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후후, 하고 불어오는 엷은 바람에 휘날리는 가느다란 것이 내 눈가를 콕콕 찔렀다. 나는 감겨 있는 눈을 찡그리며 미세하게 찔러 오는 그것을 피해 보려 했다.
‘어디서 바람이 들어오는 거지.’
어젯밤 잔뜩 맞은 쌀쌀한 저녁 공기의 여파로 몸이 좀 추웠다. 그런 내 옆에 뜨끈하고 든든하게 느껴지는 것에 내 고개를 파고들었다.
‘따뜻하다…….’
심지어 눈가를 찌르던 바람마저도 멎어서 나는 피부에 맞닿은 열기를 난로 삼아 잠에 들려다가 말았다. 왜냐하면 찡그린 내 눈가의 주름을 더듬는 손의 감촉이, 낯설지 않아서.
톡, 튀어나온 그 흔적.
‘분명 어제 방문을 닫고 자지 않았나. 그러니 어디 바람이 불어올 곳이 없는데.’
그 생각이 미친 내가 눈을 뜨니, 내려다보던 파아란 눈과 마주쳤다.
“……잘 잤어?”
주현이도 막 깼는지 특유의 엷은 색의 머리가 잔뜩 헝클어진 까치집인 채로, 팔에 턱을 기대고 내 옆에서 벽처럼 누워 있었다. 그의 살짝 미소를 띠운 얼굴에서 불어오는 숨결이 나의 머리카락을 흔들며 미간을 콕콕 찔렀다. 그제야 얼굴에 불어오던 바람의 원인도, 나를 덥혀주던 온기의 근원도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알았다. 심지어 내가 파고든 품도 주현이의 너른 가슴팍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벌떡 일어섰다.
‘어쩐지, 너무 따뜻하다 했다.’
“어…… 어.”
멍청하니 대답하는 내가 급하게 일어나자 바스락대는 이불이 구깃구깃하게 흘러 떨어졌다. 옆에 기대어 누워 있던 그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내가 가만히 다리 맡을 바라보고 있자, 그가 내 머리카락에 손을 넣고 슥슥 비볐다.
“까치집이다.”
“……자다 보면 다 그렇지.”
나는 내 머리카락 사이에 들어온 그의 손을 피하면서 내 손으로 직접 빗어 내렸다. 하지만 저녁 바람에 휘날리고, 정신없이 잠에 들어서 들뜬 머리카락은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그런 나를 보고 주현이가 실실 웃었다.
‘뭐야. 그런 너는 아닌 줄 알아?’
“……너도 까치집인데 뭘 웃고 있어.”
“음? 아니야, 까치는 까만 새잖아. 그러니까 달라.”
까치는 까만 새…… 그렇긴 하지만.
새 집이 색깔을 따라 간다는 그의 요상한 논리에 나는 꿀을 녹여서 엷게 뽑아낸 것처럼 휘말려 있는 그의 머리를 보면서 괜히 툴툴대었다.
“그럼 넌, 어떤 새 집인데.”
“나는, 음…….”
그는 탄탄하기 짝이 없는 가슴팍 위로 팔짱을 끼고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턱에다가 제 손을 말아 쥐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은 귀엽게 보일 법도 했지만 나한테는 아니었다. 이게 뭐나 된다고 그러고 폼을 잡나. 그는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하체를 덮고 있는 하얀 침대 시트 위에 턱에 쥔 주먹을 탁, 두드렸다.
“생각났어. 나이팅게일 집이야.”
“……뭔 게이?”
생소한 외국어에 나는 일으켰던 몸을 다시 침대 위로 풀썩 누웠다.
‘너, 나 영어 잘 못 하는 거 알면서…….’
일부로 그러는 건가 싶을 때, 주현이가 따라서 내 옆에 나란히 누워서 웃었다. 그 웃음을 타고 같이 누워 있는 침대 위로 엷은 진동이 스쳤다.
“나이팅게일. 어제 우리 같이 들었잖아. 나뭇가지 위에 같이 있었을 때. 기억 안 나?”
“……아.”
그제야 나는 그가 말한 새가 무엇인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밤하늘에 한없이 수놓인 별들을 보는 동안 가지 사이로 쪼롱쪼롱 울려 퍼지던 그 맑은 새소리. 그게 나이팅게일인지 나이트게이인지 하는 새였나 보다. 밤에 울어대는 소리는, 생각보다 좋았었지.
‘처음 들어 보는……. 예쁜 소리였어.’
그러면서 자기 머리가 그런 새의 집이라고 우기는 주현이에게 비웃음이 나왔다.
“말도 안 돼.”
“왜?”
곧장 반박하는 주현이에게 나는 대답했다. 그야…….
“그 새는 예쁘잖아.”
“왜? 나는 안 예뻐?”
수긍하지 못하는지 시무룩한 얼굴을 부담스럽게 시리 가까이 들이대는 주현이에게 나는 은근한 반항을 했다.
“어. 안 예뻐.”
그렇게 말해 놓고서도, 아직은 멀쩡한 내 손목 날라가는 것은 아닌가 조금 후회했지만. 이미 쏟은 말은 입을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이런 말로 상처 받을 애였다면, 애초에…….’
스스로의 말을 합리화 하면서 나는 몰래 주현이의 눈치를 봤다.
“……예쁘다고 해 줘.”
그러자 파란 눈망울에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도리어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울어? 왜? 아니, 이런 말이 뭐라고? 나이를 서른이나 먹은 녀석이, 턱에는 아침 수염 까끌하게 솟은 녀석이…….’
고작 그런 말에 상처 받은 눈을 하다니. 어제 이후로 이상하게, 자꾸만 여린 면이 드러나는 모습에 내 사고가 뚝, 정지하는 느낌이었다. 어찌됐든 아침 댓바람부터 울음바다가 되는 것은 사양이다.
‘피곤하단 말이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잔뜩 헝클어진 주현이의 머리를 빗어 내려주었다.
“내 눈에 예쁜 짓을 해야 예쁘다고 하지.”
발목 꺾고, 어디 아프다고 하면 쉴 새 없이 달라붙어서 가이딩하고, 내 가족들 옆에 두고 보란 듯이 협박하는 애한테, 어떻게 빈 말로도 예쁘다는 소리가 나오겠나.
푸념이 섞인 내 말에 그가 커다란 눈을 깜빡깜빡대면서 차오르는 눈물을 저 너머로 넘겼다. 그러자 주현이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진짜, 다시 생각해도 넌 진짜 나쁜 놈이야. 얼굴만 행동에 어울리지 않게 좀 예쁘고.’
“어떤 게…… 예쁜 짓인데?”
“……그냥…….”
내가 말은 했지만, 막상 뭐가 뭐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음…….”
나는 곰곰이 고민했다. 앞선 일들을 하지 않는 건 기본이고. 글쎄……. 나는 아직 방방 뛰고 있는 뒷머리를 긁으면서 띄엄띄엄 대답했다.
“……평범하게, 지내는 거?”
“평범한 거? 그게 뭔데?”
“…….”
당연하게 모르겠다고 답해 오는 주현이의 모습에 나는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맞네, 넌 그런 애였지.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서 평범함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는, 그런 애…….’
나는 눈을 한 번 깜빡이고 대충 대답을 해 주었다.
“그냥…….”
「그냥…… 너 한 번, 웃는 거 보고 싶어.」
떠올리는 말에 대호가 말했던 말이 겹쳐 들어갔다.
왜, 그것을 떠올렸을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서로 웃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 그게 아주 평범하고도, 예쁜 모습이 아닐까.
언젠가 동생이 그렇게 살기를 바랐던 것처럼, 은연중에 나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무리 힘든 삶이라고 해도, 매일 매일을 땀 흘리지 않고서야 살 수 없는 삶이라고 해도, 비록 가진 것이 비루하고 없는 삶이라고 해도……. 나를 웃게 해 주고, 내 앞에서 웃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 따위에 서로를 상처 입히는 게 아니라. 서로의 진실한 마음을 마주하고 살 수 있는 그런, 평범한 하루.
“그냥, 가만히 보고 있어도 웃을 수 있는 거.”
“…….”
“아무런 생각도, 걱정도, 특별한 일 없어도, 같이 웃을 수 있는 거…….”
내 말에 주현이의 파란 눈이 굳었다. 아까와 온도와 빛을 달리 하는 그 얼굴 모습에 나는 눈치를 보면서 침대 위를 빠져나갔다. 내가 뭔가 잘못, 말했나.
“평범한 거라는 거…….”
“…….”
“그런 거 같아.”
내가 방을 나설 때까지도 그는 말이 없다가, 복도를 지나서 욕실 앞에 다다랐을 때 그가 쫓아왔다. 커다란 덩치만큼 요란하게 울리는 복도의 소리에 내가 뒤를 돌아보자, 그가 편한 추리닝 바지만 입은 채로 다가와서 나를 안았다. 나는 그 모습에 다시 의아해졌다. 또 어제의 불안이 도졌나.
“왜 그래.”
그가 나를 껴안은 팔을 풀지 않고, 내 정수리에 제 입술을 대고 읊조렸다.
“잘못했어.”
“…….”
“……내가, 잘못했어.”
잘못한 건 아는 구나. 그것만으로도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그렇지만 주현이는 평범하다는 삶도 모르는데, 과연 잘못한 게 무엇인지 진짜 아는 것인지는 모를 일이였다. 나는 쓰게 웃으면서 나를 안은 팔에 내 손을 올렸다.
“……뭘 잘못한 거 같은데.”
“…….”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에, 나는 조금이나마 의외라고 생각한 마음이 모래성을 휩쓸어 가는 파도처럼 남김없이 쓸려 가는 기분이 들었다. 좀 잠잠하다 싶으면 산산이 조각을 내고 마는 그런 파도.
‘거 봐, 넌 몰라. 뭘 잘못했는지 모르잖아. 네가,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내가…… 잘못한 거, 알아.”
“……그래.”
‘너는……. 아마, 죽어도 모를 거야.’
내 마음이 식어 가다 못해 굳어 가고 있는 와중에 그가 불안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한 번만…… 기회를 줘.”
“…….”
평소엔 이미 정해져 있는 선택지를 주던 그가, 이때 만큼은 내게 선택지를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제부터 해서 불안, 위태로움 그리고 언뜻 후회스러움이 보이는 그 말에 내 마음이 살짝, 크게 뛰었다. 그는 급하게 말을 이었다.
“앞으로……. 가하, 웃게 해 줄게. 내가 잘못한 만큼 웃게 해 줄게.”
“……어떻게?”
그렇지만 왜일까. 왜 이미 우리가 어긋나고, 비틀리다 못해 풀 수 없는 매듭처럼 꼬여 버렸다는 생각밖에 들지는 않을까. 왜 평소와 다른 태도를 가진 너의 말을 들어도 나는 기분이 아무렇지도 않을까. 왜…….
“……가하가 좋아하는 거, 난 몰라. 잘 몰라…….”
“…….”
“왜냐하면…… 내게 가하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들을 기회가 없었어. 내가 가하를 찾아내었을 때…… 황대호가, 너를…….”
그는 급하게 변명 같은 말을 이어가다가 문득, 화가 나는지 이를 뿌득 갈았다. 그러다가 다시 목소리를 조금 누그러뜨리며 말을 계속했다.
“너를, 가지고 싶어 하는 게 보였어. 그때처럼, 나를 방해하려는 게 보여서 이럴 수밖에 없었어. 너를 잃을 거 같아서 무서웠어,”
“…….”
“네가 또,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이 떠나 버릴 거 같았어…….”
‘그때처럼, 방해했다고?’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대호와의 얘기를 꺼내면 주현이를 자극하는 것을 알아서 나는 말을 아꼈다.
“이제는, 나로 네가 웃을 수 있게 해 줘.”
무엇보다도, 나를 안고 말을 하는 주현이의 감정이 내 마음에 살랑살랑 들어오는 기분이 아주, 이상했다. 각인을 하면 이어져 있다더니. 마음마저도 이렇게 흔들고 마는 걸까. 그래서 너는 그렇게 각인이 하고 싶었던 걸까.
‘나를 좋아한다는 대호에게, 혹은 어디라도 내 마음이 멀리 가지 못하도록…….’
나는 우두커니 안고 있는 주현이의 팔을 살살 쓸었다.
“……그래.”
“……정말?”
제가 말해 놓고도 내 대답이 못내 기쁜지, 그가 내 정수리에 묻었던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어린아이처럼 울다 웃는 모습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 정말 잘할게. 정말, 잘할게. 예쁜 짓할게.”
“……씻어. 늦겠다.”
품에서 좀 풀어 주나 했더니 도로 와락 안겨 오는 녀석에게 나는 툴툴대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건가. 서 있는 복도 너머로 환히 부시도록 들어오는 햇살에 나는 다시 되뇌었다.
어제가 나흘이었고, 날이 샜으니 아직, 사흘이다.
‘대호가, 여기에 오기까지 사흘.’
그리고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결정할 수 있는 시간도 사흘 안에 정해야 한다. 그것을 모르는 게 뻔한, 주현이는 욕실로 가는 내게 연신 웃으면서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정말로 웃게 해 줄게…….”
그 말을 믿고 싶어지는 내 마음은, 진심인지, 아니면 그와 이어진 각인이 흔들어대는 변덕일지 나는 아직도 확신이 가지 않았다. 그 고민과 함께 나는 전날 주현이가 토해내던 절규가 메아리치던 것이 다시 내 머릿속으로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게. 왜, 너는 가이드고, 왜 나는 에스퍼일까.’
이렇게라도 각인이 되어 버려서, 그 말 한마디에 흔들리고 마는, 그런 존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