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화 (42/61)

* * *

이 커다란 저택의 부지는 눈앞을 먹먹하게 가릴 정도로 쏟아지는 빗 사이를 뚫고 앞장 선 대호와 동생을 안고서 뛰는 나를 빼면,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대호의 능력으로 잠이 든 내 여동생은 아무리 여자애라고 해도 축 늘어진 만큼 제법 무게가 나갔다. 그래도 나름 공사판에서 구르고 구른 덕에 감당할 만 했다. 그런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 부지의 끝에 도달하기도 전에 힘이 바닥을 보였을 정도로 저택의 부지는 운동장 마냥 제법 넓었다.

게다가 비도 세차게 오고 있었고. 내 옆에서 우산을 씌워 주는 대호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에 몰이치는 빗방울이 얼굴과 바짓단을 연신 적시기 바빴다.

대호는 우산을 들지 않은 팔로 내 어깨를 감싸고 본채 근처, 어디 지하로 향하는 계단으로 나를 이끌었다. 내가 난간을 붙잡고 천천히 내려가는 동안 대호는 우산을 잔디밭에 내팽개치고, 급한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서 굳게 닫혀 있던 문을 열었다.

그가 들어가며 벽에 있던 스위치를 누르자마자 천장에서 띄엄띄엄, 시간차를 두고 하나둘씩 켜지는 조명이 지하 공간의 용도를 드러내었다. 본채의 정원 밑으로 깊숙하게 파놓은 지하에는 여러 대의 자동차와 미니버스 같은 것 따위가 주차된 차고가 있었다. 물론 여느 차고보다는 크고, 무지렁이인 내 눈에도 주차된 자동차들이 대호가 운전하는 차와 비슷한 외제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호는 지하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미니버스 같은 것으로 달려갔다. 이미 정해 둔 것처럼 고민 없이 달려가는 모습에 나는 그저 그를 뒤따라갔다. 그는 미니버스 중앙에 커다란 문을 옆으로 밀어 내듯이 드르륵 열어서 내게 타라고 손짓했다.

“가하야, 얼른 타. 내가 운전할게.”

“응.”

나는 동생이 어디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히 미니버스 내부에 올라탔다. 그러고 우선 동생부터 먼저 안 쪽 좌석에 앉혔다. 그런 내 뒤로 열려 있던 커다란 문이 쾅 닫히고 바로 운전석의 문이 딸칵 열렸다. 대호가 시동을 켜는 모습에 나는 조금 안심하고선 연신 주변을 살피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동생을 앉힌 좌석에 안전벨트를 매 주었다. 아직도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런 상황에도 동생은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 그저 편안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시동을 거는 대호가 내가 있는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하야, 앉아. 안전벨트도 하고. 지금 출발할게.”

“어, 어어.”

동생 옆에 앉으며 긴장이 배여서 헛도는 손으로 안전벨트를 매자, 앞에 차고 문으로 보이는 것이 서서히 열리며 어둑한 색으로 선팅이 된 차창을 좀 더 환하게 비추었다. 차고 문이 어느 정도는 열렸지만, 다 열리기도 전에 대호가 차를 급하게 출발시켰다.

“윽.”

갑작스러운 발진으로 쏠리는 동생의 몸을 두 손으로 붙잡는 순간, 우리가 타고 있는 미니버스 천장 위로 까가가각, 하고 긁히는 소리가 났다. 내가 짙게 선팅이 된 뒷좌석의 차창을 보니, 충격에 휘어진 차고 문이 보였다.

‘지금, 차고 문……. 부순 건가.’

“괜찮아. 우리 것도 아니잖아.”

“그렇긴……. 한데.”

이래도 되는 건가, 싶으면서도 진짜 저 집을 나왔다는 사실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내가 그 모습을 보고 있자 대호가 속도를 높이는지 엔진 소리가 조금 더 울리면서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어차피 나갈 거, 더 열 받게 만드는 게 속 시원하지 않겠어?”

“…….”

나는 고개를 돌려서 백미러로 나를 보는 대호와 눈이 마주쳤다.

‘그래, 어차피, 내 삶에 못할 짓을 한 애의 집이 어떻게 되던지 알게 뭐람. 지금 당장 나가는 게 중요하지.’

나는 급하게 흔들리는 차체와 같이 정신이 없는 마음을 그나마 고정시켜 주는 안전벨트를 잡고서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자 대호가 백미러로 나를 보면서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

“불안해?”

“……그, 그냥. 믿기지가 않아서…….”

내 뒤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라도 뒤를 돌아보았다가, 주현이를 보지는 않을까, 주현이의 그 푸른 눈이 나를 쫓아오지는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마구 요동쳤다. 그리고 내 짐작이 맞다면, 각인으로 이어진 그는 이런 내 마음의 변화를 알아차렸을 수도 있다. 그렇다 보니 이런 상황을 들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시간 문제였다. 나는 요동치는 가슴을 손으로 꾹 누르면서 진정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괜한 짓을 한 것은 아닌지 조금 갈등하고 있는 가운데 각종 클랙슨 소리를 들어가며 차선 새치기를 하던 대호가 말했다.

“안 쫓아 와. 걱정 하지 마. 뭐, 못 쫓아오는 거에 가깝겠지만.”

“어떻게……?”

걔가 어떤 애인데 그럴 리가. 그런 대호가 옆 차에게 손을 올리면서 씩, 웃었다.

“내가, 걔네 회사 비리 모으고 모아서 언론이랑 아는 검사에게 제보하고 왔거든. 큰 회사라 그런지, 털릴 게 많기는 많더라. 지금 그거 수습하느라 다들 퇴근 생각은커녕 정신없을 거야. 우리에겐 그 동안 시간 버는 거고.”

그는 핸들을 꺾으며 이내 버스 전용차로로 진입했다. 그 모습에 내가 의아해졌다. 이거는 버스만 가는 곳인데. 이렇게 가도 되는 건가. 이 급한 일에 신호 따위를 지킬 생각을 하는 나도 좀 웃겼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운전을 하던 버릇을 버리기는 어려웠다. 이런 낮의 버스 전용차로는 텅텅 비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 너른 도로를 씽씽 달리기 바쁜 대호가 내게 다시 한 번 주지시켰다.

“그 사이에 우린 공항에서 비행기 타고 출국만 하면 돼. 해외로 가면 송주현도 찾기 어려울 거고.”

“해외? 나, 여권 없는데.”

한 번도 외국 따위를 나가 본 적이 없는 내게 대호가 품 안에서 수첩 같아 보이는 것을 꺼내서 내게 건네주었다.

“여기 있네. 가연 씨 것도 해 놨어.”

나는 그것을 받아서 펼쳐 보았다. 어제 날짜로 갓 발급이 완료된……. 내 이름의 여권이었다.

“이건 어떻게……. 했어?”

“송주현이 너, 가이드 센터에 파트너로 등록할 때. 그, 너 발목 다치고 정신없었을 때 송주현이 너 자는 사이에 지갑에서 주민등록증 빼 놓은 거 건네줄 때 미리 준비 해 뒀지. 혹시…… 모르니까.”

“아…….”

가이드 센터에 각인된 상대를 등록할 때 주민등록증 따위를 가지고 가서 서류 작업을 한다는 건 대충 알았다. 그리고 그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진 모양이었다. 내가 그 준비성에 놀랄 새도 없이 대호의 말에 나는 다시 한 번 허탈함을 느껴야 했다. 도대체 내 삶에 내가 스스로, 자의로 선택해 본 게 있기나 한 걸까.

‘지금 이 순간을 빼면, 내가 뭐 한 번……. 제대로 해 본 게 있기나 한 걸까.’

그 생각에 찌꺼기처럼 남은 후회도 차창에 스치는 빗방울에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잘 한 거야.’

그런 애의 옆에 있어 봤자 어느 것도, 그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생각에 나는 대호에게 물어보았다.

“그럼, 우리 어디로…… 가?”

“글쎄. 가연 씨는 독일 가고 싶어 하는 거 같던데. 가하 너는 어디 가고 싶은데 있어?”

대호의 반문에 나는 멋쩍게 머리를 긁었다. 그도 그럴게, 딱히 어디를 가고 싶은 적이 없었다.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까.

“어…… 모르겠네. 한 번도…… 어디 가 본 적이 없어서.”

“가서 생각해 보자.”

그동안 좀 쉬고 있으라며 그가 속도를 점차 안정적으로 내었다. 그 모습에 비로소 긴장을 조금 던 내가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 대호가 막 생각났다는 듯이 덧붙였다.

“깜빡할 뻔 했네. 가하, 너 각인 말이야.”

“……어, 응.”

그의 눈이 드넓은 도로를 비추는 차창을 여전히 향한 채로 내게 말했다. 양 옆으로 움직이는 와이퍼가 차창에 끊임없이 맺히는 빗방울을 쓸어내렸다.

“알아봤는데…… 각인이 깨지는 기본적인 조건은, 둘 중 한 명이 죽어야 하거든.”

“…….”

“뭐, 처음에는 송주현을 어떻게든 죽이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 녀석 가이드라서 내가 어떻게 하기에는 좀 불리하더라고. 그리고 잘못했다가 각인 깨지는 반동이 네게 돌아가면 그것도 문제고.”

죽어야 깨어지는 연이라니 참 지독하기가 끝이 없었다.

그럼, 주현이와 나 둘 중에 한 명이 어떻게라도 죽는 수밖에는 없는 걸까.

나는 점점 심하게 요동치는 가슴팍에 손을 올리고 터질 듯이 쿵쿵대는 고동을 느꼈다.

아니면 계속해서 이 각인의 거리가 언제 가까워질지 모르고 불안함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그런 비관적인 생각을 펼치는 가운데 대호의 말이 나왔다.

“더 찾아봤는데. 다행이…… 상대가 죽지 않고서도 각인이 깨지는 사례가 있더라.”

“어, 어떻게?”

대호가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손으로 제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가리켰다.

“기억. 사고로, 기억이 다 없어졌는데 그게 몸에 영향을 미치는지……. 자기 각인 상대와의 각인이 전혀 발동하지 않았다고 해.”

“……응.”

“게다가 마침……. 내가, 정신계 쪽 에스퍼잖아. 내 힘으로 너를 도와줄 수 있을 거 같아.”

보이지 않게 매인 이 끈을 없애는 방법이 있다는 것도 조금은 놀라웠지만 그 전제 조건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기억을, 다 없애면 각인이 깨질 수 있다는 말에 나는 기분이 오묘해졌다.

각인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르지만 어떻게든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감정이나, 몸의 반응 같은 것들.

이어진 상대인 나도 그에 어느 정도 감화되는 게 있어서, 주현이와 함께 있으면 전해지는 그 감정의 여파가 버거웠다. 그런데 그 짐을 덜 수 있는 방법은 기억을 없애 버리는 거라니. 생각하지도 못한 대가에 쉽사리 그렇게 해 달라고. 나를 도와달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원래, 가진 것 없는 삶이었다.

그런 삶을 지탱해 주는 것들은 아주 작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힘든 날도, 아픈 날도, 슬픈 날도, 그리고 기쁜 날도 있던 기억들.

그나마 없는 내게 가진 것은 그것뿐인데, 그것마저 버리고 가야하는 삶이라는 건 참 잔인한 선택이었다.

내가 곰곰이 선택지를 생각하고 있는 가운데 대호가 말했다. 이제 인천 공항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는 차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당장 결정하라는 건 아니야. 하지만 각인이 계속 유지되고 있으면…….”

“…….”

“아무리 외국에 숨어 있는다고 해도 송주현이 너를 찾을 때 도움이 되겠지.”

결국 전부 버리는 것 밖에는, 지우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옆 좌석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동생의 손을 잡았다.

‘내가 기억을 잃으면, 동생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아마, 그렇겠지…….’

소리를 지르던 엄마도, 나를 죽이려 들던 아빠도, 박 씨 아줌마의 따뜻했던 그 손길도…….

결국은 다,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 것을 괜히 아파하고 그리워하고 애쓰고 말았구나.

동생이 누워 있는 좌석의 뒤로 보이는 차창에, 흐르는 빗줄기가 달리는 속도에 따라 흐르며 작은 물줄기를 만들었다.

작고 작은 기억들이 흐르며 나를 만들었지만 그것도 이제는 두고 가야한다는 게 참 야속했다.

너는 가진 것도 많은 애가 왜 없는 나에게 와서, 내게는 소중한 것들을 버리고 가게 만드는 걸까.

“기억…… 다 없애 버리면.”

난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대호가 내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봤지만……. 아직도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게 맞았다. 나는 그저 그가 얽고 얽어서 덫처럼 만든 그 인연의 끈에서 해방되고 싶은 마음밖에는 없었다. 그런 내게 아무런 기억마저도 없으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

나는 동생을 보면서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말했다.

“아무도 기억…… 못하겠지?”

“…….”

“가연이도, 너도…….”

그리고 주현이도……. 모르겠지. 그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또 그렇게라도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자꾸만 스스로에게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애의 옆에서 산다고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란 보장도, 결심도 서지 않았다. 그런 내게 대호가 말했다.

“가연 씨 걱정 되는 거면 내가 책임질게.”

“……대호야.”

“예전에도 그랬지만……. 네가 가족들 때문에 짐을 지고 참는 거 싫어. 만약 동생이 마음에 걸리면, 내가 약속할게. 무슨 일이 있어도 가연 씨 하고 싶은 거, 네가 했던 만큼, 모자라지 않게 지원해 줄게.”

“어떻게 그래. 너도 나 때문에 지금 힘든데…….”

“이런 건, 아무것도 아냐.”

내 가족도 무엇도 아닌 사람이 저렇게까지 말을 하는데 대호가 핸들을 살짝 돌리면서 차선을 바꾸고 말했다.

“나는 네가 힘들어 하는 거, 더 이상 보기 싫어.”

그가 질주하는 도로 위에 걸린 표지판이 인천공항 터미널의 숫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2터미널로 향하는 차선을 택하고 속도를 더욱 높였다. 한바탕 비를 쏟아내던 흐린 날씨는 이제 비를 멈추었지만 습한 날씨로 인해 고속도로 옆에 펼쳐진 바다 위로 안개를 자욱하게 만들고 있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나는 동생의 손을 붙잡고 다시 한 번 고민했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기억에 남은 주현이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했던 나날들을 맞바꿔야 할 선택을.

“내게는 그게……. 더 힘들어.”

“…….”

기억을 다 잊고 산다면, 조금은 행복할 수 있을까. 이런 불안과 걱정에 떨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그렇지만 나 편하자고……. 동생도, 대호도, 공사판 아저씨들도, 모든 사람들을 다 잊어도 되는 걸까. 힘들고, 아프고, 지친 삶이었지만 그게 나쁘다고만 볼 수 없었다. 그저 지금 이 상황이 조금. 아주 조금 버겁다고 느꼈던 것이지 그것 때문에 모든 삶을 놓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생각보다 조금 더 지쳐 있었던 것 같았다. 동생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차마 생각하지 못한 이 선택을, 기회를 잡고 싶어졌으니까.

모든 것을 다 잊고, 잃고 처음부터 시작하는 삶을.

자욱하게 깔린 안개 속을 나오자 환한 불빛을 내뿜고 있는 공항이 가까이 보였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흔들리던 결심도 겨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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