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46/61)

* * *

“주현아, 오늘 드디어 퇴원 날인데. 기분은 좀 어때.”

세월의 흐름을 타고 얼굴에 주름이 늘어난 아버지는, 병실 소파에 편안히 앉아서 세습된 부를 두르고 여전히 번들거리는 얼굴을 했다. 그러게, 그렇게 기다리던 퇴원 날이 오늘이라니. 한 평생을 이 병실에서 보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 갇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가만히 이곳에서, 누운 채로 병실의 창밖으로 하루, 한 달, 일 년을 넘게 올라가는 고층 빌딩들의 층수를 세면서 살던 게 벌써……. 나는 침대 맡의 전자시계를 흘끗 보면서 그동안의 날짜를 계산했다. 20년…… 인가. 20년 동안 이 좁은 병실에서 갇혀 살던 내가, 나가게 된 기분이 어떻냐고?

“……좋아.”

나는 줄무늬만 여전하지 자연히 커지는 몸집을 따라 사이즈를 달리하면서 20년 동안 반복적으로 입은 입원 복을, 병실 침대에 벗어던지면서 환하게 웃어 보였다. 소파에 앉아 있던 아버지 또한 내가 이곳에 있던 세월이 낯설게 느껴지는지 멋쩍게 웃었다.

“아빠가 너무 당연한 걸 물어봤나?”

아버지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나는 박 비서가 가져다 준 스웨터와 편안한 면바지 따위를 꿰어 입었다. 포장지에 쌓인 새 옷은 아주 오랜만에, 이만치 크고 나서 처음으로 입어 보는, 입원 복이 아닌…… 정말 제대로 된 평상복이었다. 저 바깥의, 저 빌딩의 사람들이 입고 다닐 법한 그런 아주 평범한 옷.

내 ‘가이드의 보호’를 가져간 에스퍼를 잃어버린 나는, 언제 어디서 발현할지 모르는 폭주라는 약점이 있었다. 아무리 강한 가이드라고 해도, 제 증명을 나눈 짝을 잃어버린 나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였다. 그 탓에, 저 특수처리가 된 창밖의 세상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새장 속의 새처럼.

“오늘, 아현 아줌마가 주현이 집에 돌아온다고 맛있는 거 많이 준비했어. 알지, 아현 아줌마? 주현이 아현 아줌마 좋아하잖아. 주현이 좋아하는 음식으로만 준비했으니까……. 그나저나 주현이 많이 컸네. 운동했어? 배에 근육이…….”

흐뭇한 얼굴을 하는 아버지가 읊는 이름의 존재에 나는 꿰어 입은 스웨터의 목구멍에서 머리를 꺼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응. 아줌마 좋아.”

나는 환하게 웃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내가 스웨터를 내리면서 내 배를 가린 부분을 놀라운 눈으로 보다 말고, 이내 안심한 표정을 했다.

“……그래. 아빠도, 아줌마 좋아. 그래서 그런데…….”

물론 내가 말하는 좋다와, 아버지의 좋다, 가 가진 의미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아빠가 그동안……. 주현이, 아픈 동안 말이야. 아현 아줌마가 잘 돌봐 주시는 거 보고.”

나는, 가하의 어머니이자, 가하와 비슷한 파동을 가진 그녀의 가이딩으로 언제 들끓을지 모르는 내 폭주의 위험성을 안정시키는 도구로 제격이라고 보았다. 아버지는 긴장되는 표정으로 입을 축였다. 그 모습에 나는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다 알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걸 말 할 수 있는 애가 아니니까.

“생각해 봤는데. 아현 아줌마 뭐 예쁘고, 친절하고……. 무엇보다 마음이 고운 것 같아서. 우리 주현이 옆에서 계속 좋은 아줌마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러는데…….”

그리고 아버지는, 내가 미끼처럼 들여온 가하의 어머니에게 눈독을 들였다. 참 재밌는 여자였다. 나는 가하의 인연을 끌어당길 끈으로 그녀를 골랐지만 도리어 나의 아버지를 얽매어 들은 것은 예상과 다른 전개였다.

그렇지만 딱히 상관은 없었다. 괜히 아버지 곁에 다른 여자가 들어오면, 그 나이대의 여자 치고 제법 괜찮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조아현이, 단순 간병인이 아닌 그야말로 눈에 가시일 것은 자명했다.

“아빠랑, 주현이랑 아줌마랑…… 다 같이 사는 거 어떻게 생각해?”

나는 아직도 그녀가 필요했다.

이 새장과 같은 병실을 나갈 문으로.

그리고 그 애를 언젠가 불러들일 또 다른 문으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아버지를 향해서 환하게 웃었다.

“좋아. 나, 아줌마 좋아.”

“……주현이, 아빠 말 이해한 거지? 아빠랑, 아줌마랑 같이 사는 거야. 그러니까…… 흠, 흠.”

그는 어색하게 두 손을 맞잡고 헛기침을 했다. 그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로즈골드의 반지가 눈에 띄었다. 전날 나를 찾아왔던 조아현의 약지에 걸려 있던 같은 모델의 반지. 그렇지만 나는 모르는 사람처럼 고개를 갸웃하고 기울이면서 뒤축이 뻣뻣한 새 운동화를 신었다.

“이해 안 돼. 우리 이제 다 같이 살잖아.”

“아, 그러니까…… 아현 아줌마가, 이제 주현이 엄마 되는 거야. 새엄마.”

내가 잦은 폭주로 인해서 정신을 다치는 바람에 지능이 떨어진다고 알고 있는 아버지는, 내가 이미 눈치 채고 있는 사실을 굳이 내게 설명해 주려 했다. 뭐, 간병인으로 일한 지 일주일도 안 가서 둘이 같이 나가는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았나. 내 병실에 간병인으로 찾아 올 때마다 보란 듯이 아버지 냄새를 퀘퀘하니 묻혀서 오던 것을 다 알고 있었건만. 욕심이 많은 여자는 결국 애첩으로 남기보다는, 본처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제야 이해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새엄마…….”

“괜찮지? 주현이도, 아줌마 좋아하니까, 괜찮지? 늘 주현이 옆에서 도와주고 그랬잖아. 알지?”

알지. 뭐, 저 구석 소파에서 가만히 앉아서 숨 쉬는 게 나를 도와주는 것이라면, 내가 자기 전에, 폭주 직전에, 경련하는 손 한 번 잡는 게 큰 도움이라면 그렇다고 말해 줄 수 있었다.

더 깊은 접촉이 싫어서 간신히 폭주를 하지 않을 만큼만, 죽기 직전의 고통을 잠재울 정도로만 그녀의 도움을 받는 것을 아버지는 모르는 게 분명했다. 조아현도 아픈 나의 유일한 치료제가 아니라, 그것밖에 쓸모가 없다는 것을 나불대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고. 나는 머릿속에서 맴도는 저 둘에 대한 한심한 생각을 애써 숨기며 자주 웃었다.

“응.”

“그래. 나머진 집에 가서 얘기하자. 배고프지?”

“응.”

애초에 또래보다 훨씬 지능이 앞서던 내가 장성하면, 아버지보다 먼저 부를 세습시켜 줄 거라는 할아버지의 기대와 계획 때문에, 나는 병원에 처박힌 모자란 애를 연기해야만 했다. 아니면, 재혼에 방해되는 귀찮고, 쓸모없는 자식이라고 해야 하나. 아버지가 괜히 자기 자리를 위해서 견제를 하면, 걸리적거리는 감시와 귀찮게 힘쓰는 일만 더 늘어나니까. 아무튼 이런 나 때문에 좋은 재혼 처를 찾지 못했으니 아버지가 그동안 제법 짜증을 냈다고 박 비서에게 들었다.

아버지가 모자란 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나를 진정한 가족으로서, 아버지로서, 걱정하거나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애초에 알았다. 아픈 척하는 나를 모르고 그나마 가엾게 여기던 할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아무도 모르게 죽임을 당했겠지. 그나저나 애초에 아버지가 철딱서니가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사이에 들러리처럼 있던 조아현에게 눈독을 들일 줄이야. 나는 닫혀 있던 병실의 문을 여는 아버지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반문했다.

“근데, 할아버지는 아줌마 싫어하는데.”

내 말에 그가 한대 맞은 얼굴을 하며 애써 웃어 보였다.

“아…… 주현이,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하셨어?”

“응.”

아버지는 내 팔을 잡고, 층에 얼마 없는 VIP 병실의 복도를 걸었다. 그러자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아버지의 비서와 박 비서가 살짝 인사하며 우리 뒤를 따랐다.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면서 아버지는 혼자 대답했다.

“괜찮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아현 아줌마 좋다고 그러셨어. 응.”

“……그렇구나.”

좋기는. 할아버지 막 돌아가시자마자 안정기를 가진 나를 집에 들이게 된 이유야 뻔하지. 조아현 하고 본채에서 붙어먹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게 아니겠는가. 나는 머릿속에 감도는 결론을 숨기고 슬며시 웃으며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러니까, 주현이도 집에 돌아가면 아줌마라고 부르지 말고. 이제 새엄마라고 부르는 거야. 알았지?”

높은 층을 내려가는 투명 엘리베이터의 뒤로 바깥의 풍경이 다채롭게 보였다.

정말로, 나는 이곳을 나가서 저 세상에 발을 디디는구나.

도로에 움직이는 차와 사람들이 가까이 보일수록 신기하기만 했다. 그냥, 저기 어딘가에 그 애가. 가하가 내 색을 알아보고 내게로 돌아올 것만 같은 기대에 평온한 가슴팍이 두근두근 뛰었다.

“응.”

나는 아버지에게서 등을 돌리고 대충 대답했다. 사실, 세월이 그렇게 흘러도 내가 찾는, 사는 목적을 별 다를 바가 없었다.

가하, 그 애 하나면 되었다.

그렇지만 도대체 언제쯤이면 나는…….

너를 만날 수 있을까.

지금쯤 너는 어떠한 얼굴로, 어떠한 생각을, 말을 하면서 살아갈까.

나는 너를 만나지 못한 지가 너무나도 오래되었는데. 어서 우리가 만나서 그 입으로 밤낮이 다 새도록 말해 주면 좋으련만.

모두가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가 지면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찾을 수 없는 그 애의 생각, 침울한 생각에 빠져드는 내게 아버지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칭찬했다.

“그래, 착하다.”

모자란 애에게서 엎드려 대답을 받고서 나온 말이라는 게 참 우스울 뿐이었다. 모자란 짓을 한다고 생각마저도 모자르리라 착각 속에 빠져 사는 아버지가 안쓰러울 정도로. 20년 동안 가만히 나이만 먹고 살던 것은 아니지만, 신경이 온통 조아현과 회장 자리에 앉느라 정신이 없던 아버지는 모를 것이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아버지의 눈을 피해서 아픈 나를 위한 대비책으로 몰래 돌려돌려 물려 준 계열사 주식들과 사업 전반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걸 적절한 때에 잘 이용만 한다면 아버지와 회사 돈을 야금야금 빼 먹는 조아현 따위야 금방 털어내 버릴 수 있는 것이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내게는 아직 가하가 돌아오지 않았고, 가하를 부르기 위해서는 조아현이 아직 필요했다. 그리고 조아현은 가하를 위한 미끼로 쓸모가 있으니, 계속 웅크린 채로, 모자란 아이로 그저 기다려야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땡, 하고 울리는 엘리베이터의 차임벨에 바깥 구경을 하던 몸을 돌렸다. 문이 열리면서 아버지와 비서들이 나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지 않는 내게 손짓했다.

“가자, 주현아.”

“응.”

나는 오랜만에 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평소 버릇처럼 듣던 첼로 연주자를 구했다. 집은 내가 말한 대로, 가하가 떠나기 이전의 모든 것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 애가 있던 나날을 반복하는 것이 내 일상이자 취미였다.

예를 들면 그 애가 서투르게 연습하던 첼로 소리를 듣는 것. 그것의 일환으로 첼로 연주자를 불러들였다.

잦은 폭주와 불안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그나마 위안을 주는 소리기도 했고.

황대호의 형수 친구라는 교수가 어떻게 추천을 해 준 첼로 연주자는 첫날, 제 몸집만한 첼로 케이스를 끙끙 짊어지고 별채 정원에 발을 들였다. 내 별채 안에 가하 말고 다른 사람을 들이는 게 싫어서, 정원에 의자를 하나 주고 연주를 하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녀는 덧문이 열려 있는 마루에 앉은 나를 보고 찡그린 얼굴로 땀을 흘리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숙이고 반갑게 인사했다.

“아, 혹시…… 여기 도련님? 안녕하세요, 소개받은 유가연이라고 합니다. 그, 첼로 연주…… 의뢰 받고 왔는데요.”

그 여자의 고개가 바로 올라오고 내게 보인 것은 아주 낯익은 형태의 얼굴이었다. 때 마침 차가운 바람이 정원에 불어오면서 그녀의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렸다.

“……너.”

그리고 내 코끝에, 아주 그립고…… 잊을 수 없는 향기가 희미하게 풍겨 왔다.

나는 앉아 있던 마루에서 바로 일어서서,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고 맨발로 정원의 풀밭을 가로질러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러자 그 애를 닮아서 까맣고 동그란 눈을 가진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그 모습마저도 참 닮았다. 아주, 닮았어, 어렸을 적에 보여 주던 그 호기심 많은 얼굴과…….

“……네?”

“이름이…… 뭐라고?”

천천히 그녀의 머리카락 끄트머리로 올라가는 내 손이, 폭주가 아닌 것으로 떨렸다. 그녀는 서 있던 자리에서 한 발짝 뒷걸음질을 치며 난색으로 다시 대답했다. 잘 다듬어진 잔디가 그 발걸음에 한풀 뚝 꺾였다.

“유…… 가연이요.”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머리카락이 남긴 향기를 빈손으로 움켜쥐면서, 나는 쓰게 웃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그동안 찾지 못했던 건 이유가 있었군. 동생 이름을 바꿨어. 유, 가연이라……. 매번 실종자로 수색하던, 이름은 유가하와, 유주연이었는데. 어쩐지 안 걸린다고 했어. 어디 땅끝 마을이나 사람 살지 않는 깡촌으로 가서 사는 것이 아니면 다 걸릴 것이었는데. 나는 무심코 드러낸 웃음을 주먹 쥔 손으로 살짝 가리면서 소개했다.

어떻게든 이 카르마가 일으킨 인연의 끈을 잡았으니…….

“그렇구나. 가연 누나 반가워.”

이제 끊어지지 않도록, 천천히 당길 일만 남았다. 아주, 천천히…….

내 손으로.

“송주현이야. 잘 부탁해.”

“어…… 응. 나도, 잘 부탁해……요.”

그녀는 내 반응에 그러면 그렇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 모자란 애가 보이는 반응이구나, 하고 쉬이 수긍하는 모습에 나는 보란 듯이 웃었다.

“누나, 첼로 잘해?”

“그냥저냥? 저기, 어디서 연주하면 될까? 나는 그냥 여기에 들어가라고만 들어서…….”

나는 그녀의 주위를 돌다가, 내가 방금 전까지 앉아 있었던 마루를 가리켰다.

“이제, 저기서 하면 돼. 나 잠들기 전까지 연주해 주면 돼.”

“으응. 근데, 주현……아. 여기는 너만 있어? 다른 사람은 없어?”

그녀의 불안한 반응에 나는 대충 눈치를 채고 고개를 저었다. 모자르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남자애랑 단둘이 있는 건 분명 불안하겠지. 박 비서에게 조아현 데려오라고 해야겠군.

“아니야. 엄마도 곧 올 거야. 지금 바빠서 그래.”

“아, 그래? 앉아 있으면, 내가 곧 연주해 줄게. 잠시만 기다려.”

그녀는 첼로 케이스를 마룻바닥에 두고 조금 안심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착한 아이처럼 예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 화장실 다녀올게.”

“응.”

나는 화장실이 아닌, 현관으로 가서 그 앞에 테이블에 놓인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었다. 박 비서의 직통 번호 칸에 손가락을 걸고 동그랗게 돌리자 들고 있는 수화기에서 박 비서의 대답이 들려왔다.

―예, 도련님. 방금 첼로 연주자 올려 보냈습니다. 더 필요한 것 있으신가요?

“응. 이 연주자……. 조사 좀 해 봐.”

현관으로부터 저 멀리 있지만, 혹시라도 그녀가 듣지 못하도록 나는 손으로 수화기를 가리고 목소리를 낮췄다.

―예, 알겠습니다. 실례지만……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내 대답에 그는 바로 대답하고는, 다시 반문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찾은 것 같아.”

―…….

“가하.”

수화기 너머로, 꿀꺽 하고 침 넘어가는 소리와 놀라움을 숨길 수 없는 박 비서의 목소리가 조용히 전달되었다.

―정……말입니까? 그, 작은 사모님이랑 조금…… 닮은 것 같다고 생각은 했습니다만.

“혹시 모르니까 조아현이랑, 마주치는 일 없게 해.”

박 비서의 눈썰미에 알아차릴 정도라면, 그 여우도 언젠가는 알아차릴지 모른다. 나는 박 비서에게 당부하면서 웃었다. 그래, 박 비서 눈에도 그렇다면. 그는 굳게 대답하고는, 이윽고 짧게 축하 인사를 덧붙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나중에 보고해.”

뒷말은 이어지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알았다. 가하를 찾아서 축하한다는 것이겠지. 나는 피식 웃으며 수화기를 내려 두었다. 그래, 가하 성격상 동생을 홀로 두고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가하를 찾는 건, 어찌 보면 시간문제였다.

그리고 그 애가 내 손에 들어오는 것도.

“……그렇지만 벌써 축하하기엔 너무 이른데.”

하지만 내 기분은 나쁘지가 않았다. 그 냄새는, 조아현과 결이 같은 그 냄새는.

“저기…….”

내가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지나온 복도에서 콩콩, 대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가느다란 여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몸을 돌리자, 저 복도의 끝에서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있는 유주연, 아니. 유가연의 얼굴이 보였다.

“저기, 연주 준비 다 됐는데…….”

아, 연주. 그래. 들어야지. 나는 웃어 보이며 발걸음을 그녀가 있는 복도 쪽으로 천천히 옮겼다.

“응. 갈게.”

내, 가하의 핏줄이 연주하는 그 첼로. 즐겁게 들어야지.

“기대된다.”

내 말에 그녀가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기대된다는 건, 그녀의 연주가 아니라…….

“근데, 누나. 가족 있어? 나는, 아빠랑, 엄마 있어.”

“어? 가족……. 응, 나 오빠 하나 있어. 엄마랑 아빠는…… 사고로 돌아가셨구.”

부모가 없다는 사실을 말하기 거북한지 살짝 민망한 웃음을 짓는 것을 두고 나는 천진하게 되물어보았다.

“그렇구나……. 오빠 이름이 뭔데?”

“아, 우리 오빠? 유가하.”

“…….”

“아, 나랑 이름 비슷하지?”

그 입에서 바로 나온 이름에, 내 가슴팍이 두근, 하고 크게 뛰었다.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게.

“……예쁘다.”

그녀는 이해가 잘되지 않는지 마루 쪽에 세워 둔 첼로를 일으키다 말고 나를 바라보았다.

“응?”

“이름. 예쁘다고.”

그리고 나는 불이 꺼진 방 안으로 들어가면서 몰래 웃음을 삼켰다.

그래, 네가 드디어 내게 오는구나. 20년을 기다려서.

그 긴 카르마를 돌아서 내게 오는구나…….

“우리 오빠 예쁘긴 해. 이름도 그렇구, 얼굴도…….”

“……사진 있어?”

“아…… 있긴 한데……. 그, 연주, 듣는 거 아니야?”

그녀의 혼란스러운 표정에 나는, 방의 불을 키고 웃었다.

“아, 맞다. 시작해 줘. 나 자는 거 같으면 연주 끝내고 가도 돼.”

“응.”

그리고 방문을 닫았다. 동시에 장지문 너머로, 그녀의 그림자와 첼로 소리가 흐릿하게 물들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고, 그 고운 소리를 들었다. 언젠가 가하가 서툰 솜씨로 연주하던 것과는 영 딴판일 정도로 솜씨가 좋았다. 좋다 못해 그 애의 냄새를 묻히고 와서 그런가 내 귀에 달았다.

그래, 급하게 갈 것 없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야지.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아야지. 알아차리고 날아가기도 전에.

그 날개를 찢어 놓아, 네가 어디에도 날아가지 못하고, 내 곁에서만 맴돌도록……. 단단히 잡아 두어야지.

나는 감았던 눈을 뜨고 즐겁게 첼로 연주를 들었다. 가하를, 어떻게 예뻐해 줄지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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