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화 (43/61)

* * *

“잠시만 가연 씨 안고 있어. 비행기 표 좀 사고 있을게.”

“응.”

인천공항 제 2터미널 주차장을 빠져 나오는 길에 앞장 선 대호가, 핸드폰으로 바삐 무언가를 하는 동안 나도 같이 따라나섰다. 나는 등에 업은 동생이 떨어지지 않게 팔을 잘 받친 채로 건널목을 걸어가면서 가만히 생각했다.

기억을 다 없애면, 동생은 어쩌지. 나 없이도 이 어린 동생이 잘 있을 수 있을까, 부터 해서 아침에 동생이 그냥 자기 좀 고생해도 좋으니 나가서 같이 살자는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내가 힘들어 보인다던, 그 말. 게다가 주현이를 잊고 살던 이전의 그 날들이 더 행복해 보인다는 말을 했던 게, 자꾸만 내 마음에 퍼져 들어왔다.

내가 기억을 다 잃고 살면,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런 짐도 지지 않으면……. 그때에는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미지의 결과 값이 오히려 나를 부추겼다. 이제껏 가족들 위한다고, 남을 위한다고 선택했던 것들이 하나같이 괴롭기만 하지 않았냐고. 한 번쯤은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선택을 해 보아도 좋지 않겠냐며 나를 계속해서 떠밀어내었다.

공항 입국장이라고 써 붙인 1층으로 들어갈 때, 대호가 앞서 가다 말고 내게 몸을 돌렸다.

“제일 빠른 게 영국으로 가는 표야. 괜찮아?”

“어…… 응. 나중에, 돈 줄게.”

영국으로 괜찮냐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를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았다. 마음속은 기억에 대한 선택으로 복잡했지만, 한편으로는 주현이가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나와서 내게 달려들 것만 같아 불안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행기 표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호에게 신세를 지는 것도 좀 그랬고. 이렇게 나오는 길도 다 도와줬는데…….

나는 대호에게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게 못내 미안했다.

내 대답에 대호가 씩 웃었다.

“그래. 나중에, 이자 쳐서 돌려 줘.”

“물론이지.”

“다 됐어. 이제 내가 가연 씨 들게.”

대호와 나는 3층 출국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탔고, 그는 내 등에 업힌 가연이를 받으려는지 손을 뻗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대호를 만류했다.

“아니야, 내가 들게. 나 정말 괜찮아.”

“……그래도 되겠어? 어차피 곧 타기는 할 건데. 3시 비행기라서…….”

띵, 하고 엘리베이터 특유의 알림소리와 함께 우리는 출국장이 있는 층에 발을 디뎠다. 나는 대호가 말한 시간에 문득 공항 어딘가에 있을 시계를 보려고 두리번거리다가 놀랬다. 벌써 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여행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캐리어들을 끌고 다니는 모습이 제법 많아서 걱정을 더했다. 한 번도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과연 우리가 저 인파와 함께, 비행기를 시간 안에 맞추어 다 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지금 2시인데, 늦은 거 아니야?”

“괜찮아. 우리 표는 빨리 갈 수 있어.”

내 걱정에도 불구하고 대호는 느긋하게 내 어깨를 잡고 비교적 한적한 느낌의 부스로 향했다. 아까 본 여행객들이 줄을 서고 있는 모습과 달리, 영어로 뭐라 뭐라 적혀 있고 안이 보이지 않는 이 부스의 입구로 들어가면서도 나는 뭔가 싶었다. 이런데 가도 되는 건가.

“한국 항공 프리미엄 체크인 카운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체크인 안내 도와드리겠습니다.”

들어가자마자 상냥하게 맞아 주는 항공사 직원과 어디 비싼 카페처럼 조용한 분위기로 푹신한 소파가 넓은 자리에 띄엄띄엄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까 밖에서 바글대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는 모습과는 영 딴판이라 얼떨떨했다. 그러자 항공사 직원이 내 등에 업힌 동생을 보고 우려하는 표정을 지었다.

“실례지만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도움을 드릴만한 게 있으시면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아…….”

이걸 어떻게, 말하지 싶을 때 대호가 나서서 대신 말해 주었다.

“아닙니다. 처제가 지병이 좀 있는데, 먹은 약이 좀 셌더니 잠이 자꾸 오는 모양이에요. 여기 의사 소견서 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정 그러시면 라운지랑 게이트 가시는 길에 휠체어랑 이동용 카트, 준비해드릴까요?”

그녀는 대호와 그리고 잊지 않고 나를 천천히 보면서 질문했다.

“그러면 좋을 것 같네요. 여기 저희 여권이랑, 일정은 3시 출발하는 런던 행 비행기 입니다.”

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직원에게 세 개의 여권과 핸드폰 화면을 보여 주었다. 그녀는 대호에게서 건네진 것들을 받으면서 우려스러웠던 얼굴을 다시 상냥한 표정을 되돌렸다.

“감사합니다. 우선 편하게 앉아 계시는 동안 런던 행 비행기 체크인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나와 대호를 앞선 소파들로 안내했다. 나는 옆에 동생을 앉히고 그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둘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별다른 짐이나 가져오신 수화물은 없으신가요?”

“아뇨, 없습니다. 다만 런던 도착했을 때 머무를 호텔 예약을 좀 해 줬으면 하는데요.”

“…….”

나는 둘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조금 이해가 힘들어서 입을 다물고 어색한 웃음만 띄웠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하다…….’

직원은 조용히 있는 나보다는 대호에게 더 시선을 향했다. 대호는 이런 상황을 자주 겪어 본 것인지, 익숙하게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나랑 같은 나이인데도, 이럴 때 보면 참 달라 보였다.

“알겠습니다. 우선 시간이 조금 촉박해서 체크인 수속 먼저 도와드리겠습니다. 음료는 어떤 걸로 드릴까요?”

“우선 물 두 잔 주세요. 급하게 왔더니 목이 말라서요.”

아, 나도 딱 그 생각했는데. 대호의 대답에 그녀가 이번에는 나를 향해서도 살짝 웃어 주었다. 처음 타는 비행기지만 서비스가 참 좋았다. 이래서 다들 돈 벌어서 여행하러 나가나 보다. 근데 이거는 아까 밖에 있는 사람들하고 뭐가 다른 건가?

“네. 물은 금방 갖다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예. 고마워요.”

“아닙니다.”

그녀가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직원이 쟁반에다 둥근 유리잔과 유리병에 담긴 물을 들고 왔다. 그녀는 우리 앞에 놓인 테이블에 컵을 두고 따닥 소리를 내면서 물병을 따고, 찰랑이는 물을 따라주었다. 대호가 막 따른 잔을 쥐어서 내게 내밀었다. 그에 내 앞에 있는 잔을 들고 만류했다.

“이거 마실게. 그거 너 마셔.”

“응.”

꼴깍 꼴깍 물을 마시고 있는 가운데, 표 세 장이 꽂혀 있는 여권과 대호의 핸드폰을 가지고 나갔던 직원이 금방 다시 종종걸음을 하면서 다가왔다. 그녀 뒤로 남자 직원과 함께 휠체어 하나가 들어오고 있었다. 아무리 이곳에 일 처리를 해야 하는 사람이 우리 밖에 없다 한들, 내가 보아도, 3시 출발 비행기 치고는 너무 늦게 온 거 같은데 물을 마시는 대호의 태도는 느긋하기가 짝이 없었다. 그녀가 오는 소리에 그저 고개 한 번 까딱이고 말 뿐이었다.

“대호야, 우리 이래도 되는 거야? 늦은 거 아니야?”

“괜찮아. 바로 탈 거니까.”

“어…… 응.”

나보다는 그래도 대호가 잘 알겠지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휠체어를 가지고 온 직원이 동생 옆으로 다가왔다. 그에 나도 일어나서 동생을 휠체어에 앉히는 걸 도와주었고, 그동안 대호는 티켓을 가져온 직원에게서 이런저런 사항을 일람 받고 있었다. 그 설명이 다 끝나자마자 대호가 일어섰다.

“가자.”

“……응.”

진짜, 진짜 가는 걸까. 나는 공항까지 와서도, 저 바깥에서 여행객들의 웅성대는 소리에도 아직도 실감이 들지 않았다. 티켓과 여권을 건네준 직원은 서 있는 우리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

“오늘도 저희 한국 항공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출국 수속은 제 옆에 있는 직원이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평안한 비행되시길 바랍니다.”

“패스트 트랙으로 가는 길은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휠체어를 가져온 직원이 동생이 앉아 있는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고 출구를 향해서 손을 뻗었다. 동생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긴 좀 그랬다. 만약 내가 정말 기억을 없앤다면 지금 이 순간이 어쩌면 동생과 함께하는 마지막 순간일 수도 있으니까. 나중에는 같이 있다고 해도 내 동생인지도 모를 텐데. 온전한 기억일 때, 동생과 좀 더 있고 싶었다.

“아, 이건 제가 할게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네네…….”

내가 휠체어를 움직일 무렵에 대호는 여권을 손에 쥐고 핸드폰을 받아서 제 양복 재킷 안쪽에 넣었다.

“수고했어요. 호텔은 앞서 말한 위치로 해 주세요.”

“예. 예약 상황은 이메일로 확인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휠체어를 가져왔던 직원이 우리 앞에 서서 안내했다. 그가 손짓하는 곳에는 패스트 트랙이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여기로 가시면 됩니다.”

그 직원을 따라서 가니 승무원 유니폼을 입은 몇몇 사람들과 서서 재빠르게 출국 수속을 끝낼 수 있었다. 바로 옆에 남들은 다들 줄을 제법 서 있어서 그에 비하면 바로 통과나 다름없는 식이었다. 심지어 우리는 달리 가진 짐도 없어서 무척 빠르게 검색대를 지나치고, 휠체어를 탄 동생은 대호와 직원이 앞장서서 수속을 했다. 그 덕에 나는 혼자 출국 심사대에 서서 여권과 함께 검사를 받았다.

‘영화나 드라마 보면 이런 곳에서 범인들이 막 붙잡히고 그러던데.’

나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대호와 동생이 있는 검색대 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과정에 침도 하나 못 삼킬 정도로 긴장이 넘쳐서 손에 땀이 줄줄 흘렀다.

“다음, 여기 오세요.”

“아……. 감, 감사합니다.”

내 걱정과 다르게 다행히 출국 심사대 직원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우지 않고 내게 여권을 돌려주었다.

‘진짜…… 된 건가.’

나는 믿기지가 않아서 여권을 머뭇머뭇 집었다. 내가 휘황찬란한 상점들 앞으로 빠져나오자 대호랑, 휠체어 손잡이를 잡은 직원이 언제 불렀는지 모르는 커다란 카트에 동생을 태우고 있었다. 내가 바로 그쪽으로 달려가자 직원이 내게 급하게 손짓했다.

“게이트 닫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요. 얼른 타세요.”

“네, 네.”

나도 동생의 옆에 앉아서 그 카트에 탔고, 그러자 직원이 운전하는 카트가 바로 출발하며 너른 공항을 가로질러 갔다. 면세 구역이라 써 붙인 넓은 공간을 지나치는 많은 수의 사람들과 상점의 불빛이 한데 어우러지며 멀어져 갔다. 나는 옆에 앉아 있는 동생이 쓰러지지 않게 손을 붙잡고 있으면서도 내심, 계속 이 상황이 꿈만 같았다.

눈을 한 번 깜빡이고 나면 끝나고 말 것 같은 그런 헛된 꿈.

‘한 번, 깜빡이면 나는 다시 그 집에 돌아가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꿈…….’

아까 출국 심사와 별 다를 바 없이, 탑승 준비를 먼저 돕겠다는 직원의 말에 대호가 그에게 여권을 내밀었다. 우리의 여권을 받은 직원이 게이트 앞에 서 있는 사람들과 떨어진 다른 줄을 향해서 달려갔다. 내가 카트에 실려 있던 휠체어를 바닥에 펼치는 동안 대호가 옆에 와서 동생을 잡고 휠체어에 앉히는 것을 도와주었다.

나는 여전히 떨리는 손을 휠체어 손잡이를 꾹 잡으면서 긴장을 눌러 보려고 애썼다. 그런 내 손 위로 대호의 손이 살짝 내려왔다. 닿아오는 체온에 내가 시선을 들자, 대호가 안쓰러운 눈길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

내가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지나온 과거도 잊지 못해 이러고 현재를 괴롭히는데, 알 수 없는 미래가 과연 나를 구해 줄 수 있을까. 동생도 제대로 도와주지 못하는 내가 내 삶을 잘 이어나갈 수 있을까. 나는 지금껏 한 번도 제대로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런 우리에게 탑승 준비를 도와준다던 직원이 뛰어왔다.

“헉, 헉, 손님. 지금 타셔야 합니다. 게이트 닫기 10분 전입니다.”

“가자. 우선 타고 나서 생각해도 좋아.”

그런 내 마음속 갈등을 알아차린 것처럼 대호가 힘주어 말했다. 그래. 우선, 우선 타고나서 생각해 봐도 좋을 것이다. 영국은 미국처럼 먼 곳에 있을 것이니 가는 것만으로도 오래 걸리겠지. 분명. 그동안 생각을 정리하자고 나는 다시 마음을 먹고, 대호의 손을 잡았다.

“……응.”

그렇게 우리 셋은, 일등석이라고 팻말이 붙은 텅 빈 줄을 직원과 함께 들어갔다. 일등석? 나는 입구마저도 완벽하게 분리된 모습에 의아해져서 대호를 바라보았다.

“일등석이면…… 비싼 거 아니야?”

“신경 쓰지 마.”

“아니…….”

급하게 티켓을 사느라 일반석이 없었나? 일등석은 얼마나 하는지 생각하는 동안 대호가 비행기에 연결된 통로로 들어서면서 말했다.

“괜찮아. 안 받아. 그러니까 그냥 즐겁게 타.”

“……내가 좀 시간 걸려도 다 줄게.”

“응.”

대호는 그저 웃을 뿐이었고, 나는 마음속에 짐이 하나 더 늘었다.

우리가 비행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직원이 나와서 아까 같이 반갑게 맞이했다.

“환영합니다. 티켓 확인 도와 드리겠습니다……. 네, 이쪽으로.”

그녀는 대호가 내민 세 명의 티켓을 보다가 이내 내가 끌고 있는 동생의 휠체어를 보고 나긋하게 덧붙였다.

“저, 환자분 착석은 저희가 좀 도와드릴까요?”

“아뇨. 제가 할게요.”

“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얼마든지 말씀해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일등석은 일등석인지 아까부터 해서 직원들의 대우가 무척 좋았다. 그러면서도 텅텅 비어 있다시피 한 객실을 보면서 그제야 깨달았다.

‘일등석이라서 아까 티켓도 그런 곳에서 따로 받고, 출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에도 이렇게 빠르게 오고 그런 거구나…….’

돈이 좋긴 참 좋다. 심지어 우리가 있는 이 객실에는 아까 줄 서 있던 사람들 수에 비하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좌석 수가 얼마 없었다. 도대체 이거는 하나에 가격이 얼마나 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 생각에 더 빠져들기도 전에, 나는 중앙 좌석에 동생을 잘 앉혀 두고 그 옆에 위치한 창문 쪽 좌석에 앉았다.

“하아…….”

칸막이 쳐져 있는 소파 같은 좌석에 앉아서, 안전벨트를 하고 조그만 창문 사이로 보이는 흐린 날씨를 보고 있었다. 그게 내 마음 같았다.

맑은 날 없는 먹먹한 구름이 낀 그런 날씨.

그 사이에 기체가 엔진 시동을 거는 지 시끄러워지면서 기내 안에는 연신 딩동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오늘도 저희 한국 항공을 이용해 주시는 승객 여러분께 먼저 감사 인사드립니다. 이 항공기는 현재 한국, 서울 인천공항에서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여러분들을 안전하게…….

승무원이 방송으로 내뱉은 인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뿌연 날씨 아래 지면을 보면서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았다.

‘정말, 가는구나…….’

그 집을 나서다 못해, 어떻게 살지 고민을 하기도 전에 이곳을 아예 떠나 버리는 구나.

“이륙 전에 웰컴 드링크 한 잔 드리겠습니다.”

내 대각선 자리에 앉은 대호가 승무원이 따라주는 술 같은 것을 받으면서 뒤돌아 내게 눈짓했다. 그는 양복 윗도리를 벗었는지 셔츠 차림이었다. 나는 애써 웃어 보이면서 그냥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은 아직도 혼란하기만 했다. 막막한 마음과 함께 목이 타서 그런가 아까 마신 물로는 충분치 않아서 승무원이 준 드링크를 한 번에 마셔 버렸다.

“손님, 그건.”

물론 그렇게 급하게 마신 게 술이라는 걸 마시고 나서야 알았지만.

하도 혼란한 정신과 긴장에 꿀떡 마신 이름 모를 술이 어질어질했다. 으아.

“저, 물 한 잔만.”

“네. 바로 가져다 드릴게요.”

그녀가 바삐 가져다 준 물을 마시고 나자 기체는 우리가 앉기를 기다렸는지 흔들 흔들거리며 움직였다.

‘정말 가는 건가. 그런데 영국이면 무슨 말을 쓰지. 영어인가……? 근데 나는 영어 못하는데…… 대호는 잘하겠지……. 변호사고, 공부도 잘했을 거고…….’

나는 급하게 마신 술이 뜨겁게 목구멍을 데워 가는 것을 느끼며 안락한 좌석에 머리를 기대었다. 머리를 받쳐 주는 쿠션도 참 푹신했지만 소파 같은 좌석과, 같이 준 얇은 오리털 같은 이불이 제법 편안했다. 이래서 다들 돈을 벌고,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걸까. 그때에 문득 엄마가 왜 그렇게 돈을 찾아대는지, 포기를 못하는지 조금,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내가 은근히 도는 술기운을 느끼는 순간, 움직이던 기체가 잠시 멈추더니 이내 빠르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직도 주현이는……. 없었다.

아까보다 좀 더 흔들리기 시작하는 기체가 공중에 은근히 붕 뜨는 기분을 느끼면서 나는 눈을 감았다.

‘진짜 가는구나. 이게 다 꿈은 아닌가 보다. 정말 너를 두고, 가는구나…….’

아직도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그 애의 존재를 불안해하면서. 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아찔한 기분을 몇 번 느낀 후에야 기내에 다시 한 번 딩동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급하게 먹은 술이 다시 한 번 도는 것이 느껴졌다. 속이 울렁거려서 창문을 봤다. 그러자 비행기가 짙게 낀 구름 위로 올라가면서 창문 너머로 푸르게 펼쳐진 하늘이 보였다. 그것에 정신이 빠져 가만히 보다가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에 정신을 차렸다. 대호였다.

“어, 어. 왜.”

“……아니. 그냥.”

그는 이내 짓던 웃음을 참는 듯 마는 표정을 하다가 내 칸막이에 기대에서 말했다.

“우리 딱 이륙할 때, 연락 오던데.”

누가 연락했는지는 그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

“……마음은, 좀 정했어?”

웃음 어린 얼굴에 기내 조명이 드리워지며 작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나는 술기운으로 열이 오르는 뺨을 손으로 문지르면서 생각했다.

‘마음…… 기억을 지운다면…….’

나는 그러다가 잠시 미련이 들어 다시 한 번 여전히 깰 기미가 안 보이는 동생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대호가 내 시선을 눈치 챘는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할게. 너 기억 없어도, 내가 계속 잘 돌봐 줄게.”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나 이러면 동생이 원망하지는 않을까 싶었다. 나 편하자고 동생이고 내팽개치고 살고 싶다는 게, 동생에게 어떻게 보일까 싶은 미안한 마음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자 대호가 재차 당부했다.

“괜찮아. 가연 씨도, 이해할 거야. 네가 그동안…… 힘들게 살아 온 거 잘 아는 가족이잖아.”

“……이럴 때만 가족이라고 하는 거 같아서.”

“그러니까. 앞으로 네가 져야 할 짐 내가 질게. 내가 가연 씨 가족이라도 할게. 그러면 좀 안심 하겠어?”

“……그게 무슨 소리야?”

대호의 소리에 나는 그를 쳐다보았고 그는 문득 조금 슬픈 눈빛으로 말했다.

“가연 씨랑 내가 결혼하면 네가 좀 편하겠어? 만약 그렇게라도, 네가 안심이 된다면……. 난 그렇게 할게. 그러니까……. 앞으로 너 어떻게 살아 갈지만 생각했으면 좋겠어.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고.”

“…….”

그 말에 내가 무어라 할 수 있을까. 나는 거기에다 두고 더 이상 동생에 대한 핑계를 댈 수도 없었다. 그야 말로 나를 위해서, 대호는 모든 것을 애쓰고 있었다. 내 기억을 위해서, 주현이에게서 억지로 살았던 지난날들을 위해서.

제 삶을 주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나오는 애에게 내가 말할 내용은 단 하나였다. 어중간한 선택을 했다가는 나뿐만 아니라, 같이 온 동생도, 대호의 노력도 어떻게든 다 망가지고 만다.

‘그 애는 어떻게든 찾아서 나를…….’

우리 모두를 어그러뜨리고 말 테니까.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에게 기억을 간직하고 싶다는 말이, 나올 수가 없었다. 게다가 평소보다 확 도는 술기운이 내 결심에 작은 충동을 더했다. 나는 대호를 빤히 쳐다보던 눈을 감았다.

“그래. 그러자.”

다 잊고,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새롭게 살고 싶어.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나도 그들을 모르고 살고 싶다. 한 평생 남의 손에 휘둘리고 거짓되게 살아 온 삶인 만큼. 이렇게라도 남의 손을 빌려서라도 조금은 편하게 살아 보고 싶었다.

조금은 자유롭고, 조금은 진실 된 진짜 나의 삶을 살고 싶다고.

“가연이……. 잘 부탁해.”

나는 무거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철이 좀 없긴 한데……. 그래도 금방, 바로 생각하는 애야.”

내 대답에, 그는 팔걸이 쪽에 있던 버튼을 눌러서 나의 좌석을 침대처럼 펴 주었다.

“알아. 편히 누워.”

“응.”

모든 변화가 무뎌지게 느껴지는 술김에도 좌석의 변신에 신기해 할 무렵, 그가 열린 칸막이 쪽으로 들어와서 내 좌석의 발밑에 앉았다.

대호는, 내게 사랑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힘든 게 싫다고, 웃었으면 좋겠다며 나를 도와주었다.

나는 술기운에 젖어서 얼얼한 몸을 움직여서 편히 누웠고, 무거운 눈을 감았다. 그러자 대호의 따뜻한 손이 이마에 닿았다.

그렇지만 기억을 잃으면, 나는 대호가 도와준 것마저도 다 까먹을 텐데.

대호와의 기억도 추억도 무엇도 다 없어지는 건데……. 그는 괜찮은 걸까. 어쩌면 나는…….

그가 바라는 만큼, 혹은 바라는 만큼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다 괜찮은 걸까. 나는 누워 있는 채로 눈을 살며시 떴고, 기압 차로 먹먹해진 고막의 압박을 넘겨보려 침을 한 번 삼켰다. 그러자 대호가 쓰게 웃었다.

“난 괜찮아.”

“……고마워.”

“…….”

“고마워, 대호야.”

대호는 참 신기한 애다. 말을 안 해도, 늘 내 마음속을 읽고서 대답을 해 준다.

아니면 내가……. 너무 알기 쉬운 사람일까.

“좀 졸릴 거야.”

그의 힘인지, 무언가 머릿속에 흐름처럼 들어오며, 나른한 내 정신이 빠르게 풀어졌다. 내가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눈이 도로 감기며 그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동시에 꼬인 실타래 같은 기억들이 그의 힘으로 한 올, 한 올 풀어져 내리며 녹아져 내려갔다.

“깨고 나면 다, 괜찮을 거야…….”

죽을 때가 된다면 그동안의 삶이 눈앞에서 펼쳐진다는 것처럼, 내 머리속으로 최근의 일부터 하나씩 하나씩 기억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이었다. 나쁘지 않은 삶이지만 그것도 진짜 그런 것인지는 모른다. 모든 행운도 불행도 그 애의 손 안에서 나오는 것을 두고 뭐라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어쩌면……. 내가 이 인생을 어떻게 안고 가야할지 모르는 건, 내 인생 중에 한 번도 내 의지로 된 게 없다는 걸 내심 알고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 꼬인 인생을 풀어 내리는 방법은, 결국 이렇게 꼬인 부분을 도려내는 방법밖에는 없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은 불공평하다.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남 부러워하는 것을 가지고 살아갈 거라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알 수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잃어야 미래를 가질 수 있는데…….’

다 가진 너는 나 하나만 잃고 말아 버리니, 이건 참으로 불공평하다. 마음도 기억도 그 애의 의도대로 쌓았던 것을 이렇게라도 자유롭게 풀어 버린다는 점에서, 나는 조금은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나를 찾아낸다고 해도, 나는 주현이를 모르겠지.

그때 너는 어떤 얼굴을 할까. 짜증을 낼까, 소리를 지를까, 놀라워할까,

아니면……. 조금은 슬퍼할까.

다시 나를 놓쳐서, 아프고, 힘들어할까.

나는 머리에 닿은 대호의 손이 가진 체온과 상반된 그의 손을 떠올리면서 작게 웃었다.

왜 마지막까지도 나는 너를 생각할까.

하지만 어차피 서로를 다시 알지 못하고 살게 될 거라면,

‘그래도, 내가 없다고 주현이 네가 다시 아프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못 다한 꽃잎처럼 흩뜨려지는 그 생각이, 그때의 내가 가질 수 있던 마지막 기억이었다.

주현 외전 Blue Blood

어린 나의 세상은 한 가지 색깔로 이루어져 있었다.

파란색.

끝없이 펼쳐진 파란 하늘. 검푸른 바다. 그리고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맑은 눈.

스웨덴 출신인 엄마와 함께 살던 예테보리의 집 앞에 매일같이 펼쳐지는 광경이었다. 그 푸른색에 너무 익숙해서 나는 그게 특이하다든지, 혹은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게 내게는 전부였고, 유일한 색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사랑하는 그녀와 닮은 색.

내 안에 채워져 평생 지워지지 않을 그 푸른색.

그런 우리가 한국에 오자 시선의 대상이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모두들, 블랙홀과 같은 까만 눈 혹은 간간히 갈색의 눈을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니까.

“저, 저 눈 봐라. 어미 닮아 징그럽기가 짝이 없어.”

“어머니. 애한테 무슨 말을…….”

“더러운 핏줄 같으니라고.”

처음에는 정말로, 내 피에 무언가 더러운 것이 있어서 그러는 것인가 스스로 상처를 내고 내 피를 관찰한 적도 있다. 하지만 내게 흐르는 피도, 그들과 같은 붉은 색을 가지고 있었다.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파란 눈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 몸 안에 흐르는 피마저도 푸른색인 것 같은 괴물 취급을 받았다. 하나로 통일된 색깔들의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가 가진 이채로운 색깔은 단연코 시선을 잡았다. 단순한 호기심과 함께 그 아래 숨겨진 경멸과 배척은 가끔씩 감당하기 버거웠다.

『엄마…….』

『괜찮아, 주현. 엄마 옆에 있잖아.』

가족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더욱.

한국에 오는 게 싫은 이유 중 하나였다. 스웨덴에 있으면 좋을 텐데. 나는 엄마의 손을 붙잡고 눈을 마주쳤다. 파란색. 그녀의 눈에 비치는 나는 파란색을 띈다. 파란색에 가득차서 안전하다. 나는 그녀의 파란 색깔에 담기고 나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어디 가서 우리 집 애라고 하지 말아. 어디 근본도 모를…….”

야심찬 사업가의 기질을 가진 한국의 할머니는 집안의 사업 중 하나였던 ‘결혼’을 아버지가 실패한 것에 대해 골이 깊었다. 그 화풀이와 원망을 받아내는 것은 그녀의 소중한 아들이 아니라, 일탈로 인한 결과물인 나와 엄마였다.

“당장 저 튀기 내 눈 앞에서 치워!”

사람들이 엄마와, 나를 볼 때마다 말하는 단어, 튀기.

한국어를 모르는 나는 그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파란색이란 뜻이 아닐까, 착각한 적도 있다. 그녀와 나는 단순히 생김새 빼고도, 사람들과 같아질 수 없는 색깔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한국어를 깨우친 이후로는 그런 순진한 생각 따위는 버린 지 오래다.

우리는 파란색을 가진 이방인일 뿐이다.

까만색으로 온통 칠해진 캔버스 가운데 더러운 얼룩 같이 찍혀 있는 푸른 점.

절대로 중화 될 수 없는 그런 색깔.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의 취급도 별다르지 않았다. 저 북해의 바다와 같이 넓은 집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언제나 본채에 비해 작고 낡은 별채에서 숨죽인 듯이 살아야 했다. 바깥일에 열중한 하는 할아버지는 집안일에 무심한 편이었고, 덕분에 괄괄한 할머니의 기세가 우리를 언제나 숨통을 죄어 왔다. 그렇게 겉으로 보면 풍족하기 그지없는 삶인데도 불구하고 한 여름에도 안팎에서는 살얼음을 걷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그러한 날에 유일한 안식처가 있었다.

『왜 엄마랑 나만 눈이 파랗죠.』

『음……. 하늘을 많이 봐서 그래.』

햇볕이 잘 들어오는 넓은 마루 아래에 앉아서, 소담한 정원을 앞에 두고 그녀에게 투정을 부리면 다정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녀는 신데렐라를 공주님으로 만들어 주는 푸른 요정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속상하고 힘들다고 해도 그녀의 곁에 있다면, 모든 것이 마법처럼 좋게 되었다.

『말도 안 돼.』

『정말이야. 엄마가 거짓말 하는 거 봤니.』

『음…… 아니요. 하지만 다들 싫어해요 내 눈을…….』

우리를 구속하는 이 답답한 집이 유일한 둥지이자 쉼터로 변하게 하는 신비로운 힘. 나와 같은 색깔을 가진 그녀의 푸른 눈을 볼 때만이라도 나는 바깥에서 상처 나고 꼬인 마음을 자유롭게 풀어 내릴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랑했다. 아침을 밝혀 오듯 연한 푸른빛을 가진 그녀를.

매일 찾아오는 아침과도 같은 그 빛깔을 사랑했다.

엄마는 투정을 부리는 나를 안고서 가만히 속삭였다.

『그렇지 않아. 왜 그런 생각을 해?』

『……적어도 할머니는 싫어해요.』

그러자 황금을 뽑아낸 얇은 타래가 강처럼 내 눈 앞에 쏟아졌다. 저물지 않을 백야와도 같이 반짝이는 빛. 세상에 없는 빛을 가진 사람과 같은 색깔을 가졌기에 그 새장에서도 행복할 수 있었다.

『있잖아, 저기 저 푸른 하늘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니? 그냥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넓어지고, 시원해지잖아……. 우리 주현이 눈도 저런 색깔을 가지고 있어.』

그 파란 눈처럼 고운색의 마음씨를 가진 엄마가 웃어 주면, 일요일마다 갔던 성당 벽에 그려진 천사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공교롭게도 그녀의 이름도 그 천사의 이름과 같았다.

『……그러니까 주현이 눈을 보고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야.』

그녀가 벽화 그림과 달리 등 뒤에 날개는 없는 건, 아마도 이 땅 위에 살아가기 위한 대가가 아닐까. 나는 비밀스럽게 상상하곤 했다.

하지만 날개가 있는 것들이란 응당 저 하늘 위로 날아가 자유롭게 살아가야 한다. 그게 순리였다. 날개가 있는 것들에 대한 순리.

『그걸 어떻게 알아요?』

『음…… 어떻게? 글쎄.』

나의 엄마는, 그녀는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랑하는 새들이 자유롭게 사는 삶에 대해서 연구했다. 하지만 결혼이란 명목 아래 붙잡힌 이후로 그녀는 이목이나 보이지 않는 규칙 따위에 붙잡혀 작은 세상에 가두어져 있었다. 좋은 먹이와 화려한 새장 안에서 아직 날지 못하는 새끼를 위해서. 그녀가 자유롭지 못하고 이 작은 새장에 머무르게 된 것은 온전히 나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이혼은 허락했지만 유일한 손자인 나를 데려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무리 괴물 같은 손자라고 해도 유일한 핏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남았다. 그녀를 닮은 내가 혼자서 이 작은 집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 걱정이 되어서.

나는 아직도 가끔 생각한다. 내가 없었더라면. 그래서 먼저 날아갈 수 있었더라면. 그녀가 사랑하는 새와 같이 날아갈 수 있었더라면 언제나 내 곁에 있었을까? 자유롭게 웃고 떠들며 내 곁에 있었을까.

『보면, 바로 알게 될 거야.』

그 아름다운 푸른색을 조금 더 오래 볼 수 있었을까…….

『뭐야. 거짓말 같아.』

『정말이야. 엄마도 우리 아빠를 보고 알았어. 주현이 같이 귀여운 아이가 태어날 거라고 말이야.』

『…….』

『후회 안 해, 엄마는…….』

묶여서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푸른 천사. 새끼를 낳아 옴짝달싹도 못하는 그 새는 슬프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나를 안고서 되뇌었다.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우리 주현이는, 어떤 새가 될까.』

『파란색.』

『파란색은 새가 아닌걸.』

『그럼 파란색을 가진 새.』

그녀가 가진 푸른 사랑은 하늘과 같이 넓고 바다와 같이 깊어서 작은 나를 언제나 품었다. 어떠한 일이 그녀에게 닥쳐온다 해도 그녀는 금방 잔잔해지고 맑아졌기에 나는 언제나 안심했다. 그 파란색의 주인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내 삶의 그 푸른색은 오래가지 않았다. 신이 사랑하던 천사와 닮은 엄마의 금발머리가 어느 순간부터 빛을 점점 잃어 갔다. 하루 종일 햇볕을 머금어도 푸석해진 머리 뒤로 빛의 고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것을 먹어도 말라 가는 가녀린 몸은 바람 한 번 불면 위태롭게 흔들렸다. 신이 내려 주신 사랑이 다한 것인가. 아니면 나를 위해 오랫동안 머무른 것이 신의 분노가 닿은 것인가. 그녀의 파란 눈이 빛이 아닌 습기를 머금고 바래질 때에 내 마음이 날개가 돋힌 것처럼 흔들렸다.

『그럼 엄마는 뻐꾸기가 될래.』

『뻐꾸기? 왜.』

『우리 주현이처럼 파란 새가 나올 것 같은 알을 낳거든.』

뻐꾸기는 여름에 왔다가는 것이라 그랬을까. 그녀와 나는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가 살던 예테보리로 돌아갔다. 향수병이 깊어진 그녀를 위한 아버지의 조치였다. 아버지가 나를 어머니와 같이 보낸 것은, 그녀에게 주어진 작은 족쇄라는 것은 언뜻 알았지만 그래도 옆에 있었다. 점점 무게가 가벼워지는 엄마는, 눈을 잠깐 돌리면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아서 불안했다. 그래서 그녀의 발목에 달린 무게 추를 자처했다. 날이 갈수록 바스라질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은 어린 내 마음을 폭풍처럼 할퀴었다.

『돌아왔구나, 그렇지 주현?』

『응.』

우리가 한국에 있느라 비어 있던 예테보리의 집은, 관리인이 제법 깔끔하게 청소한 덕분에 빈 집으로 있던 기간에 비해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그런 집 뒤에 전나무 숲이 하나 있었다. 예전부터 나는 산책을 빙자해서 그 숲을 탐험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날도, 예전과 별다를 바 없는 그런 날이었다. 그녀는 숲으로 가는 내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식사 시간까지 돌아오렴.』

백야가 주는 빛에 속아 식사 시간이 넘어서 집에 들어왔지만 온기는 찾아 볼 수 없었다. 하물며 엄마가 차려 두었을 식탁에 손도 대지 않은 음식이 식어 있었다. 시간 맞춰 돌아오라고 말한 사람은 정작 집에 없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 그러려니 넘어갈 법도 한데, 그날은 좀 달랐다.

『엄마?』

늦여름의 순간을 간직한 숲으로 들어가자 더위 하나 없이 서늘하기만 했다. 빽빽하게 들이찬 전나무 무리 속에서 엄마를 불렀다. 내 작은 외침만이 메아리 치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게 마음속의 알 수 없는 불안을 부추겼다. 푸르스름한 냄새가 풍기는 전나무 숲은 필요한 벌목 외에는 손을 대지 않아서 빽빽하게 시야를 가렸다. 엄마가 한국으로 오기 전까지 잘 관리했던 숲에는 아픈 나무도 없었고,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나무들이 그늘 아래 꺼질지 모르는 태양빛을 이따금씩 조명처럼 비추어 주는 게 다였다. 그럴 때마다 어슴푸레한 햇빛 너머로 이끼 같은 것들이 숨 쉬는 모습이 보였다.

참으로 조용한 것들. 자연과 섭리에 맞추어 그저 살아가는 것들. 시끄러운 세상 사람과는 다른 것들. 참견도, 불만도 무엇도 하지 않고 섞여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들.

그렇게 생각하니 엄마가 생의 마지막 장소로 왜 선택했는지 알 것 같다.

나는 목이 쉬도록 집과 숲에서 그녀를 찾았지만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그녀의 그림자 하나 찾아 볼 수 없었다.

『어디 갔지?』

그제야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세상을 보았다. 여름의 백야 동안 낮은 꺼지지 않을 불처럼 타오른다. 나무의 틈새로 저무는 노을이 산불처럼 물들어 가며 까만 밤을 불러왔다.

그녀와 함께 하던 집에 나 혼자만 남았다.

결국 우리와 함께 온 비서가 경찰을 부르고 나서야 엄마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녀를 데려오지 않았다. 내가 숲에 가 있는 동안 집 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에 몸을 던졌다고 했다. 아무도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 마치 인어 공주가 바다 속의 거품이 되어 버린 것처럼 나는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었다. 생전의 웃는 얼굴을 보이는 사진과 까만 관의 뚜껑이 그녀의 존재만을 짐작하게 했다.

그렇게 내 삶의 푸른빛은 사라졌다.

까맣기 짝이 없는 세상에 나만이 유일한 푸른색을 간직한 채로 남았다.

엄마와 일요일마다 가던 성당에서 조촐한 장례가 끝나고 그녀와 함께 하던 집 거실에 앉아서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지 않는 백야의 하얀 빛을 등에 지고 날아가는 새들의 무리가 어디론가 가지런히 날아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엄마의 아무리 날개를 없애고 숨긴다고 한들, 날아가는 것을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엄마가 서투른 한국어로 애써 읽어 주던 ‘선녀와 나무꾼’ 동화에서 애가 둘이면 선녀가 날아갈 수 없다고 했는데. 엄마의 새는 나 혼자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떠다니던 그녀를 잡은 내 손이 너무 작았던 것인가. 엄마는 뻐꾸기가 되고 싶다 했는데. 왜 잠시 떠난 그 철새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지 않을까. 왜 내 곁에 더 이상 없을까. 왜 나를 웃으며 보냈을까.

그녀가 참 힘들다고 울었더라면.

아직 내 곁에 있었을까.

“…….”

어울리지 않는 새장에 갇힌 새를 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저 하늘 위로 자유롭게 놓아 주는 것.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해서 엄마를 잠시 놓아 준 것이겠지.

하지만, 이렇게 손 하나 잡을 수도 없는 곳으로 가 버릴 줄은 알았더라면, 붙잡을 수 없는 시간 속에 멈추어 서서 살게 될 줄은 알았더라면,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내 옆에 끝까지 뒀어야 했는데.

설령 그 새가 행복하지 못하다고 해도, 억지로라도 내 눈이 닿는 곳에 둘 것을.

아버지가 범한 실수로 그렇게 나는 가장 아끼는 새를 잃었다. 한 순간의 선택과 실수. 그게 내 평생을 갉아 먹었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아버지와 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 거라 마음을 먹었다.

사라진 그 푸른빛이, 날아가 버린 그 새가 저 넓은 하늘을 헤매다 언젠가 내게 돌아온다면.

그때에는, 잡아서 어디 함부로 보내지도 않고, 내 곁에 두고 마음껏 아껴줘야지. 천천히 길을 들여서, 다른 곳도 아니고 내 옆에 있는 것만이 배부르고, 안락하고, 따뜻하다 느끼게 해서, 새장이 새장 같지 않게 해 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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