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화 (41/61)

* * *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면, 주현이는 출근 준비를 하고, 나는 그 애가 준비가 다 되었을 때 넥타이를 매 주었다. 반복된 학습의 효과 덕분일까, 엉키고 어설펐던 넥타이는 어느덧 제법 모습을 갖춰 가고 있었다. 가끔 마주치는 박 비서의 넥타이에 비하면 좀 어설픈 티가 나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봐 줄 만 했다.

그렇게 나가 버린 주현이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집에서 잠을 자고, 어려워 보이는 내용의 책 따위를 읽는 게 일상이었다. 죄다 외국어로 쓰인 책은 까만 건 글씨요, 하얀 건 종이라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덮어 버리는 그런 일상.

주현이도 회사 일이 제법 바쁜지 집을 나서면 늘 늦은 밤 시간이 깊어야 겨우 돌아왔다. 전전날에는 주현이를 기다리던 내가 먼저 잠에 들어 버린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변함없이 오고 마는 아침볕에 일찍 깨면 어느덧 돌아온 주현이가 내 옆에서 곤히 잠을 자고 있는 그런 날.

우리는 그런 날들을 반복했다.

다만 조그마한 변화가 있었다면 지난날의 대화 덕분인지 주현이는 나름 얌전한 태도를 보였다. 나는 그저 지옥 같은 밤을 새지 않아도 된다는 작은 안도감과 갑갑했던 삶이 조금은 살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렇게 시간이 흘러흘러 대호와 약속한 날도 오고야 말았다. 잠시나마 평화로웠던 날을 일깨워 준 것은, 가연이의 방문이었다.

“오빠, 있어?”

복도 마루에 누워서 회색빛으로 찌그러져 가는 구름을 보다가 현관문을 드르륵 여는 목소리에 일어났다. 본채에 같이 모여서 밥을 먹은 이후로 만난 적 없는 동생의 방문은 갑작스러웠다. 가연이는 복도 너머로 오고 있는지 복도 코너 너머로 조심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삐걱대며 같이 울렸다.

“응, 가연아. 나 여기 있어.”

“아, 역시! 이 집은 워낙 조용해서 사람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내가 복도 마루에 팔을 기대어 비스듬히 앉아 있는 동안 확신을 가진 걸음이 빨라지는 소리와 함께 환하게 웃는 동생의 얼굴이 막 나왔다. 본 적 없는 핑크빛의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동생은, 여자 옷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내 눈에도 제법 예뻐 보였다. 어디서 난 것이냐고 물어보려다가, 내 옆에 다소곳이 앉는 동생의 얼굴을 보면서 말았다. 물어보지 않아도, 대충 가늠이 갔다. 엄마나, 주현이가 사다 준 것이겠지.

그건 내가 해 준 것도 아니고, 결국에는 내가 해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참 예쁘다.’

이런 나이는 무엇을 걸쳐도 예뻐 보일 나이라고들 입 모아서들 말하지만, 좋은 옷을 입고 행복하게 웃는 모습은 내가 아닌 남의 눈으로 봐도 참 예뻐 보일 게 분명하다. 내가 여기에 있는 대가로 쥐어지는 것들은 참, 좋은 것들이라는 게 비로소 느껴졌다.

그리고 왜 엄마가 그걸 놓지 못하는지도, 언뜻 알 것 같았다.

“주현이는 나간 거지. 오기 전에 박 비서 아저씨에게 한 번 물어보기는 했는데.”

마룻바닥에 다리를 인어 공주처럼 구부려서 앉은 동생은 나를 보다가도 방이나 부엌 쪽으로 목을 뻗으면서 은근히 눈치를 보았다.

“응. 출근했어. 옷 예쁘다.”

“응응. 그런 거 같네. 아, 예쁘지! 고마워 오빠.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막상 들으니까 기분 좋다.”

가연이가 제 원피스 자락을 톡톡 펼쳐 보이면서 웃었다. 숨길 수 없는 천진하고도 어린 모습에 나도 말라빠진 웃음이 실실 나왔다.

“그래. 왜 왔어. 뭐 필요한 거 있어?”

“아니, 그런 건 아니구. 저번 저녁에, 우리 엄, 마가. 아, 엄마라고 하니까 좀 어색하다. 그치.”

가연이는 내 말에 살짝 안심한 얼굴을 하다가 혼자 웃음을 터뜨렸다. 20년 만에 찾은 엄마라는 호칭은 영 입에 붙지가 않는 듯 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10년 동안 그녀와 살았던 나도, 20년 후에 만난 그녀를 엄마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미묘한 거부감이 있었으니까.

나를 버리고, 갓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었던 저 애를 버리고 간 사람에게, 엄마라는 호칭은 아까웠다. 동생은 누가 해 줬는지는 몰라도 땡글땡글하게 말은 머리끝을 만지작거리면서 방금가지만 해도 밝게 웃었던 표정을 바깥 하늘의 먹구름처럼 흐렸다.

“아무튼, 저녁에 엄마가 여기 왔다가…… 다쳤다고 그러더라구.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봐도 아무도 말 안 해 주고. 그런데…….”

“…….”

그 말이 어떤 일을 말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그 사고가 났던 자리에 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주현이가 벌인 일을 순순히 말해 줄 간 큰 사람은 없었겠지. 그걸 잘 모르는 가연이는 곱슬진 머리끝을 만지던 손을 가만히 둘 줄을 모르고 맞잡았다가, 깍지를 꼈다가를 산만하게 반복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냥,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우연히 경비 서는 아저씨들이 하는 말 들었거든.”

“그……랬어?”

‘들었다고?’

그럼…….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아는 건가 싶을 즈음에 살짝 간격을 두고 앉아 있던 가연이가 내가 마룻바닥에 기대느라 펼쳐둔 손을 잡았다.

“오빠, 이대로 주현이 옆에 있어도 되겠어?”

“……어?”

동생이 꺼낸 말은 의외의 말이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보다 말고 한참 쓸쓸해진 눈으로 마루 너머에 있는 내 다리를 쳐다보았다.

“그때도 오빠 다리 그 모양 해 놓았구. 저번 날에도 엄마 손목 다친 거, 주현이 때문이라고 들었어. 아무리 에스퍼인 오빠를 찾았다고 해도. 바로 좋아지는 건 아니라고 하더라. 그래서 막 화나면……. 힘 컨트롤이 잘 안 된다고. 그거 옆에 있는 오빠가 다 받아내는 거라고……. 아저씨들이 그러는 거, 나 다 들었어.”

“…….”

“맞아?”

“……점점 좋아지겠지.”

“맞구나.”

솔직하지 못한 내 대답에 동생은 슬픈 눈으로 나를 보았다.

“오빠 또 다치면, 아무리 가이딩 해 줘서 말끔히 낫는다고 해도, 아팠던 게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동생은 내 손에 제 손을 올려 두고 가만히 속삭였다.

“처음에는, 내가 하는 알바가 오빠 고생 덜어 줄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래서 오빠가 걱정해도 계속 알바하겠다고 한 것도 있어. 빌려준 첼로도 엄청 좋은 거라 욕심도 났고. 근데 이제 와서 주현이 에스퍼가 오빠라고 하고, 이런 일들을 보고 들으니까……. 나는 잘 모르겠어.”

동생은 흐릿한 날씨로 침침한 낮의 빛을 유리 덧문 너머로 받으며 나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여기 온 이후로, 오빠가 예전처럼 활기찬 모습을 못 본 것 같아. 물론, 그동안 발목 아파서 누워 있었던 건 아는데……. 지금은 나은 것도 아는데…….”

“……”

“그냥, 기분이 이상해. 난 생각보다, 오빠가 땀 흘리면서 열심히 살던 모습을 좋아했던 것 같아.”

멀지 않던 그 날들을 되짚어 말하던 동생은 작게 웃었다.

“아, 이렇게 말하면 좀 그런가? 나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이 좋다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사는 곳도, 먹는 곳도, 입는 것도 갑자기 바뀌니까 영 이상해. 심지어 주현이는 갑자기 말을 잘하고, 사모님이 내 엄마라고 하고.”

“……가연아.”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이런 건가 싶고 그래. 막상 늘 원하던 것들이 손 안에 오니까 누리는 게 겁이 나네. 내가 별 배짱이 없나봐.”

“…….”

“소심하지? 나.”

동생은 제 원피스 자락을 보다가 내게 쓰게 웃었다.

“그래서 그런데. 오빠, 만약에 주현이 정신 다 되돌아오고……. 만약, 오빠도 괜찮으면 말이야.

동생은 손톱에도 그새 무언가를 했는지 반짝반짝거리는 것들이 붙어 있고, 색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우리. 그냥, 나가서 예전처럼 사는 거 어때?”

그런 손톱이 그 애가 입은 핑크빛 천에 파고들며 천을 구겼다.

“…….”

“가끔만, 아주 가끔만 엄마 만나서 밥 먹구……. 그냥 예전에 살던 것처럼 사는 거…… 어때.”

“갑자기 왜……. 그래.”

“나 좀 걱정이 되어서 그래. 이러다가 오빠가, 옆에서 또 그날처럼, 그 엄, 마처럼 다치면 어떡하나…….”

동생은 맘이 편치 않은지, 걱정이 된다는 소리를 계속 반복했다. 그리고 살짝 충격을 먹은 것 같기도 했다. 주현이의 힘이 언제 어디서 나를 해칠지 모른다는 그런 불안. 그리고 그게 달아서 찾아온 동생이 말한 내용에 나는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계속 걱정이 되어서 그래.”

엄마라는 사람은 동생을 위해서 그런 알 수 없는 위험마저 무릅쓰라 하는데, 동생은 나를 위해서 그런 위험을 혼자 떠안지 말라 말하는 게…….

그간 고통스럽고 서러운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비춰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메이는 목을 간신히 막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만 괜찮으면…… 그러자.”

뿌연 먹구름 사이로, 희미한 볕을 받은 동생의 얼굴이 활짝 웃었다. 내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이, 웃는 얼굴에 나는 문득 동생이 나를 위한다고 너무 큰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작은 미련이 들었다.

정말, 너는 괜찮을까. 나는 어쩌면 평생에 해 줄 수 없는 기회일 수도 있는데.

“너……. 정말 괜찮아? 다음 학기에 교환학생도 가기로 했잖아. 학교 갔을 때, 너희 교수님이 너 정말 잘해서 유학 했으면 좋겠다고. 그랬어. 내가 좀.”

참으면 된다고 말하려는데 가연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오빠 교환학생은…… 정 힘들다 싶으면 취소하면 되고. 나중에 돈 모아서, 언젠가 여행이라도 가 보면 돼. 아 김 교수님? 그때 학교 갔다고 그랬지? 아 진짜. 그때 이후로 자꾸 동기들이랑 학과 사무실 선생님들이 연락 오는 거 알아? 단톡방 나가도 자꾸 초대해서 나 진짜 죽을 거 같아. 무한 지옥이란 말이야. 오빠 사진 달라고 하는데…….”

가연이는 내게 잠시 도끼눈을 했다가, 이내 풀어내면서 파하하 웃었다.

“내가 찾아봤는데. 요즘은 뭐, 잘하면 국가 초청으로 가는 유학도 있구. 유럽 쪽은 학비가 무료인 곳도 있는 거 같아. 그때 가서, 생각해 보면 되지. 뭐 죽으리란 법 있겠어. 그리구…….”

동생은 이렇게 저렇게 찾아낸 것들을 설명하다가 나를 똑바로 보고 천천히 말했다.

“오빠가 난 더 중요해.”

“……가연아.”

“그런 거는 내가 좀, 더 노력하고 그러면 될 수도 있는 거잖아. 근데 오빠는 그런 거 아니잖아. 오빠 아프고, 그러다 잘못되면, 그런 거는……. 나중에 후회해도 어쩔 수가 없는 거잖아. 돌이킬 수가 없잖아.”

동생은 그렇게 말하면서 민망한지 얼굴을 붉히면서 일어섰다.

“나한테 이런 소리나 하게 만들고. 진짜 쪽팔려. 나 갈래.”

“가연아.”

가연이는 하늘거리는 원피스 자락을 흔들면서 빨간 얼굴을 가리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내게서 멀어지다 말고 말했다.

“맞다, 맞다. 나가면, 된장찌개 좀 해 줘 오빠. 나 그거 너무 먹고 싶어. 여기 아주머니 밥은, 영 그냥 그렇더라구. 솜씨는 좋으신데 그냥 소화가 잘 안 돼.”

“……그래. 그럴게.”

“나, 갈게.”

동생은 그렇게 말해 놓고서 손을 흔들며 다시 가 버렸다. 분홍빛 원피스 자락이 살랑이면서 사라지는 그 모습에 나는 가만히, 처마의 응달이 진 정원을 보다가 이내 먹구름을 보았다. 축축한 공기 냄새가 점점 도는 게 비가 올 것 같았다. 한바탕 쏟아질 것 같은 날씨를 보면서 나는 옆에 비껴둔 유리 덧문에 기대었다.

동생을 위한다고 했던 것들이, 결국 동생의 눈으로 봐도 그다지 편안해 보이지는 않았나 보다. 동생이 큰 결심을 하고 말한 것들 중에 유난히 박혀드는 말이 있었다.

「오빠 또 다치면, 아무리 가이딩 해 줘서 말끔히 낫는다고 해도, 아팠던 게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더 늦기 전에, 더 아프기 전에, 돌이킬 수 없기 전에 우리의 조그만 삶으로 돌아가자는 동생의 말은, 곧 몰려올 폭풍같이 나를 흔들며 지난날들을 손가락으로 꼽게 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그리고 오늘이 딱. 이레가 되는 날이었다. 대호가 약속한 이레.

“……오늘이구나.”

그것을 깨달은 순간, 쿠쿵, 하고 하늘을 두드리는 천둥소리와 함께 쏴― 하고 빗방울이 정원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로 땅을 적셔 드는 그 비 무리를 구경했다.

“……비 오네.”

날씨가 영 찌그러진 것이 비가 올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올 것을 안다고 한들 정작 비가 쏟아지는 순간은 알 수가 없었다.

오라오라 하면 가 버리고, 가라가라 하면 오는 게.

“…….”

비도, 사람도 그런 모양이었다.

방 안을 댕, 하고 울리는 괘종시계 소리에 비 오는 거 구경하면서 뒤죽박죽이 된 멍한 생각을 깼다.

‘벌써 점심시간인가.’

나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서 점심을 차려 줄 가정부 아줌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늘, 저 괘종시계가 울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치 알람처럼 현관에 들어오곤 했으니까. 그리고 그때만 되면 나도 딱, 배가 고픈 시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체감상 족히 20분은 넘었는데 현관에서는 기척은커녕 문 열리는 소리마저도 들리지가 않았다. 추적추적 젖어드는 빗소리에 그녀가 본채에서 오는 것인지 마는 것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비가 와서 뭐가 늦어지는 건가, 마냥 생각하며 마루에 앉아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렇지만 괘종시계가 다음 종을 울릴 때까지도 현관은 조용했고, 비 오는 소리만 홀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서, 아니면 내가 알아서 차려 먹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앉아 있던 자리를 박차고 유리 덧문을 드르륵 밀어서 원래대로 돌려놓자 그제야 현관에서 쾅,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부엌으로 향했던 발걸음을 옮기며 현관에 있을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갑자기 비가 오네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고, 말을 하려는데 복도를 울리는 걸음은 듣던 걸음걸이의 소리보다 굵직했다. 비에 젖어서 그런가 유난히 둔탁한 걸음 소리에, 복도의 삐걱 대는 소리가 포개졌다. 내가 걷던 복도의 코너를 막 돌자 누군가와 마주했다.

“……가하야.”

“……대호야. 너…….”

아까 아침에 보았던 동생을 어깨에 들쳐 메고 급한 숨을 몰아쉬는 대호의 모습이었다. 맞다. 그래, 그랬지. 그때 우리가 서 있는 복도의 덧문 너머로 비바람이 막 들이닥치며 유리 위로 하나 둘씩 빗방울이 맺혔다.

‘오늘이 대호랑 약속한 날이었지.’

알았지만, 막상 그게 지금, 당장이 될 줄은 몰랐다. 갑작스러운 손님의 방문에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아마 모든 일이 그런 거 같다.

일어날 것을 알면서도 막상 벌어지고 나면,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처럼 늘 놀라고 마는 게.

그는 이곳에 오다가 비를 좀 맞았는지 젖어서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내게 웃어 보였다.

“그래서……. 뭐할지, 생각해 봤어?”

“아……. 가연이는, 왜 그래?”

생각을 떠올리기도 전에 대호의 어깨에 짐짝처럼 매달린 동생의 모습이 먼저 들어왔다. 동생은 정신을 잃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싱그럽게 웃던 애가 눈과 입을 꼭 다물고 있는 모습에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암시 때문에 그래.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잠시 재워 둔 거야. 가연 씨가 너랑 같이 나갈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우선, 데려왔어.”

“내가…… 들게.”

그 모습에 내 손이 나갔다 그런 내게 대호의 말이 따라왔다.

“괜찮아. 안 무거워. 내가 급하게 오느라, 이렇게 데려왔어. 미안.”

그는 가연이를 어깨에서 내리고 다시 고쳐서 잘 품에 안았다. 동생은 여전히 동화 속에 나오는 깊은 잠에 들은 공주님처럼,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그래. 고마워.”

나는 동생을 받으려던 손을 도로 내렸고, 그는 내게 좀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양복에 물든 빗방울이 뚝, 뚝 방울져 떨어지며 마른 마루를 짙게 적셔 갔다.

“우선 집안사람들 전부 재워 놨는데, 얼마나 갈 지는 몰라. 그리고 송주현이 본가 연락했다가 안 받는 거 알게 되면 바로 들킬 거고.”

그는 가연이를 안아 올린 손 하나를 빼서 내게 내밀었다.

“갈래?”

“…….”

저 손을 잡고 싶었는데, 잡고 싶은데. 왜 선뜻 손이 나가지 않는 걸까.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왜 나는 주현이의 하얀 얼굴이, 그 새파란 눈에서 떨어지던 맑은 눈물이 자꾸 내 눈앞에 어른거리는지 정말 알고 싶어도 알 도리가 없었다. 그 애에게 요 며칠 동안 당한 것을 생각해 보면 내게 내밀어진 이 손을 당장 잡아야하는데.

‘왜…….’

내가 가만히 그 손을 보면서 허벅지 위에 있는 손끝을 떨고 있는데, 대호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소리에 나도 눈을 꾹 감았다. 나도 내가 싫어질 판이었다. 나는 내 생각보다 바보였고, 멍청이였던 모양이었다.

소중하게 새겨진 그 옛 기억을 떨치지 못하고, 어쩌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품게 되는 게……. 발목의 흉터처럼 나를 이 자리에 붙잡았다.

그런 내게 대호의 말이 들어왔다.

“내가. 이런 말까지 하지는 않으려 했는데……. 아무래도 해야 할 거 같다.”

“……무엇을?”

“아직도 넌 계속 모르는 거 같기도 하고.”

‘무엇을? 주현이가, 나를 찾기 위해서 연기를 했다는 것? 그건 이미 나도 아는 사실인데.’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주현이가 아팠던 것은 사실인 거 같고. 한 번 자세히 물어봐야겠다 생각은 하고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주현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 왔었는지에 대해서.

그런 내 앞에 있는 대호의 얼굴이 작게 일그러지며 이내 내가 모르는 말을 토해내었다.

“너, 어렸을 때 너희 집안 사업 망하게 한 거, 송주현이 한 짓인 거 알아?”

“……뭐?”

그리고, 막상 돌아온 내용은, 내가 전혀 생각해 보지도, 상상해 보지도 못한 진실이었다. 내게 대호가 말하는 것 마저 괴로운 듯이 고백했다.

“송주현이, 가하 너를……. 자기 옆에 두려고, 너희 아버지 사업 무너뜨렸어.”

“말도…… 안 돼.”

“사업 자금도, 물량도 늘렸다가 부도낸 거. 다 송주현이 시켰던 거야.”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러면서도, 문득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그게 무슨…… 소리야.”

“이상한 소리라고 생각할 건 알아. 그렇지만…… 그 애는 그런 애야. 너는, 잘 모르겠지만…….”

20년 동안 아파하며 나를 기다려 온 애라고 했다. 하지만, 예전에 주현이가 그러지 않았던가.

“내가 이걸 알게 된 건……. 우리 집이 송주현 밑에서 더러운 일들을 도맡아서 알게 된 거야. 내가 나중에 알고 막아 보려 했을 때는 이미…… 네가 사라져 있었고.”

대호가, 예전에 자기 일을 방해했다고.

대호와 주현이의 말이 잃어버린 퍼즐 조각처럼, 짜 맞춰 들어가며 내 상황을 설명 해 주었다.

그렇다면, 내가 부모님의 욕심에 그 애의 집으로 들어간 것, 그러다가 집안 사업이 망해서 도로 돌아가게 된 것. 그러다가 엄마가 떠나고, 아버지가 나를 죽이려하고, 도망쳐 나와서 동생과 살아가던 게.

‘그게 다…….’

“아무것도 모르는 네가 송주현 옆에 있으면 걱정 돼. 너 또 상처 입는 거, 나 가만히 보고 싶지 않아.”

톱니바퀴 맞물리듯이 고통에서 고통으로 흘러가던 삶이, 주현이의 손바닥 위에서 나온 것이라니.

“말, 말도 안 돼…….”

나는 배신감에 몸이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가하야.”

“10살이야. 나랑 너랑 그 애랑……. 10살인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겠어. 거짓말이지? 대호야, 지금 거짓말 하는…… 거지?”

나는 떨리는 몸과 동시에 피가 차갑게 식어 가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말도, 말도 안 돼. 이게 농담이라면, 너무 나쁜 농담이었다. 그런 내게 대호가 쓰라리게 속삭였다.

“미안해. 나도, 나도……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네가 계속 여기 있으면 아무 것도 모르고 다시 아파할까 걱정 돼.”

“대, 대호야…….”

‘도대체, 도대체……. 어떻게. 왜, 나를…….’

내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쾅! 하고 현관문을 거칠게 미는 소리가 들렸다. 그 굉음에 나와 대호의 시선이 복도 너머로 향했다. 대호가 가연이를 내게 건네고 방패막이처럼 내 앞에 섰다. 나는 동생을 안아서 어깨에 우선 급하게 들쳐 매었다.

‘누구지, 분명 대호가…….’

“황, 황 변호사! 지금……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우리 가연이, 집안사람들 이렇게 만들…….”

주현일까 싶은 생각과 달리 다행히도, 비틀 비틀거리는 몸을 유리 덧문에 간신히 기대어 다가오는 사람은 엄마였다. 그녀는 깁스를 한 손으로 내 앞에 서 있는 대호를 가리키다가 이내 어깨 너머 나를 보고 놀란 눈을 했다.

“지금, 뭐하는 짓이에요? 가연이 보러 온 사람이 왜……. 설마.”

“가하야, 뒤로 가 있어.”

대호가 손으로 나를 밀었다.

“설마……. 둘이 뭐라도 작당한 거예요?”

그 힘에 살짝 밀린 내가 뒷걸음질을 치면서도 대호의 양복 재킷 소매를 잡았다.

“너 어쩌려고 그래.”

“괜찮아. 다시 재워 두면 돼. 얼른 뒤로 가. 파장 영역에 들어가면 너도 영향 받아. 어서.”

그렇게 말하는 그를 두고 엄마가 헛웃음을 지었다.

“지금, 내가 뭘 보는 거니. 황 변호사, 지금 이게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알아요? 삼라에서 일하면서 지금……. 오너한테 무슨 악심이 있어서 이러는 거예요? 회장님이, 당신 얼마나 아껴 주시는데. 이거 알면 당장…….”

“악심은 없습니다.”

딱 잘라 말하는 모습에 그녀가 더 기가 막히는지 따따부따 따져들기 시작했다. 나는 부엌 쪽으로 멀리 멀리 갔다. 혹시라도 대호가 말한 능력의 파장에 들어갈까 싶어서.

“그런 사람이, 지금 집안사람들 죄다 당신 능력으로 재웠어요? 이제 보니, 공부만 해서 노선을 잘 못 본 거 같은데. 저 애랑 뭘 꾸미는지는 몰라도 당장 그만둬요. 당신같이…….”

“…… 당신 같은 사람에게 내 앞 길 걱정 받을 만큼 잘못 살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그는 능력에 잠시 집중을 하는지 눈을 감고 살짝 미소 지었다. 그러자 엄마가 고성을 질러대었다.

“지금 뉴스에 회계 이슈 터져서 난리인데도 가연이 보러 여기 온다고 하는 게 영 이상하다 싶긴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배신을 해?”

“배신?”

악을 쓰는 엄마를 향해 대호가 작게 웃었다. 빗소리에 묻힐 만큼 작은 소리였지만 이 긴박한 상황에는 유난히 눈에 띄었다.

“배신이라는 말은……. 좀 거북하네.”

여유로움이 돋보이는 대호가 엄마가 서 있을 복도 쪽으로 손을 뻗고서 말했다.

“애초에, 삼라에 충성한 적도 없어서.”

대호로 부터 멀찍이 서 있던 내게도, 축축한 공기를 일그러뜨리는 파장이 파도처럼 훅, 끼쳤다. 대호의 능력이 분명해서 나는 눈을 살짝 감았다.

“착각은 자유라지만.”

“지금 뭐라고…….”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복도에는 쿠당탕,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나는 눈을 뜨고 다시 대호 쪽으로 향했다. 다가간 복도에는 정신을 잃고서 널브러진 채로 누워 있는 엄마의 모습이 있었다. 대호의 능력으로 인해 다시 잠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녀를 내려 보다가 뒤에서 내 팔을 붙잡는 대호의 목소리에 비로소 정신을 챙겼다.

“높은 등급의 가이드라서, 저항이 강해. 곧 깨어날 거야. 가려면 지금 가야해. 이제 시간이 없어.”

뻐꾸기는 자기 알을 버려두고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언제나 자기 마음대로 버리고 갈 수 있는 선택지를 가졌다고 생각했을까. 그렇다면 나도 그의 자식이니 버려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어차피 그렇게 태어나서 살아야 한다면, 이번에는, 내가 그 선택지를 가져도 될 것 같았다.

“……가자.”

다, 버리자. 나는 대호의 팔을 도로 잡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말해 준 진실에 나는 정하지 못했던 마음을 떨쳤다. 그리고 짧았지만 평화로운 밤이 만들어 낸 연약한 미련도.

에스퍼이기 때문에, 가족이기 때문에, 옛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떨치지 못한 것들.

이제 내게는 그것들이, 그 안에서 느꼈던 모든 것들이 다 거짓으로 가득 찬 것들이었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다 그와의 각인이 만들어내는 부산물이고, 행복했던 기억조차도 그의 권력이 만들어 내던 장면이었으며, 아프고 힘들었던 삶마저 그가 만들어내던 각본 같은 것이라는 것을…….

‘얼마나, 즐거웠을까. 얼마나 우스웠을까, 너는.’

네가 만든 굴레에서 쉬이 반항도 못해 보고 따르는 나를 보며 그게 사랑이라고 말을 하고, 미운 정마저 들어가는 내게 미안하다는 말로 또 속이고. 나는 마음속에 달려 있던 모든 끈을 다 끊어 버리고 내 앞에 내밀어진 대호의 손을 잡았다. 가자.

“제발, 나를 여기서 나가게 해 줘.”

나를 자유롭게 해 줘. 그 어떤 속박도, 굴레도, 책임도 없는 곳으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