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정신을 차리고 나서 주현이가 부른 의사가 오는 동안 나는 방 안의 침대에서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만 했다. 병원을 가자고 하니까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더럽다고 질색을 하며 나를 혼냈다. 주현이가 결벽증이 있던 것을 그때 다시 깨우치며 나는 주현이가 입에 넣어 주는 과일 따위를 먹고 있었다. 어린 정신과 달리 주현이는 의외로 과일을 잘 깎았다.
어쩌면 가연이보다 훨씬 더.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나보다 젓가락질 훨씬 잘했지?’
눈만 뜨면 하루하루가 순식간에 지나 있는 생소한 시간 감각에 나는 딸기를 우물대면서 다친 다리를 몇 번씩 보곤 했다. 아직도 이 상황이 꿈만 같았던 탓이다. 물론 내 왼쪽 발목의 통증은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알려 주고 있었지만…….
“당분간 절대 안정입니다. 움직이면 안 돼요. 환자분 발목, 제대로 끊어졌기 때문에 뼈가 좀 붙을 때 까지만 이라도 누워만 있어야 합니다.”
“네.”
깐깐해 보이는 얼굴을 가진 노인은 동그란 금테 안경을 치켜 올리며 내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당부했다. 나는 일어났던 침대 머리에 베개를 두어 개 쌓아서 상체만 간신히 기댄 채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런 나를 두고 노의사는 혀를 끌끌 찼다.
“어쩌다가……. 내 평생 의사로 살면서 이런 골절은 처음 봅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발목만 어찌 이리…….”
‘저도 처음이에요.’
그렇지만 나는 굳이 말하진 않았다.
“그냥, 가이딩을 피하다가……. 돌부리에 크게 걸려서……. 넘어졌어요.”
“어디 작두라도 타다 엎어졌다고 해도 믿겠습니다.”
보통 이 정도의 강한 가이드가 힘을 잘 다루지 못하면, 다른 곳도 그다지 멀쩡한 곳은 없는데 이만으로 끝난 것도 다행일 것이라며 의사는 질린 얼굴을 했다. 진찰 내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뱉은 의사가 진찰 가방을 정리하는 것을 두고 나는 쓰게 웃었다.
‘그러게요. 목숨만이라도 건져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이러는 건, 다친 게 아무렇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파, 가하?”
의사 선생과 나 사이의 틈에 비집고 자리를 잡은 주현이가, 카펫 바닥에 앉아서 침대 옆에 몸을 걸친 채로 내 허벅지 위에다가 우울한 얼굴을 비벼대었다. 그 애는 내가 그렇다고 하면 금방이라도 다시 울음을 터뜨릴 듯이 얼굴을 실룩거렸다. 오후 나절 그 터지는 울음을 달래느라 제법 고생을 했던 나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하지만……. 내가…….”
나는 더 이상의 고생은 사절이었기에, 그리고 실제로도 주현이를 크게 탓하고 싶지 않아서 그 보드라운 뺨과 유난히 비교가 되는 내 거친 손으로 가볍게 감쌌다. 그러자 주현이의 얼굴이 순순히 내 손 안에 딸려왔다.
“괜찮아. 의사선생님이 가만히 있으면 낫는다고 그러셨잖아.”
“……응.”
울음을 참는지 막 들썩이는 그 애의 목울대를 보면서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젠장, 다친 건 둘째 치고, 일은 어찌한담.’
발목 하나가 아작이 난 판에 이전처럼 공사판에 나갈 수는 없다는 건 자명했다.
‘불행은 말도 없이 온다더니, 그게 나에게 올 줄이야.’
그런 우리를 두고 의사는 진찰 가방을 챙겼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저녁에 보내드릴 약 잘 챙겨 드시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뼈가 붙을 때까지 절대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자칫하면 신경이 안 돌아와서 걷지 못할 수도 있어요.”
“예.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 할 일이니까.”
나는 침대 머리에 몸을 기댄 채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의사는 앞서 시시콜콜하게 푸념하던 것이 조금 민망했는지 헛기침을 하며 진찰 가방을 들고 방을 나섰다. 그런 의사가 신기한 모양인지 주현이는 내 허벅지에 문대던 머리를 훅 들어서 곧장 방문을 넘어 복도까지 따라갔다. 어린애 특유의, 예상할 수 없는 돌발적인 행동이었다.
“안녕히 가세요, 의사 선생님!”
이 오래된 가옥과 어울리지 않는 이국적인 외모, 더불어 커다란 덩치와 아이처럼 활기찬 목소리에 나는 픽, 웃었다. 진짜 즐거워서 웃기보다는 그냥. 상황이 현실 같지가 않아서 그랬다.
‘이게 꿈이면 좀 누가 깨워 줬으면 좋겠는데…….’
주현이는 나름대로 의사 선생님 배웅을 마쳤는지 곧장 다시 내가 있는 방으로 돌아왔다. 마룻바닥이 쿵쿵 울리도록 황급히 돌아온 녀석은 장지문을 조금 열어 둔 채로, 다시 카펫이 깔린 마룻바닥에 털썩 앉아서 내가 누워 있는 침대에 두 팔을 둥글게 걸쳤다. 그러고 은근히 눈치를 보면서 그 순수한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 괜찮다니까.”
“……화났지, 가하……?”
그게 내게는 뭔가 장난을 벌이다가 들킨 어린애 같이 보였다.
“안 났어. 주현이, 실수한 거잖아.”
나는 고장난 레코드처럼 다시 같은 말을 반복하다가, 답답해서 절로 한숨을 쉬었고, 그 소리에 주현이의 등이 파득, 튀었다. 그에 나는 아차, 했다.
“……그치만……. 아프잖아. 그렇지……?”
“…….”
아프긴 하다. 무진장 아프지. 의사가 손수 깁스를 매어 주어서 로봇 다리 마냥 부푼 왼쪽 다리를 보자니 진통제를 먹어도 통증이 환영처럼 올라왔다. 어린애의 정신으로 봐도 이게 뭐, 단순한 상처는 아닐 테다.
그렇지만 이걸 두고 애를 앞에 두고서 소리를 지르고 원망을 할 수도 없지 않는가. 이 애 말에 의하면, 가이딩을 하도 참아서 조절도 안 된다고 하니 이게 일부로 그런 것도 아니고.
결국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대상이 없었다. 나는 이미 빠르게 정리한 마음을 다시 한 번 쑤석거리는 주현이를 향해 손을 작게 올렸고, 그 행동에 주현이의 잔뜩 긴장한 눈이 홉, 떨리면서 둥글게 걸친 팔에 제 얼굴을 푹, 숨겼다.
“…….”
누가 봐도 겁을 먹은 모습에 나는 올린 손을 허공에서 꼼지락대다가 결국 살짝 곱슬진, 짚단 색을 닮은 머리를 슥슥 쓸었다. 그래도 주현이는 팔 사이로 가린 얼굴을 보이지 않고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주현이가……. 내 가이드잖아.”
“웅…….”
감추어진 팔 사이로 작은 대답이 새어나왔다.
‘또 대답은 잘해요. 칭찬해 줘야 하나? 참 잘했어요, 도장처럼?’
나는 피식 피식 나오는 웃음을 참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면 말이야……. 주현이가, 나 다 나을 때까지 지켜 주면 되잖아. 그렇지?”
내 말을 들은 게 분명한 주현이의 머리가 움찔, 하고 떨렸다. 그러더니 팔 사이로 가렸던 얼굴을 천천히 들었다. 들린 얼굴은 오후의 노을을 가득히 담은 홧홧한 색깔을 담고 있었다.
“응.”
“그러니까, 더 이상…….”
속상해하지 말라고, 말을 하려는데 주현이가 내가 누워 있던 침대 위로 슬그머니 올라왔다. 나는 다친 다리 덕분에 그 행동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는데, 내 다리 사이에 자기 다리를 끼운 주현이가 천장의 등불을 등진채로 나를 내려다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맞아. 내가, 가하 가이드야.”
“알겠으니까, 내려……”
내려와, 혹시라도 저 덩치가 내 다리 깁스를 건드릴까 겁이 난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주현이는 내 목을 껴안고 속삭였다.
“걱정하지마. 내가 가하, 책임져.”
그렇게 말하며 내 뺨에, 아직도 핏물이 물들어 있는 붉은 입술이 내렸다. 쪽. 닿는 도톰한 입술 사이로 맞닿아 오는 딱딱한 이빨의 감촉이 선연한 탓에, 피부는 그 이빨에 찢기던 고통을 기억하는지 맞닿은 쪽의 결을 살짝 떨었다, 주현이가 눈을 살짝 가늘게 좁혔다. 나는 레이저처럼 쏘아보는 그 푸른 시선에서 도망치듯이 황급히 고개를 돌리면서, 애써 만류했다.
“으응, 알겠어. 알겠으니까 이제 내려…….”
“……무섭구나, 내가.”
또박또박 나오는 말에 나는 돌렸던 시선을 다시 정면을 향해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까 전까지 보이던 천진한 애 특유의 풍부한 감정들은 어디가고, 찌꺼기 마냥 남아 버린 어른의 차가운 표정만이 있었다. 그런 얼굴을 보니, 오히려 거짓말으로도 그렇지 않다고 할 수가 없었다.
컨트롤되지 않는 저 강한 힘이, 나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두렵지 않을 수 있을 리가.
“…….”
그런 나에게 주현이는 애라고 볼 수 없는, 건조한 목소리로 무감각하게 읊었다.
“괴물. 징그러워. 역겨워. 저리가. 죽어. 죽어 버려…….”
“주현아, 그런 말 하지 마. 갑자기 왜 그래?”
정도를 더해 가는 폭언에 나는 놀라서 주현이의 어깨를 잡았다. 그런 내 힘에 그 애의 너른 어깨가 힘없이 흔들리고, 살짝 숙인 얼굴 아래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며 내가 기대고 있는 베갯잇을 적시기 시작했다.
“나쁜 말 하지 마. 응?”
“그치만, 엄마가 그랬어. 난 괴물이라고…….”
젖은 소리로 간신히 말하는 것을 두고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엄마? 엄마가 주현이한테…… 그랬다고?’
그렇지만, 분명 어렸을 때 주현이네 어머니는 돌아가셨다고 그랬는데? 나는 우선 멀쩡한 다리 쪽 허벅지에 걸터앉은 주현이를 애써 안아서 등을 툭, 툭, 두드렸다.
“주현이 엄마가……. 그랬다고?”
“응.”
내가 이끄는 손에 순순히 끌려와서 내 품에 기대어 있는 이 작은 거인은 훌쩍거리며 내 윗옷을 푸르게 적셨다. 그렇지만 난 아직도 의문이 들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분명, 엄마가……. 없었는데.’
“돌아가신, 엄마가 그러셨어……? 주현이가, 그렇다고?”
내 말에 주현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 움직임에 스치는 머리칼이 가을바람에 스치는 벼이삭 마냥 한들한들 흔들렸다.
“그럼, 누가?”
“새엄마.”
“……새엄마?”
그 순간, 전에 동생이 말한 ’친절한 사모님’의 존재가 문득, 떠올랐다. 설마, 그 사람이……?
“……응.”
주현이는 저만큼 너른 품도 아닌 내 품이 뭐가 그리 좋은지는 몰라도 낑낑대며 파고들었다. 마치 이곳만이 유일하게 안전한 영역이라는 듯이. 나는 더욱이 어이가 없었다.
“새엄마가……. 너한테, 괴물이라고 했다고?”
“으, 으…….”
“주현아, 왜 그래.”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주현이가 내 허리를 껴안고 있던 손을 풀고서, 자기 머리를 감싸고 몸을 한껏 웅크렸다. 마치, 무언가를 막아 보려는 것처럼……. 그 모습에 나는 더욱 당황스러웠다.
“왜, 왜 그래.”
“자, 잘못했어요.”
주현이에서 나온 말에 나는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그러나 주현이는 계속해서 몸을 웅크리고 말을 반복했다.
“어, 엄마. 아줌마.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잘못했어요.”
“……주현아.”
조용한 내 말에 주현이는 경기를 일으키는 애 마냥,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죄송해요. 때, 때려 주세요. 잘못했어요. 제가 나빠요……. 네? 제가, 잘못했어요……. 때리지 마세요…….”
훌쩍 훌쩍 흐느끼며 용서를 비는 모습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도대체, 그 사람이 도대체 네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주현아, 나야, 나. 가하야. 응?”
“아, 아…….”
그 외침에 주현이는 눈물에 젖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멍하게, 머리카락을 엉망진창으로 헝클어뜨리며 제 머리를 감싼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걸 보고 있는 나는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누가 보아도,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보아도 이 애를…….
“나야, 가하.”
“아……. 가……하.”
내가 눈을 맞추고 일러 주자 그제야 주현이는 썩은 동태처럼 멍하게 떴던 눈에 빛을 조금씩 되찾았다. 나는 아리게 메여오는 목구멍을 간신히 짓누르며 천천히 말했다.
“나야, 가하. 네 에스퍼……. 정신, 차려…….”
“……가하!”
내 말이 통했는지, 아니면 제 정신을 차린 것인지, 주현이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내 품에 다시 훅, 뛰어들었다. 윽. 나는 지친 몸에 다시 안긴 그 커다란 몸을 쓸었다. 그 떨리는 몸의 진동으로 쓸어내리는 내 손 또한 덜덜덜 떨리고 있었다.
“나야……. 응. 나야, 주현아…….”
“가하, 가하, 가하……. 내꺼, 내꺼…….”
정신없이 목덜미에 제 뺨을 문지르는 것을 두고 나는 응, 하고 대답을 반복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 주현이가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속에서 깊이깊이, 숨겨 둔 숨을 토해내듯이 숨을 쉬었다.
“하……. 아…….”
“……주현아.”
“가하, 가하 맞아……”
“내가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
주현이는 몸을 빳빳하게 굳히면서 간신히 대답했다.
“응……. 냄새가, 비슷해서…….”
“……냄새?”
전에, 동생이 말한 냄새도 그렇고, 어제 만난 날 말한 냄새도 그렇고 유난히 냄새를 짚고 넘어가는 주현이의 모습은 내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자 주현이가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며 마치 말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내뱉듯이 말했다.
“……새엄마, 가하랑……. 비슷한 냄새야……. 그래서 좋았어.”
“나랑……. 비슷한 냄새라고?”
“……응. 그치만, 새엄마……. 가하 아니야.”
“……냄새……. 때문에 내가 새엄마인 줄 알았어?”
“…….”
말은 없지만 나는 그게 긍정의 표시인 것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정신도 좋지 않은 애를…….’
나는 아까 들었던 끔찍한 단어들을 다시 떠올리며 섬찟하게 오르는 소름을 휘, 털어냈다. 아직도 진정이 되지 않아 자잘하게 몸을 떠는 주현이의 단단한 팔뚝을 살살 쓸어 주며 진정시키려 했다. 새엄마라는 사람이, 그것도 정신이 좋지 않은 애를 향해 평범하게 말할 법한 단어들은 아니었다. 내 손길을 받던 주현이가 눈물이 다시 차올라서 떨어뜨릴 것 같은 얼굴로 어눌하게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그 사람, 가하 아니야. 하나도 가하 아니야. 착하지 않아.”
주현이는 나를 향해서 우는 듯, 웃는 듯, 그렇게 말했다.
“아주, 나빠.”
“괜찮아, 괜찮아…….”
“으, 으, 응…….”
나는 내 품에 감추어지지 않는 그 커다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주현이를 어정쩡하게 걸친 채로 토닥였다. 속상함을 가득 머금은 흐느낌이 멎을 참에는 주현이의 무게를 한참동안이나 받친 허벅지가 얼얼하게 저렸다. 그나마 발목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다친 발목 위에 혹시라도 앉았더라면……. 으.’
그나저나, 나는 애처럼 구는 주현이의 모습에 반 지하 집에 두고 온 우리 애가 생각났다. 내 발목이 꺾이자 놀라서 나를 향해 손을 뻗던, 가연이가. 그 모습 말고도, 내 다리가 이 모양이니, 당분간 공사판에 못 간다고 인력 사무소에다가 말도 해야 하는데.
‘핸드폰이 어디 갔지…….’
점차 진정이 된 듯, 내게 기대서 고르게 숨을 쉬는 주현이에게 살살 물어보았다.
“주현아.”
“……응?”
“그, 혹시 전화 좀 빌려 쓸 수 있을까?”
그러자 주현이의 가느다란 떨림이 거짓말처럼 뚝, 멎었다.
“……왜?”
당연할 질문에 파란 눈을 서늘하게 빛내는 주현이의 모습에 나는……. 순간 기시감이 들었다.
“그야…….”
“어디가? 또 가? 나 두고, 가?”
수도꼭지 마냥 다시 울 것처럼 준비를 하는 그 눈망울에 나는 허둥지둥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냐. 그런 거 아냐. 내가 왜 널 두고 가.”
“하지만……. 가하, 가 버렸잖아.”
주현이는 내 목을 그 두툼한 팔로 감싸면서 목덜미에 코를 파묻었다. 그 행동에 전날 물렸던 뒷목이 당연히 보이지는 않지만 피가 나도록 상처가 났던 자리에 아릿한 아픔이 느껴졌다. 나는 그 애의 손이 그 상처를 만지지 않도록 목을 은근히 피했다.
‘요즘 왜 이렇게 몸이 수난이지.’
“나 무서워. 무서워, 새엄마…….”
이렇게 다친 건, 시간이 흐르다보면 말끔히 낫게 될 것을 안다. 그게 크든 작든, 언젠가 그 상처자리에 딱지가 앉고 새살이 돋을 것을 안다.
그러니까 나는 이런 상처들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다. 여자애도 아니고, 사내자식이 상처 좀 나고 다치면 어떤가. 그저, 동생의 생활비를 당분간 다리가 나을 때까지 벌지 못한다는 부담감을 빼면 크게 걸릴 일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 애가 가진 상처는 나와 같이, 바로 보고 나을 수 있는 상처가 아닌 거 같았다. 마치, 내가 예전에 부모님에게서, 받았던 것과 같은…….
보이지 않는 상처들.
그 모습에 나는 마음이 동했다. 마치 어렸을 적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그 누구도, 아니. 주현이를 빼면 내 아픔을 알아주지 못하고 마음속에 그저 담아 두고만 있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아니야. 의사 선생님이 나 여기 있으라고 했잖아. 어디 안 가. 응?”
“근데 왜, 해. 전화.”
의심스럽다는 듯이 불퉁한 목소리를 내는 주현이의 너른 등을 쓸어내리면서 나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동생을 업어 키우다시피 한 내게 어린 애 하나 달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저, 이 애가 가연이보다 조금 더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는 것만 빼면.
“내 동생 알지. 첼로 연주하는 여자애. 가연이.”
“응! 가연 누나.”
‘누나라니, 네가 나이 훨씬 많은데. 너 나랑 나이 같…….’
아니, 이게 아니지. 나는 끼어드는 잡생각을 떨치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가연이에게 연락하려고 그래. 그래야 나 주현이랑, 같이 있는다고 말을 해야지. 응?”
“……정말? 나랑, 있을 거야?”
내 말에 목덜미에 제 뺨을 비비적대던 주현이가 고개를 팍, 쳐들었다. 그 재빠른 속도를 겨우 피하면서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런, 다리와 목에 이어서 턱주가리도 깨질 뻔 했네.’
어째, 몸이 작살날 만한 일이 많았다. 가진 거 없는 내겐 몸이 재산인데……. 나는 주현이에게 분명히 보이도록 겨우 사수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럼.”
“약속해.”
그 입에서 나온 말에 나는 입가가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너, 아직도 약속하는 거 좋아하네.’
몸 중에서 그나마 멀쩡한 축에 드는 손을 들어서 새끼손가락을 주현이에게 내밀었다.
“그래, 약속해.”
그러자 주현이가 눈을 휘었다. 몸이 집채만큼 커져도 웃을 때 자아내는 예쁜 미소는 어디를 가지 않았다.
“응, 가하 약속해. 여기 있을 거라고.”
“……어……. 그거는…….”
내가 순간 말을 못하자 주현이의 얼굴이 홱, 토라졌다.
“거봐. 거짓말하지? 날아가 버릴 거지?”
“아냐, 아냐. 있을게. 나 다리 나을 때까지…….”
우선 전화가 먼저니, 나는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며 같이 내밀어진 주현이의 새끼손가락을 걸었고, 주현이는 눈처럼 호선을 그리던 입술을 작게 비틀었다.
“아니. 계속, 계속 있을 거야. 나랑.”
“응?”
“알겠지?”
“으응…….”
천진하게 웃는 모습에 나는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묘한 감정을 태우다가 말았다.
애니까, 애가 뭘 알겠어, 싶었다.
나중에, 또 말하면 되겠지. 예전에는 가끔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제법 어른스럽게 느껴졌었는데, 세월이 흐르니 그저 어린애 투정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알겠어. 그러니까…….”
전화 좀, 빌려달라고 하는 주현이가 제 머리색과 같은 그 노르스름한 속눈썹을 내리 깔면서 내 턱 선을 타고 쪼아 대는 새처럼 입을 맞췄다.
“좋아, 가하.”
“아이, 하지 마.”
뭔가, 턱이 축축한 게 침이 묻은 거 같아 내가 생리적인 반응으로 도리질을 치니까 주현이가 하하, 하고 웃었다.
“부끄럽구나, 가하. 괜찮아. 난, 이해심 많아. 다 이해해.”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닌데…….’
내가 어찌하기도 전에 내 품 안에서 좋다고 웃어대는 애를 어찌해야 할 줄 모르겠다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 내게 주현이는 웃던 것을 갈무리하며 대호의 침대 마냥 너른 침대 공간에 벌렁 누웠다. 배부른 얼굴을 한 애는 천천히 설명했다.
“가연 누나 저기 있어. 본채에.”
“……가연이가?”
내 말에 주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제, 누나, 가하 옆에서 울어서. 그래서 같이 데리고 왔어.”
“가연이가…….”
울었다는 소리에 나는 주현이를 붙잡고 재차 확인했다.
“어디, 다친 곳 없지?”
“응? 나? 아니, 나 건강…….”
내 말에 주현이가 기쁘게 웃으며 대답했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 주현이 말고. 가연이. 가연 누나 말이야.”
주현이 말로는 자기 힘이 컨트롤 되지 않는다고 그랬는데, 혹시라도 내가 쓰러져 있는 동안 그 강력한 힘에 아무런 능력도 없는 동생이 휘말렸을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나는 남자니까 그렇다 치지만, 그 애는 여자애였고, 첼로를 연주하는 애였다.
절대로, 어디 하나 다쳐서는 안 되었다.
특히……. 손.
“…….”
주현이가 잠시 가진 짧은 침묵은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 나는 활을 쥐는 동생의 그 얄쌍한 손가락을 떠올리며 혹시나 싶어 주현이에게 되물었다.
“주현이, 누나 아프게 한 거 아니지? 응?”
“아하……. 가연 누나…….”
그 애는 느릿하게 생각하는 듯, 눈을 천장으로 살짝 굴리다가 내게 다시 고정했다.
“응. 아마도?”
그 말에 나는 애가 달았다. 아마도? 그럼 어디 다쳤다는 건가.
“……안 되겠다. 주현아, 가연이 보러 가자, 아니 여기 불러 줘.”
내 기억이 맞다면, 이게 별채였고, 본채는……. 일어서려는 나를 두고, 열린 방문 사이로 오래된 집 특유의 삐걱이는 바닥 소리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삐걱, 삐걱, 끼익…….
그 소리에 주현이가 소리의 근원인 복도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며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러고는 굵직한 목소리로 곧장 소리쳤다.
“……누구야.”
“도련님, 접니다. 박 비서.”
중후한 목소리의 주인은 익숙한 듯이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그 말에 시간이 문득, 잠시 멈춘 기분이 들었다.
‘설마 그때 그 박 비서가, 그대로 있는 건가…….’
그러자 주현이가 작게 짜증을 내었다.
“아무도 오지 말라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다친 손님이 깨어났다는 소식에 사모님이랑, 가연 씨가 보자고 성화를 내셔서……. 어떡할까요.”
침통하게 말하는 박 비서의 말에 나는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가연이가, 우리 찾는 거지 주현아?”
“…….”
“주현아, 가연이 보러 가자. 응?”
잘됐다. 마침 타이밍도 좋게 온 박 비서에게 감사하며 내가 주현이의 팔을 살살 흔들었다. 주현이의 얼굴이 침통하게 변했다.
“싫어……. 싫어, 싫어. 나 안 만나.”
“왜, 왜 그래. 주현이 가연 누나……. 연주 잘 듣잖아. 좋아하잖아. 그렇지?”
“그렇지만…… 싫어. 오늘은 안 해.”
주현이가 입술을 빼쭉 내밀고 내 옆구리에 찰싹 붙었다.
“싫어. 왜 싫어. 나 동생 보고 싶어. 응? 주현이가 불러와 주면, 나 정말 기쁠 거 같아…….”
“……무섭단 말이야……. 새엄마.”
그 애는 얼굴을 내 옆구리에 숨겨 두고는 들릴락 말락 하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새엄마가 무섭다고.
그에 나는 방금 전에 보았던 그 발작이 생각났다.
「잘못했어요, 때려 주세요, 나쁜 애예요…….」
그 장면에 나는 동생에 정신이 팔려서 보러 가자고 조르던 멍청한 자신에게 환멸이 들었다. 이 애에게는 그게, ‘새엄마’를 보러 가자는 걸로 들렸을 것이다.
‘아……. 멍청한 새끼. 방금도 그걸 보고선…….’
그렇지만 내가 동생을 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겁먹은 초식 동물처럼 달달 떨어대는 주현이를 다독이며 말했다.
“미안…….”
“……하지만 가하, 보고 싶지. 가족이니까.”
“어…….”
그렇긴 한데, 이런 분위기에 그래, 하고 말할 눈치가 없는 건 아니라서 나는 우물쭈물했다. 주현이는 작게 웃음을 만들었다.
“괜찮아. 나, 참을래. 좋아해. 가하도, 가연누나도…….”
마치, 억지로 웃는 그 얼굴.
“그러니까……. 무섭지만……. 참을 수 있어.”
“주현아…….”
그 얼굴에, 그 미소에, 죄책감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그 아픔이 엿보이는 미소에다 대고 나는 입안에서 맴도는 말을 고르고 고르다가, 주현이의 커다란 손을 꼭 잡았다. 키가 커서 그런지 손도 제법 커서, 오히려 내 손이 은근히 감싸질 정도였다.
“내가, 내가 있잖아.”
“…….”
“나, 주현이 에스퍼잖아. 에스퍼는……. 가이드를 지켜 주잖아.”
고작 D밖에 되지 않는 등급이지만, 나는 애써 자신 있게 말했다. 사실, 그것밖에 할 말이 없었다는 게 맞을 것이다.
“나 이제 어른 됐으니까……. 주현이 지켜 줄게.”
이 애도 늘 내게 그랬지. 자기가 더 강한 가이드니까, 지켜 주겠다고, 아빠 하겠다고……. 나는 그 어린 시절의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며 작게 웃어 보였다.
“누가, 너를 괴롭혀도……. 내가 주현이 옆에서 꼭 지켜 줄게. 약속해.”
“……정말?”
내 말에 주현이가 내 옆구리에서 한쪽 눈만 빼꼼히 내밀고 재차 물었다.
“그럼. 나, 주현이 에스퍼잖아……너의 유일한 에스퍼.”
그 말에 주현이가 와락 내게 달려들었다. 커다란 덩치만큼 한 무게 하는 주현이 덕분에 안긴 내 허리가 뒤로 훅, 넘어갔다. 다행히 내 등에 받친 푹신한 베개 덕분에 척추가 꺾이는 것은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정신이 어려서 그런가 자신의 몸에 대한 크기에 대해서 자각이 없는 모양이다.
‘아직도 어린애 크기로 자신을 생각하는 건가……?’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들고. 은근히 죽을 맛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주현이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응, 맞아. 가하, 내 에스퍼야. 내꺼. 나만 가질 거야.”
“그래, 그래…….”
어린 아이 특유의 욕심에 나는 떨어질 기미 없는 애의 등을 토닥여 주었고, 그 애는 푸흐흐, 웃다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러면……. 우리 각인, 언제 해?”
“응? ……각인?”
내 말에 주현이가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애를 두고 나는 그래 우리 각인하자, 하고 순순히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우선 이런 내 상황과 처지에 가이드가 생길 거라는 생각도 애초에 하지 않았기도 하고. 주현이의 말이 그저 어린 애들이 으레 말하는 애정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서 그랬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가연이가 어렸을 적만 해도 나랑 결혼하겠다고 그랬으니까.
‘그땐 정말 귀여웠는데. 물론 자금도 귀엽지만…….’
문득 떠오른 훈훈한 추억에 잠시 젖어 있을 무렵, 주현이의 아른아른한 푸른 눈이 내 시선에 훅 들어와서 눈을 맞췄다.
“응? 언제 해?”
나는 잔뜩 기대감을 담고 있는 주현이의 기분을 잔인한 현실에 노출시키기엔 좀 그래서, 나름대로 돌려 돌려 말했다.
“아직 안 돼.”
“왜? 나, 키도 크고, 집도 있어. 가이딩은……. 조금 못하지만.”
주현이는 당당하게 말하다 말고 자신이 없는 부분을 조그맣게 말하다가 이윽고 내 옆에 앉아서 제 손으로 나와 자신의 앉은키를 비교해대었다.
“봐, 나 다 컸어.”
물론 그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다. 주현이는 입만 열지 않으면 누가 봐도 훤칠한 한창의 남자였으니까.
“나, 좋은 아빠 할 수 있어.”
“끕…….”
의욕에 불타 있는 저 얼굴을 보자니 나는 얼굴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걸 꾹꾹 참아내면서 겨우 고개를 저었다.
“……으응, 아직 안 돼.”
“그럼 언제 돼?”
불만이 가득한지 한껏 웃고 있던 입을 내미는 주현이를 두고 나는 조금 고민했다. 어쩐다.
“음……. 주현이가, 좀 더 멋진 어른이 되면?”
“멋진 어른? 나, 아니야 멋진 어른?”
“응. 주현이 아직 다 안 컸어.”
그래, 이거다. 나는 흔히들 말하는 ‘다 크면, 생각해 보자’는 카드를 꺼냈다. 주현이가 이해가 가지 않는지 고개를 기울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멋진 어른 돼?”
“주현이가……. 잠도 잘 자고, 어른들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그러다 일도 열심히 하고. 그러면 멋진 어른 될 거야. 그러면, 그때 하자.”
나는 어린애들 투정을 받아 주듯이 대답했고, 다행히 주현이에게 전해졌는지 주현이는 얼굴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게 예전처럼 별 다를 바가 없어서 나는 다시 주현이의 폭신한 정수리에 손이 갔다. 사내 녀석이 머리카락 결 하나는 참 좋네.
“봐줄게.”
“응?”
내 의문 섞인 물음에 주현이는 내게 큰 비밀을 말하는 것처럼 속삭였다.
“나 진짜 멋진 어른 되면, 하는 거야. 각인.”
“그래. 그럴게.”
‘아마 그전에 내 다리가 낫고, 이 집을 나갈 것 같지만…….’
하지만 기대하는 어린애에게 굳이 그런 거를 세세하게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나는 주현이를 달래 두고, 가연이와 그 ‘사모님’, 즉 주현이의 새엄마를 만나볼 수 있었다. 뭐, 내 다리가 이런 모양이 된지라, 그들이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는 게 더 정확한가. 아무튼 그들이 올 때까지 주현이와 나는 좋아하는 것들, 그동안 뭐하고 살았는지 따위를 떠듬떠듬 이야기 했다. 그때 반쯤 열린 장지문 사이로 각기 다른 발걸음에서 나오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걸음이 분명 가연이와 그 새엄마라는 사람인 게 분명해서 나는 푹신한 베개 사이로 눕다시피 묻어 둔 상체를 일으켰다. 그런 내 옆에는 주현이가 코알라 마냥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싱글벙글 웃으면서 자기가 아끼는 게임기를 보여 주던 아까와 달리 몸을 잔뜩 웅크리고서, 겁을 먹은 초식 동물마냥 내 품에 제 몸을 비집고 있었다.
‘아…… 무거워. 덩치도 큰 게 통뼈인가.’
나는 주현이의 등짝을 나름대로 툭툭 토닥이면서 안심을 시켜 보려고 노력했다.
“괜찮아, 주현아. 나 있잖아. 응?”
“으응…….”
그렇지만 내 바람과 달리 주현이는 진정이 되지 않는지, 제 얼굴을 가린 손바닥 사이로 보이는 파란 눈을 부산스럽게 이리 저리 굴리고 연신 깜빡거렸다.
“…….”
도대체 새엄마라는 사람, 애한테 어떤 짓을 했길래…….
‘때린 건가? 그렇겠지?’
아까 전에 보았던 광경을 생각하며 그녀가 분명 동화 속에 나올 법한 계모이리라 대충 예측했다. 그런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찰랑거리는데, 장지문 사이로 화기애애한 말소리가 울렸다.
“……내가, 닮았다구요?”
“네에. 근데 저보다는, 우리 오빠랑……. 아, 오빠!”
“응.”
가연이의 목소리에 나는 주현이를 살피던 고개를 들어서 뒤로 돌렸고, 거기엔 환하게 웃는 내 동생과…….
쨍그랑!
가연이 옆에 있는 사람이 들고 있던 반질반질한 사기그릇을 마룻바닥에 떨어뜨렸다. 유약의 색이 곱게 들어 있던 그릇은 형태를 알아보지도 못하게 산산조각이 났다.
“가……연아…….”
내 마음도, 그 조각들처럼 산산이 조각나는 기분이 들었다.
옆에 서 있던 가연이가 놀라서 깨진 조각을 피하며, 뒤로 펄쩍 뛰었다.
“으아, 사모님. 괜찮으세요? 오빠, 방에 안 튀었어?”
“…….”
“…….”
동생이 우리를 걱정하는 말에도, 그녀와 나는 그저 말없이 서로를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어떻게…….”
“……사모님?”
가연이는 그 사람의 굳은 얼굴을 보다가, 의아한 듯이 나를 향해 다시 보았다.
“오빠, 괜찮아?”
그릇의 조각이 내게 튀지는 않았나 살피다가, 그 애는 나를 보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오빠. 진짜, 닮았다. 사모님이랑.”
그렇죠? 하면서 ‘사모’의 얼굴을 보던 가연이는 천연덕스럽게 배시시 웃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할 것이다. 가연이의 옆에 멍하니 서 있는 그녀는.
나와, 가연이의 어머니였으니까.
분을 발라서 안 그래도 하이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가는 모습은 옆에서 까치발을 하고 있는 가연이의 얼굴과 제법 닮아 있었다.
그리고, 분명 나와도 닮아 있겠지.
우리는 가족이었으니까. 지금은 저 조각난 사기그릇마냥 뿔뿔이 흩어진.
나는 속절없이 타는 목마름에 차마 나오지 않는 말들을 입 안에서 헛발질을 하듯이 목울대만 울렁거렸다. 어째서, 어떻게,
‘왜 당신이 여기 있을까.’
혼란스러운 가운데, 내 손을 살며시 잡아오는 하얀 손이 있었다.
“가하…….”
내 옆에는 주현이가 ‘새엄마’의 눈치를 보면서 나를 향해 떨리는 파란 눈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럼, 이 애에게 그런 폭언을 하고, 폭력을 했던 게…….’
나는 치미는 답답함에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신이었어?
“다들……. 놀라셨나 봐요. 제가 박 비서 님 불러올게요. 움직이지 마시구요…….”
가연이는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사모’의 주변에 흩어진 깨진 파편들을 피해서 왔던 복도를 돌아서 나갔다. 그 멀어지는 걸음 아래로 희미하게 삐걱대는 소리가 울렸다.
낡고 낡아서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자국들을 숨기려고 반질반질한 기름을 발라두어 매끈해 보이지만, 그 비틀어진 형태를 숨길 수는 없다.
사람의 걸음 하나하나에 필연적으로 불협화음을 내는 바닥.
나와 동생을 버리고 한 없이 위로 올라가고 싶던 그녀가 걷는 바닥은 우습게도 그런 바닥이었다.
“……네가 어떻게 여기…….”
“…….”
그런 조용함을 깨트린 건, 머리를 가는 팔로 짚고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리는 그녀였다. 그건 내가 물어보고 싶은 말이었다.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냐고.
“죽은 게……. 아니었어……?”
“가하…….”
손을 꼭 잡은 악력으로 나를 깨우는 주현이에게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서 작게 웃었다.
“괜찮아.”
괜찮지 않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주현이에게도, 내게도. 내가 힘들 땐 늘 그렇게 말을 반대로 뱉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면, 그 상황이 말처럼 흘러가지는 않을까 싶어서.
“잘……. 살아 있습니다.”
‘비록 당신은 내가 죽기를 바란 것 같지만.’
아니, 사실상 나도 그녀가 죽은 걸로 생각하며 살았으니 쌤쌤인가. 나는 아무 말도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목구멍 너머로 마른 침을 삼키며 파편과 으깨어진 딸기들의 엉망인 잔해 가운데 서 있는 그녀의 발치만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와 닮은 얼굴이라서 그런가, 더 이상 보기가 싫었다. 그녀의 하얀 발등 위로 허연 뼈마디가 울룩불룩 비쳤다.
“그럼……. 저 애, 네 동생이면……. 내 딸이니?”
피투성이처럼 굴러다니는 딸기들 덕분에 그녀의 드러난 다리에는 벌건 물이 가늘게 배어 있었다. 그게 언뜻 보면 파편에 긁힌 핏줄기 같았다. 혹은, 정말 그렇거나.
“……예.”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버리고 가 버린 내 동생이겠지.
한바탕 폭풍이 쓸어 가 버린 잔해 사이로 그녀가 무너지듯이 털썩 주저앉았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그 모습에 내 몸이 나갔지만, 천장에 달린 고정기와 내 옆구리에서 무거운 추 마냥 매달려 있는 주현이 덕분에 바닥에 몸이 떨어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그걸 깨달은 나는 안 그래도 껍질이 튼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어차피, 남인데. 저 사람 다쳐도 내 알바가 아닌데…….
“거짓말이야…….”
그녀는 격자무늬의 유리 덧문에 기대어 눈물을 흘렸다. 유난히 하얀 얼굴에 눈과 코만이 그녀의 다리에 맺힌 딸기 즙 마냥 벌겠다.
그렇지만 그 얼굴에 번지는 눈물은 투명했다.
“…….”
깨어나서도 생각했던 것은 점점 간절하게 변해 갔다.
‘이게 다, 꿈이면 좋겠다.’
사는 것에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꾸게 된, 그런 잔인한 악몽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내게 정면으로 부딪히며 으스러뜨린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눈을 감으면 감을수록 적막한 방에 가득 울려 퍼지는 흐느낌이 선연하기만 하다. 그런 우리에게로 아무것도 모르는 목소리가 다가왔다. 삐걱대는 바닥 특유의 소음마저 이 상황엔 거슬리지 않고 반갑기만 했다.
“여기에요. 어머, 사모님! 괜찮으세요? 박 비서님, 빨리요!”
“사모님, 괜찮으십니까.”
가연이는 주저앉은 그녀를 보고 얼굴을 찌푸렸고, 가연이의 재촉에 박 비서가 바쁜 걸음으로 왔다. 말이 없이 울고 있는 그녀를 두고 박 비서는 얼른 부축해서 데려갔다. 그녀가 없어진 복도에는 일하는 사람이 아직 치우지 못해 엉망인 흔적이 그대로였다.
“오빠.”
주현이가 그렇게 말하던, 냄새.
나와 가연이.
“오빠?”
그리고 그녀가 비슷한 냄새가 났다는 건, 우리가 가족이어서 그렇게 말한 걸까.
우리가, 한 핏줄이어서…….
“오빠!”
가연이가 그 파편들을 앞에 두고 방 문 앞에 멀찍이 서서 나를 부르는 소리에 밀려드는 상념에 잠식되고 있던 나를 훅 일깨웠다.
“……어, 어응. 가연아…….”
나는 뒤늦게 대답하며 가연이를 바라보았고, 가연이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불만을 잔뜩 털어놓았다.
“뭐야, 진짜. 왜 그래, 정신 나간 것도 아니구. 다리 때문에 그래?”
“어……. 응. 아프네, 다리…….”
“근데 사모님 왜 저러시지? 오빠가 너무 닮아서 놀라셨나?”
“그런가…… 봐.”
사실 다리의 통증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지금의 상황은 비현실적으로 내 사고를 마비시키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동생의 걱정 어린 투정이 조금씩 현실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나저나 아우, 진짜. 주현이가 발목 다치게 했다며. 아까 박 비서님한테 들었어. 걔, 예전에 사고로 막, 폭주? 같은 거 해서 그……가이드? 가이딩? 암튼 힘이 컨트롤 안 된다고 했던가? 얘는 진짜, 멀쩡하지 않으면 얌전히라도 좀 있지.”
가연이는 팔짱을 끼고 내 옆구리에 매달려 있는 주현이를 뒤늦게 발견했는지 아차, 하는 얼굴로 자기 입을 가렸다.
‘사고로 폭주?’
“어……. 어. 뭐……. 그랬던 거 같아. 참 너는. 너 손 괜찮아?”
궁금증을 풀기도 전에 나는 옆에 있는 주현이의 존재와 동생의 곤란한 얼굴에 얼른 화두를 바꿨다.
“여기 오지 마. 저기 가서 말해. 괜히 파편 밟지 말고. 아까 그릇 떨어지면서 어디 다친 거 아니지?”
내 말에 가연이는 두 손바닥을 쫙 펼쳐서 보여 주었다.
“뭔 걱정두, 난 멀쩡해. 오빠나 걱정해! 그냥, 어제 오늘 잠을 좀 못…….”
가연이는 거뭇한 눈 밑을 비비다 말고, 무언가 생각난 듯이, 아. 하고 말했다.
“맞다. 그나저나 아까 오빠 핸드폰으로 황 변호사님 전화 왔어.”
“……대호?”
대호가? 내 말에 가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잘 들어갔는지 궁금했다구 하시더라……. 그래서 대충 말해 놨는데. 오빠 다쳐서 지금 여기 있다구. 그러니까 완전 놀라셨는지, 막 내일 일로 오신다고 그랬어.”
“아……. 그래. 고마워…….”
나는 고개를 대충 끄덕였다. 놀랄 법도 하다. 멀쩡하게 들어간 애가 다리 다쳐서 누워있다고 그러니. 하지만 대호의 전화는 지금 상황에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 대답에 가연이는 그 사기그릇의 파편을 살살 피해서 내가 있는 방 안의 문에 찰싹 매달렸다. 방금 조심하라는 소리는 귓등으로 들은 모양이었다.
“오빠, 근데 있잖아. 그……. 황변호사님도 그렇고, 주현이도. 원래 오빠랑 서로 아는 사이야?”
“……아……. 응. 어쩌다 보니.”
나는 내 옆에서 가만히 말없이 숨죽이고 있는 주현이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벌벌 떨고 있던 애는 어디로 가고, 그저 조용히 색색 숨을 쉬면서 눈을 감고 졸고 있었다.
‘이 난리 통에, 이 상황에. 참 속이 편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뭐야, 난 그런 거 몰랐는데. 어쩌다가 아는 사이야?”
“……같은 학교 다녔어.”
“어? 우리 XX읍에서? 난 본 적 없는데?”
“아니. 예전에. 너 태어났을 때……. 그때 너무 어려서 기억 안 나겠지만……. 우리 서울 살았어.”
나는 잠을 자는 주현이의 머리를 살살 쓸어주다가 손을 뗐다. 아, 잠도 잘 못자는 앤데. 괜히 깨겠다.
“부모님이랑, 나랑, 너랑…….”
그런 내 걱정은 적중했는지 상아처럼 매끈한 살결 사이로 숨겨진 파란 눈이 살며시 뜨였다.
“……웅……. 가하.”
“……응. 깼어? 미안.”
“……으응. 저기, 갔어? 새엄마?”
주현이는 내 말에 졸음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뭐가 아냐. 완전 졸려요, 얼굴에 써 붙이고 있는데.’
나는 애처럼 착해 빠진 주현이의 하얀 거짓말에 웃음이 나오려다가 말았다.
“……응. 갔어.”
내 말에 주현이가 졸음으로 부은 눈을 살짝 비비고 웃었다.
“다행이다. 무서워, 새엄마.”
그 애는 방문 쪽을 살펴보다가 가연이를 발견했는지 손을 활짝 펼치고 웃었다.
“아, 가연 누나.”
“응, 주현이. 머리 까치집이다. 귀여워.”
가연이가 방문에 기대어서 킥킥 웃어대자 주현이가 한쪽 눈썹을 들썩였다.
“귀여워?”
“응.”
“멋진 거, 아니야?”
“으음……. 지금은 아닌데.”
주현이가 가연이의 솔직한 말에 황급히 자기 머리를 손으로 어색하게 빗어 내렸다.
“아, 안 돼. 멋진 남자 해야 하는데.”
“멋진 남자? 왜?”
가연이가 무슨 소리냐는 얼굴을 하자 주현이가 보란 듯이 당당하게 말했다.
“응. 멋진 남자 되면, 가하랑 나랑. 엄마 아빠 할 거야.”
“아, 진짜? 흐음……. 주현이 갈 길이 머네.”
가연이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주현이가 발끈했는지 눈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곱슬진 머리는 가라앉을 기미 없이 푸석푸석 헝클어져 있었다는 게 포인트였다.
“안 돼! 도와 줘, 누나.”
주현이의 간절한 외침에 가연이가 숨이 막히도록 웃었다.
“주현이, 오빠 진짜 좋아한다! 처갓집 말뚝에도 절을 한다더니. 우리 오빠가 그렇게 좋아?”
“절……? 응. 좋아.”
“아하하, 오빠, 비법이 뭐야. 먼저 만난 나보다 훨씬 좋아하는 거 같은데. 아, 예전에 만났다고 했으니까 그건 아닌가?”
“애 그만 놀려.”
내 말에 주현이가 나에게 말했다.
“비법? 가하, 순수하고, 예뻐. 착하고.”
그러고는 주현이가 웃었다.
“약한 사람인데, 자기보다 약한 거. 지키고 싶어 해. 그래서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