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61)

* * *

그가 떠난 집에서 나는 가만히 침대 위에 누워만 있었다. 별로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지도 않았는데, 괘종시계로부터 들려오는 정오를 알리는 은은한 울림에 눈이 반짝 뜨였다. 어젯밤 침대에서 그의 화풀이를 빙자한 가이딩에 잔뜩 시달리기도 했고, 어째 가만히 있으니 더 허기가 지는 듯도 했다.

‘아, 아침을 안 먹어서 그런가.’

나는 꼬르륵대는 배를 부여잡고 침대에서 일어나서 복도로 향했다.

‘분명 예전에 부엌이 이쪽이었던 거 같은데.’

아직도 부엌이 남아 있다면 거기서 뭐라도 꺼내서 밥이라도 해 먹어야겠다 싶을 때 현관 쪽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가하, 있니?”

“…….”

엄마였다. 나는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티셔츠 복부 위로 올렸던 손을 느리게 내렸다. 그 사이에 그녀의 부르는 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아휴. 주현이 걔랑 같이 회사를 갔나? 그러지는 않을……. 너. 있으면 대답해야지.”

그녀의 종종거리는 바쁜 걸음이 복도를 지나오고, 막 기둥 너머로 꺾어 왔을 무렵, 이윽고 부엌 입구에 서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고운 남색 바탕의 줄무늬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팔짱을 낀 채로 나를 위 아래로 빠르게 훑고, 내 목 부근을 보면서 눈을 가늘게 좁혔다.

“어머. 사랑, 많이 받나 보네.”

“…….”

“표정 그렇게 지을 필요 없어. 엄만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사람이야.”

호호 웃을 때마다 같이 흔들리는 끝이 곱게 말린 단발머리는 어젯밤 복도에 비추던 인영과 언뜻 닮아 있었다. 설마. 그 예측에 확신을 더해 주는 것은 이어져 나온 그녀의 말이었다.

“간밤에 네 속이 좋지 않다고 해서 약 들고 왔다가……. 둘이 좋은 시간 보내는 거 같길래, 다시 돌아오긴 했는데.”

팔짱을 풀고 입을 가리고 웃는 모습이 가증스러웠다.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집과 같이 그녀의 본성도 별다를 바 없었다.

뻐꾸기와 다름이 없다.

힘들고, 수고스러운 순간은 남에게 맡기고 자기는 유유자적 날아다니는 그 모습이.

내가 아프게 울부짖고 있어도, 구해 주지 않고 도망치듯 떠나던 그 그림자가.

나는 마음속에서 어젯밤 눌러대었던 응어리가 목 너머로 솟구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게, 사랑 받는 건가요?”

당신에게, 뭘까.

내 아픈 질문에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얘는, 너 같은 최하 등급의 에스퍼에게 그렇게 넘치도록 가이딩을 해 줄 최상급 가이드가 어디 있겠니? 손에 쥐고 있는 게 보석인지 돌인지도 모르니?”

다분히, 그렇겠지. 여느 세상 사람들 논리에, 그 욕심 어린 눈으로 본다면 그 애의 힘과, 배경은 누구나 탐을 낼만한 것이겠지.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걸 원했던 적이 없다. 달라고 한 적도 없었다. 그 애가 내게 주는 것 무엇 하나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런…….

“필요 없어요.”

“난 필요해. 돈 없이 사는 건 질색이야. 그 구질구질했던 삶,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아. 그리고 가연이도. 유학이 뭐 한두 푼이니? 동생 때문에 이제껏 고생한 거, 아깝게 할 건 아니라 믿는다. 늦었지만 나도 도와줄 거고.”

“……도와준다고요?”

“그래, 우린, 가족이잖니. 당연히 서로 돕고 살아야지.”

그 말은 내가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밖에 안 들렸다. 내가 그 애에게 다리가 부러지든, 유린을 당하든, 억지로 옆에 있는 것 따위 전부 상관이 없다고. 가족이니까, 그런 취급을 다 참으라고?

주현이와 당신은 나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어야 만족할까.

아니, 그 만족이 채워질 날이 있기는 할까.

그녀가 가족이라고 말하는 것과 달리 목소리는 냉정함이 서려 있어서 나는 이제 유치한 원망마저 들끓었다. 왜, 왜…….

“이게, 어떻게 가족이에요? 나를 왜 낳았어요? 어차피 힘들면 언제든지 버리고 갈 거면서,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도와주지도 않을 거면서!”

집이 어려워지니 나를 버리고 간 것을 거짓말로 덮어 버리고, 돈에 눈이 먼 아버지가 나를 죽이려 할 때도,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뒤늦게 찾은 그녀는 나를 핑계로 뻔뻔하게 다른 애의 새엄마 노릇이나 하고 있고, 간밤에 주현이에게 화풀이를 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지나쳤다. 그래놓고 지금 와서 한다는 말이 고작 사랑 받아서 좋겠다는, 전혀 말도 안 되는 소리나 하고.

이제는 동생을 위해서 그 사랑을 참으라고 한다.

“……왜!”

왜, 이럴 때만 내게 가족이라 하나. 정작 필요 없어지면 언제든지 남이라고 할 거면서. 당신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나는 눈앞에 모여드는 눈물을 참으려고 주먹을 꽉 지고 그녀에게 고함을 질렀다.

“왜! 내게 가족이란 소리 좀 하지 말아요. 나는 당신이랑 가족이라는 게, 너무……. 싫어. 괴로워…….”

차라리, 생판 남이었으면 좋겠다. 두 번 다시 안 보고 지나치면 모를, 그런 남이면 좋겠다. 죽어도 상관없고, 사라져도 상관없을 그런 타인이면 좋겠어.

참았던 서러움과 눈물이 터지자 짝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뺨에 화끈한 고통이 스쳤다.

“그리 철이 없니?”

내 뺨을 친 손이 그녀의 표독한 표정 옆으로 돌아왔다.

“사시 분간도 못하겠어? 이미 지난 일들 따져서 무엇 하니? 네가 이래 봤자 바뀌는 건 하나도 없어. 그러니 말 똑바로 해. 내가, 무슨 마음으로 어린 너희를…….”

나는 따갑게 부어오르는 뺨을 어루만질 생각도 못하고, 그저 충격에 빠진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아직 각인 안 했다며. 엄마 말 잘 들어. 어떻게 해서든 각인해. 그 애의 반쪽이 되면 그 삼라가 다 네 거야. 이왕, 목숨 살려 준 값으로 잘 챙겨 둬야 하지 않겠니? 지금이야 네 덕분에 정신줄 돌아오고 있으니 예쁘다 좋다 하지만, 정신머리 다 돌아오면 또 몰라.”

“…….”

“워낙에 계산적인 애라, 그 전에 챙길 수 있는 거 최대한 챙겨야지. 주식이든, 돈이든, 물건이든 준다고 하면 다 챙겨. 알겠어? 지금 옆에서 관심 받을 때, 잘 붙들어 두란 말이야.”

줄줄이 읊는 그녀의 태도는 사뭇 진지하기만 했다. 그래,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눈앞의 이익과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그런 사람. 저런 사람에게서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이 더없이 부끄럽고, 원망스러울 뿐. 그런 사람에게서 이 이상,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더 들었다가는, 나도 그녀가 토해내는 말에 같이 물들어 갈 것만 같았다.

“……나가.”

“……뭐? 나도, 나이 먹었나 봐. 귀가 잘, 안 들리네?”

그녀가 어이가 없는지 픽, 웃었다. 내 말이 말 같지 않은 듯 했다. 그 태연한 모습에 그녀에게 다가가서 고함을 질렀다.

“나가! 나가라고! 제발, 내 인생에서 좀 나가라고…….”

분을 참지 못한 나는 그녀에게 뛰어들어서 고운 원피스의 멱살을 잡고 복도 쪽으로 밀었다. 그제야 그녀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어머, 얘 좀 봐. 미친 애 옆에 있다고 같이 미쳤니? 이거 놔.”

그녀는 내 완력에 밀리면서도 그녀의 멱살을 잡고 있는 내 손을 간신히 붙잡았다. 그리고 내 손 위로 주현이가 하는, 가이딩과 비슷한 열기가 슬금슬금 퍼졌다. 물론 주현이에 비하면 조금 더 낮은 그런 온도로. 그렇지만 날뛰는 내 손을 묶는데는 효과적이었다. 가이딩 효과로 인해서 딱딱하게 굳어 버리는 손을 알아차리고 내가 손에 힘을 빼자 그 사이에 그녀가 내 멱살잡이에서 빠져나왔다.

“……세상에, 조언 좀 해 주려다가.”

방금 내게 멱살이 잡혀서, 흐트러진 머리와 옷매무새를 매만지던 그녀가 손이 굳은 채로 서 있는 나를 향해 쏘아 붙였다.

“둘이 어떻게 붙어살든, 난 신경 안 쓴다. 어차피 네 일이고, 걔 일이지. 하지만 그거 하나 잘 관리 못해서 나랑, 네 동생 앞 길 막지는 마. 알겠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발을 바삐 놀리며 복도를 나섰다. 나는 여전히 마비된 것처럼 굳은 손을 가지고 그녀의 그림자가 찰랑이는 복도 중간에, 서 있던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현관의 문이 드르륵 열렸다 닫히는 소리에 참고 있던 눈물이 기어코 봇물처럼 터졌다.

“흑, 흐흑…….”

아무도 없는 그 집에서, 그동안 풀지 못한 서러움을 꺼내어 들고 엉엉, 울었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한 걸까. 왜 이렇게 된 걸까. 만약 있다면,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좀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고치든지, 벌을 받든지 해서 이 꼬이고 꼬여 버린 인생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집에서 그 울음을 받는 사람은.

“흐흑, 어엉…….”

나 혼자였다. 그게 못내 멍든 마음에 아픔을 더 했다.

방금 일 덕분에 잠시 나를 일깨우던 배고픔은 저 하늘에 날아가 버리고, 눈물이 멈추지 않아 지친 눈은 피곤하기만 했다. 나는 말라붙고, 하도 비벼서 쓰라린 눈을 마비가 풀린 손으로 연신 닦아내면서 누워 있던 침대로 다시 돌아갔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누워 있고 싶었다. 모든 생각을 멈추고, 가만히 누워서…….

그나마 편안하게 나를 받아 주는 이 침대에서. 나는 지친 몸을 뉘이며 멈추지 않는 생각을 되짚었다.

이 집에 남겨진 가족들을, 엄마와 동생을 생각하자면, 대호의 손을 잡으면 안 됐다. 분명, 주현이가 전날처럼 가연이나 엄마를 가지고 협박을 넘어 나쁜 짓을 할 게 뻔하다. 그걸 나도 알고, 주현이는 더 잘 안다.

하지만 방금, 엄마와의 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냥 가족이고 뭐고 다 버리고 나갈까 싶은 반항심도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과연 내가 생각하는 만큼, 그들도 나를 가족으로 생각하는지도……. 이제는 모르겠다.

‘동생은 그렇다 해도, 엄마는…….’

복잡하게 뭐라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힘이 없는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앞선 일들로 지친 몸과, 정신은 순식간에 내 몸을 졸음을 이용해서 실타래 풀어내듯이 슬슬 풀어 내렸다.

그 정신을 깨우는 것은, 내 뺨을 쓰다듬는 손길이었다. 작게 웃다가, 부드럽게 쓰다듬는 그런 손길. 달콤한 잠에 취하는 바람에 열이 오른 뺨과 달리 차가운 손길이 좀 귀찮아서 나는 몸을 반대쪽으로 돌렸다.

‘하지 마…….’

안 그래도 피곤하고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나는, 잠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내 바람이 전해진 것인지, 내 뺨을 쓰다듬던 손길이 사라졌다. 몽롱한 가운데 다시 잠에 훅, 빠져 들어갈 즈음, 몸을 확 일으키는 힘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으으…….

“뭐……야.”

“너.”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무거운 손등 너머로 비볐고, 다시 돌아온 시야에는 불도 켜지 않아 깜깜한 방에서 나를 가까이 보는 주현이의 굳은 얼굴이 있었다.

“가하, 너. 얼굴, 왜 이래.”

평소보다 훨씬 무섭기 짝이 없는 그 표정에 내가 몸을 굳혔다가, 뒤이어 그의 말을 이해하고 손을 올려서 볼을 만졌다.

‘얼굴? 아.’

“대답해!”

“……흑.”

고함치는 소리에 내가 놀라서 몸을 떨었다. 비몽사몽인 가운데 봐도 화가 잔뜩 난 모습이었다. 그는 말 없는 나를 두고, 내 턱을 잡고 엄마가 때린 뺨을 찬찬히 살폈다. 장지문 너머 들어온 정원의 등불로 빛나는 푸른 눈빛이 나를 예민하게 관찰했다.

하지만, 그렇게 소리를 지른다고 해서 내가……. 말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가 화가 나면, 어떻게 되는지 너무나도 잘 아니까. 엄마의 말대로, 내가 느끼기에도 주현이는 어딘가 미쳐 있었으니까,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 그런 점을 더 잘 알아서 섣불리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

“……가하, 너.”

주현이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손으로 흐트러진 제 머리를 쓸었다. 나갈 때만해도 반듯하게 빗어 올린 밀 빛 머리가 잔뜩 흐트러져 있었다. 그리고 옷도 아직 갈아입지 않았는지, 당장 헐렁하게 끄르는 빨간 넥타이를 제외하면 아침에 입고 간 양복 차림 그대로였다. 방금, 돌아온 건가. 내가 방 저편에 있는 괘종시계를 바라보며 시간을 확인 할 때, 그의 떨리는 손이 내 아픈 쪽 뺨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이미 부풀어 오른뺨은 그 세밀한 터치에도 반응했다.

“읏.”

“대답, 안 할 거야?”

“……그냥, 부딪힌 거야.”

“밥도 안 먹고, 온 종일 누워만 있었으면서. 어디에 부딪혔는데?”

“…….”

밥도 안 먹고 누워 있는 건 어떻게 알았는지, 놀랍지 않았다. 분명 박 비서나 일하는 사람이 살피고 갔겠지. 그나마 자던 것을 깨우지 않아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내게 주현이가 잇새로 분을 내었다.

“말이 안 통하네.”

그가 양복 재킷 안쪽 주머니에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새것인지, 까만 화면이 매끈하다 못해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가 화면을 짧게 두드리자 전화가 바로 연결되며 저편에서 가까이 있는 나도 잘 들릴 만큼의 응답이 돌아왔다.

―예, 도련님.

“당장 그 첩년 내 앞에 데려와.”

첩년이 누구인지는, 내 눈치로도 대충 가늠이 갔다. 엄마가 그런 모욕적인 언사로 불리는 것보다도, 그걸 어떻게 알았나 싶었다. 우리가 난리를 피우는 동안, 집 어딘가에 일하는 사람이 있었나. 분명 아무도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주현이의 화난 어투에 상대방이 놀란 듯, 대답을 바로 하지 못하고 머뭇대었다.

―……사모님 말씀이십니까?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당장 데려와!”

―알겠습…….

온전한 대답을 듣기도 전에 주현이가 핸드폰을 방 저편으로 휙 던져 버렸다. 거침없는 몸짓에 내가 몸을 움츠리자 그가 나를 안았다. 안겨 있는 품 안에서 느껴지는 그의 몸이, 분노로 급하게 들썩였다. 동시에 어이가 없는지, 허탈하게 웃었다.

“……나, 괜찮아. 별로 안 아파.”

어제 대호와 마주친 일보다도 분을 내는 모습에 내가 진정을 하라는 의미에서 말을 꺼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아니. 내가 안 괜찮아. 가짜 주제에 주제 파악이 잘 안 되네.”

“…….”

“일 나간 사이에 이따위…….”

내가 침대 위에 앉아 있는 채로, 그의 품안에 안겨 있는 동안. 전화가 끊기고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복도에 시끄러운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앙칼진 그녀의 목소리도.

“놔! 이거 안 놔? 지금, 뭣들 하는 짓이야!”

“도련님 말씀이십니다.”

딱딱하기 그지없는 대답과 곧이어 달라붙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몸을 굳혔다.

“내가, 회장님 부인인 거 몰라?”

“저희는 도련님 말씀만 따릅니다.”

“박 비서, 너네. 내가 본채로 가서 회장님께 이거 다…….”

“도련님, 모시고 왔습니다.”

그가 나를 품에 안고서 침대헤드에 기대었던 몸을 돌렸다. 아까와 달리 잔뜩 흐트러진 머리와 그새 뒤바뀐 옷차림으로 끌려온 엄마는 정장을 입은 박 비서와 덩치 큰 양복 차림의 남자 두 명에게 양쪽 팔을 붙잡혀 있었다.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끌려온 모양인지, 복도 가운데 위태롭게 서 있는 왼쪽 발목에 끈 다리 달린 구두가 걸려서 달랑거렸다. 그녀와 내 눈이 마주치고, 그녀가 악을 썼다.

“그새 다 일러 바쳤니? 필요 없다, 필요 없다 하면서 이럴 때만 써 먹는구나?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아줌마, 조용히 해. 시끄러우니까.”

나를 안고 있던 팔이 내 어깨를 꼭 안고서 말했다. 등 뒤에 느껴지는 단단한 가슴팍 뒤로 노여이 날뛰는 심장소리가 전해졌다. 주현이의 짧은 말에 엄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

“조용히 하라고. 그 자리라도 보존하고 싶으면. 가만히 있는 게 좋아.”

“…….”

“무슨 소리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내 머릿속에 궁금증이 들 무렵, 주현이가 내 머리 위에 턱을 쿡, 누르고 말했다.

“아줌마. 요즘 주제를 모르네. 아버지가 뒤에 있다고, 돈 빼 돌리는 거 내가 못 볼 줄 알아?”

‘돈을, 빼 돌렸다고? 엄마가?’

주현이의 말에 그녀는 차분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회, 회사 위해서 좋은 기회 전달 해 주는 건데 그게 무슨 소리니. 주현이 너, 지금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오해? 그 오해 풀려고 내가 회사 갔잖아. 지금 당신 때문에 사업 구멍 난 게 한두 개가 아냐. 내 거 중에 알찬 것만 골라서 쏙쏙 빼 먹으니까 기분 좋았겠던데?”

“무슨 소리야. 더 좋은 투자처로 소개시켜 준 건데. 서류도 못 봤니?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주현이가 나를 껴안은 채로 반문하자 그녀가 보란 듯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어, 몰라. 나 한국어 잘 못하잖아. 그래서 서류 못 읽어.”

“……지금 나랑 말장난 하자는 거니? 정신이 아직 똑바르지 않구나. 이러지 말고 내일 아침에 얘기…….”

“맞아. 지금 정신이 좀 별로야.”

“…….”

“기분도.”

주현이는 화를 낼 때, 조근조근 짚어 내리는 편이다. 자기가 원하는 답을 내 뱉도록 유도하는 성격이라고 하나. 애초에 선택지 따위를 주지 않는다. 그가 정한 답이 아니면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엄마의 태도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 그런지 알아?”

“…….”

애초에, 설득을 당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까.

멍하니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줌마, 멍청하니까 알려 줄게. 그런 건 우리 가하나 할 수 있는 거야. 가짜 따위가 냄새 좀 비슷하다고 휘두르려는 거, 나 되게 짜증나.”

“너, 너,”

“손버릇도 아주 나빠서 기분 더 좆같고.”

“회장님이 이러는 거 아시면…….”

“아버지?”

그가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는 듯 웃었다.

“내가 왜 이 꼴로 있었게. 뭐, 반은 우리 가하 때문이지만, 반은 멍청한 아버지 때문이거든. 나 덕분에 회장 소리 듣고 사는 건데. 아니면 평생 부회장에 그칠 뻔했잖아.”

“……이 건방진 놈! 너 정신 돌아왔다고, 그게 다 네 것인 줄 알면 착각이야!”

태연하게 제 아버지를 모욕하는 말에 대고 엄마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가만히 품 안에 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웃었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 것도 아니잖아. 할아버지가, 아버지 계속 부회장으로만 두고 나 일찍이 경영 일선에 세우려는 걸 잘 양보했는데. 이쯤 되면 효자, 아냐?”

“…….”

“내 원래 자리 돌아가는 마당에 중간에 껴서 개짓거리 하지 마.”

그는 나를 안고서 즐거운 듯이 웃었다. 내 다친 뺨이 그의 손바닥에 살며시 감겼다. 최대한, 고통을 주고 싶지 않은 손길이었다.

“아, 그리고. 돈 말고.”

나를 매일 상처 입히는 그의 성질치고는, 웬일인가 싶을 정도로.

“다시 한 번 그 좆같은 손버릇 가하한테 휘두르면.”

내 뺨에 그 익숙한 온도가 따끈따끈하게 전해졌다. 가이딩이었다. 뺨에 닿은 손이 떨어져나가도 아픔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 효과에 놀랄 틈도 없이 커다란 손이 내 눈을 가렸다.

“평생에 손 없이 다닐 줄 알아.”

까만 시야 너머로 까드득, 하고 비틀리는 소리가 났다.

“아아악!”

“주, 주현아.”

기괴한 그 소리와, 울부짖는 엄마의 가쁜 호흡은 굳이 보지 않아도 무슨 상황인지 알게 했다.

나도, 당해 봤으니까.

떠오르는 그 끔찍한 감각에 내 심장이 마구 두방망이질 쳤다. 나는 나를 안고 있는 팔과 내 눈을 가린 손을 내리려고 붙잡았지만, 주현이는 여전히 제 자세를 유지하고 제 손바닥으로 내 눈을 가리며 자기 턱을 내 정수리에 살살 긁었다.

“괜찮아. 치료는 할 거야. 그래도 예전처럼 손 휘두르고 다니진 못하겠지.”

“…….”

“내, 내 손, 아악!”

그녀가 무척 싫고, 밉긴 했지만 막상 잔인하다 싶을 정도의 취급을 받는 것을 태연히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래서 미워도, 가족이라고 하는 건가. 사실 남이라고 해도, 그걸 앞에서 보고 무시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다시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과, 완벽히 나은 발목은 문득 시큰대는 환통으로 내 몸을 진동하게 했다. 그런 내게 주현이가 속삭였다.

“어쩌다 저런 년한테서 네가 나왔을까?”

“…….”

“얼굴 빼고 닮은 점이 하나도 없어서 신기할 정도야.”

엄마의 울부짖는 소리는 복도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내가 낮에, 울었던 것처럼.

“허흑, 흐흑……. 아! 너, 너 내가…….”

“데려가. 시끄러워.”

귀찮은 듯이, 짧게 말하는 것을 두고 아까 보았던 양복 차림의 남자들이 대답했다.

“예.”

질질 끌려가는 소리와 더불어 그들이 몰려가는 발소리가 복도를 지나고, 현관문이 착 닫히는 소리가 복도를 통해서 전달 되고 나고서야 그는 내 눈으로 부터 그 손을 떼었다. 그제야 우리가 있던 방의 모습이 다시 보였다. 동시에 내가 흘린 눈물에 젖은 그의 손바닥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 등 뒤에 거북이 등딱지처럼 매달린 주현이가 제 목의 넥타이를 풀어헤치면서 볼멘소리를 했다.

“주머니에 넣어 다녀야 하나. 이래서야 신경이 쓰여서 어디 두고 다니지를 못하겠어.”

그가 침대에서 일어나서 재킷과 셔츠 단추를 풀어헤치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두면서 툴툴대었다.

“박 비서라도 붙여 줘?”

“……괜찮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감시를 하는 것 같은데, 대놓고 보이는 감시인까지 늘어나는 것은 사양이었다. 그럼 더 답답할 게 뻔했다.

“그럼 저딴 손버릇 받아 주고 다니지 마. 또 이런 일 있으면. 사지 다 꺾어 놓을 거니까.”

그 말에 내 어깨가 흠칫, 했다. 왠지, 그게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 같았다.

‘내가, 주현이의 기분을 나쁘게 하면…… 그때처럼.’

나는 침대에 펼쳐 둔 다리를 접어서 감싸 안았다. 편하게 입은 면바지가 굽혀지면서 드러내 보인 발목에 흉터자국이 선연했다.

그러면, 나 또한 그 힘을 비껴가지 못하고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난폭한 관계를 빼면 딱히 몸을 상하게 만드는 일은 없었지만, 주현이는 예측 불가한 애였으니까. 언제 또, 어떻게 말을 바꿔서 나를 옭아매어 들어갈지 모른다.

“안 그래도 시시콜콜한 얘기 듣고 오느라 피곤해 죽겠는데.”

그는 양복들이 다 거추장스러워 죽겠는지 아무렇게나 다 던져두고 맨 몸으로 다가와서 침대에 앉아 있는 나를 안아 도로 침대에 들어갔다.

“기분 좋게 잠이나 좀 자 보려 했더니. 엄한 년한테 맞기나 하고. 짜증나.”

“…….”

“그래도, 잘 했지. 나?”

그가 제 팔을 내 베개로 내어주면서 품에 있는 내 등을 토닥였다. 잠을 자라는 거 같긴 한데, 아까 전 난동으로 멀리 달아난 잠이 돌아올 구석은 없었다. 그렇지만 눈은 감았다. 그럴수록 명료하게 떠오르는 의식이 옆에 가까이 누워 있는 주현이를 또렷하게 의식했다. 그는 말없이 내 등을 토닥이다가 이내 내 뺨을 살살, 쓸어내렸다. 그 손짓에 다시 눈이 뜨였다. 그러자 자상하게 내려다보던 파란 눈이 나를 담고서 살짝 웃었다.

“알겠어? 나 말고, 다른 사람 손대게 하지 마.”

“……응.”

정작 내가 당한 것에 대한 응징을 해 주었지만.

오히려, 그 행동이 내 마음에 두려움을 심고, 이곳을, 주현이의 곁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부채질했다.

그날 밤, 불면증이 거짓말인 것처럼 달게 자는 주현이 옆에서 날이 새는 것을 보고 나서야 나는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주현이의 불면증이 내게 옮겨 오지는 않을까, 그가 가진 그 거대한 힘의 방향이 언제 다시 나로 향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간직한 채로.

밤을 깨우는 새벽녘을 보고 나서야 기어코 잠이 들은 나는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무거운 눈을 떴다. 천이 스치는 특유의 소리와 눈부신 낮이 주는 특유의 하얀 빛 사이로 뒤돌아 있는 인영이 보였다. 밀 빛 머리가 변함없이 아침녘에 투명하게 반짝거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눈을 비비고 몸을 일으켰다.

‘부지런하네…….’

그런 나를 향해 한창 양복을 챙겨 입고 있던 주현이가 뒤로 돌아섰다.

“일어났어.”

셔츠의 소매의 단추도 채우지 않고 풀어헤친 채로 바지만 입고 있는 주현이는 가슴팍의 셔츠 단추를 채우다가 내게 다가왔다. 그의 콧등이 내 정수리로 내렸다. 일어난 내 앞에 어젯밤 품에서 원치 않았지만 마음껏 구경했던 그의 탄탄한 가슴팍이 다시 보였다.

“……응.”

벌써 아침이구나. 당연한 소리지만 부족한 잠이 이뤄내는 피로는 몸을 다시 침대 위로 끌어당겼다. 풀썩 하고 침대에 누워서 한껏 몸을 묻고 있는 와중에 주현이가 웃었다.

“더 자.”

“……그럴 거야.”

‘너가 그러지 말라고 해도, 할 거다.’

눈을 감고 대답하자 주현이가 마저 옷을 챙겨 입는지 귓가에 천이 스치는 소리가 다시 시작되었다. 어제처럼 회사를 또 나가는 모양이었다. 엄마가 돈을 빼돌렸다고 해서 그런가, 좀 신경이 쓰였다.

‘그나저나 가서 무슨 일을 할까.’

맨날 내 옆에서 별 가당치 않은 투정을 부리기 바쁜 녀석이……. 전에 보았던 그 회사 건물의 회사원들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서류 따위를 보는 모습이 전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아니면, 내 앞에서 하는 것처럼 계속 그런 태도를 보일까.

그렇게 생각하자니 주현이 주변의 사람들이 좀 불쌍했다. 수틀리면 발목이나 손목 따위가 언제 날아갈지 모른다니, 그야말로 최악의 회사 동료이자 상사가 아닐까. 차라리 그럴 바에는 맨날 술 먹자고 꼬셔대는 공사판 아저씨들이 착해 보였다. 나는 주현이 주변의 불쌍한 회사원들을 상상하면서 눈을 떴고, 내가 누운 침대 맡에 앉아서, 셔츠 소매 끝 구멍 사이로 쇠단추 따위를 집어넣는 주현이의 모습이 보였다.

‘저건 뭘까.’

꼼지락대는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그가 양쪽의 소매를 그 쇠단추로 단정하게 정리하고 나서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배고파?”

“……그냥.”

밥을 같이 먹자는 걸까. 별로, 소화도 잘 안 될 것 같고. 그건 좀 싫은데. 내 얼굴을 쓰다듬던 손의 주인이 내 관자놀이 사이로 손가락을 넣고서 살살 쓸었다.

“필요한 거 있으면 현관에 있는 전화기로 연락해. 바로 준비해 줄 테니.”

“……그래.”

내가 등을 돌려서 눕자, 아쉬움을 담은 그의 손길이 천천히 떨어져 나갔다. 얼마나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을까. 그가 일어서는지 침대가 잠시 요동치더니, 나를 불렀다.

“가하.”

“……왜.”

대답을 하기도 싫어서 침묵을 지키려다가, 괜히 또 성질을 부리면 어떡하나 싶어서 나는 한참 뒤에 대답했다. 등 돌린 내 시야 위로 남색의 광택이 서린, 길쭉한 천이 내렸다.

‘뭐지.’

내가 뒤를 돌아보자 그가 내게 침대 헤드에 팔을 기운채로, 내 앞에 넥타이를 쥐고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 넥타이, 매 줘.”

“……네가 해.”

“가하가 해 줘.”

출근하는 아침을 배경으로 한 부부 놀이라도 하고 싶은 모양인가. 그렇지만 저가 훨씬 잘 매면서, 굳이 할 줄 모르는 나한테 매달라고 하는 얼굴이 얄미웠다. 내가 도로 누워서 이불을 뒤집어쓰자 시트 너머로 중얼거리는 주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사 가기 싫다.”

“…….”

정말 유치한 말이었다. 주현이네 회사 사람들이 참 불쌍했다. 주현이는 말 없는 내게 다시 말했다.

“우리 여보야가 해 주면 나 좀 힘이 날 텐데.”

“…….”

네가 힘이 나든지 말든지 그게 나랑 도대체 무슨 상관이지. 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어차피 제 하고 싶은 대로 나를 휘두를 거면서. 그러자 주현이가 말했다.

“내가 힘이 안 나면……. 피곤해서 집에 일찍 올 텐데.”

“…….”

이제는 뭐 어쩌라는 건지 싶었다. 일찍 오든 말든, 그건 또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일찍 온 내가, 가하랑 뭐를 할까…….”

그러자 주현이의 손이 이불 시트에 둘둘 쌓여 있는 내 척추 근처를 더듬어 내려갈 때에는, 몸이 절로 벌떡 일어났다. 그런 내 옆에 있는 주현이가 발랄하게 말했다.

“아, 하나는 알겠다. 분명, 우리 가하가 힘들 거야. 그렇지?”

내가 둘러싸인 이불을 들치고 일어나자 여전히 침대헤드에 기대어서 나를 내려다보는 주현이의 얄미운 얼굴이 있었다. 나라고 ‘힘들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결국 주현이와 나의 사이는 그런 사이였다. 거부도 찬성도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를 주고서 고르라고 하는, 그런 사이. 여전히 그는 내게 내밀고 있는 넥타이를 손에 쥔 채로 잔뜩 깃을 세운 셔츠를 향해서 남은 손으로 가리켰다.

“얼른 해 줘. 늦었어.”

“…….”

그게 누구 때문에 늦었을까.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면서 주현이의 손바닥 위에 있는 넥타이를 잡아채고 몸을 일으켰다. 주현이가 워낙 키가 커서, 내가 일어서자 딱 넥타이를 매기 좋은 높이가 잡혔다. 나는 어제 했던 것처럼, 우선 넥타이를 그 깃 세운 셔츠 주위로 둘렀다. 그리고 한 번 매듭을 짓다가 나도 모르게 매듭을 바짝 매었다. 너무 조였나 싶어서 그 첫 매듭을 좀 풀어 주려다가,

“음. 좀 답답한데.”

“……아무렇게나 매라며.”

유치한 복수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응.”

태연하게 웃는 주현이의 얼굴에 괜히 심술이 났던 탓이다. 아리송한 방향으로 다음 매듭을 지으면서 슬쩍 본 주현이의 얼굴은 행복 그 자체였다. 제 목이 졸리든지, 말든지 신경에도 쓰이지 않는 모양에 어이가 없었다.

‘이게 다 뭐라고.’

나는 헷갈리는 매듭 부분을 잡고서 이렇게 저렇게 묶다가, 어제의 엉성한 넥타이 모양마저도 나오지 않는 기묘한 넥타이 형태에 머리를 긁었다. 다시 해야 하는 건가, 싶을 때, 주현이가 내 두 손을 마주잡고서는 내렸다.

“다 된 거 같은데.”

그는 팔뚝에 걸쳐 둔 재킷을 다시 잘 걸치면서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오늘은 검은색 양복이었다. 그는 복부 쪽에 위치한 재킷의 단추를 채우면서 소매 아래 가죽 줄이 언뜻 보이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이런, 늦었다.”

나는 그의 앞에 서 있다가 물려진 손이 허전해서 머리를 쓸었다. 자다 일어나서 그런가 잔뜩 엉켜 있었다. 완전 엉망이다. 머리에 감기는 부스스한 머리를 손빗을 세워서 빗어내는 동안 그가 나를 푹 안았다.

‘왜 또 엉겨 오는 거야.’

“늦었다며.”

“응.”

나는 그 품에서 나오려다가, 그의 단단한 팔 힘에 막혔다. 늦었다는 놈이, 이러고 있어? 나는 아직도 잘 가라앉지 않는 머리를 정리하면서 살짝 짜증을 내었다.

“가.”

“고마워.”

“얼른 가.”

그가 내 목덜미에 고개를 숙이고서 말했다. 그 말에 감동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목덜미에 불어지는 숨결에 소름이 쭉 돋았다. 그리고 머릿속에 퍼지는 작은 놀라움. 너도 그런 말을 할 줄 아는구나.

“……그래.”

내일은 비가 오려나, 아니면……. 평소와 달리 전혀 할 거 같지 않던 말을 하는 주현이의 모습에 내 마음이 모래알을 씹은 것처럼 껄끄러워졌다. 그는 내 머리 위로 한 번 입 맞추고는, 나를 그의 품에서 비로소 풀어 주었다. 그리고는 어제와 같이 산뜻한 얼굴로 말했다.

“회사 다녀올게.”

“가.”

“아침, 챙겨 먹어. 차려 두었으니까.”

“어. 가.”

‘그리고 이왕이면, 안 돌아와도 좋을 것 같고.’

나는 마음속으로나마 그렇게 생각하면서 피곤한 몸을 침대 쪽으로 향했다.

“응.”

주현이가 짧게 대답하고 제 덩치마냥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삐걱삐걱대는 복도의 소리가 멀어지고 나는 흐트러진 침대 위로 내 몸을 휙 던졌다. 텅, 하고 안정감 있게 흔들리면서 나를 받아 주는 침대에 내 얼굴을 묻고서 가만히 있었다.

그새 식은 온기가 시트 너머로 느껴졌다. 주현이가 가면서 아침밥 얘기를 해서 그런가 배가 고팠다. 그렇지만 짧은 잠으로 인한 피곤이 더했다.

‘그래도, 간밤에 가이딩이라던지, 이상한 짓을 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안 그랬다면 좋지 않은 기분이 더 땅굴을 파내려 갈 법도 했으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눈을 깜빡거리며 다시 몰려드는 수마를 맞았다. 그런 내 잠을 깨운 것은, 옅게 속삭이는 소리였다.

“……련님.”

무슨……. 소리지.

나는 떠오르는 의식을 다시 붙잡아 내리려는데, 속삭이는 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가하 도련님.”

나?

그 부름에 내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내 이름?

“……저요?”

내가 바삭대는 침대 시트를 구기면서 황급히 일어나자 목소리의 주인이 카펫 바닥에서 일어났다.

“잘 주무시고 계신데 죄송합니다.”

목소리의 주인은 박 비서였다. 나는 살짝 부어오른 눈을 비비면서 정신을 챙겼다. 웬일이지.

“아뇨, 아뇨……. 무슨, 일이세요.”

“아침부터 끼니를 거르시는 것 같아서요. 어디 불편하신 곳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니면 의사를 불러 드릴까요.”

딱딱하게 응답하는 것을 두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안 아파요. 그냥, 피곤해서…… 그래요.”

“그렇군요. 점심 준비 되어 있는데, 이리로 들일까요.”

“네.”

그는 주현이를 따라간 것이 아니었는지, 내 앞에서 핸드폰을 꺼내들고 누군가에게 화면을 두드리면서 연락을 하고 있었다. 내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가 핸드폰을 다시 양복 안주머니에 넣으면서 살짝 미소 지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옛날에…… 그 박 비서님 맞으세요?”

그는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잘 지내셨죠.”

그 말에 긴가민가했던 궁금증도 풀렸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계속 주현이의 곁에서 함께 비서로 남았나 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젊은 청년이었던 그는 어느덧 중년의 나이를 넘은 모습을 얼굴에 드러내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변함없는 장소와 그때와 비슷한 사람들은 퍼즐처럼 맞추어 들어갔지만 상황이 그때와 같은 장면을 그려내지는 않았다. 그 생각에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답이 없는 질문에 갇히고 말았다. 그런 나를 보던 박 비서가 대답했다.

“그건 제게 물어보는 질문인가요? 아니면, 주현 도련님을 말씀 하시는 건가요?”

“당연히…….”

나는 푸석한 얼굴을 쓸어내리던 손을 내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알 수 없는 감정이 서려 있었다.

“당연히…… 박 비서님이죠.”

주현이가 어떻게 지냈는지 따위는 내게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힘들었다고 해도, 정말 그런지는 모른다. 멀쩡했어도, 혓바닥 한 번 뒤집으면 반대로 말할 애였다. 거짓말투성이인 애에게 어떠한 관심을 주어도 돌아오는 것은 기만과 거짓뿐인데, 그 안부나 무엇을 물어보는 행위 자체가 의미가 있을까.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아니면 저는 주현이 말고는 신경 쓰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되나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그는 사과의 의미인지 내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저. 저를 기억해 주시리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당연히……. 기억하죠.”

20년의 세월에 비하면 길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주현이와 함께 이 집에서 살면서 보던 어른이었는데. 내 대답에 박 비서가 굳혔던 얼굴을 부드럽게 풀었다.

“그러시군요. 주현 도련님의 병증만 빼면, 나쁘지 않게 지냈습니다.”

“……잘됐네요. 이제, 좋아질 테니.”

사실 좋아진 건지 아닌지도 모른다. 말만 아프지 원래는 정상이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나를 찾느라 그 긴 세월동안 바보 노릇했다는데.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잘 지냈을지 누가 안단 말인가.

‘아, 박 비서는 알려나.’

아무튼 그동안 하지 못한 가이딩, 내게 넘치도록 부어 주고 있으니 박 비서 입장에서는 한시름 놓일 터였다. 그 앞의 나는 그저 그의 주인을 정상으로 만들어 주는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말이 곱게 나오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무척 기쁩니다. 그동안, 가하 도련님을 찾지 못해서 무척 힘들어하셨거든요.”

“……그렇게 말해도.”

나는 그 애에게 동정심 따위는 생기지 않을 거라고 말하려는데 그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저는 일반인이라 잘 모릅니다. 듣기로는, 가이드도 자신의 에스퍼와 강제로 연결이 깨어지면 반동이 크다고 하더군요. 큰 힘에는 그 만큼의 리스크가 있는 모양입니다.”

“…….”

“두 분 사이의 일이니, 제가 뭐라 말할 입장은 되지 않지만.”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그런 대단한 힘을 가진 애가 나를 옆에 끼고 사는 것을 고맙게 여기라는 건가. 어제의 엄마와 비슷한 말을 하는 박 비서에게 향하던 시선을 내려서 카펫 바닥을 쳐다보았다. 박 비서는 담담하게 말했다.

“사실 사모님과 깊은 접촉을 하면 그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같은 공간에서 숨만 쉬거나 손을 잡는 것 외에, 그 이상은 거부하셨습니다.”

“……하.”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말인가. 잘했다고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라는 건가. 나는 알지 못하는 내용들에 대해서 꺼내어 드는 그가 거북했다. 그렇지만 그는 내 반응에도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동안 가하 도련님을 찾을 수 없어서, 죽도록 싫은 사람의 손을 잡고 갖은 고통을 견디고 계셨습니다.”

“……그래요? 우리 엄마 덕분에 잘 버텼다고들 하던데요.”

“숨만 간신히 쉴 정도로만 평생을 살아 오셨습니다. 그 정도면 원래의 에스퍼 없이 잘 버틴 거라고 하더군요.”

“…….”

나의 부재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가이드 없이도 잘 살던 최하의 에스퍼였니, 가이드가 없어도 딱히 불편한 삶이 아니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온 말은 나를 조금 뒤흔들었다.

“결국 매일 밤마다 고통을 참지 못하고 잠은커녕 병실의 벽지를 뜯다 못해 콘크리트 벽을 파고 계셨습니다. 아침만 되면 손이 다 부러지고 찢어져 있었죠.”

“…….”

“그게 멈춘 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현관의 전화기에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목을 깊숙이 숙였다.

그 말이 끝나고 나는 내 손을 쳐다보았다. 다친 곳이 없는 손은, 전전날 밤에 이어진 가이딩 때문인지 거스러미 하나 없이 깨끗하기만 했다. 문득, 주현이의 손이 어땠는지 떠올렸다.

“…….”

하지만 그저 커다란 손이 나를 쓰다듬던 것만 생각날 뿐, 자세한 모양이나 형태는 기억나지가 않았다.

본채에서 보았던 중년의 가정부가 갓 차려 준 점심을 먹고 나서, 부른 배를 가지고 나는 하릴 없이 복도의 마루에 앉아 있었다. 마루의 경계 너머로 다리를 뻗고 댓돌에 걸친 맨발을 풀밭 위로 두고 까딱거렸다. 어떻게 된 집이 우리 반지하방에도 하나 있는 TV나 낡은 컴퓨터도 없는지. 집이 간직한 시간만큼이나 집에 채워진 것들도 제법 나이를 묵은 연식의 것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정 없이 말 한마디 없는 가정부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마친 후 나가 버리니, 안 그래도 조용했던 2층 집이 더욱 고요했다. 나는 옆으로 비껴낸 덧문의 격자유리에 나른한 몸을 기대어 있다가 곧장 마룻바닥 위로 벌렁 누워 버렸다.

‘부잣집이 뭐 이래. 뭐 재밌는 거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사실은 바깥이 어떤지 더 궁금한 게 컸지만. 그렇다고 신문이나 무엇 하나 없는 건 너무하지 않나. 나중에 돌아오면 핸드폰 같은 거 달라고 할까. 달라고 하면 주려나. 안 그러겠지…….

“에잇……”

나는 투덜거리며 두 팔을 뒤로 해서 머리를 받쳤다. 누워 있는 목재 마루의 바닥은 오래되어서 그런가, 살결에 어디 긁히는 부분 없이 반지르르했다.

‘예전에도 그랬지. 늘 여기서 상을 내놓고 밥을 먹곤 했는데…….’

과거에 잠긴 눈을 깜빡이며 복도의 천장을 보다가, 유리가 끼워진 덧문 너머의 고른 처마, 그리고 그 아래에 가만히 매달린 종 따위로 시선이 옮겨 갔다. 그 처마 너머, 그 종 뒤로 푸르게 펼쳐진 하늘이 내 시선을 순식간에 빼앗았다. 오늘은 구름이 좀 있어서 그런가. 어디 미술관에 있는 그림에 나올 법하게 포근한 하늘이 그려져 있었다. 날이 좋아서 처마에서 한 번 꺾어져 들어오는 볕도 딱 적당하고 좋았다. 너무 세지도 않고, 옅지도 않고. 반지하의 방은 늘 꺾여드는 그림자로만 가득한 노을을 받곤 했는데.

‘지상에서 받는 볕은 이렇게 참 좋구나…….’

막 찾아오는 식곤증을 반기고 눈을 감고 있을 때, 바람이 한 번 훅 불면서 누워 있는 내 머리카락과 처마의 매달려 있던 종이 짤랑 소리를 내며 흔들었다. 그 맑은 소리에 노곤하게 녹아들던 몸이 딱 깼다.

“아…….”

배가 무척 고픈 뒤에 밥을 먹었더니 꽤 졸립다. 여전히 정면으로 누운 상태로 팔로 머리를 받치던 나는, 따뜻한 볕이 드는 옆 방향으로 몸을 한 번 굴리며 자세를 고치고 길게 쭉 뻗은 팔에 얼굴을 대었다. 그런 내게 처마 밑으로 들어오는 볕 사이로 먼지가 날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을 가만히 보자니 내 상황이 참. 불쌍했다.

‘저 먼지마저도 저렇게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는데. 나는…….’

“……하하…….”

여기서 뭐를 하고 있는 걸까. 한낱 먼지 따위를 부러워하는 삶이 될 줄이야. 나는 내 상황이 너무나도 우스워서 허탈하게 웃음을 연신 뱉었다.

이 커다란 집도, 내 손 수고로이 하지 않고 차려 주는 밥도, 나아진 형편을 누리는 가족들, 나를 이곳으로 이끌어낸 예전의 기억마저도. 그 중에 어느 무엇 하나 내게 편안한 것이 없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구속이었다. 이렇게, 웃고 숨 쉬는 것 마저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나는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이곳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눈앞에 떠다니는 먼지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움켜쥔 주먹 사이로 공중의 먼지들이 모래사장의 모래알처럼 이리저리 내 손을 피해 가며 부유했다. 그 모습에, 문득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렇게 날아다니고 싶다.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자유롭게……. 공중에서 나를 좀 풀어 주고 싶다고. 어렸을 때,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씩 그 애의 힘을 빌어서 날아다녔던 그때처럼.

나는 복도 마루에 뉘였던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눈앞에 좋은 날씨를 가감 없이 받은 덕에 유난히 반짝거리는 정원이 보였다. 푸른 잔디밭 위로 펼쳐진 드넓은 하늘이 어제처럼 이리로 오라 손짓하고 있었다. 흘러가는 구름을 보다가 나는 계속 주먹을 쥐고 있던 손을 폈다. 펼쳐진 손바닥 위에서 먼지인지, 공기일지 모르는 것들이 응달 아래로 녹아드는 것을 보면서 충동을 조금 더 키웠다.

‘한 번만.’

“…….”

딱 한 번만, 내 능력을 써 보면 안 될까.

어차피, 지금 당장은 이곳에 주현이도 없고, 나는 가족들 때문에라도 어디 도망가지도 못하는데, 내가 도망치도록 도와줄 사람도 없잖아. 그냥 이 지붕 위에 까지만.

‘저기 저 나뭇가지 높이 까지만……. 가 보면 안 될까.’

만약, 누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면 해도, 그냥, 힘을 조금 써 본 거라고, 주현이가 준 힘을 써 보고 싶었다고 잘 설명을 하면…….

갑작스러운 충동은 고민으로 번지고, 이내 결심으로 굳어졌다. 나는 이제 기억나지도 않는, 내 초능력을 쓰는 법을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어떻게 했더라.’

나는, 눈을 감고 주현이가 며칠 새 차고 넘치도록 부어 주던 그 열기를 떠올렸다. 그러자 심장 가운데 응축되어 있던 힘들이 요동치면서 천천히 풀려나가고 몸속의 혈관을 타고 팔딱거렸다.

‘아, 이런 거였나……. 이게, 그 힘인가.’

그가 요즈음에 가이딩을 해 줘도 워낙에 긴 세월동안 한 번도 그 힘을 써 보지 못했고, 여기 와서도 힘을 써 볼 기회나 시간 따위가 없었기에 그 가이드의 힘이 내 전신에 풀어지는 감각이 생소하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등급이 높은 에스퍼일수록, 제 가이드에게 죽고 못 산다는데. 이 넘치는 힘이 없다면. 그렇게나 필요한데 없다면……. 나는 예전에 주현이가 욕실에서 역가이딩을 펼쳤던 탓에 몸소 체험했던 그 타는 갈증을 떠올리며 도리질을 쳤다.

‘으, 끔찍해.’

차라리 그냥 별 것도 아닌 힘이 어떻게 보면 나을지도 모르겠다. 가끔씩 등급 높은 에스퍼들을 부러워했지만 이제는 그렇지도 않았다. 몸 안에서 가이드의 힘이 부드럽게 풀리면서 몸 전체에 따듯하고도, 근원을 모를 생소한 힘이 가득 찼다. 그 힘이 주는 기분에 나는 눈을 떴다.

“……어?”

처마에서 들어오는 볕을 바라보던 내 시야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내가 떠 있는 자리의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앉아 있었던 복도 마룻바닥이 저어기, 한창 밑에 있었다. 갑작스러운 변동과 적응하기 어려운 높이감에 당황한 나는 앉아 있던 자세 그대로, 팔을 허우적대다가, 덧문의 끄트머리에 발끝을 디디고 복도 천장의 굵은 들보에 철봉을 하듯이 매달렸다.

‘떨, 떨어질 거 같아.’

“……으아.”

땅에 디디고 살던 세월이 너무 길었던 탓일까. 바라고 바라던 능력을 써 보았지만 막상 자유롭기 보다는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안정적으로 디디던 발밑이 허전하다 보니 어디라도 디디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런 혼란스러운 마음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탓인가, 나를 둥실둥실 띄우고 있던 힘이 그 순간 확, 사라졌다.

“……헉.”

그 결과 내 몸은 중력을 따라서 아래쪽으로 축, 늘어졌다. 나는 들보에 매달린 채로 무겁게 떨어지는 다리를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으아, 힘이 벌써 떨어진 건가. 아니면…….’

당황과 긴장으로 들보에 매달린 손에 땀이 배이고 팔뚝에 힘줄이 툭툭 불거져 나올 때에 나는 결국 복도 바닥에 우당탕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예기한 추락을 맞았지만 그래도 떨어진 몸이 충격으로 욱신거렸다.

“아야야……. 아파…….”

나는 떨어지면서 복도에 널브러진 몸을 다시 일으키면서 쓰린 엉덩이와 어깨를 손으로 삭삭 쓸었다. 다시 돌아온 시야의 높이는 변함없이 한낮의 볕을 내게 쐬어 주고 있었다. 그 빛의 근원을 향해서 시선을 올리다가 푸하, 하고 웃음이 터졌다.

“아하, 아하하…….”

누가 보면 미친놈인 줄로 알겠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심장이 막 부풀었다. 그 짧은 공중에서의 시간이 나를, 어떻게든 자유롭게 해 줬다는 게 기뻤다. 주현이도, 엄마도, 동생도 아닌 그저……. 그 짜릿함에 나는 아직 욱신거리는 몸을 일으키고 맨발로 정원을 향해서 막 달려 나갔다. 주현이가 눈앞에 없어서 그런가, 내 조그만 일탈은 겁도 없이 달려갔다. 그가 여기 없으니, 잠시만이면 내가 떠다니는지, 굴러다니는지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고 밖에 단순한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푸석한 머리가 뛰어가며 맞아드는 바람결에 휘날리고, 내 달뜬 뜀박질은 정원의 한 가운데로 이끌었다.

“하, 하아…….”

나는 살짝 가쁜 숨을 다시 힘껏 갈무리하고, 눈을 감았다. 하얀 햇볕이 감은 눈 사이의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려는 것을 막아내면서 심장에 가득하게 차오른 힘에 집중했다.

나를, 다시 저 위로 보내 줘. 사람이든, 기억이든, 무언가에 매이지 않고 그저…….

“……와.”

내가 억지로 가지게 된 이 힘으로 나마 그저, 나를 자유롭게 해 줘.

그가 없는, 이 시간만큼은 오로지 나를 위하고 싶었다. 나는 정원의 한가운데 위로, 2층 집의 지붕이 환히 보일 정도로 올라온 것을 확인하고서 웃었다. 정원수가 가린 길 너머로 신식의 본채 건물도 보였다. 저 멀리 너머로 다른 저택들도.

그게 무척 신기했다. 공사판 일을 하면서는 고층 빌딩 작업 따위를 하지 않고서야 이 높이의 공기를 맡아 볼 기회가 없다. 나는 더 올라가 볼까, 싶다가도 문득 아까처럼 다시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에 심장에 모인 힘을 다시 집중시켰다. 평정을 잃으면, 힘의 순환이 방해받게 되고, 결국 아까처럼 떨어질지도 모르니까.

나는 그나마 가까이 있던 커다란 나무의 굵은 가지에 접근해서 내 허전한 발밑을 디뎠다. 얼른 발을 놀려서 커다란 나무 몸통을 두 손으로 붙잡고 나서야 연신 양 옆으로 불안정하게 기우뚱거리던 몸이 안정을 찾았다. 동시에 쭈뼛하고 섰던 머리의 감각도 차근히 가라앉았다.

“후아.”

오래된 나무인지 가지가 내 몸 만큼의 굵기를 가지고 있어서 나는 그 가지 사이로 내 다리를 양 옆에 늘어뜨린 채로 앉았다. 그 몸짓에, 발에 묻어 있던 정원의 흙먼지가 아래로 툭툭 떨어져 나갔다. 떨어지지 않게 자리를 안정적으로 잡고서 살짝 몸을 기대자, 등 뒤로 이 거대한 나무의 딱딱한 몸통이 닿아 왔다. 나는 앉아 있는 나무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아찔한 높이감에 다시 몸을 뒤로 물렸다.

‘으, 어지러워…….’

어차피 그가 돌아오고 나면 내 시간은 내 것이 아니니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나는 머리 위로 가지런히 뻗은 잔가지들과 거기에 푸르게 매달린 나뭇잎들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예쁘다.”

평소에 지상에서 보면 별 것도 아닌 것들이, 이 공중에서, 아무도 나를 잡지 않는 상황에서는 그저 보기 좋았다. 이 나무들 뒤로 굳게 서 있을 담을 넘지 않고서도 마음은 훨씬 자유롭고 편안했다. 이곳에서 오고 나서 처음으로, 맞아 보는…….

자유였다.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오로지 나만을 위한 그런 자유. 나는 나무 몸통에 기대어서 잔잔히 들어오는 볕과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의 향기를 즐겼다.

그렇지만 행복한 시간은 늘 짧고, 순식간에 흘러간다. 내가 몸에 있는 힘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하며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뛰어다니면서 겨우 힘에 대한 감각을 익혔을 때에는 이미 날이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노을을 등지고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정원수의 모습에 작은 아쉬움을 느끼면서, 내 옆으로 이리저리 뻗어 있는 나뭇가지 사이를 냇가의 돌다리처럼 통통 뛰어서 건넜다.

딱, 2층 가옥 앞에 있는 나무의 가지로 발을 옮길 무렵, 가옥에서 쾅쾅쾅 하고 사정없이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무슨 소리지.’

그 소음의 원인을 알기도 전에, 막, 가지에 발을 디디려고 공중에 있던 내 몸이 갑자기 훅, 떨어졌다.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추락에 놀랄 새도 없이 그저 눈을 콱 감았다.

‘아, 아프겠다. 아까 복도에서 떨어진 것보다는, 훨씬 높아서……. 꽤 아플 텐데.’

감겨드는 눈앞에 저무는 노을부터, 2층 집의 까만 기와, 갈색의 목재 기둥이 어지럽게 섞여들어 가면서 내 시야를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오전 내내 내 심장에 차오른 힘을 아무리 써도 영 바닥을 보일 기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갑자기 이렇게 힘이 사라지는 건……. 문득 기시감을 느끼는 내 생각과 추락하는 몸의 감각이 뚝, 멎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몸은 어디 통증하나 없이 온전했다. 그 안정감에 나는 이윽고 눈을 떴고.

“……주……현아.”

아 들켰다, 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꽉 찼다.

“……도망가고 싶었어?”

눈앞에는 거친 숨을 몰아쉬는 주현이가 있었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니, 아침에 보았던 지상의, 원래대로라면 응당 보여야 하는 일상의 높이를 되찾았다는 것을 알았다.

‘아, 어쩐지. 역가이딩이었나. 신나서 주현이 오는 줄도 몰랐네.’

떨어진 나를 품에 껴안은 주현이는 아침에 입은 양복 차림을 잔뜩 흩트려 놓고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을 맺고서 나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어디를 가려고 했어? 옛날 그 반지하로? 아니면, 그 시골로?”

불안한 듯, 파란 눈 위의 눈꺼풀을 파들파들 떨면서 추궁하는 모습에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그런 건 아닌데……. 나는 고개를 저으며 내 어깨를 잡은 주현이의 손 위에 내 손을 올렸다.

“그, 런 거 아니야…….”

“네가, 나갈 수 있을 줄 알아? 내가, 너를 어떻게 찾았는데. 눈앞에서 다시 날아가는 걸 두고 볼 줄 알아?”

“아니야. 난 그냥…….”

점점 더 격해지는 그의 감정이 내겐 언제나 버거웠다. 그리고 조금 억울했다.

나를 이렇게, 어디에도 가지 못하게 만든 게 누군데, 어디를 도망 가냐고 따지나.

어차피 떠나지도 못하게 빌미를 두고 꽉 잡아두고, 나를 이렇게 가두었으면서.

“그냥…….”

울컥하는 마음과 갑작스러운 추락으로 인해 적응하지 못하는 내 몸이 어지러움을 느끼며 휘청거렸다. 그러자 그가 나를 다시 품 안에 꼭 껴안았다. 덕분에 정원 땅 바닥에 볼품없이 내팽겨 쳐지는 것은 면했지만 그 탓에 내 발이 그가 서 있는 곳을 헛디뎠다. 흙먼지가 잔뜩 묻은 맨발바닥 밑으로 그가 신은 게 분명한 매끈한 가죽구두의 감촉이 느껴졌다.

“너는 왜…….”

그는 꽤 다급했는지 구둣발로 달려와서 나를 껴안고 있었다. 내가 어디라도 갈까. 어디 날아갈까 불안을 감추지 못하면서.

“왜, 에스퍼인 거야.”

그의 불안은 기어코 터지고 말았는지 그가 내 어깨에 제 고개를 묻고서 흐느꼈다. 늘 거짓말을 뻔뻔한 낯으로 말하던 그가, 그때만큼은 진실하게 내뱉고 있었다.

“나는 왜, 가이드야?”

왜 그런지는 몰라도, 그렇게 느껴졌다. 그가 눈물에 젖은 얼굴을 올리면서 처절하게 속삭이는 그 말을 들으니,

“……주현아.”

“왜, 왜 나만 이렇게…… 불안해야 해?”

나를 향해서 어린 아이처럼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는 걸 보니 나는 억울하다는 말이, 분이 영 나오지 않았다. 내가 불안해하는 것은, 그저 나와 내 가족들의 안위였다.

그걸 빌미로 이미 각인까지 마쳤지만 20년 동안 키워 온 그의 불안은 종식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왜 나만…… 너를…….”

그 종식되지 않는 불안한 마음이 그의 울음에 섞여들어 왔다. 나는 느껴 보지 못한 그런 종류의 불안. 아무리 우리가, 서로가, 에스퍼와 가이드라는 굴레 안에 엮일 수 있는 사이라고 해도 그 사이의 간격은 너무 컸다.

나는 가이드가 없어도 상관 없는 에스퍼였지만, 그는 에스퍼가 없으면 안 되는 가이드였으니까.

그때야 나는 조금, 아주 조금 그가 흐느끼는 슬픔을, 불안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평생을 에스퍼 같지 않은 일반인으로 살아온 내게 그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흐느끼던 그는 나를 다시 그의 품으로 꼭 껴안고서 물기 젖은 목소리를 되풀이 했다.

“내 곁에 있어. 제발…….”

“…….”

각인 때문일까, 그의 불안한 심장 고동에 감화된 내 심장도 같이 급하게 뛰었다. 이제야 느끼는 것이지만 각인이라는 게, 생각보다 튼튼한 족쇄라는 거다.

“……진정해.”

보이지 않는 족쇄. 그와 나를 묶어 두는, 그런 연.

나는 말로는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품었다. 대호가 약속한 날이 오기까지는 아직 나흘이 남았다는 생각. 나는 그의 너른 등판을 껴안아 주었다.

“……진정해.”

나흘. 그 안에 나는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그의 등판을 어색하게 토닥여 주면서 그의 흐느낌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미련 없이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가족들을 버리고서라도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내 앞에서 이렇게 순식간에 무너지는 그의 모습을 보자니 마음이 조금,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 깨닫고 말았다.

낮에 박 비서가 말하기를 주현이의 삶이 이제껏, 평생을 나를 기다리며 버티던 삶이라고 해서 그런가.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듣고나니 그동안의 주현이가 했던 행동과 말들이……. 조금은 달라 보였다.

그렇지만 변하는 건 없다. 그는 나를 제 손에 두기 위해서 연기를 했고, 각인을 위해서 강제로 범했고, 이제는 동생과 엄마를 통해서 통제하고 있다. 나는 변함없는 사실들을 떠올리다가 작게 한숨을 쉬고서, 보랏빛으로 물들어 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진정해……. 나 여기 있잖아.”

“흐으, 흐윽…….”

이전 같으면 우는 연기하지 말라고 속으로 생각했을 텐데. 어색하게 위로하며 토닥거리는 내 손 아래 들썩이는 그의 등이 참 넓지만, 보이지 않는 세월의 짐을 지고 있어서 그런가 조금 외로워 보였다.

날이 까맣게 변해 가도록 그 자리에 서서 눈물을 흘리던 그는, 울음을 좀 그치고 나서 부끄러운지 내 소매를 잡은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이제 다리가 좀 저려 와서 그의 손을 잡고 복도로 향했다.

“들어가자. 바람 분다.”

“……응.”

그가 고개를 숙인 채로 순순히 끌려오는 모습을 보자니 주현이의 모습 위로 불쌍한 강아지 한 마리가 겹쳐 보였다.

‘그러면 뭐하나. 강아지가 사람 다리를 막 꺾어 들지는 않겠지.’

미친 상상이라고 스스로를 탓하면서 댓돌을 밟고 복도로 올라가자 내 맨발바닥 사이사이로 낀 흙먼지가 선연히 느껴졌다. 나는 아, 하고 발을 쳐다보면서 주현이의 구둣발로 시선을 옮기면서 손을 살살 흔들었다.

“나 발 씻고 올게. 너도…… 신발 벗고 와. 우리……. 얘기 좀 하자.”

내 말에 그가 숙이고 있던 얼굴을 들었다. 캄캄한 밤 가운데 희미하게 보이는 그의 눈가가 벌겋게 부어 있었다. 그는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에 나는 문득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건, 폭력이 아니라 불안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때나 당당하고, 힘이 넘치고, 오만하던 그가 이렇게 작은 사람이 되어 피죽도 못 얻어먹은 모습을 하고 있는 걸 보자니 보이지 않는 힘이, 그 안의 불안이 생각보다 크다는 게 명백하게 느껴졌다.

“……응.”

그러면서도 불안한지 내 발을, 특히 발목을 바라보는 모습에 이제는 내가 도리어 겁이 났다. 설마, 또 꺾어내는 거 아니지. 그건 정말로 사양이었다. 그래서 주현이와 잡았던 손을 놓기 전에 확실하게 말했다.

“나, 안 가.”

“…….”

주현이의 이색을 띠는 눈이 내 얼굴을 향했다. 나는 재차 강조했다.

“욕실 가서 발만 씻고 올 거야. 더럽잖아. 너 더러운 거 정말 싫어하잖아 그래서 그런 거야. 나 정말로 어디 안 갈게. 그러니까…….”

그렇게 보지 말았으면 했다. 나를 믿지 못하겠어서 내 몸을 찢어내고, 이렇게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 봤자 그는 불안하고, 나는 아플 뿐인 것을.

무엇보다도 박 비서의 말을 듣고 나니 내 말이 계속해서 한 꺼풀 꺾이며 나왔다.

“그러니까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

나는 그의 손을 한 번 꼭 잡아 주고 욕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통통 걸어가면서 삐걱대는 복도의 뒤에서 그의 희미한 대답이 묻혀 들어갔다.

“응…….”

나는 뽀독뽀독하고 소리가 나도록 두 발을 깔끔하게 씻어내고, 발을 닦으면서 미처 닦아내지 못한 흙먼지로 더러워진 수건을 들고 복도로 돌아갔다. 내가 온 발자국을 따라 과자 부스러기처럼 여기저기 흘려 둔 정원의 흙먼지를 닦아내었다. 그렇게 내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우리가 늘 자는 방은 문이 열려 있을 뿐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그 모습에 나는 주현이가 그새 어디 갔나, 싶어서 방 안을 흘끗 보았다가.

“……주현아. 불도 안 키고 뭐 해.”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진짜 여러모로 사람 놀래는데 참 재주가 있었다.

“…….”

주현이는 여전히 그 양복 차림을 입은 채로 내 말을 따라 구두만 벗고서 다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아무런 기척 없이 제 무릎에 고개를 묻어 두고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 내 심장이 덜컥거렸다. 진짜, 이상한 데에서 손이 가는 녀석이었다. 제 하고 싶을 대로 마음껏 사람 휘두르다가 제풀에 지쳐서 저러고 있는 게. 그렇다고…….

“……응.”

“……옷 답답할 텐데 벗어야지. 밖에 갔다 왔잖아.”

‘불쌍한 마음이 들면 안 되는데.’

나는 복도를 닦은 수건을 대충 접어서 바닥에 던지고 주현이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카펫 바닥에 저러고 청승맞은 꼴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내가 괜히 화가 났다. 불쌍한 척 하지 말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나는 주현이 옆에 대충 앉아서, 그의 재킷 등 부분을 잡았다.

“갈아입자. 벗어.”

“……옆에 있을 거지? 날아가지 않을 거지?”

그의 힘없는 푸른 눈이 나를 향하자 나는 시선을 카펫 바닥으로 향했다. 그런 내 눈에, 카펫바닥을 짚은 그의 하얀 손이 보였다.

박 비서가 낮에 말해 준, 20년 동안 성한 날 없이 피에 젖어 있었다는 그 손…….

“……그러니까 말 좀 하자니까. 내가 설명할 기회를 좀 줘.”

“……응.”

오늘 따라 유난히 순해 보이는 모습에 나는 그나마 작게 안심하며 그가 재킷을 벗는 것을 도와주었다. 아무리 이런 짓 저런 짓을 하고 각인으로 묶어 두어도 불안한 모양이었다.

나는 짐작도 가지 않을 정도의 불안.

하지만 여기서 뭐 어떻게 하란 말인가. 내 사지를 다 꺾어야 그가 안심을 하는 건가. 나는 아까 보았던, 모든 손끝이 짓무르고 그 자리에 불룩하게 새살이 돋아 있던 흔적을 떠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도망가려고 한 거…….아니야.”

재킷을 벗고 여전히 무릎을 세워서 앉은 상태 그대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그에게 결국 내 손이 다시 갔다. 아침에 엉망으로 묶어 둔 넥타이를 풀어 주려는 순간 그가 숨도 제대로 내쉬지 못하고 거센 반박을 내 앞에서 쏟아내었다.

“그러면 왜 힘을 썼어? 왜 공중에 날아갔어? 정원 옆에 있는 담을 넘어서 가려고 그런 거지?”

나는 순간 매듭을 풀어내던 넥타이를 도로 죽 당겨서 제 생각만 쏟아내는 목울대를 졸라 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참자…….’

불안에 겨운 애를 자극해서 일을 더 키울 필요는 없었다. 내 사지는 소중했다. 나는 남색 넥타이의 매듭을 이렇게 저렇게 툴툴 풀어내면서 설명했다.

‘나 진짜 넥타이 못 맨다. 이런 걸 또 좋다고 매고 회사에 가 버린 애도…….’

“나도, 너랑 떨어지고 나서 가이딩을 받아 본 적이 없어. 20년 동안.”

“……그래서.”

‘너도 참 너다. 이런 넥타이를 매고 회사에 가고.’

주현이로부터 아까보다는 한풀 꺾인 반박이 돌아왔다. 이럴 때 보면 참 영락없는 애다, 애. 나는 주현이의 목에 칭칭 얽혀 있던 넥타이를 풀어서 벗겨 둔 재킷 위에 잘 접어 올려 두고 꼭 다물려 있는 셔츠의 목 부분 단추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궁금했어. 예전에, 어렸을 때는 네가 늘…… 가이딩 해 줬잖아.”

“……응.”

“기억나? 우리 밤하늘 예전에 봤던 거. 별이 막, 엄청 많아서…….”

엄마 때문에 상처받고 슬펐던 나를 기분 좋게 해 주겠다며 주현이가 제 힘을 통해서 내게 보여 주었던 밤하늘. 어린 우리 둘이서 손을 마주잡고, 공중으로 한없이, 끝없이 올라가면서 보았던 그 보석 같은 광경. 나는 그의 셔츠 소매 구멍에 끼워져 있는 쇠단추를 만지작거렸다.

‘이건 뭐지, 단추가 아닌데. 어떻게 푸는 걸까.’

“그때의 기분을 다시 한 번 느껴 보고 싶었어.”

“…….”

“네가 주었던 그 기분.”

처음 보는 단추를 서툰 손으로 이렇게 저렇게 만지작거리자, 뭐를 잘못 건드렸는지 쇠단추 끝에 걸린 이음새 같은 게 돌아가면서 카펫 바닥에 툭, 떨어졌다.

‘아, 이렇게 푸는 거구나. 신기하네.’

그 쇠단추를 주우며 일어서자, 내 시야에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그 쇠단추로 단정하게 고정된 셔츠 소매가 쓱, 들어왔다. 내가 그가 내민 소매를 보다가 그와 눈을 맞추자, 죽상이던 얼굴은 어디가고 안심한 듯 미미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 있었다. 또 웃고 있으니 괜히 얄미웠다. 위로 같은 거 해 주지 말걸. 기분 꿀꿀하게 내버려둘 것을.

‘그렇지만 괜히 기분이 좋지 않아서 내 사지 꺾이는 것보단 낫지. 그렇지…….’

분명 소매를 풀어 달라는 몸짓이었지만 그보다, 소매 끝에 나온 그의 손이 내 눈에 더 깊게 박혔다. 박 비서가 괜한 소리를 했다. 귀를 막고 듣지 말았어야 하는데. 왜 들었을까. 이제는 박 비서도 싫어질 판이었다. 왜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해서 괜히 신경 쓰이게 만드나.

나는 손에 쇠단추를 쥔 채로 그 손을 가만히 보다가, 결국 마주잡았다. 커다란 손이 내 행동은 예측하지 못했는지 살짝 떨렸다.

그래, 사실 나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손이 신경 쓰이고, 잡고 싶을 줄은.

그래도……. 그를 괴롭히는 불안함은 좀 덜어 주고 싶었다. 파란 눈이, 저 부드러운 손의 상처가 조금은 덜 아팠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디 가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한 번, 날아 보고 싶었어.”

언제나 감당하기 어려운 뜨거운 감정을 가진 주현이의 마음과 달리 내 손이 쥐고 있는 이 커다란 손은 차갑기만 했다.

‘커서도 손은 여전히 차가운 게 참…….’

“그러니까 그렇게…… 불안해하지 마.”

이런 점은 여전하고 변함이 없다. 나는 잘 다듬어진 손톱의 밑에 미묘하게 울룩불룩하게 솟은 새살의 흔적을 만지며 내가 함께하지 못한 세월의 흔적을 짚어 내렸다. 등불 하나 없이 까만 방 안에서도 그 손은 유난히 희게 보였다. 이 하얀 손이 붉은 피로 젖어 들었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흠이 없었다.

20년 동안 없어진 나를 찾으면서, ‘가이드의 보호’가 만들어낸 반동을 그동안 겪었다는 말이, 가시처럼 내 머리에 박혀들었다. 가만히, 내 손이 어루만지는 것을 받던 그의 손이 도리어 내 손을 살살 만졌다.

“왜, 전화…… 안 받았어.”

“……전화?”

‘이 집에 전화가 어디 있던가?’

“계속, 전화 했는데.”

처음 듣는 소리에, 나는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가 턱짓으로 현관 쪽을 가리켰다.

“미안, 정원에 계속 나가 있어서 못 들었다.”

“각인이, 계속 알려 줬어. 가하 네가, 능력을 쓰는 걸…….”

“아 그랬구나…….”

내가 현관의 그 낡은 전화기를 떠올리며 그의 손을 살짝 쥐었다. 그와 나 사이에 이어진 각인이 능력을 쓰고 있다고 알려 주지, 전화는 안 받지. 내가 대충 상상해도 불안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내가 머쓱하게 변명했다.

“나는……. 누가 나 지켜보고 있을 것 같아서. 네가 이미 알고 있겠지 싶었는데. 네가 나 날아다니는 게 싫으면 나한테 내려오라고 말하겠지 싶어서…….”

“……아무도 못 건드려. 내가, 말했어.”

주현이가 나와 맞잡은 손을 꼭 쥐고, 부드럽게 끌어당겨서 내 손등에 입을 맞췄다. 부드러운 입술은 그의 손의 온도와 다르게 뜨거웠다. 이럴 때는 또, 내가 따라잡을 수 없는 다 큰 어른 같아서 민망함에 손을 내리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순순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의 입술에 여전히 손등을 둔 채로 그에게 반문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무슨 소리야?”

“저번에, 조아현이 너 때리는 게 짜증나서. 집안사람들 아무도 너한테 터치 하지 말라고 했어. 여기 오지도 말고.”

“…….”

“이 집에서 너한테 명령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굳게 말하는 말에 나는 입이 다물렸다.

‘엄마의 일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건가.’

그래 봤자 주현이 너는 이래라 저래라 하잖아. 방금 전처럼, 옆에서 떠나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나는 그 말에 심술이 돋아서 픽 웃었다.

“그러는 너는 이래라 저래라 하잖아.”

내 말에 주현이의 힘없는 눈이 살짝 크게 뜨였다가 이윽고 호선을 그렸다.

“그러네. 나만 빼고.”

“……뭐야. 말이 안 맞아. 불공평해.”

나는 잡은 손을 빼려고 팔을 비틀었고, 그는 도로 잡고, 오히려 손가락 사이로 깍지를 끼웠다. 그 행동에 다시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내 손등에 입을 대고 있는 그가 먼저 우물대었다.

“……가하, 날고 싶으면……. 지금 우리 같이.”

“…….”

“같이 밤하늘 볼까.”

부드러운 살결이 내 손등 위로 살짝 떨렸다. 나는 다른 손에 쥐고 있는 쇠단추를 굴리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너도 너지만, 나도 나다.’

내 한숨 소리에 그의 너른 어깨가 들썩였다. 나는 몸을 일으켜서 같이 따라 올라오는 그의 팔을 슬슬 흔들었다. 그의 시선도 나를 향해 자연히 올라왔다.

“뭐해, 얼른 보고 자자. 너 내일도 회사 갈 거잖아.”

내 말에 그의 붉은 입술이 한가득 미소를 지었다.

“……응.”

그날 밤, 우리는 낮 동안 내가 앉아 있었던 굵은 나뭇가지에 같이 앉아서 밤하늘을 구경했다. 대화 하나 없이 그저 별의 개수와 별자리를 보는 것에 푹 빠져서 밤하늘의 색깔이 옅어지고 몸이 달달 떨리도록 바깥에 있었다. 그러고 있는 게 그냥, 나쁘지 않아서 서로 들어가자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둘이 잡고 있는 손을 놓지 않고서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 집에 온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아주 조금은 기분이 좋았고 늘 그리워하던 예전으로 비로소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돌아갈 수 없는, 그 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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