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적산가옥(敵産家屋) (2)
식탁이 있는 방에 돌아가는 길에 대호는 쫓아오지 않았다. 나는 화장실에서 나오며 이어진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만약 돌아보았다가, 혹시라도 대호가 그 자리에 서 있다면 나는 그 식탁에 있는 방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만 같았다.
마음에 콕 박힌 그 단어가, 내 발목을 그 화장실 바닥에 붙들고 놓아주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대호가 자신의 능력을 통해서 말해 준 말 한마디는 각별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주현이와 대호가 말하는 단어는 같은데 어떻게…….
“좀 괜찮아, 속?”
식탁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주현이가 의자에서 일어서서 내게 다가왔다. 잔뜩 걱정이 서린 얼굴이 나를 보다가, 순식간에 미묘하게 변해 갔다. 가연이가 앉아 있는 나를 보고 걱정스레 덧붙였다.
“오빠, 몸 많이 안 좋아? 얼굴이 빨개. 열나나 봐.”
“어…… 응. 좀, 안 좋네.”
나는 얼굴이 빨개진 것도 모르고 뺨을 손으로 더듬더듬 만졌다. 마른 손 위로 뜨뜻한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가슴속에, 머릿속에 나 말고는 그 누구도 모를, 단어 하나가 피어올린 열기였다. 내 반응에 주현이 아버지와, 엄마가 부추겼다.
“안 좋으면, 가서 좀 쉬어라.”
“괜히 자리 지키다가 또 몸 상하면…….”
“그래, 주현아. 가하 씨 데리고 가서 좀 쉬어라. 잘 챙기고. 같이, 옆에 있을 때 잘 해야지.”
“……예.”
주현이는 아버지에게 고개도 돌리지 않고 나를 가만히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식사 자리를 떠나는 것에 대해 고개를 살짝 숙이고 도로 방에서 나가기 위해 일어서는 나를 붙잡은 주현이가 문득 가연이를 불렀다.
“아, 그런데……. 가연 누나.”
“응?”
주현이가 가연이를 향해 살짝 몸을 비틀었다.
“대호랑, 잘해 봐. 둘이, 아주 잘 어울리는 거 같아.”
그 말에 나는 심장이 한 번, 쿵 떨어지는 환청을 들었다. 주현이의 말에 가연이가 밥을 뜨다 말고 다시 내려 두었다.
“어? 어…… 고, 고마워.”
“그나저나, 대호. 아직도 있었나 봐.”
그는 다시 내게 몸을 돌리며 붉은 입술의 끝을 살짝 휘었다.
“냄새가……. 풀풀 풍기네.”
그 파란 눈이 내 얼굴을 씹어 먹을 듯이 바라보다가 이윽고 입술에 멈췄다. 마치,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는 것처럼 시선을 꽂는 주현이의 행동에 나는 시선을 피했다. 그런 나를 구해 주는 것은 주현이 아버지의 말이었다.
“내가 붙잡았다.우리 가연이, 나가려면 이것저것 준비해 줘야 할 게 많으니까. 그리고 과는 달라도 황 변호사가 가연이 대학교 선배 아니냐. 너 오기 전까지 계속 좀 챙겨 주라고 붙잡았다. 좋은 녀석이니 이참에 인연 맺어도 좋지.”
“아유, 당신도 참. 가연이 아직 졸업도 안 했는데.”
“원래, 이런 건 빠르게 해도 괜찮아. 나이 채워서 하면 이미 가고 없어.”
엄마의 간드러지는 목소리에 주현이 아버지가 헛기침을 했다. 다분히, 이어 주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생각했던 것처럼 마음이 기쁘지 않았다. 아니, 사실 동생에게 그런 사람이 있기를 바라긴 했지만 막상 그런 분위기가 펼쳐지니 이상하게 마음이, 내키지가 않았다.
‘동생, 을 아직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가 않아서 그럴까. 아니면…….’
나는 다시 머릿속에 울리는 그 작은 단어를 마음에 담은 채로 셔츠 목 부근의 버튼을 살며시 쥐었다. 식탁에 앉아 있는 가연이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말했다.
“아, 아니에요. 황 변호사님은 좋은 분이시고…… 무척, 잘생겨서 이미…….”
“아냐, 누나.”
가연이의 부끄러운 말을 싹둑 잘라 버린 것은 주현이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잡은 팔에 꾹, 힘을 주었다.
“내가 들었는데, 대호 아직 혼자래. 그러니까…… 이참에 잘해 봐.”
“……진짜?”
주현이는 나를 잡고서 방문을 열었다. 구겨진 셔츠 위로 뜨거운 열기가 모이고 있었다. 가이딩이었다. 나는 그 행동에 내내 피하고 있던 시선을 올렸다. 그러자 파란 눈이 자비 한 점 없이 나를 꿰뚫고 있었다.
“응.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는데……. 누나가 딱, 대호가 좋아하던 사람, 무척 닮았거든.”
평소 같았더라면, 나는 그 말에 숨겨진 이면을 몰랐을 것이다. 그렇구나,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주현이는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구나. 대호가, 나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어.’
주현이의 모호한 말은 내가 간직하고 있는 비밀을 아는 듯, 마는 듯 보여서 내 입을 더 꾹 다물게 했다. 조금이라도, 입을 열었다가는 내가 간직한 비밀을 순식간에 뺏어 갈 것만 같았다.
내 주위를 빙빙 돌아가면서, 터뜨려 버릴 듯이, 조금씩 조금씩 죄어 오다가…….
내가, 대호에게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실토하게 만들 것만 같았다. 그는 말이 없는 나를 잡고 끌어 올리며 식탁에 앉아 있는 가족들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탁,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주현이가 가만히 내 손을 잡고 저택을 나섰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소중하게 안아 올려서 가지 않았다. 덕분에 맨발로 정원석을 밟을 때마다 까끌한 먼지가 발바닥에 달라붙었다. 그 태도의 차이가 주현이의 심기를 짐작케 했다.
“…….”
“……가하.”
우리 둘 사이의 침묵을 주현이가 먼저 깼다. 나는 여전히 시려 오는 맨발을 보면서 대답했다. 내가 서 있는 정원석 사이로 까만 개미의 가느다란 줄이 이어져 있었다. 내가 밟으면 다 터뜨려질 그런 연약한 생물의 행렬.
“……응.”
왠지 그게 나 같았다.
“……내게, 할 말 없어?”
차분하게 말하는 게, 더 무서울 수도 있었구나. 차라리, 나를 때리고 두들겨 패는 게 더 마음이 편하겠다 싶었다.
아마 마음이라는 게 생각하는 대로 숨길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저 이 살얼음 같은 상황에서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주현이가, 대호를 무척 싫어하는 것. 왜냐하면.
“……없어.”
대호가, 나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래?”
그리고, 주현이는 나를 좋아하니까.
정원에 세워진 등불의 빛을 하얗게 부시도록 받은 채로, 그가 내 목에 꼭꼭 잠겨 있는 셔츠 카라의 버튼을 하나씩 툭툭 풀어 내렸다. 아니, 뜯어 내렸다. 크림색의 단추들이 그의 손길을 타고 후두둑 떨어졌다.
“……너! 왜 그래, 또!”
갑작스러운 그 행동에 내가 벌어지는 셔츠 깃을 잡고 뒷걸음질 치다가, 그가 붙잡고 있는 손에 어디 멀리 가지도 못하고 다시 발을 멈췄다. 내내 웃고 있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온도의 얼굴이었다.
“왜 그러냐고? 우리 여보야 입술에서 그 새끼 냄새가 풀풀 날까? 내가, 모르는 게 있나 본데.”
무슨 바람난 부인 추궁하듯이 유난하게 구는 것을 두고 나는 목깃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몰라.”
“……몰라? 그럼 여기서 한 번 알아 봐?”
그는 나를 붙잡고 있는 손으로 내가 입고 있는 제 셔츠의 소매 단추를 툭툭 풀어 내렸다. 그가 등지고 서 있는 저택의 1층은 아까 우리가 들어가기 전과 다를 바 없이 단란한 가족들이 식탁에 화기애애하게 앉아 있었다. 지금은 우리가 서 있는 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알아차린다면 우리가 무슨 짓을 하는지 환히 보일, 그런 위치였다. 그런데 지금 무슨……. 저가 내게 꼭꼭 챙겨 입힌 옷을 미친놈처럼 풀어헤치는 모습에 내가 질겁해서 주현이의 손을 잡았다.
“왜 그래! 여기서, 이러지 말고…….”
“왜? 여기 내 집인데. 우리 여보 집이기도 하고.”
나는 그 대답에 식탁이 있는 뒤편을 보면서 간절하게 애원했다. 적어도, 할 거라면 장소라도 좀 달리하고 싶었다. 가족들 앞에서.
“우리, 우리 집에서 하자. 저 쪽 집에서, 응?”
이런 미친 꼴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은 둘째 치고 동생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였다. 에스퍼와 가이드가 낭만적인 연결로 이어져 있는 줄로만 아는, 그런 평범한 애. 이렇게 복잡하고 더럽게 얽힌 것이 아니라, TV에서 보는 그런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로만 안다. 그리고 주현이는 한다면 하는 미친놈이었다. 요 며칠 동안 그를 상대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나는 다시 간절하게 바라보았다.
“나, 아까 전부터……. 하고 싶었어.”
“…….”
“……여보.”
머리 하나는 더 큰 주현이가 가만히 나를 보는 것을 두고 나는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키고서 그의 품 안에 순순히 안겼다.
“부탁이야……. 더, 사랑해 줘……. 가이딩, 해 줘.”
눈을 감고서 나는 그렇게 읊조렸다. 평소처럼 안아 줄 것 만 같은 팔이 미동이 없다가, 이윽고 나를 꽉 안았다.
“……하. 짜증나네.”
별 웃기지도 않는 것을 말한다는 듯이, 주현이가 내 머리 위에 자기 턱을 툭, 얹었다.
“다 보이는데…….”
큭큭, 웃으면서 몸을 떠는 진동이 내게 전해질수록, 내 마음도 덩달아 떨렸다. 워낙에 변덕스럽고 예측이 불가한 녀석이었다.
“막상, 들으면 또 속아 주고 싶단 말이야.”
그가 웃던 것을 멈추고는 작게 숨을 들이켰다. 혹시 먹히지 않은 건가, 싶은 순간에 그가 나를 번쩍 안아 올려서 제 어깨에다 들쳐 멨다. 거침없는 그 몸짓에 나는 드디어 안심이 되었다. 물론 다가올 시간은 그다지 안락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우리에게 박 비서가 달려왔다.
“도련님.”
“황대호, 언제 갔지.”
“방금, 가연 아가씨 입적 서류 정리하시고 가셨습니다.”
그 대답에, 기울어져서 피가 쏠리는 내 머리 위로 두근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그래?”
“가하, 화장실 갈 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박 비서는 처음으로 머뭇거리는 말투로 대답을 하다가 이내 깔끔하게 대답했다.
“아, 아까 가시기 전, 가하 도련님 방에 들어가실 때 딱 마주치셔서 반갑게 인사하시고 가셨습니다.”
대호가 걸었던 초능력이 정말 먹힌 것인지, 박 비서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대답했다. 그 말에 나는 작게, 안도했다.
“……다음부턴, 일정 잘 맞춰서 부르도록 해. 그리고, 다른 변호사 알아 봐. 거슬리니까.”
“알겠습니다. 오늘은 회장님 지시로 겹친 것 같습니다. 앞으로 그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박 비서는 왜 그러냐는 말없이 그저 대답했고, 주현이는 들쳐 멘 내 엉덩이를 토닥였다.
“미안해. 내가 여보 마음도 모르고…….”
“…….”
“난 또. 그 새끼랑 어디 붙어먹은 줄 오해했잖아. 내가 나빴네.”
가볍게 웃으면서 발걸음을 움직이는 것을 두고 나는 같이 웃지 못했다. 잔뜩 긴장했던 몸에 힘을 빼면서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럴 리가…….”
그는 나를 들쳐 멘 채로 별채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그나저나. 아까도 느꼈지만. 나쁘지 않네.”
“…….”
“먼저, 조르는 거.”
그는 높은 키와 덩달아 긴 다리를 가진 덕분에 한달음에 별채로 돌아왔다. 아무도 없는 가옥에 들어오자마자 그는 안달을 내며 방문을 쾅, 밀었다. 또 언제 치웠는지 시트가 곱게 각 잡혀 있는 침대 위로 들쳐 메고 있던 나를 툭, 던졌다. 기분이 잠시 좋아졌다고 해서 행동도 좋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텅, 하고 반동하는 침대 위에서 애써 일어나자 그가 입고 있던 바지의 버클을 툭, 툭 풀면서 말했다.
“좋긴 한데. 입술에서 그 새끼 냄새가 나서 싫어.”
“…….”
그러면 그렇지. 툭, 하고 튀어나온 성기를 꼿꼿하게 세운 것과는 반대되는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런 내게 주현이가 내 앞으로 와서 내 머리통을 움켜쥐었다. 눈앞에, 아까 식사 전까지 질리게 보았던 양물이 확 다가왔다. 움찔거리는 성기가 내 콧등 위에 투명한 액을 슬쩍슬쩍 묻히는 게, 명백한 목적을 보이고 있었다. 어디 무시하거나, 피하지도 못하도록 선명하게. 애써 그 광경을 견디어 내는 내 머리 위로 이죽대는 말이 떨어졌다.
“빨아.”
“…….”
내가 하자고 했지만 정작 성기를 코앞에 두고 있자니 영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생리적인 거부감이 일으키는 거북함에 나는, 도대체 주현이가 어떻게 아까……. 나에게 해 준 것인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워낙에 미친놈이라서, 그런가…….’
주저하고 있는 내게 그가 살짝 허릿짓을 하며 커다란 좆을 내 얼굴에 비볐다. 단단하게 발기한 채로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성기가 내 뺨과 눈에 문질러지는 게 기분이…… 이상했다. 그는 내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로 즐겁게 말했다.
“이번에는, 여보가 하자고 했잖아……. 근데 왜 가만히 있어? 마음이 바뀌었어? 나가서, 할까?”
무언의 협박이 도사린 말에 나는 결국 그의 성기를 손에 쥐었다. 도드라진 핏줄이 손바닥에 감기면서 유독 뜨끈한 체온을 전달했다. 손 안에 다 잡히지도 않는 두께에 나는, 도대체 어떻게 이게 그간 내 아래에 들어갔나 싶으면서도 아프게 찢어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이게 입 안에는 다 들어갈 수는 있을까 싶기도 했다.
“……처음…… 하는 거라서…… 그래. 익숙하지가 않아서…….”
나는 결국 내키지 않은 마음을 접어두고, 그의 선단을 입술로 살짝 물었다. 그제야 그는 흡족한 신음을 뱉었다.
“하아…….”
차라리, 여기서 하는 게 낫지. 이러다가 또 미쳐 가지고 나와 제 가족들 앞에서 하는 것보단 낫지 않겠나. 입에 물자마자 요도 사이로 투명한 액이 내뿜는 특유의 비릿한 맛이 혀 안쪽으로 퍼졌다. 그게 싫어서 입 안을 가득 채우는 성기를 가만히 물고만 있자, 주현이가 킥킥 웃었다.
“뭐해. 계속 물고만 있을 거야? 개도 아니고.”
“…….”
어떻게 한담. 나는 아까 주현이가 해 줬던 것을 따라해 보려고, 고개를 살짝, 살짝 흔들었다. 커다란 부피감에 그새 벌려진 턱이 빠질 것처럼 살짝 저렸다. 그런 내 머리를 주현이가 살살 쓰다듬었다. 그게, 대호가 내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던 손길에 겹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버겁게 입안을 채우는 성기가 조금은, 아주 조금은 나쁘지 않았다. 아마, 미친놈 옆에 있다 보니 미친 것도 옮아가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아까 대호가 그런 말을, 해서……. 그런 걸까. 나는 눈을 감고서, 혼자 그렇게 생각했다.
‘이게 주현이가, 아니라, 대호였다면…….’
그런 내게 주현이가 다정하게 속삭였다.
“혀로, 핥아.”
“…….”
눈을 여전히 감은 나는 그의 말을 따라서, 그의 기둥 주위를, 비린 내음을 계속 울컥 뿜어대는 선단 주위를 핥았고, 고인 침이 넘치는 입술 주위로 쿨쩍 쿨쩍대는 소리가 울려왔다.
“잘하네. 자기는 뒷입처럼 목구멍도 좁아.”
그가 푸흐흐, 웃으면서 셔츠 버튼이 풀려서 드러난 내 뒷목을 쓸어내렸다. 딱지가 난 그 상처 부근을 더듬는 손길에 나는 계속 생각했다.
‘대호가, 대호라면…….’
내 귀와 목 뒤를, 그 큰 손이 붙잡고, 허리를 들썩거리면서 내 입안을 뒤흔들었다. 나는, 계속 그 생각을 하며 주현이의 단단한 허벅지를 붙잡고 눈을 감은 채로 입천장을 넘어서 목구멍을 향하는 성기를 혀로 핥았다. 그게 감질이 나는지, 주현이가 허리를 숨을 거칠게 들이쉬면서 내 뺨을 두 손을 쥐었다.
“하아……. 입, 크게 벌려. 혀 내밀고.”
그가 말한 대로 혀를 내밀자, 주루룩 침이 흐르고 너른 혀 위로 선단의 여린 살결이 슥, 슥 후비듯이 문질러졌다. 혀끝을 타고 오르는 씁쓸한 맛이 더 진해졌다. 그는 그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올려다보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 씩 웃었다.
“귀여워.”
그는 뒤로 물렸던 허리를 푹, 내 목구멍 저 너머로 박았다. 편도 쪽을 건드리며 토기를 일으킬 것 같은 욕지기에도 그는 빠르게 허리를 움직였다. 얼굴을 찡그리고 컥컥대는 모습에도 그는 달뜬 숨을 뱉을 뿐,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넌 너무 생각이 많아.”
“……큭, 컥…….”
“그래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끔 모르겠단 말이야.”
숨이 막혀서 이러다 죽겠다 싶을 정도에, 그의 성기가 목구멍 너머로 꽂히며 파들파들 떨렸다.
“생각은 막지 않지만, 내 앞에서 들키지 마.”
식도에 잔뜩 쏘아지는 정액의 흐름에 나는 생리적인 고통이 자아내는 눈물을 줄줄 흘릴 뿐이었다. 그런 내 입에서 성기를 꺼낸 주현이가 땀에 살짝 젖은 제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명령했다.
“삼켜.”
“…….”
성기가 나가면서 입안에 흘린 것을 뱉으려던 내 노력은 그 말 한마디에 삼켜졌다.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면서 입에 묻은 비린내를 얼른 없애 보려고 침을 연신 꼴딱꼴딱 삼키고 있는 와중에, 주현이가 주저앉은 내게 다리를 구부리고 내 뺨을 손가락으로 툭툭 찔렀다.
“근데 좀 기쁘다. 펠라 하면서 세우고.”
“…….”
“앞으로 자주 시켜 줘야겠네.”
그 말에 내 아래를 보니, 부풀린 채로 짙은 색으로 적셔 가는 바지의 앞섬이 보였다.
‘아까 아랫배가 뻐근하게 뭉쳐 들어가던 게…… 이런 거였나.’
내가 그걸 보고 있는 와중에 명치까지 풀린 셔츠의 버튼을 마저 뜯어대는 손이 있었다. 셔츠가 활짝 벌려지자마자 그의 손이 가슴팍으로 쑥 들어가며 유두와 갈비뼈 쪽을 만지작거렸다.
“아윽, 아, 아파.”
안 그래도 잇자국으로 상처가 난 자국이 가득이라 살짝 스치기만 해도 제법 욱신대는 통증이 느껴졌다. 그걸 막으려는 내 손을 꼼짝도 할 수 없게 잡고서 내 가슴팍을 계속 만지작거리는 집요한 손길에 내가 어깨를 떨었다.
“흣, 하. 하지, 으응…….”
“여기도 잔뜩 세우고. 길들이는 보람이 있어. 안 그래?”
늘 하던 대로 한참을 만지작거릴 것 같던 주현이의 손이 멀어지며 침대 위에 손바닥을 받친 채로 상체를 기울였다. 답지 않은 모습에 내가 그를 바라보자 그가 내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해 봐.”
“……뭐를.”
“자기가 먼저 하자고 했으니까, 혼자 해 봐. 나 보고 싶어. 자기가 혼자 느끼는 거.”
“…….”
그 뜨거운 시선은 잔뜩 풀어헤쳐져서 활짝 드러난 내 가슴팍과 흥분으로 세워진 앞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내 몸을 바라보며 덜덜 떨리는 손을 가슴팍에 갖다 대었다. 그 모습에 그가 응. 거기, 하고 기쁘게 혼잣말을 했다.
“흐, 흐읏, 으응…… 아, 으.”
내가 서툴게 유두 주위를 주무르자 그가 관객이 된 것 마냥 주문했다.
“아니, 좀 더 모아 봐. 응. 그렇게. 꼬집어 봐.”
“하아, 하으, 으응…….”
“손가락에 침 묻혀서……. 응. 비벼.”
내가 비벼대는 손가락에 묻은 침으로 젖어서 바짝 선 유두와 함께 가슴팍이 흥분에 겨워 급하게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할 때쯤, 그가 칭찬했다.
“잘하네. 젖 자위.”
“흐으…….”
“발랑 까졌어.”
아랫배에 뭉친 기분이 이제는 딱딱하게 굳으며 고통으로 변해 갈 때 즈음,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래도 해 봐.”
“……흐.”
고통스러웠던 하체의 성기를 꺼내자, 이미 요도 쪽에서 하얀 정액에 가까운 액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해 봐.”
주현이가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주친 눈에 깃들은 열기와 혼자서 만들어내는 쾌감에 길들여진 몸은 순순히 그 말을 따랐다. 오른손에 성기를 움켜쥐고 아래위로 비볐다. 이미 성기를 적신 액이 손에 차오르며 처덕처덕한 느낌과 함께 예민한 피부 위를 한층 흥분시켰다.
“하아, 하아…….”
그런 내 꼴을 주현이는 웃음을 머금고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닿을 때마다 내 피부가 따갑게 반응했다. 그 파란 시선이 닿으면 닿을수록, 내 성기도 같이 반응했다. 내 손이 빨라지는 것을 두고도 그는 시선을 고정해 두고 움직이지 않았다. 내 앞에서 가만히 기울여진 팔에 기대어 있는 주현이를 보면서 나는, 피할 수 없는 시선의 가시를 쾌감으로 녹여 들어갔다. 만지지도 않은 비부가 내 숨에 따라 연신 발씬거리며 조여 드는 감각이 느껴졌다. 마치, 허전하다는 듯이, 무언가를 바라는 것처럼.
“아으, 아응, 하아으…….”
그럴수록 나는 대호가 아니라……. 눈앞에 있는 주현이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도망갈 수 없이 나를 옭아매는 시선의 그물에서 나는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 같은 성기를 흔들었다. 착착착 하고 비벼지는 소리와 함께, 손 안에 들은 성기가 절정으로 가는지 손 안에서 꿈틀거렸다. 손에 흐르는 하얀 정액처럼 눈앞이 잠시 반짝일 때, 주현이의 목소리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걸로, 밑에 적셔.”
“하읏, 흐…….”
결국, 끝까지 할 셈이었다. 주현이가 제 성기를 빳빳하게 세운 것을 확인한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정액에 푹 젖은 손가락이 손쉽게 파고든 비부는, 방금 전의 사정 때문인지 평소보다 조금, 더 눅진눅진하게 풀려 있었다. 손가락 하나를 넣고 있는 나를 향해서 주현이가 미소 지으며 행복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잘, 늘려 봐. 그러다가 또 찢어 먹으면 기분만 나쁘잖아.”
“흐, 으…….”
나는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찔거렸고, 그 모습에 주현이가 아까 유두를 건드릴 때처럼 하나하나 짚어 주기 시작했다.
“하나 더 넣어. 천천히 쑤셔. 응. 그렇게. 손가락 벌려서 늘려 봐.”
“아으, 아읏…….”
“어때.”
그 말에 따라갈수록 풀리는 내벽이 손가락을 따라 움직이면서, 풀리고, 조이고를 반복했다. 신음이 잇새로 새어나오고 있는 내게 주현이가 말했다.
“잘 안 보이네. 뒤돌아서 보여 줘.”
부끄럽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하는 그와, 그것을 따라하는 나에게서 보이지 않는 끈이 서로를 매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누가 그 끈을 쥐고 있는지는 명백했다. 그러면서도 차라리 뒤를 돌아 있는 게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흐으읏…….”
“계속해.”
그러면, 내 시선을 그에게서 피할 수 있으니까. 내가 몸을 질질 끌어서 뒤를 보이자 그가 작게 웃었다. 축축한 액으로 젖은 비부의 입구 사이로 손가락이 들락날락거릴 때마다, 나는 성기에 전해지는 쾌감이 수치스럽게 느껴져서 달뜬 숨을 뱉는 고개를 베개 쪽에 묻었다.
“하, 하으, 아…….”
“이만 하면 됐어. 손가락 꺼내 봐.”
머리에 퍼진 열이 얼마나 나를 잡아먹었을까. 내가 쑤시고 있는 비부 사이로 다정한 목소리가 내렸다. 내가 그에 말에 따라 젖은 손가락을 꺼내자 그의 숨결이 비부 사이로 후후, 불어왔다.
“자기도 봐야하는데. 손가락 나갔다고 이렇게 뻐끔대면서 찾는 거……. 귀여워.”
그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축축하고 말랑한 것이 내 입구를 핥았다.
“아, 아아, 하, 하지…….아.”
침을 묻히는지 연신 쩝쩝대는 소리는 혓바닥이 분명했다. 하다하다 못해 그런 곳 까지 맛을 보는 주현이의 행태에 나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하지만 그 상황을 배반하듯이, 기분이 너무 좋았다. 좋아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이딩이, 그와 하는 난폭한 섹스가 나를 저 밑바닥까지 끌어내렸다. 그는 혓바닥으로 입구를 넓게 핥다가, 뾰족하게 만들어서 주름 사이사이를 간질하게 훑었다. 그러자 입안에서 나오지 못한 내 신음이 뭉개어져 들어갔다.
“으으, 응, 으응.”
그가 혀를 가지고 내 아래를 풀어 내릴 때마다, 비부의 틈이 받아들이지 못한 침이 정액마냥 허벅지를 타고 시트 위로 뚝, 뚝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한창 혀로 내벽 안쪽을 찌르던 그가 말했다.
“쩝. 좋은가 봐. 질질 싸는 거 보니까.”
그의 말을 듣고 하체를 보니, 발딱 서 있는 내 성기가 시트 위를 잔뜩 적셔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몸의 안쪽은 자극을 주던 무언가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그가 말한 것처럼, 몸은 너무나도 정직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길들여졌나, 정말.’
그 절정이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나는 모를 수가 없었다. 가이딩, 내 목을 칭칭 둘러싼 그 붉은 목줄. 그가 내 둔부와 허리를 손으로 쓸어내리다가, 뒤에서 몸을 기댔다. 땀이 배어 미끌미끌한 피부 가운데 그의 뜨거운 몸이 나를 꾹 눌러 내렸다. 그리고 갈라진 둔부 사이로 딱딱하게 굳어진 그의 성기가 비벼졌다. 나는 곧 들어올 아픔을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긴장하고 있는 내 귓가에 즐거운 웃음소리가 퍼졌다.
“어떻게 해 줘?”
“…….”
“말해 봐.”
입을 막고 있는 내 손 틈 사이로 나의 뜨거운 입김이 잔뜩 불어졌다. 그는 내 엉덩이 사이에 끼여 있는 성기를 은근히 움직이면서 나를 채근했다. 땀이 맺혀 들어가는 관자놀이에 내리는 그의 붉은 입술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나는 단 하나의 목적을 생각하며 그에게 있는 힘껏 말을 건넸다.
“……넣어 줘, 여보.”
그렇게라도, 내가 간직한 소중한 말을 그에게서 가리고,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내 대답에 그가 진하게 웃었다.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눈이 즐거웠으니까.”
그 말과 함께, 잠시 풀어졌던 구멍 사이로 푹, 하고 무게감이 남다른 성기가 꽂혀 들어왔다. 그에 나는 더이상 참을 수 없는 숨을 터뜨렸다. 동시에 잔뜩 풀려있던 배 안쪽이 경련했다.
“아윽!”
“하아……. 하”
주현이는 평소보다 숨을 더 낮게 쉬면서 울었다.
“그새, 몇 번 했다고……. 좆 반기는 거 봐…….”
그가 푸흐흐, 웃으면서 내 귀를 깨물고, 허릿짓을 빠르게 했다. 그 거대한 몸이 나를 침대 위에 꼼짝 없이 누르고 팔로 나를 껴안고 뒤에서 쳐올릴 때마다, 차마 막을 수 없는 신음이 툭툭 터져 나왔다.
“아흐, 으응, 아읏…….”
밀어대는 그 허리와 성기를 온몸으로 가감 없이 받으면서 배 안쪽이 그의 말마따나 팽창과 수축을 반복했다. 그 돌이킬 수 없는 쾌감에 내가 고개를 쳐들지 못하고 눕히는 순간.
“하……. 이런 너를, 내가.”
나를 수치스럽게 만들고, 범하고, 더러운 소리를 귓가에 내뱉는 것도 참을 만은 했다.
이건 누구도 모르는 나와 주현이 사이의…… 일이니까.
그렇지만. 급하게 들어오느라 평소보다 크게 열려 있는 문이 보여 주는 복도 바닥 위로, 길게 늘어선 그림자가 내 눈에 띄어서 나는, 입을 막았다.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있었다.
“어떻게. 내버려, 두겠어.”
“흡, 흐,읍…….”
그게 주현이의 신경을 건드렸는지, 그는 갑자기 허리를 뒤로 훅 빼다가 한 번에 퍽, 쳐올렸다.
“하흐!”
“이렇게 쫄깃쫄깃 물어오는데. 이미 내 꺼라고 다……. 빠짐없이 각인했는데 말이야.”
그의 선단이 배 안쪽을 쾅쾅 울리면서 나는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러나 복도 끝에 맺힌 사람의 그림자는 한 번 고개를 흔들고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노인네가 첩년한테 정신이 팔려서……. 돈 빼돌리는 것도 모르고. 하아.”
누가, 누가 보고 있었다.
주현이는 아직 그것을 모르는지 그저 허릿짓을 하고 입을 막고 있는 내 손을 자기 손으로 억지로 떼어냈다. 결국 막고 있던 쾌감의 소음이 막지 못하고 잇따라 터져 나왔다.
“너랑 흐. 이렇게 하루 종일, 구르고 싶은데.”
“아으, 하으, 흐으윽……. 으응.”
“윽, 빨리 돌아가야 하는 게, 짜증나.”
그가 내 엉덩이에 철썩대는 소리를 빠르게 할 때마다 나는 그 복도가 신경이 쓰여서 말도, 무엇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시, 싫어. 그만, 그흐……”
“오늘, 유난히 조이네. 흐으. 아까 손으로 풀어서 그런가. 더 느낌이 좋아.”
아…….
나는 복도 끝에 맺힌 단발머리의 사람이 가만히 긴 옷자락을 흔드는 것을 보고 있자니 이제는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져 갔다.
“난, 너만 있으면 돼.”
“아, 하. 흡.”
‘당신은…….’
동시에, 작은 배신감도 들었다. 내가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을 보고 듣고도, 소리 없이 사라지는 그 사람은.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복도에서 황급히 사라지는 그림자의 움직임은, 욕실에서 보았던 새의 날갯짓과도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