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화 (54/61)

* * *

마치 깊고 긴 잠에 들은 사람 같았다. 하지만 귀는 가끔씩 깨어서 내게 바깥의, 현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했다.

“오늘도 이 환자 반응 없죠?”

“예. 오전 회진 때 체크 다 했는데도…… 그대로에요. 아시잖아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간호사들이 이따금씩 무언가를 갈아 끼우는지 물소리를 내거나, 내 몸에 무언가를 붙이고 가곤 했다.

오늘도 그런 모양이었다. 그들은 내 주위를 돌면서 참 안타깝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알기야 알지만……. 참 안됐네요, 그 분도. 하나 밖에 없는 각인 상대가 저렇게 된 게……. 벌써 1년째인가. 잘생겼는데 아까워라.”

“그러니까요. 참 잘 생겼는데……. 무척 아끼시는 게 보여서 더 안쓰럽지 뭐에요. 아시죠? 매일 퇴근하시고 꼭 방문……. 어머, 문병 오셨어요?”

간호사들의 혀 차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들어왔는지 간호사들이 알아채며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에. 오빠 보러 왔어요……. 오늘은 좀 어때요?”

귓가에 들려오는 가연이의 차분한 목소리에 나는 순간, 눈을 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일어나면.

‘안 돼.’

다시 그 집으로 끌려가서, 감옥 같은 집에서 살지도 몰라. 몸에 새겨진 공포. 그게 나를 다시 잠잠하게 눌렀다.

“그러시구나. 오늘은……. 별다른 이상은 없으세요. 그나마 다행이죠.”

간호사는 동생의 질문에 애써 밝은 목소리로 동생을 위로했다. 그런 높은 SS등급의 에스퍼에게 직통으로 공격을 맞고도 살아난 건 정말 기적이라는 말을 하면서.

“부회장님 가이딩이 아니었더라면 정말 위험하셨을 거예요. 깨어나실 때 검진을 해 보면 확실히 알겠지만, 큰 후유증 같은 건 없을 거라고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곧 건강하게 깨어나실 거예요.”

“……그건……. 참 다행이에요.”

다른 간호사는 의자 같은 것을 빼오는지 내 주변에 무언가를 툭, 두고서 가연이를 불렀다.

“여기 앉으세요. 참, 그나저나 콩쿠르는 잘 끝내고 오셨어요?

“아 네. 1등은 아니구……. 2등 했어요.”

“어머 정말요! 잘 됐다~ 저번에 오며가며 봤는데요. 부회장님이 오빠 분 옆에서 중계방송 틀어 주시더라구요. 그래서 궁금해가지고.”

“그랬구나……. 몰랐어요. 주현이가 말을 안 해 줘서.”

내 손에 가느다랗지만, 거칠거칠한 손끝이 슬쩍슬쩍 만지작대는 것이 느껴졌다.

‘가연이…… 손인가.’

그 애는 첼로를 오랫동안 해서 손마디의 지문이 거칠게 닳아 있곤 했다. 나는 둔하기 짝이 없는 감각을 탓하며, 일어나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간호사들은 멀찍이 걸어가는지 호호 웃는 소리 또한 멀어져 갔다.

“그게 너무 보기 좋아서, 저희도 모르게 말이 나왔네요. 그럼, 필요한 거 있으시면 저기 벨 눌러 주세요.”

“네에.”

문이 닫히고 병실이 적막해졌다. 간간히 울리는 기계음만 아니면, 아무도 없는 거 같다고 착각할 법 한데, 내 손을 잡은 여린 손은 그대로였다.

“……잘 자고 있어, 오빠?”

“…….”

“머리 많이 길었다……. 저번에 잘랐는데. 금방 금방 자라는 거 같네.”

그녀가 내 머리를 쓸어 주다가, 머리카락의 끄트머리를 만지작대는지 두피가 살살 당겨지는 느낌이 났다. 그녀는 내 얼굴 가까이 와서 보다가 푸흐흐 웃었다. 웃음소리가 내 뺨 주위를 진동시켰다.

“참, 아까 들었겠지만 나 프랑스에서 열린 첼로 콩쿠르 갔다 왔어. 1등은 아니고…… 2등! 나 잘했지?”

그녀는 연신 발랄하게 말했다가 이내 시무룩하게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응, 정말 잘했다.’

만약 내가 깨어 있었더라면 동생을 꼭 안아 주고 신이 나서 업어 주었겠지.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침대 위에 있었다. 깨어나지 않는 몸 아래에 깨어 있는 정신으로만, 축하해 주며…….

“……의사 선생님들은 이제 몸 괜찮다고 그랬는데. 언제쯤 일어나서 나 잘했다고 칭찬해 줄 거야. 나 이제 정말로, 가족은 오빠밖에 없는데…….”

그녀는 울적하게 읊다가 이내 말을 잇지 못했다. 말이 적어진 그녀에게서 희미하게 풍기는 눈물진 내음이 보지 않아도 울고 있다는 것을 짐작케 했다. 그러다가 그녀의 뜨거운 눈물방울이 내 손등 위로 뚝뚝 떨어지는 감촉이, 둔한 감각 위에 유독 도드라지게 멍울졌다.

깨어나고 싶지 않은 선택 덕분에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과 괜찮다는 위로의 말 하나 건넬 수 없는 지금이 조금은 슬펐다. 그녀는 내 옆에서 손을 잡고 한참을 울먹거리다가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너무 많이 울었다. 좋은 이야기 해 주러 온 건데……. 이러다가 괜히 듣는 오빠 기분만 안 좋겠어.”

그러면서 가려는지 나를 잡은 손이 빠져나가다가, 다시 꼭 잡았다. 그게 마음속으로 너무, 반가웠다.

‘가연아, 가지마…….’

“……또 올게. 오빠.”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은데. 그런 내 마음을 알리가 없는 가연이는 그저 내게 건강히, 잘 자고 있으라는 말을 남긴 채 병실의 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떠나갔다.

그렇게 나는 다시 병실에 혼자 남았다. 그러고 두세 번, 간호사가 와서 약물이나 주사 따위를 갈아 주고 나가는 것을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간호사가 왔을 때 가져다 둔 것인지 병실 어딘가에서 좋은 꽃향기가 은은하게 풍겨 들어왔다. 가연이가 보내 둔 걸까, 속으로 좋은 향기를 맡고 있을 무렵에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도 늦게 오십니까?”

“아마도. 내가 운전해서 돌아갈 테니까, 먼저 들어가 봐.”

나직하게 대답하는 목소리에는 지울 수 없는 피곤이 묻어나왔다. 그런 그를 걱정하는 대답이 뒤따라 붙었다.

둘 다, 내게 아주 익숙한 목소리였다.

“……예. 너무 늦지는 마세요.”

“응.”

문이 닫히며 뚜벅, 뚜벅 걸어 들어오는 발걸음 소리에 나는 다시, 전과 같이 정신이 깊게 잠들면 더없이 좋겠다고 빌었다. 오랜만에 동생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좋았지만…….

“가하.”

그는 아니었다.

“나…… 왔어. 그동안 잘 있었어?”

참 질기고 질긴 인연이었다.

이만치 떼어놓았다 싶어서 뒤돌아보면 언제 뒤따라 왔는지 나를 마주보고 있는 그런 인연.

마치 내 그림자 같이 어디 떼놓지 못하고 어떻게든지 마주치고야 마는 그런 인연…….

나는 돌아온 기억을 원망하며, 그와 함께 했던 모든 시간과 순간을 증오하며 다시 잠들기를 소원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바라고 바랄수록, 반대로 정신은 맑게 깨어나고 몸의 감각은 노곤하게 풀어지듯이 점점 되돌아왔다. 덕분에 내 손을 잡는 그의 차가운 손은 아까 가연이가 잡았던 멍한 감촉과 달리 더욱 또렷하게 느껴졌다.

“……보고 싶었어.”

마치, 그가 내게 온 것을 반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몸이 절로 반응했다. 생각과 달리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내 몸 속의 반응으로 나는 기분이 저조하게 가라앉았다. 그렇게 끊어지기를 바랐던 각인이 돌아온 기억과 함께 다시 이어진 모양이었다. 아, 그때 그냥 죽었어야 했는데.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죽었어야 했는데…….

‘난, 이제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또 다시 그 집에 갇혀서 살겠구나.’

“……우리 가하…….”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이 사람에게 돌아오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나를 일으켜 세우는지 눕혀져 있던 몸이 들리고, 그가 풍기는 특유의 내음이 코끝에 스치며 내 머리 위로 속삭이는 목소리가 조곤조곤 들려왔다. 그가 나를 꼭 껴안은 것과 동시에 내 가슴팍에 그의 커다란 손바닥이 올라와서 천천히 토닥였다.

‘뭐, 하는…….’

어찌할 틈도 없이 그가 나를 안고서 마치 소중한 사람을 반가워하는 것처럼 내 뺨 구석구석에 입술을 연신 짓눌렀다.

“오늘은 가연 씨가 왔다고 들었어……. 콩쿠르 입상하고 어제 귀국했거든. 기억하지, 내가 저번에 보여 줘서 같이 봤잖아.”

종이 같이 얇은 입원복의 옷깃 사이로 그의 손이 들어오며 피부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나는 설마, 자는 사이에 ‘그 짓’을 하려는 건가 싶어서 소름이 끼쳤다.

‘넌 참 변함없이 쓰레기…….’

주현이가 하려는 애욕적인 행위에 내가 속으로 욕을 하며 진저리를 칠 무렵, 심장이 뛰는 왼쪽 가슴에 얹힌 손바닥 아래로 따뜻한 힘이 스멀스멀 적셔 들어왔다.

“……가연 씨가 가하가 잠든 사이에 아주 인기가 많은 첼리스트가 됐어. 일어나면, 같이 연주 들으러 가자.”

가이딩이었다.

“안 그래도, 새로 짓고 있는 음악홀이 거의 다 완공했거든. 거기서 첫 개관식과 함께 독주 콘서트를 열어도 좋을 거야. 안 그래?”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고, 아파서 받고 싶지 않았던.

그러면서도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마저 진하게 남아 있던 그 힘.

“일어나면……. 집에 강아지랑, 고양이를 하나씩 키우는 것도 좋겠지. 가하가 어렸을 때……. 좋아했잖아.”

그리고 마지막에는 도리어 나를 살려낸,

“아니면 그동안 누워서……. 가만히 있었으니 어디로 기분 전환할 겸 여행을 해도 좋을 거야. 아니면…….”

주현이의 가이딩.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가만히 있고 싶으면 그래도 돼. 상관없어.”

그는 나를 안고 조용히 중얼거리다가 내 손을 잡고 올려서 자기 얼굴에 비벼대었다. 마치 내가 그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나는 가하가 그저 건강하게만, 있으면 좋겠어.”

하지만 나는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살려낸 그의 가이딩도, 내가 일어나면 하자고 말하는 것들도, 하다못해 그의 말과 행동에서 느껴지는 그 모든 애정마저도 받고 싶지 않았다.

“건강하게 일어나서.”

나를 곁에 두기 위해서 말로 이룰 수 없는 짓들을 한 그런 사람을…… 나는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주현이라고……. 그때처럼 부르면서…….”

그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미치자마자 내 가슴팍으로 스며들던 가이딩이 문득, 다시 주현이의 손바닥 쪽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돌아갔다.

마치, 힘이 내게서 거부당한 것처럼.

그와 나는 각인이 다시 이어진 만큼, 그럴 리가 없을 것을 알면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제발, 가이딩이라도 받아 줘. 가하…… 내가, 너무 미워서 그래? 내가,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 그러니까 거부하지 말아 줘…….”

정신만 들어 있지, 깨어나지 않는 나를 안고서 울부짖는 주현이의 거친 호흡이 뱉어내는 말은 그 느낌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게 슬픈지 주현이의 흐느낌이 커질수록, 내 뺨을 적시는 그의 눈물도 끊임없이 이어지며 내 마음을 적셔 들어갔다.

“이러다가 네가 또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나는…….”

참, 많이도 운다. 정말 아픈 건 나였는데.

너 때문에 내가 제일 아프고, 힘들었는데.

“멋대로 안 할게. 내가 좋다고 하는 거, 안 할게…….”

‘왜 네가 그렇게 울까…….’

내가 응당 흘려야할 눈물마저도 뺏어 가는 주현이가 밉고, 또 미웠다. 주현이는 연신 가이딩을 시도하는지 내 가슴팍에 올린 손을 떼지 않고서 힘을 불어 넣었지만 그 가이딩은 계속해서 흡수되지 못하고 겉돌았다. 그 거부반응에도 주현이는 지지치도 않는지 계속 시도했다.

“정말 잘못했어. 각인도, 가이딩도 가하가 원하지 않으면 안 할게. 내 옆에 있으라고 억지 부리지도 않을게…….”

굳은 심장을 깨우려는 시도는 반복되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내가 여전히 그를 용서할 수 없고, 미워하고, 또 그 옆에서 달아나고 싶은 내 마음이 여전한 것처럼 말이다. 이쯤 되니, 그도 힘이 바닥난 것인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나를 조심스럽게 침대 위로 눕혔다.

“하아…….”

그러고는 가이딩을 한다고 옷깃 사이로 손을 넣느라 흐트러진 내 옷차림을 정리해 주고, 시트를 꼼꼼하게 잘 덮어 주더니만 이내 옆에서 떠나지 않았다. 곧이어 침대 위가 살짝 진동하며, 그의 눈물로 젖은 내 뺨을 살살 쓰다듬으면서 정리해 주는 손길이 느껴졌다. 그는, 그 흉이 도톰하게 져 있을 손끝으로 내 입술을 덧그리다가 경직된 입꼬리 끝에 손끝을 걸고 간질거렸다. 마치, 내가 웃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러니까 그때처럼, 예쁘게, 웃어 줘……. 응?”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나를 안고서 잠에 들은 듯 말이 없었다. 나는 그의 절규와도 같은 울부짖음에 조금, 아주 조금 마음이 흔들렸지만 이전의 일들로 학습되어 완고하게 굳어 버린 마음은 쉽사리 풀어지지 않았다. 그와 나 사이에 있는 관계도 그러했다.

그게 설령 이어져 있다고 한들, 그 상태는 꼬이고 꼬이다 못해 풀 수 없는 매듭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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