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9/61)

다행히 급하게 내온 늦은 식사는 입맛에 잘 맞았는지, 간단한 나물무침과 된장국, 밥, 김치 정도에도 대호는 맛있다며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어머니가 반찬 안 해 주시냐는 물어봤다가, 나는 그제야 대호네 어머니가 오래전 돌아가셨다는 것도 알았다. 그 상황에 나는 당장이라도 저 거실의 유리창을 깨고 한강에 몸을 던지고 싶었다.

‘왜 자꾸 대호에게는 이상한 모습만 보이는 걸까…….’

식사 후에 설거지까지 마치고 나서 우리는 건조기에 돌린 빨래도 잘 걷어서 도로 입었고, 거기서 나는 또 한 번 마음에서 깊이 우러나오는 사과를 한 후에 나는 다시 집에 갈 채비를 했다.

버스타고 사옥으로 가서 트럭 타고 하면 된다고 하는 나를 두고 대호는 꿋꿋이 데려다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까 전에 취사 버튼도 제대로 누를 줄 모르는 허당 같은 모습은 저리가고 변호사다운 날카로운 면모로 나를 설득하는 게 아닌가.

“내가 집까지 데려다줄게.”

“괜찮아. 뭐 하러 그래, 너 쉬는 날인데 집에서 쉬어.”

“가하 네 차 주차증 발급해야지.”

아 맞다. 주차증. 하루 종일 주차장에 두었으니 주차요금이 엄청나게 쌓였을 게 분명하다. 그런 상황이니 주차증이 무척 필요하긴 했다. 그런 내게 대호가 픽 웃었다.

“그러면 나 휴일에 출근 기록해야 돼. 그게 더 번거로워.”

결국 나는 알겠다고 항복을 하고, 어제 탔던 그 차에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잊지 않고 안전벨트를 매었고, 그 모습을 본 대호가 숨죽여 웃는 것을 나는 포착했다.

아, 사람이 모르면 그럴 수도 있지……. 대호는 웃음을 뒤로 하고 차를 부드럽게 몰면서 내게 은근히 물었다.

“그 된장국 어떻게 하는 거야? 전에 나도 했는데……. 맛이 맹맹해서, 맛이 없더라고.”

“아, 멸치 손질한 거. 그걸로 좀 우리고……. 여기, 여기로 들어가면 돼.”

그게 참 맛있었던 모양이었다. 가연이가 좋아하다 보니, 매일매일 끓이느라 단련된 된장국 맛은 어디가지 않았구나.

“응.”

대호는 네비도 없이 내 설명만으로 우리 동네를 잘 찾아서 왔다. 골목길로 들어가는 동안 나는 빠르게 설명했다.

“다시마도 하나 넣어서…….”

복잡할 건 없는데 말로 하자니 늘어지는 기분이 나서 나는 문득, 제안했다.

“문자로 보내 줄까? 레시피.”

“음……. 그냥 다음에 와서 하는 거 보여 주면 안 돼?”

잘 모르겠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럴까. 저기 앞에를 가리키면서 부탁했다. 그러자 대호는 딱, 그곳에 차를 멈춰 세웠다.

“그럼 주말에……. 여기다. 여기 내려 줘.”

“응.”

나는 알맞게 차를 세워 준 대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고마워. 여기까지 데려다주고……. 어제 미안하다, 괜히 나 때문에 고생만 하고, 회사도 못 돌아가고…….”

“아냐. 즐거웠어, 정말로. 미안하면……. 다음에 또 우리 집 와서 밥 해 줘.”

대호가 내 말에 이마로 부스스하게 내려온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래. 그런 거 하나 못 해 줄 건 또 뭐겠어. 나도 웃어 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반찬도 다 해서 줄게.”

“응. 근데, 맨날 혼자 밥 먹어서 잘 몰랐는데, 같이 먹으니까……. 더 맛있더라.”

“…….”

“가하 너랑 먹어서 그런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는 그 모습에 난 조금 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밥 먹을 때 들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다는 말이랑, 은연중에 정을 구하던 그 모습들이 눈에 밟혀서. 그 큰집에서 혼자 살면, 더 그렇겠지.

‘나는 동생이라도 있는데.’

나는 대호에게 약속했다.

“그러자. 다음 주에 또 같이 만나서 먹자. 장도 보고, 더 맛있는 거 해 먹자.”

“응.”

나는 조수석의 문을 열면서 대호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 갈게. 조심해서 가. 고마워.”

“응. 너 들어가는 거 보고 갈게.”

대호는 열린 창문 너머로 내게 손을 흔들었고, 나도 마주 흔들다가 반지하가 있는 빌라의 입구로 들어갔다. 아까 빌라로 들어가면서 도로 부분이 보이는 창문가를 가린 커튼의 틈 사이로 형광등 불빛이 어른어른한 게, 가연이가 집에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 넣어 둔 집 키를 꺼내서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가연, 오빠 왔…….”

“오빠, 왔어?”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가연이가 현관 바로 옆에 있는 부엌에서 톡, 튀어나왔다. 과일을 씻는지 손에 참외 하나를 쥔 채로.

“응. 과일 먹게? 오빠가 깎아 줄게. 저기 앉아 있어.”

“아니, 그게…….”

가연이가 모호한 표정을 짓는 와중에 거실에서 누가 일어서서 내게 다가왔다. 천장에 거의 닿을 만한 키를 가진 사람은 등을 살짝 수그리고 있었다.

살짝 곱슬진 여린 이삭의 머리색. 형광등에 반사되어 더욱 푸르게 반짝이는 눈을 가진 사람은…….

어?

“누나, 형 왔어?”

파란 눈. 유난히 도드라지는 그 눈의 주인이 창백한 얼굴을 하고 어눌한 말투로 더듬, 더듬 말하자 가연이가 내게 쓱 다가왔다.

“어, 응. 주현아, 우리 오빠야. 이름은…….”

“알아.”

그 애는 가연이가 말하기도 전에 딱 잘라 말했다.

“가하.”

“…….”

“여기는 그……. 내가 말한 그 사람이야, 주현이라구……. 어제 오빠 얘기하니까, 자기도 걱정 된다, 같이 찾자고 떼를 써서…….”

그래서 왔다고 말을 늘어놓는 가연이에게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그 애는 백지장 같은 뺨을 장밋빛으로 물들이고, 눈꼬리를 접은 채로 웃음을 흘리며, 나를 압도적인 덩치로 훅 껴안았다.

“……찾았다.”

그 애의 어눌한 말투가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숨바꼭질, 이제 끝이야.”

“…….”

“가연 누나, 우리, 가하 형 찾았다. 그렇지?”

하늘을 닮아서 커다란 파란 눈이 나를 한껏 담았다가, 행복하게 눈을 접었다. 나는 예기치 못한 만남에 입이 입 안이 바짝바짝 말라 왔다.

‘네가, 어떻게…….’

내 옆에 있던 가연이가 내 팔을 붙잡고 넌지시 웃었다.

“으응, 우리 오빠 찾았네……. 이제 같이 우리 집에, 가자 응?”

“유, 가연. 너, 왜…….”

‘설마, 아까 전화할 때, 옆에 있던 사람이…….’

내 말에 옆에 있는 가연이가 까치발을 하고서 내 귀에 소곤소곤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 아니, 나도 데려올 마음 없었는데……. 내가 하도 걱정하니까 같이 불안해하더라고. 심지어 나랑 떨어지면 막 발작을 해서 결국 경호원이랑 같이 왔어. 나도 정말 어쩔 수가 없었어. 그래도 오빠 집에 오는 거 보면 갈 거라고 약속 했어.”

“그래도 그렇지, 너!”

다 큰 남자를 이렇게 말도 없이, 집에 데려온다는 게 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아무리 그래도, 너 자꾸 이럴래.”

나는 자꾸 변명을 늘어놓는 가연이를 힘주어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도리어 가연이가 뿔난 얼굴로 말했다.

“그렇지만 오빠도 연락이 하루 종일 안 됐잖아!”

“그건…….”

내가 할 말을 잃은 순간 가연이는 내 팔뚝을 퍽퍽 치면서 항의했다.

“난 무슨 일이라도 난 줄 알구……. 오늘 아침 연락 올 때까지 잠도 못 잤어. 나한테는 맨날 언제 오냐 마냐 하면서 정작 오빠는 하나도 안 지키고……. 내가 무슨 마음이었는지 알아. 오빠 인력 사무소 막 가서 찾고, 공사하다가 진짜로 어디 잘못된 줄 알았단 말이야…….”

눈물에 젖어 가는 얼굴처럼 점점 젖어 가는 목소리로 울먹거리는 가연이 앞에, 워낙 큰 키 때문에 천장에 닿지 않도록 목을 구부정하게 수그리고 있던 그 애가 다가왔다. 그 애는 그 커다란 몸집을 마치 방패처럼 내게 앞세우고, 가연이를 제 등 뒤로 숨겼다.

“…….”

그 행동에 나는 잠시 움찔했다. 사고 후유증으로 사고가 멈춰 버린 탓인가, 그 애는 그 앳된 모습이 옅게 남아 있었다. 오묘한 조화가 된 얼굴로 내게 달큰하게 말했다.

“가하, 형. 화 내지마. 누나, 무서워해. 응?”

어렸을 땐 인형마냥 빛나던 얼굴이, 제법 날카로운 사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자기 것을 지키려고 하는, 그런…….’

착각이겠지. 나는 이상한 생각이라며 머리를 털었다. 다만 그 붉은 입술에서 나오는 말투는 태도와 어울리지 않게, 그때 그 시절의 어눌한 말투 그대로였다.

“화내는 게……. 아니라, 하아…….”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나는 무거운 분위기와 달리 생글생글 한껏 웃는 그 애의 얼굴에 뭐라 대꾸하지 못하고 애꿎은 머리만 박박 긁었다. 그 애의 얼굴 한쪽 볼이 씰룩거렸다.

“……냄새…….”

“아무튼, 유가연, 얘기 좀 해 보자. 이……. 친구, 집에 돌려보내야지.”

가연이가 그 애의 등판에서 눈만 쏙 내밀고서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 응……. 안 그래도, 박 비서님 곧 오실 거라고 했어. 오빠 보면, 집에 갈 거야……. 그렇지 주현아.”

나는 그 모습에 괜히 또 마음이 약해졌다. 동생이 우는 것에는 영 방도가 없는 나라서, 머릿속이 점점 포화상태가 되어 버리는 바람에 답답해져서 청바지 주머니에 넣어 둔 핸드폰을 꺼냈다.

“그, 비서 연락처가…….”

내 앞에 위압적인 덩치를 가진 그 애가, 갑자기 내게 손을 훅, 뻗었다. 내가 미처 어쩌기도 전에 내 멱살을 부여잡고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그 높이로 죽 끌어당기는 덕분에 끌린 목이 졸려서 숨이 막혔다.

“윽!”

“주현아, 왜, 왜 그래, 우리 오빠 놓아줘, 응?”

그 모습에 가연이도 놀랬는지, 주현이의 등에서 떨어져서 그 억센 팔을 붙잡고 말렸다. 나는 갑작스러운 행동으로 끌려온 품에서 벗어나려고 손으로 퍽퍽 쳤는데, 그 애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관자놀이부터 해서, 귓등, 귓바퀴 그러다가 목덜미 쪽으로 그 콧날을 들이대고 킁킁거렸다. 거친 숨결이 살결을 후벼드는 감촉에 나는 간지러워서 몸을 움츠렸다.

“왜, 왜 이래…….”

“냄새, 냄새 나……. 에스퍼 냄새…….”

“주, 주현아. 놔줘, 나 목……. 아파.”

“……아.”

내 말에, 마구잡이로 잡혔던 멱살이 살짝 힘을 잃고 느슨해졌다. 그에 나는 아픔에 찡그렸던 얼굴을 피고, 비로소 나를 내려다보는 주현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저무는 햇살을 등진채로 깊은 굴곡만큼이나 어두운 그림자를 서린 얼굴은 눈만 호선을 그린채로 살벌한 목소리로 나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누구야?”

“무, 슨……. 켁.”

“주, 주현아. 우리 오빠야. 이상한 사람 아니야……. 그 손, 손 놔줘. 착하지?”

가연이는 어쩔 줄을 모르고 우리 옆에 붙어서 말을 붙이고 있는데, 주현이는 고개를 조금도 까딱이지 않고 그 형형한 눈을 내게 들이대었다.

“아까, 통화한 사람?”

나는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주현이의 모습은 둘째 치고, 동생이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가 다칠까 걱정이 되어서 내 멱살을 잡은 손 위로 내 손을 두었다. 혹시라도, 이 커다란 손이 동생을 실수로라도 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 정도로, 이 애의 이질적인 덩치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누구야.”

“주……. 현아.”

‘진정하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뭐라고 하지. 이 손 좀 놓으라고?’

내가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우습게도 나를 놓지 않을 것만 같던 그 흉기 같던 주먹이 스르르 풀렸다. 아까와 달리 살짝 달아오른 얼굴과 함께.

“……응. 가하.”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이름을 불러 주는 것 하나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그 애의 태도에, 나는 혹시나 싶어서 다시 떨리는 목소리를 다잡고 말했다.

“주현아.”

“응, 가하……. 형.”

그 말 한 마디에 그 애는 마치 잘못을 한 어린아이처럼, 내 멱살을 잡은 손을 뒤로 숨기고 뺨을 장밋빛으로 물들이며 부끄러운 얼굴을 했다. 나는 그 모습에 멱살을 잡혔던 것도 잠시, 살짝 헛웃음이 나왔다.

‘진짜……. 정신이 안 좋구나. 조금도 아니고 많이.’

그 커다란 덩치와 단단해진 얼굴은 나랑 비슷한 나잇대라는 것을 반증이라도 하는 것 같은데. 마치 하는 짓은 어린 애와 다름이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

“……내가 왜 형이야. 이젠, 네가 더 크니까……. 형이지. 기억 안 나?”

내 말에 주현이의 파란 눈이 살짝 뜨였다가, 살풋이 웃었다. 우리가 이 다음에 키가 더 큰 사람에게 형이라고 부르기로 한 것을 기억해냈는지 무척 반가운 표정을 했다.

“응……. 그랬지, 가하.”

“잘……지낸 건 아닌가. 너도, 많이 컸네.”

대호를 만나고, 또 다른 옛 친구의 습격에 나는 그동안 지난 세월이 참 길었다는 것을 비로소 자각할 수 있었다.

그저, 세월의 파도를 비껴간 이 애의 행동만 아니면…….

“오빠…….”

나는 옆에 안절부절 못하는 동생의 팔을 툭 잡아서 끌었다. 그래도, 마침 잘됐다.

‘이참에 가연이 알바 그만 할 거라고 말해야겠네.’

어제 대호랑 술 마시면서 말했는지 아닌지도 생각이 나지 않아서, 나는 차라리 이렇게 만나게 된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가연아, 방에 가 있어.”

“어?”

“나 잠시 좀, 얘기 좀 하게……. 방에 들어가 있어.”

“으응……. 근데 둘이 아는 사이였어? 아까 황 변호사님도 그렇고……. 뭐야.”

나는 동생은 모를 이야기들에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며 가연이의 팔을 밀었다.

“가……. 나중에, 얘기해 줄게.”

“……알았어.”

내 말에 가연이는 주현이와 나를 번갈아 보다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쾅, 하고 닫히는 문소리와 동시에 내가 주현이에게 몸을 돌리자, 마치 잘 훈련된 강아지처럼, 그 애는 나를 향해서 시선을 고정하고 먼지가 풀풀 나는 햇빛을 배경으로 반짝 반짝 웃었다. 그 커다란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티 없는 웃음을 보자니, 몸이 훌쩍 커 버린 이 애에게 아직도 그때의 어린애가 남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주현아.”

“응. 가하 형.”

그 맹목적인 대답에, 나는 작게 웃음이 터졌다.

‘형 아니라니까…….’

“……나, 기억나?”

지금의 나는, 그때처럼 잘 살지도 않았고, 우리가 그때처럼 좋은 학교를 같이 다니는 것도 아니었으며, 그때의 순수한 시기를 지나 이제는 세상의 먼지를 너무 많이 뒤집어 써 버린 상태일 텐데.

‘이런 나를 보고도 그때의 나를 기억하는 걸까.’

내 의문 섞인 말에, 주현이가 몸을 좀 더 수그려서, 이질적인 푸른 눈을 내 눈앞에 닿을 듯이 대었다.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은 눈빛이었다. 그러다가,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내 주위를 빙빙 돌았다. 마치 진짜인지 아닌지 가려내는 것처럼. 그러다가 내 뒤에 서서 보다가, 목 뒤를 보는지 시선이 좀 따갑다 싶을 때에, 뒷목의 살결을 콱, 파고드는 생경한 아픔을 느꼈다.

“윽!”

그런 나를 꼼짝도 못하게 뒤에서 감싸듯이 안아오는 주현이의 행동에 나는 마치 사냥개에 물린 오리마냥 목 근육을 움찔거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뜨뜻하고 끈적거리는 입안의 열기가 물린 자국에 곰살 맞게 얽혀 오면서, 푹 파인 잇자국을 물컹한 혀가 더듬었다.

‘왜, 왜 이러지?’

나는 반가움의 표시치고는 너무 격한 행동에 내 복부를 둘러싼 팔을 잡았다.

“주, 주현아. 아파, 그러지 마……. 왜 그래?”

“응?”

주현이가 내 목과 척추가 맞닿는 도드라진 뼈를 감싼 피부를 아프지 않게 잘근잘근 씹었다. 씹힌 잇자국에 묻어나오는 질척한 타액 소리를 쩝쩝대며 정리하면서 내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아파?”

“응……. 그러지 말고, 우리. 말로, 말로…….하자.”

“나도 아파.”

주현이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아프다고 하는 말에 나는 당황했다.

“아, 아파? 어디가?”

정신만 좀 그렇지, 몸은 멀쩡해 보였는데, 어디가 또 아픈가? 내 질문에 침이 잔뜩 묻어서 숨결 하나하나 닿는 게 유난히 예민하게 느껴지는 목덜미에 대고 주현이가 조근 조근 말했다.

“마음.”

“……마음?”

‘웬 마음? 애도 아니고……. 아, 애 맞나…….’

실없는 소리에 내가 얼이 빠져 있는데, 주현이가 말을 계속해서 이었다.

“응. 가하, 갔어. 말도 없이. 나 버리고 갔어.”

“…….”

“그래서 아파. 마음.”

그 말에 나는 입이 다물렸다. 그러려고 한건 아니다. 그럴 줄 몰랐다는 게 맞을 것이다. 집이 망해서, 그렇게 헤어질 줄 몰랐던 것인데, 그 옛날의 일을 가지고 주현이는 속상한지 내 머리에 대고 뺨을 대고 부루퉁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래서 기다렸어……. 착하지, 나?”

마치 칭찬해 달라는 듯이, 그 애는 아까의 그 수줍은 표정과 함께했던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가하 냄새, 생각하면서……. 기억하면서……. 계속.”

그 말에 나는 전에 가연이가 말한 냄새가 생각났다. 그리운 냄새를 맡았다는 거.

‘설마 그 냄새……. 나였던 걸까?’

나는 그 말에 조그마한 죄책감을 느꼈다. 사고로, 정신이 멈춰 버린 애에게 나는 도대체 어떤 의미였을까. 그 20년의 세월동안 어디 갔는지 모르고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을 기다린다는 마음은……. 어땠을까. 아까전의 격렬한 환대가 어쩐지 조금은 이해가 될 거 같기도 했다. 그게 보통의 시선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지만.

‘그때’에 시간이 멈춰 버린 애라면…….

“……미안해.”

“……왜?”

“기다리게 해서…….”

내 말에 주현이는 마치 ‘동물농장’에 나오는 강아지들이 애교를 부리듯이 내 뺨에 제 뺨을 비볐다.

“괜찮아. 이제부터, 같이 있으면 되니까. 우린 늘 함께야, 그렇지?”

어렸을 적에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주현이는 다시 되뇌었다.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그게 지켜질 거라 믿는 그 순수한 말에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때의 순수함은 참 변함이 없었다.

“응…….”

주현이가 베어 물은 내 목덜미에 도톰한 그 입술을 대고 중얼거렸다.

“착해, 가하.”

그러고 내 몸을 돌려서 작게 입을 맞췄다.

“아.”

“나, 기뻐.”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지.’

“그, 그러지마.”

“응?”

그 행동에 내가 당황스러워서, 가까이 있던 주현이를 밀어내었다. 그러면서 보게 된 그 애의 붉은 입술에 검붉은 자국이 말라 붙어있었다. 그에 혹시, 싶어서 나는 아까 물린 목덜미 쪽을 손으로 훑었다.

“아야.”

그러자 상처 특유의 쓰라린 감촉과 함께 손마디에 붉은 핏자국이 쓸려 나왔다. 어쩐지, 무척 아프다 했다. 피가 철철 나오는지 등을 타고 주륵, 흐르는 액체의 흐름에 나는 등을 떨었다. 아무리 어린애로 남았다지만, 이건…….

“그런 거 하는 거 아니야. 우리 이러면 안 돼.”

“왜? 우리, 인사야. 기억나?”

순간, 주현이가 자기 검지로 입술에 묻은 핏자국을 훔치더니, 마치 초콜릿을 먹는 애처럼 쪽, 빨아먹었다.

“달다.”

입술만큼이나 생생한 색을 띄는 혀가 하얀 손가락 마디마디를 끈적하게 느른히 스치고 지나갔다. 색정적이라고 하나. 어린 애로 남은 애에게 이런 말을 붙이면 안 된다고 생각은 하는데, 감각은 명료하게 전달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흥분도, 긴장도, 섬뜩함도 무엇도 아닌 것이 아랫배에서 웅크려 있는…….

이상한 기분.

“아니, 인사 아니야. 이러면…….”

그때도 분명 이거 안 된다고 그랬는데, 설마 고쳐지지 않은 건가. 우리나라에서 이건 인사가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 주현이가 피가 묻은 내 손을 잡고 쪽쪽 입을 맞췄다. 마치 소중한 것을 경배하는 경건한 얼굴로, 하나라도 흘리면 안 된다는 듯이 내 손가락에 자국처럼 묻은 핏자국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핥았다. 혀와 손가락이 얽혀가면서 비릿한 피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왜, 왜 이래. 주현아.”

“……왜?”

그 무지한 열욕에 달은 행위로부터 손을 빼려는데 굳건하게 잡은 팔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동시에, 그 간지러운 감각으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던 발목 부근에 강한 압력이 죄어 왔다. 내가 그 압박감을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까드드득, 하고 괴상한 소리와 진동이 피부에서 그 속의 뼈 사이로 가감 없이 전달했다.

“아, 아윽!”

난생 처음으로 겪어 보는, 생경한 고통이었다.

어느 쪽인지도 모르겠는 발목 한쪽이 내 눈앞에서 보란 듯이 기괴한 방향으로 꺾어졌다. 감각뿐만 아니라 눈앞에서 벌어진 모습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격통을 겪는 기분이 들게 했다.

“흐허, 허헉…….”

눈으로, 촉각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할 바도 모르고 그저 고통에 몸부림쳤다. 매일 같이 보던 낡은 장판 바닥 위에서 부들부들 떨고 비명을 지르는 나를 두고, 주현이가 실수를 했다는 듯이 혀를 쯧, 찼다가 싹 웃었다.

“이런, 실수했다.”

“어억……. 허억……. 아, 아…….”

나는 끊어진 발목의 고통이 온몸을 적셔 오는 것을 가까스로 버티며 얼굴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과 콧물을 범벅을 하고서 헐떡거렸다. 그런 나를 두고 주현이가 안쓰럽다는 듯이 내려다보았다.

“미안해. 하지만 나빴어, 가하가.”

“아윽, 흑……. 으윽…….”

내 고통스러운 비명을 들었는지, 가연이가 자기 방에서 급히 나와서 나를 보고 겁에 질린 얼굴을 했다.

“오빠!”

“아……아, 대……. 가……”

‘안 돼, 가연아……. 오지 마……. 위험해.’

아프면 정신이 나가 버린다더니, 진짜 그런 모양이었다. 내 눈이 절로 감기며 마치 죽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의식이 뚝, 끊겨 버렸으니까.의식이 끊기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그 섬찟한 목소리였다.

“다른 냄새랑 섞였어……. 내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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