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화 (27/61)

* * *

평소보다 집에 일찍 돌아온 나는, 한참동안 거실에 누워 있었다. 반지하방 특유의 습기로 우글우글 대는 천장의 누런 벽지를 쳐다보면서 방금 전에 나눈 짧은 통화 내용을 떠올렸다. 잊고 살던 그 예전의 모든 것들이, 마치 해일마냥 내게 쏟아져 오는 걸 머릿속으로 받아내느라 안 그래도 지친 정신 줄이 남아나지 않았다.

―네, 황대호입니다.

「……」

―여보세요.

핸드폰 너머로 전해져 오는 묵직한 목소리의 주인은 전의 앳된 흔적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어딘가 닮아 있었다.

「……여보세요.」

―천천히 말씀하세요.

「……전……. 가연이, 오빠 되는 사람입니다.」

어렸을 적에 내 옆에서 연주하던 그 나직한 울림과 같은 목소리.

―……아, 예. 유가연 씨 가족 분이시군요. 무슨 일이신가요.

「가연이가 하는 알바…….」

그때 나는 자꾸 긴장이 되어 한참을 망설이며 혀로 입을 축였다. 아까 먹은 차의 쓴 맛이 아직도 입 안에서 풍겼다.

정말, 너일까?

―예.

「……그만 뒀으면 합니다.」

―…….

내 말에 대호라 사람은 잠시 말이 없다가 곧장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이걸로 끝인가 싶어서 낡은 폴더 폰을 덮으려는 순간, 그 묵직한 목소리가 나를 치고 떠났다.

―시간 되시면, 한번 만나서 말씀 좀 나누고 싶군요.

「…….」

―가연 씨, 가족 되시는 분.

예전에 나를 만나러 왔었던 것처럼.

반지하방 천장 맡에 뚫린 창으로 저무는 햇빛이 어슷하게 들어오자 방안의 먼지들이 그 빛 아래에서 파스스 흩어졌다.

마치 그날의 기억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잘게 부셔지고 눈에 띄지도 않던 날들이 이렇게 비춰 오는 햇빛에 선연하게 드러나고 마는 게.

20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두 번은 변하고도 남을 세월이었다. 이전의 어린 날들을 말끔히 지우고 어른으로 살아가기엔 충분한 시간.

“하…….”

나는 더 이상 꺼질 땅도 없는 이 반지하방에서 한숨을 뱉어내며,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무거운 기억의 짐을 덜어 보려 애썼다. 그렇지만 사람일은 어디 마음먹은 것처럼 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덜어 보려던 그 생각이 머리 한 가운데를 쪼개어들다가 파고들다 못해 침범해 나갔다. 나는 걸친 체크남방 셔츠 앞주머니에 넣어 둔 핸드폰이 묵직하게 가슴팍을 눌러오는 것이 불편해서 꺼내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메세지함으로 들어갔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대호’의 이름을 가진 변호사가 보낸 문자였다.

[그럼, 내일 삼라 건설 사옥에서 뵙겠습니다.

혹시 부득이한 사정이 생기신다면

여기로 다시 연락 주시면 됩니다.

황대호]

몇 번째 봤는지 세다가 까먹을 정도로 나는 그 문자를 반복해서 보았다. 결국, 전화 너머에 있던 ’대호’에게, 정말 내가 아는 대호가 맞냐고 물어보지 못했다. 아니, 사실 대호가 아닐 수도 있다. 이 사람은 변호사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 대호네 집은 조폭 집이었고…….’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어린 시절에 목도했던 그 잔인한 폭력의 장면이 감겨진 눈앞에서 영화처럼 재생되는 착각이 들었다. 잊고 살던 기억이 하나둘 씩 나를 덮쳐든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때에 이렇게 나타나 나를 괴롭힌다.

그 험악한 상황에도 도착하자마자 나를 찾아서 꼭 안아 주던 대호.

그 사람들과 결을 같이 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던, 그 정 많고 곧은 성격.

아무리 그런 성격이라지만, 그런 환경에 있던 대호가 정말 변호사가 되었을까 싶었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엄마처럼, 그 뻐꾸기 같은 짐승이 되기 싫어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는 동생을 어떻게든 책임져 보려고 애쓰는 것처럼. 그 애도 태생부터 타고난 환경과 기질을 버린 걸까, 문득 작은 희망이 드는 것이다.

사람에게 안락을 안겨 주기만 한다면 아무리 그게 불편한 방식이라도 그다지 마다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아니까.

다 큰 어른들이 늘 그렇듯이, 엄마가 그랬듯이, 아빠가, 하다못해 오늘 만나고 온 가연이의 지도 교수가 그랬듯이.

한낱 사람이기에, 그런 익숙한 안락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앞선 좋지 못한 경험들로 똑똑히 아는 나였다. 그 누구도 탄탄하게 보장된 길을 걷어차는 바보 같은 일 따위는 절대 하지 않는다는 걸, 잠시 동안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숨 쉬면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알았다.

그런 애수에 젖어 있는 동안 잠겨 있던 현관문이 찰카닥 열렸다. 그 소리에 나는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마트 사은품으로 받아온 벽걸이 시계를 바라보았다. 벌써 시간이 저녁 6시를 지나 있었다. 생각에 빠져 있느라 시간이 이렇게 흐르는 줄도 몰랐네. 가연이는 현관에 들어오면서 구두를 벗다가 나를 보고 놀란 눈을 했다.

“어? 오빠, 벌써 왔네?”

“어……. 응. 오늘 작업이 일찍 끝나서. 배고파?”

이런, 아직 저녁 준비 못했는데. 나는 멋쩍게 웃어 보이면서 얼른 저녁 준비를 하려고 부엌 싱크대로 향하는데 동생이 살짝 행복한 미소로 고개를 저었다.

“으응, 아니. 나 밥 먹고 왔어.”

“아, 그래. 다행이다. 내가 시간을 깜빡해서……. 오늘 뭐 먹었어?”

나는 더벅머리를 쓸어내리면서 작게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정신 차리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어……. 그냥…….”

내 말에 가연이는 마치 혼나기 싫은 애처럼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동생이 등에 맨 첼로케이스 어께 끈을 두 손으로 꼭 쥐고 있는 게 내 눈에 턱 걸렸다. 평소라면 별 생각도 없을 것인데. 오늘 같은 날에는 그게 눈에 가시처럼 티가 났다. 그런 마음을 지워 보기도 전에 내 입에서는 불안한 추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너 거기 갔다 온 거야?”

스스로가 들어도 아까와 달리 확연히 온도차가 나는 목소리에 가연이는 불만어린 눈을 꼭 감았다. 참 이런 건 어릴 적을 벗어나지를 않는다.

“……이번 달까지만, 하려구……. 그만둘 땐 그만두더라도, 다른 사람 구할 때 까지만이라두…….”

안 돼.

“…….”

안 된다고 그래야한다. 너는 어린 여자애고, 세상에 힘 하나 뻗쳐 보기엔 아직 무력하고, 난 널 지켜 줄 힘이 충분하지 않으니까, 제발 가지 말라고. 그래야 한다. 그걸 머리로는 아는데, 전날처럼 대답이 바로 나오지가 않았다.

“있지.”

그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응?”

“……그 사람.”

그 애여서, 그런 걸까.

“……어때.”

나는 가만히 반 지하 방의 장판을 내려다보면서 간신히 물어보았다.

잘 지낼까, 아니. 그렇지는 못하겠지. 사고로 정신이 좋지 못하다고 그랬으니까.

‘사고……. 그때 그 사고일까.’

나는 서울역 대합실에서 틀어 주던 그 장면이 눈앞에서 둥둥 떠다니는 환영이 보였다. 깨어나 달라고, 그렇게 빌었던 소원을 빌던 그날. 그 예쁘고 귀한 애가 그렇게 되어 버렸다는 걸 난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동시에 기억 속에 묻어 둔 퀘퀘한 감정도 동시에 실마리마냥 풀어졌다.

‘혹시, 나 때문인가? 내가, 그때……. 그 애를 불러서?’

내 질문에 가연이는 무어라 말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현관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가 굳은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 말에 내 복잡하던 정신이 탁, 깨었다.

“……눈이 파래.”

“……그리고?”

이래서야 우리 둘이 가족이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겠다. 그 애를 본 감상이 이렇게 똑같을 줄이야. 가연이는 조심스레 그 애의 이야기를 꺼냈다. 방금도 보고 왔을 그 애의 얼굴과 반응을.

“혼혈이라 그런지 키가 엄청 커. 오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거 같아. 어렸을 때, 한국에 잠시 왔다가 계속 스웨덴에서 살았대. 그 당시의 나이로 정신이 멈춰서 그렇지, 한국어는 곧잘 말해. 알아듣기도 잘하고. 그리고 되게 착해. 나 오면 맨날 맛있는 거, 좋은 거 구해서 주고 싶어 해. 어제두, 스웨덴에서 가지고 왔다는 초콜릿 줬어. 내가 어제 냉장고에 넣어 뒀는데…….”

“…….”

좋은 말밖에 없는 건, 가연이가 알바를 하기 위해서 그 애를 두둔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실제로 그 애가 그런 애라는 것을 나는 알아서, 그 알바를 그만두라는 매몰찬 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

‘주현이, 그 애가 그때로 머물러 있다면, 아직도 그 서투른 목소리로, 이름을 부를까.’

너를 가연아, 하고…….

나는 가슴 너머를 뻐근하게 울리는 그리운 목소리를 떠올렸다.

가하, 하고 부르던 그 반짝이는 푸른 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해. 좀 불쌍한 게, 상태가 그렇다 보니까 집안에서만 있고 어디 나가질 못한대. 걱정이 되어서……. 그러니까 답답한지 내가 오면, 맨날 막 이것저것 물어봐. 바깥은 어떻냐고, 사람들은 어떻고, 그러다가 가끔 나한테서 바깥 냄새가 난다고 신기해 해. 막 가까이 와서 냄새도 맡아 봐.”

가연이는 그 말을 하면서 어딘가 쓸쓸한 얼굴을 했다.

“냄새?”

내 의문에 가연이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자기가 아는, 그리운 냄새가 난대.”

“뭐가……. 그립대?”

‘만약, 그 시간에 머물러 있다면 너도 나를 한 번쯤은 생각했을까?’

“뭐라더라……. 전에 얘기해 줬는데.”

가연이는 음…….하고 고민하듯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 하고 말했다.

“예전에 아끼는 새를 하나 키웠는데.”

‘새?’

그 애가 그랬던가? 내 기억에는 없는 소리에 나는 이제껏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가연이는 첼로가 무거운지 어깨 줄 한쪽을 내려서 방 안으로 턱턱 걸어갔다.

“잠시 바깥에 다녀온 사이에 날아가 버렸다고 했어. 새를 처음 키워 봐서 그렇게 날아갈지 몰랐다는 거야.”

“……아……. 그래?”

어딘가 허술한 점은 참 그 애답다 해야 할지. 나는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모르는 이야기에도, 왠지 그 애의 모습이 상상이 갔다. 내 말에 가연이는 응, 하고 대꾸했다.

“응. 그래서 계속 찾고 있다고 그랬어. 그래서 내가 그랬지. 원래 새를 키울 땐 날개를 좀 잘라 두는 거라고. 그래야 어디 도망가지 않고 집 안에서만 머물 수 있다고. 전에 ‘동물농장’에서 봤어.”

가연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문득, 자기 옷을 들어서 킁킁대었다.

“근데 오빠, 나한테서 무슨, 냄새나? 나 처음 봤을 때부터 그런 소리를 자꾸 하길래 신경 쓰여서 요즘 갈 때마다 페브리즈도 한 번씩 뿌리고, 전에 선물 받은 향수도 뿌리는데 늘 그 냄새 난다고 그래. 오늘도 그러더라.”

“음. 잘 모르겠는데……. 그냥 길거리 다니다가 배인 냄새 아니겠어?”

가연이 곁에 가서 냄새를 한 번 맡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요즈음 유난히 가연이 방에서 특유의 향기가 진하더니 그래서 그랬나 나야 늘 공사판의 쉰내 나는 아저씨들과 하루 종일 구르고 다니니 동생의 냄새 같은 것은 코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 반응에 가연이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얼굴로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거기 사모님도 그 사람, 으레 나오는 신경증이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는 하셨는데……. 애들이 원래 그런 거 예민하잖아. 혹시나 해서.”

“……어른이잖아. 애는 무슨. 사과 깎아 줄까?”

“몸만 어른이지, 정신은 초딩인데 뭘. 아, 근데 영어는 나보다 잘하더라. 그건 좀 부러웠어. 역시 혼혈이라 그런가. 어 진짜? 응!”

가연이는 살짝 투덜대다가 내 말에 눈치를 보던 기색을 지우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거실로 쪼르르 달려왔다.

‘내 눈엔 너도 애다, 애.’

어제 혼났던 건 안중에도 없는 모습에 나는 픽 웃음이 터뜨리며 어제 슈퍼에서 사 온 사과를 두어 개 집었다. 싱크대에서 팍팍 사과를 씻고 거실로 가는데 가연이가 가방에서 봉투를 하나 꺼냈다.

“……이게 뭐야?”

하얀 봉투는 제법 두툼했다. 가연이는 뭐가 켕기는지는 몰라도 시선을 피하며 우물거렸다.

“거기서 준 이번 달 연주비. 우리 생활비에 쓰라구…….”

“……됐어. 너 써.”

동생이 힘들게 벌어 온 돈에 손 벌릴 정도로 양심이 없지는 않아서 내가 도로 돌려주자 가연이가 등을 홱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싫어. 안 받으면 이제부터 말 안 할 거야.”

“……그래. 손 씻고 와.”

“응!”

어제 일로 나름 미안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가연이 특유의 부끄러움을 표현하는 태도에 돈 봉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가연이 이름 앞으로 저축해 둬야겠다.’

아니면, 혹시 내일 첼로 가지고 돈 얘기가 나오면……. 그거에다가 쓸까. 그게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우선 가지고 있는 게 낫겠지 싶은 생각이었다. 이게 병 주고 약 주고인가? 나는 속으로 엉킨 생각을 잠시 제쳐 두고서 사과를 가연이가 먹기 좋게 깎아 주었고,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고 온 가연이는 깎아 둔 사과 조각을 저 한 입, 나 한 입 먹여 주다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작게 탄성을 질렀다.

“어? 근데. 사모님은 한국 사람인데.”

“응?”

무슨 소리지. 나는 다 깎은 과도를 내려놓고 상아빛을 띄는 사과 하나를 냠, 베어 물었다. 가연이가 무릎을 끌어안은 자세로 사과 한쪽을 또 아삭아삭 먹었다.

“그 사람, 내가 혼혈이라고 했잖아.”

‘아. 주현이.’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가연이는 이상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근데, 그 사람 아버지도 한국 사람인데. 사모님도 한국 사람이면……. 뭐지?”

주현이네 어머니를 말하는 건가? 주현이가 분명……. 내가 옛 기억을 떠올리는 동안 가연이는 입 안에 든 사과를 오물오물 씹으며 탐정 마냥 추리하고 있었다.

“혹시……. 사생아인가?”

“유가연, 말조심 해야지.”

나는 짐짓 엄한 목소리로 주의를 주었다. 밖에서도 이럴까 걱정이다 너. 그러자 가연이가 자기 입을 손끝으로 톡톡 치면서 내 눈치를 보았다.

“미안 미안. 예쁜 말, 좋은 말. 아니, 근데……. 진짜 둘이 모자지간이라고 하기엔 너무 다르게 생겼단 말이야. 사모님도 진짜 예쁘시고, 그 사람도 진짜 예쁘고 멋지긴 한데…….”

나는 벽에 등을 기대면서 내가 알던 주현이를 떠올렸다. 그러게 분명.

‘주현이 어머니가 주현이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고 그랬던 거 같은데.’

가연이는 확신에 찬 눈으로 내게 말했다.

“아무리 봐도……. 가족 같지가 않아. 근데 나만 그런 생각하는 건 아닌가 봐, 거기서 일하시는 분이 오히려 내가 사모님이랑 훨씬 닮았대. 그냥 칭찬인가?”

“우리가 모르는 사정이 있나보지. 그래? 유가연, 너 그럼 부자 될 상인가보네?”

재혼이라도 한 건가? 나는 전에 그 집에서 사모라고 불렸던 사람이 없던 것을 떠올리며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그러자 가연이가 사과를 내 입에 쏙 넣어 주면서 샐샐 웃었다.

“당근이지. 부자 되면 내가, 이자까지 다 쳐서 오빠한테 다아 갚아 줄게. 응?”

“그래, 얼른 호강 좀 시켜 주라. 오빠도 죽기 전에 장가는 가야지.”

“맡겨 둬. 내가 괜찮은 애들 다 소개 시켜 줄게. 오빠 정도면 뭐, 애들이……. 아, 문자왔다.”

진담은 아니었지만 가연이는 보란 듯이 가슴을 쭉 피다가, 바닥에 내려둔 핸드폰에서 울리는 진동에 핸드폰 화면을 톡 터치했다. 메시지가 왔는지 화면을 눈으로 도르륵 읽다가 홱, 하고 내게 다가와서 어이없다는 눈을 했다.

“오빠.”

“응?”

“……설마 오늘 학교 갔어?”

“……어?”

나는 급소를 찌르는 가연이의 말에 더듬거렸다.

“아, 아니?”

가연이가 자기 핸드폰 화면 메시지를 화난 얼굴로 내게 보여 줬다.

“그럼 이거 뭐야?”

[하프 지연: 가연!

나 다음주에 예술의 강당에서 하프 독연 하는데 가족들이랑 한 번 구경 올래?

오빠 분도 오시면 정말 좋을 것 같아!

이거는 나중에 너희 오빠랑 같이 먹어.

여기 케이크 맛있어. ^^

참 그런데 가연이 너희 오빠 분 성함이 어떻게 돼?

나이는?

혹시……. 여자 친구도 있으셔?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이상한 의미 아니야!]

망고가 꽉 차 있는 홀 케이크 쿠폰이랑 보내진 메시지에는 내가 봐도 나를 향한 관심이 역력했다.

“…….”

이래서야 안 갔다는 말도 못 할 지경이었다. 내가 벙쪄서 말을 못하고 있으니 가연이가 내게 달려들어서 상체를 파다닥 때렸다. 앗 따가워.

“아이 진짜, 왜 갔어! 설마……. 오빠 교수님한테 내 알바 물어보러 간 거야? 그런 거야?”

“아니……. 진정해. 가연아.”

내가 빨갛게 달아오르는 팔을 문지르자 가연이가 씩씩대며 일어섰다.

“아 몰라! 오빠 진짜 개 미워! 이제 말 걸지 마! 나 어른인데 왜 자꾸 그래?”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남은 사과를 쏙 입에 넣어서 자기 방으로 날아가 버렸다. 얄밉긴 한데 저것마저 귀여워 보이니 큰일이네.

“……네가 무슨 어른이야. 아직도 애야…….”

저래서 시집은 어떻게 보내지? 남자친구만 생겨도 싫을 거 같은데…….

‘설마, 벌써 사귀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나는 문득 충격적인 상상에 굳었다. 가끔 말이 나오면 늘 없다고 대답하지만……. 저번처럼 이렇게 거짓말 하는 거면? 그렇게 생각하다가 다시 쓰리게 아파오는 팔뚝을 손으로 살살 쓸었다. 아, 아파라. 그러고는 원망을 다시 돌렸다. 아니, 그나저나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는데.

“이 거짓말쟁이들…….”

아무리 세상에 비밀은 없다지만, 하루도 안 가는 건 너무한 건 아닌가. 나는 애꿎은 사람들을 탓하며 사과 껍질을 싱크대로 가져가고 대충 저녁을 때우려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렸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점심 전에 그 변호사와 만나기로 했지…….’

일찍 자고 일어나서 이발소라도 갈 생각이었다. 혹시나 혹시나 하지만, 그래도 동생의 보호자로 가는 거니까, 꾀죄죄한 꼴로 갈 수는 없지.

내일 나올 ‘대호’는.

“우연인가…….”

정말 내가 아는 ‘대호’ 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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