들었는데……. 주현이네 회사 돈 빼돌려서 감옥 갔대. 그, 회계 비리 사건 때 같이 터졌다는데 오빠도 알아? 아니 근데, 우리 엄마 왜 이렇게 사람이 별로야? 나 진짜 주현이랑 대호 오빠한테서 이야기 이것저것 듣고 나서 없는 정 있는 정 다 뗐잖아. 그런 사람한테 나는 희희낙락 막 헤어진 엄마 만나서 좋다고 했으니. 에휴, 이 경솔한 입, 입, 입.”

“……너 입에다가 왜 그래. 연주 하는 애가 손 조심해야지.”

엄마가 감옥에 갔다는 말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욕심이 화를 부르다 못해 제 자신을 잡아먹는 것도 모르는 사람의 끝이 좋지 않으리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동생이 제 입을 손바닥으로 때리는 모습이 제법 거세서 내가 팔을 잡고 말리니 동생이 분에 차는지 성을 냈다.

“아니, 어떻게 어린 오빠랑 나를 두고 그렇게 도망가 버릴 수가 있어? 대호 오빠네 집에서 돈 빌린 건 엄마랑 아빠래매! 나중에는 또 오빠 이름 팔아서 주현이 한테 들러 붙어가지고 사모님 노릇하면서 돈 뜯어 먹고. 정말 내가 듣고 얼마나……. 이런 사람이 무슨 엄마라고. 그걸 오빠는 원망도 하나 안 하구…….”

“왜 원망 안 해……. 많이 했어. 오빠는 박 씨 아줌마가 옆에 계셔서 잘 지냈잖아. 그래도 그 사람이 집에서 만났을 때 너한테 잘해 줬으니 됐지 뭐.”

“……그게 뭐 좋아서. 주현이 말로는 오빠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그 모양이라 오빠 걱정되어서 자기 집에다 일부러 둔 거라던데. 맞아? 진짜 걔도 가만 보면 이상한 데에서 똑똑하다니까. 그런 머리 두고 철없는 애새끼 같이 왜 오빠를 이렇게 괴롭……. 흠흠. 암튼, 금방 일어날 줄 알았는데……. 오빠 안 일어나서 계속 나 맘 졸였잖아. 이제 자면 안 돼. 응?”

“……그래. 늘 깨어 있을게.”

가연이의 말을 듣고 나는 순간 놀랐다. 그저, 내가 친구로 좋으니 그의 집에서 지냈던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애초에 엄마가 그런 사람인걸 알고 걱정이 되어 그런…… 줄은.

‘몰랐어.’

하지만, 그런 마음 씀씀이에 감동하고 자시고를 떠나 이미 벌어진 일이 너무 많았다. 또 주현이는 나에 관해서는 유독 욕심이 많고, 또 언제 자기 멋대로 말을 바꿔서 제 욕심을 어떻게 채울지 몰랐다. 지금은 바라는 게 없다고 해도 다시 나를 어떻게든 붙잡을지 모른다. 이미 그에게 쥐어진 빌미가 너무 많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사과 더 먹을래?”

“아니, 괜찮아.”

동생이 사과껍질을 버리러 간 사이에 나는 푸른 하늘이 잘 보이는 병실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망설이다가 정에 끌려서 발걸음을 멈추는 바람에 잡혀 버리면 끝이었다.

동생과 이렇게 말하는 것조차도 허락되지 않을지도 모르고.

‘아마, 나는 다시는 바깥을 나갈 수 없을 지도 모르지.’

그 전에 그랬듯이, 주현이만 내 세상에 홀로 오롯이 존재하며 살아가는 것 외에는……. 나는 주먹을 꼭 쥐고 고개를 저었다. 떠올리기도 싫은 날이었다.

나는, 다시 그 좁은 새장과 같은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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