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가끔, 나를 이 땅 위로 발을 딛게 하는 힘이 무력하게 느껴지는 날들이 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인가 보다. 내 몸이 이리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라니. 나는 요즈음 유난히 꿈을 자주 꾼다고 생각하면서 까만 꿈속을 이리저리 헤매었다. 그러나 꿈에서 있는 나의 몸은 현실만큼 잘 따라 주지가 않아서, 온 몸에 추를 매단 것처럼 어디 하나 움직일 줄을 몰랐다. 그냥, 가만히 이 부유를 느끼라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몸에 힘을 빼고 둥둥 떠다니는, 끈 하나 매지 않은 부유감을 즐겼다.
내 능력이 날아다니는 거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좋아하는 나의 힘을 잘 써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걸까. 꿈에서라도 나는 날고 싶은 모양이었다.
‘계속, 이러면 좋겠다.’
몸에 힘을 빼니 귓가에 옅은 소리나, 감촉, 그리고 그리운…….
향기가 훅 끼쳤다. 그리운지 어떻게 아냐고 하면……. 그냥 뭐라고 하나. 많이 어디서 맡아본 향기인데, 생각은 잘 나지 않는, 그런 아련한 향기라고 하나. 전에, 대호에게서 맡은 향기랑은 좀 결이 다르다. 코끝을 훅 파고드는 특유의 냄새는 어떤 면에서 비슷하지만…….
다르다. 좀 더 가볍고, 달큰하고…….
‘으음…….’
나는 기억이 날 듯 말 듯 뇌리를 파고드는 그 냄새를 좀 더 맡아 보려고 코를 가까이 대며 숨을 들이쉬었다. 코끝이 단단한 어딘가에 폭, 닿자 그 특유의 냄새가 좀 더 진하게 났다.
‘그래, 이거……. 알 거 같아.’
나는 문득 몸을 편안하게 감싸는 그 향기를 깊게 들이쉬었다.
‘알 거 같아…….’
그런 내 머리 위로 잔잔한 떨림, 진동이 사르르 퍼졌다. 마치, 누가 작게 웃는 것처럼.
‘……누구게?’
“알……. 아.”
알고 있는데. 잘 생각이 안 나네……. 그렇지만 아는데……. 내 말에 그 향기의 주인이 내 뺨을 부드럽고, 축축한 무언가로 살살 집었다, 말았다 했다.
‘……알아?’
“……응…….”
‘누군지 말해야지, 응?’
나는 눈을 찡그리면서 중얼거렸다. 알아, 안 다니까. 이 냄새, 그 색깔이야. 막…….
“푸……른…….”
푸른색, 새벽하늘처럼 맑고, 푸른…….
그런 눈을 가진 사람.
‘주현이.’
나는 그걸 알아차리자마자 정신이 확, 깼다.
‘너. 나한테…….’
나는 눈에 마치 풀을 붙여 놓은 것처럼, 끈적한 것들이 부스러지는 이물감에 찡그렸다. 윽, 눈곱인가? 웬 눈곱이……. 그렇게 생각하다가 멀리서 짹짹대는 새소리에 몽롱한 정신을 갈무리했다. 눈을 대충 비벼서 눌어붙은 이물질들을 떼어내고 나서 보이는 건, 살짝 열린 미닫이 문 틈 사이로 황금빛 햇빛이 컴컴한 목재로 짜인 천장을 흐드러지게 비추는 광경이었다.
“여기는…….”
습기가 누렇게 말라붙은 우리 집의 벽지가 아닌 건 확실했다. 그제야 내가 누워 있는 곳이 눈에 하나하나 들어왔다. 고소한 콩기름 냄새가 얼핏 풍기는 방 안에, 천장과 비슷하게 어둑한 목재로 만들어진 가구가 한 몸처럼 잘 짜인 듯이 배치되어 있었다.
전에 모델 하우스에서 앤틱풍이라고 소개시켰던, 그런 책걸상, 손때가 얼룩덜룩 묻은 금박이 붙여진 외국어가 적힌 서가, 수술이 달린 초록색 비단으로 갓을 쓰인 전등, 어두운 자줏빛 카펫이 깔린 목재 마룻바닥. 그리고 문인지 벽인지 구분도 안가는 이 방의 경계에 화려한 무늬의 벽지가 소용돌이 마냥 붙어 있어서 안 그래도 피곤한 내 눈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나는 팔을 구부리면서 바스락거리는 가벼운 이불이 덥힌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나는, 여기가 어딘지 안다.
“나……. 아윽.”
그렇지만 온 몸이 마치 흠씬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팠다. 전에 대호와 마셨던 숙취 같은 그런 가벼운 아픔이 아니라.
진짜 살과 뼈가 찢어지고 부러지고 나서 남은 열상과 같은 아픔.
나는 둔한 몸 가운데에서도 유난히 고통을 호소하는 다리를 덮은 이불을 들췄다. 이런 간단한 몸짓에도 내 등은 어디 한껏 일을 한 사람마냥, 날개 뼈 사이로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허……허억, 헉…….”
깃털을 넣은 듯이 가벼이 바스락거리는 이불 밑에 놓인 왼쪽 다리는 처참하기가 그지없었다. 흔히 보는 보랏빛의 멍을 떠나서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는 모습. 꺾여 있던 그 다리 모양이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내 발목부터 시작해서 종아리까지 딱딱한 무언가가 덧대어져서 고정 되어 있었다.
‘이런, 실수했다.’
나는 그 광경에 다시, 그때의 그 상황이 떠올랐다. 실수라고, 가벼이 웃으며 공중에서 보이지도 않는, 무형의 힘으로 내 다리를 간단히 부러뜨리던……. 나는 그 충격적인 기억을 머리에서 다시 보여 주는 것을 막아 보려 눈을 질끈 감았다.
‘떠올리지, 마…….’
그렇지만 그 충격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라서 뇌 안쪽에 공기를 가득 채운 사람마냥 헉헉 대며, 차오른 숨을 빼 보려 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애가, 한 짓이 너무……. 실수치고는 아프고, 잔인했다.
어떻게, 어떻게…….
“가하!”
조금 열려 있던 장지문 사이로 거인이 뛰어오는 둔탁한 소리가 몇 번 울리더니, 이 일의 주범이 그 엷은 이삭 같은 머리를 날리며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누워서 겨우살이 마냥 살아 보려 헉헉 대는 내 옆에 서서 죽 내려 보던 그가 나를 보더니 묘한 표정을 했다.
“가하…….”
“아, 아…….”
어디 보석처럼 빛나는 파아란 눈빛에, 안 그래도 깊은 통증이 느껴지는 발목이 유난히 시큰거렸다.
무서웠다.
그게 마치, 내 기억에서 끊임없이 보여 주던 아픔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말을 잘 듣지 않는 몸을 겨우 뒤로 끌면서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있는데, 주현이가 내 윗몸을 와락 안았다. 다행히도. 그 와중에 다리가 있는 쪽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 애는 그 큰 덩치로 나를 숨 막히게 감싸 안으며 울먹거렸다.
“흐흑, 흑……. 미, 미안해. 가하…….”
“…….”
나는 마비된 것처럼 아무런 것도 못하고 떨기만 하는 몸으로, 그 품속에서 써늘하게 식어있는 레몬 향기를 맡았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그 애는 내가 더 이상 탓도 못하게, 투명하니 젖어서 더욱 반짝이는 눈을 들고서 훌쩍거렸다.
“미안해……. 나, 안 돼……. 힘 조절…….”
“힘 조절……?”
내 의문에 주현이는 눈물을 커다란 손으로 쓱, 훔쳐내면서 입을 삐죽였다.
“응. 나 안 돼. 조절하는 거. 왜냐하면 가이딩, 참아서. 매일매일…….”
“……참았……다고?”
“응. 다른 사람에게 가이딩, 싫어.”
그 애는 서러이 울면서 그렇게 말했다. 가이딩 조절이 되지 않는다고. 그 애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눈물을 한 겨울의 함박눈처럼 뚝뚝 떨어뜨리면서 띄엄띄엄 말했다.
“나, 기다렸어. 가하. 내 에스퍼, 한 명이야. 오로지 너뿐이야.”
주먹 쥔 손에서 길쭉한 검지를 내게 올려 보이는 모습에 나는 이 모진 고통으로 들었던 원망이 마음속에서 조금씩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보통의 상황이었다면 화를 내고도 남을 상황이지만…….
그 애는 그러더니 내가 누워 있는 침대 바로 옆의 바닥에 털썩 앉아서, 손가락을 쫙 피고 하나씩 천천히 접었다.
“하나, 둘, 셋……. 스물. 스물 년 기다렸어. 가하.”
20년.
이 애는 침대에 자기 팔을 걸치고, 내 허벅지에 자기 머리를 대고서 무척 원통하다는 듯이 흐느꼈다.
“나, 그리웠어. 가하, 너무 그리웠어…….”
누가 봐도, 그 처연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내 손이 절로 움직일 정도였다. 내 허벅지를 뜨겁게 적시는 그 눈물 바람에 나는 나도 모르게 그 곱슬진 머리에 손이 갔다가, 닿기 전에 황급히 물렸다.
“그리고…….”
그 애는 내 허벅지에 대고 웅얼거렸다.
“다들, 거짓말해.”
“……거……짓말?”
“다들, 거짓말했어. 가하 죽었다고. 아니야, 나 믿었어. 가하 살아있어. 난 알아. 난 가이드야. 가하 가이드…….”
누구도 아닌, 나의 가이드라고 그 애는 반복해서 말했다. 어렸을 때 했던 약속을 이 햇수와 함께 꼭 지켜 온 게 둑이 터진 것처럼, 풀어내며 엉엉 울었다. 마치, 대호가 그랬던 것처럼 주현이 주변사람들도 나를 죽었다 생각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생각일 수도 있다. 그때 아버지가 나를 해치려 했을 때 어디 누구에게 말하나 남기지 못하고 아줌마를 따라서 도망치듯이 이 도시를 떠났으니까. 내 마지막 가는 길을 누구 하나 배웅해 주는 일 따윈 없이.
“나, 나……. 미, 미워하지 마. 미안해. 내가 미안해. 미워하지 마.”
그것도 20년 동안 어디 소식 하나 없던 나란 존재는, 기억 속에서 충분히 죽고도 남을 세월이겠지. 그걸, 그저 살아있다고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살았다니…….
‘참, 순수하다고 해야 할지, 미련하다고 해야 할지.’
그 생각이 내 머리를 떠돌며 울음을 멈추지 않는 주현이의 보드라운 털실 같은 머리칼에 등 뒤로 숨겼던, 굳은 손을 내리게 했다. 주현이가 내 손에 닿은 머리를 푸드득, 떨면서 눈물로 젖은 얼굴을 내 허벅지에서 떼었다.
“가하……. 미안해.”
나를 올려다보며 그 창백한 뺨을 다시 눈물로 적시는 주현이의 머리를 나는 서툴게 쓸었다.
‘동생 머리도, 잘 쓸어 보지 않는 편인데…….’
나보다 덩치 큰 애에게 하려니 좀 기분이 묘했다.
“……괜찮아.”
내 말에도 불구하고 주현이는 불안한 듯, 그 파란 눈을 깜빡 깜빡거렸다. 동시에 그 커다란 눈에 고인 눈물이 또 한 움큼 쏟아졌다. 머리를 쓸어내리는 내 오른 손 엄지에 왈칵 스치는 눈물은 뜨거웠다.
“하, 하지만……. 나, 가하 아프게 해. 나빠, 나쁜 애야…….”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사람마냥 그 애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 머리를 툭툭 토닥였다. 애라서, 애니까 구분이 잘 안 가는 것이다. 이 애가 무척 강하다는 것은 어릴 적에도 알았고……. 다만.
‘그게 나를 해칠 거라 생각을 못했을 뿐이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럼에도 살짝 쉬어 있는 목소리는 내 귀에도 살짝 음산했다.
“아니야, 착한 애야.”
“……정말?”
내 말에 주현이는 내 눈을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팩, 돌렸다.
“……그럼.”
침대 커버에 내려 둔 내 손등에 그 눈물이 살짝, 튀었다.
“아냐. 아니야. 거짓말 해, 가하. 나빠, 나쁜 애야 나…….”
자기를 나쁜 애라고 반복 하면서, 주현이는 주먹을 꾹 쥐고, 스스로를 때리기 시작했다. 고개가 퍽, 소리가 나게 돌아가도록 후려치는 것을 보고 이번엔 도리어 내가 놀랬다.
“주현아!”
내 외침에 주현이가 한 번 눈을 크게 떴다가, 다시 입을 울렁 울렁이면서 비장한 얼굴로 주먹을 쥐고 다시 한 번 퍽, 주먹으로 때렸다. 나는 그 모습에 애가 달았다. 안 돼.
“그러지마! 하지 마, 아니야. 아냐. 주현이, 착한 애야.”
내 호소에 주현이의 주먹이 잠시 멈췄다. 그렇지만 흉기마냥 그 단단한 주먹은 풀릴 기세가 보이지 않아서 나는 얼른 그 주먹위에 내 손을 올리고 붙잡았다. 이젠 내가 울고 싶었다.
“착한 애. 나, 나 기다렸잖아. 응?”
넌, 착한 애야.
내 어린 날의 소중했던 기억, 추억, 그리고 모든 것…….
그런 애가 어디 하나 아프지 않기를, 늘 바랐다.
“날, 기다렸잖아. 그렇지……. 난, 네 에스퍼잖아…….”
그때도, 지금도.
내 말에 주현이가 천천히, 대답했다.
“응……. 기다렸……어. 매일, 매일. 기도했어. 가하, 내게 돌아와 달라고……. 내가 다 잘못했다고.”
그 애는 눈물로 얼룩진 뺨을 두고 그렇게 뇌까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잘못한 거 없어. 넌 착한 애야…….”
“……정말?”
주현이는 이제 조금 믿음이 가는지 나에게 그 예쁜 얼굴을 살짝 들이밀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주현이는, 착해.”
그러자 주현이는 아까 나를 봤을 때처럼, 침대에 걸친 몸을 일으켜서 침대에 반쯤 몸을 일으켜 앉은 나를 그 품에 꼬옥 안았다.
“응, 나 착한 애야. 가하에게, 착한 가이드 할 거야.”
그 품에 있는 내게, 아까 꿈결에 맡았던 냄새가 솔솔 풍겼다.
‘아, 역시. 그건 주현이가 맞았던 걸까?’
그 달콤하고, 가볍고…….
“……그러니까, 가하도 이제 사라지면,”
싸늘한.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