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차를 어디다가 주차해야 하는 거지.”
나는 우선 삼라 건설 사옥의 지하 주차장으로 트럭을 몰고 내려가서 제법 널널한 자리에 트럭을 댔다. 내 낡은 트럭의 바로 옆에 주차된 외제차를 긁지 않도록 조심조심해서 문을 열면서 내렸다. 이렇게 말하면 웃길지도 모르지만, 분명 저 차들이 살아 있는 나보다도 비싼 몸값을 가지고 있는 게 보여서. 어디 흠하나 생기는 날에는 저녁 없이 일해서 갚으려고 해도 턱 없이 모자를 것이다.
‘차라리 내가 다치는 게 더 나을 정도면 뭐, 말 다했지.’
그렇게 자조적으로 웃으면서 내가 탔던 운전석의 문을 탕 닫았다. 가연이가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 늘 연주 알바를 찾아서 제 용돈이나 등록금에 충당하곤 했는데, 그 고용인 중에 삼라가 있을 줄은 몰랐다. 아니, 앞으로는 전혀 엮일 일이 없을 거라고 늘 생각했지.
“……오랜만이네.”
나는 피어오르는 옛 향수를 접어 두고, 터벅터벅 걸음이 울리는 지하 주차장에서 지상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찾았다. 지금의 나는 반짝 잘 살았던 졸부집의 아들도 뭣도 아닌, 그저 하루하루 연명하기 바쁜 사람이었으니까.
그때의 아득한 기억만큼이나, 이 거대한 기업도 내게는 이제 그저 별나라 세상이다.
주차장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에 올라섰다. 아직 점심이 되지 않은 애매한 시간이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커다란 사옥의 로비는 간간히 지나다니는 사람을 빼면 한적했다. 노가다판을 전전하는 나에게는 건물의 앙상한 뼈대와 갓 지어진 모습이 전부였는데. 이렇게 실질적으로 사람들이 이용하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조금 낯설었다.
‘나도 이거 지을 때 있었는데.’
그나저나, 역시 대기업을 다니는 사람들은 다들 나름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는 게 사소한 데서 티가 났다. 로비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깔끔하고 똑 떨어지는 옷태를 가지고 있던 탓이다. 다들 어디서 보고 저렇게 잘 입고 다니는 걸까. 나는 문득 스스로의 옷차림을 다시 돌아보았다.
“……그래도 나름 괜찮은 걸로 입고 왔는데.”
오랫동안 입어서 낡았지만, 그래도 깔끔하게 세탁하고 나름 다림질도 했다. 그런 정성이 무색하도록 원체 칙칙한 색깔의 체크 남방과 목 부분이 조금 늘어난 회색 티셔츠, 밑단이 헤져가는 청바지의 꼴을 숨기기엔 역부족이었다.
맨날 일하기 바빴고, 어디 놀러가거나 큰 행사 따위가 없다 보니 이런 옷만 입는 건 내게 당연한 것이었지만, 이런 곳에 오니 차이가 확 보여서 나는 좀 부끄러웠다. 가연이 대학 입학식 때 입고 간 양복은 그 사이에 살이 더 빠지는 바람에 영 벙벙해서 멍청해 보였고, 회사원도 뭣도 아닌 내가 입으니 무척 우스꽝스럽기가 짝이 없어서 그냥 평소 입던 옷을 입은 게 후회가 되었다.
‘그 하얀 와이셔츠라도 입고 올 걸 그랬나.’
평소에는 공사판에서 구르는 아저씨들과 함께여서 옷차림 따위에 신경 쓸 일이 없었는데. 오늘따라 확연히 티가 나는 옷차림이었다. 나는 어깨에 잔뜩 긴장을 두르고 인포데스크에 앉아 있는 직원에게 다가갔다.
“인포……가. 여긴가?”
대호가, 아니 황대호 씨라고 해야 하는 건가?
‘아직 진짜 그, 대호인 줄은 모르니까.’
내가 두리번거리면서 인포에 도달하자 직원이 버릇처럼 붙어 버린 웃음을 만들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아, 저. 그……. 여기 법무 팀 직원과 약속이 있어서요.”
“직원 분 성함 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법무 팀에 연락드릴게요.”
직원은 웃음기 어린 눈으로 나를 살살 뜯어보더니 인포데스크에 있던 인터폰을 들었다.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황……. 대호 씨, 입니다.”
내 말에 직원은 반가운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 황 변호사님 찾으셨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는 건가?’
나는 직원이 통화를 하는 동안 로비 한 면을 가득하게 채운 철제 트러스 구조의 투명한 유리 아트리움 아래에 서 있었다. 유리 너머로 쏟아지는 햇빛에 부시는 눈을 살살 비벼대었다.
“여보세요? 네, 여기 로비인데요, 황 변호사님 찾으시는 방문객이 계세요. 네. 잠시만요.”
‘저거 다 알루미늄이었지? 엄청 비쌀 텐데.’
대기업은 대기업이구나, 하는 참에 직원이 책상에 메모장을 꺼내고 펜을 쥐면서 내게 시선을 두었다.
“손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아……. 유, 가하 입니다. 유가연 가족 되는…….”
그 짧은 말을 하는데 유난히 느리게 넘어가는 목울대에 사래가 걸릴 것만 같았다. 다행히 그런 못난 꼴은 보이지는 않았지만, 온 몸을 타고 흐르는 긴장감은 두근대는 심장뿐만 아니라 목구멍마저 조여들게 했다. 직원은 곧장 수화기에 귀를 대고 사근사근하게 전달하면서 동시에 메모장에 내 이름과 동생 이름을 적었다.
‘와, 난 저렇게 동시에 하는 거 못하겠던데. 대단하다…….’
“유가연 님 가족 분이시랍니다. 성함은 유, 가하 님이라고…….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저, 유가하 님.”
다 끝난 건가. 직원은 인터폰의 수화기를 내려놓고 내게 시선을 맞췄다.
“예.”
“황 변호사님이 10분 안에 내려오신다고 하니까 여기 로비에서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밑에 카페도 있어서…….”
“아뇨.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로비 유리벽 근처에 간간이 있는 벤치로 걸어갔다. 목이 마른 건 둘째 치고, 속도를 줄일 새도 없이 점점 빠르게 펄떡거리는 심장이라도 좀 진정시켜 볼 생각이었다.
‘왜 이렇게 긴장하고 난리지.’
오늘 이곳에 온 건, 동생이 알바를 그만뒀으면 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다. 그 말을 듣는 변호사가 대호면 어떻고 아니면 뭐 또 어떤가.
‘세상에 같은 이름이 얼마나 많은데. 알고 보니 60대 할아버지 변호사일 수도 있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초록빛으로 코팅된 유리벽에 비치는 내 얼굴을 보았다. 아침 일찍 이발소에 가서 할인까지 받으며 오랜만에 깎은 머리는 그동안 덥수룩하게 자라서 죽 가렸던 귀밑과 목선을 유난히 도드라지게 보이게 했다. 나는 휑한 목덜미를 숱한 일 때문에 거칠어진 손바닥 아래로 연신 쓸어내리면서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은 뒷목을 풀었다.
‘머리 나쁘지 않네.’
그동안 시간도 없고 귀찮아서 내버려두다시피 한 머리였는데, 아무래도 정리하고 나니 사람이 깔끔해 보였다.
‘아직 시간은…… 멀었네. 화장실이라도 갔다 올까. 아니면 손이라도 씻고 와야.’
짧은 시간이 사람을 더욱 부채질하는지라 나는 괜히 안절부절 했다. 복잡한 마음처럼 흐트러진 머리를 손가락 사이로 빗고 있는데, 정면에 있던 유리 위로 엘리베이터 타워가 내려오는 움직임이 비쳐서 뒤를 돌아보았다. 카드키를 찍고 들어가는 입구 너머로 투명한 원통처럼 세워진 5개의 엘리베이터 타워 중 하나가 막 로비에 도착하는 것이 보였다.
‘저건가…….’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훅 일어섰다. 그렇지만 일어섰다고 할 수 있는 게 뭐 있겠는가. 지금 유난히 더 바보 같아진 자신을 멍청하다 탓하며 다시 앉으려는 순간,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며 훤칠한 키를 가진 양복 차림의 사내가 툭, 나왔다. 그 사내가 카드 키를 찍는 입구를 넘어오는 모습을 발견한 인포데스크의 직원이 반갑게 인사했다.
“아, 황 변호사님. 아까 연락 주신 손님…….”
“전달 고마워요, 수정 씨. 아 그렇지, 어디 계시죠? 그, 유…….”
“아 저기, 계시네요.”
그녀는 아까 메모지에 적어둔 내 이름을 깔끔하게 읽었다.
“유가하 님?”
“……예.”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나는 대답했다. 그 순간 나와 대호의 눈이 마주쳤다.
“……접니다.”
그는 양복바지 한쪽 주머니에 손을 넣었던 여유로운 몸짓을 천천히 물리며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많이 컸다.’
나랑 비슷한 아니, 아주 조금 컸던 어린 애는 온데간데없었다. 누가 봐도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 말랑하던 얼굴은 세월과 함께 단단한 이목구비를 뚜렷하게 내보이고 있었다.
“……너.”
유난히 낮은 목소리의 주인은, 내가 알던 대호였다.
내 짝꿍, 대호.
정말, 많이 컸다. 나는 알아보겠는데, 대호도 그럴까. 아는 척을 해야 하는 건가 싶은데 대호가 서 있던 자리에서 걸어왔다. 사람 없는 로비에 그 단정한 구둣발 소리가 뚜벅, 뚜벅 하고 울렸다.
“……가, 하. 가하, 너……. 맞지?”
고정된 내 시야에 보이는 그 조각 같은 입술도 작게 열렸다. 그걸 시작으로 무뚝뚝하게 굳어 있던 표정이 마치 얼음이 녹듯이 무너져 내렸다.
“……많이 컸다.”
말에는 영 재주가 없는 나인지라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내 앞에 바짝 다가온 대호는 내 키보다 조금 더 높은 시선을 내게 내리며 불안한 눈길로, 믿기지가 않는 다는 듯이 한참을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며 내 어깨를 조심스럽게 쥐었다. 내가 무슨 손대면 깨질 것 같은 유리 인형인 것처럼
‘그럴 리가 없지만…….’
아무튼 나는 나름 웃어 보려 노력하며 입 꼬리를 올려보았다.
“……대호야.”
나도, 이 상황이 당황스럽고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웃는 게 낫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도, 분명 웃으며 보냈으니, 다시 보는 얼굴도 웃는 게…… 낫겠지.
아마도.
“너, 너……. 살아 있었던 거구나…….”
내 대답에 대호가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뜨면서 숨을 거칠게 들이쉬었다. 그러고는 나를 폭, 안았다.
마치 어렸을 때, 그때처럼.
대호는 나를 꼬옥 껴안고서, 큰 키만큼이나 마찬가지로 커다란 손을 내 머리와 목덜미, 어깨, 등을 차례로 쓸어내리면서 믿기지 않는 듯 중얼거렸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끝에서 풍겨 나오는 그 진한 코롱냄새는, 그 애와 나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는 것을 알렸다.
“살아 있었어…….”
“……응.”
“어디…….어디 있었어? 누구랑 살았던 거야……. 건강한 거지? 어디 아픈데 있어?”
‘내가, 죽은 줄…… 알았나?’
이제는 내 어깨에 이마를 대고 급하게 숨을 쉬다가 떨리는 목소리를 내는 대호를 진정시켜보려 했다.
“나 괜찮아. 대호야. 나야 잘, 지냈지. 건강해. 너도 잘……. 지냈지? 어디 아프지 않고. 보아하니, 너도 그런 거 같다. 짜식.”
나는 어정쩡하게 안겨 있는 채로, 서투른 손길로 동생을 달래 주듯이 대호의 등을 살살 쓸어 주었다. 그러자 손바닥 너머로 대호의 급한 숨과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내 말에 대호는 나를 껴안은 손을 풀지 않고 내 얼굴에 자기 뺨을 비볐다. 정말 내가 존재하는지 싶은 몸짓이었다.
“그래……. 응.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그 뺨이 축축하게 젖어드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 어깨에 제 이마를 대고 조용히 흐느끼는 대호는 내가 어디라도 갈까, 계속, 계속 그 로비에서 나를 껴안고 중얼거렸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네 이름을 듣고서도 혹시, 혹시나 했어. 아니, 가연 씨가 너랑……. 너랑 무척 닮았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랬구나.”
‘동생이니까, 분명 닮았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대호의 등을 슬슬 쓸었다. 대호가 작게 헛웃음을 지었다.
“……나 믿기지가 않아.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 같아…….”
“……나도.”
이런 상황이면, 누구든지 그렇지 않을까.
나이를 먹은 우리지만 지금만큼은 그 옛날,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서 나도 픽, 웃었다. 대호가 안겨 있는 나의 뒷목을 살살 쓰다듬었다. 안 그래도 긴장하고 있었고, 커다란 손에 뒷덜미가 훅 들어가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게 쭈뼛하고 척추 쪽 신경을 자극했다. 내가 그 생경한 자극에 몸을 비틀자 대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웃었다.
“……우리 할 얘기가 많겠는데. 자리 좀 옮겨서 얘기할까.”
아. 그렇지.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옛 추억에 잠겨 있다가 다시 불러오는 생각에 정신을 차렸다.
가연이 알바.
“응, 안 그래도 말할 게 좀 있어서. 너만 시간 좀 괜찮으면…….”
내 말에 대호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시간 다 비워 뒀어. 가자.”
“어……. 어? 어디로?”
내 말에 대호는 그제야 나를 품 안에서 떼어놓고 젖은 검은 눈을 살풋이 웃어보였다.
“……오랜만에 같이 밥 먹을까. 마침, 점심시간이기도 하고……. 식사 아직 안했지?”
“……어……. 응. 아직.”
나 또한 반가운 건 사실이니, 고개를 끄덕였고, 대호는 나를 다시 폭 껴안았다. 못내 반가운 모양이었다. 그렇게 커다란 품에 나는 한참동안이나 안겨 있어야 했다.
“……그래. 잘됐다.”
내 짝꿍, 대호에게.
대호와 나는 지하 주차장으로 돌아가서 얕게 근황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뭐 먹고 키가 이렇게 컸냐는 둥, 어렸을 때랑 얼굴이 똑같다는 둥……. 그러다가 대호는 나를 자연스럽게 자기 차가 주차된 자리로 데려가서 조수석 문을 열고, 내게 타라는 듯이 싱글벙글 웃었다. 울다가 웃으면 뿔난다는데. 우리 집 애 같다.
“뭐 좋아해? 오랜만에 만났으니, 가하 너 먹고 싶은 거 먹자. 나 신경 쓰지 말고. 난 다 잘 먹어.”
“어……. 나도 딱히 가리는 건 없어서.”
“그래? 그럼 가면서 얘기하자. 우선 타.”
나는 얼렁뚱땅 대호의 차 조수석에 앉았고, 대호가 문을 탁, 닫으면서 운전석으로 냉큼 달려왔다.
“어…… 응. 고마워.”
“뭘.”
그는 키를 꽂지도 않고 버튼을 푹, 누르며 시동을 걸었다. 그게 내겐 조금 신기했다. 이 주차장의 수많은 외제차 중 하나가 내 친구의 것이라니. 난 차 종류를 그렇게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대호의 차에 달린 차 마크가 그 유명한 벤츠라는 것은 알았다. 분명, 비싸겠지. 이건 좀 촌스러운 반응인가. 내가 그걸 보고 있는 동안 좌석에서 시끄러운 경보음이 울렸다.
‘뭐지?’
내가 당황하며 앉은 좌석에서 허리를 세우고 이리저리 살피고 있는데 대호가 풋, 하고 웃으며 내게 숨이 닿을 만치 다가왔다. 가까워진 그 품에서 아까 맡은 진한 코롱 향기가 훅 풍겼다. 다시 맡아도 냄새가 제법, 좋았다. 뭔가 묵직한 냄새가……. 딱 대호 같다고 할까?
“안전벨트 해야지.”
그러고는 어린애에게 해 주듯이 내 머리 옆에 위치한 안전벨트를 죽 꺼내서 꽂아 주었다. 그제야 시끄러운 경보음은 멎을 수 있었고, 나는 그 경보음이 안전벨트를 매지 않아서 나는 거라는 걸, 그때 알았다. 아, 쪽팔려……. 나는 낡은 운동화 코를 쳐다보면서 작게 사과했다.
“아……. 미안. 몰랐어.”
“뭐가. 가하, 너 면허 아직 없어? 여기 어떻게 왔어, 지하철?”
대호는 짙은 곤색의 양복 재킷을 뒷좌석에 휙 던져놓고 셔츠의 팔을 걷어붙인 후에, 시동이 걸린 차의 핸들을 돌리면서 후진을 하다가 나를 보면서 살짝 웃었다.
“아니야. 있어. 이 나이 먹고 없으면 안 되지. 차, 타고 왔어. 저기, 주차해 뒀는데…….”
“없으면 뭐 어때. 아, 그럼 이따가 차 번호 알려 줘. 주차증 발급해 줄게.”
그는 백미러를 죽 보면서 핸들을 이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 하다가 방지 턱을 한두 번, 넘어가며 우리가 있던 지하 주차장을 부드럽게 빠져나갔다. 누가 봐도 여유로워 보이는 태도에 나는 대호가 무척 멋있게만 보였다.
‘진짜 사내자식 다 됐네.’
그게 조금, 부럽기도 했고.
“고마워.”
“뭘, 참 우리 점심. 내가 자주 가는 일식집 있어. 초밥 괜찮게 해. 회 좋아해?”
“어, 응. 좋아해.”
‘점심은 내가 내야겠다. 마침 어제 일당도 온전히 받았으니까.’
우리가 대로로 빠져나와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내 대답에 대호가 시원스레 웃었다.
“그래, 다행이다.”
마치, 동생과 저녁마다 보는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처럼.
“자주 먹자. 그렇지, 일하다가 심심하면 놀러와. 맨날 밥 사 줄게.”
“에이. 바쁜데 뭘.”
그는 핸들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손목시계를 찬 왼손을 올려 둔 채로, 옆에 앉은 나를 보면서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안 바빠. 요즘 한가해서 미칠 지경이었어.”
나는 그걸 농담으로 넘겼다. 정 많은 성격은 참 어디를 가지 않는다. 20년이나 지난, 얼굴도 생각나지 않을 동창을 이렇게 살뜰히 챙겨 주고.
“에이, 그럼 나 같은 놈 말고. 네 여자 친구랑 좋은 시간 보내야지.”
“……그런 거 없어.”
“응?”
그때 딱 신호가 초록색으로 변하면서 차가 부드럽게 나갔다. 대호는 여전히 도로를 쳐다보며 내게 말을 걸었다.
“너도 그러네. 다들 그러더라, 내가 애 셋은 숨기고 있을 거 같다고. 왜 그렇게 생각했어?”
“어……. 어. 아무래도……. 우리 나이가 있으니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그냥, 가만히 하는 걸 보면 어딘가 배려가 묻어 나오는 게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대호는 깜빡이를 한 번 키면서 나에게 자연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런가. 그럼, 가하 넌 누구 사귀는 사람 있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에이 나한테 무슨. 없어.”
대호가 픽, 하고 살짝 웃었다.
“그래? 그럼 예전엔 있었어?”
“아니. 딱히 그럴 여유가 없어서…….”
“왜? 널 마다하는 여자도 있어?”
“그건 잘 모르겠고……. 그냥. 동생 챙기는데 바빠서 그랬지. 그러다가 이렇게 나이 먹고.”
내 말에 대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연 씨? 첼로 잘하던데. 그럼 가하 너도 첼로 하는 거야?”
“아니. 난 아냐. 난 돈 버느라.”
대호는 깜빡이를 툭, 끄고 부드럽게 차를 꺾었다. 대호는 차가 신호에 걸려서 멈추자마자 나를 향해 한 번 그 진한 눈길을 줬다. 유난히 시선을 맞춰하고 싶어 하는 모습에 나는 조금 웃음이 나올 거 같았다. 이러니까 여자 친구 있냐는 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너, 인기 많은데 알고 보니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냐?’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대호가 씩 웃으면서 물어보았다.
“그럼 지금 뭐해, 회사 다니는 거야? 오늘 월차 냈어?”
“아……. 그런 건 아냐. 그냥 일…… 해. 오늘은 그냥…….”
휴가라면 휴가인가? 내가 고민하는 와중에 대호는 빠르게 반문했다.
“무슨 일?”
그 단순한 질문에 내 가슴이 덜컹, 하는 환청을 들은 것 같았다. 요즘 따라 왜 이렇게 가슴을 뒤흔드는 일이 있을까. 이 애도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분명 많은 노력을 했을 거고, 나도 쉽게 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위치의 차이에서 오는 위축이 나를 에워싸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런 마음 때문에 내 입에서는 머리로는 알고 있는 대답이 쉽사리 나오지 않아서 조금 머뭇거렸다.
“……공사장에서 일해.”
“……힘들지 않아?”
내 말을 듣고도, 대호는 가만히 그렇게 물어보았다. 그 말 어디에도 한 점의 경멸도, 무시도 없었다.
“……그냥. 하는 거지. 이젠 좀 익숙해져서 할 만 해.”
“다행이네. 어느 파트에서 일하는 거야?”
왜 그런 일을 하는 건지, 그런 질문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 형태 없는 배려심에 나는 훅 조여 들던 심장이 조금, 편해졌다. 나는 그런 착한 대호를 향해 작게 웃어 보였다.
“난 바닥 만들 때 철골을 와이어로……. 고정하고 그래. 다른 파트 아저씨들도 도와드리기도 하고……. 그래도 주로 그런 거 해.”
“……그럼 손재주가 좋겠다.”
“아무래도. 맨날 하다보니까.”
나는 거친 손을 무의식적으로 펼쳐서 쓱, 보았고, 그런 내 손 옆으로 대호의 커다란 손바닥이 불쑥 다가왔다. 그러고는 내게 손을 슬슬 흔들었다. 나는 영문을 모르겠어서 대호에게 말이 나갔다.
“……왜?”
“너 손 보고 싶은데, 운전하느라 못 보겠어서. 이리 손 좀 줘 봐.”
“무슨 손 같은 걸 봐. 동생처럼 뭐 고운 손도 아닌데.”
나는 투덜거렸고, 대호는 운전하느라 못 본다고 그랬으면서 다 보고 있는 거 마냥 내 손을 덥석 쥐었다.
“야아. 왜 그래.”
“좀 말랐다, 너. 뼈밖에 없네.”
대호는 내 손을 제 손에 쥐고 살짝 주무르면서 감상을 읊었다.
“잘 좀 먹여야겠는데. 힘쓰는 애가 이래서 잘하겠어.”
사내자식 손이 뭐 그리 만져댈 게 있는지, 그는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는 것처럼 내 손마디를 집요하게 지분대었다. 특히 약지를. 그러다가 약간 만족스러운 얼굴로 내게 진지하게 말했다.
“예전에도 딱 이만했는데, 네 손.”
대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엄지로 내 손등을 슬슬 쓸다가 얼굴에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별것도 아닌 말이고, 그냥 손 한 번 만지는 건데, 그게 좀 기분이…….
“……넌 늘 여전하구나.”
야릇했다.
“……그런가.”
‘잘, 모르겠는데…….’
나는 잡힌 손이 신경 쓰여서 뻣뻣하게 굳은 손목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대호가 문득 손가락 사이로 제 손가락들을 끼워 넣었다. 마치, 친한 여자애들끼리 손잡는 것처럼. 나는 여린 살 사이로 닿는 커다란 마디에 깜짝 놀랐다.
“뭐 해.”
“응. 딱 맞네.”
“……너 지금 손 크다고 유세 하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닌데……. 그냥, 딱 기분 좋게 맞잖아.”
“빼. 운전에 방해되잖아.”
내가 그렇게 말하면서 따뜻하게 감싸오는 대호의 손에서 내 손을 빼내려고 하는데 대호가 내 손이 어디 가지 못하게 콱, 붙잡았다.
“잠시만. 잠시만, 이러고 있자.”
“…….”
“오랜만에 봐서……. 그래.”
오랜만에 나를 바라보는 대호의 눈빛에는 익숙한 눈빛이 담겨 있었다.
그리움.
마치 내가 박 씨 아줌마와 같이 찍은 사진을 볼 때 마다 보이는 감정이었다. 대호는 허탈한 듯,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얕게 쉬면서 신음했다.
“나 아직도……. 눈 감으면, 가하 네가 또 없어질 거 같아. 막…… 불안해.”
“불안하긴…….”
거기에다 두고 손을 떼라고 하기도 뭣해서, 나는 차가 멈출 때까지 대호와 손에 깍지를 낀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 시간동안 우리가 떨어져 있던 세월의 간격이 조금 줄어든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낯 간지러운 시간도 잠시, 대호가 나를 자기 차에 태우고 데리고 간 곳은, 비싼 동네라고 소문난 동네에 위치한 음식점이었다. 어디 눈에 띄는 간판 하나 없이 미닫이문만 덜렁 있는 곳을 대호는 익숙하게 열고 들어갔다. 매니저 같은 사람이 주름 하나 없는 양복 차림으로 나와 대호를 맞이했다.
“아, 황 변호사님. 아까 연락 받았습니다. 내실로 안내 드리겠습니다.”
“예. 오늘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대접 한번 하려하니까 신경 좀 써 주세요.”
매니저는 대호의 말을 듣고 나를 향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우리는 그녀의 안내 아래 손수 열어 주는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서 개인실에 앉았다. 자동문 마냥 매니저의 손길로 부드럽게 닫히는 문을 뒤로 하고, 내가 멀거니 서 있는 것을 두고 대호가 나를 억지로 자리에 끌어서 앉혔다.
“편히 앉아. 왜 그러고 서 있어.”
“아니, 그냥…….”
이 나이 먹고 이런데 처음 와 본다는 소리를 하기도 좀 부끄러워, 뻣뻣하니 방을 둘러보고 있는데 대호가 내 맞은편에 앉아서 쿡쿡 웃었다.
“살만 좀 빠졌지. 성격은 여전해.”
“응? 아니 뭐……. 바뀔 만한 게 뭐가 있겠어.”
“그런가.”
그는 아까 처음 봤던 그 진지한 얼굴이 거짓말이라는 듯, 웃음을 죽일 줄을 모르고 계속 웃었다. 그게 나를 못내 더 긴장시켰다. 그런 우리들에게 금방 방을 안내해줬던 매니저가 들어와서 따끈하게 덥힌 물수건과 차를 건넸다. 대호는 손을 닦으면서 익숙하게 주문을 했다.
“특대 자로 주세요. 닷사이도 하나……. 참, 가하 너 술 마시지?”
“어? 어. 가끔.”
잘 마시는 건 아니지만. 내 말을 듣고서 대호는 기분 좋게 끄덕였고. 주문을 받는 매니저도 나를 은근히 살피며 말을 걸었다.
“뭐하시는 분이시길래, 저 이 집 운영하면서 황 변호사님 이렇게 웃는 거 처음 봅니다. 닷사이 먼저 준비해서 드릴게요.”
‘대호가 잘 안 웃나?’
그러기엔 너무 잘 웃고 있는데. 심지어 아까는 조금 울다가 웃었지…….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대호를 바라봤고, 대호는 그런 나를 보다가 툭 내뱉었다.
“……소중한 사람이죠.”
“어머. 그럼 혹시……. 가이드신가?”
그녀는 나를 살피면서 은근히 물었고, 나는 대호의 말에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농담도, 지금 뭐라는 거야.
“아,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부끄러움이 많으시네.”
그녀는 애교 있게 웃어 가면서 준비해 오겠다고 떠났고. 나는 이제 대호를 쳐다보기도 뭣해서 손을 마주 잡은 채로 내 앞의 상 위에 놓인 물수건과 찻잔을 봤다. 내게 대호가 덤덤하니 말했다.
“맞는데. 소중한 사람.”
“너 자꾸 나 놀린다. 그러지마.”
“놀리는 거 아닌데. 안 믿네.”
나는 그때에도 그게 농담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오랜만에 만난 단짝 친구는 무척 남자다웠고 누가 봐도 성공한 사회인이었으니, 그저 옛 친구를 좋게 말해 주는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이 되지 않았다. 내 작은 불만에도 대호는 픽 웃었다. 그 사이에 대호가 시킨 술과 전채 요리가 나왔다. 매니저가 대호와 나에게 차례로 술을 따라 주고 나서 나가자, 대호는 술잔을 들어서 내게 건배를 권했다. 나도 어색하게 술잔을 들어서 찡 소리가 나게 부딪히자 대호는 술을 훅 털어 넣었다. 입안에 부드럽게 퍼지는 술 향은, 작업이 끝나고 아저씨들이 가끔씩 사 주는 소주 맛과는 전혀 달랐다.
“가하야, 많이 먹어.”
“으응, 그래도 술 적당히 먹자. 너 다시 들어가서 일해야 하지 않아?”
내가 술을 잘하는 것도 아니기도 하고. 대호도 잠시 나온 건데 시뻘건 얼굴로 들어가는 것도 좀 그렇지. 내 말에 대호는 비어 버린 내 잔에 바로 따라 주며 어렸을 적에 풍기던 그 장난스러움을 숨기지 않고 내게 속삭였다.
“바가지 벌써 긁는 거야? 안 그래도 돈 잘 버는데……. 더 벌어와?”
“……아저씨한테 바가지 긁어서 뭐 나오겠냐.”
내 앞에 놓인 전채 요리는 폭신한 계란찜 같은 것이었는데 술 향으로 가득 찬 입안에 입맛을 돋웠다. 그는 곧이어 자기 잔에도 술을 따르더니 한 번 홀짝였다.
“뭐 나올까, 계속 긁어 봐. 로또 나올지도 모르잖아.”
나는 그 말에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공사판 아저씨들도 이런 구닥다리 농담은 하지 않는데. 진짜 나이 먹었구나, 너.
“……회사에서 일 많이 시켜?”
그도 전채 요리를 먹다가 나를 보면서 고민하다가 말을 꺼냈다.
“……그냥 저냥. 왜?”
“그런 아저씨 농담하는 거 보니까, 일이 많이 힘들구나 싶어서.”
내 말에 대호가 계란찜을 먹다가 사래가 걸렸는지, 큭, 하고 마른기침을 쿨럭쿨럭 했다.
“큼, 큼. 방금 아저씨 같았어?”
“아저씨 맞잖아. 너도, 나도 나이 앞에 3 달았으면 이제 뭐, 아저씨지.”
그렇게 말하자 대호는 살짝 웃었다.
“큰일 났네. 애도 없는데 벌써 아저씨가 되어 버렸어.”
“능력도 좋은 녀석이 무슨 걱정이야. 지금이라도 좋은 여자 찾아서 그런 웃기지도 않는 농담 해 줘.”
칙칙한 나 말고, 얼굴이 아깝다. 뭘 먹고 컸는지, 키도 키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보아도 대호는 제법 사내다운 티가 났다. 어디 TV나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처럼, 뚜렷하면서도 묵직한 분위기가 난다고 할까. 가만히 있어도 박력이 느껴졌다.
‘그런 애가 연애를 못한다는 건 이 세상 여자들이 장님이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내 말에 대호는 장난스러웠던 미소를 지우고, 아련하게 술잔을 보다가 잔잔히 웃었다.
“좋은 여자보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그러고 싶다.”
역시, 눈이 높구나. 원래, 사람 마음이 제일 종 잡을 데 없고 다스리기 어려운거 아니겠는가. 눈에 차는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능력 좋은 녀석이니, 비슷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관심도 없으려나.
‘그래도 본인 능력 하나는 좋으니. 제 좋은 사람 찾기만 하면 어떻게든 잘 살겠지…….’
여자 친구가 있어 본 적도 없는 나는 휑한 목덜미를 머쓱하게 긁었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은 너 싫대?”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어.”
“……응.”
나는 들이키는 대호의 술잔에 얼른 술을 채워 주었다. 무슨 일 있었구나. 그러자 대호가 나를 보면서 또 금방 술잔을 비웠다.
“체하겠다. 천천히 마셔.”
“……사고로 죽었다고, 생각하고 이제껏 살았어.”
“…….”
대호의 솔직한 말에 나는 가만히 바라보면서 곧 나올 말을 기다렸다. 대호의 진지한 얼굴에 눈물은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지금이라도 울 것 같다는 분위기가 풍겼다. 그런 대호는 애써 웃으며 잔을 내게 내밀었다.
“……오랜만에 너 만나니까 술 맛이 참 좋네. 짠 하자.”
“……힘들었겠네.”
그게 더 안쓰러워보였다. 자세한 이야기도 모르고, 그냥. 난 대호에게 지나가는 사람밖에는 되지 않지만 그 짧은 말에는 많은 감정이 묻어 나오는 게 느껴졌다.
“응.”
“그래도, 그 사람도 기뻐할 거야. 너 이렇게 잘 크고, 잘된 모습 보면…….”
“그래? 나 잘 큰 거 같아?”
“그럼. 변호사 되는 거 무척 어려운 거잖아. 게다가 크고 좋은 회사에 다니고……. 금방, 좋은 사람 찾을 거야.”
내 위로가 통한 것인지는 몰라도, 대호는 잔잔히 웃었다.
“그런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땐 다 끝내 버리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살벌하기가 짝이 없어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마. 부모님 슬퍼하시겠다. 너 이렇게 잘 된 모습 보면 뿌듯하실 텐데 그러면…….”
“……너는?”
“응?”
대호는 벌건 기색하나 없이 내게 물어보았다.
“나 보면, 뿌듯해?”
“그럼.”
나는 또 금세 비워진 대호의 잔에 술을 따라주고 나도 같이 마시면서 위로를 더했다. 나도 그랬지만 대호도 만만찮은 삶을 살아 온 듯 했다. 동질감이라고 하나. 겪어 온 사람이라 더 잘 보이는 걸까. 우리는 본격적인 요리가 나오기도 전에 서로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따위의 이야기를 하다가 이미 이 커다란 술병의 반을 비워 버리고 말았다.
“……아줌마 돌아가시고……. 그렇게 된 거지.”
“……그랬구나. 그래도 다행이네.”
“응……. 나도 뭐, 얼마 살진 않았지만……. 그래도 힘든 날이 있으면…….”
그 와중에도 서로의 몫이 담긴 요리가 계속해서 나왔다.
“좋은 일도 있더라.”
나는 그렇게 말했다. 너무 빠르게 마신 탓에 슬슬 올라오는 술기운으로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팔꿈치를 상에 올리고 머리를 살짝 기대었다. 그런 나를 보고 대호가 웃었다.
“가하.”
“응…….”
“더 먹어. 어지러우면, 벽에 기대도 돼.”
“응……. 조금만 쉬었다가, 미안. 나 술을 잘 못해……. 근데, 이거 무슨 술이야? 되게 맛있다.”
나는 열이 올라서 가려워진 쇄골 근처 살을 긁으면서 무거운 눈꺼풀을 껌뻑거렸다. 입에 도는 술의 단 맛에 나는 우리가 마시던 상 위의 병으로 손을 뻗었다. 내가 손에 쥔 병에는 뭐라고 적혀 있었는데, 일본어 같은 게 잔뜩 적혀 있는지라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그게 술기운에 휘휘 흔들리는 시야라면 더욱, 대호의 대답이 내 귓가에 내려앉았다.
“닷사이라고, 일본 술. 몸 괜찮아?”
“응.”
언제 온 것인지 내 옆에 바짝 온 대호가 어질거리는 시야에 확 들어와 있었다. 대호가 하얀 셔츠 위로 입은 부드러운 베이지 색의 니트가 유난히 내 눈에 띄었다. 대호는 따끈하게 열이 오른 내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그럼 더 마셔.”
“아냐……. 나 내일 일하러 또 가야 해. 공사장에서 술 먹으면 안 돼…….”
대호의 손은 꽤 시원했다. 그게 뭔가, 그리운 생각도 나고…….
“……또 공사장 가?”
“응……. 돈 벌어야지. 동생 대학 다녀……. 아, 알겠구나. 가연이, 걔 되게 착해. 그러니까 해 주고 싶어. 애가 어디 놀러가지도 않고 맨날 알바하고……. 그래서 미안하고…….”
내 말이 끝나자 우리가 마신 술 향기가 귓바퀴에 살살 불어왔다. 대호가 나를 어떻게 했는지, 안 그래도 술기운에 무거운 몸이 답답했다.
“응…… 그러더라. 너 닮아서 그런가 착해. 예쁘고.”
가연이? 그렇지. 예쁘지…….
“응. 우리 동생 예뻐. 그래서 걱정돼. 요즘 자꾸 내 말 안 들어……. 어쩌지. 누가 좋은 사람이 데려가야 할 텐데…….”
‘대호 너처럼, 능력 있고, 멋진 사람이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대호가 작게 웃었다.
“내가, 멋있어?”
“응? 응……. 멋있지. 완전. 부럽다…….”
나는 대호의 코롱 냄새가 나는 곳에 얼굴을 더 가까이 대었다.
‘냄새, 좋다…….’
“……좋아?”
“응…….”
그냥 다, 부럽다.
“……그래? 어쩌지. 나.”
점점 가물가물해지는 정신 아래로 나는, 하고 대호가 속삭였다. 꿈처럼 아롱지는 순간에 이런 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다.
‘너를 데려가고 싶은데.’
“안 가.”
‘가야지.’
몽롱한 정신 가운데 누가 그렇게 말했다. 눈꺼풀은 무게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뜨일 줄을 몰랐다. 나는 손으로 비비고 비벼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짜증을 부렸다.
“안 보여…….”
‘눈 빠지겠다. 가자.’
그는 나지막이 웃으면서. 내 손을 가볍게 쥐고 살살 흔들었다. 마치, 어린 애를 달래는 것처럼. 나 애 아니거든……. 반발심과 동시에 나는 애처럼 굴어 주고 싶은 반항심이 생겼다. 근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나 안 할래. 다 안 하고 싶어.”
‘왜.’
“……힘들어…….”
‘……힘들어?’
“응…….”
내 말에 모를 사람이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마치 위로해 주는 것처럼. 꿈인가? 꿈이라고 해도 그게 좋았다. 박 씨 아줌마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로 누가 내 등을 이렇게 한번 토닥여 준 적이 있던가. 오히려 내가 누군가를 위로하느라 토닥여 주면 모를까. 나는 그래서 유난히 무겁게 늘어지는 몸을 그 손에 질질 밀었다.
“더, 더해 줘…….”
그러자 내 등을 토닥여 주던 손이 잠시 멈췄다가 나를, 붕, 하고 띄워 올렸다. 내 둔해진 몸이 거기에 반응하기도 전에 그 토닥이던 따뜻한 손이 붕, 떠 있는 나를 받치고 등을 다시 살살 쓸어 주었다. 그 편안함에 나는 마음이 따뜻하게 어루만져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햇살이 비치고 있는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미치겠네.’
“왜, 왜 미쳐…….”
어제 별 거 안 했는데……. 왜 이렇게 몸이 피곤하지. 나는 자꾸 빙빙 도는 머리를 똑바로 세워 보려고 하면서 나를 토닥여 주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꿈인데 좀, 미쳐도 돼.”
‘……어떻게?’
“음……. 나 아무것도 안하고, 잘 거야.”
평소 같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생각을 나는 막 하나둘 씩 내뱉었다.
“집 청소도 대충하고, 밥도 대충 먹고, 방에서 잠만 잘 거야…….”
‘…….’
“나 잘 거야. 피곤해…….”
그렇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내일도 일하러 가야해. 가기 싫지만.”
나는 그렇게 투정을 부렸다. 어차피 꿈속인데, 이런 말 저런 말 하면 어때.
“그러니까 그만 좀 깨워. 알았지. 나 일찍 일어나려면 지금 자야 하거든…….”
내 말에 꿈속의 사람이 대답했다.
‘……그렇지. 꿈이니까…….’
둥실둥실 떠다니던 내 몸이 멈추자 나는 드디어 잠을 자겠구나, 싶었다. 까무룩하게 쏟아지는 어둠 속에서, 둔한 촉각과 청각만이 간신히 살아남아서 마지막으로 전달했다.
“우으…….”
입술 주변에 부드러운 무언가가 자꾸 쪽쪽거리면서 닿고, 물고, 삼켰다. 덕분에 내 입에서 침이 질질 나와서 쩍쩍 소리를 내고 말라붙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거 뭐야…….
“숨막……혀…….”
나는 자꾸 성가시게 구는 입술 주변의 무언가를 아프지 않게 붙잡을 정도로만 앙, 하고 물었다. 씁. 가만히 있자.
“……구……만해…….”
그게 가만히 입안에 있자, 나는 됐다, 싶었다. 나는 그게 그렇게 가만히 있기를 바라면서 잘근잘근 물고, 빨아 당기고, 어디 가지 못하도록 가만히 있게 딱 고정시켰다. 얼음땡처럼 가만히 있는 것을 두고 나는 그제야 입을 뗐다.
“가만히……. 착하게……. 있어. 나, 잘 거야…….”
‘…….’
“아무것도 하지 마…….”
‘…….응.’
귀찮아……. 나는 단단하고도 부드러운 어딘가에 내 얼굴을 비비면서 다시 편안한 자세를 잡았다.
‘푹신하다……. 꿈은 구름 침대로 만들어져 있나 봐.’
꿈속의 사람은 지치지도 않는지 딱, 잠에 훅 빠지기 전에 다시 속삭였다.
‘……잘 자.’
‘네가 방해만 안 하면, 나 잘 잘 수 있어…….’
난 정신을 잃고 잠에 훅, 빠져들었다.
그런 내가 눈을 뜬 것은, 눈가를 두드리며 깨우는 햇살 때문이었다. 까맣게 감긴 시야 너머의 가느다란 틈 사이로 새어오는 그 부시는 빛은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파고들었다. 파고드는 빛에 익숙해져 보려 껌뻑 껌뻑거리며, 시력을 잃은 노인마냥 주춤주춤 주변을 보다가 깜짝 놀라서 누워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기 어디지?”
내가 급하게 일어나자 나를 부드럽게 받쳐 주던 침대가 원래대로 단단히 돌아왔다. 바삭대는 하얀 시트와 남자 두 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침대는, 누가 봐도 우리 집이 아니다.
내 자리는……. 이런 넓은 침대가 아니라 낡은 TV 밑의 바닥이었으니까.
나는 황당함을 감추고 주변을 조금 더 찬찬히 살폈다. 뒤를 돌아보자 침대 머리에 있는 너른 창문 사이로 블라인드가 반쯤 쳐져 있어서 내가 일어난 자리를 요요히 햇살로 비추고 있었다. 내가 구깃구깃하게 어지럽힌 침대 시트를 빼면, 침대 옆에 좀 거리를 두고, 책상과 벽장에 두꺼운 책들이 빽빽이 꽂혀 있기도 했다.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한 책상을 보니, 무슨 드라마 촬영장에 온 것은 아닐까 싶었다. 깔끔한 인테리어에 나만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라, 나는 황당함을 감추고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왔고, 그때야 내가 입고 있는 넉넉한 사이즈의 티셔츠와 추리닝 바지를 알아차렸다. 어?
“이거……. 내 거 아닌데.”
누가 갈아입힌 것인지, 빳빳한 감촉의 티셔츠 자락을 만지다가, 나는 귀에 쏴, 하고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빗소리처럼 거세게 쏟아지는 물소리는…….
“……비 안 오는데…….”
나는 뒤돌아서 블라인드 너머로 쨍쨍한 하늘과 강가를 보다가 입이 절로 벌어졌다.
‘여기, 서울이지?’
“와…….”
날씨 좋은 것은 그렇다 치고, 얼마나 높은지도 모를 이곳은 한강 근처에 위치했는지 햇빛을 받아서 빤짝거리는 강 물결과 주변의 공원이 어우러진 모습을 보여 주었다.
여기, 도대체 누구……. 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나 어제…….”
“……일어났어?”
대호랑, 점심 먹었지…….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방구석에 있던 문을 열리며 대호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었다. 샤워를 한 모양인지, 얼굴이 샤워의 열기로 불그스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유난히 삐그덕대는 몸 관절을 애써 움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응.”
공교롭게도, 대호가 입은 티셔츠와 추리닝 차림은, 나랑 똑같았다. 대호는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내게 다가와서 이리저리 살폈다. 마치 어디 흠집 난 곳은 없는지 살펴보는 눈길이, 깊었다.
“어제 술이 좀 과했나봐. 잠은 잘 잤어? 어제 같이 잘 때 보니까 푹 자는 거 같긴 했는데…….”
“어어……응. 네, 네가 데려왔어?”
나는 어색하게 대호의 방을 둘러보았고, 대호가 작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응.”
“아……. 미안, 그냥 택시 태워서 보내지 그랬어. 귀찮았겠다.”
“아냐. 어떻게 그렇게 보내.”
대호는 넉살좋게 웃으면서 나를 다시 폭 안았다. 덩치가 커서 그런가, 평균이라고 생각한 내 몸이 쑥, 들어갔다. 갓 샤워를 마친 대호에게서는, 어제 맡은 그 무거운 코롱 같은 냄새가 은은하게 풍기고, 대호의 품에 남은 물기와 열기가 품에 들어간 내 뺨을 마찬가지로 따끈따끈하게 데웠다.
“아니, 아니……. 그래도.”
“좋다.”
내가 그 품 안에서 나오려고 하자 대호가 나를 안은 팔에 힘을 주고 중얼거렸다.
“참, 좋다…….”
“…….”
아직까지 열려 있는 욕실 문에서는 물이 똑, 똑, 떨어지는 소리만 간간히 들렸다.
“가하 너 봐서, 좋아…….”
……녀석, 말 하나 간지럽게 하네. 단순히 친구를 오랜만에 봐서 좋다고 하는 것일 텐데, 그 다정한 말에 나는 얼굴에 올랐던 열이 머리에 물감 풀어지듯이 번졌다. 방 안에서 껴안고 있는 우리 둘의 숨소리만 새근대는 조용해진 때. 어디서 진동음이 즈즈, 하고 울렸다. 나는 그제야 대호의 품 안에서 뒷걸음치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가하야, 네 핸드폰인 거 같은데.”
“어……어어. 고마워.”
대호가 나를 스쳐 지나가며 침대 맡 스탠드에 올려 둔 내 핸드폰을 허리 굽혀서 집어 주었고, 나는 얼떨떨하게 받아서 플립을 넘겼다.
[동생]
가연이었다. 핸드폰을 전해 준 대호는 내 옆에 서 있다가 화면을 본 모양이었는지 넌지시 물었다.
“가연 씨야?”
“아…… 응. 여보세요.”
나는 바로 전화를 받았고, 내 옆에 있던 대호는 침대에 슬슬 걸어가서 풀썩 소리가 나게 앉았다. 서서 통화하는 핸드폰 너머로 커다란 목소리가 꽝, 하고 천둥처럼 내 고막을 때렸다.
―오빠!
“어, 어…… 가연아.”
‘아이고 고막이야…….’
내가 핸드폰을 귀에서 조금 거리를 두자 수화기 너머로 딱따구리 저리가라 하는 추궁이 귓가에 따다닥 파고들었다.
―걱정했잖아! 뭐하다가 이제 받아? 내가 어제 전화 계속했는데……. 어디야?
나는 다시 올라오는 숙취에, 지끈대는 이마를 손으로 꾹꾹 누르면서 변명했다.
“지금, 친구 집……. 귀 아파, 가연아…….”
나는 한숨을 쉬면서 변명을 늘어놓았다.
“미안, 걱정했지. 내가 어제 약속이 있었는데…….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지금 일어났어.”
―말을 해야지…….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막, 어디 잘못된 줄 알구. 경찰서에다가도 전화했어……. 깜짝 놀랐잖아…….
가연이는 화내다가 훌쩍거렸다. 그 소리에 가슴이 욱신욱신 했다. 아, 진짜 걱정했겠네. 나는 대호 방의 침대 맡 작은 테이블에 놓인 전자시계를 보고 놀랐다. 벌써 아침 10시를 지나 있었다.
‘그럼……. 하루가 지난건가? 우리가 점심에 만났으니까…….’
통화를 하다가 침대에 앉아 있는 대호와 눈을 마주쳤고, 대호가 씩, 웃었다. 나는 그 모습에 자신이 더 한심했다. 오랜만에 본 친구라는 놈이 술 먹고 쓰러지고……. 나 친구가 아니라 완전 진상인데.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맞다. 가연이 저녁밥.
“가연아, 너 어제 저녁 챙겨 먹었어?”
―응.
“다행이다, 미안해……. 어제 저녁은 뭐 먹었어, 오늘 아침은? 지금 학교야?”
애 밥도 못 챙기고, 미쳤다. 그 생각이 머리를 치고 있는 그때, 내가 매일 나가는 공사판도, 팟, 하고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미친, 오늘 일하러 가야 하는데!’
―지금 집. 오늘 토요일이잖아. 아침은 당연히 챙겨 먹었지. 오빠 밥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뭐.
“……응응, 잘했어.”
그런 급한 마음은 가연이의 통화를 듣고 안도에 잠길 수 있었다. 오늘, 토요일이구나. 이마를 손으로 짚고서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맨날 어두컴컴한 반 지하에 살던 게 익숙한 탓에 블라인드 너머로 보이는 햇빛이 너무 눈부신 탓이었다.
정신을 어디다 팔고 두는 거야……. 이래서 술 안 마시는데. 나는 그렇게 원망하다가 눈이 마주친 대호가 침대에서 일어서서 내게 터벅, 터벅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저녁? 아……. 그거는…… 그, 사모님이……. 저녁 챙겨 주셨지.
“……너 또 거기 갔어?”
‘사모? 설마…….’
나는 ‘그 알바’를 또 갔다는 소리에 기가 차서 한 소리를 하려다가, 내게 다가온 대호가 나를 뒤에서 폭 안아드는 것에 당황해서 안긴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대호가 수화기를 대지 않은 귓등 위로 살살 속삭였다.
“……화 내지마.”
―그게……. 정말 안 가려고 했는데, 막 연락이 오니까……. 할 수 없이……. 그렇지만 그 사람 내가 연주 안 하면 잠을 못 잔단 말이야. 불쌍하잖아……. 어, 아무것도 아냐. 응. 가하 오빠.
동시에 가연이 옆에 누가 있는 거 같아서 물어보려고 했는데, 등 뒤로 닿아오는 단단한 가슴팍에 나는 머릿속이 꼬여드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가연이가 말하는 것에 딴지를 걸기도 어려웠다.
“아니, 나. 그게……. 어……. 아니, 그래도…….”
대호의 만류로 주춤대는 내 말에 가연이가 자신감을 얻었는지 탁, 말했다.
―진짜 약속할게. 이번 달만! 이번 달만 하고 끝낼게! 응? 진짜 착한 사람이야. 어제도, 나 오빠랑 연락 안 된다니까 같이 걱정해 주고……. 걱정된다고 잠도 못자고 그랬어……. 이상한 사람이면 그러겠어, 오빠? ……응. 지금 물어볼 거야.
“……이따가 다시 통화하자……. 근데 누구 옆에 있는 거야?”
―응. 언제 와? 아아, 옆에.
곧 갈게, 하고 말하려는데 대호가 내 손에서 핸드폰을 뺏어갔다. 어? 대호는 나를 꼭 안고서 뒷덜미 쪽으로 콧등을 내렸다. 안 그래도 휑해서 어색한 뒷목에 대호의 차가운 숨이 닿으면서 어께가 움츠러들었다.
“……야아, 핸드폰 이리 줘.”
“가연 씨, 저 황대호입니다.”
내가 간지러운 탓에 목을 손으로 가리면서 대호를 쳐다보자, 대호가 검지를 들어서 입술에, 쉿 하고 대었다.
―……황 변호사님?
가까이 있는 내게도 그 수화기 너머의 가연이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어제 오빠 분 무리시켰어요. 미리 연락 못 드려서 미안합니다. 워낙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던 탓에.”
―아……. 아뇨. 네? 그, 둘이 아는 사이에요? 저는 처음……. 듣는데? 아니, 둘이 언제 만난 거예요? 아이, 가만히 있어.
“옛날부터……. 오랫동안 알고 있던 사이입니다. 가하가, 부끄러움이 많아서 말 안 했나 봐요. 아무튼, 저랑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주말이니까 친구 분들이랑 놀러갔다가 오세요.”
“뭐?”
무슨 소리야, 이건 또. 나는 어어, 하는 순간에 수화기 너머로 가연이가 아닌, 낯선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들었다.
―가하, 거기 있어?
“황대호, 핸드폰 이리 줘.”
‘가연이 옆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인가?’
어딘가 느릿느릿한 투의 남자 목소리에 나는 대호가 들고 있는 수화기를 뺏으려고 달려들었는데, 이 녀석이 큰 키만큼이나 힘이 제법 셌다. 윽.
“……그래. 가하 여기 있어.”
―아, 이러면 안 된다니까. 아 네. 변호사님, 저 가연이에요. 그럼……. 오빠는…….
“제가 잘 돌려보낼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다음에 연락하죠. 들어가세요.”
그러고는 뚝, 끊어 버렸다. 나는 그제야 대호의 손 안에서 핸드폰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나는 이상하게 흘러가는 상황에 대호에게 불만을 토했다.
“뭐하는 짓이야……. 아까 그 사람은 누구고. 대호, 너 지금…….”
“화 내지마. 예쁜 얼굴 구기는 거 아깝다.”
“……뭐?”
“읏샤. 잠이나 더 자자.”
그는 나를 들쳐 업어서 다시 침대로 돌려보냈다. 나는 갑자기 반전되는 시야에 바둥바둥거리다가, 다시 푹신하게 받쳐 주는 침대에 눕혀지면서 멍하니 같이 침대에 눕는 대호를 보았다.
‘이 녀석은 힘이 왜 이렇게 세. 변호사면 책상에서 법전이나 책 같은 거 읽는 사람들 아닌가?’
“……너……. 왜 이래.”
“뭐가.”
옆에 누워서 흐트러진 내 머리를 살살 정리해 주는데, 살짝 소름이 돋았다. 그 탓에 나는 대호의 손을 반사적으로 탁, 쳤다. 내가 봐도 좀 그게 야멸차 보여서 바로 사과했다.
‘아니 근데, 왜 이렇게 들러붙는…… 거야.’
“미, 미안. 아니 근데…….”
“너무하네.”
대호는 작게 한숨을 쉬면서 나를 껴안았다. 윽. 그러니까, 이렇게.
“나 어제 종일 네 주사 받아주느라 피곤한데. 아침부터 그러지 말자. 응?”
“주, 주사? 내가?”
내가 몸을 일으켜 보려 했지만, 대호의 단단한 팔 안에 갇혀서 그럴 수가 없었다. 대호가 눈을 은근히 휘면서 넌지시 물었다.
“……가하 너, 어제 기억 안나?”
“……어?”
……안 나.
“내, 내가 뭐 했어?”
주사를 부렸다는 말에 대호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큰 근심거리를 가진 사람처럼 푹, 한숨을 쉬었다.
“아냐, 됐다. 기억 안 나면 그냥…….”
“아니, 내가 뭐 했어? 너 괴롭혔어? 어디 때렸어?”
설마 일어나자마자 몸이 여기저기 쑤셨던 게, 다……. 주사를 부려서? 나는 대호의 몸을 샅샅이 살피며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했다. 얼핏 눈이 닿는 곳에는 다행히 어디 멍이 들었거나 상처 난 자국은 없어 보였다.
‘이상하다, 나 딱히 주사 없는데. 그냥……. 졸려서 잤던 것 같은데.’
대호가 나를 향해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어?”
“아니…….”
대호는 막 웃다 못해 침대 위를 끅끅 대며 굴러다녔다. 그래도 워낙 큰 침대라 그런지 덩치 큰 녀석이 굴러다녀도 남을 정도로 넉넉했다. 대호는 이제 눈꼬리에 달린 눈물을 살짝 훔치며 커다란 손으로 다시 풉, 하고 터지는 입을 가렸다. 그 모습에 나는 괜히 기분이 구려졌다.
‘내가 무슨 이상한 짓을 했나?’
“……왜 웃냐니까. 내가 너한테 뭐 못할 짓 했어?”
“음.”
대호는 웃음을 꾹, 참는 듯 침음을 한 번 내더니 누워 있던 침대에서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이것저것 했지.”
“…….”
“알고 싶어? 알아도 후회 안 하겠어?”
대호는 턱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면서 고민하는 얼굴을 했다. 도대체 내가 뭘 했길래……. 나는 걱정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뭔지는 알아야 우선 사과도 하고 책임도 지지 않겠는가. 내 단호한 태도에 대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내 만행을 읊었다.
“……뭐, 별 거 안했어. 졸리다고 길바닥에 드러눕고, 집에 안 간다고 떼쓰고, 그러다가 속 안 좋다고 토하고…….”
“미안하다……. 내가 술을 잘 못하는데…….”
대호를 만난 게 놀랍기도 했지만 동시에 반갑기도 해서 한 잔 두 잔 하던 게 그런 꼴을 낳았을 줄이야. 나는 스스로에게 혐오감이 스멀스멀 들었다.
‘미쳤구나, 미쳤어…….’
어디 친구에게 그런……. 대호는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미안하긴. 별 거 아니었어, 토한 옷 벗기고, 씻기기만 하면 됐으니까. 그러고는 잘 잤으니, 됐지 뭐.”
“…….”
안 그래도 부끄러운 마음을 더 부채질하는 말에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참, 더러워진 옷 빨래 돌리고 있으니까, 다 마르면 줄게.”
“……고맙다…….”
사과를 백번해도 모자를 정도의 진상 짓에 나는 눈을 감았다. 추태도 이런 추태가 없었다. 그것도 동생 일 관련해서 만난……. 옛 친구에게. 나는 낯을 보여 줄 용기가 없어서,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사과했다.
“정말 미안하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널 만나고, 즐거워서 나도 모르게 많이 마셨나보다. 미안해. 다음에 내가…….”
“……나 만나서 즐거웠어?”
대호가 내게 문득, 물었다. 나는 사뭇 진지한 그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고, 내 추태로 화가 났나 싶었던 내 예상과 달리, 대호의 표정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랜만에……. 만났잖아.”
“나도.”
대호는 살짝 팔짱을 끼면서 눈을 휘었다.
“나도, 즐거웠어 어제. 가하 네 덕분에 어마어마한 경험했으니, 그걸로 됐어.”
“미안하다. 그거 다 치우느라……. 더러운 꼴 보고…….”
내가 이마를 짚으면서 미안해하고 있는데, 대호가 내 뺨을 손으로 살살 쓸었다.
“아니. 좋았어.”
“……응?”
토하고 바닥에 드러눕는 게? 내 의문에 대호가 시선을 내리깔고, 내 턱 부근을 뚫어지게 보았다. 어제는 회사라 그런지 머리를 단정하게 가르마를 타고 있었는데, 오늘은 샤워를 해서 부스스하게 내려온 게 그 내리깐 시선에 깊이를 더했다. 내 뺨을 쓸어 주던 손은 천천히 내려오면서 턱 근처를 살살 쓸었다.
“뭐…… 묻었어?”
나는 앉아 있던 자세를 뒤로 빼면서 그 묘한 손길을 피했다. 다 큰 녀석이, 어린 애처럼 행동한다고 하나. 아무튼 좀 묘했다. 내가 턱을 손으로 쓱쓱 문지르자 대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래도, 가하 너, 술은 안 마시는 게 좋겠어.”
“아, 나 원래 잘 안 마셔. 진짜로. 그래서 주사가 있는지도……. 몰랐어.”
진짜 마시지 말아야겠다고, 나는 단단히 마음을 먹으면서 대호를 향해 다시 한 번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미안. 다음에 내가 진짜 맛있는 거 사 줄게.”
그걸로 풀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약속했다. 그러자 대호가 음……. 하고 고민하더니 침대 시트에 힘없이 내려둔 내 손을 툭, 잡았다.
“……맛있는 거 말고, 다른 거 해 줘.”
“어……. 어떤 거?”
‘혹시 변상? 내가 지금 얼마 있더라…….’
내 지갑 혹시 봤냐고 물어보려는 참에, 대호는 내 머리를 손가락 사이로 스륵스륵 빗어주면서 생각에 빠진 소리를 내었다.
“음…….”
“편하게 말해. 내가 할 수 있는 거면, 다 들어줄게.”
“다?”
“응.”
미안한 마음에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자, 대호가 하하, 하고 웃었다.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냐.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그래.”
“……보증이나 장기 떼어 달라는 것만 아니면 뭐…….”
‘역시 변호사라 그런가?’
내게 주의를 주는 대호의 얼굴은 어디 물가에 내놓은 철없는 애를 보는 듯 했다. 대호는 큭, 하고 웃다가 나를 껴안았다. 희미한 숨결이 헐렁한 티셔츠의 목 부분에 스며들어 왔다.
“……내가 그런 걸 말 할리가 없잖아. 그냥…….”
그냥?
“……지금은……. 아직 생각이 안 나는데. 저장했다가 다음에 써도 돼?”
“어……. 그래.”
나는 그렇게 말하는데 굳이 껴안고 얘기하는 대호의 행동에 작은 어색함을 느끼며, 작게 웃었다. 여자 친구 필요 없다고 하는 애가, 하는 짓은 완전 애정결핍 걸린 애 같았다. 나는 그 품에서 빠져나오면서 대호의 팔을 툭, 쳤다.
“짜식, 여자 친구 빨리 만들어야겠네. 사람 자꾸 안고 이러는 거 보니까, 가족…….”
가족이 필요한 거 아니냐고 하려는 순간 대호가 내 말을 끊고 말했다.
“……네가 할래?”
“응?”
뭐라고? 내가 얼떨떨하게 대호를 보고 있는데, 대호가 진하게 웃었다.
“가하, 너랑……. 이렇게 살면 뭔가 좋겠다 싶어서.”
“야, 농담으로도 그러지 마. 내가 뭐 좋은 사람이라고. 나한테는 네가 아깝지.”
즐겁게 받아쳐 주면, 대호가 어제 오늘처럼 씩 웃을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하나도 안 아까워.”
그러고는 나를 죽,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느끼는 그 묘한 그 모습에 나는 마른 등줄기 위로 축축한 땀이 맺히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게 마치 대호가…….
“……대호……야?”
“농담이야. 너 보니까 마음이 편해서 그런가 봐.”
나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 리가 없지만. 나는 착각도 유분수라고, 나는 뒤늦게 너털웃음을 짓는 대호에게 투덜거렸다.
“너, 장난으로도 그러지마. 그런 얼굴로 말하면 진짜 같아서 무섭단 말이야.”
내가 침대를 벗어나서 방을 나가려는데 대호가 내 등에 대고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럼 성공했네.”
“응? 뭐라 했어?”
내가 뒤를 돌아보자 대호도 침대에서 일어서서 나를 뒤따라 왔다.
“아니, 밥 먹자고. 배고프지 않아?”
“어……. 응. 조금.”
‘잘못 들었나?’
나는 아직도 술기운이 남았나 싶어서 고개를 휘휘 털면서 부엌으로 향하는 대호를 쫒아갔다.
‘아니, 그런데 혼자 사는 거 같은데. 집이 왜 이렇게……. 큰 거야? 덩치가 커서 큰 집에 사나.’
나는 방을 훨씬 웃도는 거실과 부엌의 크기에 놀라며 주춤주춤 발을 옮겼다. 대호는 어느새 부엌으로 가서 식기세척기에서 그릇을 꺼내는지 달그락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얼른 그 옆에 다가갔다.
“도와줄게.”
“손님이잖아. 저기 앉아 있어.”
대호가 내 팔을 가볍게 밀었다. 나는 밀리지 않고 꿋꿋하게 옆에 서서 같이 그릇을 꺼내고, 밥솥이 있을 곳을 휘휘 둘러보았다.
“아냐, 이 정도는……. 밥솥 어디 있어?”
“저기. 아까 밥 씻어서 넣어 뒀는데.”
그 말을 들었을 땐 혼자 사는 남자치곤 제법 살림을 하나 싶었다.
“……언제?”
“한 30분 전쯤?”
나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밥솥을 찬찬히 읽으면서 취사, 버튼을 띡. 눌렀다. 그러자 밥솥에서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취사를 시작합니다.
“…….”
“…….”
대호는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머쓱한 표정으로 내 눈을 피하면서 중얼거렸다.
“……깜빡했나 봐.”
“……너 밥 할 줄 모르지?”
어쩐지 밥솥이 너무 새 거다 했다. 어디 물 튀긴 자국 하나 없이 깨끗한 싱크대도 그렇고, 뭘 해 먹는 거 같지가 않아서 나는 픽 웃었다.
‘완벽해 보이는 애가, 이런 거는 영 젬병이라니.’
대호는 큼, 하고 목을 정리하면서 대답했다.
“……요즘 연습 중이야.”
“그래. 앉아 있어. 내가 할게. 난 맨날 동생 밥 해 주느라 금방 해.”
“……응.”
대호는 그게 좀 쑥스러운지, 식탁에 수저를 놓으면서 순순히 앉아 있었다. 나는 냉장고에서 찬거리를 꺼내서 식탁에 두고, 국이라도 만들어 줘야겠다 싶어서 양념장이 쌓인 찬장을 뒤적거렸다. 다행히 냉장고에 김치랑 재료는 있네.
“너 집에서 밥 안 해 먹어?”
“……바빠서, 밖에서 먹고 들어와. 가끔 가정부가 식재료만 사 두고.”
역시 잘 사는 녀석은, 아니 성공한 녀석은 다르네. 하긴, 그 정도 되면 밥 해 먹을 시간도 부족하겠지. 나는 대충 수긍하며 도마랑 칼을 꺼내들었다.
“다음에는 내가 반찬이라도 좀 만들어 줄까? 그럼 그냥 밥만 해서 먹으면 되는데……. 너무 밖에서만 먹으면 너 몸 상한다.”
내 말에 대호는 의외로 진심으로 기뻐했다.
“……정말?”
“응. 너 뭐 좋아하는 거 있어?”
대호는 식탁에 팔을 올리고 얼굴을 받친 채로 씩 웃었다.
“다 좋아해.”
‘저런 얼굴을 여자 친구에게 하면 쓸개도 조리해서 주겠다.’
“……그래.”
나는 안타까움에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뭐하겠나, 옛 연인이 떠나고 슬픈 자리를 누군가가 채워 주기는 분명 어렵겠지.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고서야……. 나는 몰려드는 안쓰러움에 칼질을 빨리하며 얼른 밥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